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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공동체 위기와 학교붕괴(1)

2001.02.08 15:14

천보선 조회 수:1509 추천:2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 ( 1 )

공동체의 위기와 학교붕괴 ( 1 )

천 보 선 (연구실장. 책임연구원)

 소위 '학교붕괴'로 불리우는 공교육의 위기적 상황은 이제 한국교육의 최대 현안이 되고 있다. 이를 주제로 한 각종의 토론회가 개최되고 있고 신문지상과 방송을 통해서는 저널리즘적 선정성이 더해지면서 내일이라도 당장 공교육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언론을 통한 여론화 과정에서 일정한 과장과 과도한 일반화가 있기는 하지만 학교붕괴로 지칭되는 현상이 현재 한국 공교육의 중심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고 향후 최대의 교육적 난제가 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앞으로 상당 기간 학교붕괴 문제는 교육적 논의의 중심 주제가 될 것이며 이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대응 방향의 마련 여부가 향후 한국 공교육의 향방을 판가름나게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이 문제는 진보 진영에 있어서도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정립해나가는데 중요한 고리가 되는 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교육연구소에서는 앞으로 이 문제를 집중적 논의 대상의 하나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지금 현재 전개되고 있는 논의의 흐름과 관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내용을 다루었다.

1. 자유주의적, 시장적 관점을 경계한다.

1) 학교붕괴를 바라보는 두 가지 흐름 현재 학교붕괴 현상에 대한 논의는 매우 다기한 측면과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경향으로 구분된다고 보여진다. 하나는 학교붕괴의 기본적인 책임과 원인이 학교체제와 교사에 있으며 그 해결에도 명백한 한계를 지니므로 학교 이외의 새로운 대안을 찾거나 경쟁과 수요자 선택권이 보장되는 체제로 완전히 변화해야 한다는 경향이다. '공교육의 축소' 또는 '시장적 재구조화'를 주장하는 것이다.1)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학교붕괴의 요인이 주되게는 교육개혁의 오류와 반공동체적인 문화 요소의 등장에 있는 것으로 보면서 학교붕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공교육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경향이다. '공교육 강화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반드시 명료하게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유주의적, 시장적 관점2)에서는 전자의 입장에 서며, 민중적, 진보적 관점에서는 후자의 입장을 견지한다고 할 수 있다.

 학교붕괴에 대한 논의는 향후 한국교육의 방향과 관련하여 관건적인 의의를 지닌다. 사안 자체가 중대할 뿐 아니라 논의 자체가 '공교육의 강화냐 아니냐' 여부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과 진보진영의 입장에서는 최근 수년간 신자유주의에 의해 위협받아 온 교육의 공공성을 다시금 재강화할 수 있는 역전의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학교붕괴는 많은 국민과 교사대중이 엄청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폭발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학교붕괴를 두고 이루어지는 논의과정에서 조차 신자유주의의 시장적 관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학교붕괴는 그야말로 공교육의 기본 원리가 무너져나가는 결정적 과정이 될 것이다.

 학교붕괴 논의가 갖는 이 같은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우선 아직까지 논의 과정이 지나치게 방만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면서 실천적 대응의 집중점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학교붕괴라는 개념도 정리되고 있지 못하며 그 속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교육운동 진영에서조차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에 짓눌려 교육 공공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적 견해들이 제출되면서 커다란 관점 상의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분명한 개념 설정 및 관점의 공유가 시급하다.

 이 장에서는 그 동안의 논의에서 나타났던, 정당한 사실 인식을 가로막는 몇 가지 진단과 그러한 주장들 속에 내포되어 있는 자유주의적, 시장적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권위주의적 통제와 획일적 교육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

 조심스럽지 못한 진단 중의 하나가 권위주의적 통제, 획일성, 주입식 교육 등 기존 한국교육의 파시즘적 성격에 학교붕괴의 기본 요인을 두는 주장이다. 한국교육의 가장 큰 문제가 획일적 통제와 주입식 교육이고 더 이상 그러한 획일성과 통제에 학생들의 저항에 의해 학교붕괴 현상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여전히 그러한 문제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또한 그러한 점들이 교육관계의 위기를 불러오는 일정한 조건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육의 파시즘적 성격을 학교붕괴의 주된 요인으로 보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과정이 구분되는 모든 책임을 어떤 특정한 문제점에 몰아버리는 '책임 전가'의 성격이 짙다. 여기에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요인을 파악하려 하지 않는 게으름, 현상 자체에 대한 무지 혹은 공교육 자체를 억압적, 획일적 체제로 파악하려는 시장적 관점이 투항이 숨어 있다.

 우선 이 주장은 현상 자체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오히려 학교붕괴는 학생에 대한 통제력과 수업 상황에서의 통일성의 확보가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수년간 통제와 획일성의 정도는 일정하게나마 감소되어 왔으며(특히 교사와 아이들이 직접 대면하는 수업장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학교붕괴 현상은 점증되어 왔다. 또한 그러한 과정은 획일성과 억압성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교육개혁 등의 제도적 변화와 교육 부문 역관계의 변화 등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이 주장은 결코 현실타당한 설명이 될 수 없다.3) 덧붙여 파시즘적 억압성과 획일성의 문제가 중심 문제로 되지 않는 나라들에서도 나타나는 세계적 문제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주장에 대한 비판이 결코 통제와 획일성의 강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문제는 학교붕괴라는 상황이 '잘못된' 질서의 차원이 아닌 '교육질서'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며 '통제의 약화가 학급붕괴를 불러왔다'는 보수적 견해보다도 못한 설명력을 가지고서는 제대로의 대응방향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주장은 조금만 진전되면 한국교육의 파시즘적 성격이 아니라 학교교육의 집단성과 조직성 그 자체, 공교육의 공공적 원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로 나아가기도 한다. '학교는 지루하고 따분하며, 아이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활동을 억압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거부나 회피,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식이 그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에서는 한국교육의 특수성으로서의 파시즘적 억압성과 획일성이 아니라 학교 자체가 문제시된다. 학교붕괴가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을 전제한다면 이들이 문제 삼는 지점이 실제로는 한국적 특수성이 아닌 '보편적' 학교체제임이 분명해진다.

