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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공공영역 사유화 반대는 곧 WTO 반대

2003.07.14 10:45

전소희 조회 수:1313 추천:4

2003년 7차 교육과정 투쟁 전망과 과제 - 선택중심 교육과정 중심으로

공공영역 사유화 반대는 곧 WTO 반대

 

 

전소희 자유무역협정·WTO반대 국민행동 사무국




들어가며

 

오는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카리브해를 끼고 있는 멕시코의 호화 휴양지 칸쿤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제5차 각료회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각료회의에서 2001년에 시작된 일명 "도하개발의제(DDA)"라는 새로운 무역체제를 출범시키기 위한 막바지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농민을 담보로 농업 시장을 개방하고, 공공성을 희생시키는 공공영역 사유화를 강제하고, 노동권과 환경을 파괴하면서 거대 투자자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해주고, 생명보다 이윤을 더욱 중요시하는 각종 규범들이 만들어지고 전세계에 강제될 것이다. 그렇다. 정부 관료들과 초국적 기업가들은 백인 부유층이 즐겨 찾는 휴양지에 모여 미국과 유럽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전 세계 민중들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협상을 진행할 것이다.

한편, '기설정의제'로 이미 2000년부터 시작된 서비스 관련 협상은 양허요청안(서비스의 어떤 분야를 개방해달라는 요구안)과 양허안(서비스의 어떤 분야를 개방하겠다는 입장 표명) 제출을 거쳐, 양자간 협상 단계에 와 있다. 서비스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S, 이하 서비스협정)을 통한 서비스의 국제무역체제 편입은 사실상 WTO 출범의 핵심 목표 중 하나였으며, 그런 만큼 WTO 내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서비스협정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비스협정은 기존에 상품화되지 않았던 영역을 상품화하여 초국적 자본으로 하여금 공공영역으로부터 막대한 이윤을 뽑아낼 수 있도록 해주며, 그런 만큼 서비스협정의 반민중성과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WTO 협상이 그다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못하다. 지적재산권협정(TRIPs)과 소위 '싱가포르이슈'에 대해 개도국과 강대국 간 갈등, 그리고 농업과 유전자조작 곡물 문제에 대해 유럽연합과 미국간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또한 3월 31일이 서비스협정 양허안 제출 시한이었으나, 6월이 된 지금 아직 18개국만 양허안을 제출한 상태이며, 유럽과 미국의 서비스시장 개방에 대한 압력에 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물론, WTO 체제가 붕괴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하는 유럽과 미국은 (지난 각료회의에서 그랬듯이)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과 문제제기를 한편으로는 무마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강대국들간 극적인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이 항상 있지만, 점점 더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WTO 체제가 위기에 치닫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WTO의 모순과 위기는 전세계적으로 지난 수년 간 진행되었던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위력을 통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2000년부터 진행된 서비스협정에 대한 전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투쟁은 신자유주의의 파괴력과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

 

이윤의 원천에는 끝이 없다!?

 

물론, 이 총체적 난국의 애초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자면 끝도 한도 없을 것이며, 이 글에서 굳이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 및 서비스 협상의 본질을 정확히 규정하기 위해 WTO 출범 당시로 잠시 되돌아가보자.

