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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강림41 ’좋은숲동무들‘ 살아가는 이야기>

 

임성무(진보교육연구소 회원)

 

#43일차 - 노동절, 아이들도 배워야 한다.

오늘은 129주년 세계 노동자의 날이다. 출근길이 널널해서 좋지만 아직도 노동권을 보장 받지 못한 전교조 소속 교육노동자인 나는 마음이 무겁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며 노동자로서의 삶을 다지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노동절 관련 수업을 어떻게 할지 지식을 정리했다. 지회 밴드에 노동절 포스터를 공유하면서 이런 글을 썼다. “아이들에게 살기 위해 사람은 누구나 노동을 해야 하고, 그래서 노동을 하는 농민들과 노동자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지요. 아이들의 부모들도 대부분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세계의 노동자들과 함께 부모님들이 하는 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지 정도는 알려주세요. 그리고 자신의 노동이 대접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여 말해주시면 최고지요.”

1교시는 개교기념일로 정해져있어서 체육관에 모여서 기념식을 했다. 방송반에서 준비한 우리 학교와 마을 바로알기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학교는 빵과 음료수를 주었다. 스승의 날 행사로 지원받은 예산을 오늘 썼다. 2교시는 체육수업이 있어서 급하게 아이들 신발을 갈아 신기고 준비해서 보냈다. 틈새에 1학년 연구실로 빵 배달을 했더니 후배들이 부담스러워 했다. 나는 아무나 시간이 나고 마음을 내면 될 일이라고 대답했다.

 

3교시는 노동절에 대한 수업을 했다. 나는 1890년 5월 1일과 129주년 노동자의 날을 칠판에 쓰고 시작했다. 1886년 미국으로 되돌아가서 노동절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을 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언제 파업을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노동절에 부모님께서 출근하지 않은 수를 조사하니 50% 정도였다. 노동자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원하고,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받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를 쓰는 것을 설명하려고 9일 체험학습을 가기 위해 예술단체와 한 공연 관람 계약서를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은 누구라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보장 받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써야하고, 내용을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노동자인 것처럼, 아이들도 자라면 대부분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잘 알아 두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노동자 개인이 회사나 사장을 상대로 노동권을 보장받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단결하고,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설명한 뒤에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이 모두 노동조합에 가입하셨는지 물었더니 아무도 알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누구나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많은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안정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노동절이 되면 늘 교사도 노동자라고 깨닫고 노동조합을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경험을 들려준다. 그래서 내가 지난 금요일에 청와대에 가서 교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외치고 왔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교사노동자인 나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올해 노동절에 세계의 노동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은 자기 나라의 노동 수준을 세계 수준으로 보장하라고 외칠 것이라고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열심히 노동하는 부모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 앞에서 열심히 가르치는 노동을 하는 나에게도 박수를 쳐 달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내일 운동회여서 미술시간 동안 생활에 필요한 도구 만들기로 운동회 응원도구를 만들었다. 우리 반은 우유팩으로 모자를 만들었다. 다른 반은 손 피켓을 만들고, 또 짝짝이 등을 만들었다. 이런 작업을 하는 날은 교실도 어지럽고 아크릴 물감이 여기저기 교실을 더럽히고, 또 얼마나 시끄러운지 신경이 엄청 쓰인다. 머리가 곤두서고, 허리와 어깨도 아프다. 하지만 다 만들어 놓은 아이들 작품을 보면 내일 멋진 사진이 나오겠다 싶어 위로가 된다.

오후에 운동회 프로그램을 최종 점검하고 준비물을 챙겨 두었다. 간단하게 하면 될 일이지만 나는 아이들이 시시하게 여기는 것보다 내가 시시한 교사가 되는 게 싫어서 이것저것 하자고 한 탓으로 체육관이며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다. 그러는 중에 인문학 캠프를 의논한다고 와서 의논을 했다. 졸지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했다. 이 일도 내가 벌였으니 별 수 없다.

환생교 회장인 장선미 선생이 어제도 봤는데 교총배구대회 배구연습을 하러 왔다고 교실에 와서 나도 체육관으로 가 보았다. 동기 교장도 와서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배구 응원을 했다. 나는 배구대회를 동호회 수준으로 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많이 축소되어도 여전하다. 그래서 배구를 보는 게 영 즐겁지는 않다. 동기 교장이 며칠 전에 교장단 회의를 했는데 본청에서 교장들의 갑질에 대해 주의를 하라고 했다는 말을 해 주었다. 어제도 장 선생이 자기 학교 교장이 말하더라고 전해주었다. 지난달에 본청 초등과장을 만나서 갑질에 대해 전교조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해주고 교장들에게 주의를 주라고 당부했더니 그렇게 한 모양이다.

내일 운동회 준비를 하느라 조퇴를 하고 3시에 대구노동절집회에 참석하려고 한 계획대로 되지 못했다. 대신 다시 인터내셔널가를 들으며 일기를 썼다. (2019. 5. 1. 수 May Day)

 

#45일차 - 어린이날 연휴 사흘간 아이들 안 본다 생각하니 상쾌하다?

