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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한 교육과정이론의 비판적 검토

 

김학한 (은평고등학교)

 

지금까지 여러 교육과정 이론이 학교 교육의 무대에 등장하였다가 퇴장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학문중심 교육과정, 경험중심 교육과정 등장하였으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정하였고, 최근에는 OECD의 연구를 기반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이 교육과정 무대에 등장하여 기존 교육과정을 대체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새로이 등장한 역량기반 교육과정도 인간 발달과 사회 발전의 길을 명료하게 분석 또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이 달성할 핵심적 교육목표와 경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함으로 인해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1. 학문(지식)중심 교육과정의 한계

 

지식중심의 교육과정은 그리스 시대에 뿌리를 둔 중세기 ‘7자유학과(문법, 논리학, 수사학, 대수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로부터 출발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교과(고전과 문학, 역사, 종교, 철학)’를 거쳐 학교교육의 기본적인 교육과정으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식중심 교육과정은 최근까지도 교육의 기초로서 교양교육론을 통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지식교육과정은 교양교육이 인간으로 하여금 가치의 위계를 이해하고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인간에게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다. 교육의 과제는 인간으로 하여금 가치의 위계를 이해하고 확립하고, 그에 의해 살아가도록 돕는데 있다. ... 만일 모든 인간들이 자유로워야 한다면 모든 인간은 이 교양교육을 받아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 ...교양교육의 목적은 이해와 판단의 능력을 발달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지식중심의 교육과정은 교과의 학습을 통해 인간의 정신능력 지각, 기억, 상상, 추리, 감정, 의지 등이 단련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정신능력은 다른 사태에 대한 대응 시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식중심 교육과정은 미국에서는 ‘지식의 구조’, 영국에서는 ‘지식의 형식’으로 재등장하였다.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닉 발사 이후 미국 교육의 근본적 문제를 아동중심주의, 생활적응 교육으로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논의하였으며, 브루너(J.S.Bruner)는 이러한 논의를 정리하여 ‘교육의 과정’이라는 책자를 통해 ‘지식의 구조’를 제시하였다.

 

“지식의 구조란 단순한 사실들이나 잡다한 현상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이러한 사실이나 현상을 서로 관련짓고 체계화하는 주요 개념이나 원리이다. 브루너에 의하면 각 학문의 기저를 이루는 구조는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질 수 있다. 말하자면 연령에 관계없이 지식의 구조, 즉 교과의 핵심적인 개념과 원리를 가르치되 그것을 학생들의 발달단계에 맞게 번역하고 계열적으로 조직해서 제시할 필요가 있다.”

 

브루너에 의하면 교과의 핵심적 개념과 원리를 가르침으로써 사실이나 현상을 관련짓고 체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식의 구조는 연령에 관계없이 학습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맞도록 정정하면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초등교육에서부터 중등교육에 이르기까지 개념적 사고의 나선형적 교수-학습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브루너는 아동에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구조를 교수-학습의 목표로 동일하게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인간의 발달 단계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념적 사고의 발달이 본격화되는 것은 청소년 단계이다. 아동과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연령에 관계없이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은 학습자의 발달상황과 충돌하면서 교수-학습에서 학생의 주체적 발달에 진척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학습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저하시키거나 왜곡시킬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구체적 수준에서 추상적 수준으로 상승하고, 부분적 인식에서 총체적 인식으로 발전해나간다. 따라서 현상적 인식에서 개념적 인식으로 전진하고 심화시켜가는 수준과 속도는 인간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배치되어야 한다.

한편 영국의 피터즈(R.S.Peters)와 허스트(P.H.Hirst)는 인간의 경험은 여러 가지 지식의 형식으로 구조화되고 몇 가지로 구분될 수 있는데, 논리학과 수학, 자연과학, 인간과학, 역사, 종교, 문학과 예술, 철학, 도덕적 지식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지식의 형식들은 인간이 장구한 세월 동안 누적적으로 발전시켜온 경험을 각각 개념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이러한 체계화는 특정 개인의 취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오랫동안 공동으로 발전시키고 엄밀하게 정련시켜온 것이라는 점에서 공적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우선적으로 이 공적 전통의 체계, 특히 지식의 체계 안으로 입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학교에서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이론적 지식과 주지 교과의 가치를 정당화하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개념적으로 체계화된 지식의 형식을 교육하는 것은 인류의 실천을 통해 검증되어 온 지식에 기반하여 향후의 인간의 삶을 지속하는데 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지식의 형식은 노동과 사회생활을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체계화된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과정 구성에서 올바른 기조를 걷고 있다. 그러나 다가올 삶에 입문하는데 ‘지식의 형식’을 중요한 매개로 제시하고 있지만, 지식의 형식이 왜 내재적 가치를 가는가에 대한 해명이 부족하다. 피터즈는 이를 공적 전통의 체계로 선험적인 정당화를 시도하지만 그것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인간의 축적된 경험으로, 다가올 미래사회에 새로이 등장하는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즉 미래사회를 개척해나가는 데 필요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 지식의 형식이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 해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학문을 배움으로써 교과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만 아니라 학문적 방법, 학문적 사고의 숙달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나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이를 분명하게 정립하지 못함으로써 다른 교육과정으로부터 비판에 직면하였다.

