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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신기술에 대한 이론정립을 위해_강신현역

2001.02.08 18:51

더글라스켈러 조회 수:6661 추천:1

신기술에 대한 이론 정립을 위해1)

신기술에 대한 이론 정립을 위해1)

더글라스 켈러

사회비판이론과 급진적인 민주주주의 정치학은 최근 신기술의 폭발과 그 본질, 궤적, 효과에 관한 논쟁을 통해 두가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첫째,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신기술이 이루어 내고 있는 극적인 변화를 어떻게 이론화 할 것인가, 둘째 풍성한 기술발전과 사회주의에 승리를 거둔 시장자본주의의 외견상 승리로 특정지어지는 이 세기에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급진적인 사회변화를 진전시키기 위해 신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이 글에서, 먼저 기술결정론과 경제결정론 뿐 아니라 기술예찬론와 기술혐오론을 경계하면서 최근의 과학기술혁명에 관한 이론 정립을 위해 몇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전지구적 자본주의 구조조정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자본주의의 현재적 발전국면에서 기술과 자본의 발전과 융합(imbrication)을 동시에 고찰하기 위하여 둘째, 기술의 밑바탕에 깔린 의도를 추적하고 개인과 집단의 전략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재구조화될 수 있고 재구성될 수 있는 일련의 인공물과 사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우리가 겪고 있는 일련의 전환과 신기술의 확산에 관해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학적(hermeneutical)과정을 수행하는데 있어 마치 기술을 현시대 세계의 조물주(demiurge)로 여김으로서 자동화를 과장하거나 자본주의와 개인의 자아 발전과 같은 더 훌륭한 가치보다 중요치 않은 극적인 현상(epiphenomenon)인 것처럼 폄하하는 양극단을 피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술혐오론2)의 관점에서 기술을 무시하거나 죄악시(demonize)한다거나 또는 기술예찬론 관점에서 기술을 축복하거나 추앙하는 극단을 피할 필요가 있다. 대신에 비판적 과학기술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의 기원과 그들의 종종 모순적인 효과들을 분석하고 증명하기 위해서 일방적인 접근 대신 변증법적(dialetic) 시각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과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에 반대하는 자아-강화 (self-valorization)와 권한부여(empowerment), 민주주의화, 진보적 사회변화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기술을 민주적이고 활동가적 관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진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기술이 유혹하는 유토피아즘에 빠져서는 안되며 더군다나 과학기술을 단지 자본과 국가의 도구로서 생각하는 패배주의나 회의주의에 젖어서도 안된다.

또한 나는 정보화사회와 소위 정보간선고속도로3) (Superhighway)에 대한 이론 정립을 위한 쟁점을 잡고자 하며, 그리고 정보화 사회는 국가를 낡은 지배권력으로 보고 눈에 보이는 관료적 국가기구를 발전과 자유, 그리고 다른 긍정적인 가치에 대한 장애물로 보면서 신기술과 시장이 기술적인 진보와 인간의 행복이 긴밀히 연계되었다고 하는 과학기술자본주의의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현재의 놀라운 과학기술혁명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시장과 개인경영자이며, 국가의 규제는 발전에 장애로 간주된다고 본다. 그러한 이데올로기는 복지국가를 해체하는데 사용되므로 문제시해야 하며,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비판이론 정립을 위하여

신기술의 특성을 기술하는 여러가지 주장들을 연구함에 있어, 그런 주장이 신기술을 해방을 대변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간주하는 과학기술예찬적인지, 과학기술을 운명으로 보거나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간주함으로서 죄악시하는 과학기술혐오적 주장을 취했는지 상당히 혼란스럽다. 마찬가지로 일방적이고 비교적인 류의 주장들이 종종 신경질적으로 이번 세기가 낳은 여타의 신기술을 소개하곤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반응은 영화, 라디오, TV, 그리고 현재의 컴퓨터에도 있었던 일이다. 예를 들어 영화는 사실에 대한 새로운 문서기록을 가능하게 하고, 심지어 사실에 대한 복제까지, 새로운 예술형태와 새로운 대량교육과 오락의 방식을 제공할 수 있었기에 초기의 이론가들은 이를 환영했다. 그러나 영화는 초기부터 성적인 난잡함, 아동탈선과 범죄, 폭력, 그리고 다른 형태의 부도덕적 행위를 모방하게끔 한다고 하여 죄악시 되었다. 미국에서는 철저하게 1934년부터 1950-60년대까지 헐리우드 영화의 내용을 통제하는 생산코드(Production code)를 만들게 할 정도였다. 입을 댄 키스가 공개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범죄는 통용될 수 없었고, 마약을 사용하거나 또는 종교에 대한 공격은 묘사될 수 없었으며 검열관은 권위에 은밀하게 도전하거나 탈법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서 철저하게 모든 필름을 살펴보았다. (Kellner, 1997)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컴퓨터도 마찬가지이다. 신기술이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은 여러가지의 환상과 두려움, 그리고 꿈을 그것에 투영해보는 것 같으며 컴퓨터와 새로운 멀티미디어 기술에서 지금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본다. 만약 신기술의 견지에서 - 특별히 컴퓨터- 문학작품을 살펴보면 한쪽은 과학기술예찬적이며, 한쪽은 비판적이고 기술혐오적이라는 것에 놀랄 것이다. 과학기술예찬론에서 보자면 Wired의 어떠한 쟁점도 접할 수 있고 뉴스위크와 같은 대중잡지 또한 펼쳐 볼 수 있다. 빌게이츠의 '미래의 길(The Road Ahead)(1995)'책과 니콜스 네그로폰테(Nechols Negroponte), 샌디 스톤(Sandy Stone), 그리고 시리 터클(Shierry Turkle)같이 신기술을 학문적으로 지원하는 이들의 글을 읽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종종 신기술을 널리 알리는 지식인이란 뜻으로 디제라티4)(digerati) 로 불리워지며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조지길더(George Gilder), 데이빗 게렌터(David Gelernter)- 우연히 Unabomber's 희생자중의 한 명- 그리고 미디어와 전문저널에 글을 쓰는 수많은 추종자들, 또 디지털황금마차에 탑승하기를 원하여 디지털황금마차가 생산할 유희와 문화자본 어떠한 것이든 빼내고자하는 다른 출판물들도 포함된다.

기술예찬적인 정치인은 미국의 앨고어, 뉴트 깅그리치와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그의 신노동당 지지자들 등이다.

정보화사회 지지자들은 더 많은 일자리, 새로운 경제의 희망, 높은 질의 교육, 정보와 오락의 풍성한 수확, 그리고 아담스미스를 질투하게 할 컴퓨토피아(Computopia)에서의 새로운 번영을 약속한다. 신기술에 잠재한 강력한 경제적인 이윤 때문에 과학기술혁명이 선전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분명하게 신기술을 향상시켜서 얻게 되는 학문자본 때문에 우리의 동료역시 종종 무비판적으로 과학기술들을 선전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기술의 선전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컴퓨터와 신기술에 관한 전적으로 부정적인 주장들이다. 지난 몇년간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사이버공간 등에 관한 수많은 신간은 놀랍고 충격적이겠지만 과학기술혐오적인 주장을 펴는 여러 작가에 의해서 출간되었다.

현재 컴퓨터에 초점을 맞춘 이런 광범위한 과학기술혐오적인 문학의 하나의 경향은 1960년대 테오 로잭, 찰스 리치, 니일 포스트만, 제리 맨더에 의한 초기 과학기술 비판과 지금은 반과학기술의 한탄을 컴퓨터에 두고 있는 미디어문화와 기술의 또다른 오랜 비판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적으로 이런 작가들이 이미 과학기술에 반대하여 사용하였던 똑같은 논리(argument)를 현재 컴퓨터에 대한 비판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래서 신기술에 대한 현재의 비판적인 주장에서 많은 논리들이 순환되고 있다.

과학기술비판은 신기술이 초현실의(hyperreality)- 보드리야르로부터 빌어온 개념- 영역으로 우리를 밀어넣고 있으며 인간이 우리의 육체와 자연, 다른 사람, 대부분의 사물과 실천에 대한 감수성을 잃고 있다고 주장하는 알버트 보그만의 '포스트모던의 경계를 넘어서(1994)'가 포함된 철학그룹에서 분출되었으며 이 주장은 슬로우카(Slouka)(1995)에 의해 보다 대중적인 논쟁으로 발전했다.