어제 학년운동회를 마치고, 학생과학관 답사까지 하고 출근하니 교사들이 다들 몸이 피곤한 모양이다. 어린이날도 어린이날이지만 교사들이 몸도 좀 쉴 겸 시청각실에서 영화 ’오세암‘을 보려고 했는데 국악 강사 코티칭수업을 바꾸지 못해 4개 반이 모두 같이 영화를 볼 수 없어서 포기했다. 2학년이 운동회를 한다고 강당을 다 사용해서 배구 시합도 연기했다. 여기에다 교대생들이 수업봉사 하러 오는 날이다. 이래저래 뭐가 맞지 않는다.

우리 반은 짝을 바꾸고 모둠을 새로 만드는 날이다. 아침부터 언제 하느냐고 성화다. 나는 또 뮤지컬 업체에서 계약서를 하도 일찍 보내주어서 9일 현장체험학습 가정통신문을 오늘 가정통신문으로 작성해야 한다. 급하게 틈틈이 하느라 기안은 나중에 하고 가정통신문 부터 만들어 인쇄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오늘 일정이 다 꼬여서 계획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자 아이들 실망하는 소리가 또 나를 괴롭힌다. 짝을 바꾸는 방법을 의논하다가 또 시간만 지나간다. 결국 하던 대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시작했다. 그런데 경민이와 **이가 짝을 못정하고 서 있고, 둘은 서로 짝을 하기 싫다고 한다. 세욱이가 지난달에 짝을 맡겠다고 한 게 기억이 나서 물었더니 내가 일방적으로 말했지 자기는 그렇게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면서 부회장 서준이와 꼭 끌어안고 강하게 거부한다. 다른 친구들도 아무도 짝을 바꿀 의사가 없어서 둘보고 그냥 하라고 했더니 절대 못하겠단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전학가라고 했더니 **이 한 달 만에 화장실로 들어가서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난리다. **이 없는 교실에서 괜한 아이들에게 너희들 중에 누군가 **을 위해 희생을 해 주어야 **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승규가 자기가 하겠단다. 고맙다. 그런데 **이 싫단다. 그랬더니 성범이가 자기가 짝을 하겠단다. 그래서 화장실에 가서 말하고 오더니 과자를 먹으면 교실로 오겠단다. 이번에는 똥을 누고 오겠다면서 휴지를 갖다 달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은 자신의 고집이 먹힌다 싶으면 다른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성범이가 가서 너 같은 놈하고는 짝을 하지 않겠다고 하라고 했더니 급한지 교실문 앞에 와서는 선생님이 사과를 받아주면 들어오겠다고 해서 내가 친구들에게나 사과를 하라고 했더니 그러지 못하겠단다. 그럼 치아뿌러라 하고 문을 닫고 우리끼리 영화를 보면서 과자를 먹으려고 하니 사과를 하겠단다. 진심이 아니라 과자 때문일 것이다. 한 달 만에 이런 행동이 재발되었으니 우리 반의 분위기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손을 씻으러 갔는데도 내 입에서도 이 노무 새끼라는 욕이 저절로 나왔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즐겁게 보내려던 계획은 다 틀어져 버렸다. 그래도 과자를 먹으면서 영화 일곱 난장이를 보면서 마음을 달랬다. 오후에 학생과학관 담당자와 의논을 하고 신청서를 보냈다. 어려운 일정인데도 잘 협조해주어서 고맙다. 기안도 마무리했다. 오후에 5학년들이 와서 칠판을 잔뜩 어지럽혀두고 갔다. 아이들에게 내가 학교에 오는 이유는 어린이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어서라고 했는데 오늘은 이것도 재미없다. 사흘간 학교에 오지 않는다 생각하니 기분이 아주 상쾌해졌다.(2019. 5. 3. 금)

 

#46일차 - 23년 제자가 연차를 내고 찾아오지 않았다면?

4학년 사회나 과학수업은 복잡하다. 차시대로 차례대로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 사회는 답사계획을 세우고 답사를 마무리 하는데 한 달이 걸린다. 다 다녀와야 보고서를 꾸밀 수 있으니 기다려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다음 단원을 가르쳐야 한다. 고장의 중심지 답사, 문화유산 답사, 인물 조사, 자치단체 답사가 이어진다. 그래서 늘 수업이 좀 지저분하다. 과학도 식물의 한 살이를 공부하니 무려 석 달은 이어가야 한다. 그 사이에 지층과 화석 단원을 공부해야 하고, 그러다가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다시 식물의 한 살이 단원으로 다녀와야 한다. 그래서 수업이 늘 지저분하다. 하긴 지저분해도 재미는 있다. 삶도 그렇다. 계 획 대로 차시대로 되지 않는다.

아침에 모종 포토에 갔더니 사흘 연휴동안 싹이 다 트고 어떤 종자는 쑥 자라나 있다. 야간가 휴일 주사님께서 하루에 두 번씩 물을 주셨다고 했다. 낮에 전화 와서 물을 자주 줘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 상자텃밭의 씨앗들도 싹이 많이 트고 자랐다. 5교시에 과학수업으로 나갔더니 딸기 상자에 딸기가 엄청 달려있다. 부회장과 우리 반 농부 승규에게 먹게 하고 나서 아이들에게 다른 반 친구들 몰래 하나씩만 따 먹도록 조용하게 말해 주었다. 몇 개 없으니 하나씩만 따 먹으라고 했는데 아마도 약속을 잘 지킬 것이다.

