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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호 [해외동향] 거기서 미래를 보았네 - 쿠바교육 기행기

2009.03.25 14:52

진보교육 조회 수:21365

거기서 미래를 보았네 - 쿠바교육 기행기
                                                                                                          정은교/목일중

  올초에 쿠바의 여러 학교를 견학할 기회를 얻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쿠바에 대해 잠깐 살핀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쿠바의 ‘학교’에만 관심을 둔 게 아니라 ‘학교’를 통해 쿠바 사회의 원리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객들 사이에 쿠바는 ‘사람들이 따뜻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스웨덴에서는 사람 사귀기가 어렵다’거나 ‘캐나다인들은 차갑다’ ‘그래서 쿠바를 찾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이런 질문을 던져봄직하다. “왜 높은 복지를 누리는 스웨덴 사람들이 외로움에 떨고, (최소의 복지는 누린다지만) 가난한 쿠바인들이 어째서 저렇게 인정이 넘치는가?” 물론 이 막연한 질문에 한두 가지 잣대로 간단하게 답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 대조되는 현상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품고 우리는 먼저 수도 아바나 근교의 가이미또 초등학교를 찾았다. 현관에 들어서 둘러보니 건물 벽에 페인트칠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종이 부족’이 특히 심각해서 복도나 교실에 붙어있는 빈약한 게시판들이 반세기 전의 한국 학교를 보는 듯하다. 마중 나온 교장, 교감 선생의 옷차림도 수수하기 그지 없다. 학교가 자랑하는 컴퓨터실에도 들렀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구멍가게’ 수준이다.
그러나 교실에 들어가 만나본 아이들의 얼굴은 참 맑고 순진했다. 세상 보는 눈도 맑았다.  
6학년생들에게 물었다.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쿠바 교사가 잠깐 토를 단다. “정부와 민중, 어느 쪽을 묻는가요?” 양자를 구분해서 답하라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명쾌한 정치경제학 수업이다. 실제로 쿠바의 초중등 학교에서는 매주 한 차례 정치정세교육을 한다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민중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정권이 이런 시사정세 교육을 실시하기는 어렵다. 가령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할 터이니 젊은이들은 자원하라’는 내용의 정치교육을 한국 정부가 각 학교에 지령한다면? 부모에게 그런 가정통지문을 보낸다면?  
또 물었다. “너희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래?” “정직한 사람이 되겠어요.” “호세 마르티 같은 사람이 되겠어요.” 하는 답이 줄을 이었다(그는 중국의 손문처럼 쿠바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독립운동가다). 야무지게 생긴 한 소녀가 가슴 뭉클한 답을 내놓는다. “전쟁이 나면 (이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어요.”
며칠 뒤 또 다른 초등 6학년생들에게 물었다. “아름다움은 어디서 생겨나지?” “사람의 내면에서 생겨나지요.” “우리 선생님 같은 분이 ‘아름다움’이지요.” 그랬다. 그들 소년소녀는 나라 독립의 지도자를 존경하고, 저희를 늘 돌봐주는 어른을 아름답다고 느낀다. 단순하다. 무엇을 삐딱하게, 비스듬하게 쳐다보는 버릇이 없는 듯하다. 아이들 공책을 유심히 살폈는데 반듯하지 않은 글씨가 하나도 없다.
두번째 초등학교는 2학년 꼬마들에게 살사춤을 연습시켜서 손님을 맞았다. 그런데 한참 저희끼리 춤추던 꼬마들이 문득 방문객의 손을 하나둘 마당으로 잡아 끈다. 우리를 붙드는 아이들의 손목과 덩치가 아, 한국 아이들보다 가녀리다. 90년대초 혹독했던 보릿고개 탓일까... 춤판은 어느새 앞사람 허리를 부여잡는 기차 놀이로 바뀌었다. 얼쑤!
우리는 두 가지 정치행사를 구경했다. 혁명기념 행사와 1월 28일 호세 마르티 생일잔치. 1959년 피델의 부대는 산타 클라라시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둔 뒤 국도를 따라 개선행진을 벌였는데 각 마을에서 그 ‘입성’ 날을 기리는 행사를 갖는다. 주역은 초중등학생들이다. 초록빛 군복을 입고 가짜 수염을 달고 목총을 손에 쥔 어린이들이 지프차에 올라타 퍼레이드를 벌이면 동무들이 모두 길가에 몰려 서 있다가 열광의 함성을 지른다. 아바나 시내에서 열린 호세마르티 기념식은 더 화려했다. 중고교생들은 보무당당하게 걸음을 떼는 것으로 그쳤지만 유치원과 초등학생은 갖가지 복장으로 꾸미고 나와 재롱을 떨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정치관념에 익숙한 사람들은 쿠바 학생들이 무척 순진하고, 또 정치행사에 억지로 끌려나온 것 같지 않다고 관찰하면서도 ‘동원’ 행사와 ‘주입식’ 정치교육에 대해 좀 떨떠름하게 느낀다.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 외국 원수 맞이에 동원되었던 우리의 어두운 초중고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숙고하기 전에 쿠바 교육의 자취를 먼저 더듬어야 한다.

