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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호 [현장에서] 해고자 대장정과 일제고사

2010.01.05 13:34

진보교육 조회 수:1295

[현장에서] 해고자 대장정과 일제고사                          

해직교사 김윤주

   해직교사 전국대장정이 끝난 지 두 달이 다 되가는 지금, 관련 글을 쓰자니 가물거리는 저질 기억력이 참으로 난감하다.  어느 디카 광고처럼, 정지된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쪼르르 나열되면서 몹시 낭만적인 기분만 드는 거다. 대장정 전후의 논쟁에 충실하게 참여했건만, 떠오르는 것은 사업의 목표나 평가가 아닌, 샛노란 티를 입고서 가을 길을 떠돌던 해직동지들, 술에 취해 목을 연신 주억거리면서도 선뜻 자리를 털지 못하고 더 잘해보잔 미련을 미련스레 끌고 갔던 수원에서의 평가회, 동해 선생님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같은 것.
   결국 눈가와 귓가에 자글거리는 것은 ‘우리들의 이야기’고, 내게는 이 대장정의 성과와 한계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 않은 두 글자, ‘자족’. 자꾸 그렇게 정리되려 한다..

1. 자족은 운동하는 이에겐 쓸쓸한 단어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그 때 우리가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힘은 부치는데, 저항을 멈출 수 없는 자. 뭐라도 하면서  흡족감을 연료삼아 또 다시 뭐를 하고.. 그렇게 일제고사에 대한 저항을 조직 내에 생존시켜 가는 것이 우리에겐 발 등의 불처럼 뜨거웠으니까. 우리를 교단에서 쫓아냈던 그 10월의 일제고사는 1년 동안 저토록 강한 갑옷을 챙겨 입고 돌아왔는데, 우리는?
   뭐라도 해야겠기에 허겁지겁 모였다.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아 보였다. 지금 와서 해직자의 이름으로 실천전술을 제안한다는 것도 부적절해보였을 뿐더러, 우리가 하는 제안은 조합원들로 하여금 부채감이라는 프리미엄을 얹고 판단되기 때문에 더 이상 내키지가 않는다. 우리끼리 할 수 있는 일, 우리끼리 하더라도 작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에라~걷자!” 추석이고 뭐고 다 반납하고 10일 동안 전국을 밟아가자는 것에 손등을 얹었다. 게다가 날씨도 좋잖아?    
   14인의 해직자는 연령대나 성격, 성향, 활동 경력은 다 제각각이다. 그런데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거다. 막상 걸으면 잘 걷지도 못할 사람들이 - 하루 열 시간씩 열흘 내리 걷는 게 보통 일인가? - 무심한 얼굴로 “그래요, 합시다” 하는 것. 걷다 쓰러지기 전에는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감도 없고, 해직을 당해보기 전에는 일제고사 거부가 어떤 결과로 올지 별 감이 없었던, 참으로 대책 없이 낙관적인 구석이랄까.  
   여하튼 우리는 이 우발적 기획의 대가를 치뤘다. 중집에서 통과된 수정안을 두고 해직자들간의 갑론을박이 있었으나 우왕좌왕 끝에 전원참여로 결정을 보았다. 덕분에 추석 맏며느리 노릇으로부터 해방될 절호의 찬스를 놓치긴 했지만, 내 가여운 평발을 고문할 일은 사라졌고, 각 지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루 두 지역씩 차량이동, 5일 동안 각 지부와 함께 선전전하기.’로 대장정 사업이 최종결정 되었다.    

  2. 출발 기자회견, 울산. 기자가 아주 많이 왔다. 서울은 보도이슈의 전환 주기가 빨라 언론의 관심도 금방 식는데 반해, 보도꺼리가 부족한 지방은 기자도 관심이 많고, 시민들의 관심도 아주 많았다. 울산지부는 해직동지인 조용식 선생님 때문에 몇 차례 방문을 했는데, 갈 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는다. 용기 있고 진솔하며 따뜻하다. 사람다움과 투쟁다움을 함께 담지한 느낌이랄까? 물론 그 속 모습까진 내가 모른다ㅋㅋ.


   조용식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대 시민 연설을 하는 동안, 해직자들과 지부조합원, 연대단체 회원들은 피켓을 들고 시내를 걷다가, 인파가 많은 사거리쯤에 멈춰 선전물을 나누어주고, 피켓팅을 한다. 이런 방식은 시민들의 관심집중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꽤 좋은 평가를 받았기에 자연스럽게 대장정 내내 선전전의 메뉴얼로 자리 잡았다.
선전전이 끝나면 모두 함께 식사를 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 하루 일정이 모조리 끝난 밤에 당일평가회와 더불어 생명수 같은 맥주를 음복 후 잠을 잔다. 이게 5일 동안의 규칙적 일과였다.  