옥수수와 강낭콩의 싹이 나오는 것을 춤으로 표현했다. 옥수수 춤과 강낭콩 춤을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두면 인기가 있을 것이다. 몸으로 표현하면 잊혀 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옥수수와 강낭콩의 자람을 어떻게 말로 나타낼 것인지를 생각하는데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가 비유해낸 것은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였다. 상자텃밭 강낭콩과 옥수수 앞에서 잎 사이에 숨어있는 작은 잎을 찾아보는 공부를 했다. 시간이 없어서 시로 써보는 공부는 내일로 미루었다.

오후에 교총배구대회로 생긴 편법과 회계규정에 대해 학년 교사들, 업무부장, 행정실장, 교감과 교장, 친목회 총무 등과 이야기를 했다. 학년 교사들이 평화롭게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해주어서 그렇게 했다. 참 우스운 것은 교총배구대회인데 교총분회가 할 일을 친목회 임원들이 돕고 있다. 더 우스운 것은 우리 학교 친목회 회장과 총무는 다 전교조 조합원들이다. 다행히 내가 뒤로 욕을 엄청 얻어먹겠지만 큰 문제는 해결했다. 지난 금요일부터 연휴동안 나는 이제 선생 노릇하기 싫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또 습관처럼 즐겁게 한다. 아무튼 앞에 일어난 이런 부조리를 만나면 이젠 나도 지친다 싶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애쓴 만큼 세상이 좋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제만 더 쌓인다.

이러는 중에 대구시청에서 달성습지 복원사업 일정이 끝나가는 데 걸림돌이 생겨서 협조를 구하는 연락을 받았다. 틈나는 시간에 여러 분들에게 시청의 입장을 전하고 의견을 물었다. 잘하자고 하는 일이 잘 되도록 해야 하는데 여기저기 있는 문제를 풀어내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이 의견을 구하는 김에 학교에 수생식물을 구할 때가 되어서 석윤복 선생께 전화를 드렸더니 수생식물 15종과 대구늘푸른봉사단이 갖고 있는 사각고무 화분 20여개를 기증하겠다고 하셨다. 내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이런 덕도 보고 사니 크게 손해 보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 집에 무슨 큰 도움이 되느냐가 과제이다.

이런 저런 답답한 일 중에 참 놀랍고 기쁜 일이 일어났다. 점심 때 꽃가루를 닦아내고 난 밀대를 빨고 좀 늦게 식당에 가는데 입구에 30대 중반의 사람이 교감과 함께 나왔다. 23년 전 진천초등 제자인 준형이다. 연차를 내고 일부러 학교까지 찾아 온 것이다. 서른일곱에 삼성에 근무하고, 네 살 백일 된 아들과 딸도 있다. 점심을 미루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몰려와서 신기해한다. 점심 지도를 해야 해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보냈다. 급식소에 갔더니 다행히 밥이 조금 남아 있어서 요기를 했다. 오늘 준형이가 찾아오는 서프라이즈가 없었다면 나는 또 선생을 그만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진을 보내면서 네가 찾아와서 억수로 좋다고 문자를 보냈다. 오늘은 23년 전 기억을 되살려 내야겠다. 선생은 이렇게 몇몇 제자만이라도 기억하고 찾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2019. 5. 7. 화)

 

#57일차 - 휴대폰이 자꾸 사라져요

우리 반 남자아이들에게 유행했던 놀이가 친구들의 휴대폰을 숨겨 두는 것이었다. 이 일이 얼마까지 가나 싶어 관찰을 해 오다가 놀이를 처음 시작한 한얼이가 대표로 꾸중을 듣고 그쳤다. 그런데 지난주인가 점심시간 마치고 우현이가 휴대폰이 없어졌다고 했다. 다행히 진동으로 되어 있어 모두들 숨죽이고 찾았는데도 책장 종이 상자에 숨어 있어서 한참 만에 찾았다. 도대체 누가 숨겼는지 물어도 아무도 자기가 숨겼다고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놀이였으니 금방 나타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장난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수업 마칠 때까지 숨긴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앞으로 한 달간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날 우리 반에 맞춘 듯이 학교에서 휴대폰 보관 가방을 사 주었다.

그런데 휴대폰 가방이 교실에 온 다음부터 세 건이나 휴대폰이 사라진 사건이 계속 일어났다. 두 번째 사건은 체육시간에 태권도 겨루기를 하다가 성호가 경민이가 찬 발에 무릎이 아파서 보건실에 간 사이에 휴대폰이 없어졌다. 수업을 마친 뒤에 일어 난 일이라서 찾지 못했다. 단서는 패턴을 물은 **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은 자기는 물어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다 휴대폰까지 없어졌으니 성호와 형, 엄마의 스트레스는 엄청 높아졌다. 다음 날 교실, 체육관, 교무실을 다 다니고 뒤져도 휴대폰은 나오지 않았다. 점심 때 성호와 하준이가 **에게 휴대폰을 찾아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더니 1학년 아이가 휴대폰을 강림태권도장에 가지고 간 것을 봤다거나 자기 태권도 가방에 들어있다고 해서 둘이서 ** 사물함과 책상, 가방, 태권도가방을 다 뒤졌지만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 성호는 휴대폰을 찾지 못하면 집에도 못 간다면서 울면서 교실에 들어와서 다시 찾아보아도 없었다. **은 자기는 모른다고 잡아뗐다. 성호의 무릎은 타박상으로 그쳤고, 휴대폰은 사흘째 되는 날 태권도 관장이 배터리가 나간 휴대폰을 충전하고 켜는 순간 성호 엄마의 전화가 와서 통화하면서 찾게 되었다.

