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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밥꽃양 상영회를 다녀온 뒤

2002.07.24 14:59

최이숙 조회 수:1238 추천:5

제대로 투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니면 제목을 무얼로 할까?

2002년 봄 그리고 1998년 여름
-「밥꽃양」 서울 상영회를 다녀와서

최 이 숙 ∥ 교육문화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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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흰 페이지를 채워가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딸그락거리던 2002년 4월 2일 저녁 33일간의 발전노조 파업이 '극적인?' 협상 타결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노조원들의 격렬한 항의로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를 한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어쨌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33일간의 파업을 마치고 직장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잠시 시계태엽을 되돌려 볼까 한다. IMF가 터져 국가발전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지배계급이 정리해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꼬드기고 다그쳐 만들어내려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8월의 뜨거운 여름을 달구었던 36일간의 현대자동차 파업, 그리고 정리해고 인원의 최소화 방침 속에 250-300명의 정리해고로 마무리되었던 그때의 상황으로! 이제 「밥꽃양」이라는 한편의 영상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속에서 잊혀져 갔던 그 기억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본다. 가슴 미어지는 2002년 봄 투쟁의 결말을 과거로 돌아가 다시 느낀다. 하지만 단순한 고통의 미어짐이 아니라, 우리가 가슴앓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도 짚어보는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

98년 현대자동차 36일간의 투쟁
그 뒤에는 식당 아줌마들이 있었다.

'제2의 건국' 그리고 '국가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진행되었던 정리해고에 항거하여 일어선 98년의 투쟁은 그해 여름 울산에서 정점에 이른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식단을 만들어 내는 존재인 밥짓는 아줌마들 역시 청년 실업자인 아들을 위해서 그리고 정리해고의 칼날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현대자동차에 근무했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여름의 투쟁 현장에 나섰다.

"그 당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싸웠습니다. 회사에서 전기도 가스도 끊을 거라고 그랬지만 식당은 괜찮을 것이라 여겼어요. 하지만 웬걸, 식당까지 가스를 끊더라구요. 다행히도 물은 있었어요. 쌀을 빻아서 빚고 야채 모아서 찬을 만들고 했습니다. 가족대책위 사람들, 우리가 36일동안 밥을 해먹이지 않았으면 아마 무언가 같이한다는 것은 힘들었을 것입니다. "(식당노조 위원장의 말) 국자를 들고 물통을 들고 열을 지어 구호를 외쳤던 수줍은 그녀들, 그들은 파업에 참여하였던 조합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파업 대오를 뒷받침했던 버팀목이었다. 밥 짓는 아줌마들이 투쟁의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파업의 심리학 -관람자, 그리고 부재

숱한 세월을 몸바친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내쫓긴 사람들의 바닥 모를 배신감과 울분, 이것이 파업을 이끌어가는 주된 힘이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느낌은 한 조합원의 말처럼 초인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었으리라. 이 같은 울분이 회사측 간부들과 정부 중재단에게 온통 화살이 되어 날아가 꽂혔다. 하지만 파업이 흘러가는 동안 이들의 울분은 지도부에 의해 점점 제어된다. '지도부는 생명이다', 그리고 '김광식!'을 외쳐대는 가운데, 사람들의 운명이 몽땅 노조지도부에게 위임되었고, 다음 투쟁 방향에 대한 활발한 토론과 이견이 '단결해야 한다!'는 명제에 의해 잠재워졌다. 시시각각의 상황과 투쟁방향에 대해 조합원과 가족들은 그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지도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한껏 욕을 퍼부었던 TV와 라디오 뉴스를 통해 전해 듣는다. 조합원들이 정부의 중재단에게 그리고 회사의 협상단에게 분노의 욕설을 날리는 동안, 지도부는 협상장에서 카메라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포로가 되어 이들과 함께 '화해의 포즈'를 연출하고 있었다. 파업 과정에서 평조합원들은 파업의 최대 관객으로 탈바꿈했다.

"8월 21일 아침 위원장이 우리 아줌마들에게 '오늘 협상에 들어가는데, 참 어렵다. 아줌마들의 결정이 필요하다. 9시까지 결정해줄 수 있겠느냐?'는 말을 하였습니다. '조합원들과 의논을 해봐야한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위원장이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정 안되면 우리가 희생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영상 중에서-

문제를 은폐시키는 중재 과정 속에서, 지도부는 파업의 관람객들 중에서 투쟁기간 내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고 파업을 지탱하는 큰 버팀목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가장 힘이 없었던 40-50대 아줌마들을 희생양으로 지목했다. '노동운동은 그런거 아니야'라는 평조합원들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여성 가장들은 남성 가장들의 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희생을 강요당했고 결국 그들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파업의 최종 국면에 부재(不在)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1년 뒤, 그들은 더 이상 조합원이 아니었다.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식당이라는 똑같은 공간에서 식당 아줌마들은 사원들을 위해 변함없이 밥을 한다. 똑같은 식당 그리고 똑같은 사람들. 겉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다. 바뀐 것이 있다면 사장이 현대자동차 사장에서 노조위원장으로 바뀌었을 뿐… 하지만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점심시간도 따로 없이 식당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서둘러 밥을 먹는다. 임금은 절반으로 줄었고, 인원도 줄고, 다른 업체와 경쟁을 하기 위해, 이중 식단을 짜는 등 노동강도는 더 늘었다. 바뀐 건 이뿐이 아니었다.

