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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8(2016.10.8. 발간)

 

[기획]

현대 마르크시즘 교육론의 상황과 과제

 

교육사상 연구팀

 

 

 

1. 마르크시즘 교육론의 이론적, 실천적 영향

 

한때 마르크시즘은 신자유주의의 발흥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득세 속에서 파산선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마르크스의 교육론은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교육모델 형성과 자본주의 국가의 교육기회 확대 등 여러 국가의 공교육 개혁과 좌파교육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첫째, 마르크시즘 교육론을 이루는 주요 내용들은 20세기 공교육의 팽창과정에서 상당부분 수용되거나 공교육 팽창의 근거로 작용했다. 전인교육(전면적 인간발달을 위한 보편교양교육),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교육공공성) 강조는 여러 국가의 공교육 시스템에 상당정도 수용되어 보편화되었다. 물론 그 실현의 여부나 정도는 각국의 경제체제, 정치체제 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둘째, 교육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교육학의 한 분야로 성장하는 데에 결정적인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교육을 사회적 현상의 하나이자 교육이 계급적 성격을 지닌다고 본 마르크시즘 교육론의 기본 관점은 교육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정교화 등 교육사회학 및 비판적 교육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도교육의 기능에 대한 교육의 계급적 성격을 간파한 마르크시즘 교육론을 적용하여 분석을 시도한 결과로 재생산이론이라는 학문분야가 성립되었다. 하지만 기존의 재생산이론이 마르크시즘적인 분석과 지향에 충실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과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한편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반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 붕괴된 반면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면서 마르크시즘 교육학은 이론적, 실천적 지위를 잃어가는 가운데 마르크시즘은 큰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렇게 이론적, 실천적 중심이 흔들리는 가운데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로 부상하면서 마르크시즘에 입각한 교육 연구는 현저하게 위축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셋째, 단선형학제의 확대 등 평등교육의 물적 토대가 전반적으로 확대되었다.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종합기술학교를 통해 이를 실현하고자 하였고 혁명을 통해 단기간에 엄청난 교육의 변화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교육적 변화는 자본주의 서방 세계의 교육개혁에도 압박을 가하는 요인이 되었으리라 사료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별 차이가 많기는 하지만 주로 자유주의 사상의 능력주의라는 테두리 속에서 교육을 통한 사회평등의 확대라는 자유주의 교육개혁을 단행하였고 복선형 학제의 완화와 일부 국가에서의 중등종합학교 도입 등을 통해 형식적 교육기회의 확대는 많이 진전되었다.

넷째, 전면적 인간발달과 인간해방이라는 마르크시즘 교육의 핵심 사상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관념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이론과 현실 모두에서 진전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고 있다. 전면적 인간발달을 지향하면서 제출된 생산노동과 교육의 결합’, ‘정신, 육체, 기술의 결합등은 구 소비에트에서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실현되어 본 적이 없고 이론적 심화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언급 이후 소비에트에서는 교육이론이 과학적이기보다는 정치슬로건의 차원에서 다루어졌다는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역시 교육이론이 풍부하게 제출된 듯 보이지만 정치논리에 의해 교육개혁이 동원되는 일이 반복되곤 하였다. 21세기인 현재도 전면적 인간발달에 걸맞는 교육과정을 실현하고 있는 국가는 찾기가 어려우며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세계 각국은 국가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교육의 공공성과 공교육시스템이 퇴보했고 파편화된 다기능적 인간으로서 적응력상품성을 기르려고 교육을 재편하고 교육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인해 심화되었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이러한 폭주는 제동 없이 진행되었다.

다섯째, 교육의 본질에 대한 마르크시즘의 답변이라 할 수 있는 전면적 인간발달과 그 실현방식으로 당시에 제출된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은 마르크시즘 교육론의 요체임에도 가장 미궁에 빠져 있다. 마르크시즘 교육론을 모태로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교육에서조차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은 종합기술교육이라는 기계적 결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 조차도 냉전체제의 압력과 경제개발의 시급성이라는 당면 과제에 쫓기며 형식화되었다. 직업기술을 직접적으로 훈련, 이식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한 채 교육을 문화역사적 주체형성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선전과 경제개발의 도구로 동원하려는 도구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봤으며 교육과정 역시 상황에 따라 경험중심교육과정과 학문중심교육과정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면서 전인적 발달의 과제는 오리무중의 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마르크시즘 교육론은 성과와 기여가 컸지만 역사적, 실천적, 이론적 한계 또한 명백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살펴보고 쟁점들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때 향후 마르크시즘 교육학을 현대적으로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2. 마르크시즘 교육론의 현재 : 쿠바와 핀란드의 교육

