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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가 된 ‘공교육 정상화’

 

검은별(진보교육연구소 회원)

 

 

올 3월 중순 교감 선생님이 한 연수 자료를 공람하였다. 공문 제목은 「출제와 기록, 이것부터 알자!」 교원 연수 자료 안내였다. 첨부 파일로 연수 자료가 2개 있었는데, 하나는 학교생활기록부 훈령 및 기재요령 연수자료였고, 다른 하나는 공교육 정상화법 연수자료였다. 처음에는 출제나 기록 연수에 “웬 공교육 정상화?”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자료를 들여다보고 나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주장하던 공교육 정상화는 교육부로 건너가 거대한 탱자가 되어 교사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첫 장은 이렇다.

 

 

교사와 학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것 같은데, 핵심 내용은 공교육 정상화 촉진을 위해 선행교육을 규제하는 데 있었다. 일단 공교육정상화법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공교육정상화법이란 2014년 9월 12일부터 시행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의 약칭으로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고 학교 내 공정한 경쟁과 교사들의 정상적인 수업을 촉진하여 학생의 창의력 계발 및 인성 함양을 포함한 전인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된 법입니다. 그동안 공교육정상화법은 초,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과정 정상화를 통해 선행교육으로 인해 나타났던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같은 문제점들을 극복하는 데 커다란 여를 해왔습니다.

 

오! 그런 엄청난 성과가? 하지만 웬일인지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

 

2019년 3월 교육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여 공교육정상화법이 일부 개정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공교육정상화법은 초,중,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꿈을 이루고 미래를 여는 행복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든든한 공교육의 지킴이가 될 것입니다.

 

성과가 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여 더 좋게 바꾸었단다. 도대체 어떻게 바뀌었을까? 바뀐 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무엇을 해 왔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선행학습이 필요 없는 학교 수업 실시

●학교가 편성해서 공시한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 내에서 학교수업 및 방과후학교 실시

선행학습을 유발하지 않도록 지도, 감독 철저

●교육부 및 시도교육청에 교육과정정상화심의위원회를 구성하여 교육과정운영, 선행교육방지대책, 선행학습영향평가 심사, 의결

●공교육정상화법 위반시, 학교 및 대학에 시정 및 변경 명령하고, 미이행시, 학생정원,학급,학과의 감축,폐지 등의 행재정적 조치

 

아하! 학원이나 일부 학교에서 진행되어 정상적 수업에 방해가 되는 선행학습을 방지하여 모든 학생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도 동일한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는 거구나. 근데 이 법 뭔가 기억이 날 듯도 하다.

 

 

위 내용을 보면 초중고에서는 선행학습을 유발하지 않도록 학기 초 편성한 진도계획을 앞서서(배운 범위와 수준을 앞서는 내용을 출제) 평가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드디어 기억이 났다. 그 때 나는 이 법을 어긴 거였다. 그래서 나는 교육과정 진도표를 다시 제출해야 했다.

 

이전 근무 학교에서의 일이다. 중간고사였던가?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시험이 다 끝난 후 교과부장 샘으로부터 교육청에서 내 시험 문제에 배우지 않은 내용이 포함되었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엥? 배우지 않은 것을 냈다고? 그런 적 없는데?(당연히 난 가르친 내용을 평가하며 가능하면 문제를 쉽게 내려고 노력한다. 학생 점수 평균이 생각보다 높지는 않지만) 알고 보니 학기 초에 학교에 제출했던 교육과정 진도표보다 진도를 조금 빨리 나가서 진도표 상으로는 기말고사에 출제되어야 할 내용이 중간고사 시험에 일부 포함되었던 것이었다. 이런 지적은 처음이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교육청에서 이런 걸 점검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공교육정상화를 위한 교육청의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교육과정 진도표는 매년 학교에 제출하며, 1년 동안 배울 내용이 교과서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진도표의 내용이라는 것은, 단원 순서를 재배치하지 않는 경우, 해당 년도 날짜와 일정에 맞추어 단원명을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하면 된다. 게다가 올해처럼 큰 변동이 없는 한, 매년의 휴일이나 학교별 일정은 큰 변화가 없으므로 진도는 대충 날짜에 비례하여 진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거나 수업 진행에 변동이 있어 진도표와 100% 일치하게 진도를 나갈 수는 없는 법이다. 조금 빠를 수도 조금 느릴 수도 있는 것이다. 빨랐던 나는 나도 모르게 감히 선행학습을 유발하고 공교육정상화법을 위반한 교사가 되었다. 하지만 처음이어서인지 고맙게도 나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진도표에 중간고사 시험 범위가 포함되도록 진도표를 수정해서 제출했고 앞으로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었다. 그 다음부터는 1년 교육과정 진도표를 짤 때 진도를 빠르게 하는 것으로 계획을 짜서 제출한다. 계획상으로 11월 말이면 진도를 거의 나가는 것으로 계획을 짜고 그 뒤는 진도와 무관한 특별한 활동 중심으로 진도표를 채운다. 선행학습을 하지 말라는 것이기 때문에, 진도표보다 실제 진도가 늦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지적을 받은 적이 없다. 법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에 종속되어 있으며, 대입을 크게 좌우하는 수능과 내신에서 높은 점수와 등급을 받기 위한 노력 때문에, 학원 등에서의 선행학습이 공교육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할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증적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다. 근본적 해결 방법인 입시 폐지와 대학 평준화는 도외시하고 대증적 요법을 요란하게 선전하고 있는 꼴이다.