 이들의 추상적이고 자유분방한 견해로는 '학교는 완전히 재미있고, 자유로운 곳'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는 붕괴되어 마땅하다는 것이다. 물론, 가능한 한 학교는 재미있고, 자유로운 곳이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공교육의 전제 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공교육은 어떠한 형태로든 사회적 수준의 교육과정, 집단적 교육관계, 교육과정에서의 교사의 주도권과 일정한 통제력을 필수로 한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아이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것만으로 구성될 수는 없으며, 일정 시간 동안 일정 공간에 있어야만 하며, 교육과정의 진행을 위한 기본적인 요구와 통제를 필요로 한다. 일정하게는 재미없거나 스스로 충분히 의의를 못 느끼는 것도 해야 할 때가 있으며 하고 싶은 것도 참을 수 있는 때도 필요하다. 또한 교육과정의 진행을 위해 교사에게는 교육적 권위를 부여해야만 하며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받는다면 더욱 좋다. 재미와 자유에 대한 최소한의 제한은 이처럼 공교육, 아니 교육 자체에서는 불가피하다. 나아가 모든 조직과 사회적 실천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부가되는 통제와 지루함이 인간적, 교육적으로 배려, 설정되는 수준과 방식이 어떠한가의 문제이며 우리는 그러한 기준 속에서 학교교육의 파시즘적 성격을 논해야 한다. 학교교육이라는 사회적, 집단적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정한 통제와 다양성과 흥미의 한계까지 문제 삼는다면 그것은 교육의 사회적 조직화와 공공성의 원리, 나아가 공동체의 규범까지도 부정하는 것이 된다.

3) 교사집단의 무능과 무지, 게으름 때문 ?

 아이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단절감을 느끼며 수업을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교사집단의 무능과 무지, 게으름 때문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그 때문에 교육과정의 파행화라는 학급붕괴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매번 교실에 들어가서 똑같은 말을 토씨도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하는가 하면, 몇 년을  써먹어 너덜해진 공책을 똑같이 베껴 판서한다. 교무실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정부에서 지급한 컴퓨터로 프리셀과 고도리를 치며, 표정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에 나태함이 잔뜩 배여있다.'4)

 '날마다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교사들이 학교붕괴 현상을 미리 감지하여 예방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분명히 교사의 무감각과 무능에 그 원인이 있고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것이다.'5)

 '교사가 너무 형편 없이 가르치고 있다.'6)

 아이들이 대체로 수업을 재미없어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런 지리한 수업에 권위 부정, 단절감 등이 더해져 '파행'을 불러오는 조건이 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일상적 조건과 파행의 원인, 계기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학교수업(뿐만 아니라 사교육조차도)이 다수의 아이들에게 대체로 재미있었던 적은 예전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예전보다 교사의 지적 수준이 떨어지고 게을러졌다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교사들의 전반적 수준과 노력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진전되어 왔다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교육과정의 파행이 나타나는 것에는 다른 요인과 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는 잘못된 사실 파악과 전제, 책임 전가들이 숨어 있다.7) 우선, 학교붕괴는 형편없는 수업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붕괴는 대체로 수업의 질 이전에 학습에 대한 의지나 욕구 자체의 저하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시 말해 학교붕괴는 자발적 학습의지나 욕구에 비해 교사의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형편없기 때문에 수업을 거부, 회피하고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들로 구성되는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 수업 자체가 싫고 그것을 강제하는 상황을 참아내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나마 대체로 일정한 자발성을 기초로 하는 사설학원 등의 사교육에서도 교육실천의 소외 현상이 심화8)되고 있음은 학교붕괴 현상의 핵심 지점이 '교육관계의 형성'이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둘째, 교사집단을 파악함에 있어 과도한 왜곡과 책임 부여가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다. 교사집단의 실상을 파악할 때는 극단적인 사례나 상황을 일반화하여 무능하고 나태한 집단으로 몰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많고 다양한 아이들을, 심지어 학습의욕이 전혀 없는 아이들까지 포괄하여 재미있는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과 충분한 의사소통을 이루어야 하는 전지전능한 능력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집단은 이 주장에서 매도하는 것처럼 무능, 나태하지도 않으며 또 요구하는 것만큼 다수의 교사가 '슈퍼, 엘리트, 탤런트'할 수도 없다. 학교붕괴 현상은 학교교육이라는 사회적 교육과정을 수행할만한 능력과 요건, 의사를 갖추고 있고, 좀 더 좋은 교육실천을 행하고픈 다수의 교사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위기'적 상황인 것이다.

4) 대량 생산 체제인 학교 자체의 문제이다?

