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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다 문자를 본다

산은(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인간의 삶은 말과 글이 형성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말보다는 글이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과 글은 유(類)적인 존재로서 인간의 존재방식이다. 글을 집적한 매체인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지식이나 정보는 스마트 폰이나 사방 도처에서 글의 형태로 널려 있다.

대체로는 글을 소비하지만, 가끔은 글을 생산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손 글씨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키패드나 키보드를 이용해 문서를 작성한다. 제목은 고딕으로 본문은 명조로, 또는 돋움이나 굴림이나 바탕체로 문서를 완성한다. 문서에 나름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글자체를 바꾸어 보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배포하는 글자를 받아쓰기도 하고, 이철수의 목판글씨나 신영복의 글씨 폰트를 이용하기도 한다. 구글이 나누어 주는 여러 언어에 두루 호환되는 폰트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나눔체를 사용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글자들의 모양이 다른 것은 알았으나 산셰리프가 어떤 의미인지, 고딕과 명조는 어떤 다름이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습관적이거나 관습적으로 사용해 왔다.

삶에서 글자를 제거할 수 없음에도 막상 글자 자체를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 것은 글자가 닮고 있는 의미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자는 의미를 담는 도구일 뿐. 강을 건너면 뗏목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붓다의 말처럼 의미를 받아들이고 나면 글자는 기억에 남겨야 할 필요는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잠시만 고개를 돌려 책꽂이의 책의 표제를 보면 모든 책들이 저마다 다른 글자를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가 단지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거나, 소리를 잘 표현하면 그만이라면 구태여 그런 다양한 형태를 가질 필요가 있을까?

잘 만들어진 도구가 더 유용하듯, 잘 만들어진 글자가 더 훌륭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은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인 도구성에만 집중하느라 이 도구 자체가 가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나 역사는 잘 알지 못했다. 글씨와 활자를 어떤 목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만들고 가꾸어왔는지를 살펴보면, 생각을 담는 틀로서 생각을 표현하는 장으로서 글자들이 잘 보일지 모른다. 생각을 담은 그릇이 글자이니 글자에는 과학과 철학이라는 커다란 세계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미세한 획의 굵기와 각도로 감정까지 담아내는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막대기 같은 글자와 루터의 성경의 휘어진 선의 다름을 읽을 수 있다.

 

 

글자 풍경 - 글자에 아로새긴 스물일곱 가지 세상

유지원. 을유문화사

 

 

이 책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 연구자가 「중앙선데이」에 1년간 연재한 칼럼 ‘유지원의 글자 풍경’을 바탕으로 했다.『글자 풍경』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독일, 이탈리아, 미국, 영국, 스페인, 터키, 인도, 홍콩 등 다양한 나라에서 글자가 빚어낸 거리나 공공건물의 풍경을 그린다. 첫 번째 글의 제목은 ‘알프스 북쪽 침엽수 같은, 알프스 남쪽 활엽수 같은 글자들’이다. 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적 환경과 인문적 삶이 결코 분리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설명한다. 세계화의 시대라 하지만 인간의 삶은 지역적이다. 사람에게 그가 처한 지역과 그곳의 풍토, 언어, 문화는 깊숙이 개입한다. 뉴욕을 글자체 중심으로 본다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층빌딩보다 대중교통 사인시스템을 장식한 직선 형태의 모던한 ‘헬베티카체(helvetica)’로 인식된다. 반면에 런던은 지하철 표지판부터 조명과 간판 등에서 동글동글한 모양의 길 산스체(gill sans)가 보인다. 또한 홍콩의 영어와 한자의 혼용된 글자들과 그림처럼 아름다운 아랍문자들이 가지고 있는 기하하적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2부는 한글 및 한국인의 눈과 마음에 담긴 글자들의 풍경을 담는다. 저자는 한국에서 ‘타이포그래피의 근대’를 연 인물로 세종대왕을 꼽는다. 한글 창제는 곧 지식의 민주화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한국 타이포그래피 역사에서 근대는 이때부터라고 보는 것이다. 글자를 아는 것은 곧 정보를 쥐는 것이라 글자는 권력과 결부되어 있다. 그러므로 문자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주로 남성들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글씨체의 역사에서 여성이 주도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 이는 조선의 궁녀들이 궁에서 쓴 글씨체다. 한글은 생활문자로서 주로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쓰였는데, 이때 우아하게 정제된 궁체는 대체할만한 다른 선택지가 없이 남성들의 세계에서 통용되었다. 궁체는 오늘날 디지털 폰트 궁서체로 복원되었고, 붓으로 쓴 한글글씨의 이 양식은 지금 사용되고 있는 명조체폰트의 바탕이 되어 우리 일상에 자리 잡았다.

