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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위기, 교육위기의 시대에 교권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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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1. 들어가며

 

교사들의 연이은 죽음과 이에 분노한 거대한 교사들의 직접행동으로 교권보호문제가 뜨거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학교 교육의 위기와 그로 인해 교육주체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는 여러 차례 사회적 의제로 부각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학교 붕괴 담론, 2000년대 이후 교육 불가능담론과 학생들의 배움으로부터 탈주담론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전의 교육위기 담론들은 주로 학생들의 보여주는 양상과 그들에게 닥친 위기와 고통을 대상으로 하였다. 학교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 위기 담론이 학생을 초점으로 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교사의 위기와 고통에 대한 관심은 주로 스승의 날을 계기로 하는 의례적인 연례행사에 그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일회적인 반짝 관심에 머물렀을 뿐이다. 교사의 위기와 고통의 문제가 진지한 사회적 의제나 긴급한 사회적 현안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교사가 학생과 교육적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과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교사의 일상적이고 필생의 과업이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 SNS 등에 학생과 학부모(학생보호자 또는 양육자)와의 갈등과 이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교사의 글이 부쩍 늘었으며 이 중 다수가 가르치는 일의 일상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최소한의 존중과 신뢰가 너무 쉽게 깨지고, 때로는 심각한 불신과 모욕과 폭력을 당하고 있음에도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한탄과 분노를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주로 교사 내부의 사적인 소통 체계 속에서 소비되었으며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교사 단체 내부에서도 사안별 지원에 머무르고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였다.

결국 연이은 교사의 죽음과 교사 대중의 거대한 저항 행동이 이루어진 이후에야 현재 교사들이 겪고 있는 위기와 고통의 실체와 양상 그리고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 노력도 본격화할 수 있었다.

 

현재 대안의 초점은 교권 보호 및 강화로 모여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여러 법이 개정되었거나 추진 중이다. 그런데 교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모호하고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경우가 많다. 교권의 기본 개념조차 정립되지 못한 이유는 그동안 교육계 내에서 특히 진보적인 진영 내에서 교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교권 보호와 강화가 교육의 위기와 교사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런 우려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교권 보호와 강화방안이 지닌 의미와 한계를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2. 교권 담론에 대한 우려들

 

교권담론에 대한 우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교권과 학생인권의 충돌

교권담론은 보수적인 성격을 벗어날 수 없고 이에 교권보호와 강화는 학생인권 침해로 귀결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권에 대한 보수적 해석이 오랫동안 대세를 이루었다. 교권에 대한 보수적 해석은 봉건적인 유교문화와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치 시기의 권위주의적 교육체제의 잔재로부터 기인한다. 유교문화에서 스승은 부모만큼이나 절대적 권위를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와 독재정치의 시기에는 교사의 자율성은 철저하게 부정하는 대신 학생과의 관계에서는 학생들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 있는 무제한적인 권력을 부여 하였다. 이 시기 학교교육의 목적이 자율적이고 성숙한 시민의 양성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지배세력에 복종하는 신민의 양성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전통을 계승한 보수적인 교권담론에서는 정부와 교육관료에 의한 교사에 대한 통제와 억압 즉 위로부터의 교권문제는 사라지고 오로지 교사와 학생의 관계 문제만 중시된다. 보수적 교권담론에서 교권과 학생인권(학생의 자율성)은 대립적인 음의 상관관계로 상정된다. 교권이 강화되면 학생인권은 약화되고, 반대로 학생인권이 강화되면 교권은 약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권위와 권력이 강력해질수록, 반면에 미숙하고 불완전한 학생들이 이런 권위와 권력에 순응하고 복종할수록 좀 더 좋은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오랫동안 교권에 대한 보수적 해석이 대세를 이루었고, 실제로 서이초 사태 이후 국면에서도 정부와 교육부 그리고 보수적인 교육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학생인권을 강화한 것을 교권 추락의 주요 요인으로 지목하였다. 이렇듯 보수적 낙인이 강하게 새겨져 있는 교권담론을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에서 거론하기에는 상당히 거북한 일이었다.

 

또한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 내부에서도 교권담론을 논의하기 힘든 상황이 조성되었다. 진보적 교육운동 내에 보수적 교권담론과 거울상을 이루는 학생인권 담론이 널리 퍼졌다. 이 담론도 보수적 교권담론과 마찬가지로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적 음의 관계로 파악한다. 단지 학생인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에 교권이 억제되어야 한다고 반대의 주장을 했을 뿐이다.

 

보수적 교권 담론이든, 진보적 학생인권 담론이든 두 입장 모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교육적 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권리 또는 권력의 대립 관계로 바라본다. 두 담론 모두에서 학생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해나가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육을 통한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보수적 교권담론은 학생을 일방적인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진보적 학생인권담론은 절대적인 자유와 독립성을 향유하는 주체로 바라본다. 이런 관점에서 교사와 학생은 서로 권리가 충돌하는 관계로 현상한다.

 

이렇듯 교권에 대한 논의는 교권에 대한 보수적 해석의 낙인효과와 교권에 의한 학생인권 침해를 우려하는 진보적 학생인권 담론이라는 이중의 제약 조건에서 제대로 전개되기 어려웠다.

 

2) 교권담론에 의한 교육의 구조적-제도적 문제의 은폐

교권보호와 강화 방안이 교육구조와 체제 그리고 제도 등의 문제에 면죄부를 주고, 교사의 위기를 교육주체 당사자 간의 권력 갈등의 문제로 치부할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권 보호-강화 담론은 주로 교사-학생-학부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시적 관계에서의 권리, 권한, 책임 등의 문제에 집중한다.

교육 주체 간의 관계가 무너지고 교사들이 고통받는 원인은 무엇일까?

