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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호 교육공공성의 개념

2002.07.22 12:40

특집팀 조회 수:1728 추천:4

<교육공공성에 비추어본 공교육 그리고 교육공공성의 개념>

:::특집글2

교육공공성에 비추어본 공교육 그리고 교육공공성의 개념

 

 

교육공공성의 개념을 다루려면 공교육이 교육공공성과 관련하여 갖는 의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공교육은 그 왜곡과 부침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과정 속에서 교육을 사회전체가 담당하여야 할 일로 인식하고 이를 사회적 과정으로 제도화한 결과물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공교육은 '양면적'이다. 지배계급에게는 사회통제기제로서 봉사하는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민중의 교육권 쟁취투쟁의 성과물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성립과정에서도 이런 양면성은 드러난다. 부침을 거듭해온 공교육은 민중의 도전과 지배계급의 통제의도 관철이 부딪히는 가운데 성립된 제도적 실체이다. 노동자 계급, 민중은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확보, 확장하기 위해 지배계급에 맞서 싸워왔다. 그것은 공교육을 성립, 발달시킨 힘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하나였다. 그리고 공교육이 계속 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교육기회 확대요구는 중요한 역동이었다. 우리는 바로 이점에 주목할 것이다. 공교육의 공공적 성격 구현 정도를 확인하는 일은 교육공공성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가를 살펴 앞으로의 지향을 도출하는데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교육공공성을 개념화된 형태로 제시한다. 이 부분에서는 교육공공성이 단지 소유차원이나 관리차원 등에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교육의 전 요소, 전 영역에 일관되게 적용될 수밖에 없는 '총체적' 성격을 가진 개념임을 강조할 것이다.

1. 공교육의 발달과 교육공공성

(1) 공교육 탄생의 역사적, 교육적 배경과 맥락

: 교육을 통한 계급통제의 관철 의도와 민중의 교육권 요구의 격돌과 공교육의 성립

공교육의 성립에 관한 기존의 설명틀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계급통제 의도와 자본의 노동력에 대한 요구가 관철된 산물이다1). 둘째, 한 계급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게 아니라 계급간 타협의 결과2)로 공교육이 성립되었다. 세째, 사회변화(분화가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의 지배 속에서 교육을 떠맡을 체제의 필요성 대두)의 필연적 요구에 기능적으로 부응한 결과3)가 공교육체제의 성립이다.

공교육체제 성립과 관련하여 한가지 분명한 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성립을 공교육체제 성립의 "근본"역동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등장은 생산을 사회적인 과정으로 만들었고, 자본가가 지배계급으로 등장함과 더불어 이들과 적대적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대량의 산업프롤레타리아트를 출현시켰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과의 대립과정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집단화되고 정치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혁명의 과정에서 등장한 부르주아 시민권 개념은 비록 기만적일지라도 만인의 평등을 언명하였으며 이에 따라 노동자들 역시 사회적 권리보장 요구를 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얻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노동계급은 임노동 체제 하의 착취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초기에 신흥 산업자본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무차별적 착취를 감행하였다. 최소한의 삶의 조건은 커녕,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으로 '타락'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함께 나타났다. 특히, 노동계급의 자녀들은 생존의 유지 때문에 착취의 장으로 내몰렸고, 이의 폐해를 지적하는 보고서들이 줄을 이었다4). 물론, 개별 공장주들은 이윤을 창출하는 데만 관심이 쏠렸지 최소한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은 생각지 못했다5). 이 두 계급은 생산의 영역에서는 물론 교육을 두고서도 각축을 벌였다. 교육을 둘러싼 계급간 대립이 첨예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국가가 교육 관리의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다. 교육이 보편적 권리임을 부정할 만한 근거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보기에 하나의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노동계급을 어떻게든 포섭할 기제는 필요했다. 근본적인 개혁을 하기 보다는 교육이라는 영역을 하나의 통제수단으로 인식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왜 하필이면 '공교육'이라는 형태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 교육형태가 되었는가에 주목한다. 공교육이 과연 자본이 원하는 최적의 교육 형태였는지는 의심스럽다. 교육의 단계별로 양상은 달리 나타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초등교육 팽창에는 자본과 국가의 사회통제의도가 좀더 강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볼 수 있다. 국가는 '초등' 단계의 교육기회 확대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었지만, 그래서 강제취학을 시도했지만, 노동자 계급에게 중등 이상의 교육기회를 여는 데는 대단히 인색했다. 초등단계의 교육내용도 주로 읽기, 쓰기, 말하기 등 최소한의 것에 한정했다. 공교육 체제 성립 초기, 중등 이상의 비교적 고등한 교육기회 획득의 고지를 점령한 집단은 부르주아지들이었다. 구귀족계급에게 한정되어 있던 기회를 보편적 권리로 주장하면서 주로 부르주아 계층의 자녀들이 중등학교에 취학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노동자 계급, 민중은 중등이상의 교육기회 확대에 도전하였고, 이는 학교 팽창(중등교육의 대중화)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교육을 통한 지배계급의 사회통제방식은 교육기회를 무조건 확대함으로써가 아니라 기회를 교묘히 통제함으로써였다. 특히, 중등이상의 '고등한 교육' 기회는 쉽사리 보편화, 대중화되지 않았다. '효율성'과 '사회적 낭비'라는 이유를 들어 선발기제로서 기회를 통제하는 한편, 교육내용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함으로써 교육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였다. 일단 밀려서 문을 연 경우에는 다른 장치들로 통제권을 유지하면서 기득권을 지켜나갔다. 공교육 내에서 '복선형 학제'가 유지되거나, '계열화'를 하는 것은 일종의 교육기회 차등화 정책이다. 요컨대, 교육기회의 확대는 자본이 준 선물이라기 보다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밀려 확대한 것이라 보아야 하며, 지배계급은 양적 기회 확대 요구에는 '양보'를 하였으되 교육과정 및 선발기제를 통제함으로써 교육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계속해서 구조화해왔다.

