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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변事變 이모저모

 

눈동자(진보교육연구소 회원)

 

2020년의 화두는 온통 ‘코로나’ 일색이다. 정월에 ‘우한 폐렴’ 얘기가 나돌고 2월 들어 “중국에 빗장을 걸어라, 말아라” 시끌벅적할 때에, 70년 전에 사람들이 입에 올리고 그 뒤로는 들먹이지 않았던 낱말이 떠올랐다. “사변事變!” 메르스 감염 확산은 ‘사태事態’이지만, 코로나 감염 확산을 ‘사태事態’라 일컫는 것은 너무 한가롭다. ‘6.25 사변’과 동급이라 봐야 한다. 뉴델리의 수십 만 밑바닥 노동자들이 고속도로에 우루루 쏟아졌던 광경은 70년 전 바람 찬 흥남 부두에 피난민이 몰려든 광경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에콰도르는 병원이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주검을 길거리에 내다버렸는데 지금 21세기가 마마(천연두)가 창궐하던 조선 시대나 페스트로 켜켜이 주검이 쌓인 유럽 중세 시절에서 별로 멀어 보이지 않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방콕! 집콕!’ 하며 맞은 올 봄을 도무지 봄이라 부를 수 없다.

6.25 때는 3천만 동포의 10분의 1이 포탄에 맞아 죽고, 굶어죽고, 얼어죽었는데 그에 견주자면 지금의 변란이야 양반 수준 아니겠냐는 대꾸가 나올 수 있다. 불행의 끔찍한 정도만 따지자면 그렇기는 하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以前’과 ‘이후以後’가 달라질 거라고 한다. ‘생활방역체제’로 바뀐다 해도 예전과 같은 일상日常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아무리 기기묘묘하게 ‘디지털 교류’를 고안해낸들 (그렇잖아도 익명의 숲이 된 도시에서) 서먹해진 사람 사이를 죄다 메꿀 수는 없다. 사람들 기운 빠지게 하는 낯선 문화가 들이닥칠 판이다. 게다가 이 난리는 지구촌 전체를 휩쓸고 있으니 결코 잊히지 않을 ‘사변事變’이라고 넉넉히 일컬을 만하다.

왜 이처럼 해괴한 변고를 맞게 됐을지를 떠올리자면 더더욱 ‘코로나 사변’이 두렵다. 이것은 에볼라와 사스와 조류독감, 메르스의 후속판이다. 북극곰과 원숭이와 코끼리가 인가人家를 덮치는 것과도 궤軌를 같이 한다. 호주의 산불, 그린랜드와 남극의 녹아내리는 빙하, 동토凍土층의 해빙, 곳곳의 가뭄, 굶어죽는 펭귄떼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는 북극 상공에 갑자기 오존 구멍이 생겼다던가? 요컨대 지구땅 오만 데에 퍼져서 제 종족의 번식력을 뽐내던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자연의 복수’가 아니겠는가. 너 좀 찌그러져 달라는!

이 놈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사실은 애저녁에 알려졌다. 봄에 사그러들어도 가을에 재발할 거라는 둥, 비슷한 놈, 또 나올 거라는 둥. 그러니 ‘사회적 거리 두기’가 두고두고 new normal이 될 거라는 서슬 퍼런 경고다. 벌써 변이종이 나왔단다. 진화론의 절정판이다. 이 놈이 럭비공처럼 튀고 있으니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 더 늦어지게 생겼다.

 

양아치 열전列傳

 

한 치 앞을 못 내다 볼 세상이 됐다. 그러니 이런 세상을 수습하겠다는 각국의 정치를 발본拔本의 도끼눈으로 살펴야 한다. 제 앞가림만 골몰하는 권력자들을 놓고 ‘부패 정치’니 ‘수구 꼴통’이니 하는 낱말로 나무라는 것으로는 (지금 같은 변란의 시대에는) 영 시답잖다. 사람의 목숨값이 싸구려가 된 세상이므로 인생 전체를 도맷금으로 깎아 매겨야 쓰겠다. “너희는 말이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양아치야!” 사마천의 한대漢代가 아니라 현대現代의 ‘사기史記’에는 ‘양아치 열전列傳’이 실려야 옳다. 세상에 양아치가 하고많으니 몇 사람만 추려서 그 몰골을 살핀다.