 

* 다르지만 유사한 쿠바와 핀란드는 21세기 들어 세계적 교육 모범국으로 현대교육의 대안적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두 나라 모두 평등교육 실현이라는 이념 하에 발달과 협력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핀란드가 사민주의 정치체제를 근간으로 교육공공성을 확대해왔다면 쿠바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정치체제의 차이로 인해 교육과 경제에 대한 관계 설정에 있어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거시적 공교육시스템과 미시적 교수학습에 이르기까지 유사성을 보이는데 이러한 유사성의 배경에는 러시아 혁명기 천재 심리학자의 이론이 있다.

 

1) 쿠바

 

인간은 교양을 갖춰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쿠바 혁명과 쿠바 교육의 시발점이 된 호세 마르티의 말)

 

쿠바는 가난한 국가임에도 학력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자유의지를 지닌 주체 형성 과정으로 교육을 바라보며 비고츠키의 학습이론을 직접적으로 수용하는 등 옛 소련의 교육이념을 바탕에 깔고 교양을 중시한다.

. 교육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중요한 토대라는 관점

교육을 상품으로 보거나 인적자원개발 등 경제적 도구로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의 교육관, 시장화 정책과 상반되는 관점과 정책을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유지하고 있다. 쿠바 교육이 주목받는 이유는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이 학력에서도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과 달리 가난한 나라지만 교육적 성과가 크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중요한 영역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 교육권을 모든 인민의 보편적 권리로 보장

농어촌 소규모학교 정책 등 경제논리에 종속되지 않고 교육을 모든 인민의 보편적 권리로 보장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인다.

 

쿠바는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그리하여 자유로워지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배움을 국가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도 국가 예산의 32퍼센트, GDP 대비 10퍼센트 이상의 교육예산을 대대적으로 투입하고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등 경제학자들이 좌지우지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정책을 펼친다. (중략) 농어촌 소규모 학교에 대한 정책은 주목할 만하다. 쿠바에서는 통학할 수 있는 범위 안에 학교가 골고루 자리 잡고 있으며 그중 2천여 개의 학교는 학생 수가 10명 이하로, 인구밀도가 낮은 과소 지역에는 학생이 한 명뿐인 초등학교도 있다. 전국 169개의 무니시피오(지자체) 가운데 47개는 산촌에 있으며 인구비로는 총인구 1,100만 명의 6.5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725천 명이 거주하고 있는데, 거기에 사는 약 152천 명의 학생들을 위해 보육원 27, 초등학교 2,400, 중학교 89, 고등학교 17, 농업전문기술교 28, 농업 기사 양성을 위한 대학산촌학부가 3곳이 설치되고, 양호학교도 27곳이나 있다. 전 국민에 대한 교육은 정부의 의무라고 명기된 헌법을 우직하게 지켜서 상식적으로는 통폐합될 만한 두메산골 학교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민선, “쿠바 교육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교육, 2013년 봄호)

 

. 평등 이념이 질 높은 공교육 구축의 지렛대

평등의 이념 하에 학교간 지역간 격차가 없는 질 높은 공교육 시스템 구축하였으며 인종차별을 뿌리뽑기 위해 오랫 동안 공들여서 교육개혁 추진하기도 하였다. 또한 교육을 통해 사회평등의 지평을 확대하고자 노력한다. 학교의 소유와 운영에 있어서 철저한 국공립체제를 구축고 있으며 모든 학교를 국유화하였고, 유아부터 대학까지 전면무상교육 등 공공성을 원리로 한다.