게다가 그 대증 요법으로 실제 큰 문제가 되는 사설 학원과 같은 사교육의 선행 학습은 제대로 규제하지도 못하면서, 중학교의 정상적 교육과정에 포함된 내용을 계획보다 조금 빨리 가르치는 것을 선행학습으로 규제하고 교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공부를 할 때 중요한 예습과 복습 또는 도전 과제는 어떻게 되는가? 때로 시험 문제에 도전 하라는 의미로 조금 문제를 꼬아서 어렵게 내기도 하는데, 이 법에 따르면 그런 문제는 가르치지 않은 내용으로 취급되어 금지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공교육정상화법이 바뀐 내용은 다음과 같다.

 

Q.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를 반영하여 선행교육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나요?

A. 두 가지가 달려졌는데요, 첫 번째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이 법을 만들 때 2019년 2월 28일까지 허용하기로 했던 일부 선행교육의 허용 기한이 2025년 2월 28일로 연장되었어요.

 

Q. 어떤 선행교육의 허용 기한이 연장되었나요?

A. 다른 지역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충분하지 못한 농산어촌이나 도시 저소득층 밀집지역 중고등학교의 ‘방과후학교를 통한 선행교육’이 그때까지 허용됩니다. 또, 고등학교에서는 휴업일에 ‘방과후학교를 통한 선행교육’을 할 수 있어요.

 

Q. 두 번째 개정 내용은 무엇인가요?

A.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허용입니다. 이는 2018년 3월부터 금지되었는데, 이번에 법을 개정하면서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는 공교육정상화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만들었어요. 이제 놀이, 활동 중심의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후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운영할 수 있어요.

Q. 그렇군요!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중,고등학생들에게는 충분한 학업 기회 보장과 사교육비 경감 효과를, 초등 저학년 학생들에게는 즐겁고 다양한 영어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네요.

 

헠! 온통 선행교육을 허용하거나 연장하는 내용 일색이다. 이쯤 되면 입법 취지가 의심된다. 학부모들에게 민감한 고등학교 선행학습과 초등학교 저학년 영어 선행학습을 방과후 학습이라는 뒷문을 통해 모두 허용하면서, 어떤 선행학습을 막아서 공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러한 나의 모든 의문은 모두 오해였음이 밝혀졌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V. 공교육정상화법, 오해와 진실

Q.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는 선행학습도 공교육정상화법에 따라 금지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습자가 자발성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공부하는 선행학습까지 금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예습하는 것은 괜찮다. 몰래 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다.

 

Q. 공교육정상화법으로 선행교육이 금지되면 학교 내에서의 교육 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가수준 교육과정 및 시도교육과정 편성,운영 지침에 따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정상화법은 학교에서의 선행교육을 금지하고 선행학습 유발 요인을 억제함으로써 학습 부담을 줄이고 학교 교육활동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Q. 학교에서 선행교육을 하지 않도록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려면 무엇을 주의해야 하나요?

A. 초등학교는 학년군을 앞서서, 중고등학교는 학교급을 앞서서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또한 학교 교육과정을 편성한 후에는 계획된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기나 학년(군) 또는 학교급을 앞서서 운영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Q. 교과 간 혹은 교과 내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교과 내 또는 교과 간의 일부 내용을 앞서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경우는 선행교육에 해당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의 교과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해 교과별(학년별) 진도 계획을 편성 또는 수정하고, 이에 근거하여 일부 내용을 앞서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한 학기 단위를 넘어서는 재구성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를 정보 공시에 반영하여 계획과 운영의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을 연수자료랍시고 내려 보내는 관료들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 탱자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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