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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 요리를 잘하는 보일러공 : 원영만 강원지부장

2002.12.10 12:03

권혁소 조회 수:1711 추천:4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간단하다. 나는 원칙의 변두리에서 놀기를 좋아하고 그는 항상

요리를 잘하는 보일러공

-원영만 강원지부장

권 혁 소(전교조 강원지부 사무처장)

 

나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아주 간단하다. 나는 원칙의 변두리에서 놀기를 좋아하지만 그는 항상 원칙 안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때로 나쁜 짓도 하지만 그는 그럴 시간도 없고, 혹시 남들이 나쁜 짓을 할 때는 모르는 척 눈도 감아주고 해야 하는데 그에겐 그런 주변머리(?)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읽지만 그는 아직도 딱딱한(?) 책을 읽는다. 그러니까 그는 적어도 내 관점에서는 항상 '운동하는 삶'을 의무로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영어 선생이면서도 미국에 대해 냉정한 사람, 미국의 장갑차에 대해서는 더욱 냉정한 사람, 하지만 장갑차에 죽어간 못다 핀 아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편집증 이상의 애착을 갖는 사람,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드는 강단의 사내, 그가 원영만이다.

2년이나 한 사무실 한솥밥 식구로 지내온 사람이 제 식구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저 싱거운 '주례사'로 그치지 않겠냐고 지레 짐작할 분이 계실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체질과 생각이 그와 다르고, 또 내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므로 독자들은 이에 대해서는 염려를 붙들어 매고 읽어도 좋다.

전교조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부부교사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그들의 대부분은 교육운동을 반쪽짜리 '품앗이' 로 한다. 무슨 얘긴가 하면, 처녀 총각 때는 둘다 억척스레 일하다가도 결혼을 하고 나면 어느 한 쪽만 밖으로 돌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은퇴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실정에서 그나마도 대견한 것이지만 말이다.

이 '품앗이' 가족은 가족과 사회에 대한 역할을 분담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러다보니 밖으로 도는 쪽이 남자들인 경우, 그들은 가정일에서는 '빵점'의 평가를 받기 일쑤다. 점입가경, 한 때 그렇게도 열성적이었던 아내(남편)는 '아니, 전교조에 당신 밖에 없어?' 하면서 바가지 아닌 바가지를 긁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원영만 황선희 부부는?

이 부부는 '안팎 해직' 출신이다. 그쯤 했으면 한 분은 '가정을 수호하는 성업'을 위하여 일찌감치 은퇴할 만도 하련만 한 분은 지부장으로, 한 분은 철원지회장으로 둘이 함께 공식 회의에 참석한다. 벌써 4년째다. 뿐만 아니라 그가 사무실에서 각 지회장들에게 전화를 걸 때도 그가 아내를 호칭하는 말은 언제나 '철원지회장님'이다. 나는 그들이 회의 도중 잠시 쉬는 시간에도 '여보, 당신' 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 여름 원영만 선생이 -그는 주로 춘천의 부모님과 강원지부 전임자 숙소에 얹혀 살다가 어쩌다 한 번 아내에게 간다.- 강원지부 집행부 식구들을 철원, 그의 아내가 주인으로 되어있는 한 초등학교의 관사로 초대했다. 주절주절 여름비가 내리던 날이었고 그날의 메뉴는 주로 남들이(?) 여름철에 먹는 그 음식이었다. 그의 요리 솜씨를 말하기 전에 그는 각(角)을 참 잘 뜬다. 하다못해 개울에서 잡은 물고기도······. 각을 떠본 사람은 알겠지만 각을 뜰 때는 언제고 같은 부위에 칼을 대야 된다. 공연히 이곳저곳에 칼을 댔다가는 그만 재료를 망치기 마련이다. 그가 각을 잘 뜬다는 말은 꼭 찔러야 할 곳에 칼을 댄다는 얘기다. 아무튼 그는 요리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남자다. 그날도 우리는 그의 요리 덕분에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의 요리에는 대부분 그가 관사 앞 손바닥만한 채마밭에서 키운 푸성귀가 들어간다. 직접 키운 푸성귀 얘기를 하는 것은 그가 고추 몇 줄 열무 몇 고랑이라도 키울 줄 아는 사람, 수세미를 키워 아내의 얼굴에 수세미 팩을 올리는 사람이며 그것이 원영만의 속모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부 사무실에서 오랜 동안 점심을 직접 지어 먹었는데 그의 주특기는 비빔국수다. 토란대를 썰어넣고 끓이는 된장국, 수제비를 뜯어 넣은 매운탕도 일품이다. 그런가 하면 땅에 묻어두었다가 늦봄에 꺼내오는 갓김치는 먹거리에 대한 그의 철학적 손맛이 깃든 것이다. 보통 남자들이 솜씨랄 것도 없는 '라면 끓이기'나 '식은 밥 볶기' 수준에 머무는 것에 견주어, 그는 가히 요리사 수준이다. 그러니 그가 지회장에게 감미롭게 '여보' '사랑해'를 읊조리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가 얼마나 자상한 남자일까는 너끈히 상상이 가리라. 또한 그에게는 두 명의 사내아들이 있는데 큰 녀석은 '수학'에, 막내 녀석은 '자수'에 관한 한 명인(名人) 수준이다. 황선생의 말에 의하면 둘 다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이 곧 원영만이라고 오판해도 무방하다.

