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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론을 호출하는 사회

타라(문화연구분과)

 

세대론 혹은 특정 세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2018년 《세대게임》(전상진)을 시작으로 하여 《문화사회학으로 바라본 세대 연대기》(최샛별)를 거쳐 《90년대생이 온다》(임홍택)로 이어지더니 2019년에는 《청년팔이 사회》(김선기), 《386세대유감》(김정훈, 심나리 외 2명), 《불평등의 세대》(이철승), 《20대 남성》(천관율, 정한울), 《밀레니얼 368세대를 전복하라》(백경훈 외 10인)의 출간으로 세대 담론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각의 책들이 모두 제법 긴 부제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 세대 간 문화 경험과 문화 갈등의 자화상,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세대론이 지배하는 일상 뒤집기, 386세대에게 헬조선의 미필적 고의를 묻다,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86세대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밀레니얼 세대의 작심 비판. 제목과 부제만 보아도 대략 저자의 의도와 다룬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18년의 글들이 세대론을 둘러싼 담론과 사회현상들을 서술하는 것에 그쳤다면 2019년에는 세대론과 세대를 둘러싼 사회현상들을 미시적 혹은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활황을 이룬다. 그런데, 2019년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세대론이 전면적으로 부상하여 직접적으로 호출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4.19세대며 신세대, 88만원 세대 그리고 최근의 N포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까지 세대론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리고 ‘요즘 젊은 것들…’ 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 버릇없는 이들에 대한 잔소리와 ‘라떼는 말야’(‘나 때는 말이야’를 비꼬는 표현)라는 설교는 제법 오래된 어법이다. 기원전 수메르시대 점토판과 고대 그리스 고전의 글귀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입과 귀에 익숙한 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쩍 세대를 가르고 세대의 특성을 절대화하여 ‘세대’로 제반 사회현상, 특히 사회 구조적 모순이나 불평등 문제를 설명하려드는 요즈음의 현상들은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세대론 혹은 세대주의는 로버트 볼의 표현을 빌면 “정치가, 저널리스트, 대중적 지식인들이 세대의 중심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문제들을 (다른 개념들을 제쳐두고) 세대generation의 개념으로 풀어 이야기하는 현상”을 말한다. 태극기부대와 일베 등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세대라는 집단적 범주로 단박에 설명해버리는 행태가 바로 세대주의인 것이다. 논자들은 한국사회에서 세대론이 본격화된 시기를 1990년대로 잡는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화 감수성의 출현과 소비문화의 급격한 성장이 맞물리면서 오렌지족, 낑깡족 등의 호칭과 함께 신세대 담론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86세대 : 386에서 586까지

386세대 담론의 시작도 1990년대이다. 90년대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자를 의미하는 386이라는 용어의 유래는 386 컴퓨터에서 비롯된다. 윈도우95가 보급이 되던 90년대 중반, 사회적으로 PC의 도입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변화된 사회에 적응은 했지만 그다지 잘 하지는 못하고 있는 30대를 386 컴퓨터에 비유한 것이다. 이 용어는 당시에도 꽤 논란이 되었다.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학생운동권 출신들을 집단화하여 부르는 호칭이자 기업 마케팅 차원에서 새로운 소비자군으로 적극 활용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용어는 그 자체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60년대생을 배재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86세대는 386이라 불리던 1990년대를 시작으로 486을 지나 현재는 586에 진입했다. 이젠 앞자리수를 뗀 86세대라 불리며 ‘꼰대’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과 6․10항쟁을 이끈 민주화의 주역으로 불리던 386이 급기야 한국사회를 헬조선으로 만들고 불평등 사회로 만든 세대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86세대에 덧씌워진 현재 한국사회의 기본 서사는 20대엔 혁명과 투쟁을 목청껏 외쳤고 30대엔 3저 활황을 타고 안정된 직장인으로 안착하여 대중문화를 마음껏 소비하고 40대엔 부동산과 자녀교육에 전력 질주하는가 하면 50대에 이르러서는 쌓아놓은 부와 사회자본을 자녀에게 세습하려는 이기적인 집단이다. 요컨대 86세대는 양극화된 한국사회에서 최대 수혜 집단으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은 경제적 자원 동원 및 분배 네트워크가 잘 조직된 세대로 규정된다. 그리고 상층 노동계급은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이라는 위계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다음 세대로 부와 직업을 이전시키고 있음을 지적한다. 최근 86세대에 주목하는 일군의 사회학자들은 이들이 정치적 정당성과 자원을 너무 오랜 시간 독점함으로써 후속세대를 위한 기회 제공에 소홀함을, 그리고 저항의 아이콘이던 386세대가 정치 경제 사회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모순적 상황을 언급한다.