첫째, 유아-아동-청소년에서 성인에 이르는 과정에서 시기별로 발달하는 고등정신기능을 종합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전 연령대에서 개념체계를 가르치는 교육을 구성함으로써 발달 단계를 무시하였고 결과적으로 아동의 발달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아동에게는 이 시기에 발달의 선도하는 고등정신기능인 자발적 주의, 의식적 파악, 의지적 사용을 중심으로 개념체계의 교육을 결합하는 교육과정을 구성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식의 구조, 지식의 형식 등 개념의 체계에 대한 학습과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의 관계를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주체적 인간으로의 성장과 발달에서 가지는 개념적 사고의 지위를 분명하게 정립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주체적 인간 형성에 핵심인 개념과 개념체계를 교수-학습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발달에 기초하지 않은 교육과정이라는 아동중심주의로부터의 비판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2.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문제점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미국에서 진보주의 교육의 등장과 함께 본격화되었는데 초기 진보주의 교육은 아동의 흥미나 관심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의 개편을 추진하였다. 주지 교과를 중심으로 한 성인사회의 요구가 형식화되고 획일화된 교육과정이 아니라 아동의 흥미와 요구에 기반하여 아동의 발달을 이루어내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진보주의교육협회는 교육의 목표를 개인의 자유롭고 충만한 발달에 두고 진보주의 교육의 7대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① 자연적으로 발달할 자유 ② 모든 활동의 동기로서의 흥미 ③ 감독관이 아닌 안내자로서의 교사 ④ 아동 발달에 대한 과학적 연구 ⑤ 아동의 신체적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 ⑥ 아동의 삶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학교와 가정 간의 협력 ⑦ 교육운동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는 진보주의 학교 등이다.

보비트(F.Bobbitt)는 인간의 경험을 몇 가지 주요한 영역으로 구획 짓는 활동분석법을 통해 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10개의 주요영역을 제안하였다.

언어활동 / 건강 / 시민권 / 일반 사회관계 / 정신적으로 적성 유지 / 여가 업무 / 종교활동 / 부모로서의 책임 / 비전문화된 실제활동 / 직업활동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이후, 미국에서 ‘8년 연구’를 통해 타일러(R.W.Tyler)의 중핵 교육과정으로 전개되었다. ‘8년 연구’는 1932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인 학생이 고교 4년과 대학 4년의 8년 동안 경험한 전통적인 교육과 진보주의적 교육 간의 효과를 비교하기 위한 연구이다. 중핵 교육과정은 청소년의 필요와 흥미를 중심으로 개발한 코스를 모든 학생이 공통적으로 배우도록 하는 것으로 청소년에게 필요한 삶의 영역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전통적인 교과들을 그 운영과정에 통합하여 배치하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험주의 교육과정은 생활적응 교육으로 나타났다. 생활적응 교육의 주창자들은 학생들의 높은 중퇴율과 학교에서의 소외에 관심을 가지고, 이 문제의 원인이 대다수의 학생들과는 거리가 먼 교육과정 때문이라고 보았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들을 학문적 교과를 추구하는데 적합하지 않은 소수의 학생들에게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해왔으나, 이러한 학생들이 수가 점차 증가하면서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생할적응 교육은 바로 이 문제에 주목하여 중등학교 교육과정을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교과로부터 기능적인 삶의 영역으로 변화시키고자 함으로써 미국 전역에서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주의 교육과정에 대해 지성의 발달을 강조한 학자인 베스토(A.Bestor)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학교는 지성의 발달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특별한 종류의 기관으로, 청소년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학교의 임무가 아니다.... 지성의 발달은 대학에 갈 소수의 학생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가치 있는 것이며, 학교의 핵심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듀이는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주창하면서도 아동중심 교육이 교과 대신에 아동만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듀이에 의하면 학교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성의 발달이어야 하며, 이는 개인이 자신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지적인 사회적 행위가 더 나은 사회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듀이는 ‘아동과 교육과정(The Child and the Curriculum)’에서 아동의 미성숙에 대한 경시와 그에 대한 감정적인 이상화 두 가지 모두를 비판하였다. 듀이는 아동중심 교육과정 옹호자들에게 교과가 아동의 경험과 유리되어 고정되고 이미 만들어졌다는 개념을 버리고, 아동의 경험을 풍부하고 활기가 넘치기는 하나 미발달한 것으로 간주하라고 하였다. 듀이에게 교과는 아동의 경험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험으로 통합되어야만 했다.

