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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호 [책이야기] 연결된 위기

2024.01.15 04:16

진보교육 조회 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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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위기

(백승욱)

 

 

 

큰 바위 | 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연결된위기_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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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치는 국제 정세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1980년대 중국이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한 이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미국의 단일 헤게모니 가 지배하는 세계 질서가 형성되었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일한 헤게모니 국가로 군림하였다.

2008년 미국발 금융대공황을 계기로 미국 헤게모니는 쇠퇴하는 반면,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격화하면서 세계질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상, 미중 간의 대립을 축으로 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치-경제적 영향은 물론 군사적 충돌로 인해 생존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우리를 둘러싼 여러 변수 중 하나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안녕을 지키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일 수 있다. 마치 구한말이나 해방 직후의 국제정세에 대한 판단오류가 식민지로 전락과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것처럼, 현재의 전개되고 있는 국제정세에 대한 오판이 우리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 정세의 변화를 해석하는 시각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제각각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편차가 매우 크다.

우선 전쟁 발발의 원인에 관한 판단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러시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전쟁 발발의 원인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나토의 동진과 이로 인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중시한다. 2014년 유로마이단 운동 이후 친러정권이 붕괴하고 들어선 친서방정권이 나토 가입을 추진하면서 러시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친서방정권인 젤렌스키 정권이 돈바스 지방의 친러시아계 주민을 억압하고 탄압하였기 때문에 러시아가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입장은 유로마이단이 우크라이나 국민이 유럽과 통합을 추구하는 자율적 운동이기에 이를 존중해야 하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가입을 추진한다는 이유만으로 예방적-선제적 차원에서 주권 국가를 전면 침략한 것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군사 강국이고 핵 강대국인 러시아가 실제 안보 위협에 직면했다고 볼 수 없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안보 위협에 대한 대응보다는 권위주의 정권인 푸틴 정권이 내부 통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일으킨 침략전쟁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즉 대러시아주의와 애국주의를 고양하여 푸틴의 통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미국(나토)-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책임을 동시에 인정하는 양비론도 국내외 좌파에 꽤 넓게 분포하고 있다.

 

전쟁의 성격에 대한 판단도 매우 다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쇠퇴하는 미국이 새롭게 부상하는 중국과 러시아 등을 봉쇄하는 미국 주도의 신냉전 전략의 산물로 이해하고, 러시아의 승리가 미국 중심의 일극적 세계지배에서 다극적 세계질서로 전환을 촉진하여 좀 더 평등하고 협력적인 새로운 국제질서가 등장할 것을 기대하는 입장이 존재한다.

반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추진 등이 강대국의 영토확장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적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러시아의 승리는 평등하고 협력적인 다극적 질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무질서를 가져올 것이라는 입장이 존재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도발이 북핵과 맞물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증가시킬 것을 우려한다.

 

저자는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세 가지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첫째,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질서의 기본 성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장 흔한 관점은 전후부터 소련 붕괴까지를 냉전 시대로, 소련 붕괴 이후를 탈냉전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냉전과 탈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전후 국제질서의 기본 틀로 얄타체제를 제시한다.

둘째, 러시아와 중국 체제의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들 사회의 특성을 파악해야 중국과 러시아가 현상 변경을 위해 벌이는 행위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이런 움직임이 향후 국제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상할 수 있다. 단순히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대립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행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셋째, 북의 핵무장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중국-대만 양안의 현상 변경 추진이 북한의 핵무장-핵전쟁 위협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책의 제목인 연결된 위기는 바로 이 세 가지 현상이 긴밀한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전후 세계 질서의 기본 틀 - 얄타체제

 

얄타체제의 출발점인 얄타협정은 1945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미국의 루즈벨트, 소련의 스탈린, 영국의 처칠이 모여 합의한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협약이다.

이 협약을 주도한 것은 루즈벨트인데, 그는 전후 세계 질서의 중심 과제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1~2차 세계대전처럼 강대국 간의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강대국들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집단적인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 것. 즉 강대국들이 블록이나 동맹으로 분열하는 것을 막고 단일세계주의를 실현하는 것.

둘째,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한 식민 체제를 해체하고 민족(국민)국가 간의 평등을 보장하고 이들 국가의 발전을 지원하는 것. 즉 탈식민주의를 실현하는 것.

