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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Ⅱ. 새로운 시대 사회변화와 교육노동운동

 

2. 새로운 시대변화 : 한국사회 그리고 교육운동

정세분석팀

 

1980~90년대 신자유주의의 전면화 과정은 금융화, 유연화라는 축적 양식의 변화에 기초해 극단적인 시장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구사하는 자본의 능동적 공세라는 성격을 지녔었다. 그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저항은 상대적으로 수세적, 방어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전개되는 새로운 시대변화들은 그 때와는 결이 다르다. 근본적인 위기에 처하면서 자본주의는 균열과 대안부재의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새로운 차원의 노동자, 민중의 공세적 담론과 투쟁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새로운 시대변화가 한국사회에서는 어떻게 전개될지, 주요 의제들에 대해 어떤 관점이 요청되는지, 교육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필요한 과제가 무엇인지 논의해 보고자 한다.

 

 

1. 한국사회는 어떻게?

 

1) 이미 시작된 변화

현실은 인식보다 빠르다. 한국사회에서도 주요한 변화들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문제제기와 의제들이 제출되어 왔다. 별 효과는 없지만 소위 ‘저출산 대책’이라는 것 정책화되어 왔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교원수급, 작은학교 통폐합 문제, 지방대학 위기 등을 불러 오고 있고 4~5년 주기로 연금제도를 손보면서 충돌을 야기하고 있다. 아동, 청소년 관련 사업이 축소되는 대신 어느새 노인케어 산업은 크게 확대되었다. 최근에는 저물가, 성장률 감소 등 구조적 차원의 문제들도 현상화되기 시작했다. 인지자동화 문제는 아직까지는 대체로 담론과 기술개발, 선도적 정책 구사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조만간 현실이 되고 점점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무인계산대, 무인 창구 등 일부 유통 및 서비스 분야에서는 일자리 감소 현상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황사, 미세먼지 문제, 태풍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환경위기에 대한 문제의식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유럽에서와 같은 생태문제 의제 확산 현상이 조만간 나타나리라 예상된다.

 

지금 현재는 본격적인 사회변화와 그에 따른 담론 분출을 목전에 두고 있거나 막 시작되는 상황이라 보여진다. 최근 문재인 정권의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잠재성장률이 2%대까지 떨어졌다면서 “저성장 뉴노멀을 받아들여야"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세종=뉴시스】김진욱 기자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 경제의잠재 성장률이 2%대까지 떨어졌다"면서 "이를 저성장 뉴노멀(New Normal)로 여기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뉴노멀은 '지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세계 경제의 특징'을 의미하는 말이다. 홍 부총리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종합 감사에서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과거 3~4%에서 이제 2.5~2.6% 수준까지 내려왔다가 앞으로는 이보다도 더 낮아질 수 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이하 생략(2019.10.24. 뉴시스)

 

앞으로 저출산/고령화, 저성장 현상이 심화되고 인지자동화 기술이 본격 도입되면서 사회변화 속도는 더욱 급격해 질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이러저러한 문제들을 넘어 구조적 변화, 근본적인 변화들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2) 한국사회 변화 및 핵심 이슈 전망

 

(1) 성장주의를 둘러싼 논쟁

 

* 저출산/저성장의 빠른 현실화

최근 정부에서조차 저성장 국면 진입을 인정한 것에서 보이듯 한국사회는 빠르게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저성장 국면 진입의 가장 핵심적 요인은 유례없는 속도의 저출산/고령화 현상로 인한 것이다. ‘수축경제론’ 등 최근 저성장 시대와 관련된 경제담론들이 빠르게 확산 중이며 조만간 사회적 논쟁이 시작될 것으로 생각된다.

 

* 성장주의 논쟁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그 불가피성을 수용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대응양식을 형성하는 데는 일정한 과정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성장’에 익숙한 오랜 관성도 작용하고, ‘성장’을 필요로 하는 여러 요구들도 있기 때문이다. 자본은 당연히 성장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성장이 일자리와 소득 증대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성장주의는 한동안 여전히 강력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구호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성장주의의 유지 속에서 제로금리와 양적 완화, 정부 재정정책 확대 등 경기부양을 위한 온갖 수단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리, 재정 등 경기부양 정책도 여타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계적일 것이다. 이 과정은 제반 정책들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들을 수반할 것이며, 결국은 ‘성장’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들로 나아갈 것이다. 이 논쟁에서 ‘자본주의적 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을 분리시킬 때 ‘저성장 시대’를 수용하면서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방향과 의지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좀 더 복잡한 변화 요소들