(2) 공교육 성립기에 각 계급의 입장, 특히 노동계급의 입장과 역할에 대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교육체제를 통해 가장 이득을 본 집단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물론, 부르주아들이라 볼 수 있다. 비용의 문제를 놓고 따지면, 세금(민중 부담)으로 길러낸 (다소 극단적으로는) "순치된" 노동력을 공급받아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자본가 계급은 자신들의 지배집단으로 부상하기 위해 여타 계급과 '연대'해야 했고 사상가들은 '보편의 이익'을 부르주아들이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공교육은 그것이 가진 이념적 토대, 즉 초기 부르주아 사상가들이 하층계급을 포섭하기 위해 떠벌린 시민권 개념에 발목잡힌 면도 있었다. 게다가 노동계급은 '계급적 자각'을 통해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며 하나의 정치적 세력으로 성장했다. 결국, 자본가 계급은 교육에 대해 전일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처럼 교육에 대해서는 자본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관철될 수만은 없었으며, 평등과 해방의 이념을 담지한 공교육 사상이 일부 역할을 하긴 하였으나, 이는 '사상'의 측면, '언어'의 수준에 머무르곤 하였다.

노동자 계급은 교육에 대한 욕구를 당연히 느꼈다. 예컨대, 아동을 노동착취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욕구가 절실했다. 한편, 노동자 계급, 민중은 과학적 관리라는 테일러리즘의 지배 하에서 '분업의 고도화'가 가져오는 '조각나는 상태'를 경험6)하였고, 이에 저항하였다.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인간이 인간답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교육에 대한 절실한 욕구를 가졌던 것이다. 기존의 교육이 파괴되는 위기를 겪고 있던 노동자, 민중이 교육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7). 초기에는 이것이 노동자 층 사이에서 노동조합의 교육활동 등을 통해 해소되곤 하였으나,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쿠퍼 유니온은 매주 토요일 밤, 25,000명에서 3만명 정도가 수강하는 강연회 이외에, 공식적인 연구과정을 개설하였다. 나는 이 강연회에 절대로 빠지지 않았으며 지식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정신적인 굶주림도 육체적인 굶주림만큼 고통스러운 것이다. 매주 토요일 밤 어떤 위대한 학자가 실험과 연구가 이룩한 빛나는 업적을 설명하였다. 때때로 프록터 교수는 천문학의 경이(과학이 알아낸 시간, 거리, 빛, 운동 등)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강연회를 통하여 얻어낸 지식은 나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으며, 이 세계는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지고 나의 눈앞에 전개되었다. 이러한 강연회는 과학의 권위자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가를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는 20년 이상 강연회와 강의에 출석했다."(노동과 독점자본, 122쪽에서 재인용)

"도제제도 이외의 산업교육수단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이 본래 가지고 있던 효율성을 발휘될 수 없다. 과학적 관리자 자신이 저질의 노동자 군으로부터 노동자를 신규채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불평을 하고 있다. 20년 전(19세기 말)에 직업을 구하던 숙련공들은 능력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노동과 독점자본, 121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민중(특히, 노급)의 교육권 보장 요구는 사실 본질적인 영역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교육권에 대한 요구가 실제로 표출되었던 양상을 보면 분명 긍정성과 부정성이 함께 존재한다. 공교육 체제 내에 전계급이 '포괄'된 후 노동자, 민중의 교육권 요구는 '본질적'이고 '총체적'이기 어려웠다. 물론 이건 노동자, 민중의 도덕적, 지적 특성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노동계급의 성장했고 정치적 힘을 어느 정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나, 교육에 대한 통제권은 지배계급이 쥐고 있었다. 노동자, 민중은 물적 토대가 빈약한 상황에서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은 제한된 틀 내에서 다소 비본질적인 요구(무상의무 요구, 기회확대 요구)에 집중한 것이 지배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교육내용과 운영에 대한 통제권은 표면상으로는 국가가 행하고 모든 주체가 '동등하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는 듯이 비추어지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배집단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민중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교육에 대한 갈망과 이를 위한 투쟁은 공교육을 성립시킨 중요한 힘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불평등의 재생산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은 물론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공교육이 대다수 민중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주요 기제로서의 존재해왔다는 의미 역시 삭감시켜선 안된다.

(3) 공교육의 일반적 특질과 교육공공성 : 평등성과 민중교육권에 비추어

앞서 살폈듯이 교육이 '사회적 일'로 자리잡게 되어 '공적 과정'으로 이루어지게 된 일차적 조건은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동이다. 여기에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자각과 교육에 대한 권리의식 신장이 공교육 성립과정에서 중요한 힘으로 작용했다.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사상가들 역시 언설 차원, 시혜적 의식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을지언정 교육이 '만인의 권리'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민중의 교육에 대한 요구는 우선 민중의 세금부담에 기반하는 의무무상 형식의 공교육 시스템 체계화로 수렴되었고, 중립적이라고 가정된 공적기구인 국가가 관리의 책임을 맡았다. 이후 공교육은 외연상으로나마 꾸준히 교육기회의 확장기지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공교육은 노동자, 민중이 교육권 실현을 위해 투쟁한 성과물이라는 의의를 가지며, 교육의 공공적 성격이 역사적 과정 속에서 제도적 실체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공교육임을 알 수 있다.

