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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바다, 고인자씨와 이소라씨의 경우

 

 담론과 문화2.png

 

 

 

산은 ㅣ 진보교육연구소 연구원

 

 

한낮이었다. 바다를 감싸고도 넘치는 빛은 건너 다려도까지 윤슬의 길을 이루고 있다. 마을은 파도만큼이나 잔잔했다. 이따금 묵묵한 걸음들만 올레길을 지나갈 뿐. 빛에서 나와 바다로 들어가는 수런거림이나 찬바람에 떠는 진저리 같은 건 없다. 해가 바뀌는 겨울이다. 낮은 돌담 위에 파란색 지붕이 엎드려 있다. 북촌은 벽들마다 꽃이 피었고, 검은 돌의 틈에는 뿔소라들이 자라고 있다. 규율과 지배 없이도 모두 적당한 자리에 흩어져서 고요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망가진 태왁에서 비어져 나온 스티로폼이나 누군가의 망사리였을 그물들도 등명대 주변에 흩어져 적막의 일부가 되었다. 돌로 쌓은 등명대에서 총탄 자국을 보았다. 한때는 불턱이었을 오래된 자리조차 사건이 아니라 마을이었다.

 

열 살이었어. 너븐숭이에서 무장대의 기습을 받아 군인 2명이 숨졌다고 나중에 들었지. 군인들이 들이닥쳐서는 사람들을 모두 끌어냈어. 소학교 운동장에서 오돌오돌 떨었지. 춥기도 하고. 우리 교실이 보였어. 깨진 유리창이 꼭 나 같았지. 군인들은 주민을 몇 십 명씩 끌고 가 당팟, 탯질, 너븐숭이에서 죽였어. 군인들이 가고 인기척에 갯강구 흩어지듯 마을 사람들이 숨었어. 돌아오라고, 살아오라고 켰던 도댓불을 살기 위해 꺼 버렸지. 그들의 눈에 띄면 곧 죽음이야. 그날 밤은 겨울인데도 다행히 비가 내렸어. 굴밖에 나갈 수도 없고, 군인들도 수색하지 않았거든. 섬사람들은 우리 바당, 내 우영팟에서 떠난 적 없었는데 뭍사람들이 몰려들더니 난민이 되었어. 무서워도 떠날 수는 없었어. 이 바다에서 나고 자랐지. 떠날 데도 오라는 이도 없어. 총을 든 이들이 알지 못하는, 오지 못하는 곳에 마치 문어나 전복처럼, 돌 틈 사이로 뿔을 벋어 버텨내는 뿔소라처럼. 오름의 틈, 섬 사이, 바다 언저리로 비집고 들어갔지. 살려고. 징헌 세월이었어. 요즘 사람들은 아예 다 드러내놓고 좋아요를 눌러달라고 하드만.

 

대학에 입학해서 순이 삼촌을 읽었다. 학살에서 살아났으나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순이 삼촌을. 안치환의 노래와 이산하의 시로 4.3을 배웠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가에 너븐숭이가 있다. 용암이 흐르다 멈춘 바위 아래 누운 비석들이 저마다 하지 못한,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새긴 채 시체처럼 여기저기 쓰러져 있다. 어떤 말은 하늘을 원망하고, 어떤 글은 바닥에 엎어져 있다. 말의 무덤들에도 햇빛은 평등하게 비추고 있다. 저 말들이 일어서기를. 세월은 모든 것을 흐리게 한다. 소문이 매장된 자리의 나무들도 다시 푸른 잎을 틔울 것이고, 그렇게 세상에 말을 전할 것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220107 너븐숭이 (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032pixel, 세로 226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2년 01월 07일 오후 2:41

 

같이 죽어서 다행이야. 어두운 저승길 외롭지 않게. 망자를 기리는 돌담도 없이 그렇게 묻혔지. 이후로 북촌마을은 잔치를 하지 않아. 모이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 삼춘들도 말을 잃었어. 모두 다 잃은 이들끼리 눈을 마주칠 수 없었어.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서. 여태도 밭을 갈다보면 총알이 나와. 꼭 나를 향해 날아 올 것 같아. 도댓불에 불을 켜면 총탄 자국이 먼저 눈에 들어 오지. 성냥 긋는 소리가 총소리처럼 들려. 학살은 그때 끝난 게 아냐. 우리는 그때부터 계속 죽고 있어. 돌담길은 좁아도 흘러 가지만 기억은 흘러가지 않아. 나무가 아주 조금씩 움직이듯 기억도 그런 거야. 파도가 기슭을 적시고만 떠나듯 가끔의 즐거움은 기억을 잠깐 흔들어 놓고 사라져 갔어.