그러나 일본, 유럽과 달리 한국사회는 좀 더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회변화를 야기할 수 있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 첫째, 남북관계 및 동북아 정세 변화의 문제이다. 남북관계 진전은 남한 자본 및 일부 노동집약 제조업 진출 등으로 약간의 활로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저성장 국면 진입 자체를 막지는 못하지만 성장 둔화 속도를 일정하게 늦추면서 성장주의 환상을 지속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둘째, 미중 패권 경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세계 질서변화의 영향이다. 한국사회는 미중 양쪽에 모두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특히 중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헤게모니가 일정하게 분산될 경우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 속도를 늦추는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대외 조건들은 막연히 ‘한국은 일본, 유럽과 다를 수 있다’가 아니라 보다 엄밀히 인식될 필요가 있다. 우선 지적했듯이 한국 경제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적이라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잘 풀려 북한으로의 진출이 활발해 지더라도 북한경제 규모가 남한에 비해 워낙 작기(약 50분의 1)때문에 남한 경제 성장에 미치는 작용은 미미하다. 예컨대 북한이 연간 10% 성장률을 이루더라도 성장분은 남한 경제의 0.2%에 불과하며 실제 성장 기여 정도는 그보다 더 작을 수밖에 없다. 중국도 조만간 4~5% 대의 성장 국면으로의 진입이 예상되는 상황이라 이전의 10% 전후의 성장에 도움을 받던 것과는 다르다.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중국 요인은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이기도 하다. 이처럼 북한, 중국 요인은 성장 둔화를 늦출 수 있는 부분적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 실제 효과는 한계적이며 또한 가변적이다. 다만 유럽, 일본 등에 비해 제한적 성장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정도로 파악되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은 이미 2% 대로 하락했으며 북한, 중국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많으면 2% 남짓, 적으면 1% 대 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2% 전후면 유럽, 일본 등과 같은 거의 제로 성장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고성장에 익숙해 왔던 한국사회에서는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체감할 만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2) 일자리 문제

일자리 문제는 불평등, 양극화 문제 속에서 세계 자본주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 대립적 경향의 복합

저출산/고령화, 신자유주의 축적 구조의 지속, 인지자동화의 점차적 도입 속에서 일자리 문제는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실업률 감소’ 경향과 저성장, 인지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실업률 확대)’라는 반대 경향이 함께 존재한다. 아직 인지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현상이 본격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로 인한 광범한 실업 ->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실업률 감소 현상이 순서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제 ‘인지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감소’ 문제가 본격적으로 의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생산인구 감소 현상이 이제(2017년부터) 막 시작된 반면 인지자동화 도입 속도는 선진자본주의국가와 거의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 생산인구 감소에 따른 ‘실업률 감소 경향’과 인지자동화에 따른 ‘실업률 확대 경향’이 동시에 진행될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수치로 본다면 잠시 수년 간 실업률 감소가 나타나다가 인지자동화 도입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실업률이 확대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사회적 의제의 차원에서 본다면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상황에서 인지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상실 문제가 연속적으로 부각됨으로써 일자리 문제가 내내 핵심적인 의제가 되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정규직화를 거부하려는 자본의 태도는 그러한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자본은 “기술진보로 수납원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마트 등에서는 무인계산대를 도입한 마트 운영시스템을 선보이고 있다. 자본과 정권은 ‘창조 경제’ 구호 속에서 인지자동화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일자리 감소는 인지자동화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저출산/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 역시 주요 요인이다. 한국사회에서도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퇴직자들이 대거 늘게 되는데 오히려 유소년 및 생산인구 감소로 자영업 시장 축소되어 노인 실업 확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급격한 생산인구 감소 속에서도 한국사회는 일본과 같은 잠시나마의 완전고용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채 일자리 수의 절대적 감소 사태로 나아갈 수도 있다.