 

. 전인교육을 목표로 하는 교육과정과 높은 학력 수준

스포츠와 예술 교육을 강조하는 등 모든 아이들을 전인적으로 키우겠다는 이념을 표방한다. 그러면서도 문맹률이 아메리카 대륙 최저일 정도로중남미 국가 가운데 높은 학력 수준을 자랑한다. 1997라틴아메리카 교육 수준 평가 센터가 라틴아메리카 1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일학력시험’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유네스코의 제2회 중남미 국제학력시험결과에서도 최고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 경쟁이 아닌 협력, 배움을 위한 교육

교수-학습부터 주체 간 관계, 운영에 이르기까지 협력의 원리가 관통한다. 학급당 학생 수는 평균 15명으로 경제 선진국에 버금가는 소인수 학급이다. 경쟁을 배제하고 협동학습을 강조하며 학급당 인원수 소수화(평균15) 등 핀란드의 교육정책과 유사하다. 지역사회와 연계한 사회 교육정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가족, 학교, 커뮤니티라는 3요소를 중시한다.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이론을 근간으로 교수-학습 전개한다는 것이 이제는 다른 국가들에도 알려지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쿠바의 교육에서는 학력이 아닌 교양을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인간의 역능과 발달의 성과를 측정의 대상으로 삼아 수치화하고 비교하는 것에 얽매이는 대신 교양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사상 하에 인간해방을 위한 실천 영역으로서 국가차원의 공교육을 위치시키고 전인적 발달을 위한 교육과정과 소인수 학급을 어려운 경제 사정 하에서도 끈기있게 실행해왔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2) 핀란드

 

국제학력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보였고 우수한 학력의 비결이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한 발달 교육임이 드러나면서 교육 모범국으로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왔다. 교육에 대한 경제적 요구를 사민주의 정치체제 구축을 통해 평등교육 실현으로 발전시킨 나라이다. 역으로 평등교육을 통해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고자 해왔다.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되는 양질의 교육 시스템 구축이 가능하고, 이런 교육 시스템이 경제적·사회적 변화의 핵심 동력이라는 관점이 핀란드의 교육개혁의 바탕을 이루며 진행되었으며 뚝심있게 장기간 정부와 교사, 지역사회가 협력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둔 사례로 인정되고 있다. 핀란드는 상생과 발달을 위해서는 협력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대목은 핀란드의 협력교육의 이론적 근거가 구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가 창시한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 학교는 발달을 위한 곳

학교교육의 목적을 전반적인 인성 발달이라고 명시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전반적인 인성발달에 대해 핀란드 교육당국은 지식, 기술, 가치, 창의력, 대인 관계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선별사회배치라는 학교의 기능을 국가차원에서 제고하면서 학교는 시험보다는 배움을 우선시하는 배움과 돌봄의 장소로서 유지하고자 하며, 성취를 보편적인 양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발달 및 성장과 관련하여 규정하는 등 발달에 중심을 두는 국가교육체제를 구축하였다. (에르끼 아호 외 지음, 김선희 옮김, 핀란드 교육개혁보고서, 15)

 

. 평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협력적이고 자율적인 교육시스템 구축

국가 교육 정책의 중요한 목표는 모든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똑같이 좋은 학교들로 구성된 학교 네트워크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평등 원칙은 1970년대 초반 이후의 주된 정책 이념이라고 한다. 학교 네트워크는 학교와 교실에서의 다양성을 촉진하는 통합교육이라는 이념에 기초해 있으며 따라서 교수와 학습은 명문화된 표준에 의해 조율된 적이 한 번도 없고 오히려 점점 더 다양해지는 사회적·인간적 환경에서 창조적인 해결 방안들은 도출해낼 것을 권장하는 지침을 기본으로 삼는다.(에르끼 아호, 앞의 책)

 

. 인적자원개발이라는 당장의 목표를 위해 교육의 본질이라는 우회로를 선택

핀란드는 열악한 자연적 조건, 오랜 기간 동안의 식민지 지배 경험으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상태에 있었고 교육체제 또한 복선형 학제가 고착화되어 있는 등 유럽의 변방국가였다. 경제개발을 위해 인적자원이 중시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었으나 지식과 직업기술의 직접적 주입이라는 지름길 대신 발달이라는 교육적 본질을 선택했다. 인적자원개발이라는 목적을 협력을 통한 발달과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교육적 본질로 실현하고자 한다. 또한 능력별 학급편성을 하지 않으며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으로의 구분을 가급적 늦추고자 한다. 어떤 지식이나 개념, 기능은 직접적으로 가르쳐지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일반적인 역량이 형성되었을 경우 타 영역이나 상황, 기능으로 발전적으로 전이된다는 이론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핀란드의 공교육은 자본주의 사회일지라도 협력의 가치가 경쟁을 넘어선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유로 교육위원회 등 미래교육을 방향을 논의하고 설정함에 있어서 핀란드가 준 영향을 큰데, 의사소통과 상호교류, 도구사용능력 등 새로운 교육목표로서 중심적 위치를 점하기 시작한 핵심역량논의라든가 미래교육과정의 기본 원리를 협력으로 제시한다든가 사회적 역량을 중시하는 것은 핀란드의 협력교육이 나타낸 높은 성과에 자극을 받은 결과들이기도 하다. 또한 쿠바교육과 함께 핀란드 협력교육의 토대에 구러시아의 심리학자가 창시한 이론이 배경으로 자리한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3. 쿠바와 핀란드 교육의 과학적, 이론적 토대 : 비고츠키 교육학

