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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다녀오다, 짧은 소감

 

한송(진보교육연구소 회원)

<가족상봉>

 

거의 3년 만에 한국에 잠깐 다녀왔다.

5월 말, 6월 초, 가장 싱그럽고 푸르른 계절의 한국 방문이라 더 설레기도 하였다.

필리 집에서 새벽 3시에 나와, 새벽 6시 비행기를 타고, 토론토를 경유하여, 인천공항까지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피곤함도 잠시,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아, 한국이다, 다정함과 친근함에 낯선 감정이 오버랩되면서 묘했다. 참 깨끗하고, 친절하고, 잘 정리된 느낌이랄까. 입국수속도 초스피드, 짐 찾고 도착장에 들어서면서, 그 동안 훌쩍 자란 조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하루하루가 비슷비슷한 나의 일상의 3년은 그리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아도,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자란 아이들을 보니 3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이 실감이 났다. 게다가 미국 있는 동안 태어나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남동생의 딸아이가 이제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약 3년의 공백이 길었구나 싶었다.

재회의 감격을 만끽하며 가족들과 손을 잡고 공항 지하 주차장에 들어섰다. 줄 맞춰 빡빡하게 주차되어있는 장면도 오랜만이다. 미국 있는 동안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본 경험이 전무인데다, 어딜 가든 쭉 펼쳐진 지상 주차장만 이용해보니, 서울 살면서 때론 지하 7층까지 내려가 주차를 했던 기억이 새삼 낯설었다. 서울 살면서, 남편이 가장 놀랐던 장면 중 하나가, 겹겹이 주차된 곳에서 주차된 타인의 차량을 손으로 밀어 주차할 자리를 만들거나 주차된 차를 뺐을 때인데, 그 놀람이 이제야 진정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지하 주차장이어도 이리 쾌적하고 깔끔하니 또 한 번 한국이구나 싶었다.

 

조카들이 귀국 기념, 축하공연을 한다고 자기들끼리 춤과 노래 연습을 한 모양이었다. 도착해서 저녁을 먹는 동안에도 다른 방에서 계속 연습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공연 시간이 돌아왔다. 연습은 엄청 했는데도, 온 가족이 모여, 본인에게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 되자, 돌연 조카 한명이 못 하겠다고 했다. 괜찮아, 라는 다독임도 있었고, 그렇게 연습했는데 안 한다고 하면 어떡 하냐, 그럴 바엔 연습을 왜 했냐 까지 다양한 반응들로 조카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숨어버렸다. 그 순간, 단어 하나가 생각이 났다. overwhelm.

미국 살면서 좋아하게 된 단어 하나가 overwhelm 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동사로 ‘압도하다’, ‘격한 감정에 휩싸이다’, ‘어쩔 줄 모르게 하다’ 등으로 나온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쓰인다. 여기에 ed를 붙이면 overwhelmed가 되는데, 어떤 일로 압도당했을 때, 그래서 어쩔 줄 모르겠을 때 I’m overwhelmed 라고들 한다. 이 곳에 있는 동안 이 overwhelmed라는 표현이 주는 감정의 혼란스러움과 당황스러움의 표현, 그리고 그것을 듣는 사회가 주는 반응이 꽤 흥미로웠다. 누군가, overwhelmed 하다고 이야기를 하면 대개, 어, 이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너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구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그래서 그것을 헤쳐나갈 사람에게 어느 정도의 바운더리를 제공하는 분위기. 이곳에 짧게 산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그래도 이겨내서 해야지, 좀 더 강해봐, 이거 여기서 못하면 넌 안돼,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듯하다. 그래서 overwhelmed한 개인은 헤쳐갈 시간과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줬다고 해서 아주 친하지 않은 이상, 나중에, 이제 됐어? 할 수 있겠어? 라고 먼저 묻지도 않는다. 다시 나서는 것도 본인의 의지고 본인의 결정인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조카의 감정이 overwhelmed였을 것이다. 나도,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어렸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맸을 때가 많았고 그것을 어떻게 말로 하기도 어려워, 그냥 어물어물했고, 그러면 어른들이 왜 그러냐, 왜 못하냐, 이 순간만 이겨내면 된다, 라고 위로가 섞인 강요도 들어봤지만, 사실, 큰 도움이 안 되었다. 결국 내가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고, 생각하여 헤쳐갈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중에 조카에게 말했다. 마음은 하고 싶은데, 너무 긴장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랬냐고, 그래도 괜찮다고, 마음이 좀 편해질 때까지 소파에 앉아서 다른 조카가 하는 거 그냥 한번 보라고.. 그러다 괜찮겠다 싶으면 그 때 나와서 다시 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그냥 보는 것도 괜찮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식당에서 먹은 백반과, 소금 간으로 만든 엄마표 육회!>

