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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영국교육개혁에서 배우기_강신현역

2002.07.24 14:39

조프 위티 조회 수:1526 추천:4

영국에서 배우는 교훈 : 차터학교, 선택, 그리고 표준

영국교육개혁에서 배우기 : 차터학교, 선택, 그리고 표준


※ 이 글은 런던대학 교육사회학 교수인 조프위티(Geoff Whitty) 인터뷰글입니다. 위티는 교육정책과 관련한 저작을 많이 썼으며, 최근에는 "도시교육(urban education)에서 전문화(specialization)와 선택 : 도시기술고등학교 실험(Routledge, 1993)"이 있다. 그는 최근 미국방문동안 Rethinking Schools의 Barbara Miner와 인터뷰하였다.

질문 : 일련의 미국 교육개혁은 영국과 웨일즈의 개혁동기와 유사합니다. 영국의 교육개혁을 간략하게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대처정부는 1980년대에 일련의 교육개혁법을 도입하였고, 뒤이은 메이저정부도 이를 이어갑니다. 이들 법안은 이른바 "의사-시장"이라 불리는 교육의 두 가지 변화를 가져옵니다. 먼저 학부모 선택과 권한이양(devolution)이란 변화로 미국은 탈중심화라 부르지요. 본질적으로, 의사결정의 책임이 지방교육청 혹은 지역학구(school districts)에서 개별학교와 학부모로 넘어가게 됩니다. 아울러 개별학교는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서 경쟁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국가교육과정과 국가성취도시험을 구축합니다.

국가의 권한을 줄일 거라는(roll back) 꾸밈말(rhetoric)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는 중앙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주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국과 웨일즈 교육개혁의 꾸밈말은 교육이 이제 "탈정치화"되었으며, 학부모에게 권한이 돌아갔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에게 권력을 넘겨줘서 학부모와 학교에게 자율성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 : 어떻게 권한이양이 일어나게 되는지 설명해주십시오.

첫 번째 권한이양 정책은 정부가 학부모의 학교선택제한을 해제한 1980년대 조치입니다. 거기다가 정부는 "사립학교재정지원정책(assisted places scheme)"을 도입했는데요, 이른바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자녀를 둔 저소득층 부모들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몇 개 엘리트 사립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유인책을 바우처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위한 구실(stalking horse)로 보았는데, 그렇게까지 발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88년 교육개혁법안입니다. 그 법안은 학교운영제도를 바꾸는 중요한 4가지 계획을 도입했습니다.(국가교육과정과 국가성취도시험을 별도로 하고)

첫째, 지역교육청의 권한 밖에 설립되어 중앙정부는 직접지원을, 간접적으로 기업의 지원을 받는 도시기술고등학교(city technology colleges)로 불리는 고등학교를 도입했습니다. 이 학교는 새로운 형태의 학교운영과 교육과정을 실험할 것으로 예상되었고, 부분적으로 부시대통령이 처음 구상한 새미국학교운동(New American Schools Movement)에 영감을 줬습니다.

둘째, 개혁법안은 중앙정부보조학교(grant-maintained schools)를 도입했습니다. 이 학교는 학부모가 투표를 해서 지역교육청의 통제에서 벗어날지 어떨 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학교는 미국의 차터학교에 영향을 줬습니다. 정부는 지역교육청의 권한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을(opt out) 통해 좌익지역교육청의 권한을 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보수주의적 지역의 학교는 노동당지역의 학교보다 지역교육청의 권한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셋째, 지역교육청의 권한에서 벗어나기 위한 선택 때문에 지역교육청 관할에 있던 대부분의 학교는 미국의 지역학구에서 일반적인 단위학교경영보다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학교운영위와 수석교사(혹은 교장)가 학교운영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이 학교들조차도 차터학교만큼 자율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의 수와 나이에 따라 재정을 지원받고, 다소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재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공개모집(open enrollment)을 도입해서 학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었습니다. 공개모집은 지역단위경영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하는데, 재정이 학생을 따라오고 학교는 그들이 학생을 얼마나 모집했느냐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질문 : 권한이양의 교육적 효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은 학부모선택과 학교자율이 개별 학교, 교사에게 이롭고, 심지어 진보적인 동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학부모선택이나 학교자율이 성취도를 향상시켰는지 분명한 증거는 없으며, 확실히 [학부모선택이 학생의 성취도에, 학교자율이 학생의 성취도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증명할 수 있는 증거도 없습니다. 한 연구는 이런 새로운 제도에 따라 재정을 받는 학교는 성취도가 향상되었다고 보고했지만, 자율성 때문에 향상되었는지, 여분의 돈 때문에 향상되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영국과 다른 나라의 연구에서 보듯이 만약 개혁이 아주 신중하게 규제를 통해 진행되지 않는다면, 불평등을 만들거나 오히려 불평등을 확대했다는 점입니다. 당신도 학문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로 학교의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고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학교자치와 학교선택을 연결해서 생각할 때, 우수한 학교와 능력있는 학부모는 각자에 끌리며 능력없는 가정은 입학거부와 재정이 떨어진 학교에 남아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지위하락의 나선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어려워집니다.

