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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교사교육권 정립과 전교조의 과제토론회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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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정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강동지회장

 

 

대한민국에서 초등교사로 살면서 2023년 여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올 여름 우리 교육계는 큰 파고를 겪었다. 서이초 교사 사망사건을 계기로 교사 교육권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94일을 정점으로 교사들의 집단행동도 강력하게 펼쳐졌다. 주말마다 집회가 이어졌고 전국의 교사들, 특히나 초등교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되었으니 우리에게 남은 것을 돌아볼 때이다. 그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그렇게 뜨거운 여름을 보낸 것치곤 남은 게 너무 볼품없을지라도 우리는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앞으로 무얼 해야 하는지 한번은 돌아봄 직하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줄 토론회가 지난 122일 전교조 사무실에서 열렸다.

학기말 업무로 모두가 지치는 이맘 때 누가 올까 싶었지만 강원과 전남에서까지 약 40여명의 교사들이 모인 토론회의 분위기는 스산한 겨울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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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조합원에게 교권이란?

 

1교육권의 정의에 대한 이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의 발제로 토론회가 시작됐다. 이현 ()소장은 그간 교권 담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우려들을 살펴보고 권리와 권한의 관점에서 교권을 재정립하면서 교육권이 약화된 원인과 강화의 방안까지 제시하였다.

학교교육의 위기와 교육주체들이 겪는 고통의 문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여러 차례 사회적 의제가 되고 현안과 담론의 주제가 되어왔지만 교사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전교조에서 조차 체계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발제자 역시 본인이 퇴임하기 전 학교에 있을 때 교권이 침해받는다는 느낌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다고 했다. 남교사였고 전교조 활동가였던 고등학교 교사에게는 최근까지도 교권이 문제가 되긴 어려웠을 것 같다. 교권의 문제가 같은 교사라도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체감되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현 ()소장은 가장 먼저 전교조에서 그동안 교권담론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첫째는 교권 담론이 보수적 성격을 갖고 있어서 교권이 강화되면 학생인권이 침해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둘째는 교권 담론이 교육 구조와 제도 등의 문제를 은폐하고 교육의 위기를 교육 주체 간의 갈등 문제로 치환될 수 있다는 우려, 마지막으로는 교권 강화 방안이 교육 주체 간의 협력과 소통을 훼손하고 교육 주체간 권력 게임을 부추길 위험이 크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교사들의 어려움이 가중되던 2010년대 후반 전교조 참교육실에서 이현 ()소장과 함께 전교조의 교권 개념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던 하병수 전교조 경기지부 교사는 그 무렵 전교조에서 교권논의가 시작되자 많은 인권운동가들로 항의를 받았었고 당시에는 교육적 관계에서의 권리와 권한의 문제가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채 학생인권과의 대립적 관점을 해소하지 못했던 점은 과오로 남는다고 이후 지정토론에서 추가 설명을 했다.

 

토론회 시작부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이 부분은 그동안 내가 전교조 교사로서 교권에 대해 그동안 가져왔던 딜레마와 상당히 일치한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 조합원은 대체로 4-50대 중견교사들이 많은데 이들은 신규교사들에 비해 보호자와의 소통에 좀 더 노련함을 갖출 수 있다. 그리고 관리자의 갑질에는 민감하지만 학생이나 보호자와의 관계에서는 교사의 헌신과 노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어 이 부분이 젊은 교사들과 교감하기 어려운 지점이 되기도 한다.

 

나는 혁신학교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데 혁신학교는 공동체 문화 활성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보호자들과 소통과 접점을 늘려 그들과 협력적 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해왔다. 혁신학교 교사들의 일상적이고도 헌신적인 소통 노력은 보호자들을 감동시키는 데 일정 정도 효과가 있었고 학교에 들어오는 악성 민원을 교사 개인이 아니라 관리자를 포함한 학교 전체가 대응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교사의 희생과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을뿐더러, 2010년대 후반부터 학교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보호자들의 요구가 거세지면서 한계가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현 ()소장이 제기한 것처럼 전교조가 교권에 대해 가지는 세가지 딜레마로 인해 학교 내에서 젊은 교사들, 또는 전교조에 반감이 있는 교사들과 정확히 대립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올 해 여름을 겪으면서 그들이 전교조에 대해 어디서 반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분이 조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쉽게 말해, 젊은 교사들은 학생과 보호자들이 너무 어렵고 두려운데 학교에 있는 전교조 선배님들은 교사더러 더 참으라고, 더 열심히 하라고만 하는 것 같아 싫었던 것 같다. 그때는 나도 그들을 ‘MZ’세대라며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이현 ()소장은 이제 학생과 교사를 대립적으로 보는 관점을 벗어나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은 서로 상보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교육 주체간의 관계 문제를 제도와 구조의 문제로 상승시켜, 기본적인 권리와 권한은 제도적으로 정리하되 직접적인 규정은 학교자치를 통해 자율적으로 구체화해가는 방향으로 교권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 나가야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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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교권을 알어?

