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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위기의 남자

2002.07.24 15:01

김상태 조회 수:1440 추천:3

미디어_TV비평

'위기의 남자' 그리고 '위기의 한국'

김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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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를 하는 것에도 특성과 장단점이란 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구는 논리적으로 말하고 누구는 우스운 소리를 잘하고 누구는 편안하고 쉽게 말하고 등등이 그것이다. 요새 한

참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월화드라마 '위기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에는 이른 바 작품으로서 미덕이란 것이 좀체 보여지지 않는다. 대신 멍청히 수동적인 자세로 보고 앉아있는 시청자에게는 알아서 흥미와 자극을 가져다주는 순간적이고 부분적인 장치에 능숙하다. 말로치면, 별 내용은 없는데 적당한 때 한 번씩 소리를 치거나 이상한 단어를 사용해서 듣는 이를 졸지는 않게 하는 기술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울거나 호들갑을 떨고, 사람들은 종종 소리치며 싸우고, 간혹 시끄럽거나 넘어지고, 계속해서 불륜 현장의 전형적이고 유치한 시퀀스가 삽입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곤 한다. 티브이를 바보 상자라 부르기도 하거니와 지치고 힘들면 이 시끄럽고 작위적인 장치들이 알아서 우리를 자극해 주는 수동성을 우리가 선호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는 드라마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피로한 수동성 때문에 우리는 다소 괴상한 코미디나 쇼프로를 찾아다니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수동적인 걸까. 왜 우리는 항상 피로한 걸까. 대기업의 차장이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왜 아내는 매일 돈이 없다고 쩔쩔매는 걸까. 따라서 이 드라마는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처해 있는, 그래서 더욱이나 무서운, 경찰봉이나 체포보다 더 잔혹한 우리 자신의 현재적인 위기를 다양한 차원에서 증언해주고 있다.

드라마의 소재와 주제는 이 위기를 더욱 명백하게 증언하고 있다. 알다시피 드라마 '위기의 남자'는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불륜이다 못해 불륜이 도처에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한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불륜은, 그것을 소재로 하는 통상의 드라마나 소설이 강조하는 슬프고 아픈, 혹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등과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불륜은 삶과 존재의 좌표를 상실한 사회적 존재의 갈데 없는 일탈과 같은 것이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아 심심한데 연애나 해볼까'라는 푸념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아주 일상적이면서도 무서운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인가 하면 사람이 정상적이고 총체적인 삶을 강탈당하거나 어떤 이유로 동맥경화에 걸린 것처럼 막혀버리면 반드시 이와 같은 연애나 성적 자극으로 도피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요즈음의 청소년 문제나 사회적 문제의 대부분은 이 막혀버린 현실과 그로부터 도피하려는 감각적 일탈이라는 현상을 도외시하고서는 전혀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다. 이 불륜은 앞의 피로에 지친 우리의 수동성과 함께 우리 자신과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막막한가를 수십대의 확성기로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 드라마를 넋을 잃고 바라본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식당에서 일하는 여 종업원들이 좀 한가한 시간이면 온통 둘러앉아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정도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렇게 최악의 상황으로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식의 사랑이나 연애, 심지어는 불륜마저도 실상으로 보자면 지배계급에게만 존재하는 것인데도 우리는 옛 중세에 음유시인들의 영웅이나 귀부인들 연애 이야기를 듣고 있듯 그것에 탐닉하는 것이다. 억압은 천년 전과 동일한 것이다. 대체 우리는 어떤 곳에 어디에 살고 있는 걸까. 복권도 많고 주식투자도 많이 하고 재테크의 방법도 많고 아이디어가 만발하여 모두에게 기회가 충만하다고 여기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왜 이 황당한 불륜이야기에 넋을 뺏기는 피로한 저녁들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노동자의 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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