내게는 권한이양의 결과로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긴 대부분의 학교가 능력이 없는 학생이 많다는 사실이 너무 중요합니다. 흥미롭게도, 시장접근방식이 계급, 인종, 민족에 따라 학교사이에 차이를 확대하는 동안 학교구조와 교육과정, 교수방법은 전혀 혁신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적으로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 도입한 도시기술고등학교조차도 전통적인 학문적 접근방식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질문 : 미국에서는 선택과 탈중심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런 방향의 개혁이]학교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회를 늘려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국경험에서 보건데, 선택과 권한이양은 꾸밈말과 실제간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립학교재정지원계획과 공개모집 같은 계획으로 몇 사람은 가난한 학교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록 꾸밈말보다 상당히 적은 수가 지원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런 계획이 개인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전체적으로 노동계급과 흑인계층의 계속되는 불리한 처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처지는 몇 가지 이유로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학교교육을] 만족하지 못한 학부모를 위한 안전판(safety valve)이 있는데요, 그것은 결과적으로 학습성취도가 낮은 학교의 성취도를 향상시키라는 학부모의 압력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것이 학교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기를 원치 않으며, 또는 도피가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해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식으로 개혁을 개별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양극화를 촉진할 뿐이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지금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도록 하지요. 요크셔(Yorkshire)에 있는 학구는 최근에 선생들이 파업을 하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들이 분명 "가르치기 어려운(unteachable)"학생을 맡고 있다는 거예요. 이 학교는 지역교육청 산하에 있었고, 그 지역교육청 산하에 있던 많은 학교가 지방정부의 관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방정부의 관리에 참여하지 않기로 한] 학교는 다른 학교들보다 자유로와서 학생을 선택할 수 있었고 또한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렵다고 보는 학생은 배제할 수도 있지요. 이러다보니 2-3개의 학교에 "덜 능력있는"학생과 "위험한 학생"이 집중되었어요. 교사들이 파업을 하겠다고 한 학교는 그중의 하나예요. 한편 지역교육청은 정부교육개혁 때문에 학생을 학교에 균형있게 배분한다던가, 실패한 학교를 지원하는데 개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질문 : 지역학구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습니까?

모든 학교에 적용하는 규제가 몇 가지 있지만 정부는 다른 학교보다 학생선택을 하는데서 자유로운 '지역학구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opt-out)나 미국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차터학교를 허용합니다. 일부는 이미 학업성취도로 상당수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지금은 학업성취도로 학생을 50%까지 선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오고 있어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지만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역학구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나 차터형식의 학교는 그들이 우수한 학생이나 가장 학업성취 욕구가 높은 학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은밀한 선발과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요. 비록 그들 학교에 학문적으로 능력에 따라 학생을 골고루 선발했다고 하지만, 대개 각각의 분야에서 꼭대기에 있는 학생들만 선발합니다. 아니면 그 학교관계자는 학교안내서(prospectus)를 통해 그들의 관심대상인 능력있는 가정에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서 특별한 장점과 전문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유사한 개혁을 한 뉴질랜드의 연구보고서중의 하나는 자치학교(automomous school)가 일년 동안 추천선발 방식을 사용했는데, 연구결과에 따르면 딱 그 기간 동안에만 학문적 양극화와 사회적 양극화가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질문 : 개혁 그 자체나 학생떠가기(creaming)를 방지하기 위한 규제를 만드는데 실패한 것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학생떠가기는 확실히 의사시장제도에서 평등을 이루는 데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그 문제는 시장의 꾸밈말과 규제가 반대로 작동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영국에서는 열렬히 시장개혁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그런 작은 규제조차도 제거해서 의사시장을 실제 시장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개혁에 긍정적인 요소가 잠재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이려면 시장주의자들의 꾸밈말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더 많은 규제와 어떻게 학교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해서 전적으로 다른 가정에 서서 생각해야 합니다.

