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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열공] 이렇게 즐거운 교육학이 있었다니

2014.04.16 14:25

진보교육 조회 수:391

[열공] 참교육연구소 기획강좌 후기

이렇게 즐거운 교육학이 있었다니


김상정 / 전교조 참교육실 사무국장

꿈을 꾼다

고등학교 교실이 나오고 친구들과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책만 보고 있다. 교실 안은 칙칙하다 못해 어둡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가끔은 시험을 볼 때도 있지만 주로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어느 누구하나 일어나서 떠들지 않고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돈다. 계속 그 상황이 지속된다. 창문을 열고 싶어도 열 수가 없고 여기저기 다니며 그 곳을 벗어나고 싶어도 출구가 없다. 결국 어떻게 해서든 깨어나려고 발버둥치다가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깬다. 악몽이다.

이 악몽은 1년에 두 번 이상은 꿨던 것 같다. 그 꿈은 실제처럼 생생하게 일상 속에서 떠오른다. “가끔은 내가 왜 그런 꿈을 자주 꾸지? 왜 나는 그 꿈을 악몽이라고 여기지?”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도 내게는 학교가 그렇게 조용하고 적막하고 답답한 곳이었나 보다.

실제 내가 겪었던 학교,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즐거운 일도 많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고 수많은 책들과 밀려오는 지식들을 습득하기에 바빴지만 나름으로 보람도 있었던 10대 시절을 보냈던 것 같은데 그런 즐거운 것들은 꿈에 하나도 안 나오고 오직 입시 준비를 위해 고개를 책상에 처박은 상태에서 공부만 하는 모습만 나온다.

어쩌면 이 모습이 내 깊은 곳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학교일fms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학교를 바꾸고 싶지만 여전히 10년 넘게 반복되고 있는 이 꿈은 바뀌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학교가 즐거운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매일 가고 싶고, 가서 웃고 떠들며 즐겁게 친구들을 만나고 즐겁게 공부하고 선생님들과도 ‘하하호호’ 웃으며 웃음꽃 활짝 핀 교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그런 교실 풍경이 나오는 꿈이었다면 내겐 깨고 싶지 않는 달콤한 단꿈이 되었을 것이다.

5년만의 복직, 무엇을 할 것인가

2009년 6월 첫아이 출산, 2011년 둘째 아이 출산. 그러고 2014년 1월 복직.
근 5년만에 복직을 했다. 고민이 많기도 했다. 아이들과 나누는, 마냥 즐거운 행복감에 젖어있다가 탄압의 한복판에서 싸우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라는 곳에 다시 복귀하여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사실 두려움도 있었고 선뜻 용기도 나지 않았다. 엄마 따라 지난 해 총파업집회에 처음 나가 본 아이들은 그 곳이 엄마가 일하는 곳인 줄 안다. 집회에서 자신들을 가로막았던 경찰들은 아이들에게는 엄마를 잡아가는 무서운 사람들로 여겨진 것 같다. 뉴스에 가끔 전교조 보도가 나오면 아이들에게 “엄마가 함께 일하는 분들이야”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걱정을 먼저 한다. 아이들도 늘 항상 곁에 있었던 엄마가 일하러 나간다고 하니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했었나 보다. 첫째 아이가 자기가 엄마를 지켜주겠다고 걱정말라고 한다. 둘째도 환하게 웃으면 잔뜩 엄마를 위로한다. 내가 복직을 결정한 가장 큰 힘은 아이들의 그런 응원의 힘이기도 했다. 복직은 했으나 막막함은 여전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끝없이 찾아왔고 그렇게 근 두 달간을 긴장 속에서 지냈다. 사무실에서는 따뜻함을 만나지 못했다. 다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함이 먼저 다가왔다. 사람들과의 관계맺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문을 닫고 있었기도 하고 사람들이 여유가 없기도 하고 내 눈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엇보다도 많이 지쳐 보였다. 나는 이렇게 분기탱천하는데 말이다.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그런 이유로 계속됐다.


