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5월 3일 교육부의 교원평가 공청회가 무산되었다. 무산까지 과정에서 교원3단체의 공청회 불참선언 공동기자회견이 있었고, 공청회 장 내 전교조 조합원들의 피켓시위가 있었다. 그리고 하루 앞서 교육부는 교원평가제 시행을 기정사실화하는 발표를 하였다. 교육부 관료들은 공교육 부실의 책임을 교사들에게 떠넘기려 하느냐는 조합원들의 답변요구를 묵살한 채 공청회장을 도망치듯 빠져나간 뒤 예정된 시작시간을 약 1시간 넘긴 후 나타나 무산을 선언하였다. 공청회 무산은 여러 집단의 의지와 계산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공청회 무산이 교원평가 저지투쟁 국면에서 갖는 의의는 첫째, 전교조 내부에서 교원평가 저지투쟁의 흐름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 둘째, 대외적으로 전교조의 교원평가 저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는 점. 셋째, 여론 지형이 공청회 전의 일방적 수세에서 무산 이후 오히려 반전의 기미를 띠기 시작했다는 점. 그러나 공청회 무산을 놓고 당일부터 지금까지 전교조 상층부를 중심으로 “조직기강을 해이하게 했으므로 징계해야 한다”는 발언부터 “공청회를 무산시켜서 정부가 강경으로 돌변했다”는 정세인식 등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될 주장들이 있었고 이는 상반기 교원평가 대응투쟁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 해서 이 참에 자료를 통해 공청회 무산이 전교조의 교원평가 대응 흐름에서 중대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공청회 무산으로 강경 기류로 돌변”했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1. 5.3 공청회 전

3월 말로 예정되어 있던 교육부의 최종안발표가 두 차례나 연기되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시범실시 규모를 16개교→48개교→66개교로 발표할 때마다 늘려 나갔다. 4월 6일 교육부와 교원단체와의 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6월 시범실시를 시작하며, ‘제도화 전까지는 인사자료로 활용하지는 않을 방침’임을 밝힘으로써, 교원평가 도입과 더불어 제도화 순간부터 구조조정과 연결되리란 사실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다.
공청회 무산 전인 4월 말까지 전교조 본부는 첫째, 시범실시 저지가 아닌 지연과 교총과의 ‘공조’를 통한 대응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교원평가를 저지한다는 분명한 입장과 전망은 서있지 않아 보였다. 이 시기에 본부는 교육부와의 협의를 통해 5월 초 교육부가 주최하고 교원3단체와 학부모 단체가 참여하는 교원평가 공청회 개최에 합의하였다. 따라서 이때까지 본부는 공청회를 협상을 통해 “따낸 성과물”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공청회에 협조적이었다. 본부의 당시 계획은 공청회 후 교육부 방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곧바로 참교육학부모회,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좋은교사모임, 한교조, 교총 등이 참여하여 전교조의 ‘대안’인 학교종합평가제를 주제로 한 공청회(5월6일)를 준비하고 있었다. 요컨대, 공청회 전까지 전교조 본부의 대내외적 대응기조는 ‘분명한 저지’가 아닌 ‘대안 있는 반대’였다.
이 때까지 전교조 내부에서는 교원평가 대응 기조를 놓고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본부는 분명한 반대 입장이라면서도 실내용에 있어서는 42차 대대의 결정사항임을 근거로 교원평가 대응을 학교혁신 투쟁의 하위 범주로 설정하려 하였다. 4월초에는 교선지 한 장과 전교조 대안을 중심으로 한 조합원 대상의 설문조사가 진행되었을 뿐이다. 이런 탓에 전교조 홈페이지 ‘조합원 목소리’란에는 본부의 입장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하는 글이 올라왔고 현장은 본부가 과연 교원평가 저지투쟁을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직적 움직임은 별달리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4월까지 교선지 1장이 분회단위에 배포되었을 뿐이며, 4월20일에는 ‘졸속저지 반대 분회장 선언’이 ‘졸속’으로 조직되었다. 상대적으로 강고해 보이는 교총과 전교조 집행부가 대비되면서 98년 정년단축 때의 ‘악몽’을 떠올리는 조합원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렇게 불안감과 무력감이 뒤엉킨 조합원들을 자극한 사건은 4월 말 한겨레신문 기사였다. 전교조는 자기평가제 수용의 형태로 교원평가를 받아들이는 입장이란 내용의 기사가 실리자 ‘조합원 목소리’는 차츰 뜨거워지기 시작했다(3월부터 4월까지 ‘조합원목소리’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고 내용의 주류 역시 교원평가 투쟁이 아니었다).
한편, 반대서명도 교총과의 ‘공조’를 이유로 시작이 미뤄지고 있었고, 대안으로 내세운 학교종합평가제는 또 다른 교원평가의 형태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는 조합원들이 생겨났다. 교원평가 반대 서명(4.25~5.10)을 시작한 것도 교총이 반대서명 돌입움직임을 보이자 그제서야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완만히 교원평가 반대투쟁 전선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5월3일 공청회 무산을 기점으로, 공청회 무산 전날까지도 전교조의 교원평가 저지 흐름은 그다지 넓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었다. 6월 시범실시 돌입을 고려한다면 시범실시 저지는 물 건너간 일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공청회를 하루 앞둔 5월2일 교육부는 기자브리핑을 통해 교원평가제 실시를 기정사실화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된 내용은 4월6일 교육부와 교원단체와의 협의회 자료 내용 그대로이다. 이 시기까지 전교조는 교육부의 교원평가 시행 방침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었으며, 시기만 다소 늦추었을 뿐이고 앞서 말한 대로 시범 규모는 66개 교로 늘어났다.
이에 교원3단체는 5월3일 2시로 예정된 공청회 직전인 1시 30분 공청회장 입구 앞에서 교원평가 반대 및 공청회 불참을 선언하는 공동기자회견을 한다. 교육부가 하루 앞서 일방적인 발표를 하고 교원단체를 들러리 취급함으로서 공청회는 이미 삐거덕거리고 있었다.

