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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7차교육과정과 과학교육

2002.04.03 11:36

양재철 조회 수:1784 추천:4

7차 교육과정, 수능, 과학교육

7차 교육과정과 과학교육

양재철 ∥ 잠실고등학교 교사

일찍이 다윈은 생존경쟁, 적자생존, 자연도태를 통한 자연 선택이 진화의 기본 원리임을 설파하였다. 약삭빠른 자들은 이러한 약육강식의 논리를 곧이곧대로 인간사회와 국제질서에다 대입하여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논리를 마구 휘둘러댔다.

인류사는 그로부터 불과 100 년 남짓. 지구촌을 주름잡는 자본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면서 학교와 교육 시스템에서조차 끊임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인간을 한낱 자본의 증식을 위한 소모품으로 둔갑시키려고 설쳐대고 있다.

7차가 시작된 지 벌써 2년째다. 97년으로 예정되었던 6차 교육과정이 끝나기도 전(95년)부터 준비된 7차 교육과정은 기존 커리큘럼의 평가에 바탕을 둔 발전된 교육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세계화, 정보화와 지식기반사회, IT 산업의 지나친 비대화, 국가 경쟁력 강화의 요란한 구호와 함께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며 들어섰다.

7차 교육과정에서의 과학과 교육과정의 특징

7차 교육과정의 과학과 교육과정은 국민공통 기본교육 과정에서의 '과학'과 고등학교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생활과 과학', '물리(Ⅰ/Ⅱ)', '화학(Ⅰ/Ⅱ)', '생물(Ⅰ/Ⅱ)', '지구과학(Ⅰ/Ⅱ)' 등의 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밖에도 고등학교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는 전문 교과로 과학에 관한 교과목이 과목별 실험, 과학사, 컴퓨터 등 20여개 과목이 설정되어 있다.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에서는 학년간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은 초등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의 과학 교과목의 명칭을 모두 '과학'으로 통일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또한 선택교과 중 '생활과 과학'이 일반 선택 교과목으로 설정되어 있다.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수준별 수업의 도입이다. 수준별 수업은 초등의 경우 학습집단의 구성이 학급내 집단 편성을 원칙으로 하게 되어 있고, 중 고등학교에서는 학교의 실정에 따라 다양하게 편성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이미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기 전에 시범운영을 통해 여러 학교에서 사례가 보고되었지만 그 시범의 의의는 제한적일 뿐이다. 그것이 설사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연구학교에서의 사례는 거의 성공할 수밖에 없는 아니 성공해야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과학은 국민공통 기본 교육과정에서 국어·사회와 함께 심화·보충형 수준별 수업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3학년에서 5학년까지는 기본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6학년에서 10학년까지는 기본과정과 심화·보충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심화·보충 수업이라는 것이 수준별 학습으로 7차 교육과정의 핵심적인 내용 중의 하나이지만 현실적으로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실제로 이미 7차 교육과정이 진행된 중학교 1학년(7학년)의 경우 수준별 수업은 영어·수학의 단계형이나 국어·과학·사회의 심화·보충형 모두 거의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과의 경우 심화·보충 수업이 실천되기 어려운 까닭은 여러 가지다. 우선 학습집단의 편성이 거의 무조건 학급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원화된 지도'를 해내기에는 학급당 인원 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보조 교사가 거들지 않으면 거의 수업이 어렵다. 또한 심화학습의 경우 교육과정에 주제가 정해져 있는데 과연 심화학습의 주제로 알맞은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으며, 이것은 보충학습의 주제가 심화학습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는 사실로도 방증할 수 있다. 또한 7학년과 10학년에서 시수(단위수)가 1차시씩 줄어들어 6차 때보다 진도를 맞추기가 어려워진 것도 문제다. 물론 학교에서 재량활동 시간을 확보한 경우는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교에선 진도 맞추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생겨난 재량활동 시간은 교사들의 수업 시수 조절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몰라도 언제 그 시간을 다른 교과로 빼앗길지 모르므로 그 잇점은 별 것이 못된다.