 

* 일자리 문제의 의제화

새로운 사회변화 속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일자리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은 개개인의 생존과 사회경제의 지속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 정권에서도 일자리를 가장 큰 정책과제로 설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자본은 물론이고 정권도 일자리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저성장 속에서 더 치열해지는 자본 간 경쟁에서 개별 자본은 인지자동화 도입을 적극 추구할 것다. 이로 인한 일자리 상실에 대해 정권은 ‘창조 경제’의 강조 속에서 개입하거나 책임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인지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과정에서 남게 되는 인간 노동 강도는 더 쎄진다. 예컨대 무인발권기를 도입한 기차, 고속버스 발권 창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훨씬 힘들어졌다고 한다. 일자리는 줄고, 살아남은 노동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사회 전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총자본의 입장에서도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다. 총자본의 입장에서도 실업 확대는 소비와 경제 규모의 감소로 연결되고 체제 안정성을 크게 위협하기 때문이다. 인지자동화 기술 도입과 그로 인한 실업 확대 우려가 의제화된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자본 일각에서조차 기본소득제, 부유세 도입을 제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한국 일부 논자와 언론에서도 거론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향후 일자리 문제가 엄청난 난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별자본은 나몰라라 구조조정을 통해 대량해고를 유발할 것이고, 정부는 생산인구 감소로 더 이상 실업률이 늘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노인일자리와 같은 일시적, 주변적 고용 창출에 머물 것이다. 시스템 차원의 구조적 접근이 없는 한 다가오는 일자리 문제는 해결 방법이 없다.

 

(3) 불평등과 계급 문제

그 동안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투쟁으로 불평등/양극화 문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주요한 의제로 설정되어 왔다. 저성장 국면에서 불평등/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화, 확대될 것으로 예견다. 전체 파이가 커지지 않는 조건에서 이윤을 위한 자본운동의 지속은 더욱 심화된 양극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현재 완전고용 상태에 다다른 일본의 경우 노동력이 부족한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저성장 속에서 임금을 올릴 경우 이윤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조금이나마 성장을 하는데도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불평등/양극화는 계급, 계층 간 소득 양극화만이 아니라 지역 양극화, 업종 양극화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저성장 속에서의 인구감소는 농촌과 주변지역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일정한 규모의 인구수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각종 편의시설과 서비스기능이 쇠퇴하기 때문에 그 나마의 인구마저 유출되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 학교 문제가 잘 알려진 예이며 일본의 경우 사라지는 농촌 마을이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인지자동화 기술이 적용되어 나갈 경우 업종과 노동의 위계도 심화될 것이다.

그 동안 자본과 지배엘리트는 불평등/양극화 문제를 무시해 왔다. 2008년 이후 문제를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려운 사태에 이르자 최근에는 문제의 근원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다루기 시작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민자에 책임을 돌리는 극우 포퓰리즘이 대표적이다. 최근 등장하는 소위 ‘세대론’도 문제의 근원을 회피하는 논의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계급 문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의 부상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프랑스 노랑조끼 운동, 미국에서의 사회주의 확산 등이 그러한 흐름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자리 문제와 함께 부의 재분배 문제는 앞으로 가장 중요한 사회 의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으며 이에 대한 공적 개입 논의도 불가피하다.

 

(4) 삶의 질 - 생태와 복지

성장, 성공신화가 물러나는 자리를 민중의 삶의 질 문제가 대신할 수 있고 또한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그 동안 ‘성장’을 중심으로 사회적 에너지와 노력이 동원되던 것에서 모든 사람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우선 노인 문제, 출산 장려와 결합된 보육과 교육, 일자리 문제 등과 연관된 다양한 복지 문제가 의제화될 수 있다. 또한 환경 및 기후 위기와 관련 생태문제가 주요하게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유럽에서는 생태주의가 정치적 의제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2019년 6월 치러진 유럽연합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극우세력 부상이 아니라(극우세력은 엄밀히 따지면 본전치기였다) 생태주의 정당의 급격한 부상이었다. 당시에는 북유럽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북부 지역에서 주요하게 나타났는데, 몇 개월 뒤인 최근(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 중부유럽에서도 총선에서 생태주의 정당이 약진하면서 흐름이 남하하고 있다. 유럽에서의 생태주의의 정치적 약진은 지구온난화와 이상 폭염 현상 등 최근 환경위기에 대한 직접적 경험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도 미세먼지 문제, 전례 없는 가을태풍 등으로 환경위기에 대한 문제의식과 민감도가 상승되고 있어 앞으로 생태 의제의 확산이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성장 보다 삶의 질’로의 전환은 사람들의 본능적인 생활양식 변화로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생각된다. 성장, 성공신화에 대한 욕망이 점차 물러나고 그 자리에 ‘워라벨’, ‘소확행’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성공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과 저성장 시대 어차피 그런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적응이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마저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사회 부조리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수저론’, ‘공정론’과 같은 형태로 쌓여가고 있다. 개개인의 생존적 차원의 대응과 불만을 넘어 모든 사람의 삶의 질 향상이 전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 공유하게 된다면 사회 변혁의 에너지는 새로운 양상으로 분출될 수 있을 것이다.

