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3호 신자유주의에 맞설 '교육연대'

2001.02.08 16:00

송원재 조회 수:1279 추천:1

신자유주의에 맞설 '교육 연대'

신자유주의에 맞설 '교육 연대'

송원재(전교조 선전국장)

교육의 지각 변동이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가? '교실 붕괴'라는 정체 불명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더니 이젠 '교육 붕괴'라는 '막 가는' 낱말까지 가랑잎처럼 을씨년스레 굴러다니고 있다. 텔레비전 심층보도 화면에 나온 천방지축 날뛰는 아이들과 무기력한 교사의 모습엔 정말이지 한숨이 다 나온다.

텔레비전에 나온 그 학교보다는 우리 반 아이들이 그래도 좀 나아 보인다는 사실에서 그나마 작디 작은 위로를 구해야 할까? 몇 날은 어찌어찌 꾸려 나갈 터이지만 머지 않아 나에게도 닥쳐 올 지 모를 '그 날'에 대비해서 뭔가 달리 살아 갈 방도를 마련해 둬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교실이 무너진다는데도 정작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교사들은 자욱한 혼란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 모른다. "요즘 들어 아이들이 유별나게 말을 안 듣는 건 사실이야." "교실 붕괴라는 게 아마 이런 건가 보다." 생각해 보지만, 막상 '교실 붕괴'가 뭘 말하는지는 딱히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게 선생들이 잘 못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달리 생각하면 사회가 다 엉망인데 학교와 선생만 찍어놓고 닦달하는 것 같아 은근히 억울하기도 하다. 짙은 안개 속 도깨비 불처럼 실체도 명확하지 않은 터에 하물며 해결책이라는 게 시원하게 나올 리가 만무하다.

대관절 '붕괴하는 교실'의 실체는 무엇일까? 사실보다 증폭된 게 분명한 이 위기감의 근원은 과연 어디일까? 학교 교육을 바로 세울 방도는 정말 없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시원하게 답하기 어려운 요즘, 선생 노릇 제대로 한다는 건 너무 까마득한 일이다.

'체벌교사 112 신고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갑자기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교육위기' 논란은 예전의 '촌지논란'이나 '정년단축 논란'과는 여러  면에서 좀 다르게 느껴진다. 우선 예전의 논란이 지엽적인 문제에 머물렀던 데 견주어, '교육위기 논란'은 <교육문제 전반>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그보다는 훨씬 근본적이고 오래 남는 논쟁이 될 것이다. 또 기존의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교육풍토에 대해 일정하게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건설적인 구석도 얼마간 있다. 잘못된 옛 관행을 바꿔보자는데 누가 감히 반기를 들겠는가? 수업과 잡무에 시달린 나머지 어쩌다 한 번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낸 적 있는 선생이나, 먹고사느라 오밤중에 퇴근해서 쓰러져 자기 바쁜 부모들 가운데, 다소의 죄책감에서 깨끗이 홀가분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분 있수?

허나, <불특정 다수의 막연한 죄의식>에서 출발하는 논쟁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 모두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이거나, 집단적 최면을 이용해서 합리적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얼렁뚱땅 딴짓을 벌이려는 속셈이다.