2. 공청회 무산 직후부터 5. 14대의원대회 전까지

(1) 전교조 본부: “‘물리적 충돌’로 인한 공청회 무산에 따른 대국민 사과문 발표”

공청회 무산 다음날인 5월4일 저녁 본부는 “교원평가제도 공청회 사태와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 결과에 대한 전교조의 입장”이라는 제목으로 입장을 공식발표하였는데, 이는 당사자들의 항의로 사실과 다른 일부 표현이 수정된 후에 공식 발표된 것이었다. 표현이 수정되기 전 이미 본부 홈페이지에 탑재된 대변인실 명의의 문서는 “5월3일 교원평가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무산되게 된 점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로 시작하고 있다. 본부는 공청회 무산의 책임이 일부 조합원들의 ‘돌출행동’에 따른 ‘물리적 충돌’에 있었다고 본 까닭에 교원평가를 둘러싼 여론지형을 의식하여 자세를 한껏 낮춰 ‘국민여러분께 사과’까지 했다.

지난 5월 3일 교원평가제도 개선 방안 공청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무산되게 된 점에 대하여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5월 3일 공청회는 교원평가제도에 대한 교원단체와 학부모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임에도 교육부는 5월 2일 언론을 통하여 교원평가제도의 전면 실시 방침을 일방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공청회가 이미 기정사실화된 교원평가를 추진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교원 3단체는 일방적인 교원 평가 추진을 중단하고 공교육 내실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촉구하며 공청회에 불참을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예정된 공청회를 강행하려 하였고, 이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도 공청회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는 바입니다. (후략)

같은 날 오전 이미, ‘공청회 무산 경찰 수사요청, 교원평가시범실시 6월 1일부터 예정대로 추진, 2007년 교원평가 전면 실시’ 등 골자로 한 국무총리 주재의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 결과가 보도된 상태였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공청회 무산의 책임이―5월 20일 고발당한 8인이 아니라―‘교원단체’에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수사요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본부 대변인실이 당시 상황을 자의적으로 판단하였다는 사실은 5월 5일 ‘조합원 목소리’에 게재된 다음의 글을 통해 잘 나타난다.

“교육부의 경찰수사의뢰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한다”

지난 5월 3일 오후 2시 교육부는 교원평가관련 공청회를 서울 삼청동에 있는 소청심사위원회 건물 4층에서 가지려고 하다가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교육부는 그 당시 공청회 건물 안에서 평화적으로 피켓을 들고 의사표시를 하며 참석한 방청객들에게 우리 교육환경의 열악함과 교원평가에 따른 문제점을 강한 어조로 호소하였던 교사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겠다고 운운하면서 전체 교사들을 협박하고 있다.
공청회란 장소는 원래 다양한 목소리들이 다양한 방식에 의해서 표출되는 장소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공청회는 그야말로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며 피켓정도는 다반사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자신의 의사를 관계기관에 알리기 위해서는 공청회라는 장소가 매우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청회를 개최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것 정도는 다양한 의견표출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교육부는 당시의 공청회를 스스로 포기해놓고 그 책임을 정당한 의사표시를 한 교사들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는 것일까?
5월3일 공청회 시작 전 1시 30분에 이미 교원3단체가 그 건물 입구현관을 막고 수십명의 교총직원과 전교조교사들이 피켓을 든 채 시위성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미 알려진 대로 교육부의 일방적인 교원평가 추진과 공청회 강행에 대한 명백한 거부의사표시였고 교원3단체와 협의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앞으로도 공청회 및 시범실시를 강행한다면 강력히 3단체가 연대하여 투쟁하겠다 것이었다. 이 시각에 교육부 최고 관료인 윤웅섭 학교정책실장을 비롯한 교육부 관료들은 공청회장에 있었고 그 소식을 듣고 있었다.
이때 이미 교육부는 공청회 강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었고 그 의지가 꺾인 상태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교사들은 공청회가 시작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피켓을 들고 연단아래 나란히 서있었고 몇몇 교사가 청중들을 향해 우리 교육의 열악한 현실을 호소하며 교원평가를 실시하기 전에 먼저 공교육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공교육이 정상화 된 이후에도 얼마든지 교원평가에 관련해서는 교원단체가 협의할 수 있다고 호소하였다.
그때 학부모단체 소속회원의 청중이던 학교장들이든 교사들이든 어느 누구도 그 교사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고 야유도 하지 않았으면 끌어내리지도 않고 경청하며 일부참석자들은 때로는 같이 구호도 외치고 하였다. 그 교사들은 자리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에게 의견을 좀 말해보라고 하자 교육부관계자들은 잠시 구두회의를 한 후 그 자리를 빠져나가버렸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사들을 업무방해죄 운운하며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했다. 한 가지 되묻고 싶다. 교육부는 공청회라는 업무를 시작이나 했는가? 아니 공청회를 개최하려는 의사를 보이기라도 했는가? 나는 그 자리에서 그 장면들을 지켜보았지만 본부 사무처장이 이제 그만 나가자고 교사들에게 말한 것을 제외하고 교육부가 공청회를 해야겠으니 자리를 정돈해 달라고 말하는 사실을 결코 들은 적이 없다. 교육부는 교원3단체 회견에 힘입은 교사들이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으로 알고 공청회 개최 의지를 상실한 채 공청회를 포기하고 돌아간 것이다(교육부 관료 한사람이 교사들에게 욕설 비슷하게 큰소리를 쳐서 잠시 소란했던 화면이 텔레비젼에 나왔는데 그것이 무슨 큰 난리가 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됨).
(중략)
더더군다나 그 때 건물 바로 앞에는 전경 일개 중대 병력이 대기 중이었다. 만약 교육부가 공청회를 하고 싶었던 의지가 있었다면 경찰병력이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경찰병력을 투입해서라도 공청회장 질서를 잡고 행사를 진행했을 것이다. 공청회 시작도 하지 않고 공청회를 하겠다는 의사 표현도 강하게 하지 않고 교사들의 발언만 묵묵히 듣고 있다고 방청석의 사람들마저 교사들을 제지하지 않으니까 교육부 자기들 스스로 포기한 것을 교사들 몇 명이 공청회를 무산 시켰다고? (후략)

본부는 위의 사실을 포함하여 당시 정황을 알고 있던 상태였고 ‘목격자’가 수십 명(조합원만 헤아리면)에 이르렀지만 ‘교원단체에 대한 어떠한 수사방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논조 대신 (앞서 인용한 대로) 공청회 무산이 마치 “조직의 지침을 어기면서까지” ‘물리적 충돌’을 빚은 ‘일부 조합원의 행위’ 탓인 양 몰아가려 했다. 물리적 충돌로 공청회가 무산된 듯한 뉘앙스를 띠는 입장 발표 자료가 외부용이었다면 내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이는 5월 5일 인트라넷을 통해 지회 집행부와 분회장들에게 보낸 전자메일을 통해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더욱 세밀하게 그간의 과정을 나열하면서 ‘공청회 무산시킨 조합원들’을 은근히 비난하고 있다.

