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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기획] 1.Lev Semyonovitch Vygotsky의 생애

2009.03.25 15:47

진보교육 조회 수:3347

[기획]-< 비고츠키 교육학의 진보적 재조명 >

‘비고츠키’는 현재 한국 교육학계에서는 교수-학습이론과 관련 한국교육학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사회적구성주의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비고츠키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철학적, 이론적 오류이자 왜곡이다.
비고츠키는 일생을 걸쳐 철저히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교육이론을 전개하고자 한 맑시스트 교육학자였다. 그러나 구성주의자로 둔갑됨으로써 비고츠키 이론은 자신이 지향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취지로 활용되고 있다. 시장주의와 융합된 구성주의가 추구하는 엘리트교육과 조기교육, 개별화교육, 수준별교육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여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엄청난 학문적 왜곡은 비고츠키 교육학의 뛰어난 설명력을 구성주의의 확산의 무기로 사용하고자 했던 일부 구성주의자들의 오도된 기획과 비고츠키 이론이 기반한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철학적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기획은 한동안 매우 성공적이었다. 구성주의적 틀로 편집, 각색된 비고츠키 이론은 ‘지식의 사회적 규정’에 대한 부족한 설명력을 보충하였고 ‘비계’ 등의 방법론적 논의로도 발전하였다. 뛰어난 설명력과 더불어 ‘아동의 주체적 역동성’을 강조한 비고츠키 이론은 다양한 층위에서 각광받으면서 구성주의가 교육학계에서 헤게모니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이제 왜곡은 명확하고도 빠르게 시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 사람의 걸출한 교육학자의 역사적, 학문적 위치를 올바로 설정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동안 잘못 진행되어 온 교수-학습이론의 방향과 의제, 방법론을 바로 잡는 문제이며 무엇보다 진보적 교육학의 교수-학습이론을 새롭고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문제이다.

이번 호 진보교육에서는 비고츠키 교육학을 진보적으로 재조명하는 취지에서 그의 생애와 주요 이론과 개념을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한편 비고츠키 이론의 교육학적 의의와 과제에 대한 논의를 제출해 본다. 그리고 ‘사회적 구성주의자’가 아닌 맑시스트이자 변증법적 유물론자로서의 복권을 선언하고 이를 통해 앞으로 진보적 교수-학습 이론의 지평을 열 이정표로 삼고자 한다.

1.Lev Semyonovitch Vygotsky의 생애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 1896-1934)는 마르크스 심리학이론 들을 재구성하고 대중적 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교육심리학과 치료심리학 개발에 힘썼다. 비고츠키는 교육 및 의학의 실제 문제와 관련된 심리학을 형성하려고 하였고 기형실험연구소에서 행정적 활동, 강의, 저술활동 특히 『근접 발달 영역』개념을 제안하여 주장하였다. 그의 이론은 흔히 ‘사회․문화․역사 이론’으로 잘 알려져있다.


나는 ‘뛰어난 과학자’, ‘저명한 학자’, 심지어 ‘천재’등 여러 가지로 설명되는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철학자와 과학역사가로 잘 알려진 Stephen Toulmin은 그를 ‘심리학의 모차르트’라고 불렀다. 나는 Lev Semenovich Vygotsky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중략)……
vygotsky의 장녀 Dr.Gita L. Vygodskaya가 쓴 글 ‘His Life' 中


1. 어린 시절~대학시절

1) 출생
  1896년 11월 17일 백러시아의 Minsk 북동쪽에 위치한 Orsha 시에서 태어났다. 생후 1년 무렵 비고츠키는 백러시아의 비교적 큰 도시인 Gomel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아동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Kharkov의 Ukainian에 있는 상대 출신으로 은행지점장이었으며, 어머니는 교사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비고츠키와 여덟 자녀를 양육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 부부는 자기들의 가정을 그 마을에서 가장 문화적인 가정으로 만들었다. 그의 부모는 유태인으로서, 제정 러시아에서의 유태인에 대한 차별로 인해 아버지는 엄격하면서도 냉소적이며 풍자적인 유머를 지녔다. 그에 비해 어머니는 온화하고 자상한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비고츠키가 독일어를 습득하고 시인 하이네를 좋아하게 된 것은 어머니 영향이었다.

