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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호 공교육을 무너뜨릴 일격, 7차와 수능결합의 의미

2002.04.02 23:30

손지희 조회 수:1533 추천:4

공교육을 무너뜨릴 一擊,

공교육을 무너뜨릴 一擊,
7차 선택중심교육과정과 수능결합의 의미 분석

교육이론분과

- 스케치 -
작년 말, 교육부는 올해부터 실시될 선택중심교육과정을 염두에 둔 수능개편안을 확정·발표했다. 한편, KDI가 「비전 2011」을 발표한 후 평준화를 두고 논쟁이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평준화 시행 첫해인 경기도에서는 재배정 사태가 발생, 학부모의 가열찬 항의 농성이 일어났고 교육감 퇴진으로 이어졌다. 인사비리에 연루되고서도 X팔린 줄 모르고 질기게 버티던 작자를 물러나게 한 사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듯 연달아 '안성맞춤'으로 벌어진 사건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서울시교육청은 전학을 원하는 고교신입생(7차선택형-2005수능 첫세대) 학부모들의 밤샘 줄서기로 연일 언론과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다.

2005 수능 발표와 평준화 논란

우리교육에서 입시가 갖는 규정력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입시의 규정력이 강한 만큼 7차교육과정도 새로운 입시와의 결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7차를 구성하는 핵심요소인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성립은 절반 이상 입시에 달려 있다. 이것이 시행을 기다리고 있는, 아니 이미 사람들의 행위 선택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2005년 수능 개편안이 제기된 맥락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평준화와 관련하여 잠깐만 살피자. 우리네 평준화는 사실 '절름발이'다. 형태상으로는 대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부분적으로 시행되는데 그쳐 왔으며, 내용적으로는 온전한 의미의 '질적 평준화'를 기하려는 노력도 수준 미달이었다. 서울지역만을 놓고 본다면, 그래도 평준화는 대학교육기회를 지역별로 균등하게 분배하는데 나름대로 기여를 하였다. 쉬운 말로, 강남과 강북의 차이가 지금처럼 '하늘과 땅'은 아니었다. 교육기회 균등배분에서 평준화가 했던 이런 '소극적' 기여는 혼자서가 아니라 입시형태에 힘입은 바가 있었다. '내신'에서의 불리함을 의식하여 지금처럼 '(자식 교육을 위해)서울로, 강남으로!'의 분위기는 형성되기가 만만치 않았다. 몇 년 전 일었던 과학고의 자퇴 바람이 이를 일러준다. 심층적으로는 지역별 경제격차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고, 사교육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 그러나 일련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 분위기가 일고, 사교육이 엄청나게 팽창하고, 입시형태가 조금씩 바뀌는 와중에 사람들은 간파했다. 무엇이 유리한 '선택'인지를. 물론, 유리한 조건을 찾아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요컨대, 어정쩡한 평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90년대 중반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입시제도의 변화("다양한" 전형)는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쳐도 대학교육기회의 (지역별) 균등배분 효과에 평준화가 기여한 바를 저하시켜왔다. 다시 말해, 본래적 의미의 교육 평준화 정착을 가로막는 외적 요인으로서 입시제도의 변동이 놓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 '교육적'이라고 치부되는 '다양한 전형'은 평준화를 흔드는 위험한 요소이다. 사실상, 현재의 입시변화는 갈수록 특정 지역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평준화가 이 글의 중심주제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상황전개가 이리저리 연결되고 모순이 중첩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기에, 입시 변화 역시 넓은 틀 속에서 살펴야 한다는 뜻에서 평준화 얘기를 꺼냈다. 이 글은 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과 수능의 결합(이하 7차-수능)이 가지는 의미를 분석하기 위한 글이다. 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 정착을 위해 입시변화가 필연적이라는 점은 이미 예견된 바다. 선발장치와 교육과정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므로, 7차 선택형은 독자적으로 성립하는 개념이 아님은 분명하다. 결합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다만 형태가 어떠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2005수능안 발표 전에는 구체적 형태가 분명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평가가 과정을 압도하고, 대학입시가 고등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입시에 대한 관심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7차-수능은 평준화 해체 등 후기 중등교육의 구조변동과 교육에 대한 '상식의 변화'를 야기할 중대요소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나아가, 이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심각한 의미를 갖는 변화라는 것이 이 글의 논지이다.

