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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한 반격을 시작하자!

이현 ㅣ 자운고

1. 교육불평등이란 무엇인가?
최근의 교육 현상을 분석하면서 ‘교육격차’, ‘교육불평등’, ‘교육양극화’ 등의 개념이 널리 쓰이고 있다. 하지만 세 용어의 정의와 용법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이 없이 혼란스럽게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세 용어의 차이에 대한 개념적 규정이 필요하다.
‘교육격차’라는 개념은 주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학업 성취에 대한 차이를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학생들 간의 학업 성취의 차이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며 학교 교육이 시작된 이래 항상적으로 존재해 왔다. 교육격차라는 개념은 아직 그것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나 그것이 초래할 결과를 수반하지 않는 개념의 성격이 강하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판단 없이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학업성취의 차이를 교육격차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학업 성취의 차이가 학생들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교육격차’의 문제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의 차이를 좁히기 위한 교육학적- 교수·학습 방법의 개선- 문제, 예를 들어 학습 부진아 지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의 문제로 제한될 것이다. 또한 학교에서 제공하는 교육의 질의 차이가 학생들의 학업성취의 차이를 초래한다면 어떻게 균등한 질의 교육을 학교에서 제공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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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불평등’이라는 용어는 현상적인 ‘교육격차’가 학생의 내적인 원인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 때문에 발생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교육격차가 학생의 사회적 삶에서 불평등을 초래할 때 사용될 수 있다. 즉 ‘교육불평등’이라는 개념은 교육격차가 학생의 노력이나 능력이라는 개인적· 생물학적인 원인을 넘어 학교 교육의 질적인 차별성 등에 기인하는 제도적 원인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라는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주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며 학생들의 학업 성취의 차이가 학생들이 사회적 삶을 사는데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될 때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의 학업성취의 차이가 학생의 개인 능력의 차이에 주로 기인하고 학업성취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과 커다란 연관성을 갖지 않을 때 우리는 교육격차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교육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교육양극화는 교육불평등의 일정한 양상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교육불평등 현상이 계층적으로 양극화되는 현상이다.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중간 성취의 학생의 규모는 적어지고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마찬가지로 학업 성취에 따라 학생들의 사회적 삶이 극단적인 분리될 때 교육불평등의 한 양태로서 교육양극화 개념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주류 학계에 널리 쓰이고 있는 ‘교육격차’라는 개념은 교육 내에서의 불평등의 심화를 학생 개인이나 학교 교육의 문제로 제한하려는 무의식적 경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교육격차 발생의 주요한 원인이라는 것까지는 인정한다할지라도 교육격차가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데 활용되는지, 거꾸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가 학업성취 경쟁을 강화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서 동원할 수 있는 경제적·문화적 자원의 차이가 어떻게 교육격차를 심화시키는지에 대하여 분석을 결여하기 쉽다. 즉 교육격차의 문제를 사회 구조의 문제 -특히 자본 축적 양식의 변화나 사회적 자원의 분배 방식의 변화-와 총체적 연관 속에서 구명하는 작업에 소홀한 경향성을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교육 내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한 현상을 사회적 불평등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교육불평등이라는 개념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교육불평등의 최근의 현상을 표현하는 특수한 개념으로 교육양극화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2. 교육불평등은 어떻게 발생하고 심화되고 있는가?
- 균등한 기회로서가 아닌 대물림 수단으로서의 교육-

근대사회에서 학교는 사회의 재생산과 사회적 통합에 있어서 중심적인 기제 기능한다. 기존의 지배적인 생산관계에 순응하는 노동력의 양성과 근대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근대 학교 교육의 핵심적인 목표였다. 산업혁명으로 생산에 있어서 장인적 기예의 역할이 약화되고 육체노동의 기계화가 진척됨에 따라 노동력 양성의 기능이 학교 교육으로 대폭 이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하였다. 공장적 규율의 체화와 기계를 다룰 수 있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학교 교육(주로 초·중등 교육)의 중심 내용이 되었다..(우리 사회는 이런 과정을 식민시대를 거쳐 특히 60~70년대에 압축적으로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근대사회에서 학교의 역할은 이것을 뛰어넘는다. 근대사회에서 학교는 계층이동의 가능성을 보장해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근대이전까지 지배계급이 교육과 지식을 독점을 통하여-특히 동양사회에서- 지배력을 유지하여 왔기 때문에 교육기회의 개방과 지식에의 접근 가능성은 계층 이동의 가장 유력한 통로로서 일반 대중에게 인식된다. 즉 학교는 근대사회의 평등성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학교가 존재함으로써 현존하는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 문제로 환원된다. 개인 간의 불평등한 사회적 삶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탓이다. 학교는 “너에게 모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너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에 너는 실패한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피지배자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평등성의 공간으로 학교의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외화되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정당화 기제로서 학교의 이미지는 계속 감추어진다.