 

오늘날 대세가 되고 있고 미래교육의 방향으로 각광받고 있는 협력교육의 과학적, 이론적 토대가 형성된 것은 1917년 러시아혁명 후 1930년대를 전후해서 이루어진 러시아의 한 천재심리학자와 그 동료들의 협력 작업을 통해서였다.

러시아 혁명기의 심리학자였던 비고츠키(1896~1934)가 동료들과의 협력작업을 통해 정립한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80여년이 지난 지금 현대교육의 새 지평을 여는 이론적 토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동료들과 함께 마르크스가 여러 저서에서 인간발달과 교육에 대한 짤막하게 기술한 문장들을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펼쳐내는 작업을 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 관점을 수용하여 발달개념을 핵심으로 정교한 과학성을 담보하면서도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펼쳐냈다.

비고츠키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을 인간발달의 문제에 적용하여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나 스탈린주의의 탄압으로 당대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장기간의 판금조치로 인해 소련 내에서도 한동안 연구가 중단되었고 동료들은 연구방향과 입장을 선회하는 등의 방식으로 생존하였다.

스탈린 집권이 끝나고 1950년대 말미에 비로소 복권되어 비고츠키 저작 러시아어 선집이 출판되었고 사고와 언어가 서방세계에도 번역 소개되었다. 60년대부터 서구에서는 피아제의 대안으로 각광받아 1980년대 1차 비고츠키 붐에 이어 현재 2차 비고츠키 붐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상당히 현대교육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론이다.

 

이 참신한 이론은 스탈린 시대에 잠시 탄압받지만 1950년대 말부터 부활하여 재평가 받는다. 하지만 미국 심리학회는 이런 움직임을 거의 무시하고 있었다. 비고츠키를 심리학계의 모차르트라고 부른 시카고 대학의 툴민이 “1920~30년대 러시아에서 행해졌던 연구의 본질은 현재의 미국의 연구에 버금간다.”라고 쓴 것은 1978년의 일이다. 평가 움직임은 러시아보다 30년이 늦은 1980년대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그리고 유럽에서는 1990년 소련붕괴 이후에 비고츠키 연구가 더더욱 활발해져간다.

핀란드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집 근처 학교에 다니며 1명의 교사에게 소수정원으로 배우고 있다. ‘성취도별 수업은 중지되고 16살까지는 학교선별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는 것을 기본으로 그룹학습이나 서로 가르쳐주는 것을 중시한다고 한다. 이것이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는 독자 여러분도 이미 아실 것이다.“ (요시다 다로 지음, 위정훈 옮김, 2012,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 92)

 

서구 일부 구성주의 교육학자들은 비고츠키 이론적 마르크스주의적 성격을 회피하면서 피아제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론의 지극히 일부만 알려진 상황에서 비고츠키의 이론을 사회적 구성주의의 원조인 양 왜곡하기도 하였으나 비고츠키의 선집 전권이 1980년대에 영어로 완역 출간되면서 왜곡이 가능한 조건은 사라졌고 현재는 비고츠키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토대로 하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로 규정하고 비고츠키가 인간발달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문제를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과학적으로 분석, 설명하여 발달이론으로 정립한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비고츠키의 이론과 저작들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교육학에서도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수용되는 이유는 마르크스의 사회와 인간에 대한 기본관점을 계승하면서도 발생적 방법이라는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을 발전시켜 인간발달의 보편적 원리와 과정을 밝혔다는 데에 기인한다. 특히 발달의 기제, 변화의 역동에 대해 매우 탁월하게 설명하고 입증했다는 것에 대해 후대의 교육학자들은 다른 이론과 견주어 보았을 때 이를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라 평가한다. 비고츠키는 실제로 발생적 방법을 방법론적으로 유난히 강조하였으며 이를 통해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정 그리고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 교육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교육과정, 교수-학습론, 평가론 등 교육의 전 분야에 걸쳐 토대가 될 만한 이론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의 인간의 전면적 발달사상을 고등정신기능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그 형성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는데 여기에는 추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던 전면적 인간발달의 문제를 과학의 영역으로 가져왔다는 의의가 있다. 비고츠키의 이론을 발판으로 이제 전인교육은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과 사상의 위치에서 현실의 교육목표로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핵심역량논의는 고등정신기능 논의와도 맥락이 닿아 있기도 하다.

