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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과문화] 코난의 별별이야기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을 보고

코난 /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작년 가을 담임을 맡은 반 학생 두 명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을 보고 왔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거장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등)가 설립하였다고 합니다. 이 두 감독의 영향력이 워낙 크고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는 독보적인 존재라 그 곳에 전시된 레이아웃의 80% 정도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것으로 보였습니다. 특히 유명한 애니메이션인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뿐 아니라, 제가 어렸을 때 직접 TV에서 즐겨 보았던 미래소년 코난, 빨강머리 앤, 엄마찾아 삼만리,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등의 레이아웃이 전시되어 있어서 빙그레 웃음을 짓게 만들더군요.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에서 레이아웃이라는 것이 하는 중요한 역할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동일한 영상 예술이지만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현대의 상업용 장편 영화나 장편 애니메이션의 경우 한 두 명이 모든 작업을 다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 작품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나누어 하기 위해서 콘티와 레이아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공정은 크게 기획→각본→그림콘티→레이아웃→CG/작화/배경→촬영구성→편집→음향의 단계로 나눠지며, 레이아웃은 그림콘티에서 정해진 큰 구도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화면을 설계하는 작업입니다. 그림콘티가 영화 전체의 설계도라면, 레이아웃은 각각의 장면에 대한 세부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장의 레이아웃에는 배경, 인물의 동선, 인물의 관계, 카메라워크의 유무와 속도, 촬영처리 등 컷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이 그려집니다(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 팜플렛).

영화는 감독의 통제 하에 촬영을 하기 때문에, 촬영 현장의 상황에 따라 연출의 변화나 배우들의 애드립이 가능한 여지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는 그런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요트를 촬영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실제 바다에서 촬영을 할 경우 날씨를 바꾸거나 파도의 세기를 조절하거나 지나가는 갈매기 수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대신 애니메이션은 이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날씨가 어떤지 파도가 어떤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갈매기는 몇 마리를 그릴 것인지까지 다 미리 정해 놓아야 합니다.

레이아웃이란, <장면구성>이라고 읽고, 이 말은 글자 그대로 영화의 각 ‘장면’에 대한 ‘구성’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레이아웃에서는, 그림콘티를 커다란 맥락으로 하여 정해진 순서를 근거로 각 장면을 설계합니다. 특정 위치에 캐릭터를 놓고 움직임 및 촬영 방식 등 영상표현의 대부분의 작업들이 본 단계에서 결정됩니다. 이렇듯 레이아웃은 ‘실사영화’라고 부르는 일반적인 영화에서 카메라맨과 연출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 팜플렛).

또한 영화의 경우 연기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동시에 다른 카메라로 촬영한 후 편집을 통해 역동적이고 입체적인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이 때 편집 과정에서 쓰이지 않고 버려지는 필름이 존재하게 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제작은 노동 집약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쓰이지 않는 장면을 그릴 여유는 없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편집을 통해 최종 완성될 장면이 애니메이션의 경우 작화 작업 전에 이미 다 결정이 되어야 합니다.

레이아웃을 근거로 하여, 애니메이터는 캐릭터와 연기를, 미술 스텝은 배경을 그립니다. 정해진 일정 내에 작업을 마치기 위하여 여러 명의 사람들이 지시에 따라 각각 그림을 그리게 되기 때문에 레이아웃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최종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 팜플렛).

특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비행 장면이나 역동적인 전투 장면을 미리 머리 속에 그려내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과 감각이 있어야 할지 저로서는 상상이 잘 가지 않습니다. 시나리오를 토대로 머리 속에 그려진 이 모든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알아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레이아웃인 것 같습니다. 그 레이아웃 그림 속에는 배경, 표정, 구도, 앵글, 움직임 등 연출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가게 됩니다. 레이아웃이 없었다면 분업이 아니고서는 그려낼 수 없는 막대한 분량의 그림을 통일성 있게 그려내어 질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명확한 기획의도는 전반적인 시스템을 안정되게 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경우 백지 상태에서 그림을 통해 완성되는 특징 때문에 수많은 인력과 공정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획의도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이아웃 제도의 도입으로 연출가 스스로 영화의 설계도를 제작하고 전체적인 제작공정을 총괄함으로써, 명확한 기획의도가 작품 속에서 드러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 팜플렛).

전시회 속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레이아웃이라는 것이 먼저 이론적으로 존재한 것을 배워서 사용한 것이 아니고, 많은 공동 작업 경험 속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 쓰게 된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정의하기도 쉽지가 않다고요. 특히 다카하타 이사오는 레이아웃의 정립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레이아웃을 거의 혼자서 다 그려낸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재성과 작업량을 인상적으로 언급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늘이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원령공주 이후 두 번이나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올 때 마다 큰 성공을 거둔 미야자키 하야오의 능력은 정말 놀랍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큰 거장의 그늘 때문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재능있는 많은 사람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고 합니다. 후배를 키우지 못하고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시스템이 영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레이아웃 전시 마지막 부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년 개봉작 『바람이 분다』의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어쩌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진짜 마지막 작품이 될 지도 모르는 『바람이 분다』에 대한 평은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이 애니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로 사용된 ‘제로센’이라는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라는 실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이 애니에 평점 10점을 주면 친일파라고 몰아붙이는 사람부터, 이 애니는 제로센을 미화한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향한 설계자의 순수한 꿈과 열정을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제로센을 살상용 전투기로 사용한 당시의 일본군부를 비난하는 것이라는 의견까지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제가 실제 작품을 생각해 볼 기회가 있겠지요.

<사진 자료> 미래소년 코난,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레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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