 

 

2. 새로운 사회변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가 접하는 저출산/고령화, 인지자동화 문제 그리고 ‘경제 성장’에 대한 거의 대부분의 논의는 주로 자본의 관점에서 제출된 것들이다. 오염된 논의에 영향받은 탓에 저출산과 저성장을 염려하고 인지자동화 도입을 살길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회변화의 성격과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적 대응 방향과 전망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1) 기술혁신과 자본주의적 성장은 다른 것

우선 ‘성장’ 문제에 대한 인식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그래야 ‘저성장’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고 대응해 나갈 수 있다. 많은 경우에 ‘성장’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물질적 토대와 동일시하는데 그렇지 않다. 둘은 연관되지만 다른 것이고 일치하지 않는다. 저성장 시대라 하더라도 삶의 질 향상, 나아가 물질적 발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성장’은 ‘경제적 측면의 성장’을 의미하고 그것도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양적 크기는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크기이며, 현대자본주의에서는 달러로 환산되는 크기이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의 양적 크기는 양적 측정이 어려운 사용가치는 물론이고 노동가치와도 일치하지 않으며 달러로 환산되면서 변환, 왜곡된다. 또한 자본주의적 상품교환 과정에서 어떤 것은 실제보다 증폭되고 어떤 것은 축소 평가된다. 실제 가치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의 불일치, 실제의 물질적 발전과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이 불일치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예컨대 달러로 계산되는 1인당 GDP보다 달러 환산에 따른 변환 정도를 제거한 ‘구매력 지수’가 실제의 물질적 생활 정도를 더 타당하게 반영한다. 독점 상품이나 투기에 의한 주택은 실제 가치 이상으로 교환되지만 과잉된 교환가치로 계산되고 성장에 반영된다. 반대로 생산성 향상으로 어떤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면 물가 하락과 성장 감소로 계산된다. 자본주의적 성장은 실재 가치와 동일하지 않으며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의 합산에 의한 결과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성장의 가장 큰 모순과 문제점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기술혁신 및 생산성 향상과 대립, 충돌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술발달로 어떤 비싼 약을 값싸게 생산하게 되면 매출, 즉 성장은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유통기법이 발달해 비용을 줄여 더 싼 가격에 물건을 판매하거나 기술개발로 더 좋은 가전제품을 더 싸게 내놓아도 마찬가지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성 향상 자체는 가격을 낮추고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성장 감소를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생산성 향상만이 아니라 생활상의 물질적 풍요도 자본주의적 성장 일치하지 않는다. 인구가 정체된 어떤 나라에서 생산성 향상으로 만약 많은 제품의 가격이 떨어진다면 같은 소득이라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더 풍요해진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은 반대로 감소한다(따라서 자본주의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빠르게 가격이 하락하는 일부 가전제품 사례에서 그 단면을 경험해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술개발과 생산성 향상이 자본주의의 성장으로 연결된다는 신화는 어떻게 창조된 것일까? 그것은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이 하락해도 이전보다 더 많이 팔거나 새로운 제품 개발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통해 전체규모를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그것이 가능했다. 한 국가 안에서도 자본주의의 영역과 시장을 계속 개척해 나갔고, 국내 시장이 모자르면 식민지를 개척했고, 그러는 와중에도 인구는 증가해 왔기 때문에 그 속에서 자본주의는 계속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고, 더 많은 종류의 제품을 개발해 오면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자본주의는 ‘수요 절벽’으로 더 많이 팔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인지자동화에 따른 고용 감소로 앞으로 정체된 인구의 구매력마저 감소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적 성장이 근본적 한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저성장 시대를 맞이하여 자본만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은 여전히 성장주의에 강한 집착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성장이 자신의 소득 증대로 연결되고 그를 통해 물질적 풍요와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여전히 자본주의적 성장 구호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고 성장과 복지, 삶의 질 향상을 대립시키는 거짓 선동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기술혁신-성장-삶의 질 향상’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 그에 따른 물질적 풍요는 자본주의적 성장과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며 이제는 오히려 대립, 충돌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러할 때 저성장 속에서도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삶의 질 향상으로 연결할 수 있다.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 단축과 사회적 차원의 일자리 보장 요구로, 복지와 인간적 삶의 보장 요구로, 환경위기 극복 활용 요구로 연결해야 한다. 생활수준을 1인당 GDP라는 자본주의적 교환가치로 환산해 온 물신화를 극복해야 한다. 대신에 ‘행복지수’와 같은 시도들처럼 삶의 질을 제대로 가늠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저성장 속에서도 얼마든지 기술발전과 삶의 질 향상은 같이 추구되고 결합될 수 있다. 나아가 기술발전을 삶의 잘 향상에 초점을 둘 수 있다. 기술의 인간화로 나아가야 한다.

