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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민간인학살과 역사교육의 과제

2002.07.22 12:42

장석규 조회 수:1393 추천:4

민간인 학살과 역사교육의 과제

민간인 학살과 역사교육의 과제

장 석 규 ∥ 안양 동안고등학교 교사 ch334@lycos.co.kr

Ⅰ.

한국전쟁을 즈음한 민간인 학살은 학계의 갖가지 자료분석과 유골 발굴 등 연구작업을 통해 볼 때 남한 지역에서만 적어도 60만 명에서 1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대 추정치로 그 규모를 떠올릴 경우, 피학살 인원이 당시 남한 총인구의 20분의 1에 해당할 만큼 크다. 이같이 헬 수 없는 학살을 저지른 주체로는 우익은 미군, 국방군, 경찰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과 같은 비정규 무장부대요, 좌익은 인민군, 빨치산, 지방 좌익으로 대별된다. 우익은 보도연맹원이나 부역혐의자, 공비 및 통비 혐의자, 피난민 그리고 불심검문이나 가택수색에 걸려든 사람에게 뚜렷한 혐의 없이 학살을 저질렀다. 이에 비해 좌익은 인민재판이나 북한법에 따라 반동이나 인민의 적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살해하거나, 또는 보도 연맹원 가족들이 앙갚음 차원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학살의 유형으로는 총살, 생매장, 유격대를 소탕하기 위해 구사한 초토화작전에서 다수의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무차별 학살, 수장(水葬), 일본도에 의한 참살, 죽창에 의한 척살, 굶겨 죽이기, 때려죽이기, 폭격이나 비행기에서 기총소사 등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잔인한 방법이 다 선보였다. 남한지역의 민간인 학살에는 좌우 양측이 다 가담했지만 그 비율로 볼 때 전체의 '9할' 남짓을 우익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저지른 이 엄청난 학살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보도연맹'으로 말미암아 무려 3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보도연맹이 무엇인지'조차 모른다. 이는 가해자로서의 국가가 '학살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조작, 왜곡, 말살하고, 국가의 탄생을 신화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반대중으로 하여금 치떨리는 공포와 체념 속에서 스스로 학살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망각과 무관심의 영역 속에 안주하도록 하였다. 지난 50여 년간 피해자들은 세 번의 죽임을 당해야 했다. 전쟁 무렵의 학살과 5·16 쿠데타 세력의 탄압,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족과 자식들에게 빨갱이의 굴레를 뒤집어 씌워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방해하는 등 평생의 한을 품고 살아가게 만든 것이 그것이다.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이승만 정권의 반문명적인 명령이 거침없이 횡행하는 동안 이들은 거의 숨죽이고 살아 올 수밖에 없었다. 피해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벌어진 일들을 후손에게조차 발설하지 않았다. 이처럼 침묵의 문화가 지배하는 가운데, '죽을 짓을 했으니까 죽었겠지'하고 학살자들이 퍼뜨린 이야기는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사실상 남한사회의 지배 담론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는 어떠했는가. 여·순 사건 당시 남한군 토벌대는 관련자 색출 과정에서 모든 주민을 학교 같은 공공 장소에 집결시켜 놓고, 주로 "머리가 짧은 자, 군용팬티를 입은 자, 손바닥에 총을 든 흔적이 있는 자, 흰 지까다비(일할 때 신는 일본식 운동화)를 신은 자" 따위의 애매하고 막연한 잣대로 이른바 빨갱이를 골라내었다 하니 무고한 백성이 그 얼마나 죽어나갔겠는가.

