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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녀들의 단독성을 위한 노래

빨강머리” Anne with an “E

 

바람꽃(진보교육연구소 회원)

넷플릭스의 ‘빨강머리 앤’이 뜨겁다. <브레이킹 배드>의 각본을 쓴 모이라 월리-베컷이 집필하고 넷플릭스(Netflix)와 캐나다 CBC가 제작한 ‘빨강머리 앤’은 총 27개의 에피소드로 2017년 시즌1을 시작하여 2019년 시즌3로 막을 내렸다. “거창한 생각을 표현하려면 거창한 단어를 써야한다”면서 커다란 눈을 빛내며 세상을 향한 무한한 경이를 세익스피어적(?)으로 말하던 불꽃을 담은 그 소녀가 ‘Anne with an E’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왔다. 선물 같은 드라마였다.

앤 역의 ‘에이미베스 맥널티’의 연기는 놀랍다. 싱크로율 120%. 원작을 그대로 찢고 나온듯한 외모와 수십 가지 감정 곡선을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앤의 표정과 행동을 퍼.펙.트하게 표현했다. 마릴라와 매튜, 다이애나와 소녀들, 린드, 길버트... 하나같이 생동감 넘치는 깨알연기로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화면을 가득채운 영상은 한편의 아름다운 시(詩)다. 자연과 상상을 좋아하는 앤을 위한 맞춤식 배경이랄까.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장엄한 대자연이 앤의 낭만과 어우러져 매 장면마다 환상의 궁합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컨츄리 음악이 바람처럼 흐른다. 탄성과 동시에 심멈(심장멈춤)의 순간 찰칵! 사진을 찍게 된다. 자연 뿐 아니다. 잉크를 엎질러 엉망이 된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씩 떼어내자 꾹꾹 눌러 그린 부분에 까만 점들이 나오고 앤의 친구 콜은 그 위에 앤의 얼굴을 그린다. 영상 깡패다. 19세기 감성에 21세기 기술이 빚은 뉴클래식버젼의 환장적인 앙상블. 다시보기 기능이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만든 인생드라마의 탄생!! 우후~ ^^

 

‘빨강머리 앤’의 역사

 

 

‘빨강머리 앤’은 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Lucy Maud Montgomery)‘의 소설 ‘초록지붕의 앤(Anne of Green Gable, 1908)’이 원제이다. ‘앤’은 출판사에서 여러 번 퇴짜를 받고 3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는데 나오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순식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인 ‘에이번리의 앤’ 등 앤의 일생을 다룬 총 8권의 시리즈가 완성된다. 11살부터 16살까지 성장을 담은 ‘초록지붕의 앤’은 영어교사였던 ‘무라오카 하나코(일본)’가 ‘빨강머리 앤(1953)’으로 번안하면서 탄생한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는 얼마 전에 작고하신 신지식 선생님이 이화여고 교사로 있을 때 헌책방에서 우연히 ‘빨강머리 앤’을 발견하여 번역하고 이화여고 주보<거울>(1962년)에 실었다가 이듬해 출판했다. 이후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거장 타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세계명작극장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빨강머리 앤’을 만들어 일본 TV(1979년)와 우리나라 KBS(1989년)에 방영되면서 주제곡과 함께 폭넓게 알려지게 된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가슴에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하늘엔 뭉게구름 퍼져나가네

 

노래가사처럼 앤은 외롭고 슬프지만 사랑스럽고 굳세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천애고아가 되지만 불운한 환경의 저격에도 끄떡없이 무수한 낙관과 공상, 실수와 선택의 세계를 거쳐 ‘홀로’에서 마침내 그토록 원했던 ‘친구’와 ‘가족’을 얻고 교사가 되는 인생역전 스토리다. 대자연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모험을 즐기면서 무생물에게 조차 이름을 지어주고 말을 건네는 앤의 놀라운 상상력과 표현능력은 연령주의와 성별에 밀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권리를 박탈당한 수많은 소녀들의 로망이었다. 앤이 세상에 나온 지 110년도 훌쩍 넘었지만, 앤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주로 중년 여성)이 불안의 벽과 마주했을 때 정서적 안정을 주는 든든한 ‘내면의 소녀’로 살아있다. 앤이 뿌린 수많은 명언은 추억몰이 상품으로 둔갑하여 앤 아류의 책을 생산해내고, 전시회, 영화, 연극에 이르기까지 그녀들의 요구와 욕망의 코드를 자극하며 끊임없이 소환된다. 인터넷에 빨강머리 앤을 쳐보면 국내도서만 해도 줄잡아 300종이 넘는다.