현재 협력의 강조는 교육 분야 뿐 아니라 현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담론에서도 대세를 이룬다. 협력이 도덕적 가치 이상을 가지는 것으로 상승시키는데 기여한 이론 중 하나가 바로 비고츠키 이론이다. 핀란드와 쿠바가 경쟁의 유혹을 물리치고 협력을 근간으로 공교육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협력의 교육적, 발달적 가치를 비고츠키 교육학이 과학적으로 규명했기 때문이다. 비고츠키 교육학은 국가 차원의 공교육 시스템의 철학으로서 뿐 아니라 교육혁신의 열망이 있는 여러 주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요컨대, 피아제의 대안으로 서구사회 일부학자에게 주목받던 위치에서 이제는 현대교육의 큰 흐름을 이끌어가는 중심이론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비고츠키 교육학이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정치이념으로써 강조될 뿐 이론적, 실천적 답보상태에 있었던 마르크스의 교육사상이 비고츠키 교육학을 통해 이제 과학적 교육이론의 지위를 가지고 전세계 교육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정황들은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마르크스의 교육사상을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을 발판삼아 현대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미래교육의 새로운 교육의 지평을 여는데 있어서 마르크시즘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4. 마르크시즘 교육론을 사회적, 역사적 주체형성이론으로 재정립하기 위한 과제

 

1) 전면적 인간발달과 인간해방에 대한 철학적, 교육학적 재구성

 

. “종합기술교육의 의의와 한계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소련과 사회주의 국가의 새로운 교육에 대한 실험은 결국 역사적으로는 실패로 귀결되었다. 여러 가지 내적, 외적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교육이론의 측면에서만 살피면 일단 전반적으로 과학성이 결여된 소비에트 교육학의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문서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인간발달과 사회의 변화에 대한 과학적, 장기적 조망보다는 당장의 압력에 떠밀려가는 모양새였으며 교육과정과 교수-학습에서 역시 유물변증법의 원리는 문서상으로만 강조될 뿐 구체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교육실천에서 중심원리가 되기 어려웠고 결국 교육 실제는 행동주의가 장악하였고 의식의 고양을 통한 주체적 인간 형성보다는 테제화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주입하고 경제적 도구로서 종합기술교육을 동원하며 민주주의를 형식화하는 문제들이 노정되었고 끝내 이러한 부분들을 개혁하지 못한 채 동구권의 사회주의국가들은 몰락하였다. 쿠바가 교양을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기초조건으로 제시하고 모범적인 교육체제를 구축한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이다.

종합기술교육을 통한 사회주의적 주체 형성에 실패는 근본적으로는 학습과 노동의 결합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기계적인 해석에서 비롯되었고 역사적 주체 형성과 개별 주체의 발달의 과정을 매우 단순화하였기 때문이다. 학습과 노동을 양적비중의 문제로 여기고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전면적 인간발달에 대한 과학적, 실천적 토대가 취약했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쉽사리 흔들린 것은 앞서 언급한 바이다. 근본적으로는 학습과 노동의 결합, 사회적 주체와 개별 주체의 형성의 관계에 대한 변증법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으며 여기에 정치경제적 상황이 불리하게 노정되면서 역사적 실패로 귀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주체형성의 실패는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급의식의 형성과 사회주의적 인간형 창출을 직접적 목표로 표방했음에도 이에 실패한 것은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적 인간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도달하는 경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이라는 마르크스의 기본 제안을 종합기술교육이라는 형태로 구현하고자 한 시도는 전면적 발달이 교육의 중심문제임을 강조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이를 실현하고자 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고 그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이를 이론과 실천의 통일’ ‘경험과 학문의 결합이라는 형태로 발전시켜 전생애 교육과정의 원리로서 정립해 나갈 필요가 있으며 사회적, 역사적 주체 형성의 과정과 개체 발달의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켜 바라볼 것인지의 과제를 제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아울러 전면적 인간발달이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무엇을 기제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는 과학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 비고츠키 이론이 주는 시사점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전면적 인간발달은 소외를 극복한 인간의 존재적 실현이면서 동시에 사회변혁의 조건이자 목적이다. 한편으로는 교육이 지닌 계급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교육에 대한 사회적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마르크스의 교육론은 향후 올바로 계승되지 못하였으며 이러한 역사적 한계와 이론적, 실천적 과제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 것은 앞서 언급한 핀란드와 쿠바 교육의 근거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비고츠키 이론이다.