 

“과거의 교육을 비판하는 것이 곧 성인의 지식이나 기술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전혀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고 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성인의 지식이나 기술은 분명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지도적인 가치를 지닌다. 또한 개인적 경험에 기초한 교육은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과거의 어느 교육보다도 더욱 성인과 자라는 세대 간의 친밀하고 다양한 접촉을 강조한다. 따라서 새로운 교육은 오히려 타인으로부터의 지도를 더욱 요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통적 교육체제는 학생들에게 어른의 기준과 교과 그리고 방법을 성장해가는 동안 부과시키는데, 어른과 학생 간의 간격이 매우 커서 부과된 학습과 행위의 방법은 모든 학생들의 현재의 능력과 비교해볼 때 부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즉 듀이에게는 전통적인 교육체제가 제공하는 경험은 학생들이 실제 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과 관련성이 없는 잘못된 경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그 자체로서 교과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경험에 있어서의 하나의 관련된 요소로서 교과에 관심을 가진다. 즉 교과를 이해하는 것은 그것을 (성인의 목적에 맞는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듀이는 경험에 기초한 교육의 가장 핵심이 되는 과제는 경험의 계속적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종류의 경험을 현재에 갖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듀이의 입장과 관련하여 첫 번째 문제는 ‘계속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종류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서 보듯이 발달의 문제를 ‘경험-경험’ 관계로 정리한다. 그러나 경험은 ‘주체-대상세계-주체’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분석을 진행하지 않고 ‘주체-대상세계’의 관계를 경험으로 치환하였다. ‘주체와 대상세계’의 관계, ‘인식과 실천’의 관계가 ‘경험’으로 혼합되어 불투명해지면서 성장과 발달이 이루어지는 동력과 계기에 대한 분석이 더욱 어려워진다. 동일한 대상과 세계가 주어진다 해도 주체의 상황에 따라 발달에 상이하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이 분석되지 않고 경험으로 혼합되어 버림으로써 적절한 교육이 도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듀이는 아동중심 교육과정과 교과교육을 경험으로 통합하면서 경험의 성장을 제시하였지만, 경험을 성장시켜가는 기초이자 핵심인 주체의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에 대해서 주목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주체적 인간은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고등정신기능이 발달하면서 현실화되는 데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아동의 발달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인간 발달 전체에서 핵심적 과제인 개념적 사고의 형성과 숙달을 놓치고 있었다.

청소년기-이행적 연령기에는 생각의 내용과 생각의 형식에 변화가 생긴다. 특히 ‘성적 성숙기는 지적 발달의 강력한 상승기이며 이 시기에 처음으로 생각이 무대에 전면으로 부각되며’, ‘어린이의 시각-도식적 생각과 심상적 표상적 생각’의 반경은 축소되고 지성화 과정을 통해 개념적 사고로 이행한다. 따라서 청소년기 교육과정은 어린이의 생각에 나있던 길로부터 도약하여 청소년의 발달에 보조를 맞추어 개념적 사고를 심화 확장하고 숙달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런데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청소년기의 개념적 사고의 발달에 보조를 맞추거나 발달을 선도하기보다는 어린이의 수준에서 교육과정의 기조를 유지하고 답습한다는 점에서 청소년의 역동적 발달과 부조응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아동기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경험주의 교육과정의 문제점은 청소년기 사물의 ‘일차적인 외적특성을 뒤따르지 않고 바로 본질적 특성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나는’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분명해지고 증폭되었다.

결국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개념과 이론을 본격적이고 집중적으로 교수-학습하지 않음으로 인해 청소년기 개념적 사고의 발달이라는 중등교육단계의 과제와도 맞지 않게 되면서 아동의 발달을 표방하였음에도 교육과정의 무대에서 오래 자리 잡지 못하였다.

아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입장은 이러한 이론적 비판만이 아니라 ‘현실의 비판’으로 쇠퇴하였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교육과정 구성에서 학문을 배제하면서 사회의 생산력 발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소련의 스푸트닉호 발사 이후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현실에서 지배적 교육과정의 지위를 내놓아야 했다.

결국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아동의 발달을 이끄는 교과의 역할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인간의 누적된 지식의 전수로서만 제시함으로써 인간 발달에서 지식의 역할인 개념적 사고의 발달을 중심고리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 교과교육이 성인들의 지식을 주입하는 외적 강제라는 비판에 직면하였다.

