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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초짜세미나계획

2002.04.08 15:27

손지희 조회 수:1503 추천:4

연구소의 가는 길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초짜세미나>를 보게 하라!

누가 연구소의 가는 길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초짜세미나>를 보게 하라!

진보교육연구소 교육이론실

제목이 지나치게 거창하고 격에도 맞지 않는 감은 있지만, 탄탄한 학습의 기반 위에서만이 연구소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호기 한번 부려보았다. 하지만, 초짜세미나는 이름부터가 좀 가볍다. 가벼운, 그래서 부담이 덜하리라는 느낌을 풍기는 명칭 덕에 멋모르고(?) '덤비는' 건 아닌가란 짐작도 해보고.... 하여튼 초짜세미나는 작년 2학기에 이어 올 2월 말부터 2기 팀을 꾸려 본격적인 세미나에 돌입했다. 분과연구원 모집에는 반응이 매우 "썰렁"했던 데 비해, 그래서 이사람 저사람 찔러가며 연구원 활동을 직접 권유하고 다녀야 하는 아픔을 겪었던 데 비해, 초짜세미나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약간 과장)이었다. 애초 주최측을 포함하여 6, 7명쯤으로 생각하였으나 신청자 수가 이를 초과하였다. 몇 명 짜르고도 현재 12명이다. 이 바람에 나중에 신청한 분들께는 '다음 기회를' 이라는 말로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1기에서 2기로 : 초짜세미나를 꾸린 맥락

작년 여름 무렵 연구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초짜'라는 필명으로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이 <초짜세미나>란 명칭의 기원인 셈이다.

안녕하세요..많이 주저주저하다가 글을 씁니다..

저는 좋은 선생님을 꿈꾸는 사범대 학생입니다... 이번 여름 졸업을 하는데.. 교사를 꿈꾸웠던 시간만큼 선생님으로써의 올곧은 생각과 자질을 기하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가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임용고시에 합격하여 교단에 선다해도 뻔뻔한 얼굴로 구라쟁이 선생님이 되는 것이 뻔합니다..
교육이 무엇인지... 진정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학교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곳이어여 하는지... 정말 한심하게도 어느 것 하나 당당하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없네요.. 물론 회보나 개인적인 교육관련 책들도 열심히 읽어야겠지만..이곳에서 회원이 되면 교육세미나를 받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꿈만 있고 어리숙한, 교육에 대한.. 교사에 대한.. 사고의 틀을 확장시키고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좀더 행복하고 당당한 선생님이 되고 싶구요...(주위사람들이 앞의 형용사들보다 선생님이라는 명사에 집중하여 얼렁 임용고시 준비를 하라고들 하지만... 암튼 다 잘해보고 싶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도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지...

물론 초짜세미나가 시작된 이유를 단지 외부의 요구에서만 찾는 건 무리다. 그러기엔 연구소는 그다지 '봉사정신'이 뛰어나지도 않거니와, 그런 요구에 일일이 부응할 만큼 여유롭지도 못하다. 연구소 내부에서도 '입문과정'의 필요를 느끼고 있던 차에 제발로 찾아와 시켜달라는 사람을 만났다고나 할까? 소규모 인원으로 이런 저런 활동을 꾸려나가는 상황에서 일손과 시간을 따로 투자해야 하는 세미나를 연구소 활동에 추가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연구원으로 입문하기 전에 뭔가 체계적인 과정은 연구소 내에 진작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연구소가 생긴지 4년째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초기 멤버들끼리처럼 자연스런 '사통'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구성원에 대한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공간으로 초짜세미나의 역할과 위상을 설정하고 출발하였다.

1기 <초짜세미나>는 애초 4명으로 출발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마지막에는 (주최측에 해당하는) 이론실장과 사무차장, 그리고 "원조 초짜" 두 명만 남았다. 솔직히 말해 1기 초짜세미나는 '실패'였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크게는 초짜들이 너무 바쁜 사람들이었고, 주최측도 다른 일로 허덕이는 가운데 하나의 일이 더 부과되었기 때문에 늘 힘겹게 세미나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1기 초짜세미나가 아무 의미 없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2기를 더 잘 꾸릴 수 있는 경험적 기반이 마련되었고, 허둥대며 잡았던 학습커리를 1기 세미나를 거울삼아 버전업-아주 새로운 것은 없고 좀더 체계화한 정도지만-할 수 있었다.

1기 초짜세미나를 작년 말에 마무리짓고, 2기 초짜세미나 구성원을 본격적으로 모집했다. 본격적인 모집에 나서기 전에도 초짜세미나 참여문의는 제법 있었다. 사실 이분들을 위해 2기를 준비하였다. 워크샵이다 뭐다 해서 차일피일 구성이 미뤄지다가 드디어 2월 초에 커리 작업을 하고 새롭게 구성했다. 대부분은 홈페이지를 통해 초짜세미나의 존재를 알게 된 분들이었고, 나름대로 '학습'에 대한 욕구를 풀어낼 공간을 찾던 참들이었다.