또한 로렌초 심슨의 '과학기술과 현대(1994)'란 책은 과학기술이 얼마나 우리를 소외시키고(alienate) 있고 우리를 압박하고 있는지 논쟁을 일으켰다. 포스터모던 이론가인 아써 그로커(Arthur Kroker)와 미챌 와인슈타인(Michael Weinstein)은 '정보붕괴(Data Crash)'란 책에서 우리의 문명이 붕괴되고 무너져서 초현실로 들어갔고 있으며, 우리는 현실에 대한 감수성을 잃었으며, 새로운 가상계급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착취공장(sweatshops)과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크나큰 충격이 될 새로운 가상자본주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유명한 과학기술혐오주의자는 유나버머인데, 산업과학기술사회의 전체성을 비난하고, 비인간화의 측면과 거대화의  경향, 개인으로부터 권력과 자유를 앗아가는 것을 비난하는 다른 비판자들과 마르쿠제와 엘룰과 같은 반문명작가이자 이론가들의 외침이 담겨 있는 그의 선언문(Manifesto)은 반과학기술적이고 과학기술혐오적인 주장이 담긴 전집(compendium)이다.

다른 기술혐오적인 메시지로는 클리포드 스톨이 해당되는데 빌게이츠의 책과는 상당히 대조가 되는 'Silicon snake Oil : 정보고속도로에 대한 두번째 생각(1995)5)'에서 빌게이츠가 확신하는 모든 것을 공격했다. 양자는 긍정/부정의 거울 이미지로 나타나 그들 양쪽의 시각은 매우 일방적이어서 변증법적 관점이 필요성이 요구된다.

신-루디즘(neo-Luddism)(1986년과 이후(forthcoming))을 지지하는 케빈 로빈슨과 프랭크 웹스터는 좌파중에서 정보기술의 권력에 반대하는 그룹에 속하는데 그들은 신기술을 주로 자본의 도구로써 보며, 자본의 의해 자본의 헤게모니를 보증하고 새롭게 노동계급을 지배하고 짓누르거나 유혹해서 가상의 꿈과 과학기술맹신주의에 빠지게 만들기 위해 이용된다고 봄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진보적인 관점을 획득하는데 실패했다. 하기에 로빈슨과 웹스터가 자본의 재구조화의 규모와 재구조화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을 지라도, 그들은 신기술은 단지 자본헤게모니의 도구에 불과하며 저항과 민주화의 도구는 아니라는 믿음을 갖는 우울한 회의주의(pessimism)에 빠져있다.

이러한 과학기술혐오적인 접근과 과학기술예찬적인 접근에 반대하여, 신기술의 발전과 궤적에서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 득과 실을 분별하기 위해서 비판적 과학기술 이론을 정립시켜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빌게이츠와 클린턴, 토니 블레어와 같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컴퓨터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두를 위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풍부한 정보와 여가, 교육을 생산하고, 모두를 연결하고, 성과 종족, 계급의 경계를 극복한다고 주장하는 과학기술유토피아적 희망에 반대하여야 한다. 그러나 컴퓨터를 소외(alienation)의 수단으로 보면서 단지 자본과 국가 그리고 지배의 도구로써 여기며 컴퓨터가 인간의 굴레라고만 보는 과학기술 회의주의에도 반대해야 한다.

그러한 접근은 무척 일방적이며, 어떻게 과학기술이 지배적인 사회권력과 민주화와 권력강화를 위한 개인의 투쟁의 양측면에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가를 제시할 수 있는 보다 종합적인 입장이 되려면 극단을 배제하는 변증법적 이론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비판적 과학기술 이론정립을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과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충분히 설명할 뿐 아니라 과학기술이 무엇이며, 무엇을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종합적인 전망을 요구한다. 이로써 일반인은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사용과 부정적인 사용에 관한 차별점을 인식할 수 있는 비판의 기준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이용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비록 존재하는 실체가 부족하고 공격적이라고 평가될 지라도 규범적인6)(normative) 기준에서 현존 기구, 사회관계, 현상을 비판한다.

민주주의, 공동체, 자유, 자아발전과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과학기술 이용과 그 형식은 삶을 고양시키며 유익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는 반면에 민주주의나 자유, 창조, 그리고 다른 긍정적인 가치를 무시하면서 지배와 공격을 위한 과학기술 이용과 그 형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반인은 분명하게 분별할 수 없을 수도 있고, 신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있을 수 있으며, 과학기술은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기능과 효과가 결합된 매우 불명확한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과학기술 비판은 매우 이중적으로 작동하며, 대개 과학기술과 존재(하이데거), 과학기술의 작용과 사회적 상호작용(하버마스), 주된 관심사로의 도구과 실행(보그만), 도구와 의미(심슨)와 같은 문맥적인 차이로 존재화되는데(ontologize), 각각에서 전자는 과학기술에 의한 지배와 소외의 형식(mode)로 가치절하되지만, 후자는 전통적으로 인간의 의미와 존재의 영역으로 다루어진다. 그리하여 이런 방법의 비판은 과학기술을 존재화하여 과학기술로부터 인간의 근본적인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는다(exclude). 그런 접근은 문화로부터 과학기술을 분리하고, 기술적인 동기가 포함된 모든 행위들이 인간의 목적과 의미로부터 추상화된 도구와 사물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고 보아 행위에 대해 기술적이거나 혹은 도구적인 인식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어떻게 과학기술이 의미를 갖게 되고 인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지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철학에서 지배적인 흐름들은 과학기술을 근본화하고 탈개념화하며, 문화와 인간의 의미로부터 추상화하게 되는데 결국 과학기술이 얼마나 깊숙히 뿌리박혀 있으며 일상의 구조에 영향을 주어왔는지 인식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근본주의자들의 개념은 과학기술을 인간의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인간이 존재하는데 있어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고 간주하며, 또한 특정한 사회역사적인 맥락에서 특정 과학기술과 그것의 사용을 비판하며, 그리하여 과학기술을 민주주의와 개인의 발전과 같은 긍정적인 가치들에 봉사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와 재기능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비판적 과학기술이론과 구분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은 해당 과학기술의 성질과 특정 배경에서의 이용과 구체적인 상황에서 추구되고 있는 가치에 따라 강압적이며 파괴적이 될 수도 있고, 창조적이며 삶을 고양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과학기술은 불명확하고, 그것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은 상호작용하므로 평가하고 가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애매함은 부분적으로 인간생활에서 과학기술의 중심성으로부터 발생하는데 과학기술은 경제, 매일매일의 사회생활, 그리고 문화, 인간의 주체성 그 자체까지 모든 인간생활의 필수적인 차원에서 강력하게 고착되어있다.  

도구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과학기술은 점차 인간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상호작용의 형상을 띠게되는 도구의 연장이다. 과학기술은 인간의 도전에 크나크게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그런 존재의 본성에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회구성주의자는(social constructivist) 과학기술의 깊이와 경로 그리고 인간의 도전에서 중심성과 과학기술이 지금까지 역사적 기간에 인간사회와 문화의 조직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개념은 간과하곤 한다. 한편으로 확실히 과학기술은 사회적으로 구축되며 특정한 사회적 기반과 이해가 과학기술에 투영되고, 과학기술이 생겨나고 이용되는 사회적인 관계는 그 사회의 특성과 방식(uses)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비판적 과학기술이론은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분명히 하며, 인간의 삶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종합적인 전망속에서 발전시키고 있으며, 과학기술이 인간개인-존엄성과 민주주의적인 가치들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텔레비전에 비판적인 이론은 인간의 삶을 고양시키는 과학기술 및 그것의 이용과 하락시키는 과학기술 및 그것의 이용, 민주적인 것과 억압적인 것들을 분별할 수 있는 비판적인 관점을 발전시켜야만 한다.

비판적 과학기술이론은 공격적이고 억압적인 과학기술의 형태와 그것의 사용을 비판해야 할 것이며, 과학기술의 재구조화와 재기능화를 통해 진보적인 사회 변화와 더나은 삶과 사회를 창조할 수 있는 방안을 그려나가야 한다. 그래서 비판적 과학기술이론은 과학기술을 윤리적이고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과학기술의 건설과 재건설을 인간도전에서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윤리학, 미학, 정치학의 규정적인 개념을 철학적인 전망속에서 추구해야 할 것이다.