 

제주의 풀은 모두 한쪽으로 누워있다. 바다 건너 쪽으로. 오름에 이르는 길은 바람에 드러난 나무뿌리들로 계단을 이뤘다. 바다는 오름에 오르지 못하고, 여행자의 바튼 숨이나 오를 뿐. 보이지 않는 새들의 소리 안으로 들어간다. 시선이 닿는 어디든 바다가 무거운 푸른 하늘을 이고 있다. 바닷가 구릉의 밭들은 모양이 제각각이다. 어느 밭에 야트막한 돌담에 둘러싸인 묘비 없는 무덤이 있다. 남은 이들은 돌담을 둘러 죽은 이를 기억하는 것이리라.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과 바다는 태반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 해 이후로 너븐숭이는 지슬이 실허게 커. 그게 꼭 죽은 이들의 살 같아 팔 수 없지. 그냥 다 먹는 거야. 그네들을 거름으로 자란 것이니. 본다고 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안보는 건 아니지. 바다 옆으로 길이 흐르듯, 바다 안에 삶이 흐르듯, 그저 흘러가는 게 삶이야. 소학교를 마치지 못한 채 학교는 그만두었지. 바다가 학교고 일터고 부엌이야. 시를 읽은 적 없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좋아했어. 모가지가 부러지는 꽃, 떨어지고서도 한참을 붉은 꽃, 그 풍성하고 두툼한 푸른 잎까지. 바다에도 나무가 있고 풀도 있고 꽃이 펴. 산호도 우뭇가사리도 바람에 하늘거리지.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낮은 돌담 사이로 흐른다. 길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고,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막혔다가 이내 돌담 사이로 가닥가닥 숨어 들어간. 불기 시작한 바람이 어지럽다. 멈추지 않는 바다는 넓다는 규정에 갇히지 않는다. ~빛은 저쪽 돌담 너머에서 돌담 틈으로 비집고 들어와 나른한 개의 눈가에 머문다. 아직 겨울이라는 것을 잊었다. 불턱을 대체한 어촌계 벽에는 검정 고무옷을 입고 태왁과 망사리를 멘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칠은 새로웠으나 주름 가득한 몸은 늙고 낡았다. 상품으로 소비되거나 소모되지 않은 사물이나 삶은 오래 지속된다. 낡고 늙을 수 있다. 저 파도를 새긴 주름처럼. 시간은 켜로 쌓여 장소를 이루었다.

 

물질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리는 것, 바다 할망에게 기도하는 것, 몸의 기억을 심장에 새기는 일이지. 끝없이 되풀이하지만 그대로인 것은 없어. 바다에 들어갈 때는 같은 자리인데 들어가 보면 늘 달라져 있어. 70년을 물질을 해도 그래. 그래서 무서워. 쑥으로 물안경을 닦고, 10킬로 납덩이를 달고, 들숨 한번 쉬고 곧장 바닥으로 내려가야 해. 두려움보다 빨리. 손에 익은 호맹이가 뿔소라를 건지고, 빗창으로 전복을 따고, 작살로 돔을 잡아. 그게 다 용왕 할망이 주시는 거야. 망사리에 담은 뿔소라가 나보다 먼저 배에 오르지. 100킬로 넘을 때가 있는 망사리보다 내가 더 간신히 배에 올라. 한참 물질하고 나면 힘이 팽겨서 걸을 수도 없어. 기어가지. 바닷가 돌은 울퉁불퉁하고 미끄러워. 물속이 걷기가 낫지. 수협에서 나온 이가 저울에 달아. 망사리가 아니라 내가 달리는 거야.