 

교권에 대해 이현 ()소장은 권리와 권한이라는 측면으로 나누어서 설명했다. 권리는 어떤 주체의 정당한 이해, 요구, 지향 등의 실현을 보장하는 자유와 힘으로, 권한은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기관이나 개인의 권리나 권력의 범위로 정의하였다.

이 중에 교사의 권한과 관련된 교사 교육권이 현재 가장 민감한 주제인 것은 맞지만 교사 교육권도 넓혀보면 교육과정 편성권, 교재선택 활용권, 교육내용 구성권, 교육방법 결정권, 성적 평가권 등으로 다양하다. 교사에게 이러한 권한이 필요한 이유는 교육활동 자체가 높은 전문성과 자율성, 독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발제자는 현재 이러한 교육권이 매우 불안정하고 형식화되어 있다고 진단했다. 나아가 교사가 시민으로서 가지는 권리인 참정권이나 노동권 역시 매우 제한적인데 이는 국가권력이 교사-공무원을 지배세력의 수족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제약해왔으며 현재의 상황에서도 교권이 교사들의 실질적인 권리 확장으로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며 교사와 학생과의 권력 갈등 문제로 축소하려 한다고 보았다.

권한으로서 교사교육권이 최근 들어 점점 더 약화되었다고 보는데 그 원인은 수직권 관료중심체제와 입시경쟁교육,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교사의 전문성 강화 지원체계의 부실에 있다고 짚었다. 교육권 약화의 원인을 분석한 내용과 관련해 강원에서 온 최고봉 교사는 현재의 교육권 약화의 원인은 주요하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기인하는 부분이 가장 크므로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천착해야한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었다.

 

마지막으로 교사 교육권을 강화하려면 전문성 강화와 제도의 개혁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입시경쟁 교육이 해체되고 학교 자치가 살아나야 한다는 이야기로 첫 번째 발제가 마무리되었다.

최근의 교권 담론에서는 교사와 보호자의 대립만 부각 되고, 교육부에서 대책으로 내놓은 것도 결국은 생활지도권에 대한 부분밖에 없어서 그동안 우리가 요구했던 교육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 보인다. 교사들 스스로도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교육권의 범위를 제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우리는 당연히 누려할 권리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권력의 수족처럼 행동해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교권과 교사교육권에 대해 논의가 사회적으로 촉발된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결론적으로 첫 번째 발제는 교육권이 강화되려면 제도적인 보완과 더불어 내부적으로도 전문성 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무엇인가? 교사들의 교육활동에 있어 그 전문성이 보호자들로부터 의심받고 있는 시대에 정당한 교육활동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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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발달로 교권을?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1부 두 번째 발제 아동청소년 발달과 교육권 정립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다. 이 부분은 천보선 진보교육연구소장이 초등 교사들과 함께 체계적 발달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발달의 문제를 교육권 정립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본 내용이다.

천보선 소장은 현재 발달에 관해 많은 학문적, 과학적 논의와 성과들이 있지만 교직의 전문성에 근간이 될 수 있을 만큼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했으며 교직 내부에 실천적으로 공유되지도 못했다고 진단했다. 공교육관계자는 물론이거니와 사교육시장에서까지 발달을 키워드로 다양한 자료와 상품들이 나오고 있어 그야말로 누구나 발달이라는 단어를 들어는 보았을 법한 상황이지만 누구도 속 시원하게 정의할 수도, 그것을 토대로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듯이 발달은 교육활동의 근거이자 목적이며, 교사 교육권의 권위를 인정받는 핀란드, 독일의 사례에서 보면 교사 전문성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천보선 소장은 설명했다. 특히나 최근에는 사회구조와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발달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고 과거의 선발 중심 교육구조에서는 이런 학생들이 배제되고 추방되었지만 이제는 보편교육의 상황에서 학생들의 발달 문제가 교육권 및 교권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에 있는 교사라면 코로나시기를 겪은 학생들의 발달 지연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학교교육은 겉으로는 정상화되었지만 발달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나 지원은 없었던 터라 속으로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학교에서 교사들과 대립하며 관계의 갈등을 만들고 있는 학생이나 보호자는 주로 발달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일 가능성이 높고 특히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발달지연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서 교사들은 저학년을 점점 더 기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초등 1학년 담임교사였던 서이초 교사의 사건은 현재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발달의 문제가 어떻게 교사와 학교교육을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천보선 소장은 이제 발달에 대한 이해와 실천적 전문성은 교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러한 발달론이 교육권 정립의 내용적 토대가 되게 하려면 우선 급별·학년별 발달 과제와 목표 및 발달을 도모하는 원리와 진단, 처방에 관한 체계적인 발달론은 창출해야 하며 교직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교육담론을 발달 관점으로 재구성하도록 공유하고 확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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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이후 질의응답 시간에 최근 교사들 사이에서 전문성 신장에는 소홀하며 자신들의 권익신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흐름도 있어 발달론으로 전문성을 키우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집단적 노력이 가능할지 회의적인 의견도 있었고, 교사의 교육권에 대한 제도적 보장은 과연 전문성이 확보될 때만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마치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와 같은 질문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제도적인 뒷받침과 함께 교사 내부의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는 점이며 그때의 노력은 개인의 역량이나 한계를 뛰어 넘어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집단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운동성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 모두가 공감했다.