   3. 나는 다음 날 교과부 국정감사의 참고인으로 출석을 해야겠기에 부산일정 후 일단 올라와야 했다. 부산의 남포동 거리는 내가 학창시절 멋내고 쏘다니던 곳이었다. 향수에 젖을 틈도 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시민들에게 선전지를 나눠주는 내 모습이, 마치 <중경삼림>의 한 장면처럼 소외의 몸짓으로 느껴져 왔다. 학연, 지연 따위를 무시한 지 오래인 나에게 의미있는 것은 오직, 여기 노란 티를 입고 서있는 우리를 향한 고향시민의 눈빛에 담긴 공감과 호의의 유무 였으며, 선전지를 받아드는 그들의 태도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기꺼운가 였으므로. 고향 떠난 지 15년 동안에 이토록 화학적으로 변해있는 나와, 과거의 내가 낯설게 조우하던, 그래서 불편하고 어색했던 부산이여, 안녕.

   4. 국정감사는 생각보다 무척 길어졌다. 징계위원장이었던 김경회 부교육감 바로 옆자리라니!나와 마주치자 눈짓으로 가늘게 인사하는 그. 하여튼 인사성들은 졸 밝아요. 카악 퉤.
   원래 나의 역할은 부당징계의 가여운 희생양으로서 해직소회를 밝히는 민주당 측 1분짜리 참고인이었는데, 집에 가고 있는 나를 조전혁 의원이 다시 부른 것이다.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나는 덜덜 떨며 증인석에 가서 섰다. 조 모 씨 왈, “이거 일제고사 체험학습 승인했다고 교사 짜르는 거 정말 잘못한 겁니다! 이런 식으로 징계하면 교과부가 영이 떨어져요. 안 그렇습니까, 안 장관?”
    그렇다. 우리에 대한 징계가 어처구니없다는 데에는 한나라당조차도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갓난 애기 다루듯 나를 구슬리던 조 모 씨가 몇 차례의 언쟁 끝에 마지막에 가서는 “해임은 부당해도 그런 태도면 사표를 써야 되겠네.” 라며 결국은 성질을 부리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

   5. 다시 노란 옷 부대로 귀환한 곳은 대구였다. 날씨는 추웠고, 분위기는 쌩했다. 대도시의 거리는 해직교사 따위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지만, 그러던가 말던가 우리는 하루 치 선전지를 시민들의 손에 안겨 보내고, 일당을 받는 일용직 노동자처럼 그렇게 저녁을 먹었다...

   6. 다음날, 청주. 아! 이게 웬일인가? 우리를 위해 도심의 차선 하나가 완전히 비워져 있었다.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은 우리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차로를 행진하며 “일제고사 폐지, 해직교사 복직”이 씌어진 플랭카드를 가로로 펼쳐들고 한 발 한 발 내딛었으니, 꼭 예전 “못살겠다, 갈아보자!” 나 “종철이를 살려내라” 가 적힌 플랭카드를 들고 폭풍처럼 행진하던 군중의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걷고 또 걸어도 지치지 않았다. 떠들썩한 시가행진에 시장상인들의 눈과 귀가 쏠렸고, 소중한 기회를 붙잡은 마이크는 재빠르게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수구언론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시장, 정부의 기만적 언술, 먹고 살기도 바쁜 서민의 삶, 이 모든 주류 환경 속에서, 그 잠깐의 시가행진이 우리를 쳐다보던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순간을 단지 우리의 도취감이 아닌 유의미한 장면으로 기억하는 까닭은, 절망이 만연된 이 싸움을 위해 지역의 동지들이 이토록 힘차게 준비해주었다는 것, 희망을 살리고자 했던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만남으로써, 촛불 이후 종적을 감춘 듯한 장면을 재현해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7. 오후에 도착한 천안은 연대단체들의 적극적인 결합이 인상적이었다. 평학과 진보정당 회원이었던 그들은 연대자가 아닌 주체로서의 에너지가 물씬 풍겼고, 전령사를 환대하는 기지군의 자세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평소 그네들끼리 자주 모여 함께 해왔음을 느껴지던 친밀함들과, “힘내세요!”가 아닌 “힘냅시다!”로 마무리되는 인사말들은 우리의 뱃속을 두둑하게 했다.            

   8. 이제 막바지, 춘천이다. 해직동지들의 소속지부라, 나 역시 친정집에 온 것 마냥 마음이 편해지고 긴장도 풀려 입만 벌리면 농담을 하고 히히덕거렸다. 동해 해직동지를 양산했던 도단위 일제고사를 다시 앞두고 있어서일까, 지부장님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기에, 나는 “지부장님들 중 가장 미남이시다!”는 뜬금없는 칭찬을 응원이랍시고 퍼부었다. 지회장 전원이 참석해있어서, 결전의 승리를 당부하고픈 마음 간절하였으나, 이렇게 모여준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의 무거운 마음이 느껴져 와 그냥 웃고 즐기다 취하기로 마음먹은 우리는 마지막날이라는 흥취에 젖어 밤이 다가도록 잠들지 않았다.

