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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초등학교 1학년 담임

 

딸기(초등학교 교사)

 

요즘 초등학교 교사들이 담임 맡기를 가장 꺼리는 학년은  학년일까? 한동안 아이들의 빨라진 사춘기와 수위 높은 학교폭력으로 인해 6학년 담임을 제일 어려워했다. 6학년 담임 기피 현상이 두드러지자  학교에서는 고육지책으로 6학년 교과전담수업의 비중을 늘리고, 학교업무 분장에서 제외시키거나 성과급 등급과 학폭 가산점 대상자를 정할  약간의 인센티브를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 6학년의 명성(?) 도전하는 학년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데 바로 1학년이다.

작년 어렵고 힘든 직업의 노동현장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이후 모두가 ‘극한 직업으로 부르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 실제로 우리 학교에서도 올해 담임배정에서 마지막까지 지원자가 가장 부족했던 학년은 6학년보다도 1학년이었다.

 

한때는 주당 수업시수도 적고 아이들도 귀여운 저학년 담임이 초등교사들에겐 최고의 보직(?)으로 꼽혔었다. 덕분에 주로 경력이 많은 선배님들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저학년 담임 배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참으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닐  없다.

 

나도 올해 드디어 거의 10여년 만에 1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같은 초등교사지만 완전히 다른 노동을 경험하는 느낌이다. 10여년 가까이 주로 3학년 이상의 학생들만 가르치면서 나름 전문성있는 교사라고 생각했던 나의 자만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데는   달이 걸리지 않았다. 전쟁 같았던 3월을 생각하면 지금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아침 8 30. 교실의 적막을 깨고 아이들이 하나  들어선다. 아침 9시가 되면 어느새 26명의 아이들로 교실이 가득 찬다. 학교에 오자마자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을 자랑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놀이를 시작하기도  아이들을 수업이 시작하는 9시에 모두 자리에 앉히는 것부터가 쉽지가 않다. 9 수업시작 종이 울려도 아이들은 좀처럼 자기 놀이를 멈추지 못한다. 교사가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바로 자기 옆에 와서 몸을 일으켜 세우지 않는 이상 자기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중에는 학교에 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눕거나 책가방이나 겉옷을 아무 데나 널부러 놓기 일쑤다. 이런 것들을 치우고 아이들을 모두 자리에 앉히는 데만  많은 시간이 걸린다. 중간놀이시간이 끝나고 나서 다음 수업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때때로 놀이시간이 끝났는데도 놀이시간을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안된다고 하면 삐지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어린 아이들일수록 자기 조절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자기 조절이  안돼서 생기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바로  있지를 못한다. 놀이를 하듯이 교사가 10까지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를 시켜보면 고작 10 정도도 가만히 참지 못하는 아이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는 된다. 한쪽 다리를 들고  있기를 하면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다리를 들고서는 1초도  있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줄을 서거나 교실에서 생활을   다른 사람들과의 간격을 조절하지 못해서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일도 많다. 우리학교처럼 학생수가 많고 규모가  학교에서는 특히나 안전을 위해 복도 통행이나 계단 이동에 관한 교육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1학년 아이들의 호기심과 쾌락추구는 이기지를 못한다. 교사가 주의를 주면 그때 , 조금이라도 공간이 보이면 질주를 해야 하고 앞을 보고 걷기보단 친구들과 장난을 치거나 대화를 하면서 걷는다. 계단에서도   계단씩 한꺼번에 뛰어내리거나 다리 찢기를 하며 오르고 내리기를 즐겨한다. 그러다가 부딪히면 서로 싸우고, 넘어지면 다치고, 울고, 그제야 교사를 찾는다.

 

 있는   안되는데 앉아서 하는 거라고   리가 없다.

수업시간에 의자에 바로 앉지를 못해서 무릎을 꿇고 의자 위에 앉거나 책상에 엎드리거나 한쪽 다리를 책상에 올리고 앉는 아이들도 있다. 제멋대로 돌아다니며 책상 밑에 들어가 눕거나 숨는 아이들도 있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줄넘기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는데 앞에 나와서 줄넘기를 해보고 싶다고 조르는 아이도 있었다. “조금 있다가 나가서   건데도  지금 해야겠니?” 하고 물으니  지금 하고 싶다고 해서 해보라고 하니까 막상 나와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들어가 버렸다.

자기가  들었는데 선생님이 발표를 안시켜줬다고 화내고 울면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간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친구가 가지고 왔다며 책상을 발로 차고 벽에 머리를 박는 아이도 있다.

 앉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만 보면 장난감이나 색종이를 만지작거리거나 주변 아이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기도 한다. 수업시간에 의식적으로 자리에 앉아서 과제에 집중하는  역시 자기 조절이 필요한 일이다. 어린 아이들은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과제에 집중하는 시간이 짧고 흥미를 갖지 못하는 과제는 ‘하기 싫어요하면서 완강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사의 설명을  기울여 듣지 못한다.  가지 활동을 설명하려면 기본   번은 설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중에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라고 묻는 아이가 있다. 수업시간에 교사가 설명하는 중에도 불쑥 끼어들어 자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거나 대꾸를 하면서 자기들만의 대화를 이어가는 아이들도 있다.