“5월 3일 교원평가 공청회 무산 관련 보고”

교원평가 관련 언론 보도와 관련하여 많은 조합원들이 궁금해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 내부 보고 자료를 작성하였으니 지부, 지회 집행간부와 분회장님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외부 열린공간으로 게시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5월 3일 교원평가 관련 ‘교육부 공청회 불참 기자회견’과 ‘전교조 단상점거, 공청회 무산’ 보도와 관련하여 그간의 경과와 상황을 보고합니다.
본부는 교육부 교원평가 방침을 저지하기 위해 내부 교선 작업과 동시에 설문조사, 분회장선언, 반대서명, 지부 결의대회 등을 조직하여 교육부를 압박(①)하며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해온 ‘교원평가’의 중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습니다. 또한 집회와 기자회견 등으로 교육부가 추진하는 ‘교원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파탄에 이른 공교육을 살려낼 학교혁신 방안과 종합대책을 전교조 등의 교육주체와 협의하여 마련해 나갈 것을 요구하면서 교육부의 ‘교원평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왔습니다.(②) 그리고 교육, 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로 연대의 틀을 강화하고 국민적 지지의 기반을 확보해 나가면서 교육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③)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투쟁으로 교육부의 애초 시안에 담겼던 독소조항들을 일부 제거하면서 교육부의 ‘교원평가’ 발표 시기를 연기시켜 왔고, 교원 3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다시 열기에 이른 것(④)입니다.
그러나 공청회를 실시하기 하루 전 교육부는 언론브리핑이란 명목으로 교원평가 시행방침을 사실상 발표해버렸습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의견을 수렴해야 할, 공청회가 교육부 입장 발표의 장으로 변질된 요식행위 절차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공청회에 불참하기로 하였습니다. 동시에 여타 교원단체의 불참을 끌어내어 합동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공청회의 주요 토론자였던 교원3단체가 불참을 선언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갖게 되었으므로 사실상 공청회는 무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인 4월 29일 서울지부집행위원회가 토론하여 본부에 제안한 공청회 대응지침(별첨자료)을 보더라도 애초 서울지부와 본부는 공청회에 참석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저지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불참 결정이 있기 전에 마련된 지침(별첨 참조)를 보더라도 주 내용은 항의 표시를 충분히 하여 우리의 의지를 전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리적 저지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질을 왜곡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단체 공청회 불참기자회견’이 끝나면서 일부 조합원이 공청회를 저지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본부 사무처장이 당시 현장의 집행책임자로서 조직의 방침을 전달하고, 지도에 따라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무시되는 상황(⑤)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언론은 ‘교원 3단체 공청회 불참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 보다 ‘전교조 단상점거, 공청회 무산’을 중심으로 보도하였습니다.
언론 보도에 힘을 받은 정부는 전교조를 향해 포문을 열며 ‘수사의뢰’ 방침을 밝히고 ‘6월 시범실시’를 확정 발표하는 등 강경기조로 돌아서서 당면 ‘교원평가’ 반대 투쟁 국면은 더욱 긴박해진 상황(⑥)입니다.
(중략)
특히, 공청회 무산을 빌미로 교원평가 실시 방침을 더욱 가속화할수록(⑦) 우리의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수사 의뢰’ 등의 폭압적 정면도전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열린 공간에 게시 금지”를 단서로 한 위의 서술내용은 실제와는 다른 ‘자의적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위에 표시한 부분은 사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다.

① “내부 교선 작업과 동시에 설문조사, 분회장선언, 반대서명, 지부 결의대회 등을 조직하여 교육부를 압박”
⇒ 지부 결의대회는 공청회 이후에 주로 개최되었고 지부 결의대회가 힘있게 진행된 것은 ‘공청회 무산’에 따른 투쟁분위기 고조의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교육부는 4월까지 아무런 ‘압박’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 증거는 내용상의 후퇴는커녕 시범실시 규모를 늘려왔다는데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다.

② “교육부의 ‘교원평가’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혀 왔습니다.”
⇒ 4월25일 기자회견 직후 한겨레 해당 보도내용을 접한 조합원들은 본부 홈페이지에 ‘본부 입장은 교원평가 수용이냐’는 내용의 글을 다수 올렸고 실제로 학교 현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③ “교육, 시민단체와의 긴밀한 협의로 연대의 틀을 강화하고 국민적 지지의 기반을 확보해 나가면서 교육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
⇒ 본부가 5월6일 개최하려고 했던 학교종합평가제 공청회 참석 예정 단체인 (교총을 제외하고) 참교육학부모회,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좋은교사모임 등은 한 번도 교원평가 반대 전선에서 전교조와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었고 ‘국민적 지지’를 파악하는 주된 근거인 여론 추이는 공청회 무산 전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교육부 자체조사 7,80% 찬성 등)였다. 즉 교육부는 압박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여론을 등에 업은데다가 전교조가 맹렬히 반대하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들리는 바로는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교육부는 ‘질타’를 당했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 교육부는 정부측에 “교원단체도 별 문제 없다”는 내용으로 보고를 올리다가 ‘공청회 무산 사태’를 통해 ‘교원단체의 맹렬한 반대’를 감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④ “이와 같은 투쟁으로 교육부의 애초 시안에 담겼던 독소조항들을 일부 제거하면서 교육부의 ‘교원평가’ 발표 시기를 연기시켜 왔고, 교원 3단체와 학부모단체 등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다시 열기에 이른 것”
⇒ 독소조항의 제거는 사실은 ‘약간의 문구 조정’에 불과했다. 능력개발 필요교원에 대한 연수를 (시범실시 때에는) ‘희망’에 따라 한다‘고 약간 바꾸었지만 능력개발필요교원을 추려내겠다는 방침은 요지부동이었고, 시행시기 연기는 투쟁의 성과가 아니었다. 또한 공청회를 또 한번 개최하기로 한 것을 성과라고 자평한 부분은 앞서 인용한 본부 전임자의 글(“교육부의 경찰수사의뢰에 대한 법률적 검토를 한다”)을 통해 성과로 볼 수 없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⑤ “일부 조합원이 공청회를 저지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본부 사무처장이 당시 현장의 집행책임자로서 조직의 방침을 전달하고, 지도에 따라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무시되는 상황”
⇒ 공청회를 저지하려고 계획했다면 ‘얌전히 피켓팅을 하는 정도’로는 절대로 무산시킬 수 없다. 발표자들을 단상에 오르지 못하도록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거나 입구를 봉쇄하거나 등의 행위가 있어야 무산될까 말까다. 주최 측의 개최의지가 강했다면 얼마든지 제지가 가능한 상황(경찰병력 대기 등)이었다. 본부의 주장대로 ‘물리적 충돌’이 있었다면 그것은 본부 사무처장이 피켓을 빼앗으려 해서 발생한 짤막한 실랑이와 지부, 본부 전임자 두 명 정도가 공청회장을 빠져나가려는 교육부 관계자들과 벌인 마찰 외에는 없었다.