그는 최근 20년 동안 체중 변화가 없다. 금연과 흡연을 자유자재로 한다. 그런 그를 혹자들은 아주 냉정한 사람으로 느낄 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그가 살아온 이력을 보면 더욱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는 초대 및 9대에 이어 제10대 강원지부장에 당선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의 이력을 잠깐 들춰보면 그가 얼마나 '운동'에 철저한 사람인가는 한 눈에 알 수 있다.

1986년 이른바 'Y교사협의회'가 만들어지는데 그는 '춘천YMCA교사협의회' 총무 일을 시작으로 단 한 순간도 실천의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에게 철두철미한 사람이다. 다음 이력을 보라.

·1986년 춘천 YMCA 교사협의회 총무
·1986년 5.10 교육민주화 선언 참여
·강원교사협의회 창립 주도 및 초대 사무국장(1987-1988)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 초대 지부장
·1989년 원주 학성중학교에서 해임, 구속, 파면
·1990년 전교조 강원지부 조직국장
·1991년 전교조 강원지부 원주지회 교육선전부장
·1992년 전교조 강원지부 부지부장
·1993넌 전교조 강원지부 정책실장
·1994년 신철원중학교 복직
·전교조 강원지부 철원지회장(1994-1998)
·전교조 강원지부 제9대 지부장(1999-2000)
·전교조 강원지부 제10대 지부장(2001-2002)

단 한 번도, 단 한 해도 그는 실천의 현장을 떠나지 않고 최전선에서 싸워왔다. 지부장에서 조직국장으로, 조직국장에서 지회 교선부장으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고 그가 있었다.

교사 원영만의 삶이 곧 전교조 강원지부의 역사다.

작년 강원도교육청 마당에서 단체협약을 이행하라는 14박 15일 천막 농성을 할 때도 그는 이따금 교육청 화장실에서 등목으로 땀을 식혔을 뿐, 잠시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남들에게는 더러 사우나도 다녀오라 하고 '외출'도 다녀오라 했지만 그는 빡빡 민 머리로 보름을 버텼다. 그래서 그 앞에서는 누구도 '이젠 좀 쉬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렵다. 원영만이 강원지부 승리의 원동력이었다면 '주례사'가 될까?

작년 상반기에 나는 그와 함께 강원도내 400여 학교를 찾아다녔다. 침식을 같이하는 현장방문이었다. 여관방에서 그는 반듯하게 누운 채로 고스란히 아침을 맞는다, 하루에 7, 8개 낯선 학교를 헤매며 찾는데, 게다가 강원도 길은 또 좀 험악한가? 나는 투자한 시간이 아깝고 무조건 조합원을 늘리고 봐야한다는 생각에 한 명의 조합원이라도 더 만들기 위해 보험 외판원처럼 구걸(?)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는 교사의 뒤꽁무니에다 대고도 '전교조 보험에 들라'고 넙죽 조아렸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조합원의 증가는 자발적이고 점진적이되 조합원 개인의 타당성과 당위성, 나아가 운동성에 기초해야 한다, 합법화 이후 급작스런 조합원 증가로 인해 전교조가 얻은 내부적 변화가 무엇인가?" 그는 늘 날카로운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병력이 있어야 전쟁을 할 것 아닌가' 따졌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는 '양비론'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는 그가 오류를 범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가 옳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의 판단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가 내게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조합원 확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강화가 먼저다. 교육되지 않은 조합원을 우선 확보하기보다는 확보된 조합원을 우선 교육하여야 한다. 한 명의 활동가가 열 명의 조합원을 조직하는 것보다 열 명의 활동가가 한 명의 조합원을 조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노동조합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고 처음 그 모습대로 커갈 수 있다.'

이런 얘기를 덧붙이면 상상에 도움이 될까?