 

생활에서도 조절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유 상자를 제대로 뜯지 못하고 자기자리나 주변 정리가 엉망이며 수시로 다치고 넘어지는데 조금만 아파도  치료(?) 받길 원한다. 심지어 어제 저녁 집에서 다친 것도 교사에게 이야기를 하고 아픔을 호소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같다.

 

최근에는 ADHD 대한 정보가 확산되면서 주의력 부족이나 산만함에 대해 많은 부모나 교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육부에서도 어린 아이들의 정서나 행동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하는데 지원하고자 1, 4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검사가 현장에서는 실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정확하게 찾아주지는 못한  교사들에게 잡무만 증가시키고 있다. 진단의 주체가 교사가 아니라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부적응하거나 정서나 행동에 문제 있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교사가  안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에서 항상 신뢰받지 못하는 교사는 철저하게 행정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으로 밀려날 뿐이다. 학부모들은 어떤 경우 너무 엄격하게 진단하거나 어떤 경우 너무 낭만적으로 진단해 아이가 현재 처한 어려움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주의력이나 정서의 문제는 절대적 기준이 있을  없고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므로 객관적인 시야를 가지고 있고 상대적으로 판단할  있는 교사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검사결과에 대한 지원도 Wee센터나 지역정신건강보건소 등을 통해 상담이나 치료를 지원해주고 있다. 문제 아이에 대한 치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아이가 있는 학급이나 가족에 대한 지원과 협력체계가 없어 아쉽다. 그리고 그마저도 치료기관의  관리가 의심스러우며 수요에 비해 기회rk 부족해 오랜 시간 기다리거나 관심군이 아니면 기관에서 상담을 거부하기도 한다.

 

저학년에서는 부모들이나 교사들 모두 한번쯤 ADHD 의심하게  만큼 아이들이 산만하고 대체로 주의력이 부족하다. 그리고 확률적으로 교실에    정도는 병원에서 진단을 받을만한 아이가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반에는 무려  명의 아이들이 병원 진단을 받았고 이중에  아이는 ADHD 약물치료중이며  아이가 언어 장애와 발달 지연으로 특수교육대상자 신청을 했고,  아이는 발달 지연과 감정조절 장애로 약물치료  발달치료를 진행 중이다.

  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있는 풍경을 한번 상상해보시라.

 아이는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쏟아내서 엉망으로 만들거나 아이들을 놀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놀이를 멈추지 않는다.  아이는 교사나 친구들이 알아들을  없는 말을 하며 끊임없이 물이나 필기구를 바닥에 쏟고 친구들과 부딪히거나 책걸상에 걸려 넘어져 운다.  아이는 모든 것을 자기가 먼저 해야 하고 작은 일에도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거나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며 아이들이나 교사한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모두 한결 같이 교사에게 한없이 의존하며 끊임없이 자기 말을 들어주길 요구하고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우리반이랑 교환 수업을 진행했던 옆반 선생님이 우리 교실에는 교사가 최소 3명은 필요할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들을 비롯한 26 1학년 아이들의 수업과 돌봄을 종일  혼자 진행하려니 손이 아니라 몸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며 넋이 나갈 때가  두번이 아니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에서 필요한 행동 하나하나를  밑바닥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우유마시고 우유 상자 정리하는 , 우유나 물을 쏟았을  정리하는 방법, 책상 서랍 정리하는 방법, 사물함 사용하는 방법, 화장실 사용하는 방법,  씻는 방법, 급식실에서  먹는 방법,  먹고 식판 정리하는 방법, 복도 통행하는 방법, 도서관 이용하는 방법, 교실 놀잇감 사용하는 방법, 친구들과 사이좋게 노는 , 친구랑 싸웠을  화해하는 , 교실에서 쓰레기 버리는 방법과 연필 깎는 방법까지... 하루에도  번씩 이런 것들을 설명하고  설명한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하루에 불과 4~5시간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의 노동 강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선생님은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멸치잡이 어선 어부보다 힘든 노동을 한다며 적어도 그들은 식사시간은 보장이 되지 않냐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집으로 가는  순간까지 화장실 볼일이나 식사는커녕  한번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옆반 선생님 말씀처럼 보조교사가 있다면  나을까, 교실에 학생수가 줄어들면   나을까? 교육부가 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 있는 아이들 걸러내서 치료를 해주면  나아질까?

당장 조금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없는 것일까?