⑥ “언론 보도에 힘을 받은 정부는 전교조를 향해 포문을 열며 ‘수사의뢰’ 방침을 밝히고 ‘6월 시범실시’를 확정 발표하는 등 강경기조로 돌아 서서 당면 ‘교원평가’ 반대 투쟁 국면은 더욱 긴박해진 상황”
⇒ 애초부터 정부는 강행입장이었다. 작년 사교육비 경감대책에 교원평가제 도입을 포함시킨 때부터 현재까지 정부는 한번도 철회라는 말은커녕 ‘재고해보겠다’든지 ‘몇 년 뒤로 연기하겠다’는 등의 의사표현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은 이와 정반대다. 거꾸로, 전교조가 여론을 의식하여 조심스러운 접근 내지 ‘유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여 ‘안심’하고 있다가 공청회 전날 정부 의지가 확고하게 표현되자 ‘전교조가 강경노선으로 돌변’한 것으로 교육부는 판단하고 있다. 요컨대 정부의 의지가 확인되고 이에 대해 전교조가 이전에 비해 강한 입장을 보이면서 전선이 분명해지기 시작한 것을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다.

⑦ “공청회 무산을 빌미로 교원평가 실시 방침을 더욱 가속화”
⇒ 공청회 무산이 빌미가 아니라 교원평가 실시 방침은 이미 5월 2일 가속화할 것임을 교육부는 공언한 상태였다. 그게 아니라면 3단체는 왜 공청회를 거부하려고 한 것이며 전교조 본부는 3단체의 ‘보이콧’을 왜 적극적으로 조직한 것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실제로, 6월13일 조합원 목소리에 올라온 6월임시국회 교육부 대응 지침 문건 내용을 소개한 “교육부는 6월 강행 방침이 분명하더이다”라는 글을 보면, 교육부는 교직단체 동향에 대해 “연초에는 유연한 자세 (여론의식해서)를 보이다가 정부의지가 확고해지자 (5월2일 공청회 전 기정사시로하해서 발표한 것을 말하는 듯) 강경노선으로 돌변”하였다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곧바로 본부는 교육부 공청회에 대한 맞불 격으로 준비된 학교종합평가제를 무기 연기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이유는 ‘저지’ 입장이 우여곡절 끝에 알려진 마당에 학교종합평가제는 저지투쟁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즉, 본부는 교육부의 일방적 실시방침이 발표된 5월2일까지도 저지투쟁이 아닌 ‘대안있는 반대’기조로 계속 밀고나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공청회 직후 열린 정책실장 회의 및 모 지부 집행위 상황이다. 5월 6일 정책실장 회의에서 교섭국장은 “전임집행부의 아주 핵심적인 분들이 사전에 계획하여 벌어진 일이다. 교육부에서 자제시키라고 하던데, 내 능력 밖이라고 했다. 사무처장이 지침에 따라달라고 하니까…우리는 생각이 다르다며 거부하더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으며 모 지부의 정책실장은 “기강을 바로잡는 차원에서라도 징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5월 7일 모 지부 긴급집행위는 오로지 공청회 무산 관련 논의를 위해 소집되어 무려 7시간을 갑론을박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는 정책실장 회의 때와 마찬가지로 조직기강을 이유로 해당 조합원을 징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이긴 하지만 나왔다.
조직 내 상층단위에서 벌어진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해 ‘징계 대상’으로 거론된 당사자 1인은 당시의 사실관계 확인과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며 5월 7일 본부 홈페이지에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올리기에 이른다.