2) 아동기
  비고츠키는 학교에 가지 않고 가정교사인 Solomon Ashpiz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의 교육적 방법은 특히 비고츠키와 같은 천재적인 소년에게 잘 개발된 직관적인 마음을 열어주는 탁월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 후 유태인 학교에 진학하여 중등교육을 받았다. 그의 학교 친구에 따르면 비고츠키는 역사철학 특히 변증법을 중심으로 Hegel 철학에 관심이 많았고 유대인의 문화와 역사에 관한 문제에 관심 있는 동아리의 인정받는 리더였다고 한다. 비고츠키는 친구들을 자주 철학, 문학, 역사, 예술과목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지적 토론으로 이끌어 ‘꼬마 교수’로 불려졌다. 그는 이들 분야를 매우 좋아하였고 이것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비고츠키는 그의 친구들이 아리스토텔레스나 나폴레옹 같은 인물들의 역할을 할 때 논쟁과 모의 법정의 연출자로서 사상의 역사적 맥락을 탐구하였다. 이 논쟁들은 비고츠키 생애의 중요한 관심사였던 철학에 대한 인식을 정교화하게 했다.

3) 대학시절
  1913년 비고츠키는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금메달을 받고 김나지움을 졸업하지만 유태인에 대한 차별 때문에 대학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 차별은 최상위의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의 자질을 낮추기 위해 채택된 새로운 제도로 말미암아 모스크바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무작위 추첨에서 뽑혀야만 했다. 당시 제정 러시아는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유대인에게는 대학생 쿼터를 3%밖에 배정하지 않았고 그것도 1913년부터는 입학이 어렵도록 추첨을 하여 선발하였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편이 되어, 그는 입학 추첨에서 선발된 극소수 유태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나중에 그가 개인 행동구성에서 추첨의 역할을 고려한 것이 아마도 이 사건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유태인이라는 사실은 전공 선택에도 어려움을 주는데, 그는 역사나 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유태인으로서 제정 러시아 정부의 공무원이 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또한 법학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유태인은 변호사를 제외하곤 법률가가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비고츠키는 부모들이 원하는 모스크바 대학의 의학부를 진학했다. 하지만 비고츠키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자신의 원래 뜻을 접지 못해 1914년에 비공식학교인 Shanyavskii 시민대학에 출석하여 역사와 철학을 전공하고 문학, 심리학, 예술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모스크바 대학에서도 결국은 법학으로 전과를 하고 1917년 법학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였다. 후에 그는 전공이 심리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소련 심리학자들로부터 소외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2. 대학 졸업 후~1924년

1) 대학졸업 후
  1917년 공산혁명이 일어나던 해에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하고 비고츠키는 Gomel로 귀향한다. 이때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그는 그 곳 학교에서 문학과 예술사와 미학 등을 강의하였다. 또한 Gomel 사범대학에서 심리학 실험실을 조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심리학자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1926년 발간된『교육심리학』의 기초가 되는 일련의 강의를 하였다. 8개 국어에 능통했던 비고츠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서 나오고 있던 철학, 심리학, 교육학, 희곡, 문학 등의 주요 연구 업적들에 대해 폭넓은 독서를 할 수 있었다.

2) 투병
  1920년에 비고츠키는 이미 건강이 좋지 않았고, 종국에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결핵이 이 때 나타난다. 그는 결핵에서 일시적으로 회복한 후에는 Gomel에서 연구를 계속하였다.

3) 결혼과 새로운 경력
  1924년에 Rosa Smekhova와 결혼하였고 두 딸을 낳았다. 비고츠키의 가정은 그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분위기로 가족 구성원들 간에 애정과 상호존중이 가득했다.
그는 끊임없이 독서하고, 강의하고, 저술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활동들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을 갖게 하는 준비 작업이 되었고 1924년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된 제 2차 심리 신경학회에서 그가 논문을 발표하면서 그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조건반사적 조사방법과 심리학적 조사방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학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모스크바 심리학 연구소 소장이었던 Kornilov가 그를 연구소에 초빙하게 되며 그는 새로운 경력을 갖게 되었다.