 

한국 들어오기 전에, 꼭 먹고 오리라했던 음식 리스트를 만들었다.

냉면, 짜장면, 짬뽕, 곱창, 순대볶음, 젓갈류, 각종 나물, 홍어, 육회, 산낙지, 게장, 충무김밥을 비롯한 각종 김밥, 그리고 막걸리.

미국에 있던 3년 남짓 동안, 내 인생에 이렇게 많은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던 듯하다. 한 달 전, 필라델피아 시내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나의 GED(미국 고등학교 학력 인증)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내가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한다고 했더니, 바로 하시는 말씀이, 그렇게 남편을 spoil하면 어떡하냐고 하셨다. (여기서 spoil은 흔히, 부모가 아이들이 하자는 대로 오냐오냐 키울 때, 혹은 버릇없고 응석받이로 키울 때 쓰는 동사이다. GED 선생님은 2년 후면 은퇴하시는 남자 선생님.) 일단, 남편에게 요리를 다 해주면 남편을 잘못 키우는 것(?)이라는 반응이 흥미로웠고, 나는 그저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함이라고 했더니, 본인도 사실은 외국 나갔을 때 늘 먹던 음식이 그립다고 하셨다. 사실, 한국 음식을 아주 사랑하는 남편은, 한국에 있을 때부터 혼자 나물도 무치고, 된장국과 청국장도 끓이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 맛은 내가 추구하는 엄마의 손맛이 아니라 늘 뭔가 아쉬운 것이다. 아무튼, 먹고 싶은 음식을 밖에서는 구할 수가 없으니, -한국 식당이래도 그 맛이 안 날 때가 많다- 어릴 적 엄마가 만들어 주신 맛의 기억을 더듬고,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의 도움을 받아 많은 한국 음식을 만들고, 김치와 막걸리까지 제조하여 자급자족하긴 해도 늘 한국의 깊은 맛이 그리웠던 참이었다. 한국에서 손쉽게 구하여 집에서 만들 생각조차 안 해봤던 김밥은, 이 곳에선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정성 가득한 요리의 반열에 오른 음식이다. 김치찌개는 특별한 날 끓인다. 김치를 사 먹으면 엄청 비싸고, 만들어 먹으면 힘들게 만든 게 아까워 쉽게 쓸 수가 없는 탓이다.

한국에 있는 동안, 반찬 가득한 한 상을 받아먹을 때마다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

하게 잘 먹었다. 한편으로 식당에선 그 많은 반찬들이 남겨지는 게 마음이 아팠다. 이 곳에서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의 양 자체가 워낙 커서 대개 남은 음식은 다 싸가지고 오는 문화라, 그 남겨진 음식들이 눈에 밟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녀와서 보니, 곱창과 순대볶음을 못 먹고 왔다. 또 한국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가.. 아님, 뉴욕 퀸즈의 최대 한인밀집 지역인 플러싱(Flushing)에 한번 다녀오던가 해야겠다. 플러싱은 그래도 한국의 맛이 난다는 말도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교포 친구가 한 말이라 사실 약간의 의문이 남지만 말이다.

 

서울에 있는 동안, 오랜만에 전교조 초등강서지회 선생님들을 뵈었다. 늘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분들이다. 마침 교사대회가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교사대회 이야기도 듣고, 분회 이야기, 일상, 그리고 함께 했던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며 막걸리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나누느라 사진 한 장도 함께 못 찍고 돌아왔다.)