조합원 동지들께 드리는 ‘교원평가 공청회 단상점거(?)’ 반성

지난 5/3 서울에서 있었던 교원평가에 관한 공청회를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갑니다.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 또한, 단상을 점거(?)한 한 사람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사실과 소감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어제(5/6)는 본부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가지 못했습니다. 전교조의 공식 보도자료가 "공청회에서 있었던 저를 포함한 몇몇의 행동에 대해 잘못이라 꾸짖고" 저희들의 행동으로 "국민들에게 사과를 드리고, 유감을 표한다"고 한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에 대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래도, 사무실에 가려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지만,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방을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사실관계부터 밝히는 것이 순서일 듯 합니다.
1) 5월 3일 공청회가 열리던 당일 오전에는 서초동 고등법원에서 원영만 전 위원장, 장혜옥 전 수석부위원장, 조희주 전부위원장, 유승준 전 서울지부장, 이병덕 전 강원지부장 등 5명에 대한 탄핵반대 시국선언 관련 공판이 열렸습니다. 공판 방청을 한 후, 본부 조직실장의 "1시반 공청회장에서의 교원평가 반대 기자회견 필참" "3시 교육부앞 교육개방 반대 집회 참석" 문자 전달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안하지만 본부로 바로 들어갈 계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오후에 원상회복추진위원회 본부운영위원회가 있어서 본부 사무실로 들어가 그 준비를 여유있게 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공판 방청을 함께 한 박경화 수석부위원장, 구신서 사무처장, 박효진 조직실장 등이 있는 자리에서, 저는 본부에 먼저 들어갈 생각이라고 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구구절절이 드리는 이유는 어처구니없게도, 본부와 서울지부 집행부 일각에서 '전임 집행부의 현 집행부를 무시한 사전계획'이라거나, '사무처장의 지도... 무시'(5/6일자 정책실 명의 문건) 혹은 '본부와 지부의 방침을 위배한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5월 6일 있었던 서울지부 집행위나, 전국 정책실장 회의에서도 그런 주장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전에 계획된 일이라니요? 저는 갈 생각이 없었지만, 함께 차를 타고 움직이다가, 공청회 장소까지 가게 된 것뿐입니다. 그리고, 교원3단체 교원평가 반대 기자회견에 참석하였고, 공청회장까지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 곳에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저의 발언이 필요하다는 현장에서의 판단에 따라, 저의 의견을 평화적으로 박수와 동조를 받으면서 말한 것뿐입니다. 단상 점거라니요? 저는 아주 평화적으로 마이크를 들고 발언을 할 수 있었으며, 발언을 한 후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도 이에 대해 반대나 제지하는 듯한 언행은 전혀 없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계획을 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2) 솔직히 저는 부끄럽게도, 서울지부의 공청회 관련 지침(4/29)도 모르며, 5월 3일 당일의 변경된 지침도 모릅니다. 다만, 본부 조직실장으로부터 받은 문자 지침("1시반기자회견후공청회보이코트하기로함. 전체1시반기자회견꼭참여하시기바람." "1시반공청회참석교육부교원소청심사위원회대강당시간엄수")만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공청회장에서의 저의 행동과 다른 조합원들의 행동이 이 문자 지침에서 하나도 벗어난 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더욱이, 서울지부의 공청회 관련지침(4/29)과 관련하여서는 저희들의 행동이 지침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지부의 공청회 관련지침은 "청중을 최대한 조직하여 현장 분위기를 주도“ ”공청회 전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분노를 표출“ ”욕설, 신체적 물리력 사용은 자제“ ”공청회장에 입장하여서는 준비한 현수막을 설치“ ”교원평가 도입을 주장하는 발제가 진행되는 동안 ‘교원평가문제점’ ‘교선보 등 우리의 요구’를 담은 ‘포스터’를 일제히 든다. “제어하려는 시도는 무시한다.” “플로어 토론이 형식적으로 진행될 경우, 강력히 항의하며 규탄집회를 개최한다.” 등이었습니다.
5월 3일 당일의 변경된 지침 “공청회에 참가하지 말고, 국회 앞으로 바로 올 것”이라는 지침은 저도 몰랐으며, 공청회장에 왔던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알지 못하였던 사실입니다. 5월 3일 당일 변경된 지침이 1만 5천 서울지부 조합원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전달될 수도 없는 것이며, 설사 전달되었다하더라도 이는 무엇을 금지하는 지침은 아니며, 당일 저희들 몇 명이 한 정도의 행동은 교원평가 반대투쟁, 공청회 보이코트 투쟁의 큰 범위 안에서 얼마든지 현장 상황에 따라 변화가 가능한 것입니다.
서울지부의 지침에 포함되어 있는 “현장분위기 주도” “조직적으로 분노를 표출” “욕설, 신체적 물리력 사용 자제” 등을 넘는 행동은 하나도 없었음에도, 본부와 서울지부 집행부 일각에서 나오는 “지침을 따르지 않는 행동이다.” “조직의 민주적 원칙을 훼손한 행동이다.” “지도부의 지도력을 훼손한 행동이다.” “징계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서울지부의 4/29 지침대로 행동할 경우에는 "물리력 사용을 자제"하라고 하였지만, "제지할 경우 무시"하라는 또 다른 지침은 물리적 충돌을 거의 불가피하게 하는 조항입니다.
제발, 징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행위에 대한 시비 논란을 벗어버리고, 보다 분명히 징계 사유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교원평가 반대투쟁으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이번 공청회 사건에 대한 본부 집행부가 취한 태도에 대해 오히려, 본부 집행부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각에서 주장되듯이 오히려 징계를 받아야 할 대상은 본부 집행부입니다.
교원평가 반대투쟁 과정에서 지침에 따라 투쟁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우리의 투쟁 상대인 교육부 관료들이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고성과 우격다짐으로 정당한 의견 발표 행위를 제지하려 한 행위, 그리고, 전혀 욕설과 물리력도 없이 평화스러운 의견 발표 행위를 물리적 충돌, 물리력에 의한 무산 등으로 표현하며 잘못으로 규정하고 사과, 유감을 표명한 행위, 이것이야말로 적전 분열행위입니다.

4) 저는 모든 것을 다 덮어두고 오로지 교원평가 반대 투쟁 전선을 더욱 더 공고히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당일 사건의 시비를 시시콜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공식, 비공식 단위, 혹은 온라인, 오프라인 등 모든 장에서 당일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 하루 빨리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것, 둘째, 책임있는 단위의 사과와 해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본부 지도부의 책임있는 사과와 해명이 있은 후, 조합원들에 대하여 단결 투쟁을 호소하는 길이 가장 빠른 그리고 가장 정확한 문제해결 방안이라 생각되어 감히 글을 올립니다.(후략)

(2)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한 ‘조합원 목소리’와 임시대의원대회 개최 결정

공청회 무산 소식이 알려지자 곧바로 227명의 대의원은 임시대의원대회 소집 요구에 동의했다. 단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다. ‘조합원 목소리’는 공청회 무산 전에 비해 몇 배로 글이 증가하였고, 대부분이 교원평가에 대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공청회 무산이 이완된 조직에 긴장을 부여하고 교원평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이다. 패배감이 주를 이루다가 공청회 무산으로 ‘뭔가 해야 되지 않나’라는 의지와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일깨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3) 왜 8인이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는가?