 

 

지난 여름 우리는 얼마나 뜨거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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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2년에 임용을 받아 교사가 되었다. 그때는 교사가 안정적 직업 조건과 사회적 존경을 받는 전문직으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2023년에는 학교현장에서 교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대체 지난 20년동안 우리 사회와 학교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교사가 되려는 교대 입시와 임용 경쟁률은 계속 치열해져 왔는데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된 곳에서 교사들은 또 어떤 도전을 받은 것일까?

 

토론회 2부에서는 손지희 전교조서울지부 중등중서부지회장(지회장)의 발제로 현재의 교사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과 지난 교육권 투쟁의 과정이 자세히 다뤄졌다.

 

우선, 현재 교사의 위기는 사회와 학교 구조로부터 비롯된 문제로서 근본적으로는 학교 구성원 간에 학교의 가치와 역할,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간극이 빚어낸 혼란이라는 점에 100% 공감이 갔다. 보호자들은 학교를 통해 자녀의 개인적 성취, 즉 입시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돌봄을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받기를 원한다. 학교를 공공의 참여와 자치로 함께 만들어 가려하기 보다는 사적 서비스처럼 소비하려고 하는 보호자들이 늘어나면서 교사와 보호자 사이에 적대와 반목이 깊어져 왔다. 그 결과로 민원과 아동학대 고소 남발이 위기의 표면적인 문제라면 그 아래엔 학교의 비민주성과 취약한 공동체성이 있다. 보호자의 왜곡되고 과도한 요구와 민원에 위축된 교사들이 방어적 교육활동과 불필요한 가짜 노동에 힘을 쓰는 동안 교사들의 권리침해 문제가 생겨도 관리자나 시스템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므로 반목, 비관, 고립, 각자도생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최근에 일어난 교사들의 자살 사건은 이러한 위기가 임계치에 다다랐다는 방증이었다.

이에 대한 응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 인디스쿨을 중심으로 매주 자발적 집회가 일어나 92일에는 전국 50만명의 교사 중 30만명이 모이는 집회를 하고 서이초 교사 49재인 94일은 초등이 중심이 되어 유래 없는 집단행동도 펼쳐졌다. 지난 여름 기후위기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한반도의 뙤약볕 아래,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위에는 교사들이 있었다. 이른바 교육권 투쟁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권 투쟁이 초등과 2030세대 교사를 중심으로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 일어났다는 점은 초등의 비민주적이고 관료적 조직 문화에 기인한다는 손지희 지회장의 분석에는 다시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94일을 전후 한 투쟁 과정에서도 이 점은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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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교육부는 징계 방침을 발표해 학교 현장을 혼돈에 빠뜨렸다. 교장들은 교육부의 징계 소식에 학교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아 미리 준비했던 휴업일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복무결재를 빌미로 교사들을 괴롭히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이런 일을 처음 겪는 대다수의 교사들은 파업을 하면서도 징계 걱정에 병가가 유리할지 연가가 유리할지를 따지고 등교할 학생들의 수업을 미리 챙기며 학부모들의 반응까지 걱정해야 했다. 투쟁 이후에 생활지도 관련 방침들이 변화하면서 초등에 새롭게 생겨난 분리조치에 대해서도 관리자들은 책임을 피하기만 바쁘고 교사들이 보결을 하듯이 분리조치 학생을 돌보는 웃지 못할 계획들을 세우느라 학교는 다시 분주하다. 언제나 그렇듯 비민주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에서는 업무와 차별이 아래로, 아래로 모인다. 이제 학교현장에서 저경력 교사들이 가장 아래에 위치하게 된 셈이다. 서이초 사건에서도 저경력의 신규교사가 1학년 담임을 연거푸 맡는 과정, 학부모의 민원을 겪으며 혼자서 고군분투했다는 이야기가 과연 민주적인 학교에서 가능할지를 우리는 다시금 되짚어 봐야 한다.