월요일 세 번째 사건이 또 일어났다. **은 책상을 정리하라는 내 말을 듣지 않다가 내가 꾸중을 하고, 가방이나 책들이 바닥에 굴러다니면 앞으로는 밟고 지나가겠다고 하고, 내가 먼저 지나가면서 책을 발로 차버렸더니 소리를 지르고 책을 던지고는 교실을 나가버렸다. 수업을 마치면서 휴대폰을 나누는데 강현이가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모두들 조용히 하고 우현이가 통화하는 동안 찾아보니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아프리카 친구들 돕기 돼지저금통을 넣어 둔 알루미늄 가방 속에서 나왔다. 아이들이 교과수업을 하러 가고 나도 없는 사이에 **이 들어왔던 것일 게다. 세 번째 사건은 쉽게 끝이 난 셈이다.

네 번째 사건은 어제 일어났다. 어제 공가로 세종시에 있는데 부회장 신현이가 큰일 났어요 하고 문자가 왔다. 수업을 마칠 때쯤 전화를 하니 **이 친구들과 싸우고 소리치고, 강현이 휴대폰이 또 사라졌다고 했다. 밤에 강현이 엄마에게 문자도 왔다.

아침에 출근하면서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강현이 휴대폰을 찾는 작전을 느리지만 저강도로 수행했다. 아이들이 쉽게 **이 그랬을 것이란 말은 증거가 없이는 의견에 지나지 않으니 의견이라도 잘못 말하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니 생각으로만 하지 말로하지 말라고 했다. CCTV를 확인하면 금방 찾을 수 있지만 그래도 숨긴 사람이 우리 반에 있다면 기회를 주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 CCTV를 확인하거나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 전에 우리가 탐정이 되어서 찾아보자고 했다. 먼저 몇 가지 경험을 갖고 용의자가 누구일지 등의 경우를 찾아보았다. 먼저 휴대폰을 숨기는 놀이를 시작한 사람일 경우, 성호의 휴대폰에 대한 정보를 말하고 또 강림태권도에 다니는 사람일 경우, 휴대폰이 없는 사람일 경우, 교실에 혼자 남아있었던 사람일 경우 등을 말하면서 여러 친구를 용의자로 정하고 알리바이를 말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경찰이 조사를 할 경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자기가 숨겼다 말할 리가 만무하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방법이 하준이가 한 방법인 현상금을 걸고 찾는 것을 하려다가 혹시나 싶어서 **을 불렀다. “**아, 너도 휴대폰 좀 찾아봐줘.”하고 제안했다. 대답하고 가더니 다시 와서 “선생님 그런데 왜 강현이 휴대폰을 저보고 찾으라고 하세요?” “다른 친구들도 열심히 찾고 있는데 나는 **이 잘 찾을 것 같아서 부탁한 거야.”하고 말했더니 찾아보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교실 뒷문이 북적거린다. **이 “휴대폰을 화장실 변기 뒤쪽에서 찾았어요.”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아이들이 “니가 숨겼지”라고 추궁하자 “난 안 숨겼단 말이야. 화장실에 가니 있어서 가져왔어.” 라고 했다. 승규는 “아까 제가 화장실 다 찾았는데도 못 찾았는데 어떻게 나왔지?” 나는 아이들에게 증거가 없는데 **이 숨겼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다시 일러 주었다. 강현이는 휴대폰을 켜더니 카톡도 사라지고, 데이터도 다 써버렸다고 신고했다. 나는 “물론 CCTV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지만 숨긴 친구가 이걸로 끝내도록 한 번 더 기회를 주자.” 하고 마무리했다. 교실은 잠잠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학년모임에 가니 후배들이 “**과 한 시간 수업을 하고도 진이 다 빠졌다.”고 하며 내가 지금까지 늘 웃으며 이야기를 해서 괜찮아진 줄 알았다고 했다. 새삼 내가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지 알 것 같다고 했다. 보결 왔던 배 선생도 내 말고는 담임을 맡을 사람이 없으니 내년에도 선배님께서 맡으셔야 한다고 권하기에 내가 그런 악담을 하지 말라고 했다. 사실 많은 에너지가 빠져 나간다. 나나 학급 아이들이 힘들더라도 이렇게라도 해서 **이 공동체 속에서 잘 적응하는 능력이 길러지면 좋겠다.