 

2) 저출산/고령화 :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진보

저출산/고령화가 한 사회가 해결해야 할 난제들을 던져주기는 하지만 이 역시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 자체는 인류 진보의 결과이다. 경제적/의학적 진보로 삶의 길이가 연장된 것이며, 개인적 삶의 주체로서 성격이 강화되어 온 결과이다. 또한 크게 보면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과잉화된 인류라는 종의 생태적 반응이기도 하다. 따라서 저출산/고령화와 그에 따른 저성장 시대를 인류 진보의 자연스런 결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볼 때 새로운 인구구조와 저성장은 타개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삶의 질을 풍부하게 채워나가야 할 새로운 역사적 조건으로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저출산은 ‘출산 파업’이라는 말처럼 피폐해진 삶의 조건으로 인한 측면도 있다. 비정규직과 임금 하락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에서 청년 세대의 결혼이 미루어지고, 과도한 양육 및 교육비로 출산을 주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출산 파업’은 부분적으로나마 피폐함을 완화하는 효력이 있다. 일본은 청년 실업 문제가 저절로 해소되었다. 경쟁 스트레스도 줄어들고 저물가로 인해 소득이 적어도 고통이 덜 하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베는 경기부양을 위해 인플레이션을 유발(인플레이션은 경기부양에 도움이 됨)하려고 엄청 애를 썼지만 실패했는데, 의도치 않게 실업문제가 해소되고 저물가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 현상이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모든 계층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단지 생활의 불안정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저출산 현상은 기본적으로 가족과 가문, 출산, 양육에 얽매이는 전통적 삶보다 자유로운 개인적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는 생활양식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적 피폐함이 더해지면서 저출산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경제적 피폐함을 개선할 경우 어느 정도 회복은 될 수 있지만 결코 이전과 같은 출산률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며 저출한/고령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기존의 사회와는 다른 차원의 복지,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사회적 투자 확대, 사회 시스템의 공적 성격 강화를 필요로 한다. 저출산/고령화가 인류 진보의 결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앞으로 지속될 추세라고 한다면 진보적 사회변화의 불가피한 조건으로 보면서 삶의 질 향상 요구의 강화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3) 지속가능한 성장? 지속가능한 사회!

선진국은 물론이고 한국사회도 더 이상 고성장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로 진입하고 있지만 고성장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강고한 상황이다. 아직도 자본과 권력, 대다수 사람들은 성장주의를 쫓는다. 심지어 진보진영과 대안사회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상당 정도 성장주의에 매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 표현이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구호이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성장’을 의미한다. 즉 여전히 성장이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보면서 환경 문제에 답하는 성장주의의 모순적 대답인 것이다. 이 구호의 방점은 ‘성장’에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성장주의와 생태주의는 양립할 수 없으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구호의 실효성도 상실될 것이다.

그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생태 환경의 문제,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더 이상 ‘이러저러한 것들을 고려하는 성장’이 아니라 지구환경과 현존하는 인간사회가 ‘과연 이대로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지속가능성’ 자체를 문제 제기한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저성장 속에서도 삶의 질 향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제 성장주의 자체를 폐기하고 초점을 삶의 잘 향상에 집중해 나가기 시작해야 할 때이다. 그럴 때 지속가능성을 넘어 보다 인간화된 사회 실현으로 나아갈 수 있다.

 

 

3. 교육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새로운 사회변화들은 교육운동에도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사회변화와 관련 교육운동에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을 제기해 본다.