7차-수능에 대한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1).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분석들은 매우 훌륭하다. 그럼에도 또 하나의 글을 내놓는 까닭은 7차-수능은 "교육시장화" 흐름에서 절대 허술히 넘길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며, "교육시장화"는 하루 이틀 싸움으로 물러설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도 아니어서이다. 초국적 자본의 이해까지 얽혀 있는 마당에야 오죽하겠는가! "교육시장화"가 민중의 교육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교육다운 교육"이랑은 한참 먼 "인적자원개발"을 위한 것이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 아무리 그 위험성을 이 사람 저 사람, 여기저기서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혹독하고 긴 민중교육권의 '빙하기'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7차-수능체제를 다룬 다른 글들에서 새로운 수능의 내용과 7차-수능 체제에서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즉 교육과정이 과연 어떻게 구성될 지를 구체적인 시뮬레이션형태로 제공했다. 이 글에서는 그 부분을 생략하고 7차-수능이 교육시장화 흐름에서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교육시장화"에 있어서의 7차-수능
: 7차-수능을 통해 동력을 확보하는 교육시장화

교육시장화 흐름은 입시체제가 갖는 규정력을 십분 활용하여 7차-수능을 통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7차선택형 교육과정과 어느 정도(완전히는 아님) 부합하는 수능을 시행함으로써 그토록 막아보려 했던 7차를 사람들에게 "기정사실"로 인식시키는 한편, 학교선택제로 가는 터를 닦는 과정이다. 무섭게 고개 들고 있는 평준화 해체 주장과 앞으로도 계속될 논란은 바로 '학교선택제' 도입의 전초전인 셈이다. 이처럼 교육시장화는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7차-수능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7차-수능체제가 현실화되면 싸움은 너무나 힘겨워진다. 이미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대학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7차 교육과정, 교육시장화는 나빠요"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봤자 사람들은 새로운 시스템에 맞춰 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7차-수능에 도사린 위험성을 재삼 강조하고 이것이 완전한 현실로 들어오기 전에 사활을 걸고 싸움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이 현실에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면 싸움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염두에 둘 것이 있다. 필자는 2005수능은 단명할 것으로 예상한다. 2005수능은 당분간 "과도체제"를 이끌면서, 공교육의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허물어 버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왜 그런가? 대학은 수시모집을 늘이는 등 수능의 비중을 사실상 줄이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학생-돈도 있고 똑똑하기도 한-을 뽑기 위해 이리저리 구상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현재의 입시체제에 대학은 결코 만족하고 있지 않으며, 계속 자신들의 학생선발권을 확대하려고 한다. 앞으로는 수능비중을 점차 줄이는 동시에 그들이 보기에 '엄연히 존재하는' 학교간 학력차를 빌미로 '학교등급제'(=학교서열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선발의 주도권을 대학이 가지고야 말겠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확대 강화될 학교평가, 학업성취도 평가는 서열이 분명한 구조를 제도화하는데 필요한 기본 조건이다.

요컨대, 무서운 점은 7차-수능이 7차 체제(=교육시장화 전략)를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데 있으며, 이의 증거는 사람들의 실제 행위 선택이 어떠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산층 이상은 이미 경쟁에 유리한 '선택'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전략구상단계를 지나 실제 행위 단계로 들어섰다! 전학 사태가 단적인 예이다. 밑에서 일어나는 구조적 변동은 사람들의 행위를 통해 힘을 얻어, 추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수선하게 거론한, 과도적 선발장치 도입(7차-수능) - 평준화 해체 - 대학의 요구 - 학교서열화 - 학교평가, 학업성취도 평가 - 학교선택제의 연결관계를 다음의 그림으로 대신한다.

 

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수능 결합이 가져올 것들
 

○ 표방 : 다양한 과목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 보장

○ 실제 : 심화선택과목을 대상으로 출제, 대학에 따라 달리 영역별 가중치 부여

○ 결과 : 난이도 상승 -> 사교육 의존은 더욱 심각해짐

○ 의문 : 수능이 어렵고 출제의 폭이 넓어지면 과연 누가 유리해질까?

수능형태는 선택중심교육과정에서 전개될 '선택'의 실제양상에 대한 절대적 규정력을 행사한다.