 "산업화 단계에 형성된 학교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경제 성장이 어는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면서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삶의 분화가 심해지고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존의 학교체제에 위기가 오게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가 확산되고 또래 집단 문화가 형성되면서, 또한 소비가 중심이 되는 후기 근대적 상황으로 가면서 아이들은 더 이상 획일적인 대량생산체제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학교를 참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시대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학교체제를 감당할 수 없으며, 감당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9)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현재의 산업사회적 학교모델이 '정보화'로 대변되는 후기산업사회에서 제대로 유효하지 못하다는데 있다.'10)

 학급붕괴는 한국교육의 파시즘적 성격이나 교사의 무능, 나태의 차원을 넘어서서 변화된 사회문화적 조건과 대립되는 공교육체제 자체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견해도 등장한다. 앞서의 주장들 보다는 사회구조적 인식이 좀 더 심화된 논의이다. 교육운동 내에서는 주로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던 견해들 - 학교의 억압성과 획일성, 교사의 무능과 나태 등을 주요 요인으로 보는 견해들 - 도 궁극적인 논리적 귀결은 이 주장과 연결된다. 왜냐하면 그 같은 견해들이 실제로 부정하는 것은 파시즘적 억압성과 획일성만이 아니라 공교육의 집단적 교육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일정한 권위와 통제 자체이고, 또한 모든 혹은 다수의 교사가 세대차를 충분히 극복하고 그 다양한 아이들과 항상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학교 자체의 한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 자체의 한계에 기본 요인을 두는 경우 그것은 곧 학교의 해체나 공공적 원리의 포기를 주장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실제로 이들은 직접적으로 '학교외의 대안을 마련하거나 완전히 재구조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로는 산업사회적 모델이 아닌 정보사회에 맞는 모델을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곧 시장화된 교육을 의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 학교붕괴와 공교육 자체, 나아가 사회변화를 바라보는 관점 상의 대립 지점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학교교육이 담보해야 할 민중의 교육권과 교육의 공공성을 순식간에 포기하고 있으며 또한 학교체제와 대립되는 무한 경쟁, 개인주의와 소비 만능의 잘못된 시대적 성격과 문화적 흐름마저도 그대로 인정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와 거의 완전히 동일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신자유주의에서는 기존 학교체제를 획일적이고 경직된 것으로 부정하면서 정보사회에 걸맞는 체제로서 '시장화된 교육' 내지는 '학교의 해체'를 주장해 온 바 있다.

 입장과 관점만의 문제뿐 아니라 학교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견해에는 몇 가지 잘못된 판단들이 전제되어 있다. 우선은 공교육의 성격을 획일성과 경직성 그 자체로 그야말로 '경직되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상황을 파악함에 있어서도 학교체제와 대립하는 요소들을 다른 측면이나 요소들과 구별하지 않은 채 막연한 전체로서 파악하면서 '필연적인 것', '주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  

 첫째, 공교육 자체를 획일적인 대량생산체제로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동일한 방향의 사회적 관념과 일상에 대한 태도까지 지배하고자 했던 파시즘교육을 획일적이라고 하는 것은 모르겠으나 공교육이라는 사회적 수준의 교육과정 자체를 산업사회적 모델로 치부하면서 획일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과도한 매도이다. 학교교육은 공공적 교육실천이라는 일반성 하에서 학교나 학급의 수만큼이나, 교사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전개된다. 사회적 수준의 교육과정 역시 국가 수준, 지방 및 지역 수준, 급별 수준, 학교별 수준에서 다양화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공교육에 다양함이 불충분하다고 해서 공교육 자체가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에게는 집단적 교육과정 자체가 획일적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경제적, 사회적 다양성만큼 학교가 다양화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학교교육(초중등)의 기본 임무가 사회적 인간 형성과 교양 형성에 주안점이 두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시대와 문화적 흐름에 대한 이해 역시 단선적이다. 현대사회의 특징을 개별화와 다양화, 세분화로만 파악함으로써 학교의 공공성과 시대 및 문화 전반을 대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분화, 다양화, 개별화되면서도 사회적 연관은 심화, 확대되며 공유의 필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우리는 현대사회의 주된 흐름을 이러한 양 측면의 결합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오히려 사회가 갈수록 개별화, 세분화되는 만큼 학교교육과 같은 사회적 조직화와 학교를 통한 '공동체적 인간형성'의 의의와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셋째, 공교육과 대립되는 새로운 사회문화적 요소와 지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변화하는 사회와 아이들의 모든 것이 학교체제와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체제와 대립하는 사회문화적 요소는 오히려 부분적일 수 있다. 단지 사회와 아이들의 변화에 교육이 따라야만 한다는 주장은 어떤 요소들이 학교체제와 어떻게 대립되는지, 결합의 문제인지 아니면 극복과 해소의 문제인지에 대한 판단없이 학교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무책임한 태도이다. 또한 그것은 공교육 위기의 일정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욕망 중심의 개인주의적 소비문화가 지닌 반공동체성과 반인간성에 대한 투항이기도 하다. 이 같은 투항에는 그것이 대세이고 필연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정글사회가 현실적 대세라고 해서 우리는 살벌한 구조조정과 대량실업, 비인간적 물질주의와 경쟁, 모든 인간적 가치의 상품화 등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아니다. 그것은 극복의 문제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가 현대사회 자체가 아니라 단지 현재 헤게모니를 지닌, 반드시 극복해야할 특정 조류인 것처럼 공교육과 대립하는 지점 역시 현대사회 자체가 아닌 특정한 사회문화적 조류에 불과하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나중에 다루겠지만 학교체제 자체와 대립하고 있는 것은 사회와 아이들 전체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한 쪽 측면인 분화와 개별화만이 특화되고 물신화된 반공동체적 문화적 경향에 불과하다. 그 외의 많은 변화의 요소들은 학교 자체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결합과 수용의 문제인 것이다.