 

2차 대전은 미소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진행되었다. 2차 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선은 독-소 전쟁인데, 미국은 소련에 막대한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였으며, 소련은 엄청난 인명피해를 감수하며 독일과의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미소 간의 신뢰가 크게 상승하였다.

루즈벨트는 전후 새로운 국제질서 수립에 소련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는데, 이는 1차 대전 이후 창설된 국제연맹이 미국 자신을 비롯한 소련 등 강대국의 불참 때문에 무력화한 경험과 탈식민화의 과정에서 비식민지 노선을 고수해온 소련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식민지가 많은 영국이 탈식민화에 동참할지 장담할 수 없었으며, 반식민지 상태였던 중국은 아시아의 탈식민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2차 대전 중에 연합국은 미--소가 3강 체제를 형성하여 전쟁을 수행하였으며 아시아의 중심 세력으로 중국을 포함함으로써 4강 구도로 발전하였다.

 

전후 새로운 세계 질서를 구상하는 데 있어, 강대국 간의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한 주권국가가 다른 주권국가를 영토확장이나 영토적 온전성의 회복(즉 과거 제국의 영토를 회복하는)을 명분으로 침략하는 것을 막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루즈벨트는 미---4개의 강대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들어 이들의 집단적 협력을 통해 침략전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하였다. 이런 루즈벨트의 구상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로 실현되어(프랑스도 상임 이사국에 포함되어 5개국 체제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또한 모든 주권 국가의 평등한 참여를 통해 세계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기구로 유엔총회가 창설되었다. 한편 미국은 영토적 식민주의에 반대하여 자유 기업주의와 자유무역을 주창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튼우즈체제를 출범시켰다.(물론 자유무역을 통해서도 생산성의 격차에 따라 주변부의 가치가 중심부로 계속 이전되었으며, 영토적 지배는 아니지만 다양한 방법의 정치공작과 군사개입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였기 때문에 신식민주의 논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루즈벨트의 단일세계주의에 기초한 얄타 구상은 냉전에 의해 변형된다. 단일한 세계가 아니라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두 세계로 분할된다. 유럽은 열전 없이 미국 주도의 나토 창립과 이에 대응하는 소련 중심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 창설로 냉전 체제가 수립되었으며, 아시아는 한국전쟁이라는 열전을 거치면서 냉전적 질서가 공고하게 뿌리내렸다.

그렇다면 냉전 체제의 도래로 얄타 구상은 완전히 붕괴하였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비록 단일세계주의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냉전 시기에도 유엔안보리 중심의 집단 안보 체제는 유지되었고,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은 억제되었으며, 탈식민화도 계속 확대되었다.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 탈냉전 시대에는 미국 주도의 단일세계주의에 더 가까운 국제질서가 형성되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우선 미국이 주도하는 신냉전의 도래로 해석하는 관점이 존재한다. 2008년 세계금융공황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고, 중국이 러시아 등과 연대하여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가자,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는 신냉전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이 관점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의 신냉전 정책에 의한 안보 위협과 봉쇄에 대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 대결하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한 신냉전의 프레임에서는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립이라는 환영이 느껴진다. 비록 러시아와 중국이 온전한 의미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볼 수 없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국가로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을 낼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신냉전의 틀로 해석하기에는 어려운 여러 현상이 존재한다.

냉전은 이념이나 체제 대립을 기본으로 한다. 그런데 중국이나 러시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새로운 대안적 경제 체제를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의 틀로 진영을 나누는 것도 명료하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 내에도 튀르키예나 동유럽 국가 중에 권위주의 국가가 상당수 존재한다. 미국 또는 중국-러시아를 지지하는 국가들도 자유주의나 권위주의에 대한 이념적 선호가 아니라 경제적 실리 때문에 이들 나라를 지지하는 것이다. 즉 이전의 냉전 시대에는 완전하게 구분되는 이념과 체제를 둘러싸고 경계선이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세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경제적 실리, 정치적 후원, 지정학적 위치 등에 따라 친소 관계나 연대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도 전략적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냉전 시대와 달리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량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단지 미국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을 막기 위해(미국은 중국의 기술 탈취 때문이라 주장한다) 제한적 견제 정책 또는 디커플링 정책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중국과 러시아의 최근의 행보를 미국의 신냉전적 봉쇄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두 나라가 지닌 내부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각국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금융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의 통합성을 강화하고(이른바 금융 세계화, 이 시기 대다수의 국가가 자국의 주식시장, 채권시장, 환시장 등 금융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였으며, 미국의 초국적 금융자본이 개방된 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였다), 초국적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세계 무역량도 급증하였다(1990년대와 2000년대 동안 세계 GDP 대비 세계 무역량이 두 배로 급증하였다). 중국은 이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올라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각국 경제에 커다란 제한을 가져다주었다. 금융과 자본의 세계화로 각국 정부의 경제적 자율성과 통제력이 극도로 취약해졌다.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모든 나라에서 불평등을 확대하였다. 세계의 중심부에 포섭된 부분과 배제된 부분 사이에 격차가 확대되었고, 각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보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다른 나라 노동자와의 경쟁에 내몰렸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대거 유입되면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극도로 취약해졌다.