오후에 잠시 대명유수지로 출장을 다녀왔다. 석윤복 선생님께 습지식물 12종도 얻고 고무통 18개도 얻어 왔다. 학교 야간 경비를 하시는 이성효 어르신 트럭을 지원받고 신세환 선생께 부탁해서 갔다 왔더니 바지도 터지고, 얼마나 더운지 땀이 줄줄 나왔다. 왔더니 학년 후배들이 교평 수업을 돕는다고 와서 구글 스프레드시트 활용 방법을 가르쳐주고 자료를 챙겨 주었다. 교장 교감 보고는 내가 이 나이에 수업 평가를 받아야 되는지 물었다. (2019. 5. 22. 수)

#61일차 - 1989년 5월 28일, 그리고 2019년 오늘

아침에 ** 아버지가 아침 7시에 전화를 해서 “어떻게 교사가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아이가 선생님이 무서워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니 오늘은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어제 아침에 출근하니 1층 복도에서 **이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급히 올라와 보니 하준이와 서서 소리를 지르고 싸우고 있다. 미루어 두었던 전화를 아이 아버지께 했다. 휴대폰 사건에 대한 분석과 대응에 대해서 알려주고, 아이가 자기가 잘못을 해도 눈앞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사실을 말하면 소리를 질러서 방어를 하거나 교실을 나가고, 학교에 전시된 온갖 전시물을 다 부수고 떼어내는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 꾸중을 하거나 부모님과 의논을 하겠다고 하면 항상 “우리 아버지한테 말하면 아버지가 학교를 엎어버릴 거예요.” 라고 한다. “아이 버릇을 고치려면 아버지가 교사나 학교에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니 휴대폰에 대해 자초지종을 듣고 휴대폰을 주는 게 좋겠다. 그리고 아이 앞에서 교사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면 어떨지 생각해 보라.” 하고 말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 말을 들어보니 ‘내 말과 다르다’면서 소리를 지른다. 내가 나이가 많아도 한참 더 많은 데도 이런다. 어제부터 오른 두통이 재발한다. 페이스북에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포기하고 싶다.” 라고 썼다. 많은 분들이 위로 문자를 달아 주었다. 아내에게 선생 그만 두어야할 때가 된 모양이라고 했더니 출근 뒤에 문자를 보내왔다. “급하게 조언하자면, ᆢ그런 경우 감정코칭의 삼율 (자기조율, 관계조율, 공익조율)이 도움 되는데 첫째 자기진정부터 호흡을 가다듬기가 필요해.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내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자기진정부터....... ᆢ다음으로 관계성 안에서 타인과의 관계, ᆢ다음이 반 전체 아이들 입장을 생각해보는 거지. 이게 공익조율 ᆢ참고하고 ᆢ 자기자원, 자기 알아차림이 매우 중요해. 모든 문제해결의 첫째 할일은 내가 될지 안 될지 자기를 알고 안 될 때 아웃 선언하듯 작지만 되는 것으로 작은 목표를 정해야 해. 그것마저 안 되고 내가 계속 에너지가 빠지고 소진되면 아웃 선언하는 것도 용기야. 공감 받은 경험이 적은 사람일수록 공격적으로 표출하는데, 참고해서 조금 안타깝게 바라봐.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선으로 해결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안타깝게 보는 것이 도움 될 것 같아. 힘내~~~~~” 상담 전문가인 아내 덕분에 감정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미안하지만 **이 없으니 우리 반이 아주 평화롭다. 여기에다가 달성습지 일로 교실에 피자 선물이 배달되어 왔다. 아이들이 너무 편안해보여서 내가 다 미안했다. 나뿐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이 **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지내는지 좀 알아주었으면 한다.

위클래스 현 선생과 생활교육 담당 배 선생이 교실을 방문했다. 현 선생은 내가 쓴 페북 교단일기를 늘 읽는데 오늘 아침 글을 읽고는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논하러 온 것이다. 이런 저런 상황 공유와 대책을 의논했다. 나는 부모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담임이 해결 할 길은 없다. 학교장이나 교육청이 법적 힘을 갖고 해결해야 한다. 결국 부모의 문제이다. 부모를 바로 세우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의견을 냈다.

오늘은 전교조 결성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교조는 여전히 법외노조이고, 전교조를 결성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나를 비롯한 1,500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났다. 며칠 전 아내에게 물어보니 해직기간 동안 많으면 16만원, 적으면 9만원의 생계후원금을 받고 살았다고 했다. 다시 확인하니 더 미안했다.

지부 텔방에 보니 여성회 남은주대표가 여성회 앨범을 정리하다 발견한 1989년 5월 14일 경북대에서 열린 결의대회 사진을 올려주었다. 이 사진이 왜 여성회에 있었을까? 당시 나는 교사협의회 문화부장이었다. 주로 투쟁가와 구호를 가르쳐 주는 선전선동 일을 맡았다. 당시 사진 어디에도 나를 찾을 수가 없어서 섭섭하지만 기억이 아프다. 수성성당 네거리 사무실에서 어느 날 남부경찰서로 연행이 되기도 하고, 시경과 서부경찰서, 시교육청과 서부교육청에서 나온 사람들의 감시를 뚫고 교실 창문을 넘고 학교 담을 넘어 택시를 타고 경북대로 갔던 기억도 아련하다. 안동 마리스타학생회관에서 열린 한국글쓰기연구회 여름연수장에서 전국초등교사협의회를 결성하기로 한 날, 나는 유일한 대구경북초등교사여서 졸지에 대표가 되었다. 나는 이 일로 난생 처음으로 서울을 가 보았다. 흥사단에서 열린 결성식에서 사례발표를 하기로 한 부산의 친구가 오지 않아 졸지에 내가 대타로 연설하면서 신문에 이름을 올렸다. 한신대에서 열린 전국교사협의회 창립대회를 가기 위해 밤늦게 서울로 올라가 다음 날 새벽 첫 시내버스로 한신대에 들어갔다. 쫄쫄 굶고 늦은 시간에 수유리 한신대 뒷산을 넘어 대구로 돌아왔다.

