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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현장에서] 지난 여름, 우리는 이랬다.

2008.10.06 20:13

진보교육 조회 수:1146

지난 여름, 우리는 이랬다.

                                                                                          최덕현 ∥ 전교조부천중등지회

여름방학 반납하다.

  성과급, 교원평가, 학교평가로 ‘철밥통’이 야금야금 쪼그라져가는 상황이긴 해도 학생들이 방학인 동안에는 쉴 수 있어 다른 사업장 노동자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것이 교직이고, 교육노동자다. 법적으로 보장된 연/월차 휴가가 없고, 쓰지 않은 연/월차에 대한 수당도 없어 ‘도낀에 개낀’이고, 보충수업 하느라 방학을 학교에 반납하는 다수 교육노동자들에겐 부러움(?)이 그림에 떡이 되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방학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전교조부천중등지회 동지들에게 올 여름은 여느 해와 달랐다.

  지난 7월 2일, 경기도부천교육청 교육장은 부천시 모든 중학생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평가를 실시하겠다는 공문을 시행했다. 물론 법적 근거도 없는 평가이어서 뒤가 구릴 수밖에 없는 그들이기에 스스로 ‘희망 학생 대상’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말이다. 말이 ‘희망’이지 부천교육청 교육장은 희망 학생이 적을 경우를 우려한 나머지 사전에 교장회의를 통해 ‘교육적 설득(?)’을 강조했고, 그 결과 학생 ‘희망’을 조사한 학교가 단 세 학교에 불과한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성취도 평가 직전에는 담임교사와 학부모, 학교운영위원회까지 가세한 총체적인 ‘교육적 설득(?)’으로 결국에는 이마저도 뒤집어 거의 모든 학교에서 ‘희망’과 관계없이 강제로 시행되고 말았다.
  수직적 관료체계로 운영되는 교육행정은 교육과학기술부→시도교육청→시군교육청→교장→교감→교사→학생으로 이어지는 ‘지시 체계’임을 감안하면 부천교육청 교육장의 ‘교육적 설득’ 한 마디는 ‘강제 시행’을 조장하는 의미가 된 셈이다. 그래서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학업성취도평가는 부천지역 모든 중학생이 동시에 치루는 ‘일제고사’가 될 것이 뻔했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었다.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결과를 정확히 예상한 부천교육청 교육장은 8월 28일 시험 일정표까지 담긴 공문을 시행했고, 일부 학교에서는 그 뻔한  상황에 대비하여 모든 학생에게 학업성취도평가 대비 문제집 풀이를 방학숙제로 내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부천중등지회는 지역의 동지들과 연대하여 7월 3일부터 개학 직전인 8월 22일까지 부천교육청을 대상으로 ‘학업성취도평가 중단’을 요구하는 투쟁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부천중등지회 동지들은 피켓시위, 전철역/거리 선전, 삭발/단식 철야 농성에 이르기까지 여름방학 전부를 교육청에 반납하게 되었다. 뙤약볕과 소나기, 부천교육청 교육장의 ‘막가파’식 밀어 붙이기, 교사이길 포기한 교육 관료들의 ‘책임 떠 넘기기’에 맞선 ‘투쟁하는 휴가’였던 셈이다.
  8월 28일 학업성취도평가는 철저하게 교육장 의도대로 시행되었고, 현재는 지난 여름 투쟁을 반성적으로 평가하면서 10월 학업성취도평가 저지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아니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기능하는 학교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끝없는 야욕은 전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경쟁교육, 차별교육, 미친교육 중단하라.

  부천교육청교육장이 ‘일제고사’ 형식의 학업성취도평가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랬다. 첫째는 부천지역 학생들의 ‘학력 향상’을 위한 것이고, 그 둘은 ‘진로지도’를 위한 것이고, 셋째 이유는 ‘교수-학습지도 자료로 활용’ 하겠다는 것이다. 성취도평가 시행 전 부천시교육청 윤00 장학사 왈 “평가 결과는 개별 학생의 학습과정을 진단, 학생 개개인의 맞춤형 지도 자료를 제공하여 학습능력의 향상과 학습의욕을 고취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하더니만 고00 부천교육청 교육장은 ‘한가위 서신’에서 “양질의 문제를 개발․보급하여 교수-학습 및 평가 방법 개선에 기여하고, 학생들의 성취수준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학생들과 학부모님, 지역사회의 많은 호응이 있었다”며 그야말로 ‘아전인수, 자화자찬’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였다
  