필라델피아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 하고 시간을 보내지만,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대화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일은 정말 드문 것 같다. 이 곳에서도 삶의 지향점이 비슷한 친구들을 많이 만나긴 했다. 30여 년 전, 과테말라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불법체류자 신분에서 난민으로 그리고 지금은 시민권자로 살며, 이민자 권리를 위해 쭉 활동해온 시민운동가도 있고, 2010년 아랍의 봄 때 이집트에서 그 곳의 실상을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 알린 청년 저널리스트도 있으며, 브라질에서 시민운동가로 일하다 현재 미국에서 시민단체 간사로 일하는 친구, 반평생을 이민자 교육에 헌신한 미국 수녀님, 반트럼프 집회, 성소수자 집회 등 현안 이슈에 직간접적으로 늘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미국 친구들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배경을 가진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래도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눈빛으로만 봐도 마음이 통하는 그 만남들이 그리웠다. 문화적 차이와 언어의 다름이 아무래도 사이의 결을 만드는 건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 의지가 그리 크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만난 한국 친구들과는 문화와 언어가 같다보니 보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으나 아무래도 각자가 이제까지 살아온 성향들이 달라서, 한국이라는 공통점 말고는 정치, 사회, 문화적 이야기를 할 때는 서로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 함께하며 전인간적인 성장을 하는 관계, 함께하면 편하면서도 마음이 꽉 차는 관계, 그런 관계 맺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20대 시절 런던에 살 때 만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눴던 경험으로 봐서는, 아마도 40대 중반인 지금, 새로운 관계 맺기에 갈증을 느끼면서도 그때만큼 다가가고 받아들이는 게 시큰둥 한 자의.. 변명 같기도 하다.

 

<광주교대 정문>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다. 그 간 학교를 찾아가 본 건, 한 두 번 정도인 듯하다. 이번에 한국 들어가서 마음먹고 학교를 찾아갔다. 광주교대. 일단, 지금 대학 정문이 나 학교 다닐 때도 있었나 가물거리는 것도 잠시, 정문을 끼고 둘러있던 벽돌 담이 없어진 건 확실했다. 그 자리엔 푸른 나무들과 붉은 꽃들이 만발했다. 대학 시절, 광주교대 신문을 만드는 동안, 야간작업을 하느라, 혹은 다른 행사일로, 그 담벼락을 여러 번 월담하고, 그러던 중 벽돌 몇 개 무너지기도 했던 기억이 나, 피식 웃음이 났다. 늘 손으로 썼던 플랑카드가 대로를 가로질러 걸렸던 본부까지 가는 큰 길은 이제 아쉽게도 관공서 느낌이 났다. 이제는 잔디가 깔린 운동장을 지나며, 그 곳에서 열린 입학식 때 당시 총장이 여학생들에게 입학 축하 덕담이랍시고, 여교사가 신붓감 1등이라고 했던 어처구니없던 기억도 났다. 학생회관에 올라가 학생회실과 신문사만 기웃거리다 나왔다. 기억은 생생한데 그 장면들이 바뀌니 생경하고, 아쉽고 하던 터에, 학교 도서관 뒤에 아리랑 동산은 여전함을 보고 함께 그 곳에서 시간을 보낸 동기들과 선후배들 생각이 절로 났고, 20대를 함께 멋지게 보낸 그 분들에게 동시대 같은 공간에 있었음에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인복이 참 많았구나 싶었다. 함께 간 남편에게 처음엔 공간에 얽힌 이런 저런 기억들,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다 결국엔 말았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나의 기억 안에 같은 감정으로 들어오기는 불가능한 듯해서, 말해서 뭐하나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대학 신문사 동기들과 후배들을 만났다. 이제 다 40대 초중반, 학교에서 선배교사로, 전교조 조합원으로, 혁신학교 중심 일꾼으로 일하는 친구들은 여전하고, 오랜만에 봐도 얼마 전 본 사람들 마냥 친근했다. 이 친구들이 나와 남편을 위해 호텔을 하나 잡아줬는데, 체크인을 할 때 보니 트윈룸이길래, 실수였나 보다 하고 더블룸으로 바꿨었다. 만나서 보니, 실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이유가 이제 결혼한 지 7년 정도 되니, 트윈룸이 더 편하지 않을까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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