경북 이용우 선생은 경북에서 해직되고 돌아가신 동지들의 사진을 올려두었다. 교육희망은 89년 그날의 기록들을 기사로 올려 두었다. 나는 어제 천막 결의대회장에서 혹시라도 오늘 아침 문재인대통령이 전교조 법외노조를 철회하겠다는, 전혀 기대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는 말을 했는데 역시나 문대통령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머리가 아프고, 뒷목이 뻐근하고, 어깨 통증은 크고, 목젖이 자꾸 울컥거린다. 속도 쓰려 술도 한 잔 못하니 잠이나 자야겠다. (2019. 5. 27. 월)

 

#69일차 - 어릴 때 역할극을 해야 갑질을 안 한다.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 답사보고서를 썼다. 세 명이 답사를 하지 못했다. 답사계획서와 보고서가 달라도 되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계획과 보고는 달라야 한다. 보고는 본 대로 들은 대로 한 대로 작성하면 된다. 답사 가서 모은 자료와 같이 모으게 해서 내도록 했다. 두 번째 답사를 한 셈이다. 수업을 마치고 미주가 다음 답사는 또 가요하고 물었다. 다음은 고장의 역사인물조사인데 인물조사는 인터넷으로 하고, 공공기관과 주민 참여를 체험하기 위해 달성군청과 달성군의회 체험을 간다고 하니 이번에는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그동안 모둠별, 가족별로 갔고, 이번에는 학년 전체를 8개~12개 모둠으로 만들어 순환 체험으로 조사를 할 예정이다. 4학년 사회는 온통 답사체험이다. 그만큼 4학년 교육과정이 답사를 준비하고 조직하는 일이 힘들고 중요하다. 어릴 때 제대로 익히고 재미있다고 경험하게 해 두어야 한다.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 잘 배워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관계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좋고 나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그런데 주변에 관계 맺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자기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장이 되기 위해 십 수 년을 노력했는데 정작 교장이 되면 교장의 역할이 갑질이나 하는 것으로 알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은 단지 학교공동체에서 학교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스스로 마치 신분계급이 상승한 것처럼 허세나 권력을 부리는 것이다. 모두 어릴 때 역할놀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문학 작품 중에 이야기 글을 읽을 때 빠르게 읽을 때도 있지만 천천히 멈추어 가면서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하는 버릇을 들이면 좋다. 천천히 읽다보면 떠오르는 상상과 경험이 많아지고 할 이야기도 많아진다. 오늘은 위기철의 [초록 고양이]를 읽는데 단순하지만 제목부터, 첫 문장부터 할 말이 많아졌다. 초록색의 주인공들을 떠 올려보기도 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상상을 했다. 목욕탕에 들어 간 엄마가 사라졌다 에서 엄마를 찾았던 경험이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온다. 그러면서 우리는 초록고양이의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를 연구해서 표현해 본다. 동화를 읽으면서, 연극을 하면서 맡은 역할에 어울리는 말투와 표정과 행동을 나타내는 공부를 어릴 때 많이 했다면 어른이 되어서 자기 역할을 과도하게 설정하지 않고, 극 전체에 맞게, 공동체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설정하게 된다.(2019. 6. 11. 화)

 

#71일차 – 4학년인데 미발달의 문제는 어떻게...

‘답사한 걸 화요일 애한 거 간다. 답사 거핵 과 답사 가다와 서 아던 거 감자기억 난 는데 다. 반애 길 번했다 감지기억 났다. 선생님 은왜 개속 혼내고 안하면 숙제 왜이 럴가 시펀 는 시간도 엄고다. 선생님이 갈 시간 넘어도 왜 숙제안하 면대 리지’

라고 일기를 쓰는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 대충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배워서 4학년인데 이렇게 쓸까 나도 답답하다. 말은 곧 잘 하는데 글은 이렇다. 비고츠키의 이론으로 보면 입말이 글말이 될 때 뭔가 발달에 문제가 일어난 것일 게다. 특수학급 대상 학생도 아닌데 이러니 더 문제다. 어제까지는 심각하지 않았는데 오늘부터 조금 심각해졌다. 어쩌면 처음 잘못 배웠을 때 부드럽게 교정되지 못한 채 꾸중만 들어서 뇌가 맞춤법과 띄어쓰기 앞에서 멈추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좋은 방법을 알려 주면 좋겠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공부가 수학 연산영역이다. 곱셈과 나눗셈은 시간을 두고 덧셈, 뺄셈, 어림을 충분히 하면서 계산법을 알아내고 익히는 게 좋다. 틀리는 아이들을 보면 구구단을 잘못 외운 경우가 많다. 구구단을 처음 배울 때 동수누가와 동수누감을 구체물을 통해서 익히다가 자연스럽게 외웠어야 했는데 아마도 다소 강압적으로 외우다보니 이런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4학년에서 이걸 다 확인하고 가르치려니 시간이 부족하고, 진도는 자꾸 나가고 하니 나도 마음만 바쁘다. 수포자가 가장 많이 나오는 때가 4학년 때라고 하니 지금 제대로 교정하지 않으면 수포자로 굳히게 될지도 모른다.(2019. 6. 13. 목)

