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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을 통한 또 한 번의 시도

 

유성희(서울지부 공립중등남부지회장)

 

약간 운명처럼 2010년부터 2년간 지회장을 맡은 이후, 정확히 10년 만에 서울 중등남부지회장으로 컴백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30대 초반이었던 2010년의 ’나’와 ‘남부지회’는 각각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돌아보면 남부지회는 가장 많은 조합원과 든든한 지역토대를 갖추고 있어, 그간 서울지부의 가장 큰 투쟁과 실천 동력이었고, 이미 ‘전국에서 가장 편한 교사 문화’를 보유한 곳이다. 10년 전 어쩌다 30대 초반의 초짜 교사가 지회장을 하긴 했지만, 그 당시 남부지회는 다수의 든든한 활동가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투쟁이면 투쟁, 참실이면 참실 안 되는 일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올해 오랜만에 지회장이 되어 만난 남부지회는 매년 지부나 본부로 빠져나가는 활동가들로 인한 공백도 많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명퇴와 정퇴 등으로 조합원도 꾸준히 감소세였다.

이번에 지회장이 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 조합원의 감소세와 더불어 젊은 조합원이 너무 없다는 것을 ‘통계’로 실감한 것이다. 누군가는 학교 자체에 정교사 수가 줄고 있고(학급수가 거의 반토막씩 나고 있으니) 또 그에 따라 젊은 교사들의 비율 자체가 적어지고 있으니, 젊은 조합원이 없는 것은 전교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다소 우리에게 유리한 분석도 있지만, 지회‘장’이 되어 조합원 명부를 정리하다보니 35세 이하 조합원이 단 12명뿐이라는 점은 적잖이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 와중에 너무 감사한 일은 올해 남부지회 집행부에 2030 샘들이 5명이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행부에 정식 결합하고 있지 않은 분들도 몇 분 있어서 지회 2030 조직화 사업에 열의를 보이고 있고, 다같이 모여서 “젊은 교사들은 왜 전교조 가입을 하지 않을까? 노조 가입은 굉장히 멋진 일이고, 나를 지켜주는 일이고, 나아가 이 사회를 바꾸는 일인데...” 라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이분들의 존재 자체가 참 너무 의미있고 감사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 샘에게서 제안이 하나 들어왔다. 남부지회 사업으로 젊은 교사를 상대로 하는 ‘인문학’ 느낌이 나는 홍보책자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전교조 홍보 책자(남부지회 버전) 제작 제안>

 

1. 목적

• 분회가 신규, 전입 교사에게 가입 제안을 할 수 있는 방식 마련

• 신규, 전입 교사가 남부지역이라는 소속감과 전교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하게 함.

(전교조 조합원들이 일궈온 남부의 민주적인 학교·교사 문화가 있음.)

• 2030 젊은 선생님들의 고민과 감각에 맞춘 홍보물로 같은 세대에 정서적 친밀감을 높임.

• 단위학교의 신학기 워크숍에 공식적으로 가입 제안을 하여, 선생님들의 가입 기회를 높임. (이전까지 주로 비공식적으로 제안을 해오던 것에 대한 보완)

2. 제작팀원: 2030

3. 자료 형태: PPT? / 소책자(손바닥 크기?(가로15cmx세로10cm?) 8쪽~16쪽) / 또는?

4. 내용(구상) 주저리주저리

• 대략 전교조 일반, 남부 자랑, 지회의 역할, 신규가입 조합원 추천글, 가입하라는 논리 등

• 첫 페이지: “( ) 선생님, 남부교육청으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 끝 페이지: 2020 남부지회 활동 계획, 남부지회 집행부 소개 + 단체사진?

• 전교조에 대한 편견, 비판, 외면에 대한 대응

예) 정치 행위와 투쟁 행위가 교육과 무관하다. ↔ 정치적 투쟁으로 조금씩 진보했던 역사

• “무임승차 할래!” ← 노조원의 노령화와 자연감소로 점점 더 무임승차가 어려워짐.

• “전교조 말고 다른 단체나 모임하면 된다.” ← 여러 모임 시민단체 활동과 연대는 당연하지만, 전국단위 조직이자 교섭단체인 전교조도 같이해라.