이를테면, 상대평가로 결정되는 내신에서 등급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적성과 흥미와는 무관하게) 다수가 선택하는 과목을 쫓아 선택하는 것이 사실상 유리하다. 따라서 개인의 적성과 관심은 7차에서 말하는 대로 과목선택권 부여로 보장될 리가 없다. 이것을 크게 규정하는 요소가 바로 입시와 입시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교육구조이다. 한편, 진로를 될 수 있으면 빨리 정해야 유리하기 때문에 학생의 욕구와 무관하게 '맞춤형 대입전략'을 짜도록 강요한다. 입시에서의 성공을 바라는 것도 일종의 욕구이고 이것에 따라 선택행위를 해야 한다면 이건 7차-수능에 의해 구조화된 욕구이고 선택이라고나 할까? 이 과정에서 특정 과목은 선택기피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다. 기피대상이 되는 과목은 '교육적으로 불필요'해서가 아니다. 이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반면, 7차-수능체제에서 학생들은 원치 않을 지라도 입시를 위해서라면 '보험' 들듯이 들어둬야 할 판이다. 특히, 당락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국어, 영어 영역에서 반드시 선택과목을 들어둬야 된다. 다시 말해, 교육적 필요나 판단과 상관없이 입시에 의해 과목에 대한 선택과 배제가 일어난다. '7차-수능'은 과목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 격이다. 입시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려면, 인간의 성장과 관계없이, 어려운 과목은 생존을 위해서 피해가야 할 지뢰밭으로만 보인다.

7차-수능체제에서 과목선택의 '주체'는 다름 아닌 대학이며, 이는 후기 중등교육에 대한 대학의 직접 지배를 강화한다. 다른 말로 후기 중등교육이 대학의 직접적인 종속구조 속에 편입된다는 의미이다.

7차-수능 체제에서의 '다양한 전형'에 의해 꾸준히 관철되고 있는 대학의 선발자율권 확대 추세는 '소비자의 과목 선택'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보이지 않는 손은 사실 이중적이며 직접적으로는 대학, 간접적으로는 기업이다. 기업이 대학을 관장하고 '인적자원개발'이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은 '인적자원개발기지'일 뿐이다. 7차에서 크게 부각시켰던 '교육소비자'의 과목선택권은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판'에서 각기 유리한 방향을 찾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후기 중등교육의 대학 종속 구조는 비단 7차-수능체제에서 만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간접적인 것이었고,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입장에서는) 뭘 어떻게 가르치고' '(학생의 입장에서는) 뭘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은 국가에서 관장하는 대학입시와 교과서 집필에 학자집단이 참여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정도였다. 후기 중등교육이 대학에 직접 종속된다는 의미는 앞서 말한 대로 대학이 정해놓은 룰을 고등학교는 적극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데 있다. 이는 국가에서 관장하는 '학력고사'의 형태보다도 공공성의 측면에서는 위험하다. 더군다나,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기업이 대학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 가는 마당에 누구의 의지가 가장 깊게 관철될 지는 뻔한 일이다. 다음으로, 대학에 종속되면 될수록 전체고등학교체제 역시 대학과 닮은꼴이 될 수밖에 없다. 서열화 된 구조로 악명이 높은 대학체계를 고등학교가 닮는다는 것은 바로 고등학교체계의 서열화를 의미한다.