경험중심 교육과정도 아동의 흥미와 욕구에 기초한 발달을 주창하였으나 고등정신기능의 전반적인 발달, 청소년기의 발달을 이끄는 개념적 사고의 발달이라는 중심고리를 놓침으로 인해 아동의 자발성 강조에는 의의를 가졌으나 교육을 통한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성장에 한계를 드러내었다. 아동 단계에서 세계에 대한 자발적 주의, 의식적 파악을 강화함으로써 개념적 사고의 영역으로 이동하여야 하며, 이것은 아동의 흥미와 관심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한 차원 상승시켜나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개념발달을 책임지는 직접적 요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전체 과정의 새롭고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특성은, 개념 형성 과정의 수단으로 특정하게 말을 사용하고 기호를 기능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개념 형성과 관련되어 흔히 언급되는 모든 기초정신기능들은 (연상, 주의, 표상, 판단 등) 실제로 개념의 형성과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기호나 말에 의해 매개된 과정으로, 또한 주어진 과업을 해결하기 위해 지향되는 과정으로 참여한다. 오직 이 새로운 종합안에서 각자의 과정들이 그 진정한 기능적 의의를 획득하게 된다.[5-3-12]”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청소년기에 개념적 사고의 발달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아동기에 첫째, 청소년기 이전에 개념형성에 참여하는 기초 정신기능들이 충분히 발달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개념형성의 핵심기능인 말과 기호를 기능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충분히 발달되고 숙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청소년기 개념적 사고발달에 필수적인 것이며 아동기 교육과정에서 기초적으로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과 기호를 기능적으로 사용하여 개념 이전의 전(前)개념(복합체-의사개념) 단계 내에서 진전이 축적되어야 하며,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 지속적으로 전진하여야 한다. 아동들도 의미파악 수준에서는 다르더라도 성인의 말과 개념을 바탕으로 자연과 사회의 형태와 운동에 대해서 파악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아동들의 추상화 수준과 범위가 청소년이나 성인과 차이가 있을지라도 세계에 대한 교육과 학습이 체계적,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 단계에 혁명적으로 개념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이러한 관점의 결여는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아동기 초등교육 단계에서 나타내는 교육적 문제의 배경이 된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직접적 경험의 수준에서 교수-학습을 제한하고 말과 기호의 사용과 숙달을 위한 교수 학습이 아동의 흥미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등한시 하는 것, 세계(자연과 사회)에 대한 교육이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일상적 설명에 머무르는 것, 아동의 개념적 이해의 수준을 확장하고 상승시키기 위한 목적의식적 교수-학습을 진행되지 못하는 것 등은 청소년기의 발달에 발판을 갖추지 않은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학문중심 교육과정 역시 아동기에 발달시켜야 할 고등정신기능을 형성하고 발달시키는 것보다는 어린이의 수준에 맞게 학문을 교육하면 이해시킬 수 있다는 가정에 기초하여 이 시기 필요한 말 발달과 기호의 숙달에 대한 교육적 관심이 약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오히려 청소년기의 개념적 발달에 튼튼한 뒷받침을 할 수 없게 만들며, 의사개념 수준에 인식하는 것을 마치 개념적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교육적 결과를 오인하여 성인 수준의 개념적 이해를 교수-학습의 과제로 부과함으로써 대부분의 학생들을 교육적 강압에 직면하도록 만든다.

결국,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아동의 발달을 표방하였으나 청소년기의 발달의 핵심인 개념적 사고의 형성을 추동하지 못함으로써 청소년기 이후에 교육과정으로서의 결정적 한계를 드러내었고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청소년기의 개념적 사고의 형성에 중요한 교육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나 아동기에 담보해야 할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대신에 학문중심 교육과정을 배치함으로써 정작 청소년기에 이르러 개념적 사고의 형성과 숙달에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상에서 세계 교육과정의 전개 과정을 보면 학문중심 교육과정,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대립해왔다. 그러나 교육과정 이론 사이의 대립과는 달리 현실에서 아동의 경험과 교과교육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아동기에 비해 청소년기의 경험과 지식이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되지만 경험과 지식은 인간 발달에 있어서 핵심적인 매개물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교육과정이 교과와 아동의 발달이 연계되어 있음에도 발달에서 교과의 역할을 명료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개인의 발달과 사회의 지속 또는 변화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에도 주체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핵심적인 발달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해 해명하지 못하면서 교육과정의 실패와 이에 따른 교체가 반복되어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아동기에 학문중심 교육과정에 비해 경험중심 교육과정이 끼치는 부정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직접적이고 가시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또한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회는 모든 사람들을 주체적 인간으로 정립하는 것을 교육의 본질적 목표로 설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실현할 교육과정에 관심이 없거나 이러한 교육과정의 출현을 제약해왔다. 여전히 현재에도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생산을 위한 창조적 노동력과 협력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을 뿐 모든 사람을 주체적 인간으로 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

 

3. 역량기반 교육과정에 대한 검토

 

역량중심 교육은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보다는 교육을 받은 결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역량이라는 개념은 본래 직업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등장했으나 OECD의 역량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직업이나 직무와 관련된 것에서 벗어나 일반적인 삶의 질과 관련된 논의로 발전해왔다.