가이미또 학교의 노교사 소일라 선생이 문해(文解)운동의 역사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1930년대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이야기만 안다. “소수의 지식인이 민중을 위해 훌륭하게 헌신하다. 어쩌구...” 61년 쿠바의 문해운동은 이것과 규모가 아예 다르다. 당시의 소일라처럼 아이를 갓 낳은 주부도 시간을 쪼개서 동참했고 공장 노동자는 쉬는 시간에 제 동료를 가르쳤다. 읽고 쓰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죄다 나섰다. 몇 명이? <백 만 명>이 나섰다! 식민지 조선의 ‘브 나로드’는 소수 지식층 운동에 머물렀지만 쿠바에서는 ‘교육혁명’이 일어났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브라질 농민에게 ‘문자를 통해 세계를 깨치는’ 의식화 교육을 시킨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의식화의 철저함도 쿠바의 문해운동이 한 수 윗길이다. 그들의 ‘독본’은 의식화를 넘어 사회혁명의 과제를 일깨운 것이기 때문이다. 문맹이 없어진 뒤에도 쿠바에는 전국민의 ‘야학 운동’이 이어졌다.
정부는 이 운동의 참가자들이 내처 ‘교사의 길’을 가도록 북돋았다. 기득권층 교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이들이 메꾸었고, 아직도 학교의 터주대감으로 있다. “어째서 69세의 연세에 아직도 교단에 서시는가?” “90년대초 소련이 무너진 뒤로 우리는 한동안 고난의 시절을 겪었다. 생활고를 못 견딘 교사들 상당수가 교단을 떠나자, 정부에서 정년 퇴직해 있던 우리를 ‘교단에 다시 서 달라’고 불렀다.”
쿠바의 사회주의가 장애아학교에 살아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들른 아벨 산타마리아 시각장애아 학교도 학생이 186명인데 교사는 무려(!) 54명이다. ‘라  가스떼야나’ 특수학교처럼 장애 치료와 교육을 병행하고, 졸업한 성인들도 계속 거두어주는 그런 학교가 한국에는 없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만도 스스로 대견해 하지만 ‘누구나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는 사회주의적 평등개념이야말로 훨씬 윗길이 아닌가. 장애아에 대한 ‘과잉(?)’ 배려야말로 진정한 평등교육이 아닌가. 에두아르도 가르시아 델 가도 예술사범학교에서도 우리는 인상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가난하여 악기를 전혀 만져보지 못한 학생도 (리듬감 등) 잠재적 소질만 있다면 입학을 허락한다는 것이다.
자, 앞서 언급한 ‘정치 과잉의 교육’ ‘국가주의의 범람’이라는 혐의(?)를 도마에 올리자. 흔히 ‘애국심(또는 국가주의)’는 악당들의 도피처라고들 말하지만 단지 추상 관념으로 이를 농단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어떤 국가(정부)를 수호하자는 것이냐다. 온 민중을 문해운동으로 일으켜 세운, 소일라 선생의 정부는 지지할만한 정부가 아닌가? 아벨 산타마리아 특수학교를 지탱해온 국가는 정녕 수호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쿠바의 유치원 학생들은 호세 마르티의 독립운동을 연극으로 배운다. 이것이 과연 ‘주입식 교육’이라 비난받을 일일까? 미국의 갖은 정치공작과 경제봉쇄에 맞서 쿠바 민중이 자기 조국을 50년간 사수하는 데에 이 이른바 ‘주입식 교육’은 절대로 긴요한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참고로, 북한의 사회주의가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는 불신이 남한 사회에 짙지만, 그렇다 해서 북한 사회의 미덕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독립 국가를 지켜온 견결함마저 폄하해서는 안된다. 쿠바를 통해 우리는 남북한의 역사도 되짚어볼 일이다).
소일라 선생에게 물었다. “요새 젊은 세대는 혁명정신이 약해지지 않았어요?” “물론 철없어 보이고, 고생도 별로 겪지 않았지. 그러나 그 부모들이 갖은 고생을 다 겪었고 애들이 이것을 알아. 미국이 혹시라도 쿠바를 다시 침공하면 쿠바 민족이 깡그리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그러니 철없는 아이들도 자기 부모와 민족을 위해 일어설 것이라는 ‘억센’ 낙관이다. ‘전쟁이 나면 어른들을 돕겠다’는 소녀를 소일라 세대가 길러냈다.