한편 2030세대의 눈에 비친 86세대(경향신문 2019.9.28.)는 지배세력이 됐는데도 여전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가 하면 상층부는 존재하는데 리더는 없고 보스만 있는 세대이다. 권력은 쥐었지만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86세대를 본인들의 특권은 다 누리면서 영혼 없는 걱정만 하는 걱정충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과연 86세대로 호명되는 특정한 세대의 문제일까? 필자가 보기에 이는 위계와 연공서열이 유난히 강한 한국사회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고질적인 양상으로 보인다. 세대론으로 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와 양극화된 사회에서 2030세대가 현실에서 접하는 교수, 직장 상사 등 권력의 상층부를 점하고 있는 이들이 86세대이고, 이들이 견고한 성채에서 꼰대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떼는 말야’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86세대는 50대 연령층의 극히 일부이고 게다가 그들이 모두 20대 청년 시절 짱돌과 화염병을 던진 운동권도 아니다. 어느 연령층이나 그렇듯이 86세대 내부의 계급적 차이는 확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6세대가 끊임없이 집단화된 그룹으로 호명되고 2030 청년세대와 대척점에 놓인 양 언급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진짜 권력층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금수저와 흙수저 담론이 난무하는 헬조선에서 계급이라는 본질적인 적대를 지운다는 점에서 이만한 장치가 또 있겠는가. 90년대 386세대의 정치권 진출을 경계하던 기득권층이 조롱하듯 붙였던 그 이름이 여전히 본질적인 모순은 가린 채 성채에 있는 특권층을 대신하여 액막이 노릇을 하고 있는 모습은 씁쓸하다. 그런데 최근의 대중문화에서는 새로운 조짐이 감지된다. 세대 간의 강한 단절이 아니라 세대 간의 이어짐 혹은 흐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세대론 담론에 진력이 난 사람들의 반작용이자 나이에 개의치 않는, 나이를 잊은 소비자들 혹은 시청자들을 겨냥한 마케팅 전략일 수 있겠다.

 

저스티스 & 왓쳐

드라마 <저스티스>와 <왓쳐>는 2019년 여름 7% 가량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잘 만들어진 범죄 스릴러이다. 두 드라마는 권력층과 검경 내부의 비리척결이라는 사회적 욕망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영화적인 연출과 화면, 그리고 연기자들의 탄탄한 심리 연기로 폭발적인 호응을 받았다. 하반기 검찰 개혁 촛불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강한 메시지와 울림을 주었다. 인물 서사로 이끌어 간 두 드라마를 세대 간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살펴보자.

 

 

<왓쳐 WATCHER> (OCN, 극본 한상운, 연출 안길호)는 비극적 사건에 얽힌 세 남녀가 경찰의 부패를 파헤치는 비리수사팀이 되어 ‘장사회’라는 사조직의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감찰4반 반장 도치광, 변호사 한태주, 교통계 순경 김영균은 모두 15년 전 영균의 모친 살인사건에 현재의 삶이 저당 잡혀 있으며 그 사건의 진실, 곧 진짜 범인을 찾는 것에 공통된 목표가 있다. 그들 각자는 멀쩡한 일상을 살다가도 종종 욕지기처럼 치받고 올라오는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을 대면하며 진실을 캐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영균의 흐릿해지고 왜곡된 기억들은 살인사건의 범인이자 비리경찰로 지목되었던 아버지 김재명이 살해된 장면을 목격한 후 급격하게 재구성된다.