그는 전면적인 인간발달을 위해서는 첫째,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계급폐지를 통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둘째,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결합, 협력적 생산활동의 전개. 셋째, 제반의 사회적 관계의 (협력적)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새로운 역사적 주체를 교육을 통해 의식적이고 사회적으로 형성해 나갈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학교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그는 자본주의적 노동분할과 파편화된 발달을 극복하고 생각과 활동의 결합, 정신적 발달과 육체적 발달의 통일을 지향하는 교육이 되어야 전면적인 인간발달이 가능하다고 여겼다.(천보선, 2014, “애플과 비고츠키”, 진보교육54)

 

인간발달의 보편적 원리 탐구를 통해 사회적 관계가 발달의 원천이며 기호를 매개로 한 체계적이고 협력적인 상호작용이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열쇠임을 밝혀냄

비고츠키는 혁명기 러시아 상황에서 주로 인간발달의 보편적 과정을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연구하였다. 궁극적 지향은 인간발달에 대한 총체적 해명과 혁명적 발달을 담지할 역사적 주체 형성에 있었는데, 그는 개체(개인)발달의 보편적 과정을 의식발달을 중심으로 과학적으로 분석하는데 주력하였으며 사회적 의식해명의 장대한 과제는 미처 진행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그럼에도 인간발달에 대한 그의 총체적, 인과역동적, 발생적 관점과 도구와 기호, 언어의 매개적 역할, 고등정신기능, 개념적 사고와 주체성의 발달과정, 근접발달영역 창출 등의 개념들은 교육현상과 실천을 이해하는 틀과 개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단지 지향적 개념에 머물러왔던 전면적 발달은 비로소 과학적 분석의 개념이자 실천의 방법론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천보선, 앞의 글)

비고츠키에 따르면 사회적 관계와 접촉 속에서 인간은 새로운 사고양식을 획득하고 개념적 사고를 통해 세계를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주체가 되어 간다. 또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토대로한 인간의 발달과정에서 핵심적인 질적 변화의 방향을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나아간다는 사실에서 찾았다. 또한 세계를 지각하는 존재에서 능동적으로 인식하는 주체로의 변화가 바로 인간의 발달이다. 따라서 전면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에 포함되어야 할 핵심적 의미는 자유의지를 지닌 능동적 주체이며 이를 위해 세계와 자신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인식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상호작용능력과 변증법적 관계를 이루는데 상호작용 능력을 전제로 고차적 역량의 형성이 가능하며 반대로 고차적 역량을 통해 고차적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전면적으로 발달된 인간에 대한 흔한 오해는 다기능적이라는 이미지에서 비롯되며 전인교육은 인성교육’ ‘품성교육등으로 지적인 것과 대립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비고츠키에 따르면 여러 기능을 능숙히 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기능들을 학교 교육과정에 대응적으로 도입하여 하나하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역량의 형성에 있으며 학교 교육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여러 고차적 기능들이 이후 사회적 문화적 과제들에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창조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로서 작용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예컨대, ‘융합이 대세라고 해서 융합을 초등 어린이에게 직접적으로 가르치고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해서 창의성을 개발하기 위한 방법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등은 인간발달의 변증법적 성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사실상 이러한 미래에 나타날 모습을 현재에 들이붓는 것은 사실 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미래의 계급의식은 현재에는 동료와의 협력과 학생자치 활동을 통한 민주적 의사소통의 실천에 그 맹아가 있으며 미래의 변증법적 사고는 청소년기의 개념적 사고의 형성에서 그 가능성을 배태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종합기술교육이 직접적으로 생산노동과 학습을 결합한다고 해서 이분법적 상황이 극복되고 전인적 발달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인간발달의 변증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 제도교육의 여러 정책들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어온 일들이다. 미래의 총체적으로 발달한 인간의 현재의 모습을 어린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과거 전성설(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과 마찬가지이다.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결합을 통한 의식의 고양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을 통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마르크시즘 교육학의 기본지향은 종합기술교육을 통해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노동을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개별적, 집단적 형성 과정이라는 철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기보다는 생산현장에서의 일하기 내지 그와 유사한 상황을 학교교육에서 경험하기 정도로 협소하게 바라보고 이를 교육에 적용하면서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노동이라는 활동을 통한 주체 형성을 직접적 직업기술교육의 측면으로 한정시켜 버렸다.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의 사회적 관계와 교류가 개별 인간이 발달하는 토대라는 것을 바탕으로 발달시기에 따라 발달을 이끄는 유의미한 활동들을 제시하였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의 체계적 협력과정을 바탕으로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상호 침투와 결합과정을 통해 개념적 사고가 형성된다고 규명함으로써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을 통한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는 마르크스 교육론의 기본 취지를 발달교육학의 차원에서 풀어냈다.