 

북촌 어촌계는 해녀의 부엌이 되어 여행자를 맞는다. 방역 체크를 하고 가림막을 들치고 어두운 실내로 들어선다. 천장에는 물질을 하는 해녀의 눈이 영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어둠이 익숙해지자 먼저 와 잔치를 기다리는 여행자들이 군데군데 앉아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웹페이지를 통해 잔치의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으나 설렌다. 안내해 준 자리에 앉는다. 의자가 해녀들의 낡은 고무 옷이다. 흐릿한 전등이 모닥불처럼 따뜻하다. 황폐로부터 걸어 나온 불턱에 모여 앉은 온기로, 어둠을 제친 바다 이미지로, 옅은 음식 냄새로, 낯선 경험에 대한 기대로 방안은 달구어졌다.

 

숨이 깊어야 바다가 깊어져. 숨을 나누어야 삶을 함께 하지. 목숨이란 게 그런 거야. 이승이 곧 저승이야. 욕심을 부리거나 조바심을 내면 그대로 바다가 되는 게지. 숨이 다해서 올라오는 길은 얼마나 먼지. 눈에 비가 내리고 기가 멕혀 와. 뼈가 다 무르고 바다가 붙잡아 내려. 내가 죽으면 들어갈 관의 무게도 이 납덩이 무게 같을 거야. 숨비 소리는 숨이 아직 있다는 신호야. 호이. 휘이. 배에 힘을 주고 쥐어짜 내뱉지. 뇌선 하얀 가루 없이는 하루도 못살아.

 

 

 

 

 

 

 

 

 

 

 

낭푼밥상은 해녀의 땅과 바다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어둠을 아주 조금만 밀어내고 있는 불빛, 제주의 밭은 여전히 검은 어둠 속에 누운 채 작물을 토해 낸다. 솥에서 바로 꺼내 포슬포슬한 상웨떡, 고사리나물과 꽃을 곁들인 우영팟. 이어서 돌문어와 갈래곰보, 우뭇가사리의 바당. 벽에 비추인 배경이 바뀌어 상군 해녀의 바다 속을 보여주자 고인자씨가 뿔소라를 날로 썰어 주었다. 술은 없이. 메인인 낭푼밥상은 우영팟에서 기른 채소와 바당에서 나온 해초와 돔베구이. 배지근하다.

 

이악스럽게 살았지. 바다가 가르쳐 준 대로. 바람이 불면 비가 거꾸로 와. 바다에서 절벽으로 비가 올라가 허옇게 부서지지. 오늘은 재수패나 쳐 볼까나. 내 나이 여든이 넘었으니 바다에서 내 태왁 찾을 일 없이 이 방에서 숨이 멎으면 원이 없겠어. 물질은 혼자 하는 게 아냐. 물에 들어갈 때는 먹지 못해. 나와서 이리 불턱에 둘러앉아 먹지. 먹을 거나 변변하나. 우영팟에서 뜯어 온 콩잎, 상추, 된장국, 마늘쫑, 조보리밥, 톳무침, 바다가 준 각재기국만 먹어도 뻬에지근허지.

 

해녀들의 신산한 삶이 담긴 낭푼밥상을 마치고 이소라씨가 고인자씨에게 물었다. “물질을 쉬기도 하나요?” 애 낳는 날도 물질을 나갔어. 한겨울에도 바다에 들어갔지. 나도 중군이었지만 인젠 물질은 못허고 감태나 뜯어. 살암시믄 살아져. 멕여 주는 건 바다밖에 없지. 먹고 살려고 시작한 물질이지만 그 물질로 애들 키우고 가르쳤어. 그래도 제주 여자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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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여기까지다. 고인자씨와 이소라씨 두 분이 한 바탕씩 소회를 토로했다. 그러나 이대로 글을 마치면 도대체 무슨 헛소리인지 허전한 것 같아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되는 군소리를 덧붙인다.