 

1학년 아이들의 자기 조절력 부족에 대해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작년에 우리학교 1학년 선생님들이 ‘제대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을  많은 교사들이 요즘 아이들의 이런 자기 조절력 부족의 원인으로 마을이나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인해 공감과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인간관계보다는 일방향의 소통만이 가능한 미디어나 스마트폰의 영향이 크지 않겠느냐는 진단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신체를 비롯한 인지와 정서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발달을 필요로 하는 놀이보다는 학습을 과도하게 하면서 발달의 불균형도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과학적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어떤 선생님은 현대 사회의 과도한 식품첨가물과 화학제품들이 인간의 충동성과 공격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해가 갈수록 산만하고 공격적인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에 대부분의 교사들이 입을 모았다. 실제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 사건을 살펴보면 고학년에서는 관계에 의한 갈등이나 따돌림이 많다면 저학년에서는 사회성 부족으로 인한 공격성이나 충동적 폭력이 주를 이룬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면서 부모나 가족, 이웃과 정서적인 유대를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학업이나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경쟁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들의 망가진 삶이 병리적 현상으로 학교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피해를 고스란히 교사의 과중한 노동으로 짊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우리 모두는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찾아야 한다.

 

자기 조절력 부족과 더불어 저학년 아이들의 가장  특성이 자기중심성인데 사실 나는  부분이 가장 힘들다.

수업시간에 발표나 시범은 모두가  자기가 해야 한다. 줄을 서거나 좋은 일이 있을  모두가  제일 앞에 서고 싶고 제일 먼저 하고 싶어 한다.  명씩 짝을 지어 활동할  수가  맞아서 선생님이 누구 한명과 짝을 해줄라치면 모두가  선생님과 짝을 하고 싶어 한다. 수업시간에 몇몇 친구들의 결과물을 보여주며 피드백을 해주면 모두가  자기 것을 확인받으러 나온다. 아무리 전체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설명을 해도 자기가  들으면 선생님은 자기한테 이야기를  해준 것이 된다. 전체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내가 지금 생각난 어떤 것이 있으면 주제와 상관없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선생님이 다른 친구랑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자기한테 일이 생기면 곧장 선생님을 불러댄다. 물을 마실 때도, 밥을 그만 먹고 싶을 때도,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도 모두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친구랑 갈등이 있거나 싸움이 벌어져도 자기가 당한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방금까지 재밌게 장난을 주고받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친구가  행동만 어른에게 이른다.

모두가 나만 바라봐주길 바라는 아이들 26명이라니. 교사는   없이 아이들 하나하나와 대화를 하고 그들의 민원(?) 처리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뭔가를 배우러 왔다기보다는 자기 욕구를 표출하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저학년 아이들과의 생활은 학습보다도 돌봄에 많은 부분 에너지를 쓰게 된다. 이전까지 다른 학년에서의 경험과 매우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이점이었다.

나를 포함해 많은 교사들이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업이나 교육의 전문성을 기르느라 애써왔다. 그리고 솔직히 돌봄 영역은 부차적인 업무나 성가신 일거리로 생각하며 방만하게 여겨왔다. 그런데 앞으로 교육의 추세를 생각해보면 돌봄이라는 영역이  중요해져갈  같다. 이제 지식을 쌓거나 배우는 일은 다른 기관이나 매체에서도   있는 곳이 많아졌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고유의 역할은 아직 학교가 상당부분 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생활교육을 중심으로  돌봄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고 관심을 갖는 것이 교사들에게도 중요한 일이  것이다. 나야말로  부분에 대한 고민과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혹독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교사나 부모가 모두 아이들의 삶을 돌보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변해야 아이들도 살고  아이들과 함께 사는 나도,   있다.

 

아직 유치원이 의무교육이 아니다보니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의무교육은 바로 초등학교 교육이다. 아이들은 비로소 학교에 오면서 공적으로 세상에 자기 존재를 알리고 사회화를 시작한다. 그래서 학교 이전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이 모두 제각각이다. 당연히 발달의 정도와 차이도 커서 같은 8살이지만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다. 곱셈구구를 줄줄 외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하나 제대로 긋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우리 반에 감정조절 장애를 겪는 아이는 도대체 겨우  6여년 사는 동안 어떤 경험을 하였기에 지금 이렇게 조그만 일에도 활화산처럼 분노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늑대소년처럼 동굴에만 있다가 이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온 느낌이다. ADHD 진단을 받은 친구는 이전까지 아이가 그저 활발하다고만 여기고 말을 안들을 때마다 심하게 꾸중을 했다고 했다. 학교에서 보이는 아이 행동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을 통해 아이의 신경계적 이상을 발견할  있었다. 발달 장애와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친구인데도 부모님이 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계속 치료를 미뤄왔다. 이런 친구들은 부모를 교육하거나 설득하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비단 이런 아이들뿐만 아니라 1학년 학부모는 학교에 대한 이해나 경험이 낮고 아이에 대한 기대나 긴장도가 높아서 교사로서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교사들이 1학년을 기피하는 이유 중에는 바로  부분도  몫을 차지하는  같다. 나도 오전에는 주로 아이들과 씨름하고 아이들이 가고 나면 오후에는 학부모들과 상담하며 씨름하고 있다.

 

이렇게 제각각인 아이들과  뒤에 부모들까지 모두 아울러 공교육이라는 울타리로 데려오는 , 그리하여 결국에 모두 함께 어울려   있는 보편적인 민주시민으로 길러내는 .   관문이 바로 초등학교 1학년인 것이다.  지난한 일이 어찌 고되지 않을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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