"많이 주면 돼지밥이냐고 그러고 적게 주면 그게 밥이냐고 그러구… 자기나 나나 둘다 똑같이 조합비 내는 조합원인데, 밥짓는 아줌마로 나를 보는 거에요"(영상 중에서)

한 식당 노동자가 절규했듯이, 그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조합원이었지만, 그들의 생활은 자동차 공장의 남성들과 동등한 노동자가 아니라 단지 식당 아줌마일 뿐이었다. 원직 복직을 위한 출퇴근 투쟁의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고소·고발, 그리고 채권가압류 및 재산가압류 등의 탄압을 받았지만, 손해배상 투쟁의 과정에서 배제된다. 상황이 호전되면 모두 원직 복직 시켜주겠다는 회사측 그리고 노동조합 측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대의원도 노조위원장도 노조원들의 신분보장을 위한 요구에 대해 단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례적인 말만 남길 뿐이다. 그녀들의 신분과 생존은 이제 믿고 의지하였던 노조지도부가 아닌 그들 스스로 개척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급기야 원직복직과 신분보장을 위해 차디찬 겨울 바람 속에 노조 사무실 앞에 천막을 친다. 그리고 밥을 포기한 채 목숨을 건 단식농성을 벌인다. 은폐된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감추어져왔던 자신들의 존재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

겨울의 텐트, 드러난 이면의 구조들

13일간의 단식농성을 담은 영상의 마지막 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의 진보 노동운동의 이면을(치부를) 벌거벗겨 드러냈다. 나이 40-50줄의 아줌마들이 추운 겨울 식당 주인인 노조 지도부에 맞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몇 차례 협상에 들어간다. 한 사람의 위치는 그 사람이 처해있는 사회적 관계망 및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였던가? 노동자의 호민관 노동조합이 98년 회사 및 정부 중재단이 있었던 자리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노조의 지도부와 대의원으로 구성된 중재단은 98년 노동자에게 정리해고를 강요한 정부 중재단과 마찬가지로 아줌마들에게 투쟁의 수위를 낮추라고 다그친다. 98년에 '가진 자'들이 한 인간의 삶의 권리가 어떻게 되든 눈썹도 미동하지 않았듯이, 아줌마들이 '다 쥑이라'고 울부짖고 병원으로 실려가는 와중에도 노조지도부는 아줌마들에게 그저 '몇시까지 협상안을 만들어오라'고 요구할 뿐이다. 한 노조간부가 말하듯이 현대자동차식당 아줌마들의 원직 복직문제는 98년 파업 당사자 누구에게도 자유롭지 않은 문제였는데도 모두들 피해가려고만 한다. 13일간의 단식농성은 노조와의 불안정한 타협1)으로 마무리된다. 자신들의 선택이 진정으로 옳았는지, 나지막한 성찰의 말을 속삭이는 가운데 영상이 마무리된다.

Epilogue- 희망이라는 말 속에 묻혀진 것들

[밥·꽃·양]이 제기하는 문제, 98년 현대 자동차의 정리해고 투쟁과 그 뒤로 일어난 아줌마들의 투쟁이 남긴 잔영을 몇 장의 글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2시간 분량의 이 영상에는 그동안 우리 운동 사회가 안고 있었던 뒤엉킨 문제들이 더덜없이 투영되어 있다. 정리해고의 문제, 빈곤의 여성화, 그리고 노동조합 안의 끈덕진 권위주의적 가부장주의의 흔적 등등…

영화가 끝난 뒤 나눈 '감독과의 대화'에서 임인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이라는 것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다. 내일·미래를 상징하는 희망이라는 말 속에서 오늘의 갈등과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밥꽃양」이 묻는 것은 그동안 '희망'의 그늘에 가리워졌던 '운동의 습속(習俗)'이 무엇이었느냐다. 가진 자들의 습속과 너무나도 닮아버린 우리들의 습속 말이다. 적들이 국가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조직의 단결과 투쟁의 승리를 외쳐댔다. 지배집단이 국민을 관객으로 길들였을 때, 우리는 조합원들을 투쟁의 관객으로 눌러 앉혔다. 지배집단이 여성과 같은 주변화된 존재들을 완강하게 배제했듯이, 운동진영 역시 여성들의 성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그들을 멀찍이 내치기 시작했다.2) 가장 주변으로 밀려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옹호해야할 노동조합이 그들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희망!'을 그리는 구호 속에 감추어진 지금의 문제를 새삼 숙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현상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모순은 순서대로, 단계별로 풀 일이 아니라 모두 한꺼번에 풀어가야할 문제임을 밥꽃양은 말해주고 있다. [밥꽃양]은 이 시간 현재 여전히 진행형이다. 모순적인 주류 문화와는 다른 대안적인 문화 구조를 바탕으로, 해방의 싸움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늘 '현재 진행형'으로 남을 것이다.

주--------------------------
1) 이후 그녀들의 투쟁은 삭발, 알몸시위등으로 이어진다
2) 기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실제 노동조합에서 또는 사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의 비율은 일선 회사에서의 여성 노동자의 비율보다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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