1970년부터 세계자본주의는 하강곡선을 그리고 시작했다. 당시 세계 시장은 기계화·자동화로 생산성이 향상된 수준을 넘어 과잉 생산으로 시장이 포화된 상태였고,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개도국이 세계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하자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구 공산권과의 대립과 상호 견제 속에서 이런 위협에 대한 대응을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말, 동구 공산권이 몰락하고 냉전 대립이 끝나면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공산권이라는 "장애물"이 제거된 상태에서 이들은 시장을 더욱 확장하기 위한 전략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국 내에서 서비스, 금융 및 첨단기술 산업으로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한편, 제3세계 개도국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와 지배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기획을 순조롭게 펼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강제 수단이 필요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만들어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이미 여러 제3세계 국가에서 위기관리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강대국들의 구미에 맞게 제3세계의 정치경제 체제를 구조조정하고 있었으며, 세계 경제를 금융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역"과 관련해 존재하던 무역관세에관한일반협정(GATT)은 이들의 성에 차지 않았다. GATT의 기본 목적은 관세를 철폐함으로써 "자유무역"을 추진하는 것이었는데, 전통적 상품거래에 국한된 관세만 철폐해 그들이 원하는 만큼 제3세계 경제를 통제하고 시장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8년 간 협상을 거쳐 1995년 1월 1일에 우루과이협정이 발효되었고, 이와 동시에 GATT를 대체하는 항구적이고 강력한 새로운 무역기구인 WTO가 출범하게 된다. WTO의 탄생 배경을 보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WTO가 국제무역을 "중립적"으로 조절하기 위한―그러나 어떻게 하다보니 강대국들이 장악해버린―또 하나의 국제기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WTO는 그 태생 자체가 위기에 직면한 (특히 미국 중심) 초국적 자본이 제3세계의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부상하는 데 대응하고, 동시에 금융 및 서비스산업 육성을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면서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작품이다.

그렇다면, WTO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제 재편과 시장 확보를 달성하는지 보자. 먼저, 금융 및 서비스 시장 확장을 위해 WTO는 "무역장벽"의 범위를 대폭 늘려 "관세장벽"에 더해 "비관세장벽"도 모두 철폐할 것을 주장한다. 비관세장벽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각종 규제와 정책이다. 예를 들어, 노동, 환경, 공중보건 등 민중의 제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농민생존권이나 식량안보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 등, 이 모든 것은 외국기업이 진출하거나 외국 상품의 수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비관세장벽"에 속한다. 그래서 "자유무역"의 원리에 위배되며 철폐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즉, 철폐되어야 할 무역장벽의 범위를 대폭 확장함으로써 초국적 자본이 접근가능한 이윤의 원천을 증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 생활의 모든 측면이 다 거래가능한 상품으로 전락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 정책에 대한 권한과 통제가 초국적 자본의 손에 달리게 된다. 더 이상 일개 국가는 자국민의 필요에 기반해 국내 사회·경제 정책을 만들어 실행할 수 없다. WTO가 규정하고 있는 장벽에 속하냐 속하지 않느냐, 초국적 자본이 활동하는 데 장애가 되냐 되지 않느냐에 따라 한 국가의 정책이 유지되거나 철폐되는 것이다. 게다가 WTO는 분쟁해결 장치를 가지고 있어, 국제 무역 분쟁에 대한 막강한 "사법권"을 WTO가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강대국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이런 비관세장벽 철폐의 원칙과 분쟁 해결 권한이 세계 민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 여러 가지 예가 있다. 유럽연합은 국민 건강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우려해 미국산 호르몬 소고기 수입을 금지시켰는데, 이런 유럽연합을 미국이 WTO에 제소하였고, 유럽연합은 패소했다. WTO에 의하면, 유럽연합은 "국민 건강 보호"라는 "비관세장벽"을 발동해 부당하게 "자유무역"의 원리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럽연합이 유전자조작 곡물 수입 금지 조치를 발동한 것에 대해 미국 정부가 또 유럽연합을 WTO에 제소하려 하고 있다. 또한 미국계 메탈클라드사가 수자원을 오염시켜 멕시코 정부가 영업 재개를 불허하자 WTO의 지역판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멕시코 정부에게 1,670만 달러를 메탈클라드사에게 보상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몇 년 후 비슷한 이유로 캐나다 정부는 유독물을 방출한 에틸사에 1,300만 달러를 보상해줘야 했다. 만약 한국 정부가 공공성을 지킨다며 교육이나 의료시장 개방을 거부한다면, 부당한 비관세장벽을 구축했다는 명목 하에 투자자는 한국 정부를 WTO에 제소할 것이며, 우리는 우리의 공공성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우리의 혈세를 그들에게 보상금으로 지불하거나 보복조치를 당해야 할 것이다.

