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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특집1_ 표와 그래프로 본 교육불평등

2007.04.11 16:35

진보교육 조회 수:1974

표와 그래프로 본 교육불평등

송경원ㅣ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요즘은 이런 형태의 글이 꽤 된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글은 현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는 하나, 뜻하지 않은 형태로 왜곡되기도 한다. 예컨대, 서울대에 특목고생이 많이 들어간다는 모습을 보여주면, 그것은 ‘이 얼마나 불평등한가. 교육평등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아, 서울대에 특목고생이 많이 들어가는구나. 그럼, 일단 특목고부터 들어가고 보자”라는 반응도 이끌어낸다. 물론 이런 반응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시대의 대세가 되었고, 이에 대해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상대적으로 쉬운 움직임이 보다 광범위하기에 더욱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작업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려는 다양한 노력들이 옳다면, 그리고 비록 아직은 세상을 바꿀 정도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면, 우리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바꾸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불평등의 현실을 표와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다만, 여기에 나와있는 표와 그림들이 식상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새로운 것보다는 그동안 발표되었던 표와 그림들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에 처음 본 것이라 하더라도 이미 익숙한 내용을 다른 형태로 표현한 표와 그림일 수 있으므로, 식상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러니 혹 이미 봐왔던 것이라 하더라도 양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내용의 글쓰기가 마지막이 되기를 개인적으로 희망하지만, 여의치 않아 더욱 미안할 따름이다(솔직히 이젠 저들의 “역차별, 문제있다”라는 글과 난리부르스를 보고 싶다).

1. 서울대 입학생 현황으로 보면......

<표 1> 2001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아버지 직업분포와 일반적인 직업분포 비교(단위: %)

<표 1>은 여러 번 봐왔던 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표가 보여주는 현실이 바뀐 것은 아니다. 즉, 2001년의 모습이긴 하나 지금도 유효하다. 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서울대에 들어가는 학생들을 보니, 관리직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둔 아이가 많더라 이다. 관리직․전문직은 전체 직업 중에서 18.7%인데 반해, 그런 아버지를 둔 서울대 신입생은 52.8%로 3배 정도 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역으로 농업이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아버지는 46.2%인데 반해, 서울대 신입생 중에서는 15.9%로 1/3의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아빠의 직업과 SKY 입학이 정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위 <표 1>은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2004년 1월에 발표했던 <누가 서울대에 오는가>라는 연구보고서에서도 재차 확인되었다. 1970년 이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의 학생부를 가지고 살펴보니, 고학력 고소득 좋은 직업의 부모를 가진 학생들의 입학 가능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서울대 입학의 계급․계층적 불평등을 서울대 스스로 밝힌 것이다. 물론 이 보고서의 말미에서 계급․계층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고교평준화 정책을 지목하여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긴 하였다(그 논란은 연구진이 주어진 결과를 오독하여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해석의 잘잘못을 떠나 이 연구보고서의 자료가 함축하는 바는 크다. 지금은 좋은 동네․괜찮은 직업․잘 사는 부모일수록 아이가 서울대에 갈 확률이 높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 쯤 되면, 뭔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육체제에서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진출의 관문이다. 그리고 사회진출 시에는 첫 직업이 매우 중요하다. 첫 직업에 따라 늙어 죽을 때까지의 인생 행로가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대학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대학서열체제가 구축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서열 상위에 있는 SKY에 누가 들어가느냐가 교육평등/불평등의 척도가 된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평등한 모습일까? 만약 사회가 상류 : 중류 : 하류의 비율이 1 : 3 : 1이라면, SKY 학생의 비율은 어떠해야지만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1 : 3 : 1, 4 : 1 : 0, 0 : 3 : 2, 0 : 2 : 3 중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이외에 다른 비율이 답일까? 물론 이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사회가 상류, 중류, 하류로 나눠져 있고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고 말하면, 우문현답에 속한다. 허나 그 답은 한국의 교육체제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한다. 이처럼 전제의 오류가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답을 해야 한다면 과연 답을 뭘까? 어떤 모습이 평등한 걸까? 정답은 필자도 모른다. 하지만 답을 구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표 2> 서울대 2005․2006년 신입생의 출신학교 유형별 비교(단위: %)