일방적 본질주의자와 사회구성주의자의 과학기술 개념을 극복하기 위해 비판적 과학기술이론은 역사결정론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의 사회구조를 인식해야 하며, 과학기술을 인간의 삶과 역사에서 중심적인 것으로 사고함으로써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중심성에 걸맞는 본질적인(substantive) 과학기술철학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관점과 부정적인 관점 - 또는 애매모호한 - 을 구분하는 비판적 과학기술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인 규범적(normative) 관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즉각 과학기술 또는 특정한 과학기술에 대한 급진적인 비판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러한 비판들은 중요하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학기술이 여러 경우에 지배와 억압의 수단이 되었고 긍정적인 가치들을 위협한다고 해서 그 자체로 지배와 억압의 수단으로 결론내려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컴퓨터와 같은 과학기술은 초기에 거대국가 정부나 기업, 군대에서 사회통제의 수단과 권력으로써 개발되어 사용되었는데 1960년대에는 제도적 지배, 비인간화, 인간의 권력 약화 그리고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파괴적 무기체계의 확산에 기여하였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컴퓨터는 개인적 것으로 재창조되어 그 이전의 모습보다 구성과 효과에서 상당히 달랐다.

이러한 이유로 비판적 과학기술 이론은 과학기술에 대해 명확하고(specific) 규정적인(normative) 역사적 비판을 해왔다. 그로서 과학기술이 삶에 미치는 부정적이고 강압적인 면을 공격할 뿐 아니라 권력을 강화하고, 민주화하고 긍정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과학기술의 형식과 기준을 정했다.(valorize) 과학기술이 인간의 행복과 해방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과학기술의 해방적인 기능과 이용의 윤곽을 잡아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현존하는 과학기술의 재구조화와 -마르쿠제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하여 불렀던- "신기술(new technology)"의 창조를 요구한다.

과학기술의 억압적인 구성과 이용을 해방적인 구성과 이용으로부터 구분하는 비판적이고 규범적인 범주의 시각에서는 그들자체가 역사적이고, 진화하며,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행복의 개념은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그래서 개인의 규범적인 표준들은 역사적이며 역사의 흐름에 종속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프랑크푸프트 학파는 1930년대와 40년대 사회주의의 성장을 향상시켰는지 퇴보시켰는지 그리고(혹은)자본주의의 통제를 향상시켰는지의 관점에서 현상을 평가하는 사회주의자의 비판개념에서, 현존 사회의 규범(norms)을 실패를 측정하고 이러한 규범을 실현하기 위해 실패를 비판하는 척도로서 취하는 "내재적(immanent) 비판"이라 부르는 개념으로 변화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현존하는 파시스트, 공산주의, 자본주의사회에서 계몽, 민주주의, 인권, 개인주의, 자유, 그리고 다른 계몽주의의 이상과 같은 규범의 억압을 비판하기 위해서 규범의 유효성을 생각했다. 호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1972)은 이러한 가치가 그들의 대응물로(opposite) 변화했으며, 계몽, 인종주의, 문화, 다른 부르조아의 사상들이 자유와 진보의 형태에서 - 사회적 통제와 억압의 체계뿐만 아니라 과학 그리고 기술, 산업, 그리고 근본적인 인종주의가 전쟁 공장과 죽음의 우물, 그리고 핵재앙을 창조해왔듯이 - 억압과 지배의 형태로 변화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그들은 과학기술의 지배와 권력의 변화한 형식에 대항하기 위한 대항과 비판의 전략을 새로이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과학기술비판론은 내재적인 비판의 전략들을 취할 수도 있지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개념보다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더나은 사회의 개념을 강화시켜야 하며 새로운 컴퓨터와 멀티미디어 기술의 권위에 의해 촉진되고 있는 민주주의, 권력강화, 그리고 자유의 이데올로기적인 개념에 대해 비판을 수행하여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은 광범위한 작업이며 나의 현재 고민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재구조화로 인해 복지국가와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신기술에 관한 이론 정립을 하는 데서 몇 가지 시사점을(observation)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과학기술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여전히 잠재해 있는 진보적인 이용과 효과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시사점을 제시고자 한다.

그러므로 지금 해야 할 것은 어떻게 신기술들이 지배의 도구로써 사용될 수 있는가와 어떻게 신기술이 보다 평등한 사회를 창조하는 민주화를 위해 쓰일 수 있으며, 현재 박탈되고 권력이 없는 개인 및 집단의 권력강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 정립을 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은 이글의 다음 장에서 제시될 것이다.

또한 눈에 보이는 개인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서 특정 개인에 의해 사용되는 일련의 특정한 도구와 방식으로서 기술과 대비하여 사회구조의 한 부분으로서, 명기할 수는 없지만 또한 생산관계의 구조에 의해 형성되는 생산력으로서 과학기술을 구분하여야 한다.

이것은 과학기술과 현재사회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차원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는 것과, 과학기술이 어떻게 특정한 맥락에서 다양한 집단과 개인들에 의해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것은 또한 과학기술의 사회적 구조를 분석하는 것과 특정 사회의 성향과 이해, 가치가 가정 컴퓨터에서 핵무기까지의 현재 과학기술 형태에 어떻게 투영될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것이 포함된다. 현재 사회구조에서 과학기술은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독립적인(autonomous) 기술을 현재사회의 구성원리로 만듦으로서 정치경제학 차원의 힘과 권력을 차단하고 인간 행위의 의도를 배제하는 기술결정론의 팽창을 가져왔다. 기술결정론은 현재의 발전을 설명하기 위해서 종종 후기산업사회 또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주장을 이용한다. 이러한 주장은 중공업, 대량생산과 소비, 관료조직, 사회적 일치로 특징지어지는 이전시대의 산업생산방식과 신기술이 새로운 포스트모더니티의 형성자가 되는 "가변생산" 또는 "포스트포디즘"으로 특징지어지는 후기산업사회를 비교하여 정형화된 형식의 차이로 전개시킨다.(하베이 1989) 보드리야르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게 정보기술과 사회재생산은 (예를 들면 시뮬레이션)사회의 모든 곳에 침투해 있으며 하이테크는 새로운 사회환경을 창조했고, 과학기술의 내적 폭발을 경험하여 인간이 새로운 종으로 돌연변이 되어서 실제와 근대세계를 뒤에 남겨두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혁명을 보는 다른 소수의 덜 사치스런 이론가들은 우리 사회는 새로운 후기산업 기술사회/문화/ 조건으로 진화해 왔는데 그로 인해 과학기술과 지식, 정보는 사회의 축(axial) 또는 구조화된 원리가 되었다고 본다.(Bell 1976)

정보사회에 관한 이론 정립을 위하여

후기산업사회는 때때로 지식과 정보에 이전시대보다 보다 주요한(prominent) 역할이 주어지는 '지식사회' 또는 '정보사회'로 불리운다.(1995년의 Webster 설문조사를 보라) 현재는 지식과 정보요소가 중요한 요소이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다니엘 벨과 다른 후기산업사회 이론가들의 이론이 우리같은 사람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이거나 핵심을 벗어나 있지 않았다는 것은 이제 상당히 명확하다.(well-documented)

하지만 이런 이론 대부분의 기술결정론과 기술이상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정보와 오락산업의 융합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정보오락사회7)"를 생성하고 있는 기술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의 부분과 집합으로서 정보 또는 지식"혁명"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현재의 '정보사회' 뿐만 아니라 이전의 '지식사회' 또는 '후기산업사회'와 같은 이론들의 한계는 지식과 정보의 역할을 과장하고, 극단적으로 경제와 정치사회 그리고 모든 생활에서 정보와 지식의 역할에 특권을 부여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 기업 경영(coporate ownership)과 통제, 그리고 기업과 국가 권력이 생산에서 지배적인 구성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무시하는 이상주의적  전망을 진전시키는 것에 어느정도 연관된다.(devolve)

그러나 산업사회의 이전형식과 사회와 문화의 새로운 형태 사이의 연속성에 대해 인식하는 한편 "포스트"란 담론(discourse)으로 묘사되는 독특함과 불연속성에 대해 이해야만 한다.(Best and Keller1997) 웹스터(1995:5, 도처에) 는 "정보사회의 이념을 지지하는 사람" 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저술가"를 구별하고자 했다. 비록 그는 나를 연속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무리에(camp)  포함시켰지만, 나는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현재의 사회적 전환에서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이런 경우에 양자택일(either/or)논리가 아니라 양자모두(both/and) 논리를 취해야(deploy)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재 사회 재구조화에서 독특함과 차별성에 대해 이론을 정립해야 할 뿐 아니라 이전의 사회적 구조와의 연속성에 관해 이론을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그러한 변증법적 관점이 프랑크푸르트학파 사람들과 같은 막스와 네오-맑시시트의 전망의 방식과 일치한다.