 

동심을 파괴하는 잔혹 동화 또는 쓰레기?

 

‘넷플릭스의 앤’(이후 AnnE with an E)이 방영되자 #NotmyAnne(나의 앤이 아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리면서 ‘앤에게 무슨 짓을 한거냐!’며 세계 시청자들의 거친 항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온갖 사소한 것들을 극화시키면서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야단법석을 떨던 앤답게 그녀의 귀환도 시끌벅적했다.

 

#NotMyAnne sorry @netflix this series is trash. #NotMyAnne Anne of Green Gables always brings me comfort & joy...with that being said Anne with an E was traumatic af & I had to stop watching. #notmyanne Dear @netflix how could you destroy such a beautiful story. It's a disgrace. @AnneWithAnE.#NotMyAnne Please stop and take another look at the source material before destroying the main character- along with everyone else.

 

원작을 훼손하고 캐릭터를 파괴한 ‘AnnE with an E’는 쓰레기라며 시청을 거부하자고 한다. 앤의 어두운 과거를 플래쉬백으로 보여주면서 트라우마를 가진 앤을 만들어 앤에 대한 행복한 기억과 따뜻한 위안을 짓밟은 잔혹동화라며 분노한다. 우리나라 맘즈 카페에서도 동심을 파괴하는 위험한 드라마로 지적하며 아이들의 시청을 막아야한단다. 물론, 반대의 흐름도 만만치 않다. 원작의 행간을 읽은 최고의 각색으로 새롭게 태어난 앤에게 ‘glorious!’를 바치며 여전히 계속되는 ‘페미니즘, 인종주의, Lgbtq+’를 위해 싸우자고 외친다. #renewannewithane 해쉬태크까지 달며 시즌 4 제작까지 요구하고 있다. ‘AnnE with an E’는 과연 쓰레기일까.

 

‘제 일생은 파묻힌 희망의 완벽한 무덤이에요.’

 

이 절망적인 문어체 문장은 겨우 11살 앤의 말이다. 고통의 심연에 깊이 침몰해보지 않고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다. 생후 3개월 만에 고아가 된 앤은 가난한 위탁가정에서 8명이나 되는 아이의 보모역할을 하며 집주인 부부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보육원에서는 상시적인 폭력에 시달린다. 출구 없는 지옥에서 신음하던 어느 봄날, 희망이 날아온다. ‘초록지붕의 집(Green Gables)’에 살고 있는 독신남매로부터 입양된 것이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가족이 생긴다니. 얼마나 꿈에 부풀었을까. 하지만 희망도 잠시. 여자애가 아니라 일손을 도울 남자애를 원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갑자기 모든 남자아이들이 사라진다면 요? 저는 집안일보다 농장 일을 좋아해요. 제가 더 잘할 수 있어요’하면서 애걸복걸 매달리지만 소용이 없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녀는 ‘내 일생은 희망이 파묻힌 완벽한 무덤’이라며 한탄한다.

 

‘빨강머리 앤’은 원작 자체가 페미니즘에 기반을 둔 소설이다. 전통적인 이성애자 부모가 아닌 독신의 남매가 딸을 입양하고, 그 아이가 독립적인 여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는 설정이면 눈치를 챘어야 한다. 더구나 그 아이가 ‘빼빼마른 빨강머리’다. 요즘이야 빼빼마른 것이 부의 상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후반은 오동통한 것이 부=미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빨강머리는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서구사회에서는 혐오를 상징한다. 예수를 고발한 유다와 질투심에 눈이 멀어 동생을 죽인 카인의 머리가 빨갛다. 지금이야 개성이지만 그때의 시선에서 보면 빨강머리는 인종차별의 또 다른 메타포다. 원작파괴, 잔혹동화? 글쎄다.

물론, 나도 ‘앤의 상상력’에 대해 결정적인 한 방을 맞았다. 어둠의 공포에서만 작동하는 나의 빈약한 상상력과 격조가 다른 톡톡 튀는 앤의 무한 상상력은 타고난 선물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앤의 상상이 아무런 방어능력이 없는 아동이 극도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신처로 만든 가상(또는 망상)의 세계였다니! 고아원 아이들의 괴롭힘과 어른들의 상습적인 폭행이 자행될 때 마다 높고 어두운 탑에 갇힌 코딜리어 공주가 되어 언젠가 아름다운 자신의 성으로 돌아가는 탈주를 꿈꾸며 자신을 달래고, 외로움에 지친 나머지 나무, 풀, 동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어 대화를 나누며 심지어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타인화하여 ‘케이티’라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슬픔을 달래는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결국 앤의 상상력의 실체는 아동기 학대와 방임 등 잠재적 외상 경험이 오래도록 신체와 감정을 압도하여 생긴 트라우마로 인한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였다. 우여곡절 끝에 초록지붕에 입양된 앤은 꿈에 그리던 학교에 가지만 과잉행동으로 추문에 휩싸이자 스스로 등교를 거부한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지붕 위에 올라가 무심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코딜리아~ 코딜리아~’하면서 자신을 위안하는 장면과 무당벌레에게 건네는 말은 가슴아린 충격이다.