위 <표 2>는 서울대 2005․2006년 신입생을 출신학교 유형별로 비교해본 것이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특목고․자사고와 강남 소재 고교 학생들이 서울대에 많이 간다. 2005년의 경우 특목고․자사고의 졸업생은 전체 고교졸업생의 4.4%인데 반해, 서울대 신입생 중에서는 16.6%에 달한다. 정확하게 4배이다. 2006년에도 비슷하다. 전체 고교졸업생의 4.6%인 특목고․자가고 졸업생이 서울대 신입생의 18.8%에 달해 역시 4배 정도 된다. 강남소재 고등학생 졸업생은 2005년에는 3.1배(12.2 ÷ 4.0), 2006년에도 약 3.1배(11.7 ÷ 3.8)이다. 그러니까 서울대에는 특목고․자사고와 강남 소재 고교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다.
물론 특정 학교유형이 서울대에 많이 갈 수 있다. 공부 잘하면 서울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공부 잘해서 서울대에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는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좋은 학생이 우연히 강남이나 특목고․자사고에 많은 것일까. 다른 변수는 없는 것일까.
불행히도 다른 변수가 없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서울대에 많이 들어가는 강남 소재 고교의 경우, ‘강남’에 있는 학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로 인정받고 있는 ‘강남’ 말이다. 이러한 사정은 특목고․자사고에서도 발견된다. 아래 <표 3>은 6개 자사고의 학부모 월평균 소득 현황인데, 6개 자사고의 학부모 월평균 소득은 537만원으로 2005년 1사분기 도시근로자의 월평균 가계소득 329만원보다 꽤 많다. 자사고란 중상류층 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의미가 된다.

<표 3> 2005년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학부모 월평균 소득 현황(단위: 명, %, 만원)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좋은 동네 살거나 돈이 좀 있는 집의 아이들이 특목고나 자사고에 가고, 나중에 서울대에 들어간다. 물론 이들이 서울대에 가는 것은 입시성적이 좋아서이다. 하지만 입시성적 그 이면에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없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을까.

2. 학교체제에서는 고등학교부터 갈리는데......

[그림 1] 부(모)의 교육수준별 일반계-실업계 고교 진학분포


[그림 2] 가족의 소득계층별 일반계-실업계 고교 진학분포


[그림 3] 부(모)의 직업범주별 일반계-실업계 고교 진학분포


2001년 11월 10일 한국노동연구원의 방하남․김기헌은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노동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3회 한국노동패널 학술대회에서 “기회와 불평등: 고등교육 기회에 있어서 사회계층간 불평등의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논문 내용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그래프 9개를 제시했다. 위의 [그림 1]부터 [그림 3]은 첫 부분이다.
[그림 1]은 부모의 학력이 중졸이하, 고졸, 전문대졸 이상 등 세 가지일 경우에 자녀가 일반계고교(인문고)와 실업계고교(실업고)에 진학하는 비율을 말한다.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중졸 이하 부모의 자녀 중 53%만 일반계 고교에 가지만, 전문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는 90%가 간다. 거꾸로 중졸 이하 부모를 둔 자녀의 47%가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반면, 전문대졸 이상 부모의 자녀는 10%만 진학한다. 부모가 고학력일수록 아이가 일반계 고교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림 2]와 [그림 3]은 각각 가족의 소득과 부모의 직업에 따른 일반계 고교 진학과 실업계 고교 진학을 보여준다. 간단하다. 가족의 소득이 많고 부모의 직업이 좋을수록 아이는 일반계 고교에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그림 1]부터 [그림 3]까지를 정리하면, 고학력 고소득 관리전문직일수록 아이는 실업계보다 인문계 고교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단적으로 인문계 고교와 실업계 고교에 가서 아이들을 보면 된다. 당연히 교사들은 몸으로 느낀지 오래다.
그런데 과연 고등학교부터 나타나는 모습일까. 중학교까지는 잘 살든 못 살든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아이가 공부 잘할까. 그래서 중학교까지는 두드러지지 않는데, 고등학교 갈리는 순간부터 부모의 배경에 따른 아이의 차이가 눈에 확 들어올까. 그렇지 않다. 고등학교 진학 단계에서 부모의 배경에 따른 차이가 눈에 띄는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체제가 고등학교에서부터 갈리기 때문이다. 즉, 중학교까지는 함께 공부하다가 고등학교부터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눠지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쉽게 발견되는 것이다.
당연히 고등학교 이전 단계에서는 다른 형태를 보인다. 첫째, 반에서 누가 일등 하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어렵게 살면서 일등 하는 아이를 찾아볼 수 없다. 둘째, 정부가 열심히 추진하고 있는 수준별 교육과정에서 볼 수 있다. 정규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준별 학습이든 보충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수준별 학습이든 간에 관계없이 학교에서는 말만 ‘수준별 교육과정’이지 사실은 우열반을 편성하여 가르치고 있는데, 우반과 열반에 있는 아이들을 보면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불평등이 이미 어릴 때부터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교육체제는 그것을 고치기 보다는 여러 가지 형태로 확인시켜 줄 따름이다(참 좋은 나라다).
물론 예외는 존재한다. <도전골든벨>에서 아주 가끔씩 그런 예외를 보게 된다. 하지만 예외를 가지고 전체적인 경향이 틀렸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림 4] 부(모)의 교육수준별 대학수능 점수서열 분포