어쨌든 정보사회와 정보간선고속도로란 개념은 현재 기술자본주의의 새로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가고 있다. 정보사회의 개념은 1970년대의 다니엘벨과 같은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이론가들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정보간선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라는 개념은 매우 최근의 발표된 개념으로, 1993년 '국가 사회적 생산기반(The National Infrastructure8) ) : 행동을 위한 의제' 보고서에 의해 클린턴-고어행정부에 의해 발표되어 진정되어(promote), 1994년 3월 세계정보통신발전위원회 연설에서 정보간선고속도로란 개념을 대중화시킨 앨고어부통령에 의해 실행되었다.

이런 개념화는 싱가포르를 정보의 섬으로 표현하여 1993년 발행된 '지적(Intelligent)인 섬의 전망'이란 싱가포르 정부간행물에 의해 1990년대에 더욱 확산되었다.

1994년 일본은 '21세기의 지적이고 창조적인 사회를 향한 개혁'이란 보고서를 발표했고, 영국은 '미래의 정보간선고속도로를 창조하기 위한 보고서'를, 노르웨이는 '국가 정보네트워크'계획을, 스웨덴은 '인간능력에 날개를'이란 보고서를, 그리고 덴마크는 '정보사회2000'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EU와 G7보고서가 잇달았고, 정보사회와 정보간선고속도로에 관한 엄청난 양의 미디어와 학문(literature)을 낳았다.

이러한 계획서 대부분은 경제적 자유주의, 탈규제, 건전하고 건강한 정보 사회적생산기반을 발전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으로 부활한 시장의 힘을 지지하여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으로 제패된(championed) 현재의 신자유주의시장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켜나간다.

그리하여 다니엘 벨이 도래할 탈산업사회를 주로 시장구조에 의존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고 사실 기술관료적(technocratic-inspired) 통제구조를 지지했었을 지라도 현재의 주장은 무자비하게 탈규제화된 자본주의자의 시장 구조를 정보사회로 가는 길로서 지지하고, 정보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신기술을 필수적이고 유익한 것으로 보는 기술결정주의로 가는 경향이 있다.

더많은 일자리, 나은 교육, 경제적 번영, 그리고 전세계적인 문화와 통신네트워크의 방안으로 정보간선고속도로를 보고 있는 고어의 1994년 정보간선고속도로 기념식은 단지 과학기술과 정보 간선고속도로에 대해 방대한 양의 정치적 보고서와 주장의 나열에 불과한 기술예찬적이고 학문적이고 통속적이고 가장 사치스러운 기념식이었으며 위에서 얘기했듯이 주류 미디어의 보도는 똑같이 매우 열광적이었다.(후자의 경우는 내가 뒤에서 서술할 것처럼 그다지 놀랍지 않은데 그 이유는 거대복합미디어 기업들(conglomerate)과 주요 정보 및 컴퓨터 산업기업들간의 합병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정보사회와 정보간선고속도로의 주장에서 무엇이 차단되어 신화화되고 있으며, 도대체 이것은 어떤 종류의 주장이 그러한가?

비록 똑같이 새로운 과학기술의 확장을 일방적으로 불평하는 과학기술혐오적 주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인 정보사회의 주장들은 무엇보다도 새로운 과학기술로부터 풍부한 과실을 약속하는 매우 기술예찬적이고 무비판적인 주장들이다. 다음으로 그런 주장은 새로운 과학기술이 극적으로 확장하는 것이 마치 운명인 것처럼 바라보는 결정론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어서 시장을 그들의 발전과 확대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기구로 보며,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마차를 같이 타고, 통신망으로 연결되어서 컴퓨터 혁명의 기쁨과 이로움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비용과 전위(dislocation) 그리고 혜택의 상당부분을 거두어 갈 강력한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를 간과하고 있으며 자본이 그들의 위험, 불확실성, 더많은 세계의 시장참여로 봉착한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전지구적 재구조화에 필수적인 요소로서 신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있다.

그러므로 정보사회의 주장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확장 배후에 있는 경제적 힘과 동력, 혜택과 비용,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크리, 논쟁중인 정치적 이슈를 차단한다.(말하자면 복지국가의 축소, 민주주의의 위협, 증대하고 있는 자본, 국가, 미디어의 권력 뿐 아니라 진보적인 사회변화를 이룰 가능성) 나는 신기술의 등장(implementation)과 발전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구조조정과 정보와 연예산업들의 합병의 한 부분이며, 정보와 연예의 융합이 새로운 정보오락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발전을 이해하고 새로운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증진시키는 정치학(politics)을 발전시키는 것이 현재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과학기술사회의 상징(metaphors)과 이데올로기

전술한 바와 같이, "정보간선고속도로"는 기술자본주의 발전과 정보사회의 개념을 합리화하는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나는 정보간선고속도로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이며 정보오락사회는 현재의 기술자본주의 사회의 주요한 전략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미국미디어에 의해 가장 과도하게 선전되는데 이유는 미국미디어 기업이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주요 기업이기 때문이며, 거대한 미디어를 소유하고 있는 똑같은 기업이 컴퓨터와 정보산업들을 합병하고 있어 결국 신기술이 이윤과 사회권력 그리고 권위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기존 미디어기업과 새로운 정보와 컴퓨터사회의 기업사이에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겠지만, 그들은 합병을 통해서 미디어가 신기술과 정보간선고속도로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는 기수가 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신기술과 정보간선고속도로의 주장과 관련된 자유로운 개인주의와 "자유시장" 경영주의(entrepreneurialism) 는 유해로운 규제, 과도한 세금, 부질없는 복지예산의 팽창의 특징을 갖는 거대정부와 연관된 복지국가에 대항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무기공장(arsenal)의 일부이다. 새로운 컴퓨터 문화의 권위와 권력은 그래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들에 주입되어 국가주의자와 복지의 주장을 상쇄시킨다. 신기술이란 담론은 오랫동안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했던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와 맞물린다.

개인(individual)은 정보간선고속도로의 이데올로기의 구조이자 부분으로, 정보사회의 구성물이 되었다. 개인이란 개념은 근대초기의 르네상스와 계몽주의시대에 지식과 발견, 창조의 원천으로서 뿐 아니라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단위로서 등장했다. 비록 대중화와 사회적 통제가 증대해 개인으로부터 실질적인 자유와 창조성을 앗아갔지만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수록, 부르주아사회의 기초였던 개인에 대한 낭만주의화는 증대했다. 이러한 낭만적 개인주의-절대적인 주체에 대한 찬사 그리고 그러한 것에 위협이 될 권력과 기구에 대한 부정(denigration)-는 컴퓨터 문화에서 변질되었다.(metamorphose)

담론적인 측면에서 개인과 정보간선고속도로란 주장은 함축과 유혹적인 이미지와 개념으로 가득차 있다. 정보간선고속도로란 담론과 "서핑" 또는 "크루징", '웹' 또는 '넷'이란 개념은 빠르게 여행한다, 모험한다, 개인의 환희과 도전이라는 함축적 의미를 지니는데 그런 것은 개발, 새로운 공동체공간과 새로운 경계위에 존재(being)의 건설이란 함축을 지닌 "전자 개척자"(electronic frontier)란 담론에 의해서 증대된 함축이다. '넷'과 '웹'의 은유는 연결되어 있음- 튼튼한 뿌리모양의 다양한 수준의 경험과 조직(texture) -을 의미함으로서 새로운 컴퓨터망이 주는 인공적이고 복잡하며 기술적인 연결망을 자연스럽게 길들일 수 있다.

사실 정보간선고속도로의 "자연스러운"이란 담론은 (예를 들면, 서핑, 크루징, 넷, 웹, 창조성 등) 자연을 문명으로 변환시켜서 정보사회의 극적인 발전을 자연의 힘으로, 멈출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만든다. 게다가 그런 주장은 신기술의 발전과 결과적인 사회의 변화가 - 또한 더 높은 사회적 진화영역으로 가기 위한 인간의 진화와 발전동력이 되는 -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뚜렷히 보여주고자 생명공학적/자연적 상징과 진화의 수치를 전용한다. 그러나 자연과 진보의 은유는 신기술의 사회적 토대, 기술자본주의 전략(project)과 정보오락사회 배후의 경제적인 이해관계, 미래에 대한 사회적인 투쟁을 은폐한다.

또한 게다가 빌게이츠의 "마찰없는" 자본주의란 개념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있고, 전위(dislocation)와 다운사이징 그리고 경제의 하강운동, 불확실성, 불안이 있기 마련인 자본주의의 구조조정에서 생기는 고통, 복잡합(messiness), 마찰을 은폐한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는 자체로 경쟁, 갈등(antagonism), 그리고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 불렀던 것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마찰이 없을 수는 없다. 이것은 오로지 개인의 이기주의와 다윈의 적자생존논리가 예견되는 시장메커니즘을 통해서만 자본주의의 마찰과 갈등 그리고 고통을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려는 이데올로기적인 환상과 환영이다.