초짜세미나 학습자료의 특징 - 교육사회학 이론 중심의 커리구성

초짜세미나 커리를 두고 '편중되었다, 뭔가 냄새가 난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맞다. 초짜세미나 커리는 철저히 교육사회학 중심, 그것도 주로 '왼편'에 서있는 입장의 논문들을 주로 골라 짰다. 단순한 이유를 들면, 커리를 책임지고 짠 사람(필자)이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분야가 그 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연구소의 제반 논의를 이해하고 참여하는데 필수적인 내용들로 구성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연구소 내부 일꾼 외에 2기 초짜세미나를 신청한 낯선 분들은 대부분, 이런 커리를 공부해볼 생각으로 참여를 결심한 경우이다. 즉, 이론분과 게시판에 올린 1기 초짜세미나가 굴러가는 모습을 접하고 세미나를 하기로 작정하였기 때문에, 이런 커리 구성에 거부감들은 별로 없었다. 학습에 대한 목적의식이 비교적 분명한 사람들로 팀이 구성된 셈이다. 따라서, 모종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초짜세미나가 출발한 것이 사실이면서, 동시에 초짜세미나에 대한 연구소의 바램이 커리에 반영되었다.

초짜세미나 커리는 대충 다음의 흐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교육사회학의 연구전통 개괄이다. 학교효과 연구에서 시장화 논의까지를 일련의 흐름 속에 놓인 것으로 설정하고 '지배적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궤적'을 추적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시장화 논의의 시발격인 처브와 모우의 글을 기존의 교육사회학 개괄 논문에 추가하였다.

둘째, 재생산 이론의 고찰이다. 경제재생산 이론과 문화 재생산 이론, 그리고 저항이론을 대표하는 글들을 이론적 흐름에 맞추어 구성하였다. 경제재생산 -> 문화재생산 -> 저항이론의 순서로 전개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이 순서를 따랐다.

셋째,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탐구를 별도로 잡았다. 이 부분의 커리는 현장연구논문을 중심으로 묶었다. 교사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내용들이며 자신의 노동과정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왜 그럴 수 밖에 없는지를 돌아볼 기회도 되어 준다. 더 근본적으로는 재생산의 주요 고리로서 교육과정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다. 전통적으로 많이 수용되는 교육과정에 대한 '기술공학적'관점에 대비시켜 교육과정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강조한 커리 구성이다.

넷째, 자본주의 사회 교육 체제 내의 교사를 또 하나의 주제로 선정하였다. 교직과 교사에 대한 '규범적 접근 방식'으로 쓰여진 교사론은 일단 배제하고 대신 교직과 교사의 계급적 위치라든가 교사노동의 성격에 대한 논문을 선정하였다. 연구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대부분 교육운동에 관심이 있거나 교육운동에 몸담으면서 교사의 위치(예컨대, 교육운동이냐 노동운동이냐) 등에 대한 이론적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규범적 교사론 - 이를테면, 교사는 이러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교사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 대신에 사회학적 접근 논문을 택하였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와 교육을 주제로 잡았다. 연구소의 출발 의미 자체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였으므로 이는 연구소로서, 그리고 현 시대의 당면과제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주제라 여겼다.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다시 한번 살피고, 비판하는 시간으로 삼을 것이다.

사실, 선정된 글들은 대부분 교육운동의 '흥성기'에 누구나 읽고 공부하던 '고전적인' 것들이다. 이제는 이런 책들은 구하기조차 힘들어졌지만. 12회의 세미나를 염두에 두고 짜서 많은 것을 뺄 수 밖에 없었다. 특히, 공교육 형성사라든가 탈학교론, 대안교육운동에 대해서도 짚어보았으면 했지만, 부득이하게 뺐다.

초짜세미나에는 초짜가 없다?!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에는 ○○가 없다"... 역설적이다. 사실, 필자가 보기에 2기 초짜세미나 구성원들은 초짜들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커리도 사실 '진짜 초짜'(=생초짜)에겐 버거운 내용들이다. 일단은 번역이 엉망인 글도 많아서 이런 분야의 글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이면 책장 넘기기도 힘들다. 그리고, 사회학적 바탕 위에서 쓰여진 논문들이 대부분이어서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사회학, 사회구조 논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이해하기가 용이하다. 이를테면, 토대-상부구조론이라든가, 이데올로기론, 환원주의, 미시적/거시적 접근, 질적/양적 연구, 실증주의/실재론적 과학 철학 등등...

그럴 줄은 예상했지만, 2기 초짜세미나에는 나름대로 준비된 사람들이 모였고 상당히 진지하다. 나름대로 뭔가 이미 자기 활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사회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막 들어간 사람도 있다. 그래서 (학력이 딸리는) 필자는 "그냥 바로 연구원으로 결합하시죠"라고 간곡히 부탁했으나... 끝내 초짜라고 우기며(?) 초짜세미나를 고집했다.

필자는 첫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구소로서는 초짜세미나를 끝내고 모두가 연구원 활동을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각자의 문제의식과 활동의 영역을 존중한다. 초짜세미나가 자신의 활동기반을 더욱 굳건히 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속은 좀 쓰린 얘기였다. 연구원 확보에 늘 전전긍긍하는 처지여서 초짜세미나를 연구원 충원의 공간으로 활용해볼 속셈도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듭해서 초짜들을 '선수'로 배출한들 자신의 활동영역으로 그들을 고스란히 돌려보내는 건 현재 연구소 여건에서는 좀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생판 모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비슷한' 관심을 갖고 연구소에서 세미나를 한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한편으로는 지금 몸담고 있는 공간에서 학습 욕구를 채우기가 이토록 어려운가!-, 다시 말해 공부 안 하고 책 안 사보는 분위기가 초짜세미나의 '인기'에 반영된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지만. 연구소가 그런 빈곳을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일단은 만족이다. 몸도 힘들고, 마음에도 부담-나도 잘 모르는 주제에 책임지고 이끌어나가는 입장에 서야 하는-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초짜들이 스스로 '선수'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될 그날을 위해 오늘도 (심신의 피곤을) 참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