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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현장에서_부안 반핵민주학교의 경험

2003.11.07 15:09

jinboedu 조회 수:2291 추천:44

부안 반핵민주학교의 경험

부안 반핵민주학교의 경험

김보리 | 전북평화와인권연대

 

 

1. 아이들이 등교거부를 하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8월 25일부터 부안군 초·중·고 학생들이 등교거부를 시작했다. 여름방학전 곰소와 변산 주변의 몇 몇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등교거부를 시도하긴 했지만 이내 방학에 들어가 그 파장은 미미한 터였다. 한 지역에서 초·중·고 학생 전체가 등교거부에 들어간 일은 우리 현대사에서 없던 일이라 설마 하면서도 어디보자 하고 지켜보는 심정이었다. 첫날 50% 등교거부율을 기록하더니 72% 77%로 하루하루 부안군 초·중·고 학생들의 등교거부율은 놀랍게도 올라갔다.

학부모들은 면단위 대책위를 중심으로 반핵민주학교를 준비했다. 변산면이 8월 27일부터  시작하더니 부안읍이 곧이어 문을 열었고 폐교를 쓸고 닦아 민주학교를 연 진서면은 아이들 통학을 위해 버스까지 새로 사는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중·고등학생들이 문제였다. 언론에선 아이들이 피시방에서 죽때린다면서 등교거부투쟁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대책위에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우리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었던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주말조차 얼굴도 마주하기 힘든 중·고딩들이 이렇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마침 지역에 있는 돈지면 생태학교 '시선'에서 등교거부 학생들을 돕기 위해 문을 연다고 한다. 마침 학생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위해선 학교를 뛰쳐나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오던 한 선생님이 학생들보다 먼저! 학교를 뛰쳐나와 부안에 내려왔다. 일이 될 것 같았다.

 

2. 여러 가지 시도들

 

등교거부한 지 20여 일이나 지난 9월 16일부터 중·고등학생 반핵민주학교를 시작했다. 앞으로 한 달을 넘기진 못하리라 생각했기에 짧은 기간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평소 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대안교육'을 고민했다. 동아리 활동, 그래 그거 좋겠다! 오전 시간은 인권교육, 오후엔 동아리 활동을 하기로 했다.

 

반말로 할까 존댓말로 할까?

첫날 50여명의 중·고등학생들이 모였다. 교사와 학생, 선배와 후배, 나이의 차이를 뒤로하고 서로 하나의 호칭으로 통일하자. 존대말로 할까 반말로 할까. 이 제안을 했을 때 아이들의 질문은 "왜요?"가 먼저였다. 우리에게 내면화된 위계질서들이 호칭(언어)을 통해 어떻게 억압적으로 작용하고 알게 모르게 불평등 관계를 생산했는지 느껴보자...

반말을 선호하는 사람과 존댓말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서 두 명씩의 패널을 정해 의견을 발표하고 나머지는 자유발언식으로 토론하기를 무려 3시간. 그래도 결론이 나지 않자 우리는 하루는 반말을, 하루는 존댓말을 직접 사용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결론은? 존댓말은 가능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쌤들에겐 반말을 해도 선배들에겐 차마(?) 반말을 하지 못했다. 이날 우리는 우리모임의 이름을 '작은 불꽃'이라고 지었다.

 

인권이 좋아하는 것은 대안에너지... 싫어하는 것은 김종규 부안군수, 1001전투경찰...

뜨겁게 달궈 오른 핵폐기장 반대투쟁 탓인지 아이들은 인권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학생, 그들의 처지와 연관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듯했다.

핵에너지정책은 미국과 우리의 관계, 교사와 학생, 선배와 후배의 관계에서와 같이 똑같이 적용되는 권력의 문제이며 자신의 권력을 잃기를 두려워해서 자치와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오갔다. 그러나 조금만 진지한 얘기들이 나오면 아이들은 힘들어했다.

 

민속주와 이에 맞는 안주찾기 동아리, 안주맞춤.. 수다클럽.. 공동체놀이 개발클럽 잘!(먹고) 잘!(노는 것이) 잘(사는 것)!

산, 들,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십분 활용하고 아직까지 공동체가 살아있는 부안의 특성을 살려 해볼 수 있는 동아리 활동을 기대했다. 우리 마을 지도 만들기, 우리 마을 역사 알아보기, 바닷가에 (고기 잡는) 어살 만들기, 헌집 고쳐주기 등.. 신이 나서 아이들에게 제안해봤지만 아이들이 고민 끝에 내놓은 것은 맘껏 술 먹기, 독서 클럽, 스터디 클럽, 댄스 동아리였다. 매일같이 모여 어떤 동아리를 할지, 그걸 하기 위해 어떻게 할 지를 논하다 일주일이 훌쩍 갔다. 나오는 아이들이 매일같이 달라져 어제 했던 얘기를 다시 반복하고 서로 소개하느라 시간들을 보내곤 했다. 아무래도 동아리 활동은 힘든가봐.. 이럴 즈음 우리 안에서 서울상경투쟁 얘기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로 가자! - 이게 바로 '반핵·민주'의 체험

6.25 동란에도 학교는 다녔다면서 부안군의 등교거부 투쟁을 흠집내기에 바쁜 언론, 부안의 반핵투쟁을 지역이기주의로 몰고 있는 분위기. 무엇보다 학부모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아마도 등교거부가 9월을 넘기긴 힘들 것 같다. 등교거부를 마무리하기 전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외부에 전달할 방법은 뭘까. 서울로 가자. 아이들은 좋아했다. 이때부터 열흘동안 '작은 불꽃학교'는 서울상경투쟁 준비로 그 내용을 채워갔다.