학교가 학업성취의 결과에 따라 불평등하게 위계화된 노동 분업 구조에 학생들을 배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할지라도 학업성취의 차이가 오로지 학생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에 의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활발한 계층 이동의 통로로서 역할을 한다면 학교 교육은 제한적이나마 긍정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때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능동적으로 생산하기보다는 구조적인 사회적 불평등의 유지에 교육이 수동적으로 복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교육격차가 학생의 내적 요인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해 주로 기인하고 이렇게 발생한 교육격차 사회적 삶에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한다면 이제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의 수동적 복무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을 강화하는 능동적인 요인이 되며, 더욱이 사회적 불평등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하였음을 의미한다.

교육격차를 발생시키는 외적 요인은 크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교육의 질의 차별성과 사교육 접근성에서의 차별성 및 가정 내에서의 부모의 역할에서의 차이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럽의 일부국가에서는-특히 영국의 경우- 근대 공교육 체계에 중세의 계급적 잔재가 강하게 반영되어 공교육 자체가 차별화·트랙화되었으며 이에 따라 계급·계층별로 공교육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 차별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식민시대와 6·25 전쟁을 겪은 남한 사회에서는 구지배계급이 급속히 해체되고 국가권력의 주도 아래 급격한 공교육 팽창 정책을 펼친 결과 남한 사회의 학교는 매우 높은 수준의 균질화를 이루게 되었다.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은 균질화의 경향성을 더욱 강화하였다. 따라서 공교육의 질적 차별화에 따른 교육 불평등 현상은 남한 사회에서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특목고, 자사고 등이 입시 명문고로 부각하면서 공교육에서의 차별화가 강화되고 있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미 특목고는 부모가 상위직 직업을 가진 가정의 학생들에 의하여 점령되어 있다.(이들의 비중은 하위층 8,5배, 중위층의 4배 정도이며, 전체적으로 72%가 넘는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특목고는 모든 계층을 위한 보편 교육기관이기보다는 상류층 자녀들을 위한 특수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앞에 글에서 보았듯이 특목고 출신의 학생들의 상위 대학 진학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특목고는 상류층 자녀를 위한 전문 입시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교육불평등을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사교육의 접근성에 대한 차별성이다. 학생에 대한 평가권을 대학이나 국가가 입시라는 형태로 장악한 남한 사회에서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사교육은 나날이 팽창하고 있다. 사교육의 전체적인 규모가 급속하게 확대되는 것은 물론 사교육비 지출의 계층간 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하위 80%^계층의 사교육비 지출은 정체 상태에 있는 반면, 상위 20% 계층의 사교육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 사교육비 지출은 입시를 눈앞에 둔 고등학교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이전부터 입시 사교육비 지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즉 사교육 투자의 장기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따라서 중하위 계층은 도저히 상류층의 사교육 투자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경쟁의 양상이 치열해지고 장기화되면 될 수록 결국 밑천이 든든한 쪽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최근의 사교육의 과열화 양상 - 영어 사교육비만 13조원에 달한다고 한다.-은 받고 되치는 베팅의 상호상승 과정에서 결국은 끝까지 베팅할 수 있는 자금동원력이 풍부한 사람이 마지막 승자가 되는 노름의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교육비의 누적적 투자 결과 학교 급별이 올라갈수록 학업 성취의 계층별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진다.(유방란, 앞의 책 89쪽) 부모의 사교육비 지출 능력에 따라 자녀의 학업성취가 결정되는 곳이 바로 우리 사회이다.