이런 가운데 2008년 금융대공황으로 금융 세계화의 모순이 폭발하고 장기적 경기 침체와 저성장이 뉴노멀로 자리 잡으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각국은 양적완화나 부채 확대를 통해 경제의 붕괴를 막을 수 있었지만, 경기 침체와 불평등의 확대로 사회구성원들의 생존 불안과 고통은 나날이 커졌다. 하지만 각국 정부는 이에 대한 대처에 무능한 모습을 노출하면서 통치 위기가 고조되었다.

 

다당제 국가에서는 대중의 불만이 잦은 정권교체로 표출되었으며,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이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기존의 주류 정당 밖에 있는 포퓰리즘 세력들이 득세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에 다당제가 발달하지 못한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대중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등을 앞세워 대중의 이탈과 불만을 무마하려 한다.

저자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중국이 중국몽을 앞세워 미국과의 대결의식을 고취하고 무력을 불사한 대만 통일을 부르짖는 것 모두 권위주의 국가가 내부적 통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응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주의를 기울일 점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추구가 이전에 볼 수 있는 전쟁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2차 대전 이후 강대국이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영토적 온전성을 회복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다른 주권 국가를 침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또한 러시아와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나라 간의 분쟁이 무력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경찰국가로서 책임을 지닌 당사자가 스스로 무력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강대국의 집단적 협력을 통한 세계 질서 유지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보면 최근 세계질서의 변화는 냉전 체제로의 회귀가 아니라, 얄타 체제의 해체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얄타 체제의 해체가 더 나은 세계질서로의 전진이 아니라, 얄타 이전으로 즉 1차 대전 전후의 열강들의 분쟁 시대로 후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저자는 관성적인 반미주의와 진영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NL이 주도하고 있는 한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미국에 반대하면, 미국의 헤게모니가 쇠퇴하면 무조건 좋다는 통념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의 변화가 무조건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무질서와 폭력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현재의 세계 질서의 현상 변경을 추구하는 중심 세력은 중국과 러시아다. 이들 나라의 현재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야 앞으로 도래할 세계 질서의 변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국 특색 민주주의?

 

시진핑 체제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는 2021년에 발표된 3차 역사결의이다. 중국공산당은 100년 동안 세 차례의 역사결의를 발표하였다. 1945년 발표된 제1차 역사결의에서는 세 차례의 좌경 기회주의를 청산하고 마오쩌둥 중심의 당 지도 방향을 확립하였다. 1981년 발표된 2차 역사결의에서는 문화대혁명의 오류를 평가하고 개혁개방의 방향성을 수립하였다. 2차 결의는 19568차 당대회 시점으로 재연결하면서 생산력 발전을 주요 모순이자 핵심과제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 자본주의 세계질서에 대한 점진적 편입 시도 즉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하였다. 또한 문화대혁명의 오류가 발생한 중요 원인을 마오쩌둥 개인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당내 각 세력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집단지도 체제를 제도화할 것을 천명한다.

 

2021년 제3차 역사결의는 앞선 두 차례의 역사결의와는 상이하다. 대내적으로 앞선 시기 당의 지도노선을 비판하여 새로운 노선을 수립할 필요성이 없었고, 2차 결의와 시기를 구획하기 어려운 개혁개방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었다.

3차 역사결의에서는 새로운 시대구분이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통상적으로 중국 혁명기(1911~1949), 사회주의 건설기(1949~1976), 개혁개방기(1976~현재/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로 구분하였다.

하지만 3차 결의에서는 시진핑 집권 이전의 앞선 100(1911~2011)과 시진핑 집권 이후의 앞으로의 100(2012~)을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앞선 100년이 아편전쟁 이후 중화민족의 굴욕과 분투의 시기였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신시대로 중국 공산당의 전면적인 영도를 통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열어나가는 시대이다.