7차-수능의 결합이 학교교육에 당장 미칠 효과는 입시위주의 교육과 사교육 의존도를 더더욱 높인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학교는 복잡해진 대입전형을 모두 섭렵하기 불가능하며, 그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 그렇지만, 7차-수능체제는 이제까지 이상의 혹독한 입시위주 교육을 학교에 강요한다. 학교에서는 '다양한 전형자료 중 하나'인 수능에라도 맞추어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들은 노골적으로 이런 것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렇다. 교육적 판단은 설자리를 잃은 채 입시에 유리한 소비자의 선택에 맞추어 교육과정은 그야말로 '입시위주로' 편성, 운영된다. 지금까지의 교육을 7차-수능과 비교해 조금 너그럽게 보아준다면, '선택'이 제한되었기에 발휘한 최소한의 미덕을 들 수 있다. 물론, 변칙적 운영으로 공식적으로 편성된 예체능과 기타 과목을 무시한 관행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7차-수능의 제도화된 입시위주 교육과정 편성과는 격이 다르다. 구체적으로, 현재 발표된 '선택의 미덕'을 한껏 부풀리는 7차 선택형에서, 수능안은 '영어편중의 심화'와 '사회, 과학, 예체능의 대폭 축소'로 귀결될 것이 자명
2)하므로, 학생들은 오로지 국어, 영어책만을 닳도록 보아야 하고 그 외 과목은 공식적 교육과정으로서의 '대접'은 커녕, 교사들은 항시적 구조조정에 시달려야 한다. 이처럼, 7차-수능 체제에서는 입시에 대한 학교와 학생의 부담이 훨씬 더 가중된다. 우선,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이 어느 대학에 가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대학이 제시하는 전형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한 개 대학이 아니라 여러 개 대학의 전형에 맞추어 대비를 해야 '안전'하므로 단순한 입시체제 시절보다 부담이 가중된다. 학력고사와 내신 준비만 잘하면 되는 상황이 아니다. 다음으로, 선택과목 중심으로 수능이 출제되기 때문에 수능의 난이도는 자연스레 상승될 수밖에 없다. 난이도가 상승하면 이는 사교육 의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사실상의 우열반 편성으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3)은 학교가 입시에 맞춰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학교의 무능과 비효율은 '침소봉대' 되고, 사교육의 경쟁력은 '과대포장'되게 되어 있다.
수능은 새로운 전형의 전부는 아니다. 어찌 보면,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나, 학교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것이기도 하다. 대학, 특히 '좋은 대학'에 가려면 수능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밖에 다양한 전형방식에도 학생은 개인적으로 대비를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심층면접에 대한 대비, 그 중에서도 영어 구사 능력은 당락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뻔히 알면서 '다양'이라는 말을 내세워 학교에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전형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학교를 뒤흔드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7차-수능이 지금까지와 다른 점은 뭔가 단일한 방식으로 학교에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런 과정에서 학교교육의 무능이 그야말로 '침소봉대' 되리라는 데 있다.