또한 나는 정보사회의 개념과 정보사회의 형성자로서 정보기술을 강조하는 것이 현재 매우 한계적이라고 본다. 즉, 신기술은 정보와 오락의 형태이지만 점점 더 서로를 분리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밝혔듯이 신기술은 전적으로 정보기술이라 기보다는 노동과 여가를 포함하며 재구조화하는 오락, 통신, 운동의 기술인 것이다. 이전시대의 오락은 빠르게 인터넷속으로 흡수되고 있으며, 컴퓨터는 가정기구의 하나가 되어 다른 세계와 오락, 정보, 운동, 소통, 연결을 할 수 있는 원천이 되고 있다.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enormity) 전환에 대한 단서로서 그리고 정보오락사회에서 정보와 오락의 융합의 지표로서, 지난 이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났던 정보와 오락복합회사간의 거대합 합병을 상기해보는 것이 좋은데, 그런 합병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정보와 오락산업의 집중과 복합을 보여주었다. 다음이 포함된다.

CBS와 Westinghouse : 55억 달러

MCA와 Seagrams : 56억 달러

Time Warner와 Turner : 75억 달러

Disney와 Capital Cities와 ABC : 190억 달러

NBC와 Microsoft : 수십조 달러(megabillion)

이러한 합병은 정보오락사회에서 미디어와 컴퓨터문화 그리고 오락과 정보가 폭발적으로 유입(implosion)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TV, 영화, 잡지, 신문, 책, 정보 데이타 베이스, 컴퓨터, 다른 미디어가 포함된 법인을 함께 탄생시켰다. 또한 원격통신산업간의 거대한 합병이 있었다.(미국에서 사우스웨스트벨과 캘리포니아 벨, 그리고 뉴욕과 아틀란틱 벨간의 합병, 거의 성사단계인 AT&T와 거대한 지역 전화회사간의 합병9) , 그리고 브리티시 텔레커뮤니케이션과 GTE 시도(offers)를 능가하는 MCI의 월드컴과의 370억달러의 합병 제안10))11)미디어법인, 통신, 정보산업들은 포르노그래피와 도박과 같은 불건전한 서비스들과 인터넷쇼핑 뿐만 아니라 인터넷 접속증가, 핸드폰, 위성휴대통신장비, 비디오, 영화, 수요가 증대하고 있는 정보와 같은 여러서비스와 오락, 정보 등의 부가가치의 거래권을 제공하기 위해 미친듯이 경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거대한 정보, 컴퓨터, 오락복합 회사들 사이의 합병은 오락과 정보의 차이를 상쇄하여 둘을 결합한 신기술과 미디어의 상승(senergy)효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합병은 현재의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속에서 정보와 오락의 겹쳐진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정보사회와 정보혁명의 개념이 정보오락사회의 개념속으로 확장되어야 함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기업합병과 그들이 생산하고 있는 생산물과 서비스는 자본과 기업/국가 헤게모니의 축적이 아닌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목적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도전해야 할 기술자본주의와 새로운 정보오락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기술자본주의와 정보오락사회

그래서 나는 과학기술혁명과 정보혁명 속에서 이러한 오락과 정보의 융합이 전지구적 자본의 재구조화의 한 부분으로 작동하고 있는 새로운 정보오락사회가 창조한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혁명과 신기술에 관한 몇몇 이론은 신기술의 이용과 구조화, 이행, 마케팅을 자본주의의 현재 계속되는 변동의 맥락에서 고찰한다. 정보사회의 이데올로그들은 마치 기술이 자율적 권력인 것처럼 행동하며, 자본과 기술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거나 시장자본주의를 규제하기 위해서 과학기술의 성과를 이용하기는커녕 무시한다.(예를 들면 빌게이츠) 게다가 현재 과학기술의 변화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이론가들은 자본의 재구조화가 과학기술혁명과 어떠한 식으로 연관되어 있는지 분석해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오퍼(1985), 래쉬와 유리(1987, 1994)는 경제, 정치, 문화, 사회에서의 중요한 변화를 해명하는데 있어 자본의 재구조화가 아닌 자본의 탈구조화로(disorganization) 바라본다.

대부분의 정보사회의 전도사와 예언가들이 기술결정론적인 경향이 있는 반면, 정보사회의 이데올로기와 실천을 비판하는 (신)맑스주의자들은 경제결정론자들이다. 그렇지만 기술결정론과 경제결정론은 둘다 증대하는 갈등과 투쟁의 역할, 창조와 변형의 가능성, 개인과 집단의 필요와 목적에 맞게 사회를 다시 만들고자 하는 능력을 간과한다. 모든 결정론자들의 개념에서 과학과 사회는 권력과 지배의 모체(matrix)로서 여겨지고 반면 인간은 수동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되며 개인의 권력강화를 위해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루이스 멈포드(1934)와 우리는 인간은 사회적 환경과 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어서 사회적 환경을 그들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변형시킬 수 있으며, 권력을 강화하고 사회를 민주화하는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은 인간에 의해 능동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도구이다. 비록 기술이 특정한 목적에 봉사하기 위해서 사회권력에 의해 생겨났지만(shaped), 그들이 의도된 목적과 반대로 재조정될 수 있고, 재형상화될 수 있으며 배치될 수 있다. 이것은 자본-결정에 대립하여 생산과 가격의 자본가적 관계에 반대하여 생산과 소통의 기술을 사용하는 자율-결정이라고 자율(autonomous)맑시스트들이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네그리 1989)

하지만 주의주의(voluntarism)12) 와 휴머니즘의 낭만성을 피하기 위해 현재 삶의 모든 측면을 재구조화하고 있는 경제,사회,정치,문화,기술적 권력에 관해서 엄밀한 인식을 취해야하며,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전략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현재 사회구조에서 기술과 자본의 융합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술자본주의"란 개념을 도입했다. 기술이 경제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회의 새로운 구조원리라는 포스트모던의 이론(말하자면 보드리야르)들과 다르게 나는 기술자본주의란 담론을 제안하여 기술의 역할이 증대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 우선성이 계속될 것임을 가리키고자 한다. 나는 현재 사회가 여전히 생산과 자본축적을 중심으로(around) 구조화되고 있으며, 자본가의 의도대로 다른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 뿐 아니라 생산과 분배, 그리고 소비가 지배되고 있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계속적으로 자본가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으며 자본은 공산주의의 붕괴이후 그 어느때보다도 더 큰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

기술자본주의란 개념은 한편으로 새로운 사회구조의 양식과 문화 및 새로운 일상의 형태를 생산하고 있는 인간노동력, 노동과정의 기계화, 기술의 이전 자본주의 시대에서 역할과 유사하게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지식, 자동화, 컴퓨터, 첨단 기술의 역할이 생산과정에서 주요하게 되는 자본가의 사회구조임을 말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는 거대한 기업(corporation), 카르텔, 파시스트 형태이든 국가자본주의 형태이든 자본주의 구조화에 봉사했던 자본가 국가가 등장하고, 그리고 새로운 사회통제와 새로운 형태의 사회화, 문화와 일상의 새로운 재편에 복무했던 문화산업과 대량문화가 등장한 새로운 사회적, 경제적 구조, 기술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시장으로부터의 전환에 의해 발생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서의 새로운 재편양상에 대해 이론을 정립해야 했던 1930대 프랑크푸르트학파와 유사한 상황에 있다.(켈러 1989a) 나의 논점은 오늘날 미디어문화와 신기술이 때때로 포스트모던 사회, 정보사회, 사이버사회, 초국적 포스트포디즘, 그리고 다양한 다른 담론들로 불리우는 새로운 사회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에서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을 역동적(vitally)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자본주의란 개념은 결국 기술과 자본의 융합(synthesis)을 가리키며 기술결정론이나 경제결정론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역설하고 있는 자본의 구조화는 정보산업과 미디어 산업의 융합 그리고 정보, 오락, 사회재생산에서 신기술의 중요성을 다루기 위해 내가 고안해서 불렀던 "정보오락사회"와 같은 매우 특징적인 사회적 구조를 생성하고 있다.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새로운 기술자본주의의 형태는 국가권력의 감소와 시장권력의 증대라는 특징을 가지며, 초국적기업과 정치체의 권력 강화와 민족국가와 민족국가기구의 권력약화가 동반된다. 맥스 호크하이머(Max Horkheimer)13) 를 해석하기 위해서는(paraphrase)-자본주의에 관해 논하고자 하는 누구라도-세계화에 대해 논해야 하며, 세계화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자본의 구조조정에 관해 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체코비치와 켈러 1996년과 켈러1998a참조(see))