 

1. ‘신천지’를 주름잡은 이만희 : 수십 만 교도의 ‘어버이 수령’으로 추앙받는 인물의 꼴값 좀 보소. 제가 이왕가李王家의 후손이라나? 세상 낮은 곳에 임하신 지하地下의 예수가 하염없이 울고 가겠다. 벌어놓은 부동산이 5천억에, 1조원의 현찰을 굴린다니 애써 기업체 굴릴 것 없이 책(성서) 하나, 잘 팔아먹으면 재벌에 등극한다는 얘기다. 인생 역전, 한 방인가? 정작 살펴야 할 것은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한국 사회가 마음 기댈 곳 없는 가난한 20대 청년들을 ‘신천지’로 몰아냈다는 사실이다. 한때 광장을 만들어낸 80-90년대 학생운동이 사그라들자 그 빈 자리를 이단 종교가 파고들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물려받았다. ‘신천지’ 간부 중에는 대학시절 데모 경력을 끌어모아 조직화 전략을 짠 인간도 있을 게다. 또 ‘신천지’는 즈그덜 신도를 기성 교회에서 주로 낚았다. 추수秋收꾼! 안락한 중산층 친목회로 자족自足해온 배부른 개신교에 실망한 청년들이 정다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만희는 이 청년들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듬뿍 선물했다. 이왕가李王家의 영광이 가득한 곳에 지상地上의 비참함이 넘쳐나는구나.

 

2. 박근혜의 황태자 황교안 : 그는 “‘신천지’ 미워하지 말”랬다. 딴 종교 포용할 줄 모르던(‘조계종’ 가서 합장合掌을 손사래 친) 사람이 어찌 너그러이 미운 오리새끼(이단 교회)를 감싸고 돌았을까. 전광훈교회를 버젓이 보면서도 “교회가 방역의무 거부한 적 없다”고 오리발 내밀었다. 미통당 인간들이 정초正初에 만세를 불렀다. “우리는 번개 뚝딱 보수통합 이뤄냈고, 저들은 ‘코로나 수습’에 된통 죽 쑬 것이니 이번 총선은 따 놓은 당상堂上이로구나!” 솔직히 ‘코로나 수습 어찌할지’는 걔네들 알 바 아니었다. 미국의 바이든(민주당)이 걔네처럼 악다구니 써 가며 라이벌 트럼프를 헐뜯었는지, 견주어 살펴 보라. 전직 법무부 장관이 “n번방 가입자들은 순진하다!”고 두둔하고 나선 꼴을 보면 판검사 출신들의 공직 피선거권을 죄다 박탈하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다. 한 사람을 보면 열 사람을 아니까. 총선을 고비로, 박정희를 교주敎主 삼은 무리들이 이제 썰물처럼 빠져 나가리라.

(조무래기 양아치, 대구시장을 덧붙인다. 재난지원금 배분 관련, 제 돈 주듯 거들먹거린 것뿐 아니라 늑장/무능 행정이 정말 눈부셨다. 퍼질러 앉아 수십년 TK 기득권을 즐긴 대구/경북 정치사회가 무능 무쌍한 관료집단을 길러냈다.)

3. 금수저 이해찬 : 한번 권력바라기는 영원한 권력바라기다. 그는 일찍이 1970년대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의 열매를 보수 야당(지금의 민주당)에게 갖다 바치는 데에 일등 공신이었다. “학생운동가들아! 사회운동도 노동자정당 건설도 하릴없다. 그딴 것 걷어치우고 김대중 밑에서 금뱃지 따는 게 장땡이란다!” 1995년에는 교육부 장관으로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을, 친자본의 길을 지휘했다. 입시 교육의 병폐가 골수에 깊어지는 것을 그 ‘개혁’이 무엇 하나 덜어낸 바 있었는가? ‘소비자 교육주권’을 보장해줘서 학교에 ‘살 판’ 났디? 강남 학부모만 ‘살 판’ 난 것 아니었니? 올 들어 정계 은퇴를 앞두고 그는 다시 반노동 보수정권 강화에 한 몫 단단히 기여했다.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뒀니, 추醜를 거뒀니? 미통당이 부린 꼼수(=위성정당 날조)에 맞설 길이 꼭 공범자가 되는 길만 있는 게 아닌데 그는 ‘보수 양당, 더러운 야합野合의 길’로 갔다. 대안 정당(들)이 헤엄칠 공간을 확 막아버려서 정치가 민주노동당 시절보다도 뒷걸음질했다. 꼼수를 허락해준 선관위원들부터 내쫓아야 한다.

정의당도 이 위기를 자초自招한 면이 없지 않다. 문빠들 심기 안 건드리려고 눈치 보다가(=조국 비판을 삼가다가) 시나브로 자기의 정치적 독립성을 잃어버렸다.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죽은 자식 00 만져서 뭐하나? 민주당과의 밀월에 너무 기대다가 뺨 맞았다. 다시 떨쳐나설 결기가 있을지 미덥지 못하다. 페미니즘에 대한 실천 관심은 넘쳐나겠지만 ‘노자勞資 대결’을 건성으로 넘겨서는 시운時運을 타고 약진할 길이 없다. 정의당 비례대표 당선자 명단을 훑고서 드는 걱정이다.