 

서비스협정의 본질: 공공영역 사유화

 

WTO는 약 20여 개 협정들을 가지고 있다. 이 중 핵심적인 몇 가지 협정들―농업협정(AoA), 지적재산권협정(TRIPs), 서비스협정(GATS)이나 최근에 협상의제로 채택해야 한다고 강대국들이 제기하고 있는 소위 '싱가포르이슈'―은 모두 농업을 희생시키고, 생명체에 특허를 부여하고, 공공영역을 파괴함으로써 초국적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다. 이 중 특히 공공영역의 사유화를 부추기는 서비스협정을 좀 더 자세하게 보자.

서비스협정은 WTO의 주요 협정 중 하나이다. GATT가 WTO로 전환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엄청난 성장 전망을 가진 서비스산업을 자유무역 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의 경우, 서비스 부문이 생산과 고용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위원회에 따르면 서비스 부문은 유럽연합 경제의 3분의 2, 총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다른 나라로 흘러가는 전체 해외 투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후반에 걸친 경제성장의 3분의 1 이상이 서비스 부문 수출에 기인하고 있으며, 제3세계 서비스시장에 초국적 기업이 투자한 금액은 1990과 1998년 사이 총 4,962억 달러에 달했고, 1990년 한 해에 156억 달러였던 것이 1997년에는 1,204억 달러로 성장했다. 2000년도에는 미국과 유럽이 각각 전세계 서비스 수출의 24~25%를 차지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개도국들의 도전에 대응하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서비스산업으로부터 보다 많은 이윤을 뽑아내고자 했던 미국과 유럽에게 서비스협정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서비스산업연맹(USCSI)과 같은 초국적 자본가 조직이 1995년 WTO 출범과 서비스협정을 위해 끈질긴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 정경유착과 부정부패로 파산에 이른 초국적 에너지·서비스 기업 엔론의 주요 인사들이 부시 및 클린턴 행정부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정치자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도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심지어, 유럽위원회는 서비스협정 자체가 "국가 사이의 이해를 조절하는 기구가 아니라, 기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초이자 가장 강력한 기구"라고 규정한 바 있다.

서비스협정은 12가지 분야를 포괄하고 있는데, 경영 및 전문 서비스, 통신, 건설과 엔지니어링, 유통, 교육, 환경, 금융, 보건의료와 복지, 관광, 문화·오락·스포츠, 교통과 운송, 그리고 나머지는 "기타"로 분류된다. 에너지는 "기타"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12가지 분야는 160여 개 하위 분야로 분류되어 있다. 결국 서비스협정에는 체신에서부터 연구개발, 건축에서 쓰레기수거 서비스까지 우리의 일상적 삶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환경서비스에는 상하수도 관리가 포함되어 있어, 결국 물까지 초국적 자본이 사유화하고 소유할 수 있는 통로까지 마련해준다. 그 뿐 아니라, 서비스협정은 "최혜국대우"와 "내국민대우"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어 초국적 기업에 대한 서비스 시장 완전 개방과 현지 투자를 전제하고 국내 기업에 대한 어떠한 특혜도 불법화하고 있으며, 초국적 기업을 제한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한 "점진적 자유화"의 원칙은 모든 회원국이 점진적으로 완전한 개방을 이뤄야만 하며 한 번 개방한 분야는 다시 개방 철회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서비스 관련 각종 무역분쟁 발생 시 회원국은 WTO 분쟁해결절차를 이용할 수 있는데,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이런 분쟁해결 권한은 공공성을 지키고자 하는 그 어떠한 노력도 다 무력화시킨다.