비고츠키가 대체 누구야?

내가 비고츠키를 처음 안 건 올 1월에 열렸던 전국참교육실천대회에서였다. 토론마당에 개설된 비고츠키 관련 강좌가 눈에 띈 건 낯선 이름이기도 했고 왠지 모를 친근감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워낙 러시아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5년만에 복직한 전교조에서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교육이론은 뭘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도 그렇다.

1월과 2월은 당장 가장 큰 사업이었던 참교육실천대회 진행과 정리 작업을 맡아서 하게 됐다. 그러면서 또 만나는 ‘비고츠키’ 토론마당에 대한 평가, 그래서 궁금증은 더해져 갔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으나 한두마디로 알기는 만무했고 그저 '무척 어렵다. 그렇지만 좋다'라는 말을 들었다. 창의인성교육이 뭘까?

비고츠키를 직접 만나다

참교육실 사무국장직을 맡게 되고 처음 집중해서 한 일은 참교육연구소의 기획강좌 '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를 듣는 일이었다. 2월 24일부터 3일간 진행된 강좌, 혜성처럼 느닷없이 참교육실에 나타난 진영효 실장님은 큰 소리로 이 강좌를 “참교육실원 모두가 모든 일을 제쳐두고라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했다. 얼씨구, 나는야 좋구나! “그럼, 당장 추진해야 할 실무는 어떻게 하나요?”하고 일부러 물었더니 더 열을 올리며 강좌를 들어야 한단다. 못이기는 척 강좌에 참여했다.

'참 착하고 진보적인 교육학, 자유의지와 진보성, 과학성과 휴머니즘의 교육학' 내가 자료집 첫 장에 메모해둔 것이다. 자료집을 다시 펼치기 전에 먼저 생각나는 건 '관계의 교육학'이었다. 학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실 40년 생애동안 나를 가장 기쁘게 한 것도 ‘관계’였고 가장 슬프고 힘들고 노여웠던 것도 관계였다. ‘이 관계가 그 관계인가?’라는 질문을 여전히 하고 있지만 난 비슷한 맥락 속에서 이해했다. 왜냐면 여전히 난 배우고 있고 또 배운 걸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어쩜 내가 발 딛는 곳 하나하나가 또 다른 학교가 아닐까 싶다. 난 비고츠키 강좌에서 학생이었다.  

“비고츠키 인간관은 동료 인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주체적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다.(비고츠키, 1987)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는 글귀에 빨간색 밑줄을 쳤다. 그 옆에 '졸려요'라고 메모를 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완전 재밌는 공부인데 왜 졸린 것이냐’ 이렇게 장시간 앉아서 뭔가를 배우는 학생이 된 거 참 오랜만이다. 무엇보다도 졸 수 있다는 것은 강좌내용이 무척 평온했고 또 그 분위기가 관계와 협력, 발달 등등을 얘기하는 것이다 보니 행복감에 푹 젖었던 덕분이다. 듣는 내내 상상의 나래가 하늘하늘 펼쳐졌다.

첫시간, 협력을 통해 인간사회가 생존, 발달해왔다는 말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우리 학교에서 익히 배우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 요컨대 경쟁을 통해 사회가 발달해왔다는 것을 완전 뒤집는 거 아닌가. 떠올려보니 경쟁하고 있고 친구보다 더 좋은 점수를 더 높은 등수를 따내기 위해 혼자서 빡세게 공부했던 그 시간은 전혀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친구들과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친구들에게 바느질하는 법을 배우고 또 친구들이 모르는 거 물어봤을 때 내가 알려주고 또 내가 물어볼 때 이 친구 저 친구가 얘기해줬을 때가 더 좋았고 즐거웠고 뿌듯했다. 물론 그런 기쁜 경험은 중학교 때 이후로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이 강좌가 좋았던 건 내 학창시절의 좌절과 아픔, 그리고 기뻤던 순간순간을 떠올리면서 무릎을 딱 치는 깨달음 비슷한 것들이 순간순간 함께 해서였다.