이 모든 위기의 출발점은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의 위기로부터 출발한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수-학습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증가하고 결국 학교생활과 배움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동료 학생을 괴롭히고, 교사의 지도에 저항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갈등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전이되고 확대된다.

 

그런데 교육 주체 간의 갈등과 적대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두 가치 층위의 문제가 존재한다.

우선 갈등과 적대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이 존재한다.

이는 한국사회나 한국교육체제의 구조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입시경쟁이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경쟁이 지배하는 교육체제에서 학생들은 배움과 성장의 기쁨을 느낄 수 없으며, 다수의 학생이 실패자와 낙오자가 된다. 또한 한국의 교육과정은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추어 섬세하게 설계되지 않았으며, 높은 난이도와 학습량 때문에 학생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는다. 또한 여전히 존재하는 과밀학급과 교사들의 과도한 업무 부담 그리고 다층적인 학생 지원 체계의 부재는 발달이 늦은 학생, 전 단계에서 발달이 결손된 학생, 경쟁에 실패하여 좌절한 학생들을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경쟁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많은 학부모가 자녀를 선행 사교육으로 내몰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의 건강한 교육적 관계 맺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교육 주체 간의 갈등과 적대가 강화된다.(한편 초등 저학년의 경우에는 양육과정에서 문제가 있어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이런 학생들을 교육하는 과정에서 보호자와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두 번째로 갈등과 적대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고 조절하는 과정과 방법의 층위가 존재한다. 예전에는 교사-학생-학부모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교사가 우위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를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고 있다. 권력의 비대칭성이 역전된 것이다.

수요자-소비자로서 학부모의 권리를 강조하면서 학부모의 민원과 사적 요구에 대해 교사가 언제-어디서나 응답할 것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일부 학부모들은 자신의 불만과 사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교사를 끈질기게 압박하였다. 아동보호법과 아동학대처벌법 제정으로 학부모는 교사를 쉽게 고소 고발하거나 협박할 수 있는 무기를 획득하였다.

반면에 교사가 교육활동 중에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이 무엇인지 매우 모호하였다. 모든 것이 고소 고발이나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최종적으로 무죄나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판정받더라고 교사는 진행 과정에서 심각한 고통과 굴욕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교장이나 교육청의 관료들이 자신의 보신을 위해 문제를 덮거나 학부모 편을 드는 경우가 많아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교원평가와 성과급 같은 신자유주의 교원정책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를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심리적-문화적 여건을 조성하였다.

교사들은 학생과 학부모가 자신을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지니고 있음에 반해, 자신들은 이를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상태에 홀로 놓여 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교권 보호-강화담론과 방안은 교사의 방어 수단 확보 및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최근 교사들의 죽음을 계기로 교사가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을 받아 고통을 당하는 여러 사례가 보고되면서 교사를 공격하는 수단들을 제어하고 교사의 방어력을 높일 방안을 찾고 있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교권 보호-강화 방안은 교육주체 간의 갈등과 적대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들을 해결하려는 대책과는 거리가 멀다. 갈등과 적대가 발생한 이후 사후 처리 과정에 존재하는 교육주체 간의 권력의 불균형을 바로 잡고 이 과정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3) 교권담론이 교육주체의 협력과 소통을 방해할 위험

교권 보호-강화방안이 교육 주체 간의 협력과 소통을 확대하고 학교자치를 강화하기보다는 교육주체 간의 권력 게임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실제로 교권 보호-강화담론은 교육 주체 간의 관계를 주로 권력관계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에 교육주체 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가능한 각각의 교육 주체들의 권리와 책임을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교권 보호 강화 방안으로 지난 91일 시행된 교육부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서 볼 수 있듯이 교육활동 과정에서 교원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수단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학생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명시적으로 나열하는 것을 수반한다.

하지만 교육활동과 이 과정에서 맺어지는 교사와 학생 간의 교육적 관계는 매우 맥락적이며, 인격적이며, 일반화하기 힘든 다양성과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규정들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탈맥락화 위험과 인격적 관계를 훼손할 가능성이 커지며, 다양한 특수한 상황들을 무시하기 쉽다.

또한 교육 주체 간의 규범을 정립하는 것 자체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의 중요한 요소인데, 외부에서 도입된 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를 훼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학생-학부모의 관계에서 필요한 규범은 협력과 소통 그리고 다양한 협상과 실천을 통해 자율적으로 형성해 나가야 한다.

 

4) 교권담론의 향후 전개 방향

지금까지 교권 보호-강화 방안에 대한 세 가지 우려를 살펴보았다. 세 가지 우려에 대한 간단한 평가를 통해 이 절을 마무리하겠다.

우선 교권담론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교권 강화가 학생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살펴보자.

교권에 대한 정의를 기술할 다음 장에서 논의하겠지만 교권은 학생인권과는 상관없는 매우 넓은 독립적 영역을 지니고 있다. 교권은 학생들에게 향하는 교사의 권력, 권한, 권위을 넘어서는 영역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영역을 적극적으로 밝혀내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지금까지 교사의 권리와 교육적 권한으로 교권을 우리 스스로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여 교권에 대한 보수적 낙인을 용인하고 수용하는 꼴이 되었다.

또한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적 관계로 전제하는 보수적 교권담론과 진보적 학생인권담론의 이중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두 담론 모두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권리가 서로 충돌하는 대립적인 것으로 부당하게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위한 교육활동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한다. 이때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서로가 없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는 상보적인 성격을 가진다. 따라서 교권과 학생인권의 관계를 교육활동 즉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중심으로 바라보면 양자는 공존 가능하며, 오히려 공존이 가능할 때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가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뒤에서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교권 보호-강화론이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들을 은폐할 위험에 대해 살펴보자.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교사의 위기는 교육의 위기로부터 발생하며 교육위기의 근본적인 원인 한국사회나 한국교육의 구조나 제도의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구조나 제도는 교육 현장에서의 구체적인 교육적 관계와 교육실천을 통해 작동한다. 교육활동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교육적 관계의 성격에 따라 구조나 제도의 문제가 증폭될 수도 있고, 감축될 수도 있다. 또한 구조와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도 교육적 관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혁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따라서 구조나 제도 개혁의 문제와 교육주체 간의 관계 개선의 문제는 양자택일적인 문제일 수 없다. 이는 구조와 주체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논쟁과 유사하다.