또한 비고츠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전면적 발달의 한 축으로서의 노동을 발달의 과정에 맞게 재해석하여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고츠키는 발달의 시기 시기마다 인격은 총체적으로 변화하지만 각 발달단계마다 이러한 총체적 변화의 문을 여는 열쇠의 구실을 하는 '중심기능'이 있고 발달의 다음 영역으로 이끄는 '선도활동'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교육단계별 선도 활동 (비고츠키의 논의를 레온티에프가 정리)

교육 단계

비고츠키의 선도적 교육 활동

유아원

정서적 반응/대상 중심적 활동

유치원

사회 역할극/놀이 활동

초등학교

학교에서의 학습 활동

고등학교

동료와의 협력 활동

대학과 직장

직장에서의 노동 활동

 

생산노동과 학습의 결합은 이러한 비고츠키의 이론을 통해 교육학적 재정립이 가능하다. “과학적 개념과 일상적 개념의 결합을 통해 사고가 고양될 수 있고 발달을 이끄는 선도적 활동과 핵심기능이 발달시기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통해 전면적 발달은 연령과 상관없이 노동과 학습을 병렬적으로 결합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발달시기의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과정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의 발달을 토대로 향후 협업적 생산노동과 민주적 정치문화공동체 속에서 보다 고차적인 상호교류를 할 수 있으며 고차적 상호교류와 창조성을 발휘하는 주체 간의 사회적 관계는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밝혀준다.

하지만 비고츠키의 발달이론은 주로 발달의 개별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며 사회적 관계가 발달의 원천이고 토대라고 하지만 정작 그 사회적 관계의 성격에 따라 발달의 경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주제로 삼지 않았다는 한계가 있다.

 

2) 비판교육학의 성과와 한계


비판교육학은 마르크스의 교육론 가운데 교육의 계급적 성격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면서 형성되었고 자본주의사회에서의 학교교육의 성격 문제에 유의미한 분석을 다수 제출하였다. 보울스·진티스 이래로 일리치, 윌리스, 알튀세, 부르디외, 플란차스, 애플에 이르기까지 비판교육학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학교가 어떤 성격과 기능을 지니며 그로 인한 사회적, 정치적 영향은 어떠한가의 문제를 주로 다루어 왔다. 초기 다수의 비판교육학자들은 학교의 재생산 기능을 분석적으로 폭로하는데 성과를 거두었으나 경제결정론적, 환원론적 경향을 보이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공고함을 설명하는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대두되었고 이에 대해 애플 등은 상대적 자율성 개념에 근거해 저항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흐름으로 나아갔다.