서비스협정은 서비스산업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이 당연히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 확보가 관건인 그들에게 서비스산업이 상대적으로 약한 제3세계가 주된 타겟이 된다는 것도 당연하다. 유럽연합의 양허요청안을 세밀히 분석한 세계개발운동(WDM)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연합의 양허요청 대상 국가 총 109개 중 94개가 개도국 또는 체제전환국이며, 최빈국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다. 유럽연합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금융, 정보통신, 교통, 유통 그리고 특히 상수도를 포함한 환경서비스 등이며, 금융서비스 자유화는 무려 84개국에 요구했다. 이런 자유화 요구는 제3세계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유럽연합이 개방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제3세계의 공공서비스 및 기간산업 중에는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 시 또는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시와 같은 매우 성공적이고 주민참여가 강한 상수도 및 기타 기간산업 시스템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한국에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 유럽연합에게 한국은 서비스 분야에 있어 무한한 성장을 약속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유럽연합은 한국에 전문서비스, 경영서비스, 체신 및 배달, 정보통신, 건설 및 엔지니어링, 유통, 환경, 금융, 관광, 뉴스에이전시, 교통·운송과 에너지 분야의 개방을 요청하였다. 특히, 유럽연합은 한국통신을 직접 지목하면서 해외 개인투자자의 소유제한을 완전히 철폐할 것을 주문하고 있으며, 금융 부문에 대해서는 매우 광범위한 개방 요구를 하고 있다. 또한 상하수도, 해운, 철도 유지관리, 도로 유지관리, 공항 관리, 에너지 굴착·생산·시설 서비스 개방도 요구하고 있어, 향후 유럽연합의 압력 하에 우리나라 기간산업의 사유화가 더욱 촉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특히 현재 전세계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물 사유화'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2000년 5월 특집기사에서 "20세기에 석유가 우리에게 약속해주었던 것을 21세기에는 물이 대신할 것이다.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귀중한 생필품이다"라고 하면서 "세기가 바뀌어도 꾸준하고 지속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곳을 찾는다면 물로 눈길을 돌려라"고 충고하고 있다. 대표적인 물 부족국 중 하나인 한국의 물 시장 성장잠재력은 어마어마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유럽 중심의 초국적 물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상하수도" 서비스 개방을 요청한 유럽연합의 양허요청안은 이런 기업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어, 향후 수자원공사 사유화와 생태계 전체의 공동 자산인 물에 대한 자본의 독점은 바로 우리의 얘기가 될 수 있다. 교육, 보건의료와 문화에 대해서는 유럽연합보다 오히려 미국의 이해가 더욱 높을 것으로 추정되나, 미국의 양허요청안이 공개되지 않고 있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교육 분야에 있어 한국이 올해 3월에 양허안을 제출하였고 실제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개방요구를 할 경우, 정부는 양 국가 간의 정치·경제적 정황 상 "불가피하다"며 교육시장 개방을 강행할 것이다. 나아가, 3월 양허안에서 빠진 보건의료와 방송시장 개방도 경제자유구역 시행 및 양자간 투자·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일차적으로 관철시키고 WTO 양허안에도 추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금부터 양허요청안과 양허안을 두고 해당 국가 간 양자간 협상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146개 회원국 중 18개국만 양허안을 제출한 상태여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과연 서비스 협상이 시일 내 끝날지 미지수이다. WTO의 무역협상위원회에 참가한 미 대사는 "대부분의 양허안이 아직 제출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칸쿤 때까지 대다수 WTO 회원국이 협상에 참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칸쿤 전까지 모든 양허안이 제출되어 협상되도록 해야 함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미국의 의지와 동시에 서비스협정의 난항을 잘 드러내준다. 100여개 이상의 회원국으로부터 추가 양허안을 받아내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불투명하지만, 서비스협정에 대한 유럽연합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면 칸쿤 각료회의 전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비스협정의 협상을 진척시켜 그들의 이해대로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WTO반대, 서비스협정 전면 거부"를 통해 공공성 쟁취를!

 

신자유주의의 핵심 전략 중 하나가 공공영역 축소에 있고, 2000년부터 시작된 서비스협정 협상의 본질이 있는 그대로 폭로되고 있는 만큼, 농민들의 농업협정 반대와 함께 공공영역 사유화에 대한 저항은 반WTO,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있어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투쟁이다.