5) 아이들이 문제다 ?

 보수적이거나 경험적인 차원에서는 이 지점에 착목하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 견해는 앞의 주장들과는 경향을 완전히 달리한다. 그러나 학교붕괴 현상을 야기하는 직접적 행위의 주체들이 아이들인 것은 현상적으로 맞지만 아이들에게 책임 소재로 돌리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정당하지 않다. 우선, 사회적 차원에서 아이들은 주로 영향력을 능동적으로 행사하기보다는 사회적 제 요소나 힘에 의해 영향을 받는 주체이다. 아이들에게 요인을 찾는 것은 문제의 근원을 덮어 버리거나 애매하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아이들에게서 문제의 근원을 찾는 것은 '아이들도 문제있고, 어른들도 문제있고, 사회와 학교도 다 문제있다'는 식의, 사실은 아무런 문제 지적도 못하는 선문답에 불과하다. 요인 지적은 아이들에게 문제를 야기하게 하는 사회적 요소와 힘을 찾아내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 다수의 아이들을 문제 삼는 것은 사실 지적에 있어서도 부당하다. 다수의 아이들이 다 문제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이들을 나누어 놓고 보면 여전히 아이들은 대체로 착하고, 순진하다. 문제는 그럼에도 집단적 교육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못하게 하는 제 요소들인 것이며, 여전히 소수이지만 일탈이 늘고 있고, 일탈의 수위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현상적 차원에서 아이들에게 요인을 찾는 것은 자칫하면 아이들의 자율성 자체를 봉쇄하고자 하는 파시즘적 처방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문제의 근원을 찾지 못한 채 손 놓고 바라보게 되는 '무대책'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2. 학교붕괴를 어떻게 볼것인가 ?

 학교붕괴에 대한 논의가 이처럼 방만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고 공교육의 공공성마저 부정하는 견해들이 나타나는 것에는 학교붕괴라는 현상이 지니고 있는 사안의 '범위'와 '성격'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저마다 다른 지점에 주목하게 되는 탓도 크다. 특히 학교붕괴라는 새로운 현상에 기존의 모든 교육 문제들까지 싸잡아 집어 넣고 사안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시키는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학교붕괴'라는 말 자체도11) 이러한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학교붕괴 현상을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총체적 문제점과 동일시해버리고 만다. 논의의 방만함은 문제의 지점을 애매하게 하면서 '학교교육 정말 문제있다'라는 기존의 인식을 양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으로 귀결된다. 결국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엉뚱한 곳에 책임을 돌리거나 학교 자체를 부정하게끔 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이후의 논의를 위해서는 사안의 범위와 성격을 먼저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학교붕괴는 집단적 교육과정의 파행 현상이다.

 우선, 사안을 분명히 해야한다. 학교붕괴라는 이름하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현상은 이러저러한 요인(학교붕괴 현상은 매우 복합적인 요인에 의한다.)속에서 나타나는 아이들의 학교나 수업의 거부, 회피, 통제에 대한 불응이나 저항 등에 의해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업과 과제에 대한 태업, 지도 불응과 공공연한 저항, 일상적 미등교나 불출석의 증가 등이 학교붕괴의 대표적 현상들로 거론되며 그로 인한 수업과 학생지도의 불능 상태로 요약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직접적으로는 학교에서의 집단적 교육과정을 지도하려는 교사의 통제권을 일부 또는 다수의 학생들이 무시, 회피, 거부 또는 저항하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붕괴 현상은 '학생들에 의해 교사의 지도력이나 통제권이 거부, 회피당함으로써 나타나는 교육과정의 파행 현상12)'으로 규정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결국 학교붕괴는 그 동안 학교를 매개로 형성된 기존의 교사-학생간의 교육관계가 새로운 차원의 위기를 맞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학교붕괴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이다.  

 이전부터도 수업과 생활지도 상의 어려움은 항상적으로 있어왔던 것이지만 예전에는 교육과정의 파행을 몰고 올 정도의 사례가 매우 예외적이고 개별적인 것이었던 반면 최근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파행은 '붕괴'로 불리울만큼 극단화, 일상화, 집합화13)되는 것으로서 그 수준과 양상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는 분명 현재 학교교육이 맞이하고 있는 새로운 차원의 문제이다. 따라서 학교붕괴는 학교교육이 안고 있는 기존 모순의 축적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이러한 현상의 급격한 확산을 가져오고 있는 새로운 계기와 조건을 규명해야 한다.

 3) 학교붕괴는 세계적 추세의 문제이다.

 학교붕괴는 비단 한국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 등의 선진자본국의 공립학교에서는 이와 유사한 현상들이 일상화되어 왔으며 90년대 초반 이후 일본에서는 초등교육이 파행화되는 등 현재 한국에서의 현상보다 훨씬 심각한 양상들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14) 따라서 이를 한국사회의 특수적 요인들로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현대자본주의사회의 전반적 양상 변화 속에서 바라볼 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4) 학교붕괴는 문화 충돌의 양상을 띠고 있는 문화적 현상이다.