지식, 정보, 교육은 현재사회의 구조화에 있어 아마도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 내가 주장하려는 - 자본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신기술을 실용화(implementation)함으로서 구조화를 진행하기 있기 때문이다. 지식, 정보, 오락, 과학기술의 전체적(corporate) 통제는 어떤 저항도(countervailing) 받지 않고 엄청한 규모의 전체적(corporate) 권력기반을 만들거라는 위험이 있다. 과학기술혁명과 정보사회의 이데올로그들은 늘상 교육이 미래사회의 번영에 열쇠가 된다고 주장해왔으며, 교육은 모든 이들이 접근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그래서 교육은 최고의 사회적 우선 과제(priority)라고 주장해왔다. 물론 이것은 교육이 단지 자본이 확장하고 증대되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전수에 촛점을 맞춘 직업훈련을 능숙하게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기보다 대중화되어서(expand) 많은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지식과 문명의 범위를 증대시킨다면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신기술은 분명히 노동, 생산, 여가 뿐만 아니라 교육과 학교수업(schooling)조차도 혁명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 몇 년간 과학기술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어떻게 과학기술을 모든 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과학기술은 교육을 향상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파괴하고 있는가에 관한 격렬한 논쟁과 교육과정에서 주요하게 실용화된 과학기술을 보아왔다. 신기술이 궁극적으로 교육을 향상시킬 것인지 저하시킬 것인지 그리고 나쁜 영향을 미칠지 어떨지는 아직 결정적이지 못하지만 개개인은 인쇄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첨가한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사회적 문화적 능력 그리고 생태적 감수성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컴퓨터 활용능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켈러 1998b참조) 우리는 점차 복잡해지고 있는 새로운 세상에 접근할 때 교육과 문명에 관해 상당히 확장해서 재고해야 할 것이며, 교육을 강화하고 민주화하는데 과학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위험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첫째, 현존하고 있는 불평등은 점차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컴퓨터와 과학기술 활용능력에 의해서 재생산되고 있으며 이것은 다른 이들을 희생함으로서 현존 엘리트들을 특권화 할 것이다. 둘째, 정보오락사회의 가치와 문화형태가 문화와 모든 일상의 영역뿐 아니라 교육까지 침투(permeate)한다면 점점 더 교육을 미디어 물질의 소비로서 학습의 역동성과 실행 경험을 대치하는 멀티미디어와의 상호작용학습과 오락형태의 학습으로 만들(rendering)것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멀티미디어와의 상호작용이 책과 인쇄매체만큼 활동적이고 창조적일 수 있고, 대중적인 오락의 방식은 어느정도 가치있는 교육적인 목적에 봉사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치학(Technopolitics)과 새로운 공공영역

어쨌든 삶의 모든 영역이 신기술에 의해 극적으로 변형된 이후 어떻게 이러한 거대한 전환을 분석할 것인가, 신기술을 생산적으로 이용할 전략을 고안할 것인가는 중대한 도전거리였다. 분명히 공장과 학교, 그리고 공공영역과 일상에서 신기술을 비인간적이고 개발적이고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급진적으로 비판해야 하지만 또한 신기술을 우리의 도시, 학교, 경제, 사회를 재건하는데 이용하기 위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장의 남은 부분에서는 어떻게 신기술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개인의 권력강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는가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전 논문들에서(켈러 1995, 1996, 1998a) 나는 신기술이 새로운 공공영역과 사이버민주주의의 새로운 장(realm)을 창조하고 있으며, 그래서 신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진보적인 명분과 사회변화를 증진시키는데 이용하려하는 대중(public) 지식인에게 도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자본과 자본의 상품화논리가 일상의 더 많은 영역을 식민지했지만, 적어도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점차 가상공간(cyberspace)이 많은 수의 사람을 위해서 탈상품화되었다는 것은 무척 놀랍다. 미국에서 정부와 교육기구, 그리고 몇몇 기업은 자유로운 인터넷 접속기회를 제공하며 어떤 경우에는 무상컴퓨터 혹은 최소한 작업공간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한달 단위 고정전화요금영수증으로(flat-rate monthly phone bill) (내가 알기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상품화된 과학기술자본주의의 세계에서 몇 안되는 탈상품화된 영역중의 하나인 무료 인터넷을 이용하여 정보와 오락의 풍요(cornucopia)에 접근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는 여전히 전화서비스조차 없으며 컴퓨터도 거의 없으며, 컴퓨터 접근성과 오늘날의 과학기술혁명과 가상공간민주주의에 참여 정도에서 보자면 엄청난 불평등이 존재하고 있다. 신기술과 가상공간을 비판하는 논자들은 갈수록 어리고, 백인이며, 중간계층이나 그 이상의 계층 남자들이 현재 가상공간의 주요 참여자들이라며 늘상 비판하지만, 통계와 설문조사에 의하면 많은 수의 여성, 유색인종, 노년층, 다른 소수범주의 사람들도 점차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결과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컴퓨터가 표준 가계소비항목의 한 부분이 될 것이며 아마 다음 세기의 시작에는 텔레비전보다 일반화 되고 일과 사교(social life), 교육에서는 텔레비젼보다 더욱 확실히 중요해질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또한 현재 전화, 텔레비젼, 전기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과 통신혁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전세계를 연결하려는 계획이 진행되고(afoot) 있다.

컴퓨터와 과학기술이 확장되고 일상화되고 있을 지라도(혹은 아닐 지라도), 노동, 정치, 교육, 사회생활에서 이것은 근본적으로 중요할 뿐 아니라 미래의 대중적이고 문화적인 생활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컴퓨터 접근성과 활용능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사회의 컴퓨터화가 현재의 불평등과 계급, 인종, 성권력의 구성에서의 불공정함을 증대시킬 것이라는 두려움과 실제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민주화되고 컴퓨터화된 대중 영역이 이러한 불평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하 아래에서 억압받고 권력에서 소외된 집단이 이익과 진보적 정치의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신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몇가지 방식을 제시하고자 한다.(address) 그러기에 앞서 인터넷과 컴퓨터의 동학(activism)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을 언급하고자 한다.