이건 학교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7차-수능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영향력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계층간 교육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앞서 말한 대로, 다양한 전형과 선택과목 중심의 수능출제에 따른 난이도 상승은 사교육비 지출의 확대를 불러온다. 즉, 대입제도가 복잡해지고 수능의 영역별 성적과 내신 성적의 비중이 높아진 관계로 과외비 지출 항목이 많아지게 되어 있다. 이는 7차-수능이 발표되기 전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지금까지의 과외비 지출항목 확대가 전형의 '복잡성'에 기인했다면, 7차-수능체제로의 돌입은 영역별 성적 및 내신관리를 위해 사교육비 지출 항목을 추가한다. 결국, 7차-수능으로 학교교육의 정상화와 '다양한 선택'의 보장은 커녕 사교육 시장의 배만 불리고 지금보다 더 키워주는 꼴이다.
선택형 출제에 의해 난이도만 상승하는 게 아니다. 이제 학생들이 목숨 걸고 매달려야 하는 언어와 외국어 영역은 "범교과적인 주제와 소재를 활용할 것이므로 출제범위를 특정한 교과목으로 한정하지 않는다"고 밝힌 상태다. 이 말만 놓고 보면, "그래 그러는 게 좋지. 교과서에만 한정된 공부는 별 의미가 없어"라고 고개가 끄덕여질 지도 모르지만, 위험천만이다. "많은 것을 섭렵해야"하는 입시에서 과연 누가 유리할까? 당연히,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한 계층의 학생들, 그리고 사교육을 통해 학교에서 다룰 수 없는 것까지 섭렵할 수 있는 배경을 갖춘 학생들이 유리하게 되어 있다. 입시는 '교육적'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하기 어려운 주제다. 교육기회 배분과 관련된 만큼 '공정성'의 잣대가 매우 중요하다. 만일 학교교육이 정상화되어 너나 할 것 없이 '문화자본'을 갖추게 되면, 아니, 특정 계층에만 유리한 내용과 형식이 학교현장을 장악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7차-수능은 대학의 자율적 선발 요구의 대폭 수용으로 가기 위한 '과도적' 형태에 지나지 않으나, 그 의미는 심대하다. 이미 살핀 대로 적용기간 내내 '선택'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킴으로써 공교육을 파탄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다.
7차-수능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 7차-수능은 '선택 이데올로기'에 날개와 발을 달아준다. 누누이 지적한 대로 입시의 규정력, 선택논리를 기반으로 구성된 입시는 '선택'을 실제로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선택일 지는 이미 본 대로이다. 7차-수능은 교육시장화 반대기수들이 '선택'이 현실화되기 전에 지적해 온 대로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7차-수능은 비교육적 양상을 심화(지금까지의 교육도 반드시 교육적이라고 볼 수 없는 역설에 놓여 있었으므로)하고 "굳건히" 하는 계기로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논리의 허구성을 일정정도 폭로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선택'이 현실이 된 다음에는 이를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시키기란 쉽지 않다. 이미 행위의 룰로 선택이 자리잡고 그것을 배경 삼아 끝도 없이 선택을 확대시켜나가는 마당에 '나쁜 선택'과 '좋은 선택'을 굳이 구분하고 '좋은 선택'을 위해 애쓰자는 건 하나마나한 소리이다. 공교육의 파탄은 형태가 '무화'되는 의미에서의 파탄이 아니다. 형태는 남아있으나 그 형태가 매우 '공'적이지 못한 상태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이제 공교육 체제 내부는 중심과 주변으로 양분되어버린다. 일부 중심부 학교만이 학생선발의 자유-즉, 가려뽑기- 열망을 충족시킬 뿐 나머지는 학생부족으로 허덕이는4) 상황으로 번져갈 공산이 크다. 이렇게 옮아가는 흐름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건 바로 '상층계급의 분리욕구'이다. 현재 평준화 해체 이데올로그들의 공세5)는 이러한 욕구에 편승하는 걸로 모자라 기름을 부어대고 있다. 온전한, 혹은 더 나은' 선택으로 단장하고 나타날 학교 선택권 주장은 이질적 집단구성의 '비효율성'에 대한 직접적 공격에서 시작하여, 학교 내 과목선택 차원이 아닌, 학교에 대한 선택논의로 급격히 이동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 평준화 논란에서 보이고 있는 조짐이다. 평준화 해체 주장이 전에 없이 뻔뻔스럽게 나오는 것은 7차-수능을 의식한 대중의 행위 선택 경향은 '학교 선택'의 수용으로도 이어질 것이란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 보아도 좋다. 그렇다면 나머지 계층은? 이들 중 상당 부분은 굉장히 많은 출혈을 감수하면서 '이사를 감행하거나' '위장전입을 하거나' 하다가, 평준화가 해체되면, '사교육에 의존하여' 새로운 형태의 학교(자립형사립고, 공립자율학교)에 가려고 애쓰게 되어 있다. 이도 저도 아닌 부류는 거의 교육포기 상태로 방치되어 버린다. 지켜만 보다간 민중의 교육권이 설 자리는 바늘 끝 만큼이나 좁아져 버린다.

7차-수능이 공교육 체제 / 인간발달 /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가지는 "효과"
 

교육시장화와 7차-수능체제

=>

교육의 공공성 파괴

◆공교육에서 선택이데올로기를 현실화, 전면화

◆후기 중등교육의 구조와 교육적 위상의 변동

◆교육권의 의미와 교육기회 보장의 퇴행

불평등 교육구조 및 비교육적 양태의 제도화, 고착화


7차-수능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살펴야 될 사항은 '선택 이데올로기'와 7차-수능체제의 관계이다. 결론적으로, 7차-수능은 선택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를 공고히 한다.

언어의 차원에 '갖혀있던'은 선택은 7차-수능체제를 만나면서 현실의 세계로 내려와 사람들의 행위지침으로 자리잡는다. 7차-수능은 다른 것(평준화 정책의 위기/수월성 강조 등)과 결합하여 학교선택논의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로써 7차-수능은 교육체제를 더 많은 선택으로 넘쳐나게 만들 개편(=교육시장화, 상품화)을 이끄는 중심기제인 셈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숭배해마지 않는 선택이 조율하는 질서는 다름 아닌 시장적 질서이다.6)

과목을 선택하게 만들고 있는 7차-수능은 "공교육도 (사교육처럼) 개인의 '선택'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이는 공교육이 사회/인간발달 측면에서 해야할 역할과 의의를 부정하는 것과 동치이다.