3. 1924년~1934년

  1934년까지 비고츠키 인생의 마지막 10년은 매우 열정적이고 생산적인 시기였다. 비고츠키 학파의 트로이카로 알려진 Luria와 Leont'ev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구에 가담하였다.
1) 모스크바에서의 행정적, 강의와 저술활동
그는 모스크바 대학의 심리학부에 중견학자로 소속되어 있었는데 모스크바 대학 학장이 마르크스 심리학을 발전시키려는 Kornilov로 바뀌면서 비고츠키도 그 조직에서 자신의 과업을 두 가지로 보게 되었다. 첫째는 마르크스 심리학이론들을 재구성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소련이 직면한 대중적이고 실제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방안은 교육심리하과 치료심리학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1925년에 그는 정신지체아, 학습장애아, 청각장애아 등에 관심을 갖고 모스크바 대학 내에 비정상 아동을 위한 심리 실험실을 조작하였고 후에는 교육학술원의 기형학연구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2차 전 러시아 심리신경학회에서 1924년에 제시한 원고의 개정판을 출간하였다. 1925년 11월부터 1926년 봄까지 병원에서 결핵으로 투병하고 있는 동안, 그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에 대한 중요한 철학적 비평인 『심리학의 위기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저술하였고, 1926년 Gomel의 초기 강연내용을 정리, 수정하여 교육심리학을 출간하였다.

2) 1920년 말~1930년 초
  비고츠키는 강연을 하거나, 연구소 설립을 돕기 위해 소련 전역을 여행하곤 하였다. 심리학자들과 교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Tashkent로 가는가 하면, 새로운 심리학적 접근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제공한 Khar'kov에서는 연구단체의 조직, 강의, 저작 활동들을 강행하였다. 또 Khar'kov에서 이주한 비고츠키 학파의 구성원이 소장으로 있는 집단을 지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Poltova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모스크바와 Khar'kov의 의학부에 입학하여 수강하면서 의학, 특히 신경학에 연구를 수행하였다. 비고츠키는 이 시기에 새로운 소련을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생각하며 매우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1931년 초에는 우크라이나 심리학 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카르코프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이때 언어와 사고의 신경학적 장애에 관심을 갖고 신경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다. 또 그는 모스크바의 크루프스카야 공산주의 교육 과학 아카데미, 모스크바 미술학교 교육학부, 산업 교육 연구소, 레닌그라드 교육 연구소 등에서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였다.

3) 비고츠키의 사망
  비고츠키는 생의 마지막 몇 년을 강의와 저술활동에 광적으로 매달리며 보냈다. 모스크바에서는 그의 일정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으며, 새벽 2시 이후에라야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식에 『장애 아동의 발달과 교육 진단』(1931),『심리학 강의』(1932),『학령기의 인지 발달과 수업의 문제』(1934),『사고와 언어』(1934)등을 저술하였고, 죽기 전 1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생을 마감한 마지막 달조차 속기사에게 『사고와 언어』의 마지막 장을 받아 적게 하였다.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달성하려 애를 썼지만, 이런 무리한 일정들은 그의 몸을 마지막까지 소진시키고 있었다. 결핵에 의한 통증과 기침이 계속되었고, 1934년 6월 11일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4. 사후
  비고츠키의 저술 중 몇 권은 곧 발간되었으나 정치적 이유(스탈린 치하에서 부르주아적 사고라는 이유로 1936년부터 출판 금지)로 금지되었던 것들은 그가 죽은 지 20년이 지난 후인 1956년 이후 발간되기 시작하였다. 스탈린 정권 하에서 어떤 학자의 연구물들이 반체제적인 문서로 분류되어 숙청대상에 오르는 것은 빈번한 일이었다. 또한 비고츠키의 주장이 스탈린이 언어에 관한 평론에서 밝힌 주장과 대립된다는 이유에서 비고츠키의 책들은 출판될 수 없었다. 비고츠키의 책들이 한 동안 금서로 지정되고 그의 글들이 더 이상 출판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고는 러시아 심리학계에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그의 저작들은 1960~70년대에 영어로 번역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에 미국의 많은 심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 들어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미치는 사회적․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러시아의 심리학자인 비고츠키에 관한 연구와 관심이 증대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고츠키의 저서 『사고와 언어』(1985)와 비고츠키 연구서인『비고츠키』(1995),『비고츠키와 유아 교육』(1995),『정신의 도구 : 비고츠키 유아교육』(1998) 등이 번역, 소개되고 있다.