기회적 평등의 실현 : 공교육체제를 통해 교육 기회는 급격한 속도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공교육제도는 적어도 교육기회에 있어서의 평등을 기하는 중요한 장치로서 기여하였다.

구래의 교육이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 교육이었다면 근대적 공교육은 '만인을 대상으로 한' 대중교육이다. 초등은 국가적 사업으로 자리잡아 비교적 빠르고 쉽게 의무무상교육이 실현되었으나, 중등 이상은 민중의 요구에 밀려 기회가 확대되어 간 경우이다. 지배계급은 민중에게 '최소한'의 교육만 허용하려 했으며 노동자, 민중은 이 틀을 계속 확장시키고자 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피지배계급은 지배계급에겐 위험스런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대적 공교육의 두드러진 특징은 교육대상의 확대이다. 공교육체제 성립으로 교육 기회가 '대중'에게까지 확대되었을 뿐 아니라, 공교육의 단계가 확대되면서 교육기간도 점차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초등 몇 년에 한정되었던 무상의무교육 연한은 차츰 길어져 현재는 9 내지 11년에 이르고 있다. 공교육제도의 정비와 유지의 재정기반은 민중(세금)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공적 기관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여러 계급의 자녀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 적어도 '기회에 있어서의 평등'은 공교육기관을 확대하고 무상의무교육기간을 확대함으로써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과정적, 결과적 평등 구현에는 실패

근대 공교육제도는 교육기회의 평등화를 기하는데는 성공적이었지만, 과정 및 결과의 평등에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다. 예컨대, 사회지위획득과 곧바로 연결되는 고등교육기회에 있어서 노동계급, 민중은 여전히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학교교육과정은 중산층 이상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바탕에 깐 '합리적' 도구인 평가와 선발체제는 '선별'을 통한 기회 제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 서열화된 학교 체제, 교과 선택권 부여 등은 과정적, 결과적 평등을 교묘히 가로막는 기제이다. 잘 알려진 예로, 복선형 학제나 종합고등학교에서의 '계열화'는 계급적, 인종적, 성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직업계열에 다니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과정과 결과에서의 불평등을 합법적인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제도적 장치다.

교육기관이 양적으로 늘어났고, 기회와 연한은 확대되었으나, 이런저런 장치를 이용한 내부에서의 '계층화'는 과정과 결과에서의 평등을 의심하게 만든다.

관리, 통제 : 형식적으로는 "국가관리체제"라는 공적 관리, 통제 형식을 취하였으되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교육에 대한 관리와 통제권한은 '중립적'이라고 가정된 국가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성격은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의 이익과 결별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여러 계급의 이해관계를 조절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국가는 외연상 '공평무사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따라서 한 국가의 교육정책의 향방은 그 사회의 계급 간 역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민주적인 국가에서 교육 역시 통제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은 국가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국가에 맡기는 것만으로 교육의 공적 관리가 구현되었다 볼 수 없다.

2. 교육공공성의 개념과 내용의 재정립

(1) 교육공공성의 세 가지 측면

① 교육의 성격을 기술하는 개념으로서의 교육공공성

교육의 성격은 공공적이다. 교육은 역사적 경로를 거쳐 이미 '만인', 그리고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사회적 실천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교육실천은 그 자체로서 사회적인 과정이며, 교육실천의 결과 역시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되지 않으므로 사회적이다. 아울러 공적인 일로서의 교육에 대한 권리는 만인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하는 사회적 기본권이다.

교육은 인간 생존과 사회 재생산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보편적 실천활동이자 사회적 영역이다. 즉, 교육은 공적인 세계에 속하는, 모든 인간의 삶과 이러저러하게 결부된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점에서 공공적 성격을 갖는다. 모든 사람과 사회 전체와 결부되어 있는 사회적인 일인 교육은 공적인 방식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생산의 사회화를 근간으로 하는 산업화의 진전은 역사이래 항상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위치해있던 교육에 있어서도 사회적 성격을 심화시킨 계기였다. 그리고 교육이 갖는 개인적, 사회적 중요성은 이전시기에 비해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비약하였다. 교육의 사회적 성격 심화는 교육이 사회의 재생산과 인간개개인의 발달에 있어서 핵심기제로서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교육의 사회적 성격 심화는 교육실천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의 교육이 '사적인' 방식에 주로 의존했던 데 반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실천은 사회적, 집단적 형태를 띠게 된다. 이와 함께, 교육 결과의 사회적인 의미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점에서도 교육의 사회적 성격 심화는 확인된다. 한편, 시민혁명과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성장은 교육을 사회적 권리로 인식하고 권리확보투쟁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요컨대, 교육이 인간 개개인과 사회구성체에서 갖는 의미 및 수행하는 기능을 생각해보면, 교육의 기본 성격은 사사성이 아니라 공공성이다. 교육의 공공적 성격은 생산(노동)의 사회화와 시민혁명을 계기로 확대된 대중의 사회적 권리의식을 계기로 급격히 확대되었다. 이렇게 볼 때, 공공성은 교육의 성격을 기술하는 개념이다.8)

② 어떠한 차별도 없이 모든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보장하는 원리로서의 교육공공성

교육공공성은 민중이 교육에서 소외됨을 극복하고 인간의 전면적 발달 도모를 보장하는 원리이다.