 

1) 대안사회운동과의 결합

변혁적 교육노동운동은 대안사회운동과 교육혁명운동을 결합, 통일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대안사회운동의 실천적 전개는 교육혁명운동의 방향을 견인하고 또한 교육혁명운동의 전진은 대안사회 실현의 조건을 강화한다. 새로운 사회변화들은 총체적으로 서로 결합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그 속에서 노동자, 민중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가능성과 한 차원 상승될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본의 탐욕을 방관한다면 지금보다 더 심화된 실업과 불평등/양극화를 낳을 수도 있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와 한계를 공격하면서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광범한 담론과 투쟁을 전개한다면 대안사회운동의 새로운 전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당분간은 서로 다른 경향들이 혼재되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통제되지 않는 자본의 이윤 추구로 저성장 속에서 더 심화된 실업과 빈곤, 양극화도 노정될 것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주의 재구성 시도도 있을 것이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사회운동도 새롭게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사회의 상과 경로 제출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대안사회 담론과 삶의 질 향상을 투쟁을 함께 펼쳐나가야 할 때이다.

 

2) 교육시스템 개편 의제화

새로운 사회변화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 민중은 물론이고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서도 지금의 교육시스템은 낡은 것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 ‘교육 개편’ 자체는 진보교육운동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도 외치는 공동의 슬로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교육개편 대 논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어떤 방향’, ‘어떤 내용’, ‘어떤 과정’으로 교육개편을 이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도 시스템 개편 차원의 큰 그림을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개되는 사회변화의 규모가 그 만큼 크고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에서의 교육개편 구상 수년전부터 보여져 왔다. 2016년 대선에서 한 후보는 ‘4차산업혁명과 학제개편’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OECD에서 각 국에 교육개혁을 촉구한 이래 ‘역량’에 초점을 둔 교육변화 논의도 이미 상당히 확산된 상태이다. 문재인 정권도 국가교육위에서 새로운 교육체제 수립을 방향과 과제를 논의 중이다. 자본과 권력의 교육개편 논의에서 중심축을 형성하는 핵심적 계기는 저출산 문제와 인지자동화(4차산업혁명) 문제이다. 그 중에서도 더 핵심이 되는 것은 인지자동화 문제이다. 그들은 주로 인지자동화 시대 요구되는 노동력 형성에 초점을 두면서 진로교육과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교육개편 논의가 노동자, 민중의 교육적 요구와 시대적 과제를 올바로 담아내지 못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논쟁의 ‘판’과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개편 의제화와 더불어 다른 한편 대입개편안과 조국사태 속에서 빚어지고 있는 학종/수능 논란도 기존 시스템의 수명이 다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학종’은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수능’은 비교육적인 것으로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이다. ‘공정하지 못한 것’과 ‘비교육적인 것’의 비율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공세적이고 담대하게 교육혁명운동을 재점화해 나갈 때이다.

 

3) 교육의 역할과 목표의 재정립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은 신자유주의 교육시장화에 대한 대항과정 속에서 교육혁명을 기치로 대안적 교육개편안을 정립해 왔다. 또한 그 과정에서 발달과 해방의 교육학을 접목하는 한편 지속적 보완을 통해 대안으로서의 체계성과 구체성, 실현가능성들을 제고해 왔다. 새로운 시대 변화와 관련 새롭게 검토되거나 분명히 해야 할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고 보인다.