OECD는 21세기 새로운 사회적 도전을 해결하는 데에는 기존의 지식역량으로는 적극 대처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루고 사회의 질, 개인적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지식, 기술, 역량 등 다면적 역량이 중요하고 이를 개발하는 것이 교육과 학습의 새로운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OECD는 성공적인 삶과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읽기, 쓰기, 셈하기, 컴퓨터 활용하기 외에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기존 교육과정과 교과와 관련된 능력 외에 사회적 요청과 삶의 도전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한 역량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OECD-DeSeCo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두 학자 Rychen 과Salganik은 역량에서 일차적으로는 인지적 측면(인지적 역량)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행위적 측면(동기, 정서, 가치, 태도 등)도 중요하다고 보고, 이 두 가지 측면을 포괄하는 통합적 모델(holistic model)을 강조하였다.

OECD-DeSeCo 프로젝트에서는 역량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역량이란 인간의 심리사회적인 특성(인지적이고 비인지적인 측면)을 활용하여 복잡한 사회적 요구들에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능력이다.” 이 개념에는 역량을 보는 두 가지 관점이 녹여져 있다. 하나는 수요지향적인 관점(demand-oriented approach)이다. 역량이란 고도의 정보기술 사회에서의 다양한 요구, 예를 들어, 직장에서의 역할, 사회적 역할 등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간의 능력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역량이 개인의 심리사회적 특성(내면 구조 역량)이라는 점이다. 역량은 인간 안에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동시에 후천적으로 획득되어진 능력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한 능력을 Rychen와 Salganik는 지식, 인지적 기술, 실용적 기술, 태도, 정서, 가치와 윤리, 동기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OECD는 이러한 활동을 종합하여 ‘핵심역량’을 ‘이질 집단 속에서 상호 교류한다’, ‘자율적으로 행동한다’, ‘상호 교류하며 도구를 사용한다’라는 3개 항으로 정리하였다. 아래와 같이 OECD는 각 국가에서 교육을 통해 형성된 역량 또는 교육을 통해서 형성하고자 했던 역량을 추출하여 핵심역량으로 구성하였다.

 

핵심 역량

이유

측면

도구를 상호 교류하며 사용할 것

△ 최신 기술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한 필요성

자신의 목적에 도구를 적용할 필요성

△ 세계와 적극적으로 교류할 필요성

A. 언어와 상징 텍스트를 상호 교류하며 사용한다.

B. 지식과 정보를 상호 교류하여 사용한다.

C. 기술을 상호 교류하여 사용한다.

이질 집단에서 상호 교류할 것

다원적 사회에서 다양한 것을 취급할 필요성

△ 공감의 중요성

△ 사회 자본의 필요성

A.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B. 팀을 짜서 협동하여 일한다.

C. 충돌을 관리하고 해결한다.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 복잡한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를 설정할 필요성

△ 권리를 실행하고 책임을 질 필요성

△ 자신의 환경과 그 기능을 이해할 필요성

A. 커다란 상황 안에서 행동한다.

B. 인생 설계와 개인적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C. 권리와 이해, 경계, 필요성을 지키고 주장한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은 핵심역량을 기르는 것이 주된 관심사이고 교과는 역량이 발휘되는 다양한 맥락 중 하나이다. 핵심역량을 학교교육에서 구현하려면, 교과교육과정을 기반으로 하되 개별교과의 특성에 따라 핵심역량을 재해석하여야 한다. 교과 내용은 역량이 발휘되어야 하는 하나의 맥락이다. 지식전달식 교과교육의 비중을 줄이고 실행능력과 인성, 사회성을 함양할 수 있는 통합교육의 비중을 늘릴 수 있도록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DeSeCo프로젝트에서 평면적으로 제시된 세 가지 핵심역량은 그 층위가 다른 것이다. 상호교류하며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개념적인 사고를 형성하는 매개이고 계기이다. 그리고 또래집단, 교사와 학생의 협력은 인간 발달이 이루어지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이러한 매개와 조건을 통해서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한 고등정신기능이 형성된다.

즉 인간은 기호와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사용하는 협력적 활동(놀이, 교수-학습, 노동)을 통해 사회와 자연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의지와 정서를 발달시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한다. DeSeCo프로젝트는 ① 도구를 상호 교류하며 사용할 것, ② 이질 집단에서 상호 교류할 것, ③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을 핵심역량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이것을 매개하는 교육의 중심적 역할인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핵심역량은 교실에서 교수-학습에 대한 길잡이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드러낸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데 첫째는 교수학습의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와 두 번째는 학생(아동에서 청소년)의 발달단계에 조응하는 교수-학습의 집중점을 제시하는 데에서 한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역량기반 교육과정은 OECD의 영향력과 교과교육과정의 문제점 해소라는 명분으로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지배적 교육과정으로 등장하고 있으나 학교에서 어떤 역량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는 여전히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중심 교육과정, 경험중심 교육과정 그리고 역량기반 교육과정 모두 지식을 매개로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그러나 지식이 교육과정 구성에서 가지는 지위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학문(지식)중심 교육과정의 경우 지식교육을 통해 지성의 발달을 이루고 이는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체적 인간의 핵심내용이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실천을 통해 세계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개념화-이론화한 것이 학문이라는 점에서 학문중심 교육과정과 개념적 사고의 발달은 연동되어 있다.