 

박진보 서울지부 교사 역시 발제 이후 지정토론에서 초등은 정부와 지자체의 보육, 복지 시스템의 모든 것이 도입되는 곳으로 책임과 업무가 지속적으로 늘어온 반면, 신자유의 흐름이 가속화되면서 교사와 보호자 사이에 서비스 노동자와 소비자 간의 갑을 관계 비슷한 것이 형성될 만큼 권위와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는 비단 전문성의 문제를 넘어서 소아과 병원이 보호자들의 민원으로 폐업을 하는 현재의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교육권 투쟁의 과정에서 이런 학교의 비민주성과 신자유주의 시대 교육 노동의 이면들이 폭로되고 해결책이 모색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그저 교사 대중이 집단적 연대와 공감을 통해 이런 구조적 원인에 대해 인식하고 근본적 해결에 대한 지향성을 확인했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는 발제자의 분석이 지금도 서글프다.

 

남은 게 볼품없을 지라도...

 

손지희 지회장은 교육권 투쟁의 과정이 자생적이고 수세적 대응이었다는 점에서 지향점이 불분명했고 문제의 핵심적 원인인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에 관한 법률은 제대로 개정하지 못한 채 교권4법이라는 어정쩡한 결과만 얻었다고 분석했다.

 

이번 투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투쟁의 주체가 되어 마땅할 전교조가 주변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약간의 하소연을 하자면 지난 투쟁의 과정에서 전교조는 인디스쿨에서부터 교육부까지 골고루 배척당했다. 사건의 초기부터 학생인권과 전교조는 도매급으로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인 양 호도되었고 뭘 하기만 하면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받았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고, 언론 인터뷰와 교육부 논의 테이블에서도 철저히 배제되어 전교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끌려다니는 투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 조합원들은 굴욕을 참고 집회에 참여하고, 조직하고, 조합원임을 숨기면서까지 집회 운영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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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많은 초등의 전교조 활동가들이 이 시기 상당한 무력감과 울분을 느꼈다. 앞서 이현 ()소장의 발제에서 알 수 있듯이 전교조에서 교권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할 무렵 제대로 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덕에 교사 대중에게 알리바이를 잃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교조에 쏟아지는 무차별적인 혐오와 배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도했다. 그리고 전교조 내부에서조차 그 부분에 대한 부당함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강원지부의 한 초등교사도 강원지역 집회 참여 버스 운영진을 하면서 이와 비슷한 소회를 전했다.

 

그러나 손지희 지회장은 발제에서 전교조에 대한 이런 혐오와 배제는 부당하며 근거없는 것이라 조합 내에서부터 분명히 부당함을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투쟁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한 것과 별개로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는 교육권 투쟁의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교사 면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법 개정을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했고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 행동과 그 이론적 배경을 생산해내지도 못했으며 학교 현장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이분법하여 관계를 파탄내고 있는 학교폭력관련 대책에 대한 수정도 요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번 교육권 투쟁 과정에 보여진 대중의 위기 의식을 교육혁명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바로 전교조의 과제라며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법 개정과 학폭대책 개정을 전면화하여 투쟁의 목표로 설정하자고 제안했다.

 

 

발달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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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에너지가 94일을 정점으로 응축되는 분위기였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날이 마치 수능날 같았다. 30년 전 즈음에 나도 수능을 쳤었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순진했냐면, 학교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수능, 수능, 수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나의 세계가 완전히 수능을 중심으로 돌아갔던 것 같다. 정말 수능이 끝나고 나면 해가 서쪽에서 뜨고 세상이 완전히 변해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너무 이상했다. 여전히 내가 순진한건지 94일에 어떻게든 교사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무런 변화도 느끼지 못 한 채 똑같은 일터로 똑같이 출근하는 것이 너무나 허무하고 허탈한 나머지 배신감마저 들었다.

투쟁 이후 교권 4법은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데 교육부가 던져준 생활지도권때문에 학교마다 학생생활규정을 개정하느라 더 바빠졌다. 제도는 미흡하고 압력은 여전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일시적으로 보호자와의 접점을 줄이거나 회피하는 방향으로 자구책들을 마련해가고 있다. 현재 학교마다 보호자 상담이나 공개수업을 줄이고 보호자와의 대면 접촉을 줄이는 소통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게다가 내년엔 교원 정원이 줄면서 교사들의 업무는 폭력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를 누가 어떻게 나누느냐를 두고 학교는 갈등에 빠지고 기존의 비민주성으로 인해 약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될 우려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피해자는 주변에 널렸는데 도대체 가해자가 누군지 모르겠다.

 

지난 여름을 돌아보면 대중의 에너지는 폭발적이었지만 이후에 이 에너지를 끌고 가시적인 성

과로 만들어나갈 주체가 없었다. 자생적인 투쟁의 한계를 우리 모두 경험했으나 이것이 교사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또다시 흩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