 

#76일차 - 모욕감에 분노한 어제 밤을 잊지 않는다

교육청에서 IB교육과정 도입과 관련한 대토론회를 열었다. 전교조는 IB교육의 장점인 토론과 논술, 융합교육을 도입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 주장하면서 이런 교육을 가로 막는 교육 정책을 혁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IB교육과정을 학교에 적용하고자 하는 대구교육청의 정책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를 한다. 전교조가 ‘성급한’ 도입을 반대하니 대구교육청이 토론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강은희 교육감이 공약으로 내걸고 도입한지 1년이 지나서 관심학교, 희망학교를 지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니 이 토론은 정책을 폐기하거나 바꿀 수 없는 조건에서 기껏 속도 조절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반대의견 조차 수용했다는 합리적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전교조는 토론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날 토론은 무엇보다 IB교육과정은 2015교육과정과 무엇이 다른가? 대구에 도입하는 것이 필요한가? 도입을 한다면 어느 수준에서 도입할 것인가?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법과 입시정책 등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등을 논의해야 하지만 찬성측 발제자는 IB교육 전문가라고 하면서도 자신이 교사로 있던 서울 삼성고나 교감으로 있는 반포고에서의 사례를 소개하지 못했다. 기껏 IB스런 교육을 적용해 보았다는 교과교육 수준의 일천한 경험만 겨우 소개했을 뿐이다. 연구자로서의 발제와 교사와 교감으로서의 실천 사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서울에서 온 교감인 발제자는 타 지역에 와서 발제를 하는 기본예절조차 보이지 않은 채 거들먹거렸다. 토론자 가운데 한명은 현장교사도 아닌 전직 교사를 불러왔다. 이는 IB찬성 토론을 할 현직 전문가인 교사를 섭외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제주교육청 IB학교 교사를 불러 오지? 기껏 하는 말이 교사는 교육법에 맞게 대충 12분의 1만큼만 가르치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전교조 출신 지부장이 교육감인 제주와 충북에서도 추진하려고 하는데 왜 전교조가 반대하는가? 전교조는 IB교육을 모르기 때문에 질문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는가 하면 “학생들을 아 새끼들이라거나 싸대기를 때린다.”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대구 서동중학교 교사는 2017년부터 연수를 받았고, 신설 2년차 학교에 그것도 올 3월에 가서 겨우 4개월 동안 실천한 경험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IB교육 전도사인양 토론했다. 사회자인 강현석 경북대 사대 교육학과 교수는 전교조 발제자에게 매너가 없다고 비아냥 거렸다.

이날 토론은 교육청이 주관하고 IB 관심학교 등에서 온 교사들의 동원(?)으로 이미 플로어의 여론은 정해져 있는 가운데 전교조는 사회자, 발제자, 토론자들로부터 말 속에 은근슬쩍 집어넣은 전교조에 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나는 34년 전교조 활동을 이렇게 비아냥식의 모멸감을 느껴야 했는지 분노했다. 마치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는 듯 했다. 나는 34년 만에 느껴 본 모멸감이었다. 괜히 문재인 대통령이 원망스러워졌다. 문재인 마저 전교조를 우습게보니 보수의 심장에서 턱도 없이 IB교육을 하겠다고 하질 않나? 대놓고 전교조를 비아냥거려도 되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이 날을 잊지 않을 것이다.(2019. 6. 20. 목)

 

#78일차 - 천체망원경으로 아침 달 관측하기

하현달을 보려면 밤새 술을 먹거나 하지 않으면 관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침에는 마음껏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아침 등교 길에 낮달을 관측하도록 도우려고 넉 달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려야 하현달을 아침에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내내 서쪽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이 가득하다. 하지만 출근하는 동안 저쪽 하늘의 구름이 조금씩 엷어지면서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가 하현달이 나왔다. 나는 차를 조금 빨리 몰아서 평소보다 아주 빠르게 8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천체망원경을 설치하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아이들이 힐끗 쳐다보고는 그냥 가 버린다. 교사들도 바쁜지 대부분 그냥 지나간다. 우리 반 아이들은 가방을 교실에 가져다 두고 나오게 했다. 그런 사이에 저학년 학생들 50여명이 줄을 서 있다. 교장 교감에게 부탁해서 3학년들이 달을 배우니 나와서 관측하게 해 달라고 했다.

3학년을 기다리는 1교시 동안 우리 반 아이들과 달 공부를 했다. 3학년 때 달을 다 배우고 왔기 때문에 내가 질문을 했다.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달의 위상은 6학년 때 배우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도 나머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못하는 까닭은 배운지 오래 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달을 직접 관찰하면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다 마쳤으니 모든 어른들은 기본적인 달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가 달 관측을 하면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의 모순을 하나 들라면 나는 달 관측을 들어서 설명할 수 있다.