그 동안 우리는 일제의 남경대학살, 독일의 유태인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등에 대해 분노와 비난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일제가 저지른 우리 민족의 학살문제에는 더욱 예민해진다. 더구나 남한의 기득권세력은 그 동안 이 만행의 책임을 모두 '북쪽'과 '인민군'에게 뒤집어씌우고 이를 반공·멸공 교육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해 왔다. 5·16 쿠데타세력은 4·19혁명이 일어난 뒤 진상 규명 요구에 나섰던 피학살자 가족들이나 관계자들을 잡아가두고, 피학살자의 분묘를 파헤치는 따위의 야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피해대중의 공포와 피해의식, 무력감을 떠올리고 증폭하여 무지와 왜곡의 상태를 심화하고, 주민집단학살을 당연시하고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굳혀서 극우 반공이데올로기의 지배력을 공고히 하려는 속셈이었다. 또 학살을 주도하거나 가담한 군인·경찰에게 면죄부를 주고 그들의 행위를 고무 찬양하여 극우반공체제의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는 효과도 염두에 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사건이 일어난 지 무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정권에서조차 별로 달라지지 않았으니 개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온다. 2000년 7월 24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조성태 국방장관은 '解寃事業'(한국전쟁 중 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사건 재조사를 통해 무고한 희생자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취지로 기획된 사업) 추진과정에서 "군의 최대 양보 선은 양비론"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짐으로써 파문이 일어났다. 이에 대하여 전국 곳곳의 유족회가 반발하자 조성태 장관은 언론에서 잘못 보도한 것이라 해명했으나 사실은 지난 50여 년 간 군부의 일관된 입장이 표명된 것이다. 그들의 최대 양보 선은 양비론인 것이다. 민간인 학살사건이 은폐된다면 그리하여 앞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이 또 불거진다면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Ⅱ.

현행 중·고교 국사 교과서는 국정이다. 1972년 유신체제의 출범과 함께 교육을 정권의 정당화 수단으로 삼으려고 벌인 일의 하나가 국사교과서의 '국정화'였다. 이는 교과서에 정치권력의 정치적 요구를 더욱 확실하게 반영하겠다는 의도일 뿐더러 역사해석을 국가 권력이 독점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볼 때 국정교과서는 실질적으로 권력이 만든 역사물이고, '과거사실과 권력의 대화'라 하겠다. 곳곳에서 지배권력의 역사관을 읽을 수 있다. 제주 4·3 항쟁 무렵에 미국과 이승만이 나서서 대규모 살상을 주도했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인데도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5·10 총선거를 전후해서 단독 정부수립을 반대한다는 구실로 남한 각지에서 유혈 사태를 일으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 제주도 4·3 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 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하여 일으킨 무장 폭동으로서,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도 희생되었다.(고등학교 국사(하), 1996. 196∼197쪽)

'폭동'이나 '반란'이라는 용어를 들먹여 전체적으로 극우 반공주의적 시각에서 이 사건을 재단하고 있다. 현행 국정 국사교과서 현대사 부분의 서술 분량이 기형적으로 적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많게는 3만 명의 무고한 제주 민중이 죽어나간 사건을 이쯤의 서술로 그치는 것은 사실의 은폐로 볼 수밖에 없다. 또한 4ㆍ3 사건 이후 '초토화 작전'을 앞두고 선포된 계엄령이 아무런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한 것이었고 희생자 중 85% 이상이 무고하게 또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면 이는 '희생'이 아닌 '학살'의 차원에서 기술되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제주 4·3 항쟁의 진압출동 명령을 거부한 데서 촉발된 '여수·순천 사건'도 수많은 민간인 학살을 불러왔다.

여수·순천 10·19 사건은,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 내의 일부 좌익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 지역에 잠입해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여기에 합세하여 일으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새로 수립된 대한 민국을 전복시키려는 데 의도가 있었다. 결국 국군과 경찰의 토벌로 이 사건은 진압되었으나, 평온과 질서를 되찾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만 하였다. (고등학교 국사(하), 1996. 197쪽)

이 역시 관점 면에서 극우 반공 논리에 기초한 이념적 편향성에 근거하고 있다. 사건의 명칭에서 '반란'이 아닌 '사건'으로 쓰고 있지만 사건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사실상 '반란'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진압과정에서 수천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백두산 호랑이로 소문난 제5연대 김종완 대대장이 일본도로 즉결 참수까지 당한 사건으로 유명하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한국전쟁에 관한 기술에서도 북한의 선제 공격을 강조하고 '용감한' 국군의 대응과 유엔군의 참여, 그리고 중공군의 개입과 휴전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전개 과정을 반공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전쟁으로 남한의 사상자 수가 1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서술 할뿐 수백만에 이르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수반한 더러운 전쟁이었다는 전쟁의 기본 성격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복잡하고도 다양한 관점이 배제되고 오로지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국가적 관점만이 반영되었을 뿐이다. 이상과 같은 전쟁에 대한 남한 지배층의 독점적 해석과 공식적인 낙인은 기득권 재생산의 막중한 정신적 기초로 활용되어 왔다.