산업자본주의 성립으로 생산(노동)의 사회화가 진전되었고 교육의 보편적,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성격은 더욱 명료해졌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생산의 사회화는 진전된 반면, 생산수단은 여전히 사적 소유 질서 하에 놓여 있고 노동분업은 위계화되어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의 뿌리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배태된 불평등은 민주적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가로막는 심층기제로 작동한다. 그렇지만, 교육은 토대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며, 따라서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사회의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는 분위기가 널리 조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계적으로 불평등이 나타나는 사회체제 속에서 만일 교육을 '개인의 문제'(사사성)로 귀속시켜버리면, 인간은 저마다 처한 위치의 구속을 피할 수 없게 되므로 발달의 기회는 차등적으로 배분된다. 사사성에 입각한 교육실천은 민중의 교육소외를 반드시 가져오는데, 이는 '자유주의 교육사상'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처럼, 민중의 교육으로부터의 소외 극복과 전면적 발달의 기회는 '사사성'으로 절대 보장되지 않는다. 교육 기회(양과 내용 모두)를 공적으로 보장하고 공적 방식으로 이를 해결할 때 비로소 가능해질 뿐이다. 이런 의제는 사회의 불평등을 그대로 둔 채, 교육을 통해 평등화를 기할 수 있다는 낭만적 기대에 빠지는 것과 다른 이야기다. 사회의 불평등을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과 이에 좌절하는 것은 같지 않다. 뿌리깊은 사회적 불평등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도모하는 원리를 도출하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인간은 그 누구도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언명이라면 인간의 발달 기회는 모두의 기본적 권리다. 교육이 모든 인간의 생득적 권리인 전면적 발달의 권리를 실현하는 기제가 맞다면 공적인 방식과 과정으로 교육을 구조화해야 함은 당연하다. 여기에서, 교육공공성은 교육의 성격을 기술하는 개념에 머무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교육공공성 개념의 또 한 측면은 모든 인간을 교육으로부터 소외시키지 않으며 나아가 어떠한 차별도 없이 전면적 발달을 도모하는 원리라는 점이다.

③ 교육실천의 원리이자 이념으로서의 교육공공성

교육공공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지배계급의 교육에 대한 자의적 전유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전면적 발달을 이루는 교육실천의 원리이자 지향해야 할 이념이다.

교육공공성은 교육의 성격을 표현하는 개념이자 사회적 권리로서의 교육권을 담지하는 개념이면서, 동시에 교육구조와 질서를 만드는 실천활동에 있어서의 핵심 원칙이자 원리이다. 자본주의 질서하의 사회관계는 교육의 공공적 성격(사회적 일, 사회적 권리, 보편의 이익)을 왜곡시킨다. 즉,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의 교육이 갖는 공공적 성격의 발현은 "교육실천의 사회화 / 교육에 대한 특정 계급의 패권적 전유"라는 긴장관계 속에서 힘의 관계의 역동에 따라 억제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크다.

계급적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화해불가능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교육은 사회집단 간, 더 명확하게는 계급간 이해관계가 갈등하는 대립물로서 위치하고 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이 그 성격과 위배되는 방향으로 구조화되는, 다시 말해서 공공성의 부재 혹은 왜곡을 노정하게 되는 심층적 이유다. 심층적 기제에 의거해 자본주의 사회의 제도교육은 지배계급의 특권을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이 행하는 기능과 그 교묘한 작동방식을 인식하는 것은 교육이 인간을 발달을 위해 복무하도록 다시 자리매김하는 실천의 출발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교육의 공공적 성격은 자연스레 발현되기 어려운 '성격'으로만 남기 쉽다. 교육에 대한 통제권의 향방에 많이 좌우된다. 촘스키의 말마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물과 영역의 공공성을 유지, 확장하는 일은 "행동의 문제"지 사색의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공공성'을 확인하거나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난점은 바로 현실의 교육이 그러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을 사사성에 의거해 규정하여 피해갈 문제가 아니다. 개념과 실재 사이의 괴리가 분명하다면, 이는 주체의 실천을 통해 극복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여야 함이 불가피하다. 여기에서 교육공공성 개념의 중요한 측면 하나가 드러난다. 자본주의 근본모순과 힘의 관계가 야기하는 교육의 공공적 성격 왜곡은 실천을 통해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실천을 통해 확장하고 실현해야 할 원리라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요컨대, 교육 공공성은 인간 특히, 노동자 민중이 주요 주체로서 집단적 '실천'을 통해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는 개념이다.

(2) 교육 공공성의 개념

명제. (사물 혹은 영역의 공공성)

첫째, 모든 인간과 전 사회의 생존과 결부된 일.

둘째, 존재하고 작동하는 방식이 사회적 일이자, 사회적 과정,

세째, 만인의 생존과 관련되었기에 당연히 그 사물은 보편의 이익에 복무하는 형태여야 마땅.

네째, 따라서 공공성은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사회적 권리를 담지.

명제. (교육이 공공성을 갖는 근거)

교육은 만인의 생존과 결부된 사회적 과정이자 실천이다. 교육은 모든 사람과 사회의 생존에 결부된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이를 위한 교육실천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교육은 공공성을 갖는다.