이에 비해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재조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중핵 교육과정을 편성하였는데 이의 기반은 교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지위로는?) 개별 경험을 넘어서 경험에 대한 종합적, 총체적 이해에 있어서는 한계를 가진다. 역량기반 교육과정도 지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핵심역량 형성과 강화에 중요한 요소의 지위를 부여한다. 지식을 매개, 수단으로 사용하여 역량을 형성하고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교육과정도 지식(학문)과 고등정신기능의 발달과의 관계를 명료하게 해명하지 못하면서 교육과정 구성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각 교육과정 이론의 교육목표>

지식중심 교육과정

R.M.Hutchins

경험중심 교육과정

J.Dewey

역량기반 교육과정

DeSeCo프로젝트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인간

이해와 판단 능력의 발달

지식(학문),도덕

민주시민

경험의 성장

공동체적 삶, 건강, 직업, 여가시간

교과(지식)기반

성공적이고 책임있는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핵심역량의 형성

지식, 기술, 태도, 정서, 가치, 동기

 

4. 비판적 교육학에 대한 검토 - 지루와 애플

 

교육과정 사회학은 공식적 교육과정은 지배계급의 문화적 자본이 지배하는 교육과정이며 이를 통해 문화적 재생산이 진행된다는 것을 밝혀냈다. 교육과정 사회학은 1970년부터 1979년에 일어난 교육과정 재개념화 운동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교육과정 재개념화 운동은 ‘타일러 논의’를 기초로 한 교육과정 개발이라는 실용적인 작업으로부터 교육과정의 이해라는 이론적 작업으로 중심이 이동되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진행되었다. 교육과정의 재개념화 운동의 한 분야가 ‘정치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연구’였으며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는 마이클 애플(M.Apple)과 지루(H.Giroux)였다.

지루(H.Giroux)의 교육에 대한 입장은 경제적 재생산론, 문화적 재생산론에 대한 비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조응하는 공식적 비공식적 교육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생산에 복무한다는 경제적 재생산론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재생산한다는 문화적 재생산론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학교는 사회문화적 재생산의 장 이상이라는 것이다.

 

“재생산론자들은 학교를 주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실천이나 정치경제학 담론과 결부하는 언어에만 머물러 ...학교는 산업자본에 복종하는 노동자들 양산해내는 사회 재생산의 대리기구이고 학교 지식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 이러한 입장의 비극은 좌파 교육자들이 교육개혁이나 학교개혁을 위한 프로그램적 언어를 개발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분석에서는 학교 교육에서 독특하게 나타나는 모순과 긴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제도적이고 공동체적인 투쟁을 위한 프로그램 수준의 언어를 개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진보적 교육자들은 지배의 언어에만 지나치게 매달린 까닭에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교육전략 개발이라는 중요한 희망을 놓쳐버린 것이다.”

 

핵심적 내용은 학교는 재생산의 장일 뿐만 아니라 재생산을 둘러싼 공방이 진행되는 장이며 경제적 재생산-문화적 재생산을 주창한 학자들은 이러한 학교의 기능을 주목하지 못함으로써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교육전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학교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장이 아니며 진보적이고 정치적인 교육전략이 작동될 수 있는 민주적 공공영역이며 이 공간에서 학생이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변혁적 지성인으로 활동할 수 있으며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를 민주적 공공영역으로 보는 관점은 학교를 비판적 문해와 용기를 갖춘 시민으로 교육하는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적·물질적 조건을 제공하는 제도이자 민주주의사회에서 적극적인 시민으로 활동하는 토대로 파악하고 있다.

 

“비판 교육학의 생명력은 학교를 민주적 공공영역으로 보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학교는 학생들이 참된 민주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데 갖추어야 할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공공영역이다. ...