최근에는 부모의 가정에서의 자녀에 지도 능력도 자녀의 학업 성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부모의 자녀 지도 능력은 대학 입시 제도와 사교육 시장에 대한 정보력과 자녀의 시간을 관리해줄 수 있는 매니지먼트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 특히 정보수집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상류층 학부모들은 정보가 집중되어 있는 도시의 특정 지역으로 몰려들고(서울 강남, 대구 수성구, 대전 둔산지구 등), 자녀의 모든 생활관리에 역량을 집중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 조건은 우리 사회의 독특한 입시제도와 강력한 학벌 사회의 존재이다. 학교에서의 평가 결과의 반영을 최소화하고 전국적 서열화를 위한 국가 단위의 고사를 중시하고, 고급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유리한 대학별 고사를(또는 각종 영어인증시험, 올림피아드 등 경시대회 입상 성적, 최근에는 SAT까지) 끊임없이 강화하려는 대학들의 노력들이 맞물려 형성된 입시제도가 계층별 교육격차를 확대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들어 상위권 대학들은 상류계층 학생들에게 유리한 입시제도의 확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보수정치인과 보수언론들이 이에 열성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또한 이런 입시 경쟁의 기저에는 극단적인 대학서열화와 학벌 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위의 표에서 회사에 취업한 동일 학력의 사람들이 출신 대학에 따라 임금이 차별화되고 있는 현상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오히려 임금보다 승진이나 전직 등에 있어서 차별은 더욱 심할 것이다. 이렇듯 심각한 학벌사회는 입시 경쟁 압력을 강화하고 입시경쟁에 나타난 교육격차를 사회적 불평등에 과잉 반영되게 함으로써 교육불평등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형성한다.(위의 표에서 눈에 띠는 것은 최상위 대학과 바로 차순위 대학간의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일류대학병은 명예욕을 추구하는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회적 삶의 현실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3. 왜 최근에 교육불평등 현상이 급격하게 심화되고 있는가?
- 교육불평등과 신자유주의-
극심한 학벌 사회, 사교육을 부추기는 대학입시 제도 이에 따른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현상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 입시경쟁의 양상이 지나치게 과열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계층간의 교육격차의 확대, 교육을 통한 부모의 사회적 지위의 대물림 현상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우리 사회 교육의 고질적인 구조적 병폐만으로는 최근의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의 교육불평등 현상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체제로의 전환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남한 자본주의는 급속히 성장하였으며, 학교도 자본주의의 성장 속도에 걸맞게 양적으로 팽창하였다. 중·고등학교 졸업자들의 대부분은 육체노동자나 단순 사무직 노동자로 배치되었으며, 대학 졸업자들은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과 관련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자기가 얻은 학력에 따라 그에 걸맞은 최소한의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시기였다. 물론 그 내부에서 좀 더 좋은 직장을 얻고 출세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학벌 경쟁은 존재하였지만 그것은 생존경쟁의 성격보다는 추가적인 지위 상승을 위한 경쟁의 성격이 강하였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자본주의의 압축성장으로 새롭게 생겨나는 직업에 진출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대부분 부모의 직업보다 더 좋은 경우가 많았다.
90년대 들어 남한 자본주의의 고도성장은 막을 내리고 90년대 후반 지배세력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하면서 사회적 불평등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반면에 과잉교육열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치적 이유로 대학은 양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과 학교에서 양성하는 노동력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발생한다.
더욱이 신자유주의 정책은 시장과 경쟁 논리를 앞세워 승자 독식의 구조를 고착화시키고(따라서 계층·계급간의 불평등을 확대 강화하고) 노동계급 내에서도 분할을 촉진하다.(취업자와 실업자로의 분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할, 연봉-성과 시스템에 의한 내부 분할 등) 극심한 불평등한 사회적 분업 구조 속에서의 배치가 학력과 학벌에 의해 중심적으로 좌우되는 상황에서 이제 학력과 학벌 경쟁은 추가적 지위 상승 경쟁이 아니라 생존 경쟁으로 격화된다. 우선 실업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하고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얻기 위하여 정규직의 직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배출 인력이 과잉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학졸업장은 정규직은 고사하고 취업 가능성마저 보장해주지 못한다. 대학졸업이라는 학력은 노동시장의 진입에 거의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하며, 특정 대학의 졸업장(학벌)과 특정 학과의 졸업장만이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 줄 수 있다.