7차-수능체제로 결정적 국면을 맞게 될 교육시장화 흐름은 공교육이 가져 마땅하다고 합의되어 온 교육의 집단적, 사회적 개념을 붕괴시켜버린다. 이제 공교육에서조차 전인교육은 퇴출대상으로 전락하며, 만약 언급된다 해도 '립서비스'일 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7차-수능은 '선택'을 유일의 행위지침으로 부과함으로써 공교육에도 상품적 성격을 강하게 불어넣는다. '과목이라는 상품'에 대한 선택을 확대하는 것이 7차-수능이라면, 이는 공교육 체제에서의 후기중등교육이 차지하는 역할과 위상전반에 대한 시장(상품)적 성격 확장으로 이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선택'이 다양한 주체의 교육실천을 '규제'하는 위상을 점하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교과에 대한 선택으로 만족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선택'은 일단 시작되면 연이어 다른 영역에 대해서까지 확장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녔다. 이미 평준화 해체 주장에서 드러나는 대로 선택은 교과는 물론, 학교에 대한 선택, 교사에 대한 선택 논의로 급격히 이동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더 이상 후기 중등교육은 '의무교육'의 영역으로 들여와 교육권을 확장시키는 구실을 하도록 재구조화해야 할 대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시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고 상품적 성격을 강화해야 될 영역으로 바라보게끔 된다.

7차-수능은 과목을 임의 선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로써 교육(사교육은 물론 공교육도)은 특정한 필요(예컨대, 입시에서의 경쟁력)에 따라 '개인(소비자)의 선택'에 내맡겨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즉 {교육=상품}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킨다.

7차-수능에서 특정 과목 편중은 자연스레 유발되며, 이것은 인간 제능력의 발달에 복무해야 할 공교육의 역할과 거리가 멀다. 특히, 보편교육, 대중교육의 위상을 가져야 할 후기 중등교육에서 편식을 조장하는 제도는 교육을 '수월성'과 '인적자원'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처럼 7차-수능은 후기 중등교육에 대한 시장적 질서 확립에 복무하며, 이때 후기 중등교육의 차등적 사회화 기제 노릇은 한결 노골적으로 되어 버린다.

교육시장화 반대자들이 아니라도 이건 충분히 동의하는 뻔한 사실이다. 다만 '차등적 사회화'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7차-수능은 우열반 편성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만드는데, 이는 차등적 사회화를 '제도화'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교육과정의 차등적 배분 현상이 이제는 잠재적 교육과정으로 '몰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선택'의 결과로 이해되므로 합법성을 얻는다. 이미 명문대반, 일반대진학반, 졸업장반으로 학생을 갈라 편성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으며, 이 전망은 절대적으로 유력하다.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이 있는 마당에, '효율적'으로 입시에 대비하려면 끼리끼리 모을 필요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선택'으로 교묘히 치장된다는 데 있다. 사실상의 차별교육을 '선택'의 미명하에 합법화하는 의미가 7차-수능에 숨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은 완전취학단계 임에도 7차-수능 체제 하에서는 누구나 배워야할 내용을 함께 배우는 보편적 교양중심교육이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의 차등적 사회화가 '의도하지 않은 채' 일어나는 메커니즘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면, 7차-수능을 기점으로 학교는 '갈라치기' 교육(교육과정의 차등적 배분)에 열을 올려야 한다.

한편, 7차-수능은 교육노동에 있어서 근원적 위기를 수반한다.