민간인 학살과 관련된 교과서 내용을 분석해 볼 때 학살 자체가 철저히 은폐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있더라도 한 줄 정도로 매우 형식적이라는 느낌이다. 국사 교과서는 국민의 역사의식 형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최고의 베스트 셀러'인 현실을 감안한다면 이는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현행 국사교과서는 국정체제로 유일한 교과서이기 때문에 국가적이고 이념적 관점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다.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들은 전쟁 영웅으로 그 후 장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을 거치면서 사실상 대한민국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국정체제가 유지되는 선에서는 민간인 학살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사실상 원천봉쇄 될 수밖에 없다. 군과 정부, 그리고 미국은 민간인 학살의 진실이 역사 교과서에 수록될 경우 심각한 도덕적 타격을 입을 것이 자명한 것이다. 또한 이들이 그 동안 누려온 기득권의 거의 유일한 무기인 반공주의도 허구화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년 전 국사교과서 일부 내용을 개정할 때 벌어진 논쟁 중에 한국전쟁을 '사변'으로 할 것인가 '전쟁'으로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해프닝은 그 일단을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Ⅲ.

우리민족은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단군의 혈통을 이어받은 세계에서도 유일한 단일민족이라고 우리는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에게 가장 배타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같은 민족에게 단지 빨갱이라는 이유로 온갖 잔인하고도 야만적인 학살을 저지른 과거사실에 대해 국가 차원의 어떠한 진상규명도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 '문경 석 달 마을 민간인 학살사건'의 피해자인 한 유족이 절규했던 것이 기억난다. 백주 대낮에 70여명의 남한 군대가 '국군을 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어린이 노약자가 대부분인 마을 사람들을 학살하고 집을 불태우는 등 평온했던 마을을 초토화시켜 놓고도 그 후 공비가 학살한 것이라고 호적을 위조하기까지 한 사건을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모른 채 하는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을 항의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지리산 자락 등 산간지역 민간인의 무차별 학살에 쓰인 초토화작전은 간도를 포함한 만주전역에서 전개된 항일유격투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구사한 비민분리(匪民分離-게릴라는 물고기이고 인민은 물이라는 개념에서 물에 해당하는 주민들을 소개시켜, 즉 물을 빼버려 물고기를 잡는 토벌전술)에 기초한 군사작전의 연장이었다. 이것은 조선인으로 구성된 일제의 유격대 토벌부대인 간도특설대 출신들이 한국군의 수뇌부에 대거 포진한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곧, 주민들을 잠재적인 유격대의 동조자로 보는 일제의 토벌전술이 한국군에 전수되어 실전에 적용된 예라고 하겠다. 결국 민간인 학살문제의 발생은 해방 후 친일 민족반역자의 청산에 실패한 점과도 정면으로 맞닿아 있는 것이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과거 사실을 통해 현재를 바르게 이해하고 이를 근거로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것이다. 현재란 과거의 연속이며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으며 나아가 미래에 대해 전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무엇이며, 이는 민간인 학살사건이라는 과거사실과 어떤 연장선 위에 있을까? '하지 않았다'고 나지막히 부인하면 믿지를 않으니 '절대로', '죽어도'라는 강경한 수식어를 꼭 붙여야 할 만큼 무너진 사회적 신뢰, 사회정의의 부재,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의 문화와 관용정신의 실종, 극심한 가족 이기주의, 그리고 우리의 정치문화를 4·50년대의 수준으로 묶어 놓고 있는 이른바 '색깔론' 등등은 어디에서 연유하고 있는지, 역사를 가르치는 교육자라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수백만 명의 죽음이 있었는데도 사실 규명이 없고, 참혹한 학살의 현장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유족들의 생생한 증언은 '증거가 될 수 없는 일방적인 주장'으로 내쳐버리는 국가권력 아래에서 신뢰와 정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라고 하여 저희 멋대로 빨갱이로 몰고, 언제든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으로 취급되는 사회에서 대화와 타협이 설자리는 없다. "빨갱이는 죽여도 좋다."는 발상이 버젓이 통하는 사회에서 '색깔론'은 정치적 발전을 악착스레 가로막을 것이며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가해자를 비롯하여 우리 사회 일부는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규명 활동에 대해 이미 수십 년 전에 일어난 일을 이제 와서 들추어내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거나 전쟁의 와중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모든 원인을 전쟁 탓으로 돌리려 한다.