이제 특정 대학과 특정 학과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은 생존경쟁 수준으로 격화되고, 단순히 아이들의 경쟁이 아니라 부모의 경쟁으로 확대되며, 부분적인 역량을 투여하는 경쟁이 아니라 삶의 대부분 자원을 올인하는 전면전으로 상승한다. 경쟁이 격화되면 될 수록 아이들의 자생적인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부모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규모가 경쟁의 승패를 좌우한다. 특히 최근의 상류층 학부모들은 단순한 경제자본뿐만 아니라 문화자본 및 풍부한 정보력까지 지니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70~80년대 학력과 학벌을 매개로 계층 상승을 맛본 사람들이고 학벌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막강한 자원동원뿐만 아니라, 사회의 상층 계급으로 여론형성과 정책결정과정에 능동적으로 개입하면서 그들에게 유리한 입시 제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경쟁력이 풍부한 사람들에게는 경쟁이 조기화·전면화될수록 경쟁에서의 승리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학입시에서뿐만 아니라 입시경쟁을 조기화시킴으로써 그들만의 특권화된 트랙을 만들고 싶어 한다. 소비자의 학교 선택권이라는 미명 아래 고교 평준화 해체를 선동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교육은 민중에게는-학부모이든, 학생이든-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가진 자들의 잔치를 위해 들러리를 설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민중의 고혈을 요구하고 있다.

4. 교육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교육불평등의 심화 현상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시적인 현실이다. 또한 민중의 사교육비로 인한 고통은 정치인이면 누구나 해결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최대의 관심사이다. 교육격차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해법은 방과후 학교의 활성화와 EBS를 통한 수능 강좌의 확대이다. 방과후 학교는 한마디로 가난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무료로 보충수업을 제공하고 일반 학생들에게는 보충수업의 선택권을 확대하여 교육격차를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EBS 수능강좌 또한 무료 또는 저렴한 가격에 입시 사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 교육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공론식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가난한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들을 수 없어 교육격차가 발생한 것이 아니며, 수능 방송의 효과는 검증된 것이 없다. 설사 이런 방식이 일정한 효과가 있다할지라도 상류계층은 이런 효과를 상쇄하고 남을 새로운 투자를 감행할 것이다. 입시교육의 공급체계를 부분적으로 바꾸는 것으로는 사교육해소나 교육격차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 알려주는 현실이다.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본질은 일정한 기준에서 도달하기 위한 절대적 경쟁이 아니라 남보다 앞서야 하는 상대적 경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에서의 입시교육의 공급 체계를 어떻게 바꾸든 치열한 경쟁은 계속되고 결국 경쟁력의 차이 따른 교육격차는 계속 확대될 것이다.
보수 세력들은 한 술 더 떠서 마치 고교 평준화 정책과 대학입시에 대한 정부의 형식적인 간섭이 교육격차를 발생하는 것처럼 떠들고 있다. 평준화를 해체하고 고등학교 입시를 부활시키고,  대학에게 입시의 자율성을 무제한적으로 보장하면-삼불 정책 폐지- 입시경쟁이 완화되고 교육격차가 해소될 것처럼 주장한다. 그들은 경쟁의 자유를 확대할수록 평등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황당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 서울대 총장 출신이라는 자가 본고사가 없어서 서울대에서 인재를 양성할 수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며 그런 자가 개혁적 인물로 인식되는 것이 우리의 정치문화이다.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소모적이고 무모한 경쟁 구조를 통제하고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입시교육을 위한 공급 체계를 바꾸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입시경쟁을 통제하고 제한하여 입시교육의 수요 자체를 없애나가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는 입시문제 해결을 위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평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교육격차와 교육불평등이 대학입시를 고리로 발생하고 있다면 대학입시를 과감하게 뜯어 고쳐야 한다, 대학평준화를 통하여 기존이 입시제도를 폐지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평등한 대학교육의 기회를 개방해야 한다
둘째로는 교육과정에서 발생한 교육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으로 연결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력 차별과 학벌사회를 타파해야 하며, 사회적인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이는 교육문제를 넘어서는 전사회적인 변혁이 수반되어야 근본적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이지만, 대학평준화를 통한 학벌사회 타파, 학력차별을 금지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은 현재의 조건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또한 사회적 불평등도 완전한 해소는 당장 어렵겠지만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여(비정규직 차별철폐, 직종간 임금 격차 완화, 고용확대를 통한 실업문제 해결 등) 사소한 학업 성취의 차이가 사회적 불평등에 과잉 반영되는 것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셋째로 교육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 또는 타파하기 위한 제도 개혁을 전제로 민중을 위한 교육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력 신장만을 위한 교육복지가 아니라 민중의 자녀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와주고 민중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복지 정책과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이 시급하다. 하지만 이런 복지 정책이 교육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구조적 변혁을 향한 노력을 수반하지 않을 때 복지정책은 결국 교육불평등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은폐하거나 무마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존재하며 현실의 지배 체제를 정당화시키는데 활용되기 쉽다.  