모두가 다 제 나름의 제주를 기억하면서 살아간다. 나에게 제주는 신혼여행지였고, 형제가 살고 있고, 오랜 친구들이 은퇴하고 거처하는 곳이기도 하다. 남산 케이블카를 타 본 적이 없고, 에버랜드를 가 본 적도 없으니 평생을 살아온 서울보다 더 많은 제주의 맛집과 관광지를 다녀 봤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이름도 가물가물한 국제자유도신가 하는 세계화 시장화 저지 투쟁을 위해 한 해에 10번 넘게 제주에 간 적도 있었다.

게다가 제주에 관한 책이나 여행기, 영화는 넘쳐난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청소년 시절 수학여행, 가족들과의 휴가, 친구들과의 나들이, 직장에서의 연수 등 다양한 기회와 다양한 형태로 제주에 관해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20220107 북촌등명대 (1).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032pixel, 세로 226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2년 01월 07일 오후 11:36

 

경험하거나 여행했을 것이다. 고즈넉한 올레길, 밤바다에 밀려오는 포말, 한라산 등반, 숲길 산책, 다양한 오름, 그리고 강정항. 제주는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풍경을 선물한다. 게다가 풍경을 거스르지 않는 숙소, 뭍과는 다른 재료를 사용한 특별한 음식, 무엇보다 바다와 오름이 지천으로 널려 있지 않은가?

제주에 정착한 선배이자 오랜 친구 중에 한 분이 제주 출신이었다. 실명을 밝히면 아시는 분들도 꽤 있을 것 같아 실명은 밝히지 않겠다. 친구들 몇과 함께 나들이 겸해서 제주에서 반가운 해후를 했다. 선배는 농부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제주를 무엇으로부터 지키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라 안개가 낀 평화공원을 산책하고, 돌보는 이가 없는, 후손이 끊어진 산사람들의 무덤에 제를 올렸다. 그리고 함덕에서 북촌에 이르는 서우봉에 올랐다. 북촌 바다와 너븐숭이를 걸으며 말들의 무덤에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웠다. 학살은 특정한 장소가 아니다. 걷는 걸음, 보이는 풍경 모두가 죽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삶의 무게를 각재기국에 소주로 씻어 내려 했으나 실패했다. 날은 어둡고 찼지만, 밤바다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북촌을 다시 찾은 건 2022년 겨울이었다. 바쁜 일정이 없는 아내와 둘만의 느긋한 여행이었다. 하루에 한 곳씩 , 그리고 섬을 찾았다. 승용차는 빌리지 않고 버스로 이동했다. 멀리는 가파도, 다음 날은 차귀도, 가까운 비양도를 다녔다. 마지막 섬이 다려도였다. 북촌에서 바로 건너인 다려도는 고깃배가 드나드는 곳이지 여객선이 닿는 곳이 아니다. 그저 포구에 서서 담배나 피우며 바라볼 뿐. 학살을 기억하며 슬퍼하기에는 환장할 만큼이나 햇빛이 쏟아졌다.

여행 전에 식당을 찾다 보니 해녀의 부엌 2호점이 북촌에 있기에 예약했다. 해녀의 부엌은 어촌계 건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제한된 인원에게만 지역의 재료를 요리로 제공하였다. 해녀의 낡은 고무 옷으로 만든 의자, 황토로 만든 불턱, 공간을 가득 채우는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글을 쓰면서 검색해 보니 지금은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점심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있다. 가격도 다르고 음식 상차림도 다르다. 쓰다 보니 시에서도 그렇고, 군말에서도 해녀의 부엌을 알리려는 것같아 꺼림칙하지만, 글을 쓰게 된 저간의 사정을 말하는 것이니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이 글은 그때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의 삶에 관해 현기영 선생이 최근에 제주도우다3권으로 출간했다. 조천 일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당시 섬 전체의 상황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김석범 선생이 오래전에 쓴 화산도는 너무 분량이 많아서 읽어 내리기 쉽지는 않지만, 방학 중에는 도전해볼 만하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돌아왔거나 돌아오지 않은 난민의 역사와 현재는 2016년에 출간한 자이니치 在日 2세인 윤건차 선생의 자이니치의 정신사 - 남 북 일 세 개의 국가 사이에서를 넘어서는 글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사족, 앞의 시에서 해녀인 고인자씨의 이름은 내가 지어낸 것이다. 그리고 이소라씨는 아내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