예를 들어, 물 사유화에 저항한 볼리비아 코차밤바 주민들의 투쟁이 유명하다. 볼리비아의 코차밤바 시는 자발적 자유화의 일환으로 아구아스 델 투나리 콘소시엄에 40년 간 코차밤바 시의 물을 사유화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줬다. 수도세가 200% 급등하자, 코차밤바 민중들은 거리로 나왔고, 경찰 및 군대와 수개월 간의 대치 속에서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결국 다음 해에 계약을 해지시키고 콘소시엄은 철수했다. 그리고 주민들은 주민 참여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적인 수자원 운영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2001년에는 엔론이 인도 마하라슈트라에 진출했었으나, 주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환경을 파괴하자 지역주민들은 끈질긴 투쟁을 진행했고 결국 엔론은 이 지역에서 쫓겨났다. 콜롬비아에서도 지난 2002년 기간산업 사유화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중앙 정부 청사를 한 달 동안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사유화 계획을 중단한 바 있다. 그리고 작년, 한국 발전소 사유화에 반대하는 발전 노동자들의 파업은 세계 사유화 반대 투쟁에서 중요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한편, "공공성"에 대해 비교적 강한 의식을 가지고 1980년대부터 기간산업 사유화와 교육 등 공공서비스 자유화에 지속적인 투쟁을 해오던 유럽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작년부터 진행된 서비스협정 반대 캠페인의 일환으로 양허안 제출 시한을 앞둔 올해 3월 13일, "유럽 서비스협정 반대 공동 행동의 날 투쟁"을 여러 도시에서 동시다발 진행하였다. 유럽연합의 양허요청안이 유출된 바로 직후에 진행된 이번 투쟁의 초점은 유럽 시장 개방보다는 유럽 정부와 기업들에 의한 제3세계 자원과 민중들에 대한 착취에 맞춰졌다. 그리고 물론,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양허안 제출과 교육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교육 주체들의 투쟁이 벌어졌었다. 비록 양허안 제출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양허 범위를 축소했을 뿐 아니라 WTO와 서비스협정에 반대하는 대중 투쟁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고, 교육 분야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WTO반대 투쟁 전반이 보다 발전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직접적으로 "WTO"나 "서비스협정"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법 폐기 투쟁이나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온 기간산업 해외매각/사유화 반대 투쟁도 신자유주의에 의한 공공성 후퇴에 저항하는 것으로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국제적 기제인 WTO, 그리고 특히 사유화를 강제하고 국내 규제를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면서 인간의 삶 모든 부분을 초국적 자본의 이윤놀이로 전락시키는 서비스협정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 진행되어야 한다. 9월 각료회의를 앞두고 비공식각료회의와 서비스협정의 양자간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 특히 WTO와 서비스협정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정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WTO가 현재 처해있는 여러 가지 위기가 심화될수록 강대국들은 발악을 하면서 더욱 폭력적인 전략과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 WTO에 의한 공공성 파괴를 막아내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WTO의 "개방화" 공세로부터 특정 분야를 "보호"하자는 수세적인 논리를 벗어나, WTO로부터 그 분야의 예외 또는 이탈을 주장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WTO와 서비스협정을 무력화시켜야 한다. 전자와 후자 사이에 그다지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으나, 사실은 중요한 전략적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개방화/수입"과 "보호"라는 이분법에 빠져 우리가 진정 "보호"하고자 하는 바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외" 또는 "이탈"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내고자 하는 바가 "해외" 서비스(자본)의 위협을 받는 "국내" 서비스(자본)가 아니라는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동시에, 오히려 "공공성"에 대한 담론을 강화하면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서비스협정 또는 WTO가 문제되는 것은 단순히 "개방"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만이 아닐뿐더러, "개방 반대"는 현 체제 내에서 사실상 "개방 유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중대한 공공적 의미를 갖는 서비스는 WTO 체제 내에서 협상되어서 안 된다고 못 박아야 하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1998년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대한 저항을 거치면서 성장한 세계 많은 문화인들의 투쟁은 단순히 WTO가 자국 문화를 훼손시킨다는 민족주의적 논리를 넘어, 문화적 예외를 주장함으로써 전세계적 차원에서 문화다양성을 실현하는 대안적 체계 구축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문화란 상품이 아니라 결코 자본이 독점해서 안 될 "생활양식의 총제"라는 논리로 WTO에 대응하고 있다. 올해 3월에 진행되었던 교육개방 저지 투쟁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올해 봄에 양허안 제출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던 교육 주체들의 투쟁은 교육시장 "개방" 반대(물론 이런 구호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를 넘어 평등한 공교육을 수호하고, 자본 및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교육 주권의 잠식을 막아내고, 나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교육, 참여교육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고 있다. 지적재산권이라는 미명 하에 초국적 자본이 특허권을 부과하고 이윤을 보장받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를 펼칠 수 있다.