단지, 현재 정부와 교육부는 교육의 위기와 교사의 위기의 문제를 교육 주체 간의 미시적 관계의 문제, 권리 충돌의 문제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마치 모든 문제가 일부의 극성 학부모와 일탈 학생 때문에 발생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극성학부모와 출현과 일탈학생의 증가는 문제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극성 학부모와 일탈 학생의 교권침해를 막기 위한 긴급한 대책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현상을 최대한 줄여나갈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 주체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교권 보호와 강화 방안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방안들을 교육 위기의 해결과 연결하고, 구조와 제도의 개혁 문제로 상승시켜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권 보호-강화가 교육 주체 간의 소통과 협력을 약화시킬 우려에 대해 살펴보자.

학교는 기업처럼 효율성과 생산성을 추구하는 기관도 아니고, 군대처럼 목숨을 건 전투에 필요한 강한 규율과 복종을 요구하는 곳도 아니다.

따라서 교육활동 과정에서 지켜야 할 규범을 교육 주체의 참여와 협상, 토론과 숙의를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조정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학교 현장은 대부분 아노미(무규범) 상태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전 시기 교사들에게 관습적으로 주어졌던 학생을 향한 막강한 권력이 약해지거나 무너진 상황에서 교육주체들의 관계를 새롭게 규정할 대안적 규범은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아무런 기준이나 준거도 없이 학교에서 교육주체들이 자발적 참여와 논의를 통해 모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이는 학교 현장의 막대한 역량 소모와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는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토론과 숙의에 익숙하지 않으며, 한국의 학교는 공적인 관심보다는 사적 욕망이 넘쳐나는 곳이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매일 학교에서 경험하는 현실이며, 지금의 사태가 일어난 원인이다.

기본적인 권리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전제 위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각 교육 주체들의 권리(권한)와 책임을 대강의 수준에서 명시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이런 대강의 기준을 근거로 좀 더 구체적인 규정과 규범을 교육 주체의 참여와 논의를 통해 마련해 나가고, 이를 현장 상황에 맞게 계속 교정하고 구체화해야 한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교권 보호-강화 방안에 대한 우려들은 분명히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우려 때문에 교권 보호-강화 방안이나 교권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교권 담론을 교육위기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현장에서 구체적 실천 방안, 중간 수준의 제도 개혁 방안, 교육구조와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대안 등)으로 계속 확장해 나가야 한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교육 주체 간의 상호권리와 책임의 관계를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추구하는 교육활동의 관점에 바라보야한다는 점이다.

 

 

3. 교사의 권리로서 교권

 

1) 교권의 두 측면 : 권리와 권한

교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권리권한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 권리는 어떤 주체의 정당한 이해, 요구, 지향 등의 실현을 보장하는 자유와 힘이다. 반면에 권한은 자신의 이익이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공동활동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과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관이나 개인의 권리나 권력의 범위를 지칭한다. 인간의 공동활동이 일어나는 곳은 어디서나 그곳이 사적인 기업이든 공적 기관이든, 학급이나 가정 같은 작은 공동체이든 권한의 설정과 배분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교권은 주로 후자 즉 교사가 학생을 교육할 권한과 이런 권한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권위를 의미하였다. 이런 권한 중에서도 위나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 교육활동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보다 주로 학생들에게 향하는 교사의 권력이나 권위 등을 지칭하는 좁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보수적 교권담론이나 진보적 학생인권담론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었다. 이에 따라 교권추락(즉 교사의 교육적 권한에 대한 침해)은 항상 학생이나 학부모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2) 보편적 권리로서 인권과 시민권의 문제: 참정권의 부재

새로운 교권담론은 우선 교사의 권리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근대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보편적 권리와 특수한 권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대표적인 보편적 권리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인권과 시민권이다. 인권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인권은 아직은 이상적인 선언적 권리에 머무르게 되며 인권이 현실화되기 위해 정치적 공동체(근대 사회에서는 국민국가가 대표적인 정치 공동체이다) 구성원들의 상호 승인과 보장이 필요하다. 이런 승인과 보장은 근대 사회에서는 입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듯 인권이 정치공동체의 입법을 통해 현실화한 권리를 시민권이라 부를 수 있다. 시민권은 헌법에 기본 내용이 명시되고, 법률을 통해서 구체화된다.

 

인권이 시민권으로 전화되는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인간시민의 문제가 존재한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정치공동체의 구성원 즉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인권은 시민권으로 전화하지 못하면서 쉽게 침해된다. 또한 입법화 과정은 인권을 법적 권리로 보장하는 면도 있지만, 인권을 제약하고 훼손한다.(법에는 항상 현실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권력관계가 반영된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많은 법률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권리를 제약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대표적으로 국가보안법에 의한 사상의 자유 침해 등)

 

시민권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단계를 통해 진화해왔다.

1단계 시민권은 주로 개인의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중심이다. 생명과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과 직업선택의 자유, 종교와 양심(사상)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이 이런 권리들이다.

2단계 시민권은 참정권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치공동체에 참여할 권리가 필요하다. 언론-출판(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이 이에 속하는 권리들이다.

3단계 시민권은 사회권이다. 교육받을 권리, 사회보장과 복지에 대한 권리, 건강과 쾌적한 환경에 대한 권리, 노동할 권리 등이 이에 속한다.