                  사제(師弟)가 전면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그런데 노교사와 어린 초중학생들 사이, 중견교사층이 엷어진 학교의 허리는 누가 이끌어 가는가? 후속 세대를 변변히 길러내지 못한 한국의 교육운동과 달리, 쿠바의 학교에는 젊은 주체들이 든든하게 커가고 있음을 우리는 학교 방문에서 확인했다. 구아바나 시내, 호세 마르티 실험중학교 현관에서 우리를 마중한 젊고 앳된 여성이 자기를 소개했을 때 방문단 속에서는 환성이 터져 나왔다. 불과 스물네 살의 새내기 교사가 ‘교장’이었던 것이다. 다른 데서도 2,30대의 젊은 교장을 여럿 만났다. 그런데 젊은 교장들의 발탁은 쿠바의 중학교에 통합교육프로그램이 몇 해전부터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연관이 깊다. 젊은 교사들이 또다른 혁명의 주체로 나서 달라는 주문이다(고교 커리큘럼도 그런 방향으로 모색중이라고 들었지만 이를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했다).
이 프로그램은 간단히 말하자면 중학교도 초등학교처럼 한 선생이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친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3년 내내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봐야 비로소 ‘교육’이 이뤄진다는 취지다. 출발은 ‘한 교사가 15 명을 책임지자’는 것이었으나 실제로 시행하다 보니, 30명의 한 학급을 두 교사가 공동으로 맡아서 절반씩 과목을 나누어 가르치는 식으로 정착돼 가고 있다. 이를 입안한 호세 바로나 고등교육연구소의 올가 교수의 설명을 옮긴다. “우리의 문제의식은 교사가 각 학생과 전면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데서 생겨났다. 제대로 수업은 알아듣는지, 학생들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교사들이 알지 못했다. 왜 통합인가?  현대 사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인간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역사 공부와 스페인어 공부가, 수학과 역사 공부가 함께 이뤄지기를 바란다. 고등학교에 가면 모든 과목을 배운다. 그것을 중학교에서 통합하여 가르치면 왜 안 되는가?”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사춘기 교육이 어렵다. 이 나이가 주는 혼돈과 질풍노도를 교육이 감당해야 한다. 새 미디어를 학생들은 아는데 선생은 모르는 상황도 극복해야 했다. 물론 우리 제도는 전세계가 놀랄 만큼 어려운 일이고, 아직 진행형이다.”
통합교육은 한 과목만 가르쳐온 교사들에게 벅찬 ‘재연수’를 요구한다. 개인적 차이를 어떻게 배려하고 어떻게 학생, 부모와 관계 맺을지, 토의수업은 어떻게 할지 교사들이 함께 준비해야 한다(과목마다 교사들을 가르치는 ‘특수 교사’를 두었다). 한국에서라면 ‘교사들이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까’ 회의론이 들끓었겠지만 쿠바 정부는 ‘중학 단계에서 전문지식을 가르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확고하다. 교육부는 ‘공동수업 비디오자료’를 교육방송으로 틀어줘서 ‘전과목 교수’를 돕고 있다. 이 지각변동에 대해 볼멘 소리도 들리지만 올가 교수는 ‘정착돼 간다’고 장담했다. 통합교육이 가져다준 변화는? “교사/학생의 사이가 깊어지고, ‘영혼이 성장하는 느낌’을 얻는다. 매일의 관찰평가가 가능해졌다.”