인터넷과 가상공간민주주의의 비판자들은 종종 넷(net)개발의 군사적인 기원과 대기업과 국가권력의 집행에서 넷(net)이 가지는 중심적 역할을 들어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인터넷이 탈상품화되었고, 점차 탈중심화되고 있으며, 많은 집단과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울 만한 일이다. 그래서 가상공간민주주의와 인터넷은 투쟁의 장소로서, 경쟁의 영역(terrain)으로 인식되어야 하며 진보주의자(progressives)들은 저항과 투쟁의 환류(circulation)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대기업과 국가권력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자와 우익집단(rightist groups)까지도 그들의 의제를 발전시키기위해 진지하게(serious) 신기술을 이용해왔으며, 따라서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정치전장에서 주체(players)가 되려고 한다면 마땅히 진보적인 의제와 피억압자들의 이해, 그리고 저항과 투쟁의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기술의 이용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인터넷과 가상공간 민주주의가 진보적 정치투쟁에서 사용되고 있는 몇가지 유사한 예들이 있다. 많은 수의 혁명을 꿈꾸는 지식인들은 이미 그들의 정치적 과제에서 신기술과 대중적인 영역을 이용하고 있다. 멕시코 치아파스에서 투쟁하고 있는 농민과 게릴라 군대는 초기부터 컴퓨터 데이타 베이스, 게릴라 라디오, 그리고 다른 형태의 미디어를 이용하여 그들의 투쟁과 견해를 환류시키곤 했다. 1994년에 남부멕시코지역인 치아파스 영토를 점령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Zapatista Army of National Liberation)은 모든 선언문, 문장, 게시판을 즉시 컴퓨터 네트워크를 이용해 즉시 전세계로 유통시켰다. 1995년 1월 멕시코 정부는 해방군을 무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했지만, 무력으로 진압하는 멕시코 정부의 행위에 저항하는 사파티스타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전세계로 수많은 개인과 집단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행동을 유발하기(mobilize) 위해 컴퓨터 네트워크는 이용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봉기를 지지하는 수많은 데모가 이어졌으며, 저명한 저널리스트, 인권옹호가, 대표단들(delegation)이 연대를 위해 치아파스를 여행했고(travel), 반란(uprising)을 보도했으며, 멕시코와 미국정부는 진압보다는 협상을 하라는 내용의 메시지 공세를 받아야했다.(bombard) 결국 멕시코 정부는 반란군에 대한 진압을 철회했으며 1998년 1월 공식 합의(writing)이후 해방군과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통신과학기술은 (사회적)성, (육체적)성, 인종을 둘러싼 일련의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1991년 클라렌스 토마스의 미국 연방 대법원판사 인준청문회와 아니타 힐 그리고 다른 사람에 의한 성추행 주장(claim)에 대한 토마스의 공격(assault)과 분명히 부적격인 토마스의 인준을 거부하려했던(disqulify) 미국 남성상원 의원들의 시도가 실패한 이후 여성들은 컴퓨터와 다른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미국 정치제도에서 남성특권을 공격하였으며 여성이 여성후보를 지지하도록 선동하였다.14) 1992년 선거결과는 이전 어떤 선거보다도 여성후보의 선거였으며 보수적인 규칙에 대한 대규모의 (general) 거부였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지금은 웹사이트, 메일링리스트, 그리고 다른 형태의 가상소통기제를 구축하여 그들의 투쟁을 환류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때때로 "riotgrrrls"개념으로 웹진(electronically-mediated zines), 웹사이트, 토론집단을 만들어서 견해를 모으고 그들의 문제와 투쟁에 관해 토론한다.15) 아프리카계-미국 여성, 라틴아메리카여성, 그리고 다른 지역의 여성들은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웹사이트와 토론목록이 담긴 게시판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AIDS활동가들은 신기술을 이용해 의료정보를 공유하고 토론하며 정치적 행동과 투쟁의 방침(course)을 후원하는 후원자를 움직인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아프리카계 저항 지식인은 방송과 컴퓨터과학기술을 이용해 투쟁을 발전시켜왔다. 존 피스크(1994)는 현재의 "기술투쟁"에서 아프리카계-미국인의 공중파프로젝트와 종족, (사회적)성을 둘러싼 최근 투쟁에서 미디어의 중추적인 역할에 대해 묘사하였다. 아프리카계-미국인 "지식인 전사들"은 공중파, 컴퓨터네트워크, 다른 미디어를 사용하여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의견과 대항지식(counter-knowledge)을 환류하고 주류와 경쟁하는 대안적인(alternative) 관점와 정책을 제공한다. 게다가 오클랜드, 할렘, LA와 같은 유색인종사회의 활동가들은 컴퓨터를 통해서 지역사회와 미디어 센터를 구축해 지역의 사람들에게 문화의 미디어화(mediazation)와 사회의 전산화(computerization)의 공격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익과 반동세력(reactionary)도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고, 또 이용하여 정치적 의제를 유포시키고(promote) 있다. 조만간에 사람들은 극우단체인 KKK단에 의해 운영되는 이상한(exotic) 마녀의 이마가 보이는 사이트와 아라얀과 여타의 애국적 군사집단이 포함된 수많은 신나치집단의 웹사이트에 쉽사리 접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토론 목록이 담긴 게시판(list)을 통해 의견을 발전시켜서 극우집단은 라디오 프로그램과 방송국(stations), 대중용 텔레비젼 프로그램, 팩스 캠페인, 비디오와 락뮤직 생산에 이르기까지 많은 컴퓨터 포럼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매우 유해하여 교회방화와 대중건물 폭파까지 다양한 종류의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극우집단은 극우적인 명분(causes)을 위해 사이비(quasy)-레닌주의자의 용어와 전술을 채택하여, 전통적인 형태의 산업노동자, 농민, 비숙력노동자에게 광범위한 실업을 가져다 준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진전으로 파괴된 (devastate) 그들의 일원을 포섭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터넷은 경쟁하고 있는 영역으로 좌, 우, 중도파들이 각자의 의제와 이해를 전파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장이다. 미래의 정치투쟁은 여전히 거리, 공장, 의회, 그리고 과거와 같은 여러 장소에서 벌어지겠지만 오늘날의 정치투쟁은 이미 미디어, 컴퓨터, 정보기술과 연계되어 있으며 미래에도 점점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문화와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새로운 대중 영역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개입해야 한다.

몇가지 결론적인 요점

복지국가를 해체(dismantle)하려는 기술자본주의의 전략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정치영역과 정치(politics)를 만들어내고, 신기술을 이용하여 우리가 원하는 사회에 대해 토론하고 우리가 원치 않는 사회에 대해 반대하며, 더많은 교육, 의료, 복지, 국가로부터의 보조(benefits), 그리고 더욱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싸우는 것은 시민의 몫(up to)이다.

하지만 너그러운 기업과 자비로운 국가가 시민에게 새로운 정보사회의 한계와 이익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줄 거라는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 오히려 민주화와 진보적인 사회변화를 이루는 것은 개인과 진보세력의 몫이다.

그래서 초국적자본주의라는 위로부터의 지구화에 터해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이용해 싸우고 있는 개인과 진보세력의 아래로부터의 지구화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전세계의 진보세력과 개인은 진보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신기술을 이용하고 있으며, 가상공간의 새로운 공적영역은 거대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미디어 공간보다 문화적이고 지적인 개입이 더욱 용이하다. 치아파스의 멕시칸지역 원주민에서 런던의 부두노동자, 맥도날드와 나이키에 반대하는 전세계적 초국적기업반대 운동에 이르는 사회적인 투쟁은 지배적인 거대기업의 권력에 맞서 신기술을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아메리카인, 게이와 레즈비언과 같은 세력들 그리고 민주적인 대화에서 배제된 다른 이들은 신기술을 이용하여 민주화와 이해를 증진시키려 하고 있다.(켈러 1995와 그 이후)