   9. 다음 날, 수원을 찍고 - 말 그대로 그냥 찍었다 - 서울로 돌아와 교사대회다. 동해의 이범려 선생님이 대표발언을 하시는데, 쪽팔리게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조합원 된 지 1년을 못 채우고 해직된 이 선생님의 고백이 하도 담담하고도 아름다워서 말이다. 가끔 생각한다. 언제나 나를 일깨우고 변화시켰던 것은, 기막힌 선동이나 한 줌의 이득이 아닌 아름다움이었다. 판옵티콘의 죄수들처럼 불필요한 자기검열이 습관화된 교직사회에서 거침없이 자기의 길을 가는 두려움 없음이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었던가 하면, 승진하는 데에 하나 쓰잘데기없이 거추장스럽기만 한 공부들을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다. 단결해봤댔자 제도권력의 발끝도 못 따라갈 연대의 힘을 믿고 기적처럼 주변을 진보시켜나가는 그 성취의 힘이 아름다웠고, 불이익 앞에서도 욕 한마디로 웃어재끼는 곤조가 아름답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인식의 칼 끝 위에 아름다움의 쾌감이 그렇게 올라타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자신도 모르게 닮아져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자발적으로 닮아져간 자기 행동에 대해서는 원망도, 후회도 뒤따르지 않는 법임을 나는 해직기간 동안 깨달았다.  

   10. 교사대회가 끝난 후 지부에서 대장정 해단식을 거하게 치러 주었다. 홀을 가득채워자리해 준 지부동지들 앞에서 돌아가며 대장정의 소회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지는데, 갑자기 설은주가 말을 하는 중간에 울어버리는 것이다. 항상 찰박찰박한 태도로 닥친 일을 해나가던 은주... 누구를 원망하고자 흘리는 눈물도 아니고 처지가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도 아닌데, 그렇게 맥락 없이 흐르는 눈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지금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함께 울어버렸다. 저편에서 덩달아 눈물을 줄줄거리던 북사지회장님도 그랬을 거다. 10년 조합원 노릇 내내 저 멀리 던져두었던 슬픈 감정 하나가 갑자기 엄청난 가속도로 데굴데굴 굴러와 볼링핀처럼 나를 퍽! 맞춘 듯 말도 못하게 슬퍼졌기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몽롱한 즐거움으로 영위해온 해직생활 중 드물게 맑고 투명한 순간이었다.

11. 집에 와 “야! 울보 찌질아, 울고 난리냐?” 문자를 보냈더니 “우쒸, 왜 울고 지랄했는지 몰라ㅜㅜ” 답장이 온다. ㅎㅎ 투쟁은 길고, 맑고 투명한 순간은 이렇게 짧은 법이다. 다시 벨이 울린다. “집으로 간 거 맞아요? 짐도 여기 흘려놓고 쯧쯔”  해직자 행실관리 위원장 행세를 하며 영승샘 목소리다. 다시 문자가 온다. “대장정 20자 평 해 주삼” 대장정 내내 기자노릇을 한 상용샘 이다. 다시 문자, “모두 수고 했어요. 3일간 휴가 잘 보내세요.” 노구의 대장 용운샘. “모두 즐거웠습니다. 저는 농성장입니다” 풍찬노숙 중독자 용식샘. “허파에 바람 든 강원도 동지 잘 도착했어요^^” 5일간의 동거를 정리하는 문자 줄을 잇는다.


    우리의 대장정이 10월 일제고사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이렇게 동지들과 함께 짱돌을 던졌음에 자족한다. 던지다 보면, 큰 짱돌 정확히 조준할 날 있겠지. 투석질보다 더 경제적인 전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다윗의 짱돌조차도 빼앗으려 드는 지금의 정권은, 무기를 던져주며 페어플레이를 할 만큼의 자신감 있는 골리앗은 아닌 듯하다. 운동의 목표는 변화이지만, “아무것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보다는 자기만족이라도 할 행동을 하는 것이 낫고, 미안해할 줄도 모르는 것보다는 함께 무언가라도 했어야 한다고 자책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왔다. 자기가 주저앉고 싶은 선보다 한 발짝만 더해보는 것, 그것이 운동의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냥 미안해하고 싶은 본심을 죽이고, 자족이라도 하는 편을 택했다.  
    
  정직자 주제에 개고생을 함께한 황철훈 선생님과 하루라도 함께 걷겠다고 바득바득 내려오신 오정희 선생님, 이학균 선생님, 그리고 안락의 본심을 죽이고 사는 모든 동지들 때문에 나도 속편하게 살기는 글렀다고 생각 하며 한숨을 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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