• 학교는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 시대, 구조, 관계, 노동 등은 한국사회 거시구조 속 일부 예) 특성화고 추천의 딜레마(진로의 다양성 vs 계층구조 공고화)

• 심지어 생각의 범위, 발화 행위 등 조차 한국사회 역사의 일부로 제약됨.

예) 공무원의 정치중립성과 자기검열

• 높은 노조 조직률 → 직업 귀천 없앰 → / 계급구조 완화 → 교사인 우리부터 노조하자.

• 다중정체성 나의 일부 / 교육은 인간을 알아가는 것 노동(진보)운동도 그러하다. 전교조 하면서 교육과 사회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여 자신의 성장을 돕는다. 전교조가 해답은 아닐 수 있는데,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 거다.

• 소외받는 사람들과 연대 : 세월호 / 소수자

• 2030세대의 경쟁중독에서 벗어나자.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김홍중)」

(* 까치소리와 내용이 중복돼도 상관없을 것 같고, 까치소리를 홍보해도 좋을 듯.)

5. 일정: 초안 마련 → 집행부 회의 안건(1.31) → 제작(2.1~2.11) → 홍보 및 배포(2.12~)

6. 예산: 제작비 거의 들지 않음. / 풍부한 협의회비 요청

7. 기타

- 집행부 다 같이 스튜디오 단체프로필 찍는 건 어때요? 자료집 맨 뒤에 넣게요.ㅎㅎ 저도 사진 찍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뭐랄까. 일단 소개도 되고, ‘전교조가 활동하더라’보다는, ‘우리 옆의 보통 동료선생님들이 모여서 활동하는구나’하는 친근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내친김에, 이를 확장해서 신규임용교사 연수(2.19.(수) 사당연수원)의 노조소개 시간 때 전교조 홍보도 우리가 할까요?

 

사실은 이 사업의 성공 여부나 진짜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보다는, ‘시도’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10년전 나와는 달리 나도 어느새 세월만큼이나 될 일과 안 될 일,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한 구분이 생겨버려, 이제 뭘 시도하려면 두려움이 앞선다. 그런 와중에 우리 젊은 동지들이 2030교사들을 위한 홍보 자료를 만들어보겠다는 열의를 불태우는 모습은 참으로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웠다.’

그 이후로 한 세 번의 회의가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젊은 교사들이 좋아하는 게 뭘까? 그런 젊은 교사들 중에 그래도 ‘노조’와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등등의 나름의 젊은 세대에 대한 분석과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접근해야할까? 에 대한 각종 아이디어가 오갔다. 그리고 ‘남부지회’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주변 신규 친구들에게서 다른 지역 이야길 들어보니 “남부는 뭔가 다르다”라는 말이다. 다른 이유는?! 바로 전교조 남부지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름 근거있는 남부 자부심 공유.

이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본격 책자 제작에 들어갔다. 책자 제작 방법은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 7명이 그냥 젊은 교사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특히 젊은 교사들이 쉽게 생각하는 ‘각자 도생’이 아니라 ‘모두살이’가 왜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모아보니 아주 멋진 글들은 아니지만 (아니 진짜 솔직히는 다들 멋진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하면서 학급운영을 하면서 무엇이 어려웠는지, 그때 우린 왜 다른 동료교사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전교조가 필요했는지. 또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는 잠재적인 교육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성과급 균등분배가 왜 멋진 일인지에 대한 각자의 글들이 모였다. 그냥 뭐 소소한 듯 보이는 각자의 경험치를 담아낸 글이었지만 한 샘이 그걸 다 모아서 책으로 편집한 것이 바로 [관성]이다.

사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관성]을 배포하면서, 2030 조직화 사업이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하필 개학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가 올해 있어서, 계획 했던 것을 1/10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회에서 ‘젊은 활동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던지고, 선배 활동가로서 귀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생각한다, 앞으로 코로나가 어느 정도 물러가면 다시 한 번 시동을 걸어보고 싶다. 어느덧 14년째 지회, 지부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내 머릿속에 자리잡은 [관성]을 멋진 후배샘들의 [관성]으로 밀어내버리고, 우리 지회는 또 어딘가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기회를 가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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