학생떠가기는 학생을 선발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닙니다. 도시기술고등학교는 미국의 일부 차터학교와 마찬가지로 학교의 "이상(mission)"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면, 그 학교는 학부모에게 학생이 19살까지 다니도록 요구조건을 답니다. 아니면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요구조건을 달지요. 아니면 과학기술과 같은 특정과목에 대한 소질이 있어야 한다고 요구조건을 달지요. 이런 요구조건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있어요. 그것은 학교가 특정층의 학생과 특정 활동에 전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학교가 학생을 배제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예를 들면 도시기술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일부 소수민족집단의 학생을 선호하는 기풍(ethos)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의미하지요.

우리는 매우 신중하게 학교이상과 기풍이 미묘한 형태의 인종주의를 호도하는 것으로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교장은 요컨대 그의 학교는 남부아시아가정의 학생들이 보이는 높은 [학생의] 질과 열망을 강조한다고 말해요. 이 말은 왜 그 학교는 남부아시아사람들이 '심하다 싶게 대표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교장이 쓴 말이예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아프리카-캐러비안학생을 배제하는 은밀한 방법이라고 말해요.

질문 : 당신 저작에서 당신은 시민의 교육권리와 소비자의 교육권리의 차이점을 짚곤 하셨습니다. 그 차이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대처정부가 진행한 개혁에서 대처는 개인의 선택권을 강조했습니다. 이렇게 강조를 하면 마치 시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권리를 주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개인은 정보나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돈, 사회적 지위 등] 자원 면에서 똑같지 않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의 고객으로서 바램이 같은 것도 아니예요. 그래서 개인이 학교선택에 관해 결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인지는 꼭 생각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결국, 우리 사회 다음세대의 교육에 관한 것이지요. 개별아동의 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개인만 강조를 하게 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최상의 이해는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소홀히 넘겨버리게 되요. 하나의 경향은 양극화의 증가입니다. 유사한 배경과 유사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비슷한 학교에 끌립니다. 그것이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통합된 사회에서 최선의 이해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나와 다른 많은 정책분석가들은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최선의 이해를 담아내는 교육제도를 갖는 사회의 필요와 개별학부모의 선택권이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질문 : 대처정부 당시에 만들어진 국가표준과 국가교육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이론적으로 국가교육과정은 모든 것을 한데로 묶는 방식입니다. 비록 시장화정책으로 인해 학교형태를 원자화하고 파편화한다고 할 지라도 국가교육과정은 사람들이 어떤 학교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똑같은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배우도록 강제할 것입니다. 국가교육과정이 시장에 기초를 둔 접근과 모순되는 것 같을지라도, 시험이 성적으로 학교를 위계화하여 학생들을 유혹하도록 하는데 사용되어왔기 때문에 사실상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일조했습니다.

국가교육과정은 영어, 수학, 과학과 같은 세 개의 중핵과목(core subject)과 일곱 개의 기초과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과목 학습프로그램이 있으며, 5세에서 16세의 모든 학생들은 이 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7살, 11살, 14살, 16살에 일련의 국가성취도시험(national test)을 치러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교육과정은 1989년에 시작되어서 점차 도입되었으며, 몇 차례 수정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면도 있었는데요, 많은 여학생들이 상급학년에서도 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결과는 더 많습니다.

국가성취도시험에 대한 연구프로그램은 정부가 설립한 특별조사위원회(working party)가 마련했습니다. 정부는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과정에 아주 직접적으로 개입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특별조사위원회를 통제한 역사교과에서는 영국과 유럽사 비중이 늘었고, 영어교과에서는 전통적인 교회법(canon) 비중이 늘었습니다. 그 결과로 현재 영국사회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국수적인 문화개념과 협소한 교육과정이 담긴 교육과정이 등장하게 되었지요.