교실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 교실에 문제가 있고, 한국의 교육이 위기에 빠졌다면 코리아의 학교와 나라 전체에 분명 원인과 까닭이 있다. 한국의 교실과 학교가 삼풍백화점도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위기가 튀어나와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지금의 교육이 그토록 큰 위기에 맞닥뜨려 있다면, 적어도 그 '위기의 크기만한' 모순의 축적과정과 미필적 고의(未畢的 故意) 혹은 부작위(不作爲)의 누적과정이 반드시 깔려 있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이 위기에 빠져 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원인과 잘잘못을 밝혀내는 일이고, 다음으로 할 일은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하여 사회적 공감대를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교육 위기 논란'의 어디에서도 가장 책임 있는 주체인 정부 당국의 진솔한 자기 반성은 찾아보기 어렵다.(....아무리 귀 씻고 들어봐도 '미안해!'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수 십 년간 학교의 숨통을 틀어막고 획일화시켜 온 관료주의 행정의 폐해에 대해 반성하는 대신, 교사의 자발성·창의성이 부족해서 아이들이 싫어한다며 '말단 졸병들'에게 잽싸게(!) 손가락을 돌린다. 남의 나라에서 알 세라 부끄러운 인색한 교육투자를 늘리는 대신 '수요자 부담'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호주머니를 다시 털어 갈 궁리나 하고 있다. 이건 개그 콘테스트도 아니고, 불 나게 주입해도 빡빡한 교과 내용에 한 반에 50명이 넘는 아이들을 새까맣게 앉혀 놓고 토론식 수업과 수행평가를 강요하는 저 후안무치의 행태를 어찌 받아줘야 할까?

지금 우리 교육이 위기에 놓여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의 교육 위기는 지난 수 십 년에 걸친 축적과정의 현재적 표현이다. 그렇다면 교육위기 역시 갑자기 색다른 메뉴를 들고 나와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온 모순을 정직하게 털어놓고 지금부터라도 바른 해결에 나설 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내놓은 '교육개혁' 방안은 교육위기 극복과는 도무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 '시장경제' 원리를 빙자한 '자유경쟁체제 도입'은 '수요자 부담'을 내세워 국가의 교육 투자 책임을 국민대중에게 떠넘기는 '직무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지배집단의 교육적 권리를 살찌우고 민중의 교육권을 원천적으로 따돌리려는 것으로, 그들이 떠벌이는 '자유의 확대'보다는 '불평등의 확대'를 불러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근대 공교육의 역사가 '무차별적 시장원리'와의 끈덕진 싸움과정이었음을 떠올릴 때, 이것은 궁극적으로 공교육 자체를 부정하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 '효율성 제고'를 앞세운 교육부문 '노동시장의 유연화' 정책은 '작은 학교 죽이기'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소규모 집단의 교육 기본권을 부정하거나, 교원의 정년 단축이나 정원 축소에서 보이듯이 교원의 신분을 위협하여 학교의 안정을 뿌리째 흔들게 된다. 기간제 교사의 도입을 뼈대로 하는 '교직발전 종합대책안'이나 학생의 교과선택제 도입을 특징으로 하는 '제7차 교육과정'을 볼 때, 그런 우려가 이미 코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 밑바닥에는 신자유주의 망령(亡靈)이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다. 결국 그들은 '교육개혁'을 내세워 교육의 정의를 파괴하고 있으며, 공교육의 기둥인 '교육재정의 국가부담', '교육의 국민 통제', '교원의 신분안정'이라는 역사적 합의에 대해 명백히 파기 선언을 하고 있다. 그들의 술수가 더 이상 '교육 개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되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 진정 요구되는 것은 '교육'의 개혁이 아니라 자신의 '개혁안'을 개혁하는 일이다.

신자유주의의 교육 파괴는 교사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교육권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점에서, 이에 맞서는 싸움은 모든 교육주체들의 넓고 아주 굳센 '연대'를 필요로 한다. 신자유주의의 선전포고 앞에서 국민 대중, 또는 학생과 교사는 더 이상 대립된 존재가 아니다. 정년 단축 논쟁에서 드러났듯이 곁가지 끄트머리 이해 관계에 발목 잡혀 미주알 고주알 진 빠지는 말다툼만 되풀이하다가는 정작 국민의 교육권 자체가 '실종'되어 버릴 수도 있다.

얼마 전, 미국에서 WTO 각료회의인가 뭔가 하는 사또님들 거창한 행사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잔뜩 포위하여 혼내준 적 있었지. "저희들 멋대로는 안 돼!" 오늘, 우리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차게 맞서 교육의 공공성을 지켜 내고 정의(正義)를 실현할 <교육 주체들의 연대>를 다시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