‘여자.고아.소녀.빨강머리’의 현실은 결코 드라마나 소설이 아니다. 월리-베켓의 말처럼, ‘앤은 낙관적이고 밝고 열정적이고 명랑하고 상상력이 넘친다. 나는 그녀의 역사에 그저 현실을 더할 뿐’이다.

 

‘두려움이 없는 우리는 강하다’

 

 

‘AnnE with an E’는 여자들(특히 소녀들)의 서사다. 원작에서 그토록 앤을 따뜻하게 맞이했던 마을은 현실성을 얹히자 ‘고아.여자.아이.빨강머리’에 대해 편견을 야비하게 드러낸다. 소녀들의 교육을 논의하는 진보어머니모임 ‘서프리제트(여성참정권 모임)’ 조차 여성참정권, 여성해방과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대놓고 들먹이지만 앤에 대한 연민은 1도 없다. 앤의 등장으로 마을 공동체에 잠재적으로 포진해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동요를 일으키고 동시에 앤으로 표상되는 ‘소녀’라는 존재의 단독성(주체로서의 자기 확인)을 위한 서곡이 시작된다. ‘소녀’는 성별뿐만 아니라 연령주의에 밀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권리를 박탈당한 여성의 가장 열악한 타자이다. 그들이! 앤을 매개로 대자연의 넓은 품안에서 맘껏 뛰어놀고, 자신의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주장을 말하며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분주하게 연대한다.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결핍이 만든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장착한 앤의 수다는 이것을 가능케 한다.

소녀들은 연신 모여 수다를 떤다. ‘수다’는 연대를 조직하는 역사가 된다. 앤이 첫 생리를 하자 큰 병에 걸려 죽는 줄 알고 “마릴라 아주머니, 내 무덤가에 분홍장미를 심어주실래요?”라며 오열한다. “너는 지금... 여자로 꽃피는 시간이란다”하면서 안심시킨다. 그리고 앤과 소녀들이 교실바닥에 빙 둘러 앉아 각자의 생리에 대한 경험을 수다로 푼다. 소녀들은 “생리는 부끄럽고 입에 올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자 앤은 “한 인간을 낳을 수도 있잖아. 그게 부끄러운 거야?”라는 울림이 큰 질문을 던진다. 생리뿐 아니라 여성의 몸은 검은 봉지에 싸인 생리대처럼 비밀스럽다.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상징인 ‘코르셋’과 더불어 성추행, 성차별, 성폭행 등 여성이 겪는 많은 문제들은 늘 음지에 묻혀 은폐되고 침묵을 강요당했다. 그래서 생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로 이어지는 중요한 이슈다. 생리 에피소드를 통해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하는 여성의 몸에 대해 재치 있게 묘사해 놓았다.

프리시의 결혼식에 들떠 소녀들이 모였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면서 각자 준비하고 싶은 혼수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의 소녀들이 남편을 위해 수공예품을 준비한다고 하자 앤은 ‘브론테 자매의 전집과 세잌스피어...’라고 대답한다. 역쉬~ 앤!^^ ‘AnnE with an E’는 직간접적으로 계속 언급되는 책이 있는데 바로 페미니스트였던 샤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제인 에어(Jane Eyre,1847)’다. 앤이 보육원의 폭력과 아이들의 괴롭힘 속에도 희망의 끈으로 꼭 잡고 있었던 책으로 상황에 따라 ‘빠방~’ 날리던 앤의 명언이 ‘제인에어’에서 나온 것이다. 앤의 처지와 너무나 흡사한 고아 제인의 이야기는 ‘앤’의 또 다른 버전이다.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존재론적 문제와 여성됨의 사회적 의미를 부각시킨 작품으로 페미니즘을 부각시키기 위한 코드다!

