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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담론과 문화] 호모언레스트에 주눅들다

2009.07.13 18:43

진보교육 조회 수:2109

호모언레스트(불안인간)에 주눅들다

김성률 / 전남여수 부영여고


신조어를 하나 만들어 본다. 호모언레스트, 불안한 인간. 이 신종 인간에 대한 얘기 한자락 펼쳐보자.

1. 보험 들어!

불안하지. 그럼 보험 들어! 보험이 너희를 구원하리라.
보험은 가히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만하다. 일어나지도 않는 불안을 자극하고 그것을 팔아 돈을 번다. 상품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게 거래라면 보험은 불공정 거래다. 상품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꺼림찍하고 미래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을 팔아치운다. 자꾸만 불안해 질수록 돈이 되는 사업, 안정과 행복이 줄어들수록 확장되는 사업, 결국 행복을 막아야 더 버는 사업. 여기에 비한다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은 사건은 얼마나 천진스럽고 귀여운 사기인가?
가난할수록 보험의 유혹은 강하다. “만약에 아프면 어떡할 거야? 돈 많어? 죽더라도 가족은 괴롭히지 말어야지~이. 그 누구를 봐. 보험 안들었다가 어찌되었는지.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르는 게 세상이야. 그리고 돈이 없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봐. 안전장치 하나쯤은 해 둬야지~이. 하나 했으면 하나 더 해 둬야 편안해지지~이.” 이 불안한 협박에서 두렵지 않을 자 몇이나 있겠는가? 지금 이 글을 보는 그대도 불안하죠?

2. 땅이 장땡이야, 땅 사!

등이라도 비빌 언덕 있어? 그럼 땅 한 평이라도 사 둬~어! 그 정도의 쥐뿔도 없어 봐, 어디가서 얼굴이나 쳐다봐 주겠어? 땅이 거짓말 하는 거 봤어? 땅값은 내리지 않아, 오직 하늘을 향한 화살이라고~오. 혹시 집은 있어? 집도 없으면 어떻게 살거야?
우리 사회는 가히 부동산왕국이다. 부동산은 불안이 범벅인 사회에서 바람을 막아주는 방패이며 불안을 씻겨주는 때밀이 같은 것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동산이란 놈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점점 자신의 덩치를 키울 줄 안다는 것이다. 정해진 땅덩어리에서 자신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주변의 땅을 먹어치워야 한다. 커다란 괴물은 작은 먹잇감을 사냥하기 위해 날카로운 발톱과 노련한 기술을 습득하고서-법과 법망을 이용하면서- 야금거리는 게 흉측스럽기까지 하다. 더욱이 이 놈들은 패거리를 만들고 야비하지만 점잖은 척 다가와 여지없는 똥침을 날려버린다. 불쌍한 먹잇감들에게는 우~욱하는 순간 이미 고통이 뼈를 파고드는 것이다.
이 괴물들은 배부를 줄 모른다. 먹잇감이 무한 리필되는 식탁인 줄 안다. 혹시 그대는 불안하지 않나요? 혹시 그대가 그 괴물들의 먹잇감으로 찍혀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는가요? 한 십 년 쯤 뒤에 그대가 사는 동네가 재개발된다면, 강제토지수용으로 강제추방이 된다면,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불안이 엄습해오지 않나요?

3. 대학 가고 싶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꿈 있어? 미래에 대한 비전같은 것 말이야? 언감생심 꿈은 무슨 꿈, 그럴 시간 있으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야지 지금 한가하게 꿈타령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묻는 사람 대한민국 사람 맞어?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꿈을 묻는다는 것은 한여름에 군불 때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설마 그 정도일까 하는 사람은 아무 학교 아무 교실이나 들어가 직접 여쭈어 보라. 아마 운 좋으면 한 두 명 건질지도 모르겠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 꿈이란 이런 것이다. -대학 가는 거-어떤 대학?-좋은 대학-좋은 대학 가면 꿈을 이룬 거야?-아니 뭐 꼭 그건 아니지만...-
억지로 쥐어짜면 -취직하는 거-취직하면 꿈을 이룬 거야?-좋은 데 취직하면...-그럼 왜 취직하는데?-돈 많이 벌려구...-
우리 청소년들에게 대학은 꿈이고, 한 단계 더 고상한 꿈은 돈 많이 버는 것이다. 참 꿈 치고는 천박스럽다.
이 사회에서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꿈이 떠나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아니면 불안해지는 돈의 노예로 길들여지는 사회 풍조와 교육의 변질은 아닐까?

4. 어라 말까시네.  