지금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들은 바닥 모를 복수심에 사로잡혀 당시 가해자들의 처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왜곡된 것을 바로잡자는 바람이다. 진실규명이야말로 미친 야만의 시대에 억울하게 죽어간 피학살자의 영혼을 달래는 첫걸음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되찾는 외면할 수 없는 길이다. 이런 점에서도 특별히 국민의 의식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이 이 문제를 모르거나 무관심하다는 것은 교육자로서 자기 책무를 저버리는 일일 게다.

Ⅳ.

국정 국사교과서가 갖는 심각한 문제, 교육현장의 권위주의적 분위기, 수업자료의 부족 등 민간인 학살을 수업의 장에 끌어들이기에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의 만남의 장인 수업은 '성역'까지는 아니라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따라서 역사교사 스스로 발상을 전환하여 나선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세대들이 영상세대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 관련된 '영상물'을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작은 일이 아니므로 공동 작업이 긴요하다.

또한 민간인 학살사건은 그 동안의 극우반공체제 하에서 침묵을 강요당한 까닭으로 남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건이라도 자신의 일과 직접 관련된 부분이 없다면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렵다. 학생 개개인에게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가족사'를 조사하여 발표하게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집안과 가문의 누군가는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을 터. 민간인 학살지역을 답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민간인 학살은 전국적으로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일어났으며 대체로 면 단위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학살지역의 답사는 거리 상으로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답사를 통해 학생들은 이 문제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도 발생한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답사 일정 중에, 당시 직접 피해당사자나 유족을 만나 생생한 당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Ⅴ.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은 역사의 희생물이 되기 쉽다."라는 카를로스 로물로(Carlos Romulo)의 경고를 떠올린다. 내일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도 학살의 진실 규명이 필수적이며 이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것이므로 그 해결도 정부가 주도하여야 한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전쟁시 토벌작전 관련 각종 문서와 명령 지휘 계통, 군사재판을 확인할 수 있는 갖가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비밀 문건 등을 각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구하도록 방치하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일괄적으로 수집하여야 한다. 또한 피학살자의 유골을 수습하고 유전자 감식 등의 방법을 통해 죽은 자의 신원을 확인해 주어 이들의 영혼을 모실 수 있도록 해 주어야한다. 그리고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된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공식으로 사과하여야 한다. 비록 과거정권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국민대통합의 차원에서 현 정부가 국가를 대표해서 사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뒤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은 특별법을 제정하여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전국에서 수천 건의 민간인학살이 일어났는데, 이를 사건마다 또는 지역으로 묶어 개별적인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최소 수백 건의 법률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입법의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불합리한 낭비일 뿐 아니라, 무수한 개별적인 사건들이 모여 이루는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학살의 전체 상을 규명하는 데에도 적절한 접근방법이 아니다.

유족, 연구자, 사회운동가,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를 중심으로 민간인 학살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을 위한 헌신적인 노력이 계속되어왔다. 그 결과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행정자치위원회에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 정식으로 상정되어있다. 교육자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수업과 여러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알리는 것과 함께 꾸준히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범국민위'의 홈페이지를 자주 찾고, 후원자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일 터. 또한 통합특별법이 국회에 상정된 현재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활동가들에게 힘을 모아주는 등 도울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민간인 학살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