소녀들의 수다는 점점 진화한다. “감정적이고 지적인 여성은 불임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소녀들은 한밤중에 숲에 모여 자신의 성과 몸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로 벨테인 축제를 벌인다. 벨테인은 치료와 정결을 상징하는 불을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돌며 춤을 추는 의식인데 소녀들은 다함께 손을 모아 불을 붙이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소망을 외치고 반딧불이가 되어 해방의 춤을 춘다.

 

벨테인의 여신이자 신성한 어머니, 5월의 여왕님

숲의 야생 사랑과 생명의 수호신 어서 오소서!

강인하고 성스러운 우리 여성들이 이 신성한 밤에 선포하노니

​우리 성체는 우리 성체는 오로지 우리 것입니다.

스스로 사랑할 사람과 신뢰를 나눌 사람을 택하겠습니다.

품위와 경의를 지키며 살아가겠습니다.

뛰어난 지성을 늘 자랑으로 여기겠습니다.

우리 감정을 존중해 정신을 고양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무시하는 남자는 물리치겠습니다.

우리의 정신은 꺾을 수 없고 상상력은 자유롭습니다.

 

 

슬픔은 사랑을 하는 대가란다.

 

‘AnnE with an E’에는 또 한 권의 책이 비밀스럽게 등장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Louisa May Alcott)의 ‘작은 아씨들(Little Women,1868)’이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여성의 참정권, 이성애주의와 가부장적 결혼제도를 비판하고 노예 해방에 앞장 선 작가이며 실제로 남북전쟁에 자원입대했다. 파랑머리로 잘못 염색한 앤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 ‘작은 아씨들’의 ‘조’가 머리카락을 자르는 장면을 연상하게 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쩌면, 혐오와 차별의 빨강, 엉클어진 파랑, 이 모든 것을 잘라내면서, 저 루이자 메이 올컷을 소환해 남녀 이분법적인 편협한 페미니즘을 넘어 성 소수자와 인종차별 문제까지 나아가려는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앤은 혐오의 시선에서 공포를 각인하는 순간 상상을 자극하면서 회피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커스버트 남매의 사랑으로 공포를 직시하게 되면서 결국 ‘코딜리아 공주와 케이티’를 떠나보낸다. 그 공백의 자리에 또 다른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을 향한 무한한 공감과 연대가 꽃처럼 피어난다.

조세핀 할머니와 콜, 세바스찬과 인디언 소녀 카퀫이 그들이다. 원작과 다르게 엄격하면서 든든하게 앤을 후원해주던 조세핀 할머니와 새로운 인물인 콜이 성소수자로 등장한다. 조세핀 할머니의 연인을 추모하는 퀴어파티에 초대된 앤 과 콜, 다이애나는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 그곳에서 “모두가 같은 사랑을 하지 않고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삶은 다 아름답다”는 것을 배우게 되고 ‘다름’을 ‘다름’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으로 괴로워하던 콜은 동성의 연인을 평생 사랑했던 조세핀을 통해 용기를 얻고 파티에서 만난 한 예술가의 조언으로 포기했던 예술가의 꿈을 다시 꿈꾼다.

새로운 캐릭터인 세바스찬의 출현은 노예해방 이후에도 여전한 인종차별의 현장을 고발한다. 세바스찬을 처음만난 자리에서 앤은 “스페인 무어인과 아프리카 고대왕국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유색인종은 처음 만났어요. 피부가 정말 대단해요!”하면서 경이에 찬 반짝이는 눈으로 따뜻하게 맞이한다. 조세핀 고모나 콜의 이야기처럼 입체적인 면은 다소 부족하지만, 흑인 인종차별문제와 성차별, 계급 억압, 젠더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흑인여성 인종차별까지 부각시켰다.

한발 더 나아가 앤과 원주민(인디언이라는 표현은 NO) 소녀 카퀫의 우정을 통해 과거 캐나다의 원주민에 대한 폭력적인 근대화 작업을 고발한다. 어린 카퀫을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끌고 와 사육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폭력을 견디지 못한 카퀫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총으로 위협하여 다시 기숙학교에 감금한다. 앤은 카퀫을 구하기 위해 기숙학교를 찾아가지만 결국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온다. 카퀫을 되찾기 위해 기숙학교 앞에 쳐놓은 카켓 부모님의 티피(tepee)만 홀로 남겨놓은 채 ‘AnnE with an E’는 종영된다. 뭔가 찜찜하지만 그 미완의 마무리가 여전히 불운한 현재를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아픔을 기억시키려는 반전이 아닐까... 싶다.

