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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특집1_사례: 강남 H고

2005.06.28 13:11

jinboedu 조회 수:1636

편집부


“평가”라는 단어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최면제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싸움 곳곳에 많은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관심을 갖고 역량을 투여해야 할 부분이 다양한 차원과 방식의 선전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유포되어 있는 “평가 만능주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일이다. 특히나 교육부가 제시하고 있는 교원평가의 논리와 그 근거로써의 사례들을 꼼꼼히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문제점과 허구성을 찾아내고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선전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부가 교원평가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H고등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원평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H고등학교에 근무 중인 중견교사와의 면담과 관련 자료에 근거하여 현재 해당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는 교원평가의 실체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검토한 후 그에 기초하여 교원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한다.

H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인가?

교육부의 공청회 자료집에 현재 교원평가를 실시하고 있는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고 있는 H고등학교의 사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써의 학교의 역사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조건과 전통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H고는 1906년에 설립된 100여년의 긴 역사를 지닌 사립학교이다. 본래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하고 있던 이 학교는 강남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1984년 강남구 일원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일원동은 삼성의료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27평짜리 아파트가 5억-6억을 호가하는 전형적인 서울의 중상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H학원재단을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최씨일가가 재정적 비리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피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1994년 H재단의 재정문제를 일거에 해소하고 학교의 발전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면서 H재단을 인수한 것이 삼성그룹이었다. 당시 삼성그룹이 H재단을 매입한 배경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했었다. 예를 들어 삼성이 강남의 알짜배기 땅에 위치한 H재단 소속 학교들의 경제적 가치를 보고 구입하였으며 일정한 시기가 되면 학교는 서울근교로 옮기고 그 부지에는 아파트를 건설, 판매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회자되기도 하였었다. 이 설은 마냥 근거없는 낭설이나 루머만은 아닐 것이란 주장이 당시에는 꽤 설득력이 있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의혹을 받으며 H학원을 인수한 삼성은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즉, “삼성이 하면 다릅니다” 라는 슬로건을 학교경영을 통해서도 가시적으로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게 된다. 우선 1994년 재단 부설로 중등교육연구소를 설립하여 초일류 학교로서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학교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중등학교 현실에 근거한 교육이론을 개발하며 교원의 연구 분위기 조성과 각종 교육 자료 개발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재단 이사장이나 이사진의 일부를 삼성그룹 소속 CEO급에게 할당하여 다양한 삼성그룹의 기업경영 기법을 학교경영에 도입하였는데 현 H학원의 재단 이사장은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맡고 있다.
이 과정에 시행된 특기할 사항들을 살펴보면 (1) 교사들의 임금 수준을 다른 학교들보다 높게 책정하였고(연봉 기준으로 1천만원 이상 높음), (2) 담임교사는 학년운영과 관련 업무를 제외한 어떤 행정업무도 맡지 않으며 행정업무를 담당한 교사는 담임 역할을 맡지 않는 방식으로 교사들의 역할을 조정하였으며, (3) 교장, 교감 및 부장교사 이외에도 수석교사와 선임교사제를 신설하는 등 다양한 직책과 직급을 신설하여 학교조직체계를 개편하였다. (4) 또한 신임교사 채용 시 계약제 즉, 인턴 1년간의 계약 근무 후 정규임용여부 최종 결정하는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 학교에 교사평가가 도입된 것도 삼성그룹에서 학교를 인수한 이후이다.
참고로 H고는 교장, 교감 및 2명의 수석교사와 12명의 선임교사 등 약 75명의 교사가 교무부, 생활부, 교과부, 학년부 등 4개부서로 나뉘어 36학급 약 1,200여명 학생들의 교육활동을 책임지고 있다. 그리고 교사는 16시간, 학과장은 14시간, 부장은 10시간이 수업 기준 시수로 정해져 있다. 마지막으로 눈여겨 볼 사실은 비록 H고가 사립 남자고등학교라고 하지만 여교사의 비율이10%가 되지 않으며 학급담임을 맡고 있는 여교사는 단 한명이라는 점이다.  