물론 신기술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 계급, 성, 인종, 그리고 권력의 지역적인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킬수도(exacebrate) 있으며 몇몇 거대기업의 권력의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화와 진보적인 사회변화를 이룩하기 위해 신기술을 활용하기 위한 전략을 구상하는 것은 개인, 우리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신기술이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이전 보다 더욱 중심적인 역할을 할수록, 새로운 공적 영역에서 진보적인 과학기술정치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거대한 전환을 거치고 있지만 아직 변화(adventure)의 도입부에 있어서 구조, 사회적 관계, 문화적 형태와 효과를 쉽사리 결정지울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혁명이 진행되고 있으며, 거대한 영향을 미칠것 이며, 이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정립할 것이며, 신기술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용할 것인가는 중대한 도전이 될-아니면 신기술을 통제하고 있는 그들과 권력이 그들의 전략에서 우리를 이용할 지도 모르는 -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것은 신기술과 그것의 효과에 대해 관점을 정립하고자 하는 사회학자와 진보적인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신기술을 이용한 전략을 구상해야 하는 운동가에게 도전일 뿐 아니라, 신기술과 가상공간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떻게 그것을 배치할 것인지, 그리고 개인이 궁극적으로 권력을 쥘 것인지, 탈권력화 될 것인지, 민주화할 것인지 반민주화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개인에게도 또한 도전이다. 인간이 전망, 목적,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 신기술에 의해 변형되고 지배될 뿐 아니라 신기술을 구상하고 변형시키고 재구조화할 수 있다.
주--------------------------
1) 이글은 더글라스 켈러(교육철학/사회과학/비교교육, 콜롬비아대학 교수)의 http://www.gseis.ucla.edu/courses/ed253a/newDK/theor.htm의 글을 번역한 것이다. 다른 이들의 글도 다수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들러봐도 좋을 듯 하다.
2) Technophobia : 컴퓨터나 기계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경향, 기술혐오주의, Technophilla : 컴퓨터나 기계를 극단적으로 좋아하는 경향, 기술예찬주의
3) 한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정보, 그림, 영상 등을 전자통신기술을 이용하여 보내거나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이는 여러 체제
4) 디제라티는 digital과 지식인이라는 뜻의 literati의 합성어로 컴퓨터 등 디지털 전반에 정통한 사람을 가리킨다. 이 용어는 95년 3월 뉴스위크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탁월한 지적 능력으로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는 선택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웹스터 사전에는 올라있다.
5) 1996년에 출간된 이책에서 그는 인터넷이 사회적인 평가만큼 충분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많은 정보가 있지만 유용한 정보는 찾기 어려우며, 우리세대에서 인터넷을 통해 혜택을 얻기 어려우며, 인터넷을 통해 돈을 번다는 것도 더 많은 투자가 있기까지는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여 현재의 인터넷거품과 환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이책은 우리 미래의 관문으로 여겨지던 인터넷의 한계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6)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자유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계속 변화하므로 그러한 규범적인 표준은 역사적이며 역사의 흐름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의 관점
7)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심도있는 주제를 다루는 정보사회의 새로운 흐8) 사회적 생산기반
9) "「엄마 벨(Ma Bell)」과 「아기 벨(Baby Bell)」의 결합. 미국 전화업계의 모태인 AT&T와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연고를 갖고 있는 지역전화회사 SBC의 합병 추진 소식을 전하면서 미언론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AT&T와 SBC의 합병 추진은 합병 규모나 전화업계의 역사를 되돌아 볼때 상당히 충격적이다.
일단 합병 규모가 5백억 달러 이상으로 미국의 합병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최대 기업합병이었던 지난 89년의 RJR 네이비스코와 콜버그 크라비스의 3백6억 달러, 두번째였던 MCI와 브리티시 텔레콤의 2백20억 달러에 비해 두배나 된다. 또 AT&T는 지난 94년 맥코 셀룰러(1백56억 달러)를, SBC는 지난해 팩텔(1백65억 달러)을 각각 합병한뒤 또다시 서로 합병을 추진함으로써 전화업계의 공룡화가 끝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합병 논의는 공정거래법으로 세포분열됐던 대기업이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다시 합병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미 연방정부는 지난 84년 미국의 장거리 및 지역전화사업을 독점했던 AT&T를 장거리 전화사업만 전담토록 하고 지역 전화사업은 7개「베이비 벨」로 분리했다. 그리고 장거리 전화사업에 MCI, 스프린트 등의 참여를 허용했다. 그로부터 13년후 7개 「베이비 벨」중 SBC와 팩텍은 합병을 거쳐 AT&T와 다시 합병을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AT&T와 SBC이 합쳐지면 장거리 전화사업과 지역 전화사업, 무선 전화사업, 인터넷 통신사업을 망라하는 거대기업이 탄생한다.
통신사업에는 규모와 범위가 중요시되기 때문에 덩치가 큰 기업일수록 경쟁력이 높아진다. 따라서 두 회사의 합병은 다른 전화회사의 합병을 가속화시킬 전망이다. 현재 합병절차를 밟고 있는 NYNEX와 벨 애틀랜틱이 랭킹 3위 장거리 전화회사인 스프린트가 합병할 것이라는 루머가 뉴욕 증권가에 돌고 있다.."[서울경제]1997-05-29
10) "미국 통신업계 제4위인 월드컴이 제2위인 MCI 커뮤니케이션을인수하기 위한 협상이 15일 마무리돼 전세계 2천2백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초대형 통신업체가 탄생하게 됐다. 월드컴과 MCI측은 이날 연방통신위원회(FCC) 의 합병 승인을 얻은 뒤 미통신업계사상 3번째인 3백70억달러 규모의 양 사 합병 계약을 마무리지었다.…전문가들은 새 합병회사인 MCI-월드컴이 전세계 인터넷 통화의 50% 이상을 장악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97년11월 합병안을 발표해 주목을 끈 MCI-월드컴은 이로써 연 매출액 3백억달러에 65개국에서 직원 7만5천명을 거느리는 대회사로 발돋움했으나 여전히 AT & T사에 이어 미통신업계 2위에 머물게 됐다" [매일경제] 1998-09-17
11) 최근 국제적으로 초대형 인수.합병(M&A)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M&A 가운데 최대 규모 10건은 다음과 같다(미국 기업은 지난27일 종가 기준).
1. 금년 4월6일 트래블러스 그룹과 시티코프는 합병에 합의했다고 발표. 양사는 각각 7백66억달러로 평가됐다. 진행중
2. 금년 4월13일 네이션스뱅크와 뱅크아메리카는 6백36억달러짜리 합병 계획을발표. 진행중.
3. 금년 5월11일 SBC 커뮤니케이션스사는 6백7억달러 어치의 주식 매수를 통해 아메리테크사를 인수한다고 발표. 진행중.
4. 7월28일 벨 애틀랜틱과 GTE 합병 발표. 5백29억달러 규모. 진행중
5. 97년 11월10일 월드컴사는 MCI 커뮤니케이션스사 주식 3백70억달러 어치를 매입하기로 합의. 진행중.
6. 금년 5월7일 독일의 자동차회사 다임러 벤츠사는 3백61억달러 상당의 주식매입을 통해 미국 크라이슬러사를 인수한다고 합의. 진행중.
7. 금년 6월1일 아메리칸 홈 프러덕츠사는 3백58억달러에 달하는 주식교환을 통해 몬샌토사를 매입한다고 발표. 진행중.
8. 미쓰비시 은행과 도쿄은행은 3백38억달러 규모의 합병에 합의. 도쿄-미쓰비시 은행은 현재 세계 최대의 은행으로 총자산 7천2백여억달러. 96년 합병 완료.
9. 금년 6월8일 웰스 파고와 노스웨스트사는 합병에 합의. 웰스 파고는 3백20억달러로 평가됐음. 진행중[매일경제] 1998-08-18
12) 주의주의 主意主義 : <의지>를 세계 내에서 일차적인 것, 토대가 되는 것, 규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연과 사회의 발전 및 인간의 행위 전체를 설명하는 관념론 철학의 한 조류에 대한 명칭
13) 『이성의 소멸』에서 그는 '주관적'(또는 도구적)이성과 비판적 이성의 구별을 제안하였다.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과 마찬가지로 현대의 이성과 철학에 대한 비판작업을 수행하였다. 좀더 자세히 켈러는 「Boundaries and Borderlines: Reflections on Jean Baudrillard and Critical Theory」에서 "비판이론에서 경제는 모든 사회적 과정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경제에 대해 분석하지 않고 정치를 분석할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정치와 문화의 역할에 대해 분석하지 않고 경제에 대해 적절하게 분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판이론은 다른 무엇보다 원리(discipline)와 매개(mediation)(또는 연관(interconnection))이론 - 다양한 형식과 차원의 사회적 실제를 사회구조 혹은 "사회"와 연관지어 통합하는 이론 - 사이의 경계에 대한 비판 이론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14) 1991년 6월 27일 아프리카계흑인으로는 최초로 미연방대법원 자리를 차지했고, 시민권의 옹호자로 유명했던 서굳 마샬(Thurgood Marshall)이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판사직에서 은퇴를 발표한후 조지부시 대통령은 그의 후임자로 아프리카계흑인이며 연방상소법원(federal appeals court) 판사인 보수적인 입장의 클라렌스 토마스를 지명했다. 그의 지명은 초기부터 많은 아프리카계흑인과 시민권 옹호단체, 여성세력, 또한 법전문가들로부터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다. 9월 상원에서 열린 인준청문회(confirmation hearing)에서 그의 인준은 오클라호마대학법률교수인 아니타 힐이 토마스클라렌스가 그녀를 성추행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하자 예기치 않던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녀는 그가  1982-1990 미국 고용평등위원회의 의장으로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 mission) 있던 몇 년간 같이 일을 했었다. 그녀는 토마스의 데이트 제의를 거절한 이후 부적절한 성적 행동과 포르노그래프 영화에 관한 논쟁으로 그녀를 성추행했다고 기소했다. 언론은 즉시 그녀의 진술(allegation)과 토마스의 부인(denial)을 열광적으로 다루었다. 코마스가 상원재판부(Senate Judiciary Committee)에서 그녀의 주장에 증언했을 때 그는 청문회를 "주제넘은 흑인에 대한 첨단과학기술의 일격(lynching)"이라고 불렀다. 결국 상원은 52대 48로 대법원 배석판사로 그를 인준했다.
15) 이런 것에는 grrlzines, bust, darling, disgruntled housewife, geekgirl 등 다양하게 인터넷상에 있다. riotgrrls란 말의 의미는 가부장제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성적역할에 대한 거부하고 성적역할을 변환하고 여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찾아가려는 시도라는 의미이다. 보통 인터넷을 백인 및 중간계급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는데 반해 여성과 여성의 전유물로 채워지고 있는 사이버공간에서의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riotgrrrls는 페미니트스 여성 네트워크로서 70년대 맑시스트-페미니스트들의 영향을 받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저열하고 나쁜것으로 생각되던 여성 대중문화를 높이평가한다. 그들은 대중적인 여성지향의 미디어 즉, 여성의 웹진을 발전시켰으며, 페미니스트의 내용을 대중화하기 위해 재미와 오락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그들 독특한 운동의 방식을 개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를 통해 그들은 미와 육체의 이미지에 대해 새로운 전복적인 개념을 만들고자 한다. 「pin-ups and grrls」, Martina Ladendorf 중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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