대다수의 민중-노동자들은 불평등한 교육 현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 상류층에게 교육은 성공가능성이 높은 투자이지만 민중-노동자에게는 소모한 출혈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경쟁게임의 현실로부터 빠져 나오기 힘든 것이 민중-노동자의 현실이다. 구체적인 전망과 대안이 부재한 현실에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무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학부모로서의 민중-노동자가 교육 현실에 반기를 들기 쉽지 않다. 조직되지 않고,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민중-노동자는 무력하다. 따라서 교육불평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을 매일 대면해야 하는 교육노동자들이 우선 깃발을 들어야 한다. 민중-노동자에게 새로운 교육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민중-노동자 스스로가 교육불평등 타파를 위한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조직화사업도 전개해야 한다. 초기에는 교육노동자의 역할이 크겠지만 민중-노동자의 주체형성이 일정한 궤도에 오르면 스스로의 힘으로 세력을 결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교육노동자와 민중-노동자의 굳건한 연대의 구축이야말로 교육불평등 타파를 위한 초석이다.
대선 국면이 무르익기도 전에 대학입시제도-사교육비문제 등이 뜨거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연말의 대선 나아가 내년 총선까지 교육문제가 핵심적인 사회적 이슈로 지속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가올 대선과 총선 국면에서는 예전의 총선이나 대선 때처럼 선심성 교육공약이 남발되어 서로를 구별하기 힘든 양상이 아니라 서로의 계급적 이해가 충돌하는 양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득권을 확대하고 교육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보수세력, 민중의 교육권을 확대하고 교육불평등을 타파하려는 진보세력 그리고 이 사이에서 동요하는 자유주의 세력 간의 일대 격돌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문제를 둘러싼 계급적 대립 전선을 확대 강화해야 하는 긴급한 임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또한 전선 형성의 과정이 정세적 변화에 의한 일회성의 사업으로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교육노동자와 민중-노동자의 굳건한 연대가 전선의 형성과 확대의 중심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선거 국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긴급하게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무분별하게 연대를 확대하는 것은 결국은 아무런 정치적 성과물이나 조직적 성과물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 그간의 우리의 경험이다. 교육노동자와 민중-노동자의 연대를 바탕으로 교육문제를 둘러싼 대중적인 정치 전선을 확대 강화함으로써 교육불평등 타파를 위한 반격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 자세한 표와 그림은 첨부파일의 원고를 보시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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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 해외동향_미국 교육기업들 보충교육서비스 시장으로 진출하다 file 진보교육 2006.07.04 1936
280 논단_무상교육운동은 안녕하신가? file 진보교육 2006.07.04 2227
279 연구노트_중등 부실 비리사학의 국공립화 추진방안 file 진보교육 2006.07.04 1959
278 기획_교육양극화대책? 교육부는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건데 file 진보교육 2006.07.04 1887
277 특집_한미FTA 비밀과 거짓말 file 진보교육 2006.07.04 1425
276 특집_FTA와 한국교육의 파탄 file 진보교육 2006.07.04 1567
275 특집_한미FTA, 그 죽음의 협상판 속에 희망은 없다 file 진보교육 2006.07.04 1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