첫째, 교육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교육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기본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핵심적 권리이다.9) 나아가 교육은 한 사회의 생존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교육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최소의 기준과 형태는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을 위한 부분이다. 즉, <너나할 거 없이> 교육은 인간모두의 삶의 질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므로, 그 누구도 배제되어선 안 된다. 이로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 교육권의 보장은 인권실현의 핵심적 요소이며 따라서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개인의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의 생존, 사회 유지의 측면에서도 교육이 공적영역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교육은 인간 개인에 있어서도 가치롭지만, 개인의 가치로만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다. 즉, 교육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물 혹은 영역이다. 그 행위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고, 모든 사람의 이해와 결부되어 있으면 이는 반드시 '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셋째, 교육은 근대 자본주의 성립이후 개인의 지위획득의 '관건적' 부분이 되었다. 전자본주의 시대에는 피지배계급이 교육으로부터 배제되는 경향이 절대적이었으나, 근대 자유주의 사상이 발현 이후 그나마 문이 열렸다. 교육이 지닌 이러한 사회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일반 보편의 이익이 강하게 추구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이런 성격은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의 보장이 요청된다는 소극적 실천과 교육이 지위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적극적 실천 둘 다와 연결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 요청되는 것이 바로 교육의 공공적 성격 구현이다.

명제. (교육권은 공공적 권리이다)

교육은 생존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이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아무도 배제될 수 없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권리는 생존권적 기본권이요 따라서 공공적 권리다.

그렇다면 공공적 권리란 무슨 뜻인가? 모든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리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의 삶과 결부되어 있고 삶의 질과 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가름하는 교육의 성격을 '사사성'으로 논할 수 없다. 사사성(혹은 방임)이 강조될 경우, 교육의 '사유화'를 피할 수 없고, 사유화10)는 공공적 권리를 억압한다. 즉, 모든 이의 권리 보장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해에 복무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교육이 특정집단의 이익에 맞추어 구성될 경우, 대다수의 교육적 권리가 침해받게 되고 결국 절대다수에게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기회를 박탈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는 왜 교육 공공성 개념에 교육권이 담지되어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이야기해준다.

함께 하는 삶의 세계, 즉 세계 그 자체가 공통의 세계이고 공통의 세계 속의 인간 전부는 교육에 대한 권리를 동등하게 가지는데, 이는 교육권이 보편적 권리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이를 또 달리 표현하면, 교육은 바로 공공적 권리이다. 요컨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너나할 것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가 바로 교육권이며, 공공성은 바로 이러한 기본적 권리를 담지하는 표현이며, 추구해야 할 이념으로서의 성격을 내포한다.

명제. (교육공공성의 개념)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교육권을 확장하고 실현하는 원리이자 원칙"이다.

교육이 인간의 삶에서 갖는 의미에 따라, 교육권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너나할 것 없이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 권리이다. 따라서 교육은 보편적 권리이다. 바꾸어 말해, 교육이 공공적 권리라는 의미이다. 교육의 공공성은 바로 만인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교육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며 이러한 기본적 권리인 교육권을 최대한 확장하고 실현하는 원리이자 따라서 교육의 성격에 비추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이념이다.

공공적이라 함은 먼저 비배제성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누구 하나 교육으로부터 배제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공성 개념에는 민주주의 원리가 포함된다. 또한 공공적이라 함은 공익, 즉 특수 이익이 아닌 보편 이익(='다수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교육의 공공성은 교육이 '다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형태로 제도화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포함한다. 다수는 다름 아닌, 노동자 계급과 민중이다. 따라서 교육의 공공성은 다수 민중의 교육권을 확장하고 실현하는 원리이다.

(3) 총체적 개념으로서의 교육공공성을 구성하는 내용

교육은 여러 요소와 주체, 제반 사회 영역이 체계적으로 맺어진 관계망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실천이다. 인간이 총체적 존재이듯이 사회적 일로서의 교육의 과정은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육의 성격을 기술하는 개념이자 교육실천의 원리인 교육 공공성은 교육의 전 영역을 아우를 수밖에 없는, 따라서 총체적 개념이다.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교육의 본질에 따르면, 교육은 '총체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이며, 따라서 교육공공성 역시 총체적 개념이다.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이루어지는 전영역과 전과정에서 그 속성을 재확인하고 추구, 강화해야 하는 개념이자 원칙이며, 제반 교육문제를 판단하는 잣대이다.

교육공공성이 총체적 개념이라 함은 첫째, 교육공공성은 교육을 구성하는 각 요소별로 성립 혹은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라 교육의 전영역, 전요소를 포괄한다. 둘째, 실천에 있어서 교육공공성은 부분적 적용만으로 온전히 실현될 수 없는 원리라는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총체적'이다.

교육 목적, 운영원리, 교육의 결과, 교육노동 등 추상적 영역에서 적용될 뿐 아니라, 이러한 추상성이 높은 차원에서의 공공성이 실현되려면, 관리와 운영의 주체, 소유, 부담의 형태 등 비교적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교육체계의 요소에 있어서도 공공성은 여전히 기본이자 최상의 원리여야 한다.

 

교육공공성을 구성하는 하위 개념

◆ 보편성(비경합성의 적극적 형태)

◆ 평등성(비배제성의 적극적 형태)

◆ 민주주의(공적 관리 주체의 권력구조로부터의 정치적 중립성 / 모든 교육주체들의 정치적 자율성)

교육목적 및 방향과 내용 : 보편성, 정당성, 공정성

운영과 절차 : 민주적 공동체, 민주적 민중통제의 원리

소유 : 사회적 소유

부담 : 사회적 부담, 개인에 있어서는 무상성

관리의 주체 : 공적 주체

사회구성체에서의 위치 : 공공부문

관리, 통제 : 공적 관리, 통제

교육 결과 : 공평성, 공정성

(공공의 이익에 복무, 사회적 전유, 특정 집단에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을 것)

지배 질서와의 관계 : 모든 집단적 주체의 정치적 자율성


3. 교육공공성, 어디까지 왔나?