 학교붕괴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이다.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문화적 현상일 뿐아니라 주로 문화적 요인들에 기초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학교붕괴는 주로 이질적인 문화적 행위들이 부딪치는 문화충돌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육과 학교에 대한 다른 관념과 정서, 교사에 대한 다른 태도, 일상에 대한 욕구와 생활방식의 차이, 친구와 공동체에 대해 관계맺는 방식의 차이 등에 의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충돌을 가져오는 새로운 요소나 경향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부딪치고 있는지를 파악할 때, 학급붕괴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대응방향을 마련할 수 있다.

5) 학교붕괴는 사회공동체의 전반적 위기의 한 단면이다.

 학교붕괴는 독자적인 사회 현상이 아니라 가정의 위기, 공동체문화의 위기, 물질주의와 무한 경쟁의 정글사회, 사회 계급계층의 양극화와 단절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공동체의 전반적 위기의 대표적인 한 단면이다. 그같은 맥락에서 학교붕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학교붕괴를 교육내적 조건과 요인들에 의해서만 파악하려 할 경우 근원적 실상과 심각성을 오판하고 비실제적이고 상황추수적인 대중요법에 머물 위험이 있다.

 결론적으로 학교붕괴는 현대자본주의의 극단화된 개인주의, 물질주의, 가치 부재, 상품화 경향에 의해 형성된 새로운 흐름의 사회문화적 요소가 학교라는 공적 교육체제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3. 학교붕괴 현상의 위상과 성격

1) 학교 붕괴 현상의 핵심 지점은 교육관계의 와해 위기이다.

 학교 붕괴의 핵심 지점은 교사-학생 간에 형성되는 집단적 교육 관계의 위기에 있다. 학교붕괴와 관련된 교육관계의 위기는 공교육의 위상 자체에 대한 것, 교사에 대한 것, 교육과정에 대한 것 등의 여러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현상적으로는 교사의 학생집단에 대한 지도력 및 통제력의 약화 내지 상실로 모아진다.

 이러한 교사-학생 간 교육관계의 위기, 학생집단에 대한 규정력의 약화는 공교육 자체의 위기라는 의미를 지닌다. 공교육은 사회적 수준의 교육과정, 미성년 아동이나 청소년을 대상, 사회적 권리이자 의무로 부여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특성은 필연적으로 교육활동에 대한 교사의 주도권을 매개로 하게 한다. 따라서 교사의 규정력 약화는 모든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수준의 교육과정 실현이라는 정상적인 공교육 과정의 위기를 불러온다. 이 문제는 현재 공교육의 방향과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 라는 문제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실현 가능성 자체의 위기인 것이다.

  공교육의 위기는 민중교육권의 위기이기도 하다. 학교붕괴 현상으로 인한 학교교육 파행은 교육의 질 하락, 실질적 교육기회의 축소로 연결되며 그 피해는 결국 사교육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없는 민중에 훨씬 더 직접적이다.

 나아가 학교붕괴 현상에 대한 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대응은 민중교육권을 결정적으로 위협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변화된 사회문화적, 경제적 조건에 맞게 학교교육을 경쟁화, 수요자중심화하고 학교의 중심적 지위 대신에 여러 가지 다양한 민간 교육구조를 창출하자는 이들의 주장은 학교 위기를 빌미로 교육의 공공적 원리 자체를 포기하자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교육이 이미 이전부터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공교육의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자유주의적, 시장주의적 대응은 교육체제를 분화시켜 학교 위기를 민중이 주로 다니는 공교육에 몰아넣는 것에 불과하다. 파탄 지경에 이른 미국공교육의 다른 저편에는 엄격한 규율과 권위가 살아있는 엘리트 사립학교들이 있다.

2) 교육관계 위기의 제 측면과 요소들

 교사-학생 간 교육관계의 위기, 학생집단에 대한 규정력의 약화는 여러 가지 직, 간접적 그리고 미시적, 구조적 요소와 요인들이 얽혀 있다. 매우 중층적이다. 특히, 직접적으로는 교사의 권위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교사'에 대한 것만으로, 권위에 대한 '부정'만으로 볼 수도 없다.

① 학교, 교사에 대한 관념의 대립

 우선 학교의 의미나 교사에 대한 관념의 차이가 나타난다. 학교는 교과와 인격, 가치관 지도가 함께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기존의 관념과 인성교육은커녕 교과 지도 마저 한계지워지는 곳이라는 관념이 대립된다. 예전에는 학교가 사회적 진출의 핵심적, 필수적 경로였지만 지금은 졸업장과 내신 만이 유의미하다고 본다. 나아가 학교의 의미와 역할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로든 학력주의는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으며 또한 대부분 학교의 의미 자체는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학교에 대한 관념의 변화는 간접적인 조건이 되지만 교육과정 파행의 직접적이고 주요한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고 판단된다.

 수업에 대해서는 학교 자체의 의미보다 보다 직접적인 부정적 관념과 태도가 늘고 있다. 교과내용의 삶에 대한 의의는 별로 인식되지 않는다. 나아가 학습력 향상에도 효과적이라고 보지 않으며 재미도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다만 내신과의 관련성 하에서만 그 의미가 인정된다.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관념은 학력과 수업, 학습과정을 분리시키는 데로 나아간다. 적지 않은 경우 학교는 다녀야 하지만 수업은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거기에는 학습수준과 학력 및 학령이 연계되지 않는 교육과정, 사교육의 비대화, 교과내용의 비적합성 등의 제도적 문제와 함께 학교 및 수업의 의미에 대한 평가절하와 수업파행의 악순환 등의 주관적 과정도 조건으로 작용한다.

