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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호 [맞짱칼럼] 그것도 이명박이 시켰어요?

2008.04.07 16:39

진보교육 조회 수:1787

그것도 이명박이 시켰어요?

                                                                                                    조용식 ‖ 울산학성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간 듯하다. 오늘은 또 무슨 얘기가 인구에 회자될까 하는 생각을 하며 집을 나서는 날이 많아졌다. 뉴스가 참 씁쓸하게 재미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동료 교사들과의 논쟁이(?) 줄어들었다. 새 정부가 내놓은 교육 관련 정책 마다, 주변 동료들의 견해가 대부분 일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언이폐지왈’이라고 했던가? 한 마디로 ‘허걱 냉소’로 내 주변 동료들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가능성과 긴장감은 정비례하고 긴장감과 냉소는 반비례한다.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교사들은 냉소했다. 가능성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회적 논쟁은 뜨거웠지만 오히려 학교 현장은 조용했다. ‘그거 되겠구나’는 아니더라도 ‘그럴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이 생겨야 비로소 논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내 판단이 틀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한 마디로 피곤하다. 별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는데도 이유 없이 피로감이 밀려온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런 것인가?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터져 나올 때마다 서로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라며 ‘빙그레’웃기만 했는데, 동료를 설득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거나 머리를 싸매지 않았는데, 이렇게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를 정말 알지 못하겠다.

진단평가를 치르던 날,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 학생이 “이것도 이명박이 시켰어요?”라고 따진다. ‘이것도’라는 말이 가슴을 팍 찌른다. 다른 것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피곤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새 대통령과 정부가 그 학생에게 어떤 과제를 부여했기에 그는 그런 ‘짜증’을 느낀 것일까? 교사는 머리로 듣고 손가락으로 말하지만 학생들은 몸으로 듣고 어깨로 느낀다. 새 정부의 교육정책이 그들의 몸과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들’과 한 편이 되어.

2008년 학교 운동장과 교실의 풍경은 매우 공통적이면서 매우 대조적이다. 우레탄으로 치장된 운동장과 불이 환하게 켜진 교실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이루기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아름다워 보인다. 미래를 향한 투자나 노력이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는 없다.

그러나, 먼지 한 톨 마시지 않겠다는 각오로 마스크를 둘러쓰고 두 팔을 실룩거리며 운동장을 돌고 있는 사람들과, 딱딱한 의자에 몸을 맞추고 감시의 눈을 피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이들이 한 가족이라는 점에서 그런 ‘노력’들은 아름답지도, 진실해 보이지도 않는다. 부모의 ‘웰빙’생활을 자녀들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일까?

요즘 학생들의 건강권을 운운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되어 버렸다. ‘내 아이 건강은 내가 챙길테니 당신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한 학부모 단체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내 아이 내가 더 사랑하지 않느냐’는 ‘고함’에 변변한 항변 한번 하기 어렵다. 학원을 24시 편의점으로 만들고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자유’를 주겠다는데 ‘딴지를 건다’는 것이 가당키는 한 것인가?

전교에서 전국에서, 내 아이가 과연 몇 등이나 하는지 알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은 부모의 당연한 권리인가? 자녀가 ‘무엇을 잘하고 어떤 소질을 갖고 있는지’보다 ‘몇 명 중 몇 등’이 더 소중한 정보인가? 도대체 그래서 ‘등수’를 알면 무슨 뾰족한 수라도 생기는가?

가랑비에 옷 젖고 잔매에 골병든다고 했다. 짐짓 무시하고 외면하는데도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물량공세가 무섭긴 무섭다. 다수의 교사와 학생들이 ‘냉소’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개혁’ 조치들이 서민 대중을 지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노무현 정권하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각종 보수적 교육단체들이 제철을 만난듯 하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은 그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내가 가진 경제력을 마음껏 소비해서, 원없이 시험 치고 내 마음대로 공부시키겠다’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있다. ‘학교에서 똑바로 가르치고 제대로 하면 왜 학원에 보내겠느냐’고 힐난하면서 말이다. 한 시의원이 학원교습 시간 연장 조례와 관련하여 ‘공부하다가 죽은 아이 못봤다’고 했다는 발언은 기막히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하다.

내가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 학생들이 대뜸 “이명박이 시켰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이들 때문은 아닐까? 가능성 없는 국가 정책이야 비웃고 냉소하겠지만, ‘동네에서 들려오는 나팔소리’는 시끄럽고 짜증나기 마련이다.

진정 그들이 ‘라이트’이긴 한 것인지, 정말로 ‘뉴’하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다. 보수주의자라면 공교육 기관인 학교의 역할을 존중하고, 학교가 굳건한 ‘국가 이데올르기의 전도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보면 그들은 ‘라이트’도 아니고 ‘뉴’하지도 않다. 교육을 ‘시장 정글’에 맡기자는 그들은 ‘보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천박한 ‘물신주의자’들일 뿐이다.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공약’은 이미 휴지가 되어 버렸다. 새 정부의 최대 지지자인 그들이 ‘내 마음대로’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공약’이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없다. 겉으로나마 전체 국민을 바로보아야 하는 이명박 정부와, ‘물신주의 교육단체들’과의 관계는 그래서 ‘부적절’할 수밖에 없다.

학원교습시간과 일제고사가 여론의 지탄을 받자 대통령이 나서서 공교육의 파탄을 우려한다며 일갈했다고 한다. 교육부 장관이 거들고 나서자 한낱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견해들이 나오고 있다. ‘부적절한 관계’의 또 다른 당사자들은 어떤 말을 뱉어낼까?

그들이 잃어버렸다던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대체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노골적 뻔뻔함’은 아니었을까? 이래저래 피곤한 200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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