비고츠키의 동시대인들
  비고츠키는 서방의 주요 심리학자들 가운데 피아제(구성주의), 왓슨과 스키너(행동주의), 프로이트(정신분석학) 및 코프카(형태심리학)의 이론을 연구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비고츠키는 그의 논문과 연구를 통하여 유아의 언어 발달에 대한 피아제의 초기 연구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비고츠키는 몬테소리의 연구에 대해서도 논평한 바 있다. 비고츠키의 이론 체계와 다른 발달 심리학자들 간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선 정신의 도구 제3장을 참고할 수 있다.

러시아의 동료와 제자
  비고츠키는 여러 초기 실험에서 루리아(Alexander Luria, 1902-1977)와 레온테프(Alexei Leont'ev, 1903-1979)와 공동 연구를 했으며, 이들이 이론의 틀을 마련하는 데 공헌하였다. 비고츠키 사후 루리아, 레온테프 및 또 다른 비고츠키 후계자들은 그들의 연구를 중단시키려는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였다. 그 때문에 자신들의 연구와 비고츠키와의 연관 관계를 공공연히 밝힐 수가 없었다. 이들은 비고츠키의 주요 원리들을 정교화했고 그 원리들을 심리학의 여러 영역에 적용시켰다.
  비고츠키의 동료 중 가장 연구를 많이 한 루리아는 비교문화 심리학, 신경심리학 및 언어심리학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개척하였다. 그는 뇌 손상과 그것을 되살리는 방법을 연구함으로써 신경심리학 연구에 비고츠키의 원리들을 적용시켰다. 한 나라의 문화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비교문화 심리학을 통해 루리아(1976)는 문화의 영향이 어떻게 인지를 형성케 하는지도 연구하였다. 루리아의 언어 심리학 연구는 혼잣말이 운동 기능을 조절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으며, 언어와 인지 사이의 연관을 발달적 관점과 임상적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보카테(Vocate, 1987)는 루리아와 그의 연구를 잘 요약하고 있다.
  레온테프(1977/1978)는 의도적 기억(deliberate memory)과 주의 집중을 연구하였고, 사회적 맥락이나 환경과 유아 자신의 행동을 통한 발달적 성취를 연관시킨 활동 이론을 발전시켰다. 레온테프의 이론은 특히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대부분의 놀이와 학습 분야 연구들의 기초를 이룬다. 이 같은 연구들이 무엇이며 유아기 발달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정신의 도구 5장과 6장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갈페린(piotr Gal'perin, 1902-1988), 엘코닌(Daniil Elkonin, 1904-1985), 그리고 자포로제츠(Alexander Zaporozhets, 1905-1981)는 비고츠키의 제자들인데, 그들은 교수-학습 과정의 구조와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였다. 자포로제츠는 유아교육연구소를 창설하여 유아 교육에 비고츠키 이론을 적용하였다. 오늘날 교육학과 발달 심리학 분야에서 비고츠키 전통은 다비도프(Vasili Davydov, 1991)와 루브트소프(Vitali, 1991) 같은 러시아 학자들에 의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 학자들이 발전시킨 비고츠키의 기본 원리들은 정신의 도구에서 설명되는 혁신적인 수업 방식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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