3부는 우주와 자연, 과학과 기술에 반응하는 글자들을 이야기한다.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교차로에서 도로 표지판의 글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면, 20포인트(Point)가 넘는 크기의 글자체로 만든 책을 읽는다면, 판결문을 ‘흥’과 ‘홍’이 헷갈려 잘못 쓴다면 과연 우리는 편안히 일상을 누릴 수 있을까? 이를 통해 글자체가 우리 삶뿐 아니라 과학과 기술 등과 얼마나 관련 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바흐의 자필 악보와 윌리엄 모리스가 디자인한 책 『세상 너머의 숲(The Wood Beyond the World)』 그리고 가와세 하스이의 우키요에와 청사 안광석의 전각 등을 통해 종이에 남겨진 자국과 흔적을 되새긴다.

 

『글자 풍경』은 글자에 새겨진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그동안 너무 익숙해서 차이를 느낄 수 없었던 글자들의 풍경을 보게 한다. 글쓴이는 타이포그래피 연구자이지만 예술, 과학, 철학 등을 바탕으로 글자들의 풍경을 인문적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왜 타이포그래피를 할까? 저자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개성과 말투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고 읽힐 때 더 잘 표현되기를 바라서, 타인과 소통을 다각도로 더 잘하기 위해서, 더 아름답기 위해서, 더 기능적이기 위해서, 더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기 위해서,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글쓴이는 다음과 같이 이 책에 관해 말한다.

나는 이 책을 글자들의 생태계처럼 조성하고자 했다. 글자들의 숲, 종이들이 이파리처럼 나부끼고 먹의 묵향이 번지는 곳, 인쇄기가 덜커덕덜커덕 구슬땀을 흘리며 근대로 향하는 정신의 텍스트를 힘차게 찍어 내는 곳, 싱싱한 생명의 피처럼 기계를 돌리는 기름 냄새가 풍기고, 기계의 견고한 육신이 장인들의 노동과 온기에 힘입어 삶의 온도를 생생히 유지하는 곳, 갓 떠낸 검은 잉크가 피부의 윤기처럼 반짝이며 그윽한 체취를 풍기는 곳, 활기가 넘치는 거리 위 네온이 반짝이는 곳, 지구상 다양한 양태의 정신들이 글자로 응결되어 맺혀 있는 곳……. 이런 글자들의 숲길을 마음 편히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끔은 땀 흘려 걸어야 할 길들도 나 있는 이 풍경 속으로 독자들께서 성큼 들어오셨으면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주변의 모든 글자가 달리 보인다. 거리의 교통표지부터 버스의 광고까지 거기 적혀있는 모든 글자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눈만 뜨면 확인하는 스마트폰에 박혀있는 폰트를 바꾸고 싶어졌다.

 

 

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원제는 ハングルの誕生.

노마 히데키 돌베개.

 

 

한글에 관해 말하면서 하필이면 일본인이 쓴 책을 소개하는 것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이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학생 시절에 한글 창제의 기본 원리에 대해 다 배워 알고 있다. 한글로 읽고 쓰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며,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며 우수한 문자체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부터 정말 한글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인 한국어학자인 그는 언어와 문자의 보편에 이르는 시각을 통해, 한글이라는 문자의 탁월함을 민족우월주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넓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그리하여 한글이라는 존재의 맥락을 더욱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노마 히데키(野間 秀樹)는 일본어로 먼저 쓴『한글의 탄생』으로 마이니치신문사와 아시아조사회 주관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고, 2012년 한글학회에서 주시경학술상을 받았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한글 이전의 문자생활, 한글의 창제 과정, 마침내 한글이 한반도에서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과정, 나아가 그 미적 형태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한글이라는 존재를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므로 이 『한글의 탄생』은 단지 ‘한글’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의 문자 생활 및 환경을 되돌아보며, 세종과 학자들이 이 <쓰기>와 <언어>에 대한 무서울 만큼의 이해력과 분석력과 창조력을 통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냈는지 밝히고 있다.