 

교사 집단이 가장 크게 침해받고 있는 기본권은 참정권이다. 교사는 대부분의 피선거권이 제한되어 있고(교사는 교육감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다. 참정권이 중요한 이유는 참정권이 개인과 집단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근대 사회에서 자유와 권리는 오로지 입법과 행정의 과정을 통해서만 보장된다. 따라서 참정권이 없으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 교사들이 참정권이 부재하기 때문에 교육관련 입법이나 예산 편성, 교육행정 등에 집단적으로 개입할 수 없으며, 이것이 교사 위기 나아가 교육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3) 특수한 권리로서 노동권의 문제: 노동3권의 부재, 소비자 갑질로 인한 새로운 노동권의 부상

근대 사회의 사회구성원들은 사회-경제적 지위, 직업, 문화적-생물학적 정체성 등에 의해 다양한 집단으로 분화하고(그리고 한 개인 내에 여러 정체성이 중첩되고 교차한다.), 이에 따라 특수한 권리들이 산출된다. 사회-경제적 지위나 직업에 근거한 집단(계급이나 계층 등)은 상대적으로 분배의 권리에 대한 요구가 크고, 문화적-생물학적 정체성에 근거한 집단은 인정(정체성에 대한 존중)에 요구가 클 것이다.

교사 집단에도 여러 정체성이 교차한다. 노동자, 전문가(지식인), 공직자 등등.

노동자로서 정체성은 당연히 노동권이라는 특수한 권리(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절대적 다수를 이루기 때문에 노동권은 상당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으며, 헌법에도 노동자의 권리가 명시되어 있다.)를 요구한다. 반면에 전문가, 공직자 등의 정체성은 전문가로서 권위에 대한 인정, 공직자로서 공적 권한 대한 존중 등을 요구할 것이다. 전자가 권리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권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교사는 국가나 사학자본에 고용된 노동자로서 당연히 온전한 노동권을 누려야 한다. 노동권은 임금, 노동시간, 노동환경, 건강과 안전 등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의미하며, 노동자가 이런 권리를 획득하기 실질적인 수단이 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등 이른바 노동3권을 포함한다. 전자가 노동자가 누려야할 내용적 권리라면 후자는 이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적 권리이다. 노동자는 자신보다 월등히 강력한 힘을 지닌 자본가들과 협상과 투쟁을 통해서만 권리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수단적 권리인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내용적 권리를 획득하기 매우 어려워진다.

교사는 사실상 단결권만 온전히 보장받고 있다. 교원노조의 단체교섭은 법률이나 예산에 의해 기속력(강제성)이 제한되며, 복수노조 창구 단일화에 의해 정상적인 교섭진행이 불가능하다. 현재 교원노조의 단체교섭은 정책협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려우며 단체행동은 완전히 불허되어 있다.

이렇듯 교원의 노동3권의 부재는 교사의 집단적인 대응력의 약화로 나타난다. 교사의 위기가 지속적으로 심각해졌음에도 교사가 집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노동3권의 부재 때문이다.

 

노동권은 보통 자본()과 노동()의 관계의 문제로만 생각되어 왔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판매직-서비스직 노동자가 대거 등장하면서 새로운 노동권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노동자와 소비자 사이에 노동권의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판매직-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소비자(화폐지불자)들과 직접 접촉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교환과정에서 보편적 등가물인 화폐를 지닌 자는 특정한 상품을 지닌 자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에 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특정한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노동자에게 갑질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자본가나 상층 관리자들은 소비자의 갑질을 막기보다는 자신들의 상품자본을 화폐자본으로 전환시켜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에게 굴종을 강요한다.

학교 현장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학교 교육을 입시 준비를 위한 서비스 상품 구입으로 인식하는 학부모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사회적 양극화로 입시경쟁이 격화하고, 학생과 학부모를 수요자(소비자)로 학교와 교사를 공급자로 호명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도입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 교원평가와 성과급 등 신자유주의 교원정책도 교사를 서비스 제공자로 여기는 풍토를 확산시켰다. 정부나 교육청은 자본가처럼 이윤 실현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치적 지지(학부모는 교사보다 표가 훨씬 많으며, 교사는 정당에 가입도 선거운동도 할 수 없는 정치적 금치산자이다. ) 때문에, 그리고 학교의 관료들은 책임회피와 보신주의(학부모의 민원은 학교관료를 위협하지만, 교사들은 학교 관료를 압박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때문에 학부모의 갑질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중산층 행동주의(중산층이 자신의 자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유지-상승시키키 위해 여론을 조성하고 담합하고, 행동하는 여러 행태)와 소비자 행동주의(화폐지불자 즉 소비자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재화나 서비스 공급자에게 온갖 갑질을 하는 행태 )의 양태를 닮아가기 시작하였다. 학부모의 모든 요구에 교사가 곧바로 응답할 것을 원하고, 조그마한 불만에도 민원을 제기하고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때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압박하였다. 동료 학부모들을 동원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고 집단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일도 자주 발생하였다. 또한 학부모들은 교사들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는 사법적 무기까지 활용할 수 있었다. 특히 아동보호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은 교사를 공격할 수 있는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또한 교사와 학생 관계에서 교사의 권력과 권위가 무너지거나 약해지면서 학생의 폭언이나 폭력에 노출되는 사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교사와 학생 관계는 다음 절에서 자세하게 논의하겠다.)

 

교육의 상품화가 진척되고 학부모의 소비자로서의 정체성 강화될수록 서비스 노동자인 교사와 수요자인 학부모 사이에 발생하는 노동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안은 교육의 상품화 즉 교육이 사적 소비재로의 전락하는 것을 막고 공공재로 성격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사회와 한국교육의 구조개혁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는 소비자로서 학부모의 갑질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 즉 노동권 강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학부모의 갑질과 학생의 폭력에 노출된 교사는 심각한 모욕감을 느끼고 인격이 붕괴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관료들의 갑질보다 훨씬 심각한 심리적 타격과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나 사학자본으로부터 획득해야 할 노동권 이상으로 소비자로서 학부모나 학생의 갑질과 폭력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노동권을 확대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과제이다.