우선 교육의 역할과 목표에 관한 부분이다. 그 동안 진보교육운동 진영은 전면적 인간발달에 중심적 지향을 두긴 했으나 학교교육의 주요한 역할의 하나로 설정되어 온 ‘노동시장과의 연계’ 문제에 다소 절충적이고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직업의 부여’가 학교교육의 실제적 기능의 하나가 되어 온 현실도 감안하고 교육이 경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성장주의적 관점도 잠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제적 도구로서 교육을 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으나 ‘노동시장과의 연계’, ‘경제성장전략과의 연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직업의 부여’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간 타협적인 태도를 취해 온 점이 있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전면적 인간발달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냥 좋은 이야기이고 후자의 의제들이 더 실제적이고 힘있는 것이었다. ‘전면적 인간발달’을 위한 교육혁명담론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동시장과의 연계’를 다른 말로 하면 ‘교육을 통한 사회적 지위의 부여’이며 논리적으로는 선발경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연결된다. 노동시장과의 연계 문제를 절충적으로 대하면서 분명히 정립하지 못했던 교육운동진영은 최근 부각된 ‘공정경쟁’ 담론에 다소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교육에서 노동시장과의 연계’ 문제를 절충적으로 대하게 된 주요 원인은 그 동안 ‘성장주의’와 분명하게 결별하지 못한 것에 있다. 그로 인해 학교교육이 경제성장에 기여해야 한다는 주장과 노동시장과 연계해야 한다는 논리를 일정 정도 수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알고리즘, 융복합 등 정부의 경제성장 전략과 연계된 각 종 정책들이 교육분야에 들어올 때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시대 교육혁명론을 재구성함에 있어 이 문제를 이제 분명히 해야 한다. 성장주의와 결별하고 초중등교육에서 ‘노동시장과의 (직접적) 연계’ 기능을 폐기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조건들은 현실적 근거들을 강화해준다. 첫째, 현대사회와 인지자동화 시대 노동 성격이다. 앞으로의 노동형태와 직업은 빠르게 변화한다. 따라서 학교에서의 직접적인 직업교육과 노동시장과의 연계는 그 의미가 없어진다. 그 보다는 다양한 노동형태와 직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보편적 노동능력이 필요하다. 즉, 보편교육의 강화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핵심 기술 및 직업 분야의 제한성이다. 인지자동화 기술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고도의 인지자동화 분야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4차산업혁명 등의 경제적 슬로건에 학교교육 전체가 종속되는 것은 다수를 버리는 엘리트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인지자동화 시대 일자리 감소로 학교교육을 통해 모든 구성원을 노동시장에 배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일은 있어 온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더 확대된다. 교육과 실제 직업, 심지어 직업 자체와의 미스 매치와 불균형은 구조화될 수밖에 없다. 넷째, 그리고 총론적으로 저성장 시대 자본주의적 성장은 이제 그 현실성도 상실되고 있다. 삶의 질 향상과 (성장이 아닌) 사회 발전에 교육 목표와 기능이 집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과 노동’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보편교육으로서 초중등교육의 성격과 지위를 분명히 하고 ‘노동시장과의 연계’는 고등/성인교육에서 담당하는 기능의 일부로 명확히하는 것이다. 초중등교육과 노동시장을 직접적으로 연계하려는 것은 3R만 익히도록 하고 대량의 공장노동자를 공급하고자 했던 근대 초기의 낡은 교육관이다. 그 잔재를 이젠 털어내야 한다. 초중등교육에서 ‘노동시장과의 연계’ 기능을 폐기할 때 학교교육은 ‘주체적 인간 형성’을 위한 ‘전면적 발달’을 추구하는 것에 매진할 수 있다. 이러저러한 자본의 경제적 요구에 휘둘리지 않고 ‘보편적 인간발달’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양한 노동형태와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보편적 노동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의 노동 성격에도 조응하는 것이다.

‘노동시장과 연계’를 폐기할 때 초중등교육은 ‘사회적 지위의 배분’ 역할도 같이 폐기할 수 있다. 노동시장과의 연계/사회적 지위의 배분 기능을 폐지할 때 초중등교육에서 아동, 청소년을 구분, 선별, 서열화하지 않고 모든 아동, 청소년의 최대한의 보편적 발달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교육과정 구성, 평가 등의 문제들이 명료한 기준과 방향 속에서 다루어질 수 있고 고등교육으로의 진입과정을 자격고사화 하는 것도 논리적, 내용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4) 생애교육과 교육권의 문제

저출산/고령화 시대는 교육과 교육권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한 차원 더 상승시킬 것을 요청한다. 첫째, 전생애적 차원에서 교육을 위치시켜야 한다. 교육은 예전처럼 성인이 되기 전에 최소한의 교양을 익히고,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삶의 역량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지속적 과정이 되어야 한다. 100세 시대에 조응하는 생애교육이 정립되어야 한다. 둘째, 저출산/고령화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소중한 사회이다. 모든 사람이 항상 소중한 것이지만 저출산 시대 아동, 청소년의 사회적 가치는 더 소중해졌다. 모든 아동,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배려와 올바른 발달 도모가 필요하다. 특히 발달의 토대가 형성되는 영유아 시기 초기 발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투자가 비약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영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전생애에 걸쳐 중요해진 교육을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생애교육권’ 차원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5) 대학교육의 보편화와 교육연한 확대