특히 애플은 재생산이론으로 통칭되는 이전 비판교육학의 성과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점유하면서 비판교육학과 저항적 실천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다. 애플은 학교가 계층화된 작업장에 알맞게 위계화된 학생 집단을 산출해 낸다는 보울즈와 진티즈의 주장에 일차적으로 동의하는 등 재생산론을 비판적으로 점유하면서 학교는 단순한 경제적 반영 이상으로 학교는 경제와 국가와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갈등하면서 접합하는 장소로 보았음. 재생산/저항의 양 측면을 바라 본 애플의 이러한 논의는 비판적 교육실천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었고 8-90년대 한국에서 교육운동이 발흥하는 토대 중 하나였다.(천보선, 앞의 글)

이러한 흐름 속에 형성된 비판교육학의 주된 문제는 결국 주체형성의 사회적(집단적) 과정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생산론은 거시적인 구조 분석을 통해 학교를 통해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계급주체들이 재생산된다는 것이었고 애플 등의 저항이론은 재생산론의 단순한 설명을 넘어 틈새와 불일치, 나아가 저항 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함께 제시한 것으로서 행위자의 능동성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물론 주체형성의 과정이 오직 학교를 통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주체형성의 사회적(집단적) 과정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교육학은 학교가 어떻게 기존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계급, 권력 관계로부터 규정받고 재생산하는데 기여하며, 또한 변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부여받을 수 있는지 해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주체 형성에 대한 총체적 인식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비판교육학에는 주체형성의 사회적 과정은 있지만 개체적 혹은 개인적 과정은 없다. 인간의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을 발보는 시각은 부재하다. 따라서 미시적인 교수-학습 과정과 주체 형성의 관계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결여된다. 비판교육학에 기초한 실천은 주로 학교교육의 불평등, 비민주성 등 거시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에 집중하게 되고 교수-학습의 실천에는 한계가 있다. 실천의 영역에서는 비판교육학의 거시적 담론에 의존하는 불평등과 비민주성에 대항하는 제도투쟁과 교수-학습에 초점을 두는 교실 내의 참교육실천을 통해 개별주체의 형성을 통해 사회변화를 이룰 것이라는 낭만주의의 색채를 띈 참교육실천으로 분리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미시적 과정과 거시적 과정의 통합적 이론과 실천은 아직 제출되지 않고 있다.

 

 

3) ‘올바른 사회적, 역사적 주체 형성을 위한 실천교육학구성

 

* 비판교육학과 발달교육학의 결합

주체형성의 개체적(개인적)과정과 사회적(집단적)과정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주체형성은 개체발달을 통해 이루어지며, 또한 개체발달의 총체는 역사적 주체 형성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체형성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비판교육학과 함께 발달교육학을 필요로 한다.

교육운동진영의 경우 그간 비판교육학과 다소 멀어졌던 대신, 어린이 청소년의 발달 위기 문제로 인해 새로운 교수-학습론에 대한 욕구가 강화되었으며 매뉴얼과 테크닉이 아닌 교육과 발달의 근본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과정 전개. 혁신학교 운동에 참여하는 교사들은 수업혁신의 차원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교육의 본질에 대한 모색의 불가피성을 깨닫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사회적 주체형성과 개인 발달의 문제는 하나의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일 뿐 실제로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과정이다. 기존 교육이론의 학문체계 속에서 두 측면을 결합하는 논의가 아직 없었을 뿐이다. 각자의 문법과 논리를 가진 별개의 분야로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인간-사회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교육을 통한 올바른 역사적 주체 형성과 사회형성을 위한 새로운 실천교육학의 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시도에 해당하는 현존의 업적 중 하나는 프레이리의 인간해방 교육론이다. 브라질 사회에서 사회적 주체형성과 개인의 발달 두 가지 문제를 통합하여 실천적 교육학으로 구성한 것이 페다고지인데 페다고지는 당대 브라질 사회의 특수성이 반영된 성인문해교육론의 모습을 보이지만 페다고지에 내포된 문제의식은 교육을 통한 인간발달과 사회변화라는 훨씬 더 방대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 영향은 전 세계적이다.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국가들에서 여러 형태로 현실에 적용이 시도된 실천교육학의 사례이다.

‘(개별적) 발달‘(집단적) 의식 형성이라는 문제를 함께 결합시키는 것은 그리 간단치 않은 일이다. 발달 없이 진정한 계급의식 형성은 어렵지만, 발달한다고 해서 저절로 계급의식의 형성까지 담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두 논의의 결합은 교육운동진영이 풀어가야 할 난제인 동시에 새로운 이론적, 실천적 지평을 열어주는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두 논의의 결합은 보다 풍부한 관점과 내용을 제공할 뿐 아니라 비판과 대안, 거시적 분석과 미시적 실천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교육담론을 새롭게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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