그는 가방에 늘 수지침을 넣어 다닌다. 그 자신 자기 몸을 진단하여 스스로 침을 꽂기도 하지만 침을 넣고 다니는 이유는 동지들을 위한 배려에서다. 물론 학교에 있을 때는 '침선생'이었다. 그의 수지침 경력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이다. 그가 남의 손에 침을 꽂을 때도 인정사정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손에 수십 개의 침을 꽂을 때 보면 '이 사람 참 무섭구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원영만, 그래서 그는 참 단호한 사람이다. 지금 전교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2000년, 2001년, 2002년을 지나오면서 우리는 정말로 많은 투쟁을 했지만 번번이 지는 싸움이었다. 설령 이길 뻔하다가도 지도부의 판단 착오로 역전패를 당하곤 했다. 주체였던 동지들이 자꾸 객체로 돌아앉고 있다.

2002 단체교섭을 위해 무려 10개월 이상을 답답한 테이블에 매달려 있을 때였다. 배수의 진을 치고 마지막 본교섭을 개최할 때, 사실상 더 나올 것은 없으리라고 판단한 소위원들이 '이 쯤'에서 교섭을 타결하는 것이 어떻겠는가고 넌지시 타협안을 꺼냈다. 그는 대뜸, '이렇게 체결하면 조합원들이 잘했다고 할까?' 하면서 당신 혼자 누워있을 테니 나가서 좀 쉬고 오란다. 결국 우리는 그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 때문에 5일간을 정회하고 속개된 최종 교섭을 무려 42시간이나 진행하였고 쟁점 사항에 대해 모두 우리 쪽에 유리하게 이끌어 2002년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런 '배째라'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배짱은 이번 코미디로 희화되었던 교육부 장관의 '똥고집'과는 근본이 다르다. 아니 장관과 비교하는 것조차 불결하다. 이를테면 그의 배짱은 이렇다.

그가 10대(01∼02) 강원 지부장에 출마할 때였다. 강원지부는 그 동안 전임자라고는 달랑 지부장 혼자였다. 그런데 그가 배짱 두둑한 공약을 하나 걸었다. 조합원 확대와 강화를 위해서 전임자를 확충하겠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초안은 이랬다. 전임자 3명을 확충하고 전임자의 임금은 강원지부 조합원들의 특별기금 3,000원으로 보전한다. 당시 강원지부의 조합원은 채 3,000명이 안 될 때였다.

그는 공약을 이행하였다. 대의원들을 설득해 낸 것이었다. 아니 대의원들이 적극 지지할 수 있도록 선전작업을 충실히 한 것이었다. 말 나온 김에, 그는 대중 연설을 잘한다. 마른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모르지만 그의 대중 연설, 특히 즉흥(?) 연설은 '원영만을 원영만 답게' 하는 또 하나의 '체크포인트'다. 그의 진면목을 접하고 싶다면 그의 연설을 한 번은 들어봐야 한다.

그의 부친은 지금은 연로하여 일손을 놓았지만 망치 하나로 놋그릇을 만들어내던 유기장이였다. 원영만은 '진짜노동자'의 아들로서 확고한 계급주의를 체득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은 언제나 미래를 내다보는 일이다. 지금 당장의 싸움보다는 공룡 같은 신자유주의에 맞설 싸움을 준비해가는 이가 원영만이다.

강원지부 사무실은 오래된 교육청 부속 건물로 난방 시설이 없다. 우리들의 학교가 아직 그렇듯 대신 화장실에는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 그의 손 또한 노동자의 손이어서 잦은 고장에도 우리는 단 한 번도 기술자를 따로 부르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그는 아내가 살고 있는 학교 관사의 보일러도 손수 수리한다. 물론 동료 교사들의 것까지도.

편집자는 내게 그에 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써달라고 주문했지만 그는 결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생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모르긴 해도 그의 주량은 마음껏 마시면 아마 소주 한 병 쯤 될까? 그것도 웬만한 분위기가 아니고서는 절대 그렇게 마시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아직도 그가 술에 제압당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가 그나마 '자기 용량' 이상의 술을 마시는 경우는 일 년에 두어 번, 바로 여름 겨울의 조합원 연수가 끝나고 갖는 단결의 밤이다. 그는 소주 한 병의 주량이면서도 참석한 전 조합원에게 한 번씩은 잔을 건넨다. 그래도 그는 '에피소드'를 제공하지 않는다. 강철같은 사내, 그가 원영만이다.

난로도 놓고 보일러도 손 봐야 하는데 무슨무슨 회의로 투쟁으로 그는 벌써 여러 날 째 외출중이다.

그가 돌아와야 라틴아메리카 노동자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가 돌아와야 맵고 새콤한 비빔국수를 먹을 수 있다.

그가 돌아와야 진정한 교육노동운동에 대한 전망을 꿈꿀 수 있다.

원영만,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혼자서 꾸는 꿈이 아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에 대해서, 힘에 대해서, 승리에 대해서, 노동운동의 원칙에 대해서 궁리하고 있을 게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앞의 말은 그저 질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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