또 다른 변화는 시수와 함께 교육 내용을 30%나 감축하였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일본에서 발표한 새 교육과정이 우리나라와 똑같다. 교육정책을 짜는 분들이 일본과 짜고 했는지 아니면 일본이 우리 것을 표절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재량 시간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거의 모든 과목별로 시수가 줄어들었고, 표면적으로는 교육 내용을 감축한 것이 서로 잇닿아 있는 문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7차 교육과정의 과학을 가르쳐본 교사들은 오히려 한결같이 교육내용이 늘어났다고 말한다. 시수가 줄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끼는 반응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유는 다른데 있다. 바로 교과서 때문이다. 7차 교육과정에는 고상하게도 '구성주의'의 입김이 곳곳에 배어 있다.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적 학습이라는 구호는 교육 과정의 성격("나. 학습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기 위한 학생 중심의 교육 과정이다.")에서부터 드러난다. 그래서 목표도 6차에서는 교사 중심으로 진술되었지만 7차 교육과정에서는 학생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교육에서의 패러다임이 변했으니 모든 것을 새로운 패러다임에 한 줄로 맞추어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에 맞추어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에서의 과학은 "에너지, 물질, 생명, 지구 등의 지식과 탐구 과정 및 탐구활동"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6차 교육과정에 비해 달라진 점이라고는 단지 '탐구활동이 추가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교육 내용은 감축되었고 교과서는 원색 화보가 많이 들어가서 보기가 좋아졌지만 탐구과정과 탐구활동이 강조되다보니 교과서들은 대부분 내용설명이 줄어들고 거의 모든 것이 탐구를 통해 학습하게 되어있다. 물론 자본들이 좋아하는 똑똑한 20%의 학생들은 나름대로 능력을 발휘해서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사실은 교사의 도움이 없으면 그나마도 이들 중 대부분은 손놓고 있을 것이다) 나머지 80%에게는 해결하기 어려운 엄청난 과제일 뿐이다.

과학과의 교육과정은 학년간의 연계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일관성과 함께 잘 구조화된 교육과정을 요구하는 것이겠다. 그렇지만 실제 교육과정의 편성을 보면 문제가 있다. 초/중/고의 교과 내용이 상당히 많이 겹치고, 심지어 복사판인 경우도 있다. 또한 개념의 획득 측면에서 보면 초등학교에서 실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현상 중심의 학습을 하다가 중학교에 오면 개념 중심으로 바뀌어 상당한 비약을 겪게 되므로 학생들이 과학에 흥미를 잃기 쉽다.

고등학교 과학(10학년)은 이른바 통합과학이다. 에너지, 물질, 생명, 지구 등의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실제 내용은 각 과학 분야별로 내용을 짜깁기해 놓은 경우가 많아 통합성이 약할 뿐 아니라, 중학교 교육과정과 겹치거나, 오히려 더 쉬운 내용도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고등학교 10학년의 과학 과목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6차의 공통과학의 경우에도 과학과 교사들이 저마다 전공별로 나누어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현재 교사 양성 구조에서 이 문제가 어느 정도 극복될지 의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왜 생기게 되는가? 가장 중요한 요인은 교육과정의 구성 과정에서 학교 급간, 과목간의 유기적인 협의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과 현장교사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는 통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몇몇 교육 정책가와 대학교수, 대학원생 등 현장 경험이 별로 없는 집단이 만든다. 현장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학문적 편향성만을 드러내고, 저마다 분절적이다. 교육과정 준비 기간도 짧아서 토론과 수정을 거칠 여유마저 없다.

고등학교 선택 중심 교육과정

고등학교 2, 3학년(11, 12 학년)은 선택 중심 교육과정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와 실업계와 기타계 고등학교의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은 거의 동일한 과정이다. 선택 중심 교육과정에서의 교과는 보통교과와 전문 교과로 구분하여 편성되어 있다. 총 이수 단위는 144단위로 선택과목에 136단위, 특별활동에 8단위를 배당한다.

전체 교과 편성은 6차 교육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보통 교과에서 일반선택 과목의 경우 4개의 과목군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과학의 경우 과학·기술 과목군에 속하는 '생활과 과학'을 선택하여 이수하게 되어 있다. 심화선택과목에서 과목명에 Ⅱ가 붙은 과목을 선택하려면 반드시 Ⅰ을 먼저 이수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물론 여러 가지 핑계로 안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다.