  일제고사와 같은 경쟁을 위한 시험이 ‘학력 향상’에 도움을 주었다는 연구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많은 학생들에게 열등감과 패배감을 심어 줄 뿐이고, 이틀에 한 명 꼴로 성적 비관 자살학생이 발생 발생하고 있는 교육현실을 고려할 때 ‘학력 향상’을 빌미로 한 경쟁시험 확대는 비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세계 제일의 학력 경쟁력을 가진 핀란드의 경우처럼 시험 도중 교사와 학생 사이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예는 ‘평가’의 본질에 대해 한국 교육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 ‘평가’는 사회적 지위와 부의 획득, 생사여탈을 겨냥한 경쟁이 아니라 교수-학습 과정의 일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나마 평준화 지역인 부천의 경우 일부 학교의 유명세(?)가 여전한데 평가 결과를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진학을 위한 ‘진로지도’ 자료로 활용한다는 것은 학생을 일제고사 성적으로 줄 세워 유명세(?) 강한 학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선별해 내겠다는 것일 뿐이다. 평준화를 해체하겠다는 음모가 담겨 있다. 이렇게 되면 부모의 ‘부와 정보’가 학력 수준을 결정한다는 우리 교육현실에서 노동자․민중의 자녀가 교육을 통해 출세(?)하겠다는 것은 언감생심이 된다. 언감생심이긴 해도 ‘그래도 어찌 해 보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는 노동자․민중이 부담해야 할 사교육비는 천정부지가 될 것이 뻔한 일 아닌가.
  그뿐 아니다. 성취도평가 결과를 교원평가와 학교평가, 성과급에 반영시킨다면 학교는 온통 경쟁으로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전교조 운동, 노동조합운동, 노동자 정치운동은 배부른 자나 할 수 있는 남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교수-학습 지도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은 구실일 뿐이다. 07년에 실시한 평가에 대해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수-학습 지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결국, 일제고사 형식으로 치러지는 학업성취도평가의 제도화는 ‘경쟁교육, 차별교육’을 강화하여 학생과 교육노동자에게 경쟁의 올가미를 씌워 학교가 자본주의 지배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도록 할 것이다. 학생과 교육노동자는 국가권력과 자본의 요구에 순치될 것이며, 교육비 부담은 노동자․민중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이쯤이면 자본주의 학교교육이 미쳐가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은가. 아니, 그것이 자본주의 교육의 본질일테니 ‘교육은 정상이고 날로 잘 되고 있다’고 떠벌리기라도 해야 하나.

  그래서 전교조부천중등지회 동지들의 학업성취도평가 중단 요구 투쟁은 경쟁, 학력 지상주의, 불평등 교육을 기조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학교 시장화, 학원화 교육정책을 시군 지역 단위에서 파열구를 내는 투쟁이며, ‘4/15 학교 자율화’, ‘4/30 학교 자율화 세부 추진 계획’에 따른 학교/교사/학생 간 경쟁 격화와 노동자․민중의 사교육비 부담 확대를 저지하는 투쟁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교육관련기관 정보공개 특례법 시행령’에 근거한 성적 공개에 따른 학교/교사/학생 서열화, 학생의 성적을 다면평가/교원평가/성과급에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저지하는 투쟁이며, 더 나아가 10월 14-15일 실시 예정인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 대응을 위한 투쟁 경로이며, 시군 단위 학업성취도평가가 경기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는 투쟁으로 의미가 있다.


그리고 ․ ․ ․ ․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교육청 거점 선도 투쟁을 통해 향후 학교 현장 투쟁의 발판을 마련하고, 생전 처음이었을 동지들의 삭발, 단식, 거점 농성, 기자회견, 피케팅, 거리/역 선전, 연대 등 다양한 투쟁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의 본질, 학업성취도평가의 반교육성을 지역에 대중적으로 폭로․선전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리고 ‘희망’을 빌미로 일제고사 형식의 학업성취도평가를 강행하려는 교육청의 의도에 쐐기를 박는 것은 물론 부천교육청 교육장을 비롯한 교육 관료의 관료적/권위주의적 독단, 이중적 행태 폭로하고, 그동안 침체되었던 지역의 전교조 운동 활동가를 결집시키고, 교육 부문을 비롯한 사회공공성 확대를 위한 지역 연대 틀을 구축하는 등 이후 지역 연대 투쟁의 기본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 투쟁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학업성취도평가 시행계획 완전 취소’를 끌어내지 못하고 개학 후 현장 투쟁을 남겨 두었다는 점, 교육노동자와 함께 투쟁의 주체가 되어야 할 학생과 학부모를 조직하지 못한 점, 그리고 지역의 타 부문 동지들과의 실질적 연대를 위한 사전 소통 부족 등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학교에서 투쟁이 만들어지면 늘 그랬듯이 지난 여름에도 학업성취도평가 강행을 위한 저들의 연대(?)는 정말로 강고했다. 평가문제 배포를 위한 교감회의가 오전에 열리는가 싶더니 당일 오후에는 학부모들이 떼거지로 부천교육청에 몰려들게 했던 것이 저들이다. 아마도 학부모들은 교육청 사주에 따라 전교조의 성취도평가 강행 저지 투쟁에 맞서 억지라도 부려 볼 계산인 듯 했는데 그 조직력과 빠른 움직임이 놀랄만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탓에 학교는 지식 공급자가 되고, 학부모는 수요자가 되면서부터, 그리고 교사는 지식 상품 판매자가 되고, 학생과 학부모는 지식 상품 구매자가 되면서 교육 관료들은 학부모들에게 ‘고양이 앞에 쥐새끼’ 꼴이 되거나, 그 쥐새끼가 고양이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 일상적인 그들의 주요 전술(?)이 되었다.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가족주의에 근거한 보수적 학부모 운동 말고, 경쟁과 차별 교육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르주아적 학부모 운동이 아닌, 교육(학교)을 노동자․민중이 통제할 수 있고, 교육이 돈 주고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지식을 모두가 무료로 공유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장이 되는 학교, 교육노동자가 일할 맛 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동자․민중 중심의 학부모 운동은 아직 멀기만 한가.

그리고,
‘교육관련기관 정보공시법’에 따라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공개하겠다 하더니만 이제는 수능성적까지 공개하겠다고 한다. 마냥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생활이 ‘교직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11월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교원평가 관련 법안과 전국적으로 동시에 치러지는 일제고사, 근평과 다면평가, 성과급이 모두 하나로 합쳐지고, 그 결과가 공개되면 그야말로 환상적(?)으로 바빠져야 하나 보다.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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