 

‘AnnE with an E’의 에피소드는 앤의 상상만큼이나 놀랍고 무궁무진하다. 탈코르셋에 바지차림으로 자신이 개조한 전동자전거를 타고 부임한 스테이지선생님(여성)의 등장, 결혼보다 자신의 꿈을 선택한 프리시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결혼식장을 뛰쳐나가는 ‘런어웨이 브라이드’씬, 말을 타고 시원하게 터진 눈 쌓인 해안을 달려 숲에서 나무에 달린 솔방울을 ‘나무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이 숲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앤, 염색소동으로 머리카락을 자른 앤이 연극에서 남자 주인공이 되는 기막힌 반전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말 말의 향연 등등 한정초과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요즘 급부상한 단어가 있다. 뉴트로(newtro)다. 레트로(retro)가 과거의 향수가 소환한 복고라면 뉴트로(new-tro)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기성세대의 문화에 새로운 정신을 입힌 것을 의미한다. ‘빨강머리 앤’이 레트로라면 ‘Anne with an E’는 뉴트로다. ‘나의 앤’이 아니라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나의 앤’이 지금의 젊은 세대의 ‘나의 앤’이 되려면 과거를 불러오되 현재의 정신을 담는 시대적 정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앤이라면 이렇게 말했겠지.

 

“부서지거나 망가졌다고 슬퍼하지 말아요. 그게 훨씬 더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요!”

 

덧붙임

 

이대로 마무리하기가 왠지 아쉽다. 아무래도 ‘마릴라와 매튜’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독신 남매의 아름다운 성장 곡선을 말하지 않고는 ‘Anne with an E’의 세계가 완성되지 않는다. 앤과 함께 성장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앤처럼 요란한 변주는 아니지만 미뉴에트처럼 잔잔하면서 은근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이끈다. 이들의 변화를 위한 세 가지 장치가 놀랍다. ‘초록지붕의 이미지’와 ‘두 사람을 규정하는 관계의 전환’ 그리고 ‘스토리를 가진 인물 설정’이다. ‘초록지붕’은 에번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마치 ‘코딜리아’를 가둔 높은 탑을 연상시키고 고립된 아름다움을 강화하지만 어둡고 차갑다. 그리고 여동생과 오빠였던 마릴라와 매튜의 관계를 ‘누나와 동생’으로 가족 내 서열구조를 감쪽같이 바꿔 자칫 빠지기 쉬운 가부장적 요소에 균열을 내게 만들었다. 세 번째로 고정적인 캐릭터인 두 사람에게 스토리를 부여하여 그들의 현재를 이해시키고 다양한 감정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마릴라는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포기하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가사노동에 치여 살아왔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피해의식이 고개를 들면 울컥하면서 “자, 이제 빵이라도 구워줄까? 아니면 청소, 수선, 심부름?” 라고 하면서 매튜에게 쏘아붙인다. 매튜는 학창시절 왕따로 인한 트라우마로 세상에 담을 쌓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말을 더듬으며 좀 체로 집밖에 나가지 않는다. 아무런 희노애락도 없이 고립되어 살아가던 독신 남매는 앤을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앤은 자신들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힘겨운 세상나들이를 시도한다. 마릴라는 앤을 위해 어머니모임에 참석하고, 수시로 린드를 찾아가 교육을 상담한다. 매튜는 앤이 노래를 부르던 ‘낭만적인’ 퍼프소매 원피스를 사주기 위해 옷가게까지 가지만 부끄러워 말도 못하고 부츠만 잔뜩 사온다. ㅋㅋ 누나의 날선 공격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농장 일만 하던 염장 캐릭터 매튜는 결쿡! 부엌으로 들어와 요리도 하고 수다를 떠는 캔디맨으로 스윗하게 변화한다. 마을 연극의 날, 앤의 공연을 돕던 매튜가 갑작스럽게 다른 사람의 대역을 하게 된다. 귀여운 부엉이 옷을 입고 무대에 올라가 사람들을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자신의 현재를 들려주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마지막 대사를 말하고 박수갈채를 받는다. 가슴에 양손을 포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마릴라를 통해 이들의 갈등과 아픔이 치유되었음을 알려준다. 앤의 성장을 위해 세상 밖으로 한 걸음 한걸음 발을 디디면서 엄격하고 소심한 모습에서 따뜻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둘의 모습이 더 없이 아름답다. 앤이라는 타자를 통해 자신들도 모르게 저당 잡힌 삶을 하나하나 회복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역설. 감동이다. 이게 쓰레기라고 비난한다면 쓰레기더미에 파묻힌 세상에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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