정부는 애초부터 8인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할 의도가 있었는가? 그 문제는 정확히 가려내기 어렵다. 다만, 8인을 지목하는 대신 “전교조와 교원단체가 공청회를 무산시킨 것”과 관련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키로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또한 (1)절에서 서술한 대로 전교조 본부는 공청회 무산에 대한 책임을 피켓시위 조합원들에게 두는 뉘앙스로 입장을 발표하였고 조직 내에도 그런 내용으로 정리하여 웹메일을 배포하였다. 물론, 대상이 8인이든 아니든 간에 공청회 무산과 관련한 정부의 사범처리 결정 의도는 5월1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한 교원평가 총력저지투쟁 결의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하튼, 본부의 대내외적 초기대응에서 보여준 자세은 무책임한 것이었다. 그러한 본부의 태도로 인해 조직 내에서 ‘징계’ 발언까지 나오게 되었고 당사자들은 몸담고 있는 조직의 지도부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은 ‘전임 집행부의 소행’으로 몰아간 일부 ‘논객’과 본부 임원진의 ‘해서는 안 될 말들’이 교원평가 저지에 대한 입장 차이인데, 이는 교원평가 저지투쟁에 대한 입장차이를 정파 대립 구도로 바꿔치려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입장차이가 함부로 종파적 시각으로 재단되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본부는 피켓시위자들을 지도부의 방침을 어긴 조직기강을 문란케 한 자들로 일정하게 ‘선을 그었고’ 이를 통해 조합원 대중들과 이들을 분리시키려 함으로써 정부는 ‘몇 명의 조합원’을 집중타겟으로 하기 쉬워진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공청회 무산에 대해 본부가 취한 태도이다. 자신들도 공청회를 ‘방해’할 계획을 지침으로까지 문서화했으면서 공청회 무산은 본부와 관련이 없으며 그로 인해 교원평가 저지투쟁이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최근까지도 나타내었다.

4. 5.14 대대부터 6.7 중앙집행위원회까지

(1) 6월 총력투쟁 결의와 이행이 미뤄진 대의원대회 결정

5월 14일 대의원 대회는 임시 대의원대회임에도 정기대의원대회보다 훨씬 많은 대의원(350명 이상)과 참관인들(100여명)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만큼 교원평가 투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있었다는 증거이다. 공청회 무산이라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미지수였다.
대의원대회를 통해 전교조는 ‘저지투쟁’의 기조를 분명히 하면서 시범실시 저지를 위해 ‘지도부 투쟁’과 ‘(시범실시 강행시)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하지만, 대대 직후 본부는 대의원안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려 들었으며 이행을 서두르지 않았다. 528대회 때는 고발당한 8인의 조합원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고 6월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2) 5.28 분회장 결의대회

5.28 분회장 결의대회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교원평가 저지와 학교자치 실현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동시에 소화하고자 하였는데, 당시 정세 속에서 후자는 사실 ‘쌩뚱맞은 감’이 있었다. 더 중요하게는 교원평가 저지 투쟁 계획의 천명이 없었기 때문에, 대회 끝나고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뭔지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5.28 대회 전에 비해 오히려 현장 실천은 둔화되었고, 6월 투쟁 분위기로 이어지지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공청회 무산에 이은 임시대의원대회는 발화력이 강하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 투쟁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문제는 형성된 분위기와 동력을 유지할 아무런 방침의 천명 없이 대회가 마감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렵사리 현장 활동가들과 대의원들이 만들어낸 투쟁전선의 이완을 대회 당일 많은 이들은 예감했을 것 같다.

(3) 6월 7일 중앙집행위원회

그래서 6월 7일로 잡힌 중집에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는데, 5월14일 대대 이후 6월7일 중집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쟁점은 6월 교원평가 투쟁전술 문제였다. 본부는 2일 정책실장 회의(지회집행부 이상 조퇴투쟁 : 시도교육청 타격)와 3일 중상집(지부집행위, 대의원 1일 연가로 현장방문하고 시도교육청 집회하고 6월25일 대회 3만 명 조직 결의)을 통해 현 국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대대결정을 사실상 묵살하는 안을 반복하여 제출하였고, 5.14 대대안을 발의한 대의원 17인을 비롯한 현장 활동가들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대대의 결정사항조차 무시될지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맞서 대대결정 이행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지부장 및 중집에 제출하였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6월 7,8일 1박2일간 이어진 중앙집행위원에서는 지금은 “협상국면”이라는 본부 정책실 등 상집의 정세판단과 5.14대대안 발의대의원 등의 “강행국면”이라는 정세판단의 차이가 갈등하는 가운데 어정쩡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양 입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중상집안은 폐기, 강원지부장 안은 처리되지 않고 경기지부장의 ‘조정’안이 표결(17/21)을 거쳐 채택되었다.





이러한 결정과 그 결정의 근거가 되고 있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① 대대결정사항과 부합하는 결정인가?
우선, ‘대대결정사항과 부합하는 결정인가’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우회적인 방식을 취하기는 하였으나 대대결정을 사실상 묵살한 안”이다. 두 가지 부담(연가투쟁에 대한 부담+대대결정 불이행 비난에 대한 부담)이 오버랩된 결과일 거라 추정된다.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의 시기와 방식에 있어서는 당시 대의원대회에서 연가투쟁까지 열어놓자고 제안한 의의를 살릴 수 없는 전술배치이다. ‘때우기식 연가’라는 인상이 짙다. 결과적으로 “시범실시 저지를 목표로 한다”라는 대의원 대회 결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살리는 방식과 거리가 멀어졌다. 선봉대 투쟁은 이후 보다 큰 대중투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일종의 ‘교량’으로서 배치되어야 옳다. 하지만, 이번 결정에서는 다음 투쟁인 9월 시기와는 너무 멀고 방학을 바로 앞둔 7월 중순이라는 시점 - 즉 선봉대 투쟁 이후 별다른 전술을 취할 수 없는 ‘사각지대’나 다름없는 시기 -에 선봉대 투쟁을 배치하고 있는데, 이런 시기 채택은 전술적 의의를 먼저 생각했다기 보다는 ‘연가를 배치했다’는 자족 수준의 ‘형식적 전술 배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가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면, 연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최대한의 전술적 효과를 노리면서 과학적으로 배치되어야 옳다. 7월에 연가를 해야 할 상황이 닥친다(본부는 정세 판단을 그때 가서 다시 하자고 한다. 지금은 협상국면이므로)면, 그것은 6.25대회보다 높은 수위의 투쟁이어야 맞다.