글쓴이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한글의 탄생’ 과정을 언어학적으로 재현한다. 귓가에 들려오는 자연의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정립된 갖가지 현대 언어학의 개념 이해에 이미 도달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그 안에 동원된 정교한 언어학의 개념들을 하나하나 차분하게 설명하면서 한글의 ‘과학성’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문자의 진정한 완성은 그 문자가 실제로 사람들에 의해 문장이 되고, 글이 되고, 책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한글이 사람들의 손에서 문장이 되고 텍스트가 됨으로써, 단지 하나의 문자체계가 아니라 기존에 있던 지(知)를 뒤흔들어 놓은 존재로서 등장했음을 보게 된다. 나아가 저자는 붓과 종이를 통해 만들어진 한글의 서예법, 컴퓨터에서 구현되는 글꼴 등 물질적인 차원에서도 한글을 보며, 훈민정음이라는 독특한 문자의 미적 발전과 성취까지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글의 탄생을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문자의 변화과정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북방 셈족에서 시작된 알파벳은 서쪽으론 그리스, 라틴문자에 영향을 주었고, 동쪽으론 아랍, 인도, 몽골, 만주문자 등에도 그 유전자가 담겨 있다. 문자는 서로 자극하며 동화된다. 훈민정음은 천년 이상 변화해 온 알파벳 시스템에서 부족했던 모음자모를 선명한 형태로 충족시킴으로서 가장 진보된 문자가 된 것이다. 또한 지중해권의 문자들이 모음자모와 자음자모를 일직선상에 배열하는 시스템이었고, 아랍문자와 그 동쪽지역의 문자는 3차원적인 평면성을 획득하려 했으나 모음과 자음이 독립성과 단위성이 희박했던 반면, 훈민정음은 정음은 동적이고 입체적 배치 시스템을 지닌 전면적 단음문자 시스템으로 완성되었다.

발음적인 측면에서 일본어 같은 음절문자는 음절의 경계는 볼 수 있지만, 음절의 내부 구조는 드러나지 않는다. 로마자처럼 단선적으로 직렬을 이루는 단음문자는, 단음과 그 배열은 알 수 있지만 음절의 경계나 내부 구조는 형태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음절의 안과 밖, 음절의 내부 구조와 외부 경계를 모두 보여준다.

 

한글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패러다임이었던 한자와 투쟁할 수밖에 없다. 기존의 지식인들에게 한글의 등장은 자신의 존재이유마저 위협하는 격변이었다. 이런 지식 투쟁에서 한글의 형태는 한자와 동일한 크기를 차지함으로써 한자에서 한글로의 전환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또한 글자의 모양은 활자 기술을 활용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한자 패러다임에서 이어온 음양오행, 성리학 철학 등을 문자에 담음으로써 사회가 새로운 문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글쓴이는 훈민정음의 등장이 산수화의 세계에 컴퓨터 그래픽이 출현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더 많은 것을 더 쉽고 표현할 수 있는 한글 패러다임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 한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남성 중심의 권력지배체제가 주저앉은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

"붓에 의한 선은 정신성과 지知, 끊임없는 수련 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형태> 역시 정신성이나 끊임없는 수련 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것이 한반도의 문자사를 관통하는 원리였다. 그러한 가운데서 한자는 마치 살아 있는 세포와 같은 존재였다. 한자의 <형태> 역시 살아 있는 정신성을 묻는 것이었으며, 인간의 눈과 손에 의한 수련을 묻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한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묻는 <형태>이다. 이에 비해 정음은 그 세포를 음절이라는 분자로, 그리고 음소라는 원자로 해체하였다. 정음의 구조 자체가 그런 로지컬한 지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적인 지에 걸맞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가 요구된다. 정음의 <지>는 원자인 자모를 조합하여 완성되는 분자 구조로서, 나아가 텍스트 속에서 움직이는 동적인 분자구조로서 출현하였다. 그것은 한자의 정신성과 결별하고 정음 <형태> 자체에 새로운 <지>를 당당히 각인한 일이었다."(331-2)

 

얼마 전에 ‘나랏말ᄊᆞ미’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신미를 둘러싼 역사적 사실에 관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내가 그 영화에서 본 것은 실용적인 소리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문자에 관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시선은 한글의 아름다움이나 조형성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넘어 기술이나 지의 패러다임까지 설명하고 있다. 한글은 모든 것이 한자와 한문으로 이해되던 당시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지식의 혁명이었다. 노마 히데키는 문자학 및 언어학 이론을 바탕으로 지식으로서의 한글을 소개하고 있다.

문자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의 결과물이다. 문자란 항상 어떤 일에 대해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를 말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문자란 항상 과거에 이야기된 역사이지만, 동시에 과거와 미래의 접점으로서 현재적인 사건이다.

이 책을 읽은 뒤에 다시 훈민정음해례를 읽었다. 국어선생으로 평생을 살았으나, 새삼 정음의 한글자마다 살아 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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