 

4) 교사 권리의 확대를 위하여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교사의 권리로서 교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하고 실효성 있는 권리 보장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지배 세력은 교권에 대한 논의를 교육활동의 권한의 문제 특히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권력 갈등의 문제로 축소하려 하였다.

지배세력은 국가기관에 종사하고 있는 교사와 공무원을 전체 사회구성원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국가권력(또는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지배세력)을 위한 봉사자로 만들려 한다. 교사와 공무원들을 지배세력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서, 국가권력은 교사-공무원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제약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교사-공무원들이 국민의 공복이기 때문에 시민권과 노동권을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교사에게 시민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면 국가권력의 부당하고 자의적인 지배로부터 벗어나 교육이 사회구성원 전체의 행복과 권리의 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들은 교육현장의 경험으로부터 현재 우리 교육이 가지고 있는 핵심 문제가 무엇이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시민권과 노동권을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면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집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을 매일 매일 마주해야 하는 교사는 매우 높은 교육적 윤리성을 지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보적 교육운동 진영도 교권담론이 띠고 있는 보수적 색채 때문에 교권 문제를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을 꺼려왔다. 참정권과 노동권에 대한 요구는 지속적으로 있었지만, 이를 교권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묶어 체계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교육위기, 교사위기의 시대에 교사의 권리로서 교권 문제는 점점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교사의 시민권과 노동권 보장은 교사위기의 극복은 물론 교육위기 극복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다.

4. 교사의 권한으로서 교육권

 

1) 교사 교육권의 특성과 근거

이제 교권 문제의 가장 핵심적인 교사의 교육권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교사의 교육권은 교사의 권리보다 권한으로 볼 수 있다.

권한은 인간의 공동활동 과정에서 특정한 역할과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관이나 개인의 권리나 권력의 범위를 지칭한다. 권한은 특정한 역할과 과업 즉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획하고, 결정하고, 시행하고, 지시하고, 평가할 수 있는 자격과 힘을 의미한다. 공동활동의 목적과 성격 그리고 공동활동에 맡은 역할 따라 각각의 권한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 규정된다.

 

교사는 학교라는 공공기관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는 공동활동을 수행한다. 교육이라는 공동활동의 목적은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고, 이를 토대로 건강한 사회적 주체로 성장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적 권한은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복무해야 한다. 이는 교사의 교육적 권한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교사가 행사한 권한이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인권이라는 기준은 교사의 교육적 권한 행사의 방법적 한계를 설정해주는 기준이지, 목적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그렇다면 학생의 발달을 위한 교육활동과 학생 인권이 충돌하는 지점은 없을까? 이는 매우 중대한 논쟁점이며 뒤에서 자세히 논의해 보겠다.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규정하기 위해서 성장과 발달을 도모하는 교육활동의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아동과 청소년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필요하며, 각각의 발달 과정에서 교육활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해야 한다.

인간은 타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고 성장한다. 유년기에 주로 가족구성원이나 또래 친구들과 상호작용한다. 어른과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발달의 결정적 기초인 언어를 습득하고, 지각과 기억을 발달시켜 나간다. 또한 가족 구성원과의 상호작용과이나 또래 친구들과 놀이를 통해 자기 조절과 규제 능력을 키우고 자발적 주의 능력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한다. 언어의 습득, 지각과 기억의 발달, 자기 조절과 자발적 주의 능력의 형성 등은 이후 발달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학령기에 접어든 아동의 발달은 자연스럽고 비체계적인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넘어서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교수-학습과 집단적 생활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 학교이다. 학교에서 교사는 교수-학습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며 이를 바탕으로 다음의 교수-학습을 설계한다.

이를 위해 교사는 교육과정을 편성하고(매 수업은 무작위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발달 단계, 지식의 체계와 위계에 따라 최소한 한 학기 또는 1년의 전체적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이 설계에 따라 매 수업을 배치한다.), 적절한 교재를 선택하고, 수업내용을 구성하고, 교육방법을 선택하고, 성취 정도를 평가한다. 또한 교육활동 과정에서 학생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교육활동으로부터의 일탈과 방해를 막기 위해 학생의 생활과 활동을 지도할 권한을 가진다. 즉 교수-학습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전문가로서 교사는 교육과정 편성권, 교재 선택 활용권, 교육내용 구성권, 교육방법 결정권, 성적 평가권, 학생생활지도권 등의 교육적 권한을 가진다. (최근에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아동중심 교육 등을 주장하면서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교수-학습의 체계적 조직과 집행자로서 보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나 조력자로 보는 경향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 스스로 교육과정-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매 수업을 설계하는 등-을 결정하고, 교재를 선택하고, 교육내용을 편성하고 자신의 성취를 평가할 수는 없다. 자기주도적 학습이나 아동 참여의 확대는 교육방법 중에 하나일 뿐이고, 교사가 전체적인 교수-학습을 설계하면서 다양한 교육방법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결정할 뿐이다.)