드라마는 장사회를 만든 김재명을 기성세대로, 도치광과 한태주를 중간 세대로, 그리고 김영균을 젊은 세대로 설정하여 그들 각자의 캐릭터와 그들 간의 관계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애초에는 권력층의 비호 아래 빠져 나오는 흉악범들을 처단할 목적으로 만들었던 경찰대 엘리트 중심의 장사회(그 유래가 의로운 ‘소년장사’가 아니라 “잘리면 장사나 하자”는 자조적인 말에서 비롯됨)가 무소불위의 커넥션으로 변질되어 박차장 같은 기회주의자들의 승진을 위한 온상이 되어 버린 현실은 86세대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묘하게 닮아 있다. “정의? 난 정의 그런 거 몰라요. 그저 나쁜 경찰을 잡을 뿐이에요.”라는 도치광의 발언은 정의를 큰 명분으로 삼았던 선배 세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정의’라는 추상적인 구호는 2019년 한국사회에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는, 그래서 오히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행위로 답할 뿐이라는 중간 세대의 모습이 포착된다.

도치광과 한태주는 동일한 목표로 뭉치기는 했으나 본인의 목표 지점에 닿기 위해선 언제든 잡은 손을 놓을 수 있는 차갑고 건조한 관계를 보여준다. 서로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생존이 최우선이 된 불안한 현실의 반영이다. 서로에게는 철저히 포커페이스를 연출하는 그들이지만 진실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영균에게는 나름의 진정성을 드러낸다. 영균이 젊은 거북이 킬러를 잡아 격투 끝에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찰나의 순간에 도치광과 한태주가 이를 만류하는 장면은 드라마 속에서 세대 간의 진솔한 감성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순간이다.

“넌 그러지 마”라는 외침은 너는 우리처럼 편의적 정의에 물들지 말라는 중간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주는 조언이자 중간 세대가 애증의 존재였던 선배들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영균은 도치광에게 경찰청장과 주고받은 거래에 관해 대놓고 묻고는 왓쳐가 되어 그를 지켜 볼 것임을 선언한다. 선배에게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로서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되 비판의 시각을 갖는 그런 존재가 될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드라마는 윗세대와의 명확한 단절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대 간의 바라봄과 보여짐 이라는 위상에 따른 시각적 주체의 모습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네가 지켜보듯이 너를 지켜보는 어떤 이가 있음을 기억하라.

<저스티스 JUSTICE> (KBS2, 극본 정찬미, 연출 조웅)는 2017년 네티즌들에게서 최고의 별점을 받았던 장호 작가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범죄 스릴러이다. 권력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강한 권력을 추구하는 두 남자와 강직한 성격으로 권력층의 비리를 끝까지 수사하는 여자 검사가 주요 인물들이다. 억울하게 죽은 동생의 복수를 위해 송회장의 손을 잡고 타락한 변호사 이태경, 그의 복수를 도와주고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노동운동가 출신의 기업가 송회장, 이들을 쫓는 서울중앙지검 형사 3부 검사 서연아. 셋은 현재의 사건으로 다시 얽히고 흑백 장면으로 회고되는 그들의 과거사는 현재의 시간들이 과거의 시간 더미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 여배우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한민국 VVIP들의 추악한 뒷모습이 드러나고 성상납과 비리로 편법을 일삼으며 부와 권력을 축적해온 권력층의 치졸한 역사가 까발려진다. ‘추적 60분’ 출신의 작가답게 드라마 속 현실 고발은 가차 없고 사건을 풀어가는 스릴감이 수준급이다.