[그림 5] 가족의 소득계층별 대학수능 점수서열 분포


[그림 6] 부(모)의 직업범주별 대학수능 점수서열분포


[그림 4]부터 [그림 6]은 부모의 학력, 소득, 직업에 따른 아이의 수능 점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모가 고학력이고 돈이 많고 괜찮은 직업일수록 아이는 수능을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래 [그림 7]부터 [그림 9]처럼 그런 아이는 대학에 갈 확률이 높다.

[그림 7]  부(모)의 교육수준별 미진학, 전문대진학, 대학진학 비율


[그림 8] 가족의 소득계층별 미진학, 전문대진학, 대학진학 비율


[그림 9] 부(모)의 직업지위별 미진학, 전문대진학, 대학진학 비율


이러한 경향은 교육계의 논문에서도 발견된다. 2005년 8월 7일 고려대 김경근 교수는 2005 전국교육연구소 네트워크 토론회에서 “한국사회의 교육격차”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그해 12월의 학술지 <교육사회학연구> 제15권 제3호에 게재하였는데, 이 논문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래의 표이다.

<표 4>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정도와 수학능력시험 점수 평균 차이

사교육비 지출의 차이가 수능점수 차이의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음. 사교육비 지출과 수능점수 사이에는 상관관계는 있어도 인과관계는 없기 때문임. 정확하게는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사교육비를 매개로 수능점수에 영향을 미침. 그러니까 사교육비는 매개변인임. 한편,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 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문화자본임.

뒤이어 2006년 12월 <교육사회학연구> 제16권 제4호에 변수용 미네소타대의 박사과정 대학원생과 함께 “한국사회에서의 상급학교 진학 선택 결정요인”이라는 후속연구 형태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결과는 이전의 연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부모의 학력과 돈이 많을수록, 학생의 이전 학업성취도(성적)와 포부수준(꿈)이 높을수록, 고등학교는 실업계보다 일반계로 가고, 대학은 보다 좋은 곳으로 갈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고등학교가 1차 거름 단계, 대학이 2차 거름 단계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제부터라도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아이를 다그치거나 혼내지 말기 바란다. 아이의 성적은 이미 부모와 아이의 쌍방 과실이다. 아니 부모 쪽 과실이 더 많을 수 있다.

3. 사교육의 차이

신자유주의의 시대, 양극화는 점점 심해진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는 계속해서 벌어진다. 교육에 있어서는 가정이 지출하는 사교육비에서 양극화를 발견할 수 있다. 아래의 <표 5>와 그림은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의 2006년 논문에서 나온 것으로, 가계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했을 때 월평균 사교육비는 2001년 7.6배(1분위: 7만 4천원, 5분위: 56만 8천원)에서 2004년 8.6배(1분위: 9만 8천원, 5분위: 83만 7천원)로 커진 것을 볼 수 있다.

<표 5> 2001~2004년 소득 5분위별 월평균 사교육비 현황

물론 <표 5>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간의 데이터인 까닭에, 사교육비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는데 다소 미흡할 수 있다. 따라서 통계청의 자료를 활용하여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살펴보면, [그림 10]과 같다.