 

교사의 교육활동(교육노동)은 높은 독립성, 자율성, 전문성을 특징으로 한다. 최근에 교사 간의 집단적 협업(예를들어 교사 학습공동체 등)을 강조하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지만, 교사의 협업은 주로 사전 준비 단계에서 가능할 뿐, 실제적인 교육활동은 개별교사의 독립적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은 교사-학생 간의 전면적 상호작용의 과정이며(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다양한 파토스와 에토스가 생겨나고 교류된다.), 맥락의존적인 성격이 강하다(교실의 상황은 매 순간 변한다. 어떤 동일한 상황도 반복되지 않으며, 학생 개개인은 모두 다른 특성 즉 발달의 수준이나, 수업에 대한 태도와 열의나 교사에 대한 신뢰 등에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는 교사의 교육활동이 이미 정해진 매뉴얼대로 진행되는 단순노동(활동)이 아니라, 높은 자율성과 전문성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교사의 전문성은 크게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우선 교과(지식) 전문성이다. 교사는 가르쳐야 할 교과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교과 내용 전체(단순히 해당 학년이 아니라 이전 학년과 다음 학년까지 모두 포함하여)와 타 교과와의 연계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가르칠 수 있으며, 핵심적인 지식과 주변적인 지식을 분류할 수 있으며, 가르쳐야 할 교과 내용(지식)을 체계화-구조화시킬 수 있다. 또한 타 교과와 연계 속에서 입체적인 수업을 구성할 수도 있다.

둘째, 발달 전문성이다. 발달 전문성은 교사 전문성의 핵심이다. 교과전문성은 학자나 연구자들이 더 뛰어날 수 있다. 하지만 발달 전문성은 교사의 고유 영역으로 볼 수 있다. 교사는 발달(심리학)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 이해와 더불어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학생 발달에 대한 전문성을 체득한다.

학생 발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교육과정 편성, 교육 내용 구성, 교육방법 선택, 평가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다. 학생들의 발달 수준이 어느 정도이고, 교수-학습을 통해 새롭게 성취해야 할 발달 과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지만 교육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으며, 교수-학습이 학생의 발달을 이끌 수 있다.

셋째, 교육철학적 전문성이다. 교사는 현시대에 대한 인식과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을 통해 교육의 목적(어떤 인간상을), 교육의 이념(어떤 가치와 지향을), 교육의 방향 또는 목표(어떤 역량을)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문제가 되는 복합위기의 시대에 교사의 교육철학적 전문성이 더욱 절실하다. 인격(세계관)의 형성과 진로 준비가 본격화되는 중등 교육에서 교사의 교육철학적 전문성이 더 직접적으로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순히 수업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특히 발달 전문성과 교육철학적 전문성은 학급운영, 생활지도, 상담, 진학지도, 자치-동아리 활동 등 교사의 모든교육활동에 필요하다.

교사의 교육권은 교육활동(노동)에 필요한 높은 전문성, 자율성, 독립성에 근거한다. 이는 거꾸로 교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높은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면 교육권을 존중받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지원과 교사의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2) 교사 교육권의 약화 원인

한국에서 교사의 교육권은 매우 불안정하거나, 형식화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수직적인 관료 중심 교육체제가 교사의 교육권을 억누르고 있다.

한국에서 교사는 오랫동안 교육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했다. 해방 이후 독재와 권위주의적 발전 국가체제에서 역대 정권은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기보다는 정부의 지시와 요구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말단 하수인의 역할을 강요하였다. 1998년까지 유지되었던 교사는 교장의 명에 따라 교육한다.’라는 초중등교육법의 조항에서 알 수 있듯이 관료들이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교육정책 결정은 물론 교사의 일상적인 교육활동까지 지시하고, 감독하려 하였다. 그들에게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은 학생 교육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로 인식되었다. 이렇듯 한국교육은 강력한 수직적인 관료중심 체제로 운영되어 왔으며, 교사의 교육권은 위로부터 철저히 부정당하였다.

 

이에 따라 어느 법률에도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명시적으로 보장한 조항을 찾을 수 없다.

초중등교육법 20<교직원의 임무> 항에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민원처리를 책임지며, 소속 교직원을 지도ㆍ감독하고, 학생을 교육한다.’ 항에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내용 이외에 교사의 권한을 구체적으로 기술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교사의 모든 교육활동이 교장의 지도 감독의 대상이 될 수 있다라는 해석이 가능하며, 교사의 교육적 권한은 교육부-교육청-교장 등 위로부터 그리고 학생-학부모 등 아래로부터 부정당할 위험에 매 순간 노출되어 있다. 실제로 교육부나 교육청은 각종 공문을 통해 세부적인 교육활동까지 간섭하고 있으며, 교장의 지도 감독의 범위를 놓고 갈등이 빈발하며,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무시하거나 침해하여도 이에 대응할 근거가 매우 빈약한 상황이다.

최근에 교사와 학생-학부모와 갈등이 격화되자 부랴부랴 교사의 학생 생활지도권을 인정하는 202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를 신설하였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교사의 교육권인 교육과정편성, 교육내용구성, 교육방법 선택, 평가 등에 대한 법적 보장은 여전히 요원한 상태이다.

 

둘째, 입시경쟁교육이 교사의 교육권을 무력화-형식화하고 있다.

한국 입시경쟁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학교와 교사에게 입시경쟁의 압력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곧바로 쏟아져 내린다는 점이다. 입시 준비와 학교 교육이 분리된 많은 나라들이 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는 학교가 존재하는 제일의 이유가 입시 준비이다. 이런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서 어떤 학교와 교사도 입시 준비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결국 교사의 교육과정편성도, 교육내용 구성도, 교육방법 선택도, 평가도 무력화되거나 형식화될 수밖에 없다. 모든 교육활동이 입시준비로 수렴될 때, 교사의 교육권은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형식적 권한으로 추락한다.

또한 입시경쟁이 교육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도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기초한 교육적 권한을 존중하기 어렵다. 그들은 학생의 전인적 성장과 발달보다는 입시 준비의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려 할 것이다. 사교육기관은 오로지 입시 준비만을 목적으로 하기에 입시 준비의 효율성 면에서 학교는 사교육기관을 앞설 수 없다. 학교 교육보다 학원 가는 것을 더 중시하는 풍토에서 교사의 교육권이 존중될 리 없다.