거꾸로 아이들에게 달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했다. 달의 모양은 왜 날마다 바뀌나요? 밤에는 달이 노랗게 보이는데 낮에는 왜 하얗게 보여요? 달 표면은 왜 울퉁불퉁, 얼룩얼룩 구멍 같은 게 보이나요? 민결이와 승규를 나오게 해서 달리기를 시켰다. 작게 한 바퀴를 돌고 멈추고, 다시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세 번째 돌게 했더니 승규가 점점 느려진다. 민결이가 해라면 승규는? 달이다. 이번에는 주먹을 들고 주먹을 보면서 제자리에서 돌게 하면서 주먹의 그림자를 보라고 했다. 그런데 주먹을 보지 않고 땅에 있는 주먹 그림자를 보는 아이들이 많다. 아이고, 내가 4학년인 줄 모르고 말을 잘못했다. 이걸 고쳐 주는데도 땀이 난다. 아이들을 땡볕에 세워서 관찰이나 활동을 하고나면 이내 그늘로 들어간다. 수요일 아침까지 날이 맑으면 이렇게 봉사를 하려고 한다. 교사들이 체험의 중요성이나 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게 먼저인데 나로서는 별 수가 없다.(2019. 6. 24. 월)

 

#79일차 - 건강검진

4학년이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날이다. 큰 이익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병원과 계약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작년에는 북구까지 갔는데, 올해는 한의대 부속병원으로 갔다. 아침을 굶고 오라고 해서 그런지 먼 길을 가는 동안 멀미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하도 말을 시켜서 그런지 튼튼하게 다녀왔다. 아이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비만으로 판정되어 피를 뽑게 되는 것이다. 승규, 시윤, 청준이가 해당되었는데 청준이는 4학년인데도 주사가 겁이 나서 한참을 울고 간호사들이 설득을 하고, 승규가 가서 별 것 아니라고 설명을 하고도 한참이 지나서 피를 뽑았다. 다하고 나서는 별 것 아니라고 하면서 앞으로 주사를 잘 맞을 수 있느냐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지아는 좌우 시력이 0.4로 나와서 한참 울었다. 한솔이는 한쪽 시력이 0.4인데 엄마가 안경을 맞춰주지 않는다고 내보고 설득해 달라고 한다. 데리러 오는 버스가 늦게 와서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 핀 원추리와 회양목, 느릅나무를 공부하고, 마당에 있는 지압로를 맨발로 걸어보고, 커다란 돌하르방 코를 만지며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차가 안 와서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작은 체험박물관 문을 열아 달라고 해서 마음껏 체험했다. 과학시간에 배운 대저울로 무게도 재보고, 약초 방에 들어가서 오래 있었다. 처음에는 코를 잡고 안 들어가려던 아이들이 내가 약초 향을 맡고 와보니 다들 향이 좋다고 가득 들어 앉아있다. 봐라 익숙해지니 좋지 하고 물으니 너무 좋단다. 병원 간호사들과 주변 환자분들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밝고 좋다고 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걸 다 받아주느냐며 신기해했다. 건강검진은 잠깐하고 체험을 더 많이 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니 시간이 어중간해서 수학 익힘책 도형문제를 풀었다. 마지막 시간은 영어여서 나도 쉬면서 일을 했다.(2019. 6. 25. 화)

 

#84일차 - 과정평가도 좋지만 학기말은 그동안 배웠는지 확인하는 시기이다.

학교에 가장 회자되는 말이 온통 과정평가이다. 나는 늘 과정 평가보다 과정 수업을 잘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정평가란 결과만 평가하지 말고 과정 전체에 학생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반응하고 이해하고 적용하는지를 살펴서 평가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결과만 중시하는 우리 교육 풍토에서 과정평가라고 부르든 말든 교사나 학부모 대부분은 ‘과정’보다는 ‘평가’에 방점을 찍게 되고, 평가에 방점을 찍는 순간 평가의 공정성을 어떻게 학부모들에게 보여 주느냐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평가가 이름을 과정중심평가라고 하든 성장기록이라 하든 결과에 대한 차별이나 불이익이 작아지지 않는 한 평가가 수단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업을 바꾸려면 학교를 바꿔야하고, 학교를 바꾸려면 세상을 바꿔야 한다. 그렇다고 세상이 바꾸어 질 때를 기다릴 수 없으니 교사들은 학생들의 배우는 ‘과정’을 중요하게 디자인하여 지금 보다 더 나은 ‘자연스러운 성장’에 도움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이라는 말은 모든 생명은 생존능력을 갖고 태어나며, 단지 열악한 환경과 경쟁, 차별이라는 재해를 견디고 이겨내는 능력을 가르쳐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교사와 학교는 모든 어린 생명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한살이 인생여정을 잘 살게 돕기만 하면 된다.

오늘 과학 단원별 지필평가를 하고 다시 설명해 주었다. 수학과 다르게 많은 아이들이 점수가 낮아서 실망을 했다. 과학과 사회 지식도 배워 두어야 할 것은 정확하게 알게 하려고 애를 썼다.(2019. 7. 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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