보수 양당이 저마다 꼭두각시를 내세워 꼴볼견을 연출할 때, 문득 여운형 선생이 떠올랐다. 해방정국에서 이승만과 손을 잡은 한민당 무리들은 박헌영의 남로당에 동조하는 정당은 죄다 ‘위성, 꼭두각시!’라고 몰아붙였다. 일생을 운동가로 치열하게 살아온 여운형을 ‘한낱 꼭두각시’라 비웃는 것은 정말 뻔뻔한 언어폭력이 아닌가? 미통당은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받들고, 지금의 민주당은 옛 시절에 친일 지주계급을 대변한 한민당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옛 시절엔 애먼 사람을 꼭두각시로 몰더니, 지금은 두 당이 안면 몰수하고 ‘진짜 가짜(=페이퍼) 정당’ 날조하기에 희희낙락했다. 옛 뿌리가 어디 가지 않는다.

(이낙연은 문빠가 아니고, 모난 발언을 삼간 덕에 다음 대선 주자 1위의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양아치 대열에서 열외列外하지는 못한다. 정부가 미봉책들 마구 퍼부어서 요즘 서울 집값을 눌러놓고 있지만 그게 다락같이 뛸 때 내버려 뒀던 국무총리로서의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집값이 잡힐 만하니까 어젯일을 까맣게 잊고 ‘종부세 완화’를 또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집값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그는 투기자본계급 편이다.)

 

4. 아베의 태평성대 : 딴 나라들, 코로나 잡느라 노심초사할 때 아베의 일본은 홀로 ‘청정淸淨 국가’인 양 고고했다. 일본 민중은 아베가 참 미더워 보였다. ‘올림픽을 늦추겠노라’ 발표가 나간 뒤에야 아베가 좀 미심쩍어졌다. “코로나검사, 일부러 안 한 거 아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나서야 아베 지지율이 하락하고 비판의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분노하는 시민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분노를 잊어버린 일본 민중이 참 미덥지 못하다. 코로나는 돌고 돌 터이니까, 그들도 고생깨나 할 것이다. 그 덕분에 내년 올림픽도 흐지부지되기를 바란다. 악담惡談이 아니고, 아베의 콧등이 무참히 꺾여야 그 작자가 ‘(군사국가로의) 개헌’ 얘기를 접을 터이니까. 그래야 ‘한국 때리기’도 멈추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태평양에 쏟아부으려는 잔꾀도 삼갈 터이니까. 일본 경제가 쭈그러들어 한국이 덩달아 타격 받는다 해도 동아시아에 전운戰雲이 깃드는 것보다야 낫다.

(시진핑도 양아치 대열에 올려야 하나? 그가 코로나 대응을 놓고 뻔뻔하거나 난폭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 지배층은 일괴암一塊岩이다. 품평을 하려거든 똘똘 뭉쳐서 권력을 휘두르는 집권당 전체를 놓고 해야지, 리더 개인을 촌평하는 것은 하릴없다. 물론 걔네가 초기에 진상을 숨기고, 강압적 봉쇄에 나선 것은 그들 국가자본주의 독재체제의 민낯, 그 취약함의 표현이다. 그런데 ‘공산共産’은 무늬/허울뿐이므로 그 부재不在하는 이념을 비웃을 일이 아니라 그들의 ‘자본 독재’를 꾸짖을 일이다.)

 

5. 천하天下의 오사리 잡놈 트럼프 : 그는 작년에 감염병 예산을 80%나 깎고, ‘백악관 대응팀’도 해체해 버리고, 올 초엔 코로나 경고를 열 차례나 묵살했다. 그랬다면 전면 대응에 나서기 앞서, 무릎 꿇고 제 잘못부터 사죄했어야 옳다. 그런데 'sorry' 한 마디도 없다. 자기를 ‘무오류의 존재’로 믿는 모양이니 ‘신神’이라 불러주자. 다만 얼마 전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진단키트를 구걸했으니 ‘걸신乞神’이라 호칭해야 옳다. 그에게는 싸움 잘 날, 콧등 아물 날이 없다. ‘중국 바이러스!’라 떠들어 시진핑과 싸우고, ‘경제 재개 날짜’를 놓고 주지사들한테 싸움을 걸고, “니들이 대신 욕받이가 돼주렴!” 하고 WHO와도 신들린 듯 싸우니 그를 ‘신들린 자 곧 귀신’이라 불러야 하나?