중요한 차이는 과목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50%(68/136단위)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목 선택이 가능하려면 여러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비록 '지역이나 학교의 실정에 따라 가능한 학교부터 점진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과목 선택이 시행될 경우 교육과정의 운영, 시설, 교사수급 등 모든 문제들이 얽혀 엄청난 혼란과 진통을 겪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선택과목 시범학교였던 강화 종합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선택하는 '경우의 수'가 이론적으로 8000여 가지나 생겨나며 계열로 운영해도 각 계열을 선택하는 학생 수만큼의 경우의 수가 나온다고 진단한 바 있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최소화하려면 과목 중심의 과정(계열)을 만들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 해도 교실 구조, 학생 수의 차이, 상치 과목 때문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과목 선택이 현실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과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학생들의 선택이 학습하기 쉬운 과목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다. 제 2외국어의 경우 일본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대다수 아닌가? 때로는 특정 교사가 지도하는 과목을 기피하거나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과목별로 필요한 교사 수의 변동이 심하게 나타날 것이고, 비 인기 과목의 경우 학생들의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쉽게만 가르치고 평가에서도 쉽게-이미 절대평가체제로 굳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이긴 하지만-출제하여 평가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나마 이런 것은 오히려 다행일 지도 모른다. 호응이 적은 과목의 경우 많은 교사들이 순회 교사가 되어 소속감을 앗긴 채 지식 판매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더 큰 문제다. 이러한 상황이 굳어지면 결국 정규교사가 점점 줄어들고, 계약직 교사나 기간제 교사가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수능과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

얼마 전에 2005학년도부터 바뀔 새 수능제도에 대한 공청회가 있었다. 새 수능제도는 7차 교육과정을 마련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의 정착 여부를 가늠할 시금석이 되므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벌써 몇 십년 동안 국가 수준의 평가를 대학입시의 준거로 삼아 왔지만 어느 것도 입시문제 해결의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했다. 문제는 입시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잖은가?

어쨌거나 공청회에서는 대략 5개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정책입안자들은 수능을 이원화하여 2학년과 3학년에 걸쳐 실시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고등학교 과정이 10학년은 국민 공통 기본 교육과정이고, 11, 12학년은 선택 중심이므로 나름의 논리적 근거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파급할 결과가 만만치 않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수능과 대학별 입시 정책이 교육과정을 강제하게 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사실이다. 이미 현재의 대학입시도 대학별로 영역별 점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7차 교육과정은 개인별 선택이 가능하므로 학생들은 당연히 자신이 지망하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집중 선택하여 이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어, 수학, 국어(과목순서도 바꿔 부르기로 했는지)는 두 번에 걸친 수능 과목에 모두 포함되어 비중은 훨씬 높아졌다. 과학이나 사회가 그래도 평가 영역에 들어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 할 지경이다.

현재도 영어나 수학은 대학의 모든 과에서 요구하지만 과학이나 사회는 인문계열 또는 사회계열에서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새로운 대학 입시제도에서는 이 현상이 더 굳어질 가능성이 짙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은 사회 교과를 몰라도 되고, 사회학을 하는 사람은 과학을 몰라도 된다는 말이다. 아니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교양과 지식은 10학년으로 모두 끝낼 수 있으므로 더 이상 필요없다는 뜻이거나. 과학이나 사회는 그나마 거의 절반이나 되는 학생들이 선택하게 될 테니까 다행이지만 지금도 찬밥 신세인 수능과 관련 없는 과목들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학생들의 선택이 자유로와 진다면 누가 그런 과목을 선택하겠는가? 결국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은 대학의 전공과정 학생들처럼 고등학교에서도 입시에 필요한 과목만을 이수하면 되는 절름발이 교육과정이 될 것이고 영/수/국 위주의 사교육 문제와 입시문제만 더 키울 뿐이다.

이러한 대학입시 제도는 이미 전인교육이 비집고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서는 한 가지만 잘해도 되는 신지식인을 양성하여 인간을 사회의 부속품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7차 교육과정의 수준별 수업과 선택 교과는 경쟁과 효율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반영한다. 이 교육과정의 기저에 흐르는 정신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붕괴시킨 학교와 교실의 붕괴는 더 큰 사회문제를 낳을 것이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지만 바람직한 교육과정을 만들려면 충분한 준비와 검토, 교육현장의 전문가들인 교사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그런데 그것은 적어도 교육과정의 큰 흐름이 지금과 다른 물줄기로 바뀌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끊임없이 갈팡질팡하는 7차 교육과정을 이참에 아예 폐기시키고 건강한 교육 공동체를 새롭게 꾸려갈 임무가 우리에게 긴급한 과제로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