                   지금 긴박한 일은 ‘사회적 개인’을 길러내는 일

몇 가지 더 소개한다. 쿠바 정부는 교원평가를 해서 성과급을 더/덜 준다. 그러나 열성 교사를 격려하는 것뿐이고 동료를 서로 시샘하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쿠바의 학교운영위원회에는 교원노조 대표와 학생 대표가 당연하게 참여한다. 교장 되기를 다들 꺼리기 때문에 젊은 엘리트 당원들이 ‘의무감’으로 맡곤 한다. 이는 학교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아닌 사회주의 사회에 진입해서야 변변히 정착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번쯤 새길 사실 하나. 노동조합의 구실이 이 사회에서는 서구 사회에서만큼 중요하지 않다.
쿠바의 교육은 무엇을 성취했는가? 이 나라는 교육자료도 부족하고 교육제도도 미숙한 바가 많을 것이다. 사회적 격차에 따른 교육격차의 재생산 문제를 이 나라도 충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 개별화 교육에 대한 성찰도 서유럽의 교육학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많으리라. 산업 발달과 교육적 배려가 미흡하여 아직 ‘전면 발달한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으로 발돋움한 것 같지도 않다(아직 고교는 계열별로 분리돼 있다).
그러나 쿠바 사회는 무엇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할 줄 아는 높은 윤리를 품은 개인들을 길러내지 않았는가. 쿠바 민중은 한때 아프리카 민족해방투쟁을 돕기 위해 (목숨 걸고) 자원하여 나섰고, 쿠바의 의사와 교사들이 세계 곳곳에 나아가 봉사활동에 매진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쿠바 민중의 정치(또는 윤리) 의식과 문화수준이 매우 높은 편이라는 사실은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도 엿볼 수 있고, 어린 학생들을 통해 직감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인간 사회의 최고 임무가 <바람직한 사람들을 길러내는 일>이라면 현대사에서 가장 존경받을만한 사회는 쿠바 사회라고 단언해도 좋다. 제 밥그릇들만 챙기는 이기적인 인류가 지금의 심각한 세계대공황과 민주주의의 후퇴를 초래한 셈이니, ‘사회적 공동체적 개인들’을 길러내는 일은 지금의 인류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가 되었으며 우리가 쿠바에서 배울 바가 적지 않다.      
이 글 첫머리의 문제의식을 다시 불러내자. 쿠바인들은 왜 따뜻한가? 우리는 한 시골을 지나다가 신명나고 부러운 ‘경마 축제’를 구경했다. 지역공동체가 활기차게 살아있다는 증좌다. 그런데 자본이 휩쓸고 다니는 사회는 지역공동체가 도무지 버텨내지 못한다. 왜 유복한 서유럽 사람들이 외로워하는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숱한 원자(原子)들로 뿔뿔이 쪼개고 흩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 해방’을 ‘노동해방 더하기 갖가지 인간차별에서 풀려나기’ 쯤으로 비좁게 이해해 왔다. 여기에 ‘근본적 인간해방’의 과제가 추가되어야 한다. 인류가 저마다 파편화되고 옹색해진 사적 이기적 존재에서 벗어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서 함께 거듭날 때라야 인류 사회는 비로소 온전히 해방된 사회가 된다. 인류의 ‘유적(類的) 본질’을 회복하는 실존적 과제야말로 근대 사회가 안고 있는 최대의 숙제이고, 그 숙제까지 떠안는 사회라야 온전한 사회가 된다.
추신 : 비날레스 계곡의 풍광은 세계 어디보다 아늑했다. 혁명의 역사를 간직한 시에라 마에스트라산 속. 칠흑같은 밤에 쏟아져 내리던 별빛 폭포도 그렇게 찬란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광경은 ‘라 가스떼야나’ 특수학교의 한 다운증후군 처녀가 방문객을 위해 혼신의 힘으로 발레를 추던 장면이었다. 원래 사람이 꽃보다 별보다 아름다운 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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