앞글에서도 살폈지만, 냉정히 판단하건대, 교육공공성은 아직 실체로서 온전히 구현되지 못한 상태다. 부분적 현실화는 이루었지만, 아직 많은 부분 '추상'으로 존재한다. 더 냉정하게는 교육공공성의 개념 규정조차 미진한 상태였다. 이 글은 당장은 개념적 혼돈상태 만이라도 극복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받아들이며 시작되었다. 혼돈상태의 극복에 얼마나 보탬이 되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는 앞으로 논의를 통해 진전시켜야 할 부분이라 여긴다.

이전 부분에서 '개념'을 다루었다면 규정한 개념에 비추어 교육공공성이 어느 지점까지 도달했는지를 따져본다. 엄밀한 분석은 아닐 지라도 운동의 방향과 과제 도출에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교육공공성의 도달지점은 다음과 같이 파악할 수 있다.

 

교육 기회의 양적 확대는 어느 정도 이루었으나,

교육에 대한 통제권은 지배집단의 손아귀에

교육공공성이 민중교육권을 확장하고 실현하는 원리이자 원칙이라 하였을 때 위와 같은 진술은 민중교육권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앞서 논의한 교육공공성 개념에 터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민간 부문> - 사사성

<공공 부문> - 미완의 공공성

형태 : 사교육

위치 : 시민사회 내지 시장

성격 : 사유재, 사사성

(경합성, 배타성)

사적 부담

구매력이 기회와 질을 결정

결과의 사적 전유

형태 : 공교육

위치 : 공공부문

통제 : 국가

성격 : 공공재적 성격과 공공성의 부분적 실현

(비경합성, 비배제성 : 완전하지 못한 상태)

공적 부담(세금, 사회적 채임 및 무상성의 부분적 실현)

중등교육까지는 구매력에 상관없이 양적 기회보장, 질적으로는 차등적인 상태.

결과의 사적 전유 우세

여기서 다시 공교육을 중심으로 공공성의 도달지점을 논의한다. 민중의 요구와 사회적 필요에 의해 계급간 각축과 타협의 결과로 건설된 공교육체제의 면면을 살피다보면 '공'교육인데도 불구하고 공공성의 원리가 아닌 '딴 것'으로 구조화되었다는 웃지 못할 역설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여기서는 한국사회를 중심으로 공교육시스템을 구성하는 하위요소 몇 가지를 골라 살핀다.

① 공교육의 포괄 영역 및 단계의 미완과 사적 방식에 의한 해결 경향 : 지금까지의 역사와 현재 상황을 돌이켜보면, 교육이 이루어지는 제반 영역과 형식교육의 단계들 중 부분적으로만 공교육 내로 포괄되었을 뿐이다.

교육일반을 망라했을 때, 공공부문과 민간 영역 양쪽에 걸쳐 있으며, 사교육이 공교육을 '위협'하고 있다. 모든 교육실천이 공공부문에서 공적인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지 않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공교육에서조차 공공성을 구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공교육의 위기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공교육에 대한 사유화 시도는 교육의 공공적 성격구현에 있어 근본적 위기이다. 공교육 내부를 보았을 때도 공공적 성격이 제대로 발현되기 어려운 조건이 발견된다. 예컨대, 사적 기관의 난립은 교육공공성 구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교육 체제 성립과정에서 한국의 역대 정권은 사학재단 및 개별 학부모들에게 재정적 의존을 하였다. 이는 교육에 대한 통제권에서 사적 주체의 발호를 배제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사학의 소유권에 기반한 경영 자율권 요구는 사실상 공적 지원이 대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교육통제권을 공적 주체로 일원화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그리고 교육에 대한 요구와 필요수준의 상승에 따라 교육연한은 일반적으로 상승되어 왔다. 따라서 기존의 공교육체제를 위, 아래로 확장해야 한다. 사회적 필요에 따른 교육을 여전히 사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체제적 모순이 남아 있는데, 대학교육과 유아교육이 바로 그러하다. 대학교육은 이미 대중화 단계에 도달했으며, 유아교육도 이미 사회적으로 보편적인 필요를 갖고 있다. 대학교육과 유아교육이 사사성에 의해 구조화되는 한 민중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② 교육기회 제한장치 작동 : '선발장치'와 '과도한 교육비'를 통한 교묘한 걸러내기로 민중의 자녀들은 알게 모르게 교육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능력주의, 수월성, 경쟁이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는 현실 속에서 교육이 인간 모두의 당연한 권리라는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교육이 존재하는 중요한 이유가 "민주적 공동체 속에서의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면, '선발장치'를 통한 걸러내기는 교육이 공공적 권리라는 원칙에 위배된다. 하지만, 교육에 떠맡겨진 선발 기능은 마치 당연한 것으로 사람들 머리 속에 주입된 채 좀처럼 깨어지지 않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신자유주의 개혁과정에서 선발장치는 '공정하지조차 못한' 양상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평가라는 일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과정으로 구조화된 선발장치는 한국사회의 엄청난 교육비 부담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일 뿐, 인간의 전면적 발달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이처럼 교육의 주된 기능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선발장치의 상존 및 교육이 행하는 선발기능 수행은 뿌리부터 의심해봐야 한다. 더불어 그것이 바탕에 깔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민중의 교육권이라는 대원칙을 왜곡시키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③ 공교육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편파성 : 현재까지의 공교육의 사회적 기능은 파쇼 정권과 자본, 상층 부르주아지의 이해와 더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

공교육이 행해야 할 기능에 비추어 교육공공성을 서술하면, "민주적 공동체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전면적 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공교육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능해야만 한다는 진술과 동치이다.