[그림 10] 1990~2006년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 5분위별 월평균 보충교육비 현황 비교


[그림 10]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5분위별 보충교육비의 격차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통계청이 조사하는 보충교육비는 엄밀한 의미의 사교육비는 아니다. 하지만 통계청의 조사 항목 중에서 사교육비와 가장 가까운 항목이 보충교육비이다. 따라서 그러려니 하고 그냥 보자. 볼 때에도 꼼꼼히 살펴보지 말고, 선들의 흐름만 대충 보자. 어떤가. 1990년에는 다섯 개의 선이 비슷한 곳에 함께 있는데, 점차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2000년대로 넘어오면 다섯 개의 선은 각기 따로 논다. 특히, 제일 위에 놓인 선(5분위: 상위 20%)은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면서 널뛰고 있다. 가장 아래의 선(1분위: 하위 20%)는 이미 관심 밖이다.

사교육비의 차이는 사교육 형태의 차이를 낳는다. 중상류층 이상은 돈 걱정이 없으니 하고 싶은 사교육을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으나, 세상살이 팍팍한 가정은 돈에 사교육을 맞춰야 한다. 정부의 “영어만 장땡” 정책으로 광풍으로까지 불리는 가장 대표적인 사교육인 ‘영어 사교육’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은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진다.

[그림 11] 영어 사교육 다이아몬드

        
4. 결론

이 쯤 되면 무슨 말로 결론을 맺을지 눈에 보이지 않을까 한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필자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아더 콤즈의 󰡔교육신화󰡕를 많이 읽었다. 여기서 ‘신화’라 함은 잘못 알려진 상식을 말한다. 즉, 콤즈는 󰡔교육신화󰡕에서 교육에 대한 일반의 상식 중 잘못된 것을 모아 무엇이 왜 틀렸는지 쉽게 풀어썼던 것이다.
아마 콤즈가 한국판 책을 작성한다면, “개천에서 용 난다”, “학교에서 열심히 하면 일등하고 좋은 대학 갈 수 있다”, “학교는 공정하다”를 첫머리에 쓰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서 요즘 공부 잘하는 아이의 조건 또는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제시하리라 여겨진다.

대졸 이상의 엄마 아빠, 전문직 이상 아빠, 돈 많이 버는 아빠,
영어되는 엄마, 집에 있는 엄마, 입시정보에 빠른 엄마, 정보망과 인맥이 있는 엄마,
무턱대고 비싼 사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사교육시장에서 현명한 소비를 하는 엄마,
좋은 동네, 다른 건 몰라도 공부와 대학입시에 관해서만은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정,
독립적이긴 하나 반항적이지 않은 아이, 자신감있는 아이,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
전문직 이상을 꿈으로 하는 아이(교사, 간호사, 경찰, 어른 등 평범한 꿈이 아니라),        
간혹 이기적인 아이, 함께 나누는 것보다 경쟁에서의 승리를 더 좋아하는 아이,
TV와 컴퓨터 게임을 자제할 줄 아는 아이, 오래 책상에 앉아있는 아이,
면학분위기가 괜찮은 학교, 오래 공부시키는 학교,
교사 말을 잘 듣거나 그런 것처럼 행동하는 아이

여기서 가장 최적의 조합은 ‘돈 많이 버는 아빠와 영어되는 엄마’ 또는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다. 이 때 엄마의 정보력이란 입시 정보 뿐만 아니라 사교육 정보까지 포괄한다. 즉, 아이에게 적합한 맞춤형 사교육을 엄마가 물어다주느냐 줄 수 없느냐의 의미이다.
그리고 위의 조건에는 ‘머리 똑똑한 아이’나 ‘IQ 높은 아이’는 들어가지 않는다. 이 두 가지도 지금은 대표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똑똑한데 왜 공부를 못하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은 미리미리 버리는 것이 좋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필자는 돈 많이 버는 아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아내가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니 설상가상이다. 이럴 땐 열심히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IQ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언급하고 글을 맺고자 한다. IQ는 변한다. 언젠가 측정했더니 120이 나왔다고 평생 120인 것은 아니다. IQ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IQ를 만들었던 프랑스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빰을 때릴지 모른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좋아지고, 그냥 두면 둘수록 나빠진다. IQ도 마찬가지이다.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기는 하나, 측정할 때마다 IQ 점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는 머리는 똑똑한데 노력하지 않아요”라는 말은 하면 안된다. 이 말을 풀면 “우리 아이가 한번은 IQ 테스트를 했더니 130이 나왔더군요. 일반인 평균 100보다 30이 높더군요. 그런데 머리를 안 써요. 그래서 자꾸 멍청이가 되어 간답니다”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자기 아이를 욕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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