누가 갑자기 반말로 말을 걸을 때 당황스럽다. 이건 뭐야? 왜 대뜸 말을 까는데?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그건 아닌데, 그럼 뭐야? 아하, 나보다 잘난 사람인가 보다.
우리 사회에서 말은 계급이다. 잘난 놈들은 대충 말을 까신다. 심지어는 한 직급만 위여도 말을 까는 게 당연시 된다. 듣고는 있어만 솔직히 엿 같다. 심지어는 나보다 어린 놈이 대뜸 깐다. 화악! 으이그 힘없는 내가 참는다. 그래도 집에 가면 마누라에게 내가 깐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말까며 산다. 왜? 대한민국이잖아.
가끔씩 사람을 만날 때 두려울 때가 있다. “말 놔도 돼지?” 속으론 왜? 하면서도 겉으로는 편하게 하세요 라고 애써 웃는다. 한 살 정도 많은 사람이 친근하게 지내자면서 말을 까는데 ‘친근하게’를 받아들여야 할지 ‘말 깔게’를 받아들여야 할지 순간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대충 만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런 이유로 불안하기까지 할 때도 있다. 반말을 하기 위해 반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또 속인 나이에 한 살을 얹고 참 웃기는 짬뽕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 사람이 얼마나 낡았는지를 우선 판단하려 든다. 그에게서 내가 배울 점이나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이미 대면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사람은 없고 반말이냐 아니냐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반말 때문에 사람 만나기를 저어해야 하다니 쩝이다.
반말,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말이다. 그냥 서로 높여주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왜 말로서 만남을 즐기지 못하고 말투로 상대와의 높이를 측정해야 할까요? 말을 받기가 불안한 사회에서 반말을 듣기 싫으면 빨리 늙던가 얼른 죽던가 아님 출세라도 하던가 해야 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5. 오! 나랏님

선거가 끝나고 나면 법칙처럼 따라오는 소리가 있다. ‘내 손목을 자르고 싶다’는 소리다. 찍어주고 후회하고, 그래도 또 찍어주고, 그 후 반드시 후회하고. 이 질긴 무개념표 한국시민들의 무지함을 어찌할 것인가? 내 것을 빼앗고 내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데도 그래도 ‘우리가 남이가?’ 한마디면 같은 편이 되고, 세금(직접세) 몇 푼 안내는 사람이 세금 깎아준다니까 열광할 수 있는 이 무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 뒤에서 흐믓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저들에게 언제까지 기름기를 선물하고 있을 셈인가?
오! 나랏님, 그대의 속임수는 가히 ‘하늘을 바다 속에서 건져올리는 실루엣’ 수준을 넘어섰나니 이제 만족하면 어떨런지요? 그대를 거짓의 황제로 인정하겠나니 이제 멈출 수는 없는 것인가요? 그대의 똘마니들에게 예의 없음을 알리면 어떨런지요? 그대들만의 세상은 -이 어둠의 세상은- 난파선 갑판에 쥐떼들이 분주하듯 그대들의 아우성으로 가득차 머지않은 몰락을 기다리고 있다오. 제발 이제라도 SOS를 타전하여 봄이 어떨런지요.
오! 나랏님, 747 비행기가 고장난 채 녹슬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나요? 저 녹물이 대지로 흘러들고 이제 씨앗마저 썪어들기 전에 파종을 멈추어야 하지 않을런지요? 우리 백성들에게 파종할 땅을 일굴 수 있도록 저 고장난 비행기를 고물상에 넘기면 않될까요? 죽은 자식 끌어안고 축제를 즐기는 그대의 똘마니들에게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주면 어떨런지요.
우리는 그대들로 인해 충분히 불안해했어요. 이것이 깨우치지 못한 죄임을 충분히 깨달았지요. 오! 나랏님 이제 그대들 차례랍니다.

6. 기어 나오며

어디 불안함이 그까짓 것 뿐이랴? 아침에 창문을 열면 문 뒤에 숨어있다 확 달려드는 공해와 밥 속에 들어있는 농약과 수돗물에 섞여나오는 녹물과 빵빵거리며 달려드는 거리의 매연과 길을 건너기도 두렵게 만드는 문명의 이기들과 힘 있는 사람들의 무례한 건방과 그들이 주도하는 법치와 그 속에 고통받는 저 자연의 숱한 생명들과 그리고 그저 살아가는 나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나의 가족들. 나를 감싸고 불안으로 내모는 더 많은 불안요소들.
호모언레스트. 나는 이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고 싶다. 나는 태어나서 호모해피니스를 꿈꾸며 항상 행복의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런데 항상 그 길엔 불안한 삽질로 길을 파헤치는 사람을 만나고 나는 무서움과 불안으로 자꾸만 뒤돌아보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그 길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제 기어서라도 내가 가던 길을 가고 싶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신작로로 아닌 비록 좁은 산길이지만 내 꿈이 머무는 길, 행복이 자리하는 길, 불안이 불안해하는 길, 우리의 길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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