공교육이 민중 교육권 확장의 전초기지로 역할해 왔음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부분이지만, 공교육의 역할과 기능은 공적이지 못한 쪽으로 한참 기울어있다. 교육내용과 운영 등 교육에 대한 통제권 전반이 우리 아닌 '그들'의 손아귀에 있음으로 해서 빚어진 결과이다. 게다가 교육이 지위획득의 관건적 부분으로 자리매김되면서 민중 개개인의 교육권에 대한 욕구 역시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기회획득에 있어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만들어야 한다 정도였다. 교육이 행해야할 공적 기능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는 아직 중심적인 사회적 의제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배집단이 패권적으로 통제권을 장악한 공교육은 본질적으로 공공의 이익보다는 특정의 이익에 복무해왔고 이는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폐된 채였다. 이런 오명말고 또 하나. 교육의 기능은 '노동력'의 배출과 유리한 조건을 갖춰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자격갖추기에 온통 치우쳐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은 이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 추진한다. 정부와 자본이 앞장서 추진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과정에서 가장 높은 목소리는 '민중교육권 쟁취'가 결코 아니었다. '공교육이 (자본이 이윤창출을 효율적으로 돕는데 있어) 제구실 못하니 바꾸라'는 거였다. '인적자원개발'을 모토로 삼는 게 이를 말해 준다. 20대 80의 사회를 상정하며 인간의 '불균등 발달'을 당연시한다. 정작 개혁의 몸통은 교육의 경제적 효용성을 '자본'의 입장에서 따져 고치는 데 있으면서도, 립써비스로 인성교육과 전인교육을 언급하는 '배려'도 잊지 않는 그들이다. 도대체 '공공의 이익'을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과 '자본주의 경제에 효율적으로 복무'하는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건 완전히 딴 얘기다. 만일 공교육이 불평등한 고용구조를 '이유있는 차별'인 양 거들어왔음이 '사실'이고 이것을 바꾸는 게 당연지사라면 공교육은 지금까지와 다른 원리로 그 기능을 논하고 그에 따라 바꿔야 옳다. 바로 '교육공공성'을 구성하는 하위 내용 중 교육은 공공의 이익에 복무해야 한다는 부분의 실현이며, 공공/보편의 이익은 사회 구성원으로 치면 노동자, 민중의 이익이다.

④ 관리 주체의 중립성 결여와 비민주적 운영구조 : 국가 관리 체제의 공적 성격은 사회적 힘의 관계를 표상하는 국가의 성격에 좌우되어 왔다.

공교육의 관리 주체의 성격 및 공교육 시스템 운영구조는 공교육 전반의 공공성 발현을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다. 관리주체와 운영구조가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제반 교육 의제들을 공공성에 입각한 방식으로 논의, 실현하는 데 있어 물꼬를 트기조차 어렵다.

공교육의 관리를 위임받은 주체(이를 테면 교육부, 교육청 등 행정체계와 관료)는 '민중의 입장에 서서'까지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중립성'을 원칙으로 견지하여 그 역할을 수행함이 옳다. '공공의 이익' 및 '공정성'의 원칙을 저버린 채 '권력구조'로서만 기능한다면 교육기회, 교육과정, 교육노동 등 중요한 교육의제들이 기형적으로 다루어질 뿐 아니라, 교육주체들을 억압하게 된다.

불가피하게 관리주체와 운영구조의 공공성은 '힘의 관계'라는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에서 교육의 관리 주체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였다. 추상적 공동체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실체를 갖는 통치기구로서의 국가가 교육 전반을 관장하는 기구였다. 국가는 개념의 차원에서는 계급 귀속적이라 볼 수 없지만, 현실의 차원에서는 사회적 힘의 관계의 규정을 받는다. 그렇게 본다면,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형식과 위치상 국가는 분명 '공적'(즉, 어느 한 계급에 귀속되지 않는) 기구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총자본'으로서의 구실을 한다는 모순이 있다. 따라서 국가에 교육의 관리를 '맡기는' 것만으로 관리, 운영 차원의 공공성이 담보되리라고 안심하는 건 섣부른 낙관일 뿐이다. 더군다나 한국사회에서처럼 줄곧 국가가 정권유지를 일차적 관심사로 삼고 편파적이기 이를 데 없는 억압적 국가였다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정치원리(의회 민주주의에 불과할 지라도)가 작동하는 한 국가는 최소한, 중립성을 표방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힘의 관계를 재편하고 '민중통제에 입각한 교육 민주화' 실현이 운동의 과제로 부여된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믿고 교육을 내맡길 존재가 아니라 공공성의 기준으로 언제나 추동해내야 하는 '믿을 수 없는 존재'다.