질문 : 국가성취도시험에 반대하는 보이콧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국가의 교육과정과 성취도시험은 보통 교육과정의 주요 상징이 되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싸울 수 있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비록 초기에 시험은 학생의 학습결핍을 진단을 도와주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해서 계획된 것이지만, 대신 학생성취도표에 따라 학교를 위계화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성취도표는 가치가 더해지는(value-added) 통계가 아니라 특정 학교에 있는 학생이 얼마나 잘 했는지를 다루는 원자료 통계입니다. 대조적으로 가치를 더하는 접근에서는 학생의 출신에 따라 학교에 들어가서 학생이 얼마나 잘 했는지,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비교해서 학교가 학생의 성취도를 얼마나 많이 향상시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원자료통계를 사용할 때 성취도표의 위에 있는 학교는 학문적으로 능력있는 아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아이들을 끌 수 있는 학교입니다. 그것이 더 심한 양극화로 이어질 거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결국 교사노조로 모인 수많은 교사들은 국가성취도시험이 교육적으로도 좋지 않고, 장기적으로 학교를 위계화하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국가성취도시험을 보이콧 했습니다. 보이콧은 학부모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습니다. 특히 시장지향적 개혁을 내켜하지 않았던 학부모들이 많이 지지를 했습니다. 대처정부가 1980년대에 교사노조의 힘을 거의 무력화했지만, 1990년대초 국가성취도시험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부모와 학교운영위 그리고 교사노조의 연대투쟁이 있었기에 정부는 평가를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초기에 보이콧은 몇몇 영어교사가 있었던 학교에서 시작했지만 국가적반대운동으로 승화되어서 투쟁전통이 있는 노조와 투쟁전통이 없던 노조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1992년과 93년에는 수많은 학교가 국가성취도 시험을 반대하는 보이콧에 동참해 정부는 시험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영국노동법상에 교사는 교육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에서 직접적으로 시험을 보이콧할 수는 없었고 오로지 시험이 과중한 노동부담을 준다는 기술적인 이유로만 보이콧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국가교육과정을 축소하고, 교사에게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편성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는 했지만 정부가 수정한 계획안 역시 교육적으로 더 문제투성이에, 더 표준화하고, 더 종이와 연필에 의존하는 형태의 시험이 되고 말았습니다.

긍정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정부가 시험에 가치를 더하는 요소를 도입하자는 요구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초기에 정부는 가치를 더하는 시험은 교사가 정보를 애매하게 처리하여 실패를 감출 수 있어 무의미한 것이 된다하여 그것에 반대했었지요.

질문 : 미국과 영국교육의 시장-지향적 교육개혁이 상당히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여러 나라들 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신우익정책집단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네트워크는 모든 정치정파의 정책입안자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실제경험과 맞지 않는 제안이었다면 영국에서 대처의 교육개혁이나 미국에서 민주당의 교육개혁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관료적 교육제도의 부정적인 사례가 많이 있었습니다. 사회성격의 변화가 있어서 더 많은 지역사회의 사람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해서 학교가 더 세세하게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실제는 꾸밈말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수적 개혁의 꾸밈말은 그런 감정 위에서 작동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개혁은 그러한 생각을 반영하지 않았고 지역사회의 요구와 일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같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하부구조는 사실상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나는 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중앙집권화된 교육제도는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개혁하게되면 모두에게 실질적인 선택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특별히 권한이양은 그런 의미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 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미숙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문제를 수면 아래로 밀어넣고 있을 뿐이면서도 학부모와 지역학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정렬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떠넘기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지요. 비록 몇 학교는 당연히 다른 곳보다 좋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학업성취도 차이가 나는 것은 개별 학교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겁니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형식상으로 동등한 기회를 준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개인이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조건이나 상황의 책임을 개인이 다 지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정부정책의 실패로 생긴 불평등이 학교운영의 실패나 심지어 선택을 잘 못한 학부모의 실패가 되는 것이지요. 더 우려스러운 것은 책임권한이양이 학교를 운영하는데 써야 할 재정과 같은 자원의 감소와 함께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하 생략) /역 강신현(교육정보화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