공연준비팀, 대외홍보팀, 물품지원팀 세 팀으로 나뉘어 준비를 해나갔다. 노래가사를 바꾸고 율동을 연습하고 대자보를 쓰고 구호들을 만들고 방송차를 타고 면단위로 내려가 방송을 하고 손수 플래카드도 썼다.

어른들이 참여하지 않는 상경투쟁을 안전하게 다녀오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50명의 고등학생이 1천명의 초등학생을 인솔하기 위한 방법을 토론한 결과 아이들은 5가지 모양과 10가지 색깔로 구분한 깃발과 인식표, 이름표를 고안해냈다. 몇 날 밤을 눈을 비벼가며 아이들은 준비물들을 만들었다.

'햇님은 일하고 싶어요. 바람도..., 바닷물로 핵발전소를 끓이지 마세요.. 우리는 핵없는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핵! 불결해, 불길해...'처럼 재치있고 의미가 함축된 구호들이 아이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어린 것 들이 학교는 안가고 왜 데모를 하고 난리야'하며 차가운 시선을 던지던 종로거리에서 아이들은 '핵 없는 세상 살고 싶어! 핵발전소 그만 짓자! 자연에너지 사용하자!'를 진지하게 외쳤다.

다음날 바로 이어 우리는 등교거부 어린이·청소년들의 거리축제를 열었다. 어머니들은 먹거리를 준비하고 작은 불꽃 아이들은 반핵 노란비행기 멀리 날리기, 반핵 윷놀이, 반핵 페이스 페인팅, 반핵 줄넘기놀이, 반핵 박터뜨리기 등 놀이를 진행했다. 간간이 노래도 하고 댄스동아리들이 나와 춤 솜씨를 자랑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전율하는 것이 내게도 전해졌다.

 

3. 어른들이 우릴 소외시켰어요!

 

10월 4일 등교거부 43일만에 부안군 학교운영위원회장단은 등교거부 철회를 결정했다. 정부가 대화를 제안했고 교사들이 단식농성에 들어갔으며 부안군민들이 부안에서 전북도청이 있는 전주까지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보내자고 결정했다.

"소수라고 해도 백지화 될 때까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어떻게 등교거부 철회를 결정할 수가 있나요?"

대책위도 학교운영위원회도 당황스러웠다. 어른들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등교거부를 한 것은 우리 학생들이다. 우리에게 의견을 물었어야 하지 않냐는 항변에 어른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작은 불꽃을 중심으로 한 중·고등학생 40여명이 모여 대책위 어른들에게 잘못된 점을 지적했다. 대책위 어른들은 과정상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했다.

 

4. 짧았지만 자유의 맛은 너무 독해서...

 

"50분 수업이 이렇게 긴 줄은 미쳐 몰랐어요" "학교가 답답해요. 전에는 이렇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다시,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밤 11시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힘겨운 적응놀이를 하고 있다. 학교를 꼭 다녀야 하는 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생겼다. 어쩌면 이제부터 아이들과의 전선(戰線)에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서 있을지 모르겠다.

  어른들보다 바빠진 아이들은 등교거부 때부터 해오던 월요 청소년 촛불문화행사를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주말에만 겨우 만나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촛불행사에 나오기도 쉽지 않다. 담임선생님과 교장, 교감선생님의 훈계를 듣고 힘껏 개긴 뒤에야 학교를 빠져나올 수 있다.

 

5. 돌아보며

 

'반핵·민주'라는 거창한 간판과는 달리 미리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뛰어든 것이 아니어서 매일 매일 어떤 내용으로 채울지 동분서주, 혼비백산했다. 20여 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핵에너지의 문제' 같은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스며들었을 지는 의문이다. 다만 서울상경투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이 준비하고 이뤄내면서 그 자체로 '반핵'과 '민주'를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율적으로' '스스로'를 강조했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지독히도 수동적이고 타율에 젖어 있었다. 생각하기를 싫어하고 힘들어했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나 또한 비슷한 모양으로 그 시절을 지나왔겠지 하면서도 이런 모습에 많이 놀랬다. '의미 있는' 동아리 활동을 시도하다 '차라리 신나게 놀아보기'를 선택한 것도 이런 연유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았던 것이 무어냐고 물으니 학교의 벽을 넘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된 점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지금 서로에게 미쳐 있다. 학교 담장 안, 교실 안, 짝궁의 좁은 세계를 벗어난 만남을 갖게 된 것은 이번 작은 불꽃학교가 아이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인 한 친구는 원래 별로 말이 없고 나서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이번 불꽃학교의 경험으로 자기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고 좋아했다. 계기를 물으니 "여기선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고 답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의 학교의 모습, 우리의 교육이 어떤 '인간'을 만들어내는 곳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학교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소맷자락을 잡고 '차라리 가지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작은 불꽃 만남이 계속 되길 바란다. 무슨 의미 있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숨통을 트는 공간으로라도 계속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이번에 짧은 기간이지만 집중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청소년 인권'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생각이 관념적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고백하자면, 인권활동가라고 자처하던 나는 아이들을 의식화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접근했던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내게 어림없다는 것을 대번에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사랑'이 먼저임을,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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