 

셋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교육적 관계가 무너지면서 교사의 교육권도 함께 추락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현장 민주주의를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시장화가 대세를 이루었다. 독재권력이 물러난 공간에 참여와 소통, 협력과 연대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적 관계가 들어선 것이 아니라 경제주의, 경쟁주의, 극단적 개인주의, 승자독식, 소비주의 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되었다. 교육 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교육정책이 확산하면서 교육상품화가 진척되고, 학교-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가 공급자-소비자 관계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나 학생의 눈에 교사는 높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닌 교육 전문가로 보이기보다는 자신들의 요구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단순 기능인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사회적 양극화 따른 입시경쟁의 강화와 사회문화적 환경에 변화에 따라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거나 배움으로부터 벗어나는 학생들이 증가하면서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교사의 교육적 권위를 무시하는 사태가 급증하였다. 학교는 아노미(무규범) 상태에 빠졌으며, 교사는 자신의 교육권을 존중받기는커녕, 가장 손쉬운 불만 표출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넷째, 교사의 전문성 강화 지원 체계의 부실과 교사의 집단적 노력의 부족이 교육권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한국의 교사육성 과정, 교사연수 체계, 학교 내의 교사 간 협력 관계를 살펴보면, 교사가 전문성을 강화할 기회는 매우 협소하다. 특히 발달 전문성을 키울 기회가 크게 부족하다. 교대와 사대의 교육프로그램은 교과 지식 교육이 중심이며, 임용고시의 압력으로 교사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키울 여력이 없다. 또한 교사가 된 이후에도 한국의 교사들은 전문성을 키울 기회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우선 국가수준 교육과정 문서 자체가 문제가 많다. 국가교육과정이 발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계되지 않아 교육과정 문서를 통해 교사들이 발달에 대한 관점을 학습하고 정립할 수 없다. 또한 발달이론과 자신의 교육적 경험을 연결할 수 있는 교사 연수 프로그램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다수의 연수는 교수-학습의 기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교과지식과 관련된 자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다양한 수업 기법들 또한 쉽게 접할 수 있어 교과(지식)전문성보다 발달 전문성이 더 큰 문제가 되고있다.

한때, 전교조는 교사의 전문성 신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전교조는 교과서를 재구성하고 다양한 교육자료를 제작하여 동료교사들에게 보급하였다. 다양한 수업 방법을 개발하고 나아가 학급운영-상담-자치와 동아리 활동과 관련된 다양한 실천 사례들을 개발하고 확산시켰다. 또한 교육철학적 전문성의 확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이라는 교육이념을 제시하면서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경쟁보다는 협력과 공동체를 중시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활동이 혁신학교 사업을 통해 일정하게 계승되었지만, 일반 교사들과 공유는 축소되었다. 다양한 교사 단체가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지만, 전교조가 거의 모든 학교에 존재하는 분회를 통해 교사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것에 비하면 교사의 전문성을 집단적으로 고양하는데 한계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교사전문성 신장을 위한 체계적 지원의 부족과 교사의 집단적 노력의 쇠퇴가 맞물리면서 교사의 교육권이 취약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3) 교사 교육권 강화 방안

교사의 교육권 보장과 강화는 원활한 교육활동 토대이고 교사위기와 교육위기 해결의 출발점이다. 교사의 교육권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

 

첫째, 교사의 집단적 실천을 통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

특히 발달 전문성의 경우 발달심리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와 현장의 풍부한 교육 경험을 결합할 수 있는 교사들이 집단 지성을 통해 풍부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마련할 수 있다. 교사들이 함께 학습하고, 연구하고,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다양한 모임을 만들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 발달 전문성 강화를 주제로 하는 연수를 전교조 지부와 지회에 활발하게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

교육철학 전문성 함양도 교원단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현시대에 대한 인식과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을 통해 교육철학을 정립하는 것 즉 교육의 목적과 이념을 설정하는 것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 교육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부와 교육부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 관점(현존의 질서를 유지하고, 지배세력에 유리한)에 기초하여 교육의 목적과 이념을 설정하려 할 것이다. 이에 대응하여 교원단체는 현시대와 미래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인식 그리고 다수 학생에게 유익한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교육철학적 전문성을 정립하고 교사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교사의 교육권 확립을 위한 제도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교사의 교육권을 법적-제도적으로 명료하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 법적-제도적 보장이 없어 교사들은 교육부-교육청-교장 등 위로부터 끊임없이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학부모와 학생들과도 소모적인 갈등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교사의 교육적 권한은 법적-제도적 보장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교육현장에서 교사의 교육권은 교육 주체 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인정을 통해 현실화한다. 예를 들어 학부모는 자녀 교육에 대해 교사와 협의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런데 학부모의 어떤 의견 개진이 정당한 권리의 행사인지,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간섭인지 경계를 정하기 쉽지 않다. 또한 교사의 학생생활지도 역시 어디까지 정당하고 어디부터 학생인권 침해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를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전에 규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된 교사의 교육권은 교육주체 간의 소통, 협상, 합의 등 과정을 통해 교육현장에서 구체화되어야 하며, 이런 소통, 협상, 합의 과정은 학교 자치를 통해서만 활성화될 수 있다. 또한 교육 주체 간의 갈등을 조절하고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장의 리더십이 없이 학교자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현재의 승진제에서는 교장의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는 사실이 수십 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 확증되어왔다. 교장(선출)보직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또한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발달지체 학생이나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체계적 지원 시스템 마련도 교사 교육권 강화를 위해 긴급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교원평가-성과급 등의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폐지하는 것도 교육 주체 간의 교육적 관계 회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교원 참장권 보장은 교사의 교육권 강화를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의 토대이다.