 

 

인물 서사가 중심인 <저스티스>에도 세대가 등장한다. 송회장이 기성세대가 된 86세대를, 이태경과 서연아가 중간 세대를, 그리고 송회장의 아들 송대진이 젊은 세대를 대표한다. 문제적 인물인 이태경은 극이 진행됨에 따라 동생의 죽음에 송회장이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고 송회장과 친밀한 관계를 벗어나 대결 구도를 취하게 된다. 송회장과의 끈끈한 형제애에 기반한 공조가 서연아 와의 연대로 변화하는 것이다. <저스티스>는 <왓쳐>처럼 정의와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인물의 입을 통해 도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악과의 계약을 끊고 현재의 부와 안락함을 버린 채 진실을 찾는 험한 길을 선택하는 이태경 이란 인물을 통해 정의로움에 관해 사유하게 한다.

노동운동가였던 송회장이 권력층의 추악한 사건들을 해결해주며 자본가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이다. 아들의 다리 수술을 위해 가해자였던 권력층에게 오히려 무릎 꿇고 사죄해야 했던 비참한 과거가 있는 것이다. 그는 무능한 아비에서 탈피하기 위해 스스로 악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부와 권력을 쫓는 욕망의 화신이 된다. 권력자들의 노리개로 연예기획사의 젊은이들을 성상납하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그가 일군 검은 커넥션의 실체이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곁을 내주고 말동무로 삼고자 하는 이가 이태경이다. 송회장에게 이태경은 욕망의 길을 함께 할 최고의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자신의 페르소나이다. 이른바 분신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정의로웠던 과거의 나를 닮은 후배, 나로 인해 악과 거래하게 된 후배, 동일한 계급 출신으로 억울함에 분노하여 부와 권력을 쫓기로 작정한 후배, 그런 후배가 자신의 악행과 부조리를 파헤치며 서늘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송회장은 태경에 대한 처리를 미루고 갈등하며 망설인다. 극 후반으로 갈수록 마치 파국을 예측이라도 한 듯 괴물이 된 자신을 쫓는 또 다른 자신을 덤덤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러므로 미친 전차처럼 폭주하던 그를 멈추게 한 건 또 다른 자아인 태경이자 그 자신이다. 송회장은 아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그리고 태경과의 거래가 시작된 범죄 현장으로 돌아와 그에게 동생의 죽음에 대해 사죄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자기 세대의 죄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않는, 단절의 길을 택한다. 악랄한 자본가가 되려 했으나 결국은 되지 못한 채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자아 속에 갈등하던 송회장은 사회적 질타를 물씬 받고 있는 86세대의 모습과 닮았다.

거머쥔 부와 권력을 세습하려고 하지만 아들의 신체는 기득권에 의해 이미 훼손되어있다. 그나마 건강하고 온전한 정신은 아비 세대의 풍요로 그어놓은 잔혹한 현실과의 경계선 때문이리라. 아비의 추악한 행적을 알게 된 자식은 면전에서 진실을 물음으로써 아비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고 아비의 후배이자 자신의 선배인 태경에게 법적 처리를 부탁한다. 인물들은 각자의 결단과 선택으로 정의를 실현해간다. “형!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알아?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감동한다. 그러니까 당하는 줄도 모르고 멍청하게…….” 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던 태경의 정반대편에는 사회적 시선과 평판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죄책감과 공감 능력은 없는 진짜 권력층인 탁수호가 있다. 드라마에서 전하는 메시지처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강하고 부유한 특권층이라는 대결 구도는 ‘세대’를 넘어선다.

주위를 돌아보라. 강남역 철탑 위 반 평 공간에서 투쟁 중인 김용희씨는 1995년 이후 한 세대에 버금가는 세월을 해고 노동자로 살고 있고, 사측과 국가의 무자비한 폭력과 부당 해고로 10여년의 시간을 동료들의 자살을 목도하며 싸워야 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40년 전 YH 여공들을 연상시키는 톨게이트 수납 여성 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이 있다. 상의까지 벗어던지며 맞섰던 그녀들이 느낀 건 수치심이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였다. 세상의 불의와 맞서가 위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온 몸으로 기어서라도 외쳐야 하는 약한 자들이 연대하는 그 자리에 세대론이 똬리를 틀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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