민주적 공공영역에서 교사들은 자신이 구체적으로 변혁적 지성인이 될 수 있게 인정하는 담론을 위해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지성인 교사는 학생이 권력을 갖도록 하기 위한 반성과 활동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불의에 맞서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위해 제 몸을 던지는 비판적 활동가가 되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도 갖춰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 교사는 비판적 지성인으로 지배 이데올로기를 깨고 불의에 맞서고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위해 제 몸을 던져야 하는 비판적 활동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판적 지성인으로서의 교사는 학생들의 경험을 문제제기하고 비판함으로써, 경험 속에 숨겨진 가정을 드러내어 학생들이 직접적 경험을 넘어서도록 돕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지루에게 비판교육을 만들기 위한 중심문제는 학생, 특히 피지배계급 학생들이 지배적인 학교문화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학생 자신의 요구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도록 교사인 우리들이 도와주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읽기 점수나 수학 점수 혹은 대학진학 점수를 올리려는 목표에 맞추어 학교를 조직하는 일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확신한다. 그런 일 역시 작은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우리의 주된 관심은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긍정하는 방법을 배우며 더 정의로운 ... 사회를 위해 개인과 집단이 투쟁할 필요성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것의 교육적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다.”

 

지루는 공교육에서 교육노동을 담당하는 교사를 변혁적 실천의 담지자인 지식인의 위상을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할을 극대화함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의 일방적 재생산의 관철을 막을 수 있고 학생들의 경험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파악하고 계급, 인종, 성에 따른 억압을 인식시킴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루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을 차단하는 정치 전략을 최우선적 과제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비판적 지성인인 교사의 핵심적 역할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올바른 이론을 정립하고 숙달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정신능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기능을 형성 발달시키는 학교의 기능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과정에 주목하고 있지만, 학생의 주체적 성장과 발달의 교육학은 빠져 있고, 교육과정사회학의 관점이 빈 공간의 전부를 메우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세계와 사태를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의 자각과 투쟁을 봉쇄한다. 이러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주체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단지 다른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 학습을 통한 세계에 대한 인식능력을 형성하고 증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루를 포함한 비판적 교육학자들의 경우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학적 검토는 성공하였지만, 교육과정이 개인의 전면적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교육적 고찰은 주요 검토대상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학교를 ‘검은 상자’로 간주한 경제적 재생산론에 대한 비판으로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교육과정을 통한 발달을 ‘하얀 공백’으로 남겨둔 것은 비판적 교육학의 현재적 한계가 되었다. 이는 교육사회학과 교육심리학을 결합하지 못한 것의 결과이기도 하다.

현상 속에서 세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의 운동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이론과 방법론을 통해서 개념적 사고를 발달시켜야 한다. 이러한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주체적인 계급의식과 계급이념이 형성될 수 있다.

애플은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교육기관을 사회의 중심적 요소로 설정하고 정체성이 형성되는 현장으로 특정한 지식과 문화를 정당화하는 장소로 규정하였다.

 

“교육기관은 사회의 중심적 요소이다. 교육기관들은 사람들이 일을 하는 장소이고, 정체성이 형성되는 현장이며, 특정한 지식과 문화를 정당화하는 장소이고, 사람들을 조직하고 전술을 배우는 장arena 등으로 기능한다. ... 학교와 그 밖의 문화적 제도는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억압받는 자들에 의한 투쟁의 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 공간은 누구의 목소리가 들려질 것인가에 대해, 문화정치에 대해, 집단적 기억의 복원에 대해, 온전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규정에 대해 놓고 벌인 싸움의 승리와 패배, 성취와 양보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학교와 교육적 제도가 지속적인 투쟁의 장일 수 있었던 조건은 “공식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자원으로 무장되어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헌신적인 교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을 위하여 “카운츠는 교사들을 전위의 일부로 보았으며, 듀보이스는 억압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급과 인종 문제에 대한 투쟁의 성패가 달려있는 문제들을 이해하는 유기적 지식인들이 형성되도록 노력하였으며, 우드슨과 그의 동료들은 흑인 청소년과 성인들 사이의 집단적 정체성을 건설하기 위해,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저항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교사들에게 제공하고 자 했으며 프레이리는 ”공식 지식“과 ‘민중 지식”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였다.“

 

애플이 ‘학교가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인가’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맞서 계급과 인종, 성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투쟁하는 대항적 이데올로기의 정립과 실천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대립 구도는 ‘공식적 지식’과 이에 대항하여 대항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공적 지식인’으로 설정되어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교육을 통해 사회를 개편하려는 모든 나라의 교육자들이 투쟁 초기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로일 뿐만 아니라 가장 교육운동이 발전된 나라에서도 진행되는 투쟁의 고차적 형태이다.