 

셋째, 입시경쟁교육을 해체하기 위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입시경쟁에 찌든 교육 주체들이 학교자치를 법제화해도 이에 적극 참여할 리가 없다. 교사의 교육권을 법제화하여도 교사는 입시준비교육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학생이 배움으로부터의 도피하거나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것도 줄어들 수 없다. 오로지 자녀의 입시경쟁 승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학부모에게 학교 교육에 대한 공적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교사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없기를 희망하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입시경쟁체제가 지속되는 한, 교사의 위기는 반복될 것이며, 교육 주체 간의 관계는 협력보다는 갈등이 우세할 수밖에 없다. 대학평준화와 대입자격고사 도입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개혁 즉 교육혁명을 확산해 나가야 한다.

 

4) 학생생활지도권 문제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교사의 교육권 중에 가장 민감한 주제인 학생생활지도권에 대해 살펴보자.

교사의 교육권 중에서 학생생활지도권은 교육 운동 진영 내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사안이다. 교사의 학생생활지도권이 학생인권을 침범할 우려 때문이다.

반면에, 교육부에서 교사의 교육권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인정한 것이 학생생활지도권이다. 8월에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고시를 발표하였고, 9월 국회에서 개정한 초중등교육법에 교사의 교육권 중에 학생생활지도권만 유일하게 명시하였다. 아마 교원의 다른 교육적 권한보다 학생생활지도권이 교원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데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학생을 통제와 훈육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보수적인 교육적 관점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생할지도권의 문제와 관련하여 몇몇 쟁점이 존재한다.

우선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관계의 현실에 대한 진단의 차이가 존재한다.

교사들은 체벌, 가혹한 벌 등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을 제외하고, 여전히 포괄적이고 막강한 권력과 강제력을 학생에게 발휘하고 있다는 입장과 교사들은 교육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적 권한조차 행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위의 두 가지 현상이 혼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의 인권 침해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점차 많은 교사가 필요한 교육적 권한 행사에 매우 무기력하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을 보여도 이를 적극적으로 교육하거나 지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사의 권한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어디까지 허용되어 있는지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면서도 교사의 교육권의 행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방안의 마련이 시급하다.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 맺기에 필요한 규정과 규범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두 번째 쟁점이 등장한다. 모든 명시적 규율은 학생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무정부주의적(또는 자유지상주의적) 입장과 학생을 일방적인 통제와 복종의 대상으로 보는 권위주의적 관점의 대립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관점 모두 극복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될수록 명시적인 규정과 약속은 더욱 필요해지며, 교사와 학생 모두 권리(권한)와 책임의 주체여야 한다.

학생이 지켜야 할 규정과 약속의 제정은 필연적으로 학생의 자유와 권리의 제한을 수반한다. 이때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 있는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원칙은 크게 보편적 원칙과 특수한 원칙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보편적 원칙은 너무나 유명한 프랑스 인권선언의 조항이다.

4,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연권의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지 아니한다. 그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학교는 많은 학생이 모여서 공동생활을 하는 공적 공간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 각각의 자유와 권리는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따라서 어떤 행위가 다른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지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이 수업 시간 중에 소란을 피우거나 교사의 허락 없이 이동하는 것은 교사의 수업을 방해하고 다른 학생의 수업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규제되어야 한다.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것이 전적으로 학생의 책임은 아니다. 소란을 피우는 학생은 입시경쟁의 피해자이거나 학습결손과 발달지체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소란을 피우게 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둑질한 사람의 경우 그 역시 사회불평등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회불평등을 해결하여 도둑질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불평등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도둑질을 허용할 수 없는 것처럼,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방치할 수없다.)

 

둘째, 특수한 원칙은 학교와 학생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학교는 학생의 성장과 발달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한다. 학생 또한 배움을 통해 자신의 성장과 발달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어떤 자유와 권리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이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유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어 학생이 담배를 피울 자유를 제한하는 이유는 흡연이 학생의 신체적 발달에 매우 큰 위해를 가하기 때문이다. 좀 더 민감한 문제인 스마트폰 사용의 자유를 살펴보자. 담배가 해악만 있고 유익한 점이 거의 없는 반면, 스마트폰은 유익함과 해로움이 공존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이 주는 일상적 유익함과 스마트폰이 학생의 인지적-정서적-윤리적 발달에 미치는 해악을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런 검토 과정을 통해 스마트폰 사용의 제한 정도(수업시간 사용금지, 학교에서 사용금지 등)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학생 나아가 인간이 대부분 능동적 학습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학습과정은 상당한 인내의 시간을 거쳐야만 성취감을 준다. 즉각적인 만족과 쾌락을 유예할 수 있어야 학습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학생들의 자발성에만 기초한 학습 참여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사는 학습에 대한 학생의 흥미와 동기 유발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학생의 적극적인 학습 참여를 위해 상벌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벌은 학생에게 고통을 가하기 위한 징벌보다는 학생의 학습과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로서 작동해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원칙 이외에 다른 이유로 학생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학생다움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내세워 학생의 두발과 복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두발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도, 자신의 발달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학생에 관한 규정은 학생의 권리와 의무(책임)을 동시에 담아야 한다. 동시 교사의 권한과 의무(지켜야 할 제한)도 함께 규정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과 학생은 상호 권리-의무 주체로 만나야 한다. 이러한 상호권리와 상호의무는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되어도, 한쪽의 주체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도 안 된다. 특히 학생들은 어른들의 영향을 받기 쉬워 어른들의 생각을 학생들의 동의라는 형식을 통해 관철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정보의 공유, 토론, 논쟁 등을 통해 학생들이 깊게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또한 이런 규정과 약속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규정과 약속은 학교공동체 구성원의 민주적 논의를 통한 상시적 해석 과정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개정 가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이야말로 실질적인 민주시민교육이며, 학교를 연대와 정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겹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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