교직 구조조정 차원에서 7차-수능이 갖는 의미는 이미 많은 글에서 거론되었다. 고용구조의 측면에서 잠깐 살피자. 과목선택형 교육과정과 수능을 통한 이의 강제는 교직사회를 대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의 필요성을 증폭시킨다.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 속에서 교육활동의 안정성과 교사의 노동권과 생존권은 당연히 위협받게 되어있다. 기간제, 계약제로 대표되는 불안정 고용형태가 한편에서는 증가하고, 다른 쪽에서는 고액연봉을 받는 자립형 사립고형 교사가 같은 하늘 아래 살게 된다. 소비자의 선택을 위해 교사의 안정된 일자리를 내놓으면 과연 교육의 질은 높아지는가? 지금까지의 논증은 그게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바꾸어 말하자. 일부만이 '높은 질'의 교육을 받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교육다운 교육의 가능성은 원천봉쇄 되어버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교사는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집단주의에 근거해 교육적 소신을 펼쳐야 교육의 미래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선택'이 조율하는 교육세계에서 이런 소신은 쓰레기통에나 처박아야 될 물건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까지도 교사들이 스스로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교육다운 교육'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힘겹게 싸워야 조금이나마 좋아질 수 있었다. 저절로 얻어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교육노동은 항상 위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위기와 견주어 7차-수능체제에서의 교육노동 위기는 분명히 구분된다. 이것이 '근원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다. 지금까지의 위기(특히 관료적 통제구조의 불합리성)에 대해 교사들은 집단적 역량을 조직하여 극복해 왔다. 그러나 7차-수능을 기점으로 교직이 항시적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분할통치(고액 연봉의 잘 나가는 교사집단/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교사집단 등)에 휘둘리게 되면, 교직 내 동질성과 단결력은 심각히 훼손된다. 노동의 조건은 훨씬 나빠지고 자율성과 전문성이 현저히 하락하는 근본적 위기에 봉착하면서도, 이에 맞설 집단적 주체 역량은 형성되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교사노동의 공공성 역시,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우선적인 하는 만큼, 고양시키기란 더욱 힘들어진다. 이 때문에 7차-수능체제가 수반하는 교육노동의 위기를 '근원적'이라 칭하여 지금까지의 위기와 구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7차-수능 체제 하에서는 새로운 교육권 개념이 상식으로 자리잡는다.

개인의 문화적, 경제적 부에 근거한 선택의 보장이 교육권(교육권이라 말하기도 쑥스럽지만)의 개념으로 자리잡을 조짐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나타났다. 이것이 아직까지 지지부진했다면 그것은 '선택? 그거 제대로 되겠어? 여건도 안되는 걸...'라는 미심쩍음이 한켠에 있었기 때문이다.

7차-수능체제에서 선택을 실지로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선택'을 중심에 놓고 사고한다. 그리고 교육행위에는 '개인'만이 외롭게 남겨진다. 개인의 선택행위에 뒤따르는 사회적 의미와 영향은 관심 밖이 되어야 선택이 편하다. 남에게 상처를 주던 말던, 위화감을 조성하던 말던... 이미 상품시장의 소비행태가 얼마나 기가 막힌 지 아는 우리들이다. 이제 교육에서도 그런 꼴을 보아야 할 지 모른다. "우리아이는 달라요..."라면 마치 전사처럼 꾸민 모델이 나와 분유 선전을 한다.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아이는 달라요. 전 남들과 다른 교육을 맞춤식으로 시켜요!" 7차-수능 체제에서 개인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유리한가?" "왜 선택의 폭이 이렇게 좁은가?" 등등 끊임없이 선택을 중심에 놓고 사고한다.

앞서 지적한 바, 7차-수능은 사교육비의 폭발적 증가(=경제적 자본의 영향력 확대)를 가져올 뿐 아니라, 문화자본의 영향력 역시 극적으로 상승시킨다. 따라서 7차-수능은 선택에 치중한 교육권 개념을 등에 업고 교육불평등을 강화시킬 기제이다. 불평등 고착화에서 끝나지 않는다. '선택'이 교육행위의 최우선적 방침이 되어 "민주적 질서"가 들어서야 할 자리를 "시장적 질서"가 차지해버린다. 그 순간 사회구조적 모순에 기인하는 교육불평등의 문제는 더욱 용이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킬 수 있게 된다. 이건 시장주의자들 그리고 교육이 시장화되어도 아쉬울 것 없는 이들의 확고부동한 세계관이다. "줘도 못 먹냐? 선택하도록 여건 만들어 줬는데도 안됐으면 그건 자기 탓이지"라 일축하면 그만이다. 왜 우리가 그들의 세계관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가?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서술한 7차-수능체제가 갖는 의미에 공감한다면 답은 뻔하다.

새로운 체제로 '이익을 볼' 집단은 분명히 존재하고, 이들은 일단 자신들에게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서 물러설 리가 없다. 그때 싸움을 걸면 늦다. 그때 가서 그들은 상대적으로 '싸울 밑천'이 풍성하다. 반면 이쪽은 그렇지가 못하다. 7차-수능 체제 하에서 교직과 교사는 교육노동의 근본적 위기를 겪고 있을 터이고, 분할통치 구도하에 단결력은 지금보다 훨씬 떨어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평등'에 대한 욕구도 비교적 넓게 존재하고, 선택중심과정을 1년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주체의 역량조직이 가능하다.