'고등정신기능'이란 용어를 접했을 때는 한번 더 집중해서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 강좌는 도저히 중간중간 졸면서 듣다가는 본전도 못찾는 꼴이 되고 만다. 성과는 꼭 다시 한번 공부에 도전하겠다는 맘이 생긴 것, 이어 4강에서 만난 근접발달영역에 대해서 함께 강좌를 들었던 진영효 참교육실장님은 바로 바로 대화에 적용을 하시던데 새삼 대단하게 보였고 심지어는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하하하! 어쨌든 비고츠키 교육학은 배우는 나나 가르치는 분들이나 내내 기뻤던 시간이었다. ‘원래 교육학이 이렇게 재밌었나?’ 내 기억에는 ‘교육학!’ 하면 정말 따분하고 즐겁지 않은 그런 학문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엄마가 교육학 이수해라 했을 때도 데모하러 다니느라 관심도 두지 않았다.

내게 희망과 기쁨을 준 행복한 교육학, 비고츠키
"교육학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요?" 강좌를 한 선생님들께 물었다. 이렇게 재밌는 교육학이 있었나요? 비고츠키를 공부하는 시간 내내 학교에서 비고츠키가 제안하고 있는 이런 것들을 실제 실천하고 적용해보는 교사라는 직업이 참 좋아보였다. 학교 다닐 때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수업 뒷풀이 자리에서 물었다. 교사라는 직업을 그 젊은 나이에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80-90년대 초반 난 학교를 다니는 이유를 찾지 못했고 수많은 방황을 했지만 결국 그 곳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선택을 한 게 당시 현실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때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 마지 못해 입학을 하는 상황이었고 당시 어떤 학문을 연구해서 그 학문을 평생 연구하며 그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되려 내 대학생활은 과전공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고 내 의지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그것대로 행동한 4년이었다. 그래서 되려 대학생활은 학점은 비록 바닥을 쳤으나 나름 행복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스무살이 되기 전에 교사의 길로 가겠다고 인생진로를 결정하고 지금까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당시 생각이 무척 궁금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교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교대나 사대에 들어가는 이들이 많지 않을 거예요. 저도 부모님이 제시한 진로를 마지 못해 선택한 경우였으니까요. 막상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면서 기쁨을 찾았고 그래도 여전히 부딪히는 현실의 벽을 뛰어넘어보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자리잡게 된 거지요." "제게도 기존의 교육학을 공부하는 일은 고역이었어요. 그렇지만 비고츠키는 정말 재밌어요"

무엇보다도 기뻤던 건 우리가 비록 어렵긴 하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즐거워지는 교육학을 만났다는 것이다. 하면 할수록 더 공부하고 싶고 또 현실에 적용하고 싶고 관계의 교육학이라는 이름이 딱 맞게 그간 엉키고 설킨 관계를 풀어내고 협력을 통해 생존하고 발달하고...

이제 막 6살과 4살이 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야 하나, tv와 컴퓨터를 아주 좋아하는 6살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이런 구체적 고민을 안고 공부하기 시작한 비고츠키 교육학. 답을 얻긴 했으나 여전히 난 이 글을 마치고 사무실 일들을 폭풍처럼 몰아치듯 해내고 나서 자료집을 다시 펼칠 것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잠깐 만난 거다. 무척 어려워서 혼자서 공부하기는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첫 만남이 단순히 어려움으로 다가온 게 아니라 재밌고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이론, 그리고 바로바로 아이들과 실생활에서 적용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게 하는 교육학 이론으로 여겨져서 기쁘다.

다음에는 좀더 공부 많이 하고 나서 아는 척 제대로 하는 글을, 아니 실제로 공부하고 나서 현실에 적용해보는 체험 후기랄지 뭐 그런 거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좀 궁금해졌다. 내가 자주 꾸는 그 학교관련 꿈을 또 꿀까? 이번에는 어떻게 꿀까? 내가 뭔가를 시도하지 않을까? 내 꿈에서마저도 학교가 즐거운 공간으로 바뀌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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