조지 부시는 아프리카에 에이즈 백신 개발비를 댔고, 오바마는 전세계 에볼라 대응책 마련을 주도했다. 그런데 트럼프는 (최강의 국제정보기관을 부려 써서) 중국이 유럽에 대준 마스크를 잽싸게 도둑질했다. 2020년은 미국의 세계적 헤게모니가 만신창이로 짓밟힌 해로 기록될 것이다. 세계 1등 도시 뉴욕에서는 의료진이 ‘보호 장구를 달라’고 데모하고, 시 당국은 연고 없는 주검을 무더기로 공동묘지에 쏟아부었다. 세계 국방비의 절반을 혼자 쓰는 두려운 군사 국가가 의료복지 부재의 가장 불쌍한 나라로 굴러떨어졌다.

그런데 그런 두 얼굴의 나라, (귀)신들린 리더가 씨나락 까먹는 지령을 내리면 납작 엎드려 받잡아야 할까? “방위비 분담금 두 배로 내!” 하면 대뜸 “성은이 망극하여이다”로 받고, “이란, 북한에는 진단시약 보낼 생각 마!” 하면 “옳습니다욧--” 복창하고.... 엊그제까지만 해도 딴나라당의 후손들은 ‘그래야 한다!’고 민중을 가르쳤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70년 케케묵은 ‘노예 복종심리’로 한결같이 자동반응을 보인다면 그래서야 이 미증유未曾有의 ‘코로나 사변’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야 어찌 양아치들 들끓는 대환란大患亂의 위기를 한류韓流가 뻗어나갈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코로나는 지구적 전염병이므로 지구적 협력체제를 꾸리지 않으면 가라앉힐 수 없다. WHO 강화를 시발점으로 삼아 모든 부문에 걸쳐 ‘국제기구’에 힘을 실어주는 실천들이 나와야 할 때다. 그런데 언론에는 ‘WHO 강화’ 얘기가 단 한 줄도 안 실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상식常識’이라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산다. 수많은 인류가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 시절에 다들 제 우물(=국민국가) 속에 코를 박고 있다.

 

코로나에 앞서 대공황panic이 왔다

 

코로나가 왔을 때, 처음엔 ‘전문가’들이 (그 영향이) 별거 아니라고 봤다. 곧 ‘V자 반등’을 할 거라고. 며칠 뒤에는 ‘U자 반등’으로 말이 바뀌었다. 순전히 경제활동이 얼마나 멈추느냐만 놓고 간단히(=분석 없이) 생각한 것일 뿐이다. 자본과 투자자들을 달랠 속셈으로 즉석에서 내뱉은 말들이다. 물론 코로나가 오래 가겠다 싶자, “이거, 9.11테러와 2008위기를 합친 것만큼 충격을 주겠다.”거나 “1929공황과 맞먹겠다.”는 얘기로 바뀌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가 오기 전에도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다’고 봤다. 미 연준聯準은 이미 작년에 0.25%씩 세 차례나 금리를 내렸고, 지금은 제로 금리 상태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 대공황panic이 왔다. 이것, 작년이나 올해에 난데없이 온 게 아니고, 일찍이 2008년에 터졌다. 수조 달러의 돈을 찍어내서 십년간 눌러놨을 뿐이지 “2008위기가 해소됐다가 코로나 때문에 새로운 위기가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해소됐다’고 빈 말을 뱉기가 양심에 껄끄러워 ‘지금이 new normal’이라 생각하자고 그동안 얼버무렸을 뿐이다. 2008년에도 거의 유일하게 정직한 전망을 내놨던 경제학자 루비니는 이번 사태가 “I자”나 “L자”의 장기 침체로 이어질 거라고 일찌감치 못박았다. 내부 상태가 어떠냐에 따라 외인外因은 달리 영향을 끼친다. 자본이 잘 나가는 호시절에 코로나를 만났더라면 ‘경제 멈춤’이 오래 가더라도 금세 털고 일어난다. 자본이 죽 쒀 온 요즘이라서 코로나가 무서워 보이는 거다.