⑤ 교사와 교육노동 : 교사에 대한 비민주적 관료적 통제시스템의 온존과 교육노동의 기본 임무 왜곡

공교육 시스템에서 교육활동을 행하는 중심주체는 바로 교사다. 교사의 노동이 공공성 원칙에 근거하여 행해질 수 없는 구조 속에서는 '민주공동체 교육과정' 구상은 허구가 되어버린다. 공교육기관에서 교사로 일한다 함은 바로 민중교육권을 확장하고 실현하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사회의 교사는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노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위치에 처해져 왔다. 온갖 교육모순을 온몸으로 떠 안은 채 구상과 실행의 분리로 소외된 노동을 하고 있으며, 관료적 통제 하에서 자율성과 전문성 발휘는 질식당해 왔다. 기형적 교육의 결정판인 '입시위주의 교육' 체제 하에서 교사는 '입시전문가'로서 기능하기를 요구받아 왔다. '공직자'의 윤리를 강요받으면서도 파쇼정권 유지의 하수인으로 동원되던 교사는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진행되면서 '공직자 + 서비스 공급자'로서 재규정되고 있다.

교육노동을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하여 재구조화하지 않는 한, 특정 계층 자녀들은 교육기회의 보장은커녕 '선택과 배제'의 원리 작동에 희생된다. 성취도를 높여야 한다는 체계적으로 구사되는 바깥의 압력은 교사들로 하여금 '모든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일을 못하게 만든다.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교육노동을 유연화하고, 교사들을 분할통치구도로 내몰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강요하는 한 교사개개인의 의지나 도덕성과 상관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전면적으로 발달할 수 있도록 교육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교육실천가'이자, '교육노동자'이다.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람이 아니다. 교사가 교육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쟁취하여 집단적 자율성과 전문성으로 무장할 수 없는 한 교육노동의 공공성 실현은 불가능하다.

주--------------------------

1) 보울스와 진티스, 존슨이 바로 이런 식의 설명틀을 제시했다고 분류된다.
2) 아처
3) 뒤르
4) E. P. 톰슨,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5) 프리드리히의 엥겔스의 명저『영국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참조하시기 바람. 공장제 도입 초기 영국의 노동자들이 어떠한 삶(산다고 말하기 조차 어렵지만)을 살고 있었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6) "테일러리즘은 금세기 초반에 노동조합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 초기의 반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반대가 스톱워치나 동작연구와 같은 테일러 시스템의 부속물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로부터 기능적 지식과 자기 통제를 박탈하고 그들에게 이미 완전히 구상된 노동과정을 제시함으로써 그들을 단지 톱니바퀴나 지렛대와 같은 역할만을 하게 만들려는 근본적인 시도에 집중된 것이라는 점이다." (노동과 독점자본 123쪽)
7) "직공이 거주하는 곳은 어디에나 직공시인, 생물학자, 수학자, 음악가, 지질학자, 식물학자 등이 있었다…북부의 박물관과 자연사학회는 직공들이 세운 것이다. 또한 벽촌에는 평평한 돌 위에 그림을 그려 기하학을 독습하던 직공과 미분법을 열심히 하던 직공의 이야기가 남아있다."
8)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공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공중 앞에 현상하는 모든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까닭에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이 공적인 것의 첫째 의미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도 하나의 현상으로 지각되는 것만이 현실성과 실재성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인 것은 모든 사람에 의해 지각되는 현상들의 현실>이다. 둘째,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이라는 점에서 <공적인 것은 "세계 자체"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장소"와 엄격하게 구별된다. 이 두 가지 의미를 종합해보면 공적인 것은 우리가 말과 행위를 통해 우리의 인격을 드러내는 구체적 행위의 공간과 장소로서의 "공론 영역"이다. 이 공론 영역은 물론 유기체적 인간이 움직일 수 있는 제한된 공간으로서의 지구와 자연과 직접 일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공론 영역은 공동의 관심사에 관한 인간의 말과 행위를 통해 비로소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인 탄생성과 사멸성이 인간이 지구적 존재라는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듯이, 공론 영역의 몰락은 바로 인간의 구체적 거주지인 지구의 파멸로 이어진다.(http://www.netuni.net/main/best/review_read.asp?ArticleID=15&Aorder=4)
9) {상태}에서 개별공장주(즉, 부르조아들)들은 이런 노동력이 재생산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신경쓰지도 않은채, 다각도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음. 그래서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 도덕적으로도 대단히 타락하고 피폐할 수 밖에 없었음. 평균수명이 30,40세일 정도로 엄청난 착취에 직면해 있었음. 그리고, 당시 개별 자본가들은 좀 쉬어야 노동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았음. 그러나 이런 행태 자체가 사회의 기본적 유지를 대단히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었음. 이후 총자본은 이 문제를 고민했던 거 같고, 노급도 계급의식과 인간으로서의 자각을 하면서 교육에 대한 요구를 거세게 한 것으로 보임. 결국, 노급이든 자본가 계급이든, 사회유지라는 화두를 놓고 볼 때 교육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필요불가결한 공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영역임. 물론, 불평등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건 당연.
10) 교육을 '개인의 일'로 혹은 '특정집단의 전유물'로 인정하는 사사성은 결국 사유화의 방식으로 교육을 구조화하기에 이른다. 교육의 사유화는 소유와 소비, 그리고 관리에 있어서의 사적주체를 우위에 둔다. 더불어, 만인의 교육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부정하고 교육의 결과 역시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라 규정하므로 교육에 대한 권리가 논리적으로 부정된다. 설사 말로는 공익을 위한다 해도 교육을 사유화하는 한 교육의 권리는 현실적으로 보장될 수 없다. 오히려 절대다수의 권리를 억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