둘째, 여러 서비스 중 특정 분야의 예외 또는 이탈을 주장하는 동시에, WTO 자체에 대한 반대와 서비스협정 자체에 대한 거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것은 공공영역 사유화에 대한 각 부문별 투쟁들의 연대와 공동 전선을 형성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으로는 교육, 문화 및 보건의료 각 부문별로 진행되고 있는 WTO반대 투쟁이 해당 분야만의 개방화 반대를 넘어 공공영역 전반이 자본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것 자체를 명확히 반대해야 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기간산업 사유화 저지 투쟁이 WTO와 서비스협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 속에서 이에 대항하는 투쟁을 조직화해야 한다. 전자의 경우, 이미 WTO에 대항하는 조직화와 대중 투쟁의 경험이 있기에 그것을 기반으로 이제는 보다 광범위한 투쟁을 견인하고 주체들을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고 후자와 관련, 투자 완전 자유화 원칙과 분쟁 해결 (사실상은 보복) 장치로 무장하고 있는 서비스협정 자체를 저지시키지 않는다면 한 국가의 기간산업 사유화 계획은 잠시 유예될 수는 있어도 결코 중단될 수 없기 때문에, 그 동안 진행되어온 사유화 저지 투쟁과 WTO 반대 투쟁 간 연계를 맺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비스협정은 WTO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을뿐더러 공공영역 축소가 초국적 자본의 기획과 신자유주의 논리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만큼, 광범위한 연대 속에서 진행되는 서비스협정 중단 요구는 곧 WTO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투쟁이자 강력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될 수 있다.

셋째,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점차 파괴되고 있는 공공영역에 대한 대안 모색과 창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신자유주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막아내는 데 있어 "있는 그대로"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보다 급진적이고 민중적인 대안을 형성함으로써 정부와 자본이 주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불가피론", "사유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 "경쟁력 강화" 등 논리에 대해 실천적인 역공세를 취해야 하며, 사회적 공동 자산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어떻게 이룩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진행되어야 한다. 민중적 "공공성"의 논리를 구축하는 것은 곧 신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대안을 형성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오는 9월 10일에서 14일까지 멕시코 칸쿤에서 5차 각료회의가 진행될 때, 전세계 민중들과 함께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자. 지난 1999년, WTO 3차 각료회의가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었을 때, 전세계에서 5만 명이 시애틀에 모여 각 국 각료들이 회의를 하고 있던 회의장을 봉쇄하면서 "WTO 반대!"를 외쳤고, 이와 동시에 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각료회의 회의가 하루 연장되고 미국과 유럽연합 간, 그리고 선진국과 개도국 간 갈등과 대립이 계속되어 결국 관료들은 당시 발족 예정이었던 뉴라운드를 출범시키지 못했다. 그 때부터 WTO에 반대하는 파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커졌다. 이번 각료회의 때는 시애틀투쟁을 능가하는 투쟁을 만들자고 전세계 민중들이 결의를 하고 있다. 각료회의 개막식 하루 전인 9월 9일에, 그리고 폐막하기 하루 전인 13일에 각각 "WTO 반대, 신자유주의와 군사화 반대"를 중심으로 이미 "국제공동행동의 날"이 제안되고 있다. 비록 우리의 경우 추석 때문에 국제적으로 제안되고 있는 국제공동행동의 날 당일에 함께 투쟁을 하기 힘들 수 있지만, 대신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8월말부터 행동주간을 선포하고 9월 6일에 "WTO반대 범국민대회(가)"를 개최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멕시코 칸쿤에 직접 가서 전세계로부터 모여든 노동자, 농민, 환경운동가, 여성, 학생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자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이번 9월 투쟁을 계기로, 남한에서의 공공영역 사유화 반대 투쟁이 비약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