 교사에 대해서도 교과지도 및 생활지도의 책임과 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관념과 그러한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권위의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대립한다. 학교붕괴 현상의 가장 직접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권위의 부정 정도는 매우 다양하고 중층적으로 나타난다. 예전만큼의 절대적 권위는 부여되지 않지만 실제로 다수의 학생이 교육과정에서의 통제를 부정할 정도로 권위를 부정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아직까지 통제에 대한 직접적 부정이나 거부는 일부 학생들의 일부 국면이다. 다만 예전보다 부정의 강도가 세지고 많아지고 있고 아이들 사이에서 순화, 제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큰 문제는 권위 하락 그 자체보다는 개별화되는 권위 부여의 방식에 있기도 하다. 어쨌든 권위를 지닌 영역과 수준은 적지 않게 이완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통제 불능이라기 보다는 약화의 상태가 전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의 권위 약화는 매우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한다. 거기에는 학교에 대한 관념의 변화, 사교육의 비중 증가, 교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격, 통제권의 박탈 내지 제한, 아이들의 권리 의식 증대, 교과 내용의 비적합성, 개별화 교육과정의 성급한 확대의 오류(열린교육으로 대표되는), 학교붕괴 현상 그 자체 등 많은 요소들이 개입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조직에서 부여되는 권위 일반을 부정하는 일부 극단화된 개인주의적 경향, 공동체적 가치의 아노미 상황, 물질 만능과 상품화의 만연 등의 사회문화적 영향도  요소이다. 이점에서는 가정에서의 가장의 권위 하락 등 기성의 사회적 권위의 붕괴 현상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② 의사소통의 단절

  교사-학생 간 의사소통의 단절, 학생간 의사소통의 제한 등이 나타난다. 교사와 학생간의 의사소통이 영역과 수준에 있어 매우 제한적이다. 의사소통의 단절에는 세대간 격차라는 점  외에도 아이들이 접하는 문화양식 자체가 적지 않게 소통 자체를 멀리하는 '단절'의 문화라는 점에 기인한다. 현재 컴퓨터나 대중매체 등을 통해 아이들이 소비하게 되는 문화상품은 상당 부분 개별적 욕구를 개인적으로 해소하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 기껏해야 채팅처럼 관계는 개별적이고 익명적인 형태로 맺어진다. 개별적이고 익명적인 소통에 익숙하고 편안한 아이들에게 학교에서처럼 열려진 집단적 의사소통은 어색하고 불편하다. 또한 자신의 욕구에 의하지 않고 교사에 의해 주어지는 소통은 많은 경우 애초부터 관심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의사소통의 단절은 수업 이외의 교류나 일치를 불가능하게 하며 그나마 수업내용 마저도 화석화된 모습으로 전개된다. 어쩌면 이 지점이 학교붕괴 현상의 가장 근원적인 지점이기도 하며 극복의 가장 궁극적 지점이기도 하다.  

③ 학교의 집단성/ 개별적 욕구의 대립

 학교붕괴 현상의 기층을 구성하는 양태이다. 수업은 재미없고 학교는 지겨우며 통제는 싫고 용의 제한에는 분노한다. 학교붕괴 현상의 기층 부분은 집단적 대립이나 저항이 아닌 개별적 욕구에 의해 집단적 과정을 부정하는 개별 행위의 집합으로 구성된다. 결석하는 학생이 늘거나, 수업 중 잠을 자거나 다른 일을 하는 아이들이 늘거나, 발표자의 얘기를 듣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지거나 하는 것들이다. 학교의 집단성과 개별적 욕구의 대립, 불일치가 예전부터 있어 왔던 것이라고 한다면, 학교붕괴 현상의 주요 지점은 개별적 욕구에 의해 집단적 과정을 '부정'하는 것에 있다. 부정의 조건에는 개별적 욕구 표현의 증대와 앞서 열거했던 측면들이 결합된다.

 개별적 욕구의 증대는 그만큼의 다양화라는 측면과 자기중심주의의 심화라는 두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집단적 과정과 대립하는 개별 욕구는 많은 부분은 편안하고 재미있는 일상에 대한 욕구이다. 학교붕괴는 이러한 요구와 욕구가 학교의 공동체적 혹은 집단적 규범과 통제를 벗어나거나 회피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두 측면을 구별해서 대응해야 한다. 다양성에 대한 요구는 내용적으로 교육적 대립을 형성하는 반면 편안하고 재미있는 일상에 대한 요구는 교육/교육 외적인 욕구와의 대립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우선 전자에 대해서는 가능한의 개선을 통해 충족시키고 결합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후자에 대해서는 일정하게는 극복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생활이 아이들의 생활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교육과정이 가능하면 즐겁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상에 대한 아이들의 욕구도 일정하게는 수용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교육적 과정과 일상적 욕구의 해소 과정은 다른 것이며, 또한 아이들의 욕구가 단절과 물질만능, 상품화의 문화적 경향 속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올바른 욕구 형성과 충족 방식의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져야 하는 것이다.

3) 문화충돌의 성격과 양상

① 저항이 아닌 대립이다.

 집단적 지향과 의미가 부딪치는 저항이 아니라 학교에서 주어지는 집단적 규정과 자유분방한 개별적 욕구가 대립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다시 말해 극히 일부의 비판적 저항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비판적 인식에 기초하지 않은 채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과정이나 관계, 통제에 대한 단순한 거부나 회피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붕괴를 야기하는 문화 요소의 성격 자체가 매우 개별적이고 의미 지향을 부정하는 특성을 지닌 것에 기인한다.