대중적 보편교육은 시대적 조건과 연관된다. 근대초 공교육이 도입되던 시기 보편보편교육은 초등교육으로 충분할 수 있었다. 읽고, 쓰고, 셈할 수 있으면 통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보편교육 연한은 자연스럽게 확장되어 왔다. 현재는 대체로 중등후기(고교)까지를 보편교육 연한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어느새 대학교육이 대중교육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인간 생애도 길어졌다. 이와 관련 대학교육을 보편교육의 범주로 설정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대중화된 대학교육을 보편교육의 범주로 설정하자는 것은 무상으로 실시해 사회경제적 지위에 의해 기회를 차등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격시험 정도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학교육을 보편화하면서 대학원교육과정을 크게 확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학만이 아니라 핀란드 교직교육처럼 최근 적지 않게 대학원과정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늘고 있는데, 이는 사회가 고도화, 복잡화되어 가는 것을 반영한다.

대학교육의 보편교육화, 대학원과정의 확대는 한편으로 교육연한의 확장을 의미한다. 교육연한 확장은 사회의 고도화, 복잡화에 기인하지만 생애의 연장, 일자리 감소라는 추세와도 연관된다. 길어진 생애만큼 교육기간을 연장하는 것,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일자리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가능해진 것이다. 교육을 직업을 얻기 위한 생존의 도구로 바라보던 것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필수적 과정과 권리로 인식한다면 시대변화 속에서 과감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6) 교육혁명운동의 현실적 조건 강화

새로운 시대변화는 ‘교육개편 논쟁’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것만은 아니다. 교육혁명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도 새롭게 강화한다.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인구 감소 속에서 지방대학은 최근 존립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얼마 전 사립대학 대학노조는 ‘지방사립대의 공영화’를 요구한 바 있다. ‘공영형 사립대’는 교육혁명운동의 ‘대학네트워크 방안’의 한 축인데, 저출산 문제라는 과정을 통해 집단적 요구로 표출된 것이다. 현재 대학정원이 약 50만명 정도 되는데 곧 대학희망자가 이보다 적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정부는 대책 없이 파산하도록 방관할 것이라 하는데 사회 문제로 격화될 수밖에 없다. 많은 시설과 인적 토대를 사회적 차원에서 재구성하는 논의가 필요해 질 것이다. 조만간 고교졸업인원이 40만명 초중반에 이르는 시기가 오는데 이 경우 기존의 국공립대만 통합네트워크로 출범해도 40% 정도의 정원을 수용할 수 있으며, 대입자격고사화를 현실화할 수 있다. 학령인구 변화 속에서 구체적 경로와 일정을 재구성하면서 대학평준화운동을 새롭게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

인지자동화로 인한 노동시장 변화는 한계에 다다른 중등직업교육 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도록 강제할 것으로 보인다. 실업계고교에서 직업교육과 실제 진로의 불일치는 오래전부터 있어 온 일인데 최근에는 ‘교육과정’ 자체가 수시로 바뀌는 일이 매우 빈번해지고 있다고 한다. 해마다 학과 명칭이 바뀌기도 한다고 한다. 그만큼 노동시장의 변화가 심해 기존의 불일치를 넘어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인지자동화 추세 속에서 중등교육에서의 직접적 직업교육의 한계는 분명하다. 이러한 양상은 보편교양교육으로서의 초중등교육의 재정립, 중등전후기 통합 의제를 더욱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어 갈 것으로 생각된다.

영유아 교육의 공교육화 의제도 현실성을 강화해 나갈 것이다. 저출산 시대 영유아에 대한 보육, 교육이 중요해지면서 공적 시스템 강화 요구가 확대될 것이며, 최근 현상화되고 있는 ‘아동발달위기’ 문제도 의제 확산으로 연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의 조국 사태에서 나타났던 ‘수저론’과 ‘공정담론’의 괴리, 학종/수능의 모순적 논란은 교육혁명으로 나아가는 ‘이행기적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금수저에 대한 분노를 ‘공정 경쟁’으로 덮을 수는 없다. 왜나하면 사람들이 진정 분노하는 지점은 사회적 신분에 의해 고착화된 차별, 피폐한 삶에 대한 것이지 입시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 덧붙여진 학종/수능 비중 논란은 교육 문제에 대한 땜빵 처방이 논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이제 명백한 한계에 처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잠재된 분노가 교육혁명의 커다란 에너지로 분출할 시기가 다가 오고 있음을 전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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