 

3차 결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화민족에 대한 반복적 강조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화민족이라는 단어가 각각 28차례와 53차례 등장한다. 이전까지 중국공산당에서 역사의 주체는 인민계급이었다. 하지만 3차 결의에서는 중국인민이라는 표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중화민족이 더 중요한 역사적 주체이자 실체로 등장한다. 이제 중국 공산당의 목적은 중국 인민의 해방이 아니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다. 중국 사회주의는 인민의 해방이라는 보편적 목적에서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특수한 목적으로 이행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중화민족이 당했던 굴욕을 극복할 필요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당한 대표적인 굴욕은 아편전쟁의 패배로 인한 홍콩의 상실과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한 대만의 상실이다. 따라서 홍콩을 중국으로 편입시키고 대만을 병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로 부상한다. 중화민족의 영토를 온전하게 회복하는 것이 중화민족의 굴욕을 극복하고 위대한 부흥을 이루는 중요한 징표가 되는 것이다. 시진핑은 3연임의 중요한 명분으로 대만과 통일 과업 수행을 내세웠다. 따라서 대만 병합은 시진핑 체제 존속을 위한 핵심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무력을 앞세운 대만 병합의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3차 결의의 또 다른 핵심은 개혁개방 이후 유지되어왔던 집단지도체제가 사실상 무너졌다는 점이다. 3차 결의에서 두 개의 확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데, ‘시진핑의 당 중앙 핵심 지위와 전당의 핵심 지위 확립’ ‘시진핑 사상을 전당, 전국 인민의 지도 사상으로 확립으로 정리하고 있다. 3차 결의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전면적 영도가 모든 서술의 중심이 되고, 당의 중심에 시진핑이라는 지도자와 시진핑 사상이 자리한다. 1~2차 역사결의가 과거사에 대한 평가와 반성에 중점을 두고 당의 올바른 위상과 지도이념을 재정립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3차 결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발언하는 것이며, 미래의 중심에는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전면적 영도가 있다. 이제 당은 다시 무오류의 당이 되어(단지 일부 당원의 부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의 영도를 위해 부패와 전쟁이 필요할 뿐이다)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으며, 시진핑의 지위와 사상은 절대적인 위상을 지니게 된다.

결국 시진핑은 관례를 깨고 3연임을 추진하여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으며, 정치국 상무위원들도 계파 안배를 무시하고 모두 시진핑의 측근들(시좌쥔)로 채웠다.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으로의 권력의 집중은 시진핑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시진핑이 중국에 산적한 문제들을 제대로 풀지 못하면 모든 책임이 시진핑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다당제 국가에서는 대중의 불만을 정권교체로 해소할 수 있지만, 더욱 강력해진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의 경우 대중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중국의 디지털 감시 체계가 더욱 고도화되었다.) 대중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애국주의 캠페인이며 이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중의 불만이 고조될수록 애국주의 캠페인은 구호에서 행동으로 전화될 수밖에 없으며, 그 첫걸음이 대만을 무력으로 병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 내부 모순의 심화가 대외적 침략성의 강화로 귀결되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며, 중국도 그런 길을 갈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왜 중국은 권위주의 강화의 길로 가고 있을까?

중국은 개혁개방 시기 세계경제로 통합에 힘입어 고속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앙과 지방의 갈등, 지역 격차, 도농 격차, 국내 중심과 해외 중심의 격차, 관료적 후원을 입은 세력과 일반인들의 사이의 격차 확대 등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또한 2008년 금융공황 이후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저성장이 뉴노멀이 되면서 중국 경제의 고속성장도 막을 내렸다. 출산율 저하로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도 벌써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농촌에서의 값싼 노동력의 유입과 해외자본 유치 등 투입 요소 확대로 고속성장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첨단 기술 혁신을 통한 신성장동력을 개척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쉬운 과제가 아니다. 미국도 중국과의 우호적 협력 관계에서 부분적 견제 관계로 돌아섰다. 중국은 이제 겨우 국민소득이 1만불을 넘은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정체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중진국 함정).

이런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진핑 체제가 들어섰으며, 지난 10여 년간의 준비를 거쳐 시진핑 체제는 시진핑을 핵으로 하는 당의 전면적 영도라는 권위주의 체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을 결정하였다. 또한 경제 체제에서 국가와 당의 개입을 확대하여 시장자본주의보다는 국가자본주의의 색채를 더욱 강하게 띠게 되었다.