작년 한 해, 많은 분들이 이런 저런 투쟁 "프로그램"에 동원되느라 지쳐있고 허탈한 상태라는 점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빨리 추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시장화라는 대상은 애초 그리 만만한 적수가 아니었다. 우리는 정말 강적을 상대하고 있다. 차라리 학교에서 관료랑 티격태격하는 게 쉬울 정도다. 7차-수능 체제는 누누이 강조한 대로. '선택 이데올로기'를 전면화, 현실화시킬 유력한 기제다. 만일 "혹시나 이런 판단은 틀릴 지도..."라며 미심쩍어 하는 이가 있다면 당장 거두라고 다그칠 일이다. "뭐시라? 그런 것이라고!"라는 자각과 분노를 실천으로 이어갈 때다.

주--------------------------
1) 이민숙, "7차-수능 구조조정" ; 서울지부 정책실, "7차 수능과 고교선택형교육과정의 귀결"; 이건주, "2005수능체제에 따른 7차 선택중심 교육과정의 실상과 비판", 전교조 주최 교육정책토론회 자료집『7차 교육과정에 따른 2005년 수능제도와 교과선택제 전망과 대안모색』, 2002. 2.28. ; 최정윤, "7차 교육과정과 2005 대입 수능 제도가 몰고올 공교육 파탄-교육의 불평등 구조 고착화"(미발표 자료) 등.
2) 서울지부 정책실과 이건주의 분석글을 참조하기 바람.
3) 위기에 처한 평준화, 대학이 주도하는 복잡한 입시, 점차로 심해지는 계층, 지역 격차 등. 지금 "뒤바뀐 정치"가 난무한다. 교육이 아닌 다른 곳에 진원지가 있는 현상들을 놓고, 교육에 일차적인 책임을 묻고, 사회가 아닌 교육에 대한 '개혁'을 통해 풀어내려는 수작.
4) 한겨레기사("신입생 33명만 남은 고교", 2002.3.10) 참조.
  "수도권 평준화지역 원거리 고교 배정자에 대한 전학 허용으로 학생들이 대거 빠져나간 일부비선호 학교는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힘들게 됐다. 이 중 문제가 가장 심각한 학교는 의왕 정원고등학교로, 당초 배정인원 258명 가운데 타지역 중학교 출신자 114명이 10일 추첨을 통해 안양권의 다른 학교로 전학배정됐다. (…) 이달말까지 등록을 하지 않을 경우 입학이 취소되며, 그렇게 되면 이 학교에 남게 될 인원은 33명에 불과하다. (…) 정원고 한혜자 교감은 "입학을 거부하는 학부모들이 '서울대에 몇명이나 보냈느나'며 교육의 질을 트집잡지만 학력고사 점수 130점 이하의 신입생 상당수를 4년제 대학에 진학시킨 점을 평가해달라"고 말했다."
  경기도 사태는 많은 얘기 꺼리를 준다. "교육소비자"에게 "따"당하는 학교가 생겼는가 하면, 왜 "따"당하는지의 이유도 어느정도 드러난다.
5) KDI, 진념 등 경제관료, 윤정일 등 제도권 교육학자, 조선일보...
6)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론적 뿌리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이며 이른바 '합리적 선택론'에서 출발한다. 이들의 인간관은 경제적 인간관이다. 인간은 나름대로 계산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가정을 전제로 삼는다. 이런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에 모여 질서가 형성되고 세계는 발전한다는 논리다. 이들에 따르면,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이므로 이런 선택이 가능한 질서를 형성하면 만사가 '오케이'다. 즉, 세계를 시장으로 만들자는 주장이다. 그러나, 세계는 완전한 자유경쟁이 이미 불가능한 '불평등으로 얼룩진' 곳이다.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은 끼어들 틈이 비좁다. 이들의 시야에 불평등의 문제는 포착되지 않으며, 별다른 관심이 없다. 설사, 불평등이 있다해도 그 원인은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앞뒤가 뒤바뀐 질서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므로, 더많은 자유와 선택으로 넘쳐나게 함이 옳다고 이들은 굳게 믿는다.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시장은 더 많은 경쟁과 선택으로, 아직 시장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공공영역은 시장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이들의 이론적, 실천적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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