그러나 운동의 발전은 공식적 지식에 대한 공적 지식인의 네트워크(애플은 이를 탈중심적 연대로 기술하고 있다)를 통한 비판과 차단에 머무르는 수준이어서는 안 되며, ‘공식적 지식의 공적 재구성’으로 나가야 한다. 이것은 개별 교사들의 투쟁을 넘어 교육운동이 발전된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처음부터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 또는 학교교육이 토대의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의 의미도 교육현장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전수가 아니라 해방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유기적 지식인’의 활동이 객관적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해방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교육과정의 교사 차원의 개인적 재구성(교사별 교육과정)을 넘어 사회적 공방을 거치면서 ‘교육과정의 공적 재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포함하여야 한다. 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공방을 전개하고 민주주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교육과정이 지속적으로 개편되도록 투쟁하는 것으로 전진하여야 한다. 물론 여전히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배제하지 못하고 억압적 이데올로기가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지라도 교육과정을 공적으로 재구성하려는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실제로 교육과정의 역사를 보면 공적 재구성을 통해서 경향적으로는 보편적 가치가 확대되어오는 과정이었다.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사회적 투쟁은 공식적 교육과정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로 교체하였으며 시장주의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국가의 공공적 활동과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의 필요성을 공식 교육과정에 담게 되었으며,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을 통제할 필요성과 이를 위한 활동 등도 공식 교육과정의 내용이 되었다.

둘째,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인간 발달의 주요한 기관이자 제도가 될 학교의 지위에 비추어 볼 때 교육과정의 공적 재구성은 새로운 사회를 전망하는 현시기의 핵심과제이기도 하다.

이때 교육과정의 개편은 단지 억압적 이데올로기의 폐지와 보편적 이데올로기로의 교체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 인간으로의 전면적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초중등과 대학을 포함한 전반적인 개편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교체에 머무르지 않고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통한 주체적 인간의 형성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정을 준비하여야 한다.

지배적 문화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고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보편적 의식과 계급이념의 정립은 교육을 통한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이 이루어진 일정 단계에서 본격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학생들이 계급, 인종, 성에 대한 해방적 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이념으로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주체적 사고가 가능하도록 개념적 사고능력을 높이는 교육활동이 바탕에 튼튼하게 자리잡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 내용의 진화를 생각의 형식과 연결지어 고찰해야 할 것이며, 특히 개념 형성으로 인해 생각 내용에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추적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개념 형성이 청소년 앞에 사회적 의식의 세계를 열어주고, 필연적으로 계급 심리와 이념의 집중적인 발달과 형성을 이끄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비판적 교육학은 개념 형성을 중심적인 과제로 설정하지 아니하였으며 당연하게도 이에 대한 강조는 매우 제한적인 영역에 그쳤다.

 

”애플은 학교가 해야 하는 것의 내용을 규정하기보다 그것이 형성되고 작동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으며, 사회구조로부터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마이클 애플은 미시적 공간과 거시적 사회구조가 만나는 방식을 이론적 수준에서 사회학적으로 조망하지만, 교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고(교육과정 편성 및 교수 내용) 학생을 ‘어떻게’ 만나야 하며(수업모형, 학습모형) 학교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들에 대해 실용적으로 제안하지 않는다.“

 

그러한 배경에는 첫째, 비판적 교육학의 문화적 재생산이론이 교육과정 재개념화 운동의 과정에서 기존 교육과정이 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에 주목하여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고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학교교육에 교수-학습을 통한 발달에 대한 관점과 인식이 부족하였다. 이로 인해 억압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보편적 이데올로기의 확산을 위한 교사의 역할을 주목되었지만 공교육의 교육과정과 교육과정을 매개로 진행되는 학교 교사들의 교육적 실천이 학생의 발달에 가지는 의미가 관심의 중심적 대상이 되지는 못하였다.

셋째, 나아가 교육과정을 통해 개념적 사고를 발달시킴으로써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능력 형성을 통해 해방적 인간으로 나가는 경로를 확립하지 못하였다. 학교교육을 통한 발달과 이를 해방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구상이 부족하면서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진행되는 문화적 재생산의 저지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해방적 교육 실천의 전형적 형태를 공교육 밖의 성인교육을 통해서 정립되어 온 프레이리의 교육학에서 찾았다. 프레이리의 변혁적 교육실천은 민중을 포위하고 있는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깨트리고 존재에 기반한 계급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는 데 이러한 실천적 성과를 공교육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적용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실천 방향으로 인해 공교육 내에서 해방적 인간의 기초가 되는 고등정신기능의 발달을 이루는 교육적 실천과 운동의 대중화를 추동할 수 없었다. 공교육에서 억압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보편적 이데올로기를 교육하는 것은 해방적 교육의 실현에서 가장 고차적 형태이다. 그러나 고차적 형태의 교육이 최고 수준의 형태이지만 이보다 공교육에서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것은 개념적 사고를 중심으로 주체적으로 사회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는 것이다. 주체적 인간은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면서 계급적으로 자각하고 해방적 실천에 나서게 될 것이다.

학교의 교육과정이 주체적 인간으로 정립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공존하고 있으나, 비판적 교육학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여 학교교육을 분석하였으며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로 인해 학교교육의 긍정적 역할인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등 주체적 인간의 형성을 고려하는 교육과정의 편성에 대해서 밀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지 못하였다. 주체적 인간이 해방적 사회의 기초라고 했을 때 발달의 관점에서 학교의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를 준비하는 핵심적인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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