 '학생들은 매우 감각적이고 감정적이며 인내력이 부족하다. 학생들은 소비적인 생활에 익숙해있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상황을 추구한다. 학생들은 예의와 윤리의식이 부족하고 매우 자기중심적이다. 학생들은 공부를 소홀히 하면서도 그렇다고 딱히 뭘 잘하고자 노력하지도 않는다.....'

        - 전교조정책연구소 학교교육연구실, '학교교육의 위기분석과 진단'

 학교붕괴를 기존의 교육적 모순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가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이고 부분적인 저항적 양상을 일반화한 것이거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대립 자체를 비판적 저항으로 격상시키는 오류를 내포한다. 저항으로 보고자 하는 견해는 대부분 학교체제의 시장적 재편이나 궁극적 해소를 주장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학교붕괴의 주요한 양상이 저항이 아닌 단순한 대립이라는 점은 학교붕괴를 야기하는 요소들이 주되게는 수용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극복과 해소의 대상임을 시사한다.

② 충돌의 중심 요소는 관계에 대한 태도와 방식의 변화이다.

 문화적 충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관계맺기 방식'의 차이와 대립이다. 현대자본주의의 매우 개별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문화적 조류는 학교라는 조직과 집단, 그 속에서 부여되는 타인과의 관계맺기에 대해 이질적인 새로운 요소로 등장하였다. 개별화되고 자유분방한 행동양식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학교라는 조직과 집단은 그 자체로서 낯설고 싫은 것이다. 더구나 학교에서 가해지는 규범과 욕구억제는 더욱 견디기 힘들다. 아이들이 참을 수 없는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아이들은 잘 참다가도 일정 수준에 이르면 충돌하며, 어떤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참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은 그래도 여전히 잘 참아낸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문화적 요소들이 개별적, 자기중심적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여러 사회조직 등에서 조성되는 집단적, 공동체적인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들 간의 문화적 교류에서 헤게모니는 개별적, 자기중심적 문화 요소나 조류가 쥐고 있다. 거기에는 대중매체와 자본의 문화상품 지배의 영향이 크다. 그 때문에 집단적, 공동체적 문화나 규범을 수용하는 아이들조차도 타인과의 관계를 열어놓거나 집단적 상황에 개입하기를 주저한다. 교사-학생간 그리고 학생간 의사소통의 단절은 바로 관계맺기 자체와 대립적인 개별적, 자기중심적 나아가 단절적 성격의 문화 요소에 의한 것이며 이 부분이 학교붕괴라는 문화충돌의 중심 지점이다.

③ 세대 간 대립이 아닌 문화 요소의 대립이다.

 본질적으로 학교붕괴는 결코 세대 간 대립이 아니다. 물론,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의 내용은 세대 자체의 차이라기 보다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문화 요소나 조류의 차이이다. 또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다수의 관념과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과연 신세대 문화를 자부하면서 자신을 신세대로 규정하는 신세대가 얼마나 있는가. 더욱 마찬가지로 학교의 의의와 교사의 권위, 집단적 교육과정의 규범을 부정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이 문제를 세대 간 차이로 설명하려는 것은 대립적인 문화 요소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극복의 조건과 전망을 가로막는다.

④ 공동체성/반공동체성의 대립이다.

 현상적으로 학교붕괴는 집단성과 개별성의 대립이라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거기에는 과도한 집단적 억압성에 대한 대립도 있지만 집단적 문화나 규범 자체에 대한 거부나 회피가 주되게 나타나며 이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집단성 자체의 거부는 본질적으로 반공동체적인 것이다. 공동체를 비적대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집단, 나아가 공동의 이해와 지향을 갖는 집단이라고 규정할 때, 집단 자체에 대한 거부는 공동체에 거부를 내포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교붕괴 현상을 구성하는 행동양식의 많은 부분은 공동체에 대립적이고 적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치 무감각화'(홍동희), '자기중심적, 타산적, 불손....'(정재걸), '개인과 사회의 무규범'(심성보), '의사소통의 단절'(매우 많은 논자들), '기본적인 생활습관과 사회성의 결여, 집단성의 미성숙,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지현주)