 

1929대공황 때는 ‘유효수요 부족’이 주인主因이었다고 한다. ‘뉴딜’ 개발플랜 갖고는 턱도 없어서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수요가 화들짝 치솟은 뒤에야 자본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8대공황은 ‘낮은 이윤율’이 주인主因이다. 인공지능이고 뭐고, 온갖 꾀를 다 써봐도 이윤벌이가 안 되니까 자본은 아예 ‘투기꾼’으로들 나섰다. 그러니까 이번 공황을 놓고 ‘대마불사론大馬不死論’을 들먹이는 놈은 불 난 데 석유를 들이붓는 놈이다. 상당수 자본이 죽어야 나머지 자본이 간신히 살아날 터인데 “대마大馬는 다 살리자!”고 떠들면 삼성의 이재용도 반가워하지 않을 거다. 코로나에 따른 ‘경제 멈춤(유효수요 급감)’만 주목하는 사람은 “모든 기업, 다 살려라!”하는 선동에 휘둘리기 쉽다. 그 뒤에 도사린 ‘낮은 이윤율의 대공황’을 살펴야 ‘경제 부양책’ 설계에 심모원려深謀遠慮가 긴요함을 알게 된다.


구마적舊馬賊이 가고, 신마적新馬賊이 왔다


 코로나 방역을 놓고 ‘한국의 대응방식’이 전세계의 칭찬을 받았다. ‘방콕, 집콕!’의 우울증에 시달리던 민중이 그나마 그런 칭찬에 힘을 냈으니, 그 점에 관해서는 민주당 정권에게 호평을 보내도 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경제 멈춤’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사람들도 그런 칭찬에 힘이 날까?

‘공황 대책’으로 넘어가자면 현 정권이 잘 해낼 것 같지 않다. 재정건전성 신봉자 홍남기가 ‘비상경제회의’의 요직에 버티고 앉아 있어서다. 이것, ‘신자유주의냐, 개혁케인즈주의냐’를 가르는 핵심 잣대다. 공공 적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서 꼭 ‘반-자본’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본주의 모범국가 독일은 GDP 30%를 ‘경제 대책’으로 쓰겠다고 나섰다. 우리는 ‘기업 금융지원’까지 탈탈 모아도 5%가 채 안된다(4월 중순 현재). 골수 신자유주의자였던 아베만 해도 짱구 오래 안 굴리고 ‘전국민 10만엔’을 발표했다. 우리 돈으로 113만 2천원이다. 그러니까 홍남기가 경제 좌장座長으로 계속 버티는 한, 민주당 정권이 ‘코로나 경제 대응’에서는 필패必敗라 내다봐도 별로 틀리지 않을 거다.

이재명과 박원순이 좀 활약하면 나아질까? ‘기본소득 정착’에는 그들이 다소 기여할 것 같지만 자본의 전방위 공세를 막아내는 데는 한참 역부족이다. ‘규제 완화’라 하면 의심 살 수 있으니까 희한한 구실까지 대서 기업의 이윤벌이 ‘규제 완화’에 나설 게다. 이것, “모든 자본을 (투기자본까지) 다 살리겠다.”는 용감무쌍한 계급투쟁임을 잊지 말자.

이쯤에서 korea가 ‘과연 민주국가인지’도 의심해 보자. ‘촛불 승리’를 잠깐 해내고, ‘코로나 대응모델’로 칭찬 받은 우리는 이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 수준에서는 ‘민주가 (얼마쯤) 있다’고 봐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행령 수준으로 내려가면 박정희 파쇼통치와 별로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이 교원노조법을 변함없이 껍데기로 놔두겠다고 우기는 꼴만 봐도 안다. 여러 해에 걸쳐 민주노총을 사납게 공격해댄 것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다. 아무리 배부른 정규직의 노조라 해도 그들의 노동권이 후퇴하면 비정규직은 벼랑 밑으로 추락한다.

‘민주가 있다’고 큰소리치려면 노동자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지, 법조문에 하나하나 밝혀서 적어놔야 한다. 이를테면 비정규 영세노동자들의 ‘초기업 노조’를 법률로 못박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모래알로 흩어져 있는 ‘노동법 사각지대’의 일꾼들한테 민주民主는 ‘그림의 떡’을 넘어설 수 없다. ‘민주’를 이쯤 실천한 나라가 딱 하나 있는데 거기가 베네수엘라다(걔네한테 ‘사회주의’는 아직 희망사항일 뿐,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지는 못했다).

이번 총선으로 십년 묵은 체증이 쬐끔은 내려갔다. 막말 떠들어 영광을 누리던 금뱃지 놈들 대여섯이라도 쫓아냈으니까. 하지만 흐뭇한 기분은 거기서 끝내자. 구마적이 가고, 신마적이 왔으니까 말이다. 신마적이 더 끔찍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죽느냐’를 따지는 격렬한 계급투쟁의 시대에 그들이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할 공산이 짙기 때문이다. ‘굶어죽을’ 걱정도 하고 살아야 할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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