 

시진핑 체제의 권위주의적 정치제도와 국가자본주의적 경제체제는 결코 보편적인 대안 모델이 될 수 없다. 중국이 미국의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이런 중국의 도전이 좀 더 성숙한 국제질서의 도래를 기대하기 쉽지 않은 근본적인 이유이다.

 

나아가며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2010년대 이후 양국의 군사적 관계가 긴밀해져 러시아의 첨단 무기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시작되자 두 나라의 경제적 협력 관계도 긴밀해지고 있다. 2022년초 베이징 동계올림픽 에서 시진핑과 푸틴이 친밀한 관계를 연출한 이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였다. 2023년에는 모스크바에서 시진핑-푸틴 회담이 다시 개최되었다. 중국이 러시아가 벌인 전쟁을 지지하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북핵 문제이다. 중국은 오랫동안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찬성하였다. 중국의 발전을 위해 한반도의 안정이 필요했다. 이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발사하면 중국과 러시아 모두 유엔안보리의 제재 방안에 찬성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전쟁 방지를 위한 두 축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이런 기류에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더 이상 북한의 제재 방안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반대입장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미중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중국은 북한 핵이 미국을 견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대만 무력 병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핵은 미국의 대응 역량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핵무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전의 핵무장이 주로 대미 협상용 카드였다면, 이제는 확증 보복용(상대방이 핵을 사용하면 핵으로 보복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추어 상호공멸의 위험 때문에 상대의 핵사용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확전과 선사용의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북한의 국체로 선언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비핵화의 의지가 없음을 표명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 타격에 필요한 전략핵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과 더불어 남한과 일본을 타격 대상으로 하는 전술핵 능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은 종래 핵사용 원칙으로서 전쟁 억제와 응징보복을 강조했는데, 2022년 새롭게 제정된 핵무력정책법은 5개 핵사용의 조건(6)과 지휘통제권 조항(3)을 제시하여 핵무기의 선제적, 적극적 사용을 규정하였다.

저자는 남한에 비해 재래식 무기가 열악한 상황에서 북한이 전술핵 사용의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전략핵으로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고 전술핵으로 남한을 협박하거나, 선제적 사용을 통해 남한을 굴복시키려 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고 판단한다.

특히 중국에 의한 대만 위기가 고조되었을 때, 북한의 전술핵 위협도 함께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중국의 대만 병합, 북한의 핵위협은 연결된 위기로 나타날 것이며, 만약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 승리로 귀결되면 중국과 북한의 도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을 우려한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선 얄타 체제에서 미국의 위선과 이중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얄타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모든 주권 국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미국은 끊임없이 다양한 정치공작과 군사개입을 통해 다른 나라의 내정을 간섭하여 미국의 세력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려 하였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각종 정치적 군사적 개입을 통해 친미 정권을 확대하였다.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불법적인 쿠데타 세력이나 반군 세력을 지원하였고, 독재정권도 지지하였다. 미국이 내세운 가치는 탈식민화와 자유민주주의였지만 실제로 미국을 움직인 동력은 미국의 세력권과 영향력을 확대하여 미국의 국익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9.11 사태 이후에는 네오콘이 중심이 되어 선제적-예방적 차원의 전쟁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침공하기도 하였다. 물론 미국이 자국의 영토를 확장하거나 직접 지배를 위해 침략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세력권 확장과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무력을 사용한 것 자체가 얄타체제를 위기에 빠뜨린 것은 아닐까? 즉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얄타체제가 위협받기 이전에 이미 미국에 의해 얄타체제가 형해화된 것은 아닐까? 따라서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의 도발을 지지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 동맹도 지지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저자도 지적하였지만,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여 중국이나 북한의 안보 위협을 해결하려 하는 경우,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립 국면에서 미국의 한국군 동원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미국에 의해 전쟁에 휩쓸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렇듯 상황은 매우 복잡하며, 우리가 갈 길은 명료하지 않다. 이 책은 한국의 진보진영에 널리 퍼져 있는 관성적 반미주의-반일주의 그리고 옛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최근의 국제 정세의 변화와 특히 중국사회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독자적 길을 걷기에는 역량이 매우 부족한 한국 사회가 올바른 선택지를 찾고 새로운 방향을 개척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이 책에서도 구체적인 대답을 구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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