 아이들에 있어 이러한 반공동체적 문화 요소의 확산은 공동체 자체의 위기를 의미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반공동체적 문화 요소의 확산에 의해 위협받는 곳은 결코 학교만이 아니다. 학교붕괴라는 공교육 자체의 위기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공동체 위기 극복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4. 신자유주의는 학교붕괴를 즐기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궁극적으로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교육의 시장화와 공교육의 해체를 추구한다. 학교붕괴는 교육의 시장화와 공교육 해체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들은 이전부터 공교육이 획일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매도하면서 시장원리를 전제로 하는 개별화교육과 수요자중심교육을 주장해 왔다. 학교붕괴 현상을 그들은 교육의 시장화로 갈 수밖에 없는 교육의 공공성 원리 자체의 한계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학교붕괴라는 위기를 교육의 시장화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붕괴가 사회문제화되는 순간 벌써부터 사립 엘리트 교육기관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은 이들의 원군이다. 순진한(?) 자유주의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학교붕괴는 신자유주의의 토양이 되는 20대 80의 정글사회와 맥락을 같이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학교가 붕괴되어 공교육의 실현 자체가 위협을 받더라도 그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교육이 엉망이 되더라도 20%의 필요한 노동력은 엘리트 교육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돈도 적게 들이면서 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80%의 민중은 제대로 된 교육을 굳이 받을 필요가 없다. 다만 그들은 자본주의가 쏟아내는 상품들을 소비할 수 있는 욕구와 취향을 갖추기만 하면 된다. 교육의 공공성과도 대립되는 극단적 개별성은 신자유주의의 입장에서는 매우 훌륭한 소비자적 자질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신자유주의는 학교붕괴를 조장하기도 한다.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자극적, 개인주의적 소비문화는 학교붕괴 현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 요소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학교붕괴는 신자유주의라는 세기말적 조류의 한 단면이다. 20대 80의 사회 양극화, 생태계를 위협하는 탐욕의 성장주의, 무차별적 경쟁, 물신숭배와 극단적 개인주의, 공동체의 해체와 익명적 사회화, 인간 본질의 생물학적 위기(정자, 난자의 판매, 인간복제 등) 등 사회의 전반적 위기의 단면인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붕괴 문제의 성격과 의미를 사회문화적 측면이라는 큰 흐름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학교붕괴가 급격하게 등장, 확산되게 된 것. 뿐만아니라 거의 무방비 상태로 대응조차 하지 못해 온 것에는 여러 가지 직접적, 미시적 계기나 조건들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학교붕괴 현상을 불러온 교육 내적, 외적 요인들을 분석해 보고 학교붕괴에 대한 장, 단기적 대응 방향을 설정하는 논의를 제출하고자 한다.
 주--------------------------
1) 이 견해는 궁극적으로는 '공교육 해체론'으로 연결된다.
2) 자기자신을 신자유주의와 구별하고자 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있다. 그러나 학교붕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만큼은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는 거의 유사하다. 실제로 현시대에 있어 자유주의는 실천적으로는 결국 신자유주의와 동일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3) 이 견해는 '순진한 게으름'의 표현이거나 '악의적인 정치적 의도'의 표현이다. 지난 수십년간 억압성과 획일성의 문제는 한국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성격이자 모순지점으로 지적되어 왔으며 교육민주화운동 역시 이의 극복에 초점이 두어져 왔다. 그런데 그 관성으로 인해 상황이 변화된 지금에도 억압성과 획일성은 모든 문제를 설명하는 논리적인 '만병통치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변화된 상황에서 자본과 신자유주의 조차도 모든 악의 근원으로 돌리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변화된 부분도 있다. 예전에는 억압성/자율성의 대립축에서 자율성을 신장시킬 주체의 한 부분으로 설정했던 교사대중 마저 지금의 논의과정에서는 억압성과 획일성의 중심 요소로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4) '학생도 풀이다', 참실 토론회 자료짐
5) 전종호, '학교붕괴 현상에 대한 교육주체의 의식조사연구', 참실 토론 자료집
6) 전교조 정책연구소 학교교육연구실, '학교교육의 위기 분석과 진단', 참실 토론 자료집
7) 교사책임론에는 신자유주의와 정글자본주의에 의해 배태되는 '분열'의 정치학과 이데올로기가 짙게 배어있다. 예전에는 계급, 계층간의 틈새를 벌리는 분할 통치가 주요했지만 정글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온갖 사회 집단들을 다 갈라놓는다. 예컨대 구조조정 와중에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에 의해 조장되어던 분열과 대립을 보라! 교사책임론은 사회구조적 시각은커녕 정책적, 교육적 문제의식도 희박한,  교사/학부모, 교사/학생 사이를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이간질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간질에는 부분적, 극단적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상징조작적 선전기법과 사실 자체를 왜곡하는 매도, 개별성을 배제한 편가르기 등의 방법이 동원된다.
8) 학교붕괴와 맥락을 같이하여 사설학원의 강사들이 접하는 양상은 훨씬 더 심각한 경우가 많다. 결석은 더 잦고, 공공연한 저항은 훨씬 더 일상화, 극단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9)  조한혜정, '근대의 보편적 양상으로서의 학급 붕괴와 한국적 특수성'
10)  전종호, '학교붕괴현상에 대한 교육주체의 의식조사연구'
11) 사안의 성격을 표현하는 데는 '학급붕괴'나 '교실붕괴'가 좀 더 적절하다. 그러나, 학교붕괴라는 표현이 보다 일반화되었고, 문제의 심각성을 표현하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어 이 글에서는 '학교붕괴'라는 표현을 쓰기로 한다.
12) 교실의 붕괴는 학교건물의 물리적 붕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이 붕괴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지적 활동과 도덕적 활동으로 주를 이루는 교육활동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는 교과교육이나 생활지도 등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통제력의 상실은 곧 정신적 교육적 지도 모두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을 말해 준다. - 심성보, '교육개혁의 오류와 교실붕괴의 공동체적 극복'
 학급 붕괴란 수업 중에 자리에서 일나서 돌아다니거나 잡담을 하는 등 자기중심적인 행등을 하고, 교사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언을 하는 아이들로 인해 수업이 성립되지 못하는 현상이하 말할 수 있다. - 지현주, '사회적 위기, 일본의 학급붕괴'
13) 집단화와 구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썼다. 학교붕괴가 여러 명의 행위에 의해 구성된다고 하더라도 집단적 지향의 형성이나 행동통일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집단화'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개별적 행위의 증가이고 그러한 행위들이 일정한 장소와 과정에서 모여지는 '집합적' 현상이 주요하게 나타난다.   
14) 지현주, '사회의 위기, 일본의 학급붕괴',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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