② 국면인식 : 협상국면이지 강행국면은 결코 아니다?
이런 전술상의 입장 차이를 규정한 것은 ‘국면에 대한 인식’이었다.  7월에 선봉대 연가를 배치한 것이나 6.25 대회로 충분히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은 ‘지금은 협상국면’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강행국면임을 부정하면서까지 협상국면이라고 주장한 것 자체는 정세인식치고는 대단히 주관적 의지가 많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시범실시저지투쟁 국면이라는 주체적 국면인식은 아예 없으며 다른 범주의 문제인 협상과 강행을 동일선상에 놓고 주관적 희망을 담아 ‘협상국면’이라 규정하였다. 이런 점에서 본부의 정세인식은 “의도된 오판”이다. 왜냐하면 객관적 정황은 정세인식에서의 논란을 전혀 일으킬 정황적 근거는 하나도 없었으므로.
그러나 (중집에서) 본부 정책실장은 현 시기는 “명백히 강행 국면이 아니며 그 근거로는 6월2일 당정협의 후 7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공식 선정 작업(공문으로)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 따라서 6월 시범학교 선정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정책실장이 우리가 모르는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지 여부는 캐물을 문제이지만, 객관적 상황은 ‘강행국면’이 지속되고 있었고 정부는 이를 틈날 때마다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게다가 6월13일 조합원목소리에 올라온 6월 임시국회 대응용 문건의 내용을 소개한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이 정도면 현 집행부는 두말 하면 ‘강행’이 분명한 정세를 놓고 ‘협상국면’이라고 무리하게 우기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 이유이다.
첫 번째 가능성은 전술관의 차이이다. 대대 결정 사항일지라도 연가를 하지 않으려는 욕구가 앞서면 “강행시”라는 문구를 최대한 안 하는 쪽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전술관의 차이가 ‘자의적 정세규정’에까지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설사 교육부와 협상은 진행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행 국면 속에서 이루어지는 협상’이었고 분명히 ‘시범실시 철회’를 얻어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의 협상은 실패해 온 것이고 여전히 강행국면이다. 교육부는 자신의 입으로 ‘시범실시를 중단하겠다, 철회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한 적이 없다.
또 하나, 본부 입장에서는 실제로 ‘협상국면’이라고 생각할 만한 일들이, 대중들이 모르는 사이에 진전이 되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행국면을 부정할 근거는 못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경우의 심각한 문제는, 대중들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 ‘협상’혹은 ‘협의’에서 ‘주고받은 것’ 혹은 ‘주고받기로 한 것’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점. 교육부가 본부에 제안한 것은 “‘교육발전협의회 산하에 학교교육력제고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특별위원회 협의를 거쳐 ‘학교교육력 제고를 위한 시범학교’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즉, 협의에 의해 교원평가 시범실시를 해보자는 제안이다. 교육부가 달라고 하는 것은 “시범운영 합의 실시”이고 “줄지도 모른다고 운만 뗀 것”은 법정정원과 표법을 협의체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는 정도이다. 교원평가를 다른 것과 맞바꾸는 것은 ‘공세적 대안투쟁’이 아니다. 불안한 것은 도대체 어떤 내용으로 어디까지 협의가 진행된 것인지를 전혀 알리지 않으면서 ’협상국면‘이라고 한다는 것이고, 5.28이후 하강국면인 대중동력을 살릴 어떠한 전술도 배치하지 않고서 유리한 협상을 할 수 있을 리 없어서 ’양보교섭‘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우려가 된다.
그러나 여전히 중심적으로 지적해야 할 문제는 전술관과 정세관의 문제가 아니라, 교원평가를 바라보는 본부의 태도 그 자체이다. ‘전술관의 차이(연가는 절대로 피해야 할 전술)’만으로 그리고 그것과 그간의 ‘물밑협상’ 만들어낸 ‘협상국면’이라는 본부의 국면인식 만으로 대대결정을 사실상 이행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단언컨대, ‘교원평가’라는 사안은 “연가를 해서라도 막아야할 문제가 결코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앞서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말로 교원평가는 “협상으로 풀 ‘문제’이지 ‘투쟁사안’이 아닌 것”이다. 본부가 상반기 내내 교원평가가 구조조정기제임을 분명히 하는 대신 구조조정과 연결될 “가능성”만을 이야기 한 것은 협상을 통해 뭔가 주고받으면서 ‘독소조항을 빼도 되는 일’로 여겼다는 뜻으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이 부분이 빠져서는 최고의결기구의 권위까지 부정하는 무리수를 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③ 거부선언과 625대회 두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다?
현장투쟁 전술에 있어서 6.25 총궐기 대회(3만 목표)와 시범선정 거부 선언(30만 목표)을 강조하고 6월에는 연가 등을 배치하지 않아도 협상력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위력적 전술이라 하면서도 (중집 전까지) 두 가지 투쟁을 힘있게 집행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3만과 30만은 강조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조직되지 않는다.

④ 중집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조직 내 민주적 의견 수렴절차에 가장 철저해야 할 본부 스스로가 그것을 훼손하였다. 상향식 조직운영을 그 어느 때보다도 강조하지만 이번 투쟁 전술 논의와 결정과정에서 현장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없었다. 일부 상집위원은 참관한 대의원에게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가장 심각한 민주주의에 대한 훼손은 뭐니뭐니해도 대의원대회의 권위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내용상의 부정은 위에서 이야기 한 대로이다.

⑤ 교원평가를 빌미로 정파적 이익을 도모한다?
문제는 대대결정사항의 이행을 528이후로 미룸으로써 조직 내에서의 갈등이 증폭되었다는 것이고 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본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514대대 직후 본부는 대대결정에 대한 즉각적 이행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조직 내에 정파 대립구도를 노골화하는 움직임이 점차 활기를 띠었다. 네이스 투쟁 때 인권위 합의 사항을 교육부가 즉각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문제가 더 커진 것과 같은 이치다. 본부는 5.28대회에서 6월 투쟁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교원평가 투쟁의 결의를 다지던 조합원들 일부는 김이 빠지고 일부는 본부를 못미더워하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 사실 아닌가. 아니나다를까 뒤이은 정책실장 회의와 상집에 제출한 본부 정책실의 판단은 대의원들을 분노하게했고 행동하게 만든 것이다. 이를 두고 ‘정파 대립구도’로 해석하는 건 지나치다.

5. “우리를 딛고 투쟁하십시오”
5.28 분회장 결의대회 장에서 고발당한 당사자들은 대회장의 조합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호소문을 배포했다.

교육부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조합원 8명을 고발하였습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는 지난 5월 2일 교육부가 교원평가 강행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발표한 뒤, 다음날 기만적으로 열고자 했던 공청회 장소에서 현장교사들이 왜 교원평가를 반대하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했다는 이유로, 교육부에 의해 5월 20일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고발당하였습니다. 그리고 5월 27일 어제 1차 출두요구서가 나왔습니다. 현직교사를 교육부가 앞장서 고발한 이번 일은, 교원평가 저지 투쟁의 예봉을 꺾으려는 현 정권의 치졸한 행위이며 명백한 전교조에 대한 탄압입니다. 그러나 교원평가 저지 투쟁은 결코 이런 일로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의 가열 찬 투쟁이 전교조에 대한 탄압을 뚫고 교원평가 저지 투쟁을 승리로 이끌 것입니다.