H고등학교에서 교사평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H고의 교원평가는 기본적으로 자기 평가, 동료 평가, 상급자들에 의한 평가 등 3단계에 걸쳐 2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 방식은 자기 평가와 상급자들에 의한 평가가 결합된 형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교사들은 겨울방학 직전인 12월 중순경 자신의 1년간 교육활동을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 평가한 자기 평가서를 작성하여 차상급자인 부장교사나 학과장에게 제출한다. 이 자기 평가서를 기초로 먼저 각 교사들이 소속된 부서의 장인 부장교사나 학과장이 1차 평가를 시행하게 된다. 이후 교감, 교장 등의 선으로 이어지는 평가자들이 역시 교사들이 제출한 자기 평가서에 근거하여 교사들을 평가하여 등급화하게 된다. 이때 평가자들은 자신들이 1년 동안 보고, 듣고, 느끼고 관찰한 교사들의 교육활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기초하여 교사 각자가 제출한 자기 평가서의 내용을 평가한다.
두 번째 방식은 소위 상호 평가이다. 교사들이 자신이 속한 부서나 학년 혹은 학과단위로 구성원들을 상호 평가한다. 각 교사는 각 단위에 속한 교사 중 지난 1년간 가장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상위 2-3명 정도를 연기명 비밀투표 방식으로 추천하게 되고 그 결과를 근거로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순으로 부서, 학년 혹은 학과별로 교사들을 서열화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 방식 즉, 상급자들에 의한 평가와 동료 상호 평가 결과를 합산하여 그 해 교사들에 대한 평가 결과가 최종적으로 집계된다. 그리고 최종 집계된 결과에 기초하여 전체 교사는 최상위(20%), 상위(30%), 보통(50%)에 각각 배분되며, 그 결과는 다음 해 성과급에 그대로 반영된다. 일반적으로 최상위 20%는 300%, 상위 30%는 200% 그리고 나머지 50%는 100%의 성과급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평가의 내용과 결과가 별도로 개별교사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신에 대한 평가 결과를 알게 되는 것은 월급봉투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특기할 사항은 교사평가 과정에 어떤 형태의 학생이나 학부모의 참여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자기 평가 방식이 객관식 문항과 그에 따른 선택 항목을 제시, 표기하게 하고 그 결과를 계량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교사가 자신의 지난 1년간의 교육활동을 스스로 평가한 결과를 서술한 자기 평가서 형식으로 제출된다는 점이다. H고에서도 학교 측은 끊임없이 평가의 계량화를 추진하려 하였으나 교사들은 이에 맞서 강고한(?) 투쟁을 벌여 왔다고 한다. 그 결과 계량화 방식이 아닌 서술형으로 자료를 제출하게 되었고, 교사들이 작성하는 자기 평가지도 초기에는 세 장이었으나 점차 한 장으로 축소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평가 결과에 대한 어떤 형태의 피드백도 전혀 없으며 교사들은 자신이 수령한 성과급 액수를 통해 비로소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나타나는 특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 교원평가의 핵심이자 가장 중요한 1차 자료라 할 수 있는 자기 평가서를 기술할 때 많은 교사들은 지난 1년간의 자신의 교육활동을 찬찬히 되돌아보면서 깊은 성찰이나 고민 끝에 자기 평가서를 기술하기 보다는 하나의 행정적 절차이자 통과 의례로 여기면서 형식적으로 기술하는 경향이 크다고 한다. 특히 경력이 많은 교사들 일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자기 평가서 내용과 관련하여서도 자신의 교육활동 이외에도 자신이 자기 개발을 위해 어떤 학원을 다녔는지, 어떤 연수를 받았는지, 어떤 종류의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지 등등 까지 기술하는 경우도 있어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평가의 객관성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셋째로, 아무리 자기 평가 내용이 풍부하고 다양하다 하더라도 결국 부장-교감-교장으로 이어지는 평가자 선에서 이를 어떻게 판단, 평가가 하느냐가 평가 결과를 가름하는 관건이 되고 있어 평가가 일정하게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이고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넷째로 부서별, 학년별 혹은 학과별 교사들의 연기명 방식으로 진행되는 교사 상호 평가에서는 주로 젊은 교사들이 많은 표를 얻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주로 각 조직 단위별 학교일을 전담하기 때문에 다른 교사들이 당연히 수고한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겠다.
마지막으로 평가 결과 처리 방식과 관련하여 평가결과는 철저히 성과급과 연동되고 있으며, 교육활동의 질 향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학교에서의 교사평가의 도입도 그런 목적과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 같다. 나아가 지금까지의 평가결과를 살펴보면 항상 보통50% 내에만 들었던 교사는 한명도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교사들이 평가 결과 의미있게 수용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자신을 성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 보완하기 위해 분발 즉, 다음 평가에 대비한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라기보다는 행정가들도 학교 내 구성원사이의 인화를 고려하고 갈등을 우려하여 평가 결과 처리 시 교사들을 각 군에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나타난 상황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H고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째, 교육부가 H고를 자신들이 추진하고자 하는 교원 평가를 이미 시행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H고는 교육부가 주장하는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원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없다.
둘째로, H고의 교원평가는 어떤 형태의 교원평가든지 결국은 성과급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며 교사통제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셋째, 결국 교원평가는 형식화되고 형해화되면서 교사들에게 추가된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H고의 경우도 대다수 교사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교원평가에 대한 내성이 쌓이면서 많은 교사들이 자기 평가서를 작성할 때조차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대담자는 “12월 중순이 되면 자기 평가서 작성과 교원 평가로 인하여 많은 교사들이 스트레스도 받고 신경이 날카로워지지만 그것이 자신의 지난 1년간의 교육활동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자기 평가서 작성과 그에 근거하여 진행되는 의미없는 교원평가에 대한 자괴감과 그런 절차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로감의 표현인 것 같다” 고 전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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