교원평가를 수용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선택해야 할 시점입니다
지금, 35만 교원과 800만 학생들의 숨통을 죄일 교원평가가 목전에 다가와 있습니다. 6월 2일 당정협의회, 6월 초 시범학교 선정공고, 7월 시범학교 선정, 9월 시범학교 운영. 2006년 2월은 법제화 단계입니다. 더 이상 교원평가는 강 건너 일이 아닙니다. 이제 상황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적미적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맞서 투쟁하여 마침내 승리할 것인지를‥

가랑비에 옷 젖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내일 모레면, 5.31 교육개혁 조치가 발표된 지 만 10년입니다. 교원평가는 저들이 10년을 준비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교원구조조정 완성을 위한 마지막 도구입니다. 외국교육기관특별법 제정(05.5), 교육개방 2차 양허안 제출(05.5), 지역자치와 교육자치 통합(=교원 지방직화) 추진(05.6), 자립형사립고 제도화와 확대 실시(05.9), 성과급 전면 실시(06-)… 이러한 흐름은 모두 교육 노동의 유연화․구조조정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지금 교육부가 ‘교원평가’를 저토록 무모하게 강행하는 이유입니다.

교원평가, 뿌리를 확실하게 뽑아야 합니다.
아무리 약화된 안일지라도 제도로서 살아있는 교원평가는 결국 구조조정의 매서운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숱한 대기업 노조들이 “명예퇴직은 아직 구조조정이 아니다”, “서비스 향상에 노조도 동참할 필요가 있다”면서 몇 가지 현안과 구조조정 정책을 교환하였고, 그 결과는 비정규직 양산, 정리해고 전면화, 정규직 노조 약화로 이어졌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교원평가 저지 투쟁은 전교조의 소명입니다
교원평가를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더욱더 중요한 이유는, 결국 교원평가가 공교육 황폐화로 이어져 그 폐해를 학생, 학부모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원평가의 공정성 시비는 결국 학생의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최우선 척도로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간의 경쟁은 학생간의 경쟁을 급속도로 강화시키고, 학교는 ‘정글의 법칙’만이 횡행하는 곳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교육비로 허리가 휘청거리는 학부모의 고통은 더욱 심화될 뿐입니다. 교원평가는 참교육 실현과 교육의 공공성실현을 위해서 기필코 막아내야 합니다.  
동지들께 호소합니다
동지 여러분! 우리 다함께 지난 43차 전국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6월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힘차게 실천합시다. 만약 우리에 대한 정권의 탄압, 사법처리가 동지들의 힘찬 교원평가 저지 투쟁에 작은 불씨가 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욱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투쟁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투쟁 제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자신감을 가집시다. 여론을 움직이는 힘! 바로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교원평가의 실체를 설명하면 할수록, ‘전교조가 희망이다’ ‘함께 싸우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교원평가의 반교육적 결과를 얘기하면 ‘선생님이 앞장서 막아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봅니다. 동료교사․학부모․학생․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교원평가의 반교육성을 낱낱이 알려 나갑시다.
둘째, 힘찬 6월 총력투쟁을 조직합시다. 아래로부터 끓어오르는 투쟁 열기를 모아, 6월 연가투쟁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힘차게 전개합시다. “그래, 교원평가는 반드시 막아야 해!” “앞장서 투쟁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얘기해 달라”며 투쟁기금을 넣어주시는 선생님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교사로서의 양심을 걸고, 이 땅 교육의 미래를 위해 여기 모이신 동지들 한분 한분이 살아 움직이는 투쟁 선봉대가 됩시다.  
셋째, 투쟁 과정에서 조직이 확대되고 단련되는 모범을 만듭시다. 교원평가 저지 투쟁 과정에서 전교조 가입을 적극 권유하고, 조직 확대를 이룹시다. 지금 학교는 교원평가 문제로 긴장이 돌고, 분회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분회를 강화하고, 전교조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참교육 실천 강령을 35만 교원에게 전파해 나가야 합니다. 조직의 확대와 강화, 투쟁 속에서 이루어 냅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중심에 섭시다. 교육부가 일보 후퇴했는지, 이보 후퇴했는지에 매달리지 말고, 여론이 오늘은 좋은지 내일은 나쁜지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우리가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갑시다. 매사를 남을 중심에 놓고 주체인 우리가 눈치 보면, 우리의 길은 열리지 않고 결국 이용만 당합니다. 16년 전교조의 역사는 우리가 중심에 서서 교육을 변화시켜온 과정이었습니다. 10만 전교조는 우리가 중심에 서기에 충분합니다.

우리를 딛고 투쟁 하십시오
동지들! 우리는 교원평가 저지와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저지, 교육 공공성 확보 투쟁에 힘이 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투쟁도, 그 어떤 희생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심정을 담아 글을 올립니다.
앞으로도 진정한 교육노동자로서 사는데 게으르지 않으며, 항상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투쟁!  
2005. 5. 28.

“우리를 딛고 투쟁하십시오”라는 호소에 누구보다도 먼저 답해야 할 것은 본부다. 5월, 현장 활동가들에 의해 고양되었던 투쟁분위기를 본부는 지켜내지 않았다. 현재의 본부 행보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6월8일, 중앙집행위원회가 끝난 바로 다음날 보도된 내용은 ‘아 이제 투쟁할 필요 없고, 협상결과를 기다리면 되겠구나’라는 착각을 조합원들로 하여금 하게 만들었다. 본부는 ‘협상국면’이라는 ‘의도된 정세 오판’을 상층부선에서 공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이런 잘못된 국면인식이 사실인 양 받아들이게 만듦으로써 현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협상에 임한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직후, 김진표 부총리는 임시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9월부터 교원평가 시범실시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6월~8월은 시범학교 선정 등 ‘평가 준비 기간’으로 교육부는 설정해 놓고 하는 이야기다. 본부는 이제라도 강행국면임을 부정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교원평가 저지에 대한 불퇴전의 각오를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를 딛고 투쟁하십시오”라고 했어야 한 건 이들이 아니라 본부였어야 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