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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착각의 만남

 

 

# 미친 3, 잔인한 4

이미 각오하고 예상했지만 3, 4월 학교 현장은 정말 탈진의 나날이다. 이사에, 새 업무에, 새 수업에 그리고 새 아이들에....새로 준비하고 움직여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녹초가 되어 몸과 에너지가 녹아내리는 학기초 일상이 그렇게 지나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교사 노동 강도는 정말 심각하다. 왜 이렇게 갈수록 감당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아지는 걸까? 교원 업무 경감 이야기는 교육청이건, 학교에서건 어디서나 하는데 왜 줄지 않고 늘기만 하는 것일까? 지금 학교는 있던 일에 새로운 일이 쌓여 나가는 누적적 업무 상황에 놓여 있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성과를 내 보려는 정부와 교육청의 성과주의적 흐름 때문이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들도 학교를 통해 성과를 내보려는 주역 중 하나다. 학교에 너무 많은 것을 떠맡기려는 과도한 역할 기대도 한 몫 거든다. 그래서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해마다 새로운 일들이 쌓여 나간다.

일이 너무 많고 힘드니 교육 관계도 훼손된다. 교사 간 배려의 여력이 없어지고,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과 에너지도 감소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어 나가야 할 판이다.

 

# ‘탄원두 착각의 만남

이 힘든 와중에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 전교조 법외노조 철회를 위해 청와대 앞에서 탄원을 한다. 본래 탄원이라는 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에 하소연을 하는 것인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당사자에게 탄원을 한다는 것이 좀 우스운 일이다. 자존심 상하고 어색했지만 그래도 우리의 요구를 보여주기 위해 탄원을 했다. 그런데...참 거시기했다. 강력한 의지의 표현도 아니고, 광범한 의사 표현도 아니었다. 바쁜 와중에 힘들게 연가내고 와서 줄서서 기다리고, 서성이다 그렇게 끝이 났다.

청와대 탄원 행사의 어색함과 무력감은 두 착각의 앙상블을 보여준다. 자유주의 정권은 진보세력을 멀리하고 우향우하면 보수세력의 지지가 넓어질 것으로 착각한다. 전교조 법외노조의 지속도 그 착각의 제물이다. 그러나 진보세력을 멀리하는 순간 잠시 자유주의 정권을 지지하는 듯 했던 보수세력도 떠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정권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대세에 따랐던 것인데, 진보 세력을 멀리하는 순간 대세가 허물어지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투쟁의 수위를 낮추고 방식을 연성화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유아적 투쟁관역시 착각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투쟁의 참여도는 투쟁 수위가 높으면 소수가 낮으면 다수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의제와 상황에 투쟁 방식이 얼마나 적합한 가에 달려있다. 청와대 탄원 투쟁은 두 착각의 만남이 빚어낸 어색한 앙상블이었다.

두 착각은 이미 실패를 경험하고 반복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자유주의 세력은 노무현 시절 우향우로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 떠난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전교조 역시 투쟁을 안 하거나 낮게 하는 것이 대중의 참여도를 높이는 것이 아님을 충분히 확인해 왔었다. 오류의 경험이 반성적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착각은 유아적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확실히 오류를 극복하고 자유주의 정권의 배신을 돌파할 수 있으며 또한 해야 한다.

 

# 새로운 역동들

당장은 힘만 들고 되는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멀리서 이 판을 흔들어 나갈 새로운 역동의 소리가 들려오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실천 공간에서도 실천적 문제의식이 형성되고 있다. 청와대 탄원 투쟁의 어색함은 딥 체인지로 포장되었던 비투쟁적, 유아적 사업관의 오류와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교사의 힘든 일상으로 표현되는 노동강도 강화 문제는 주체적 실천력과 결합한다면 대중적 투쟁 에너지로 전화할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파업 직업군이 교사라고 한다. 요즈음만 해도 미국과 폴란드,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대규모의 교사파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 만큼 신자유주의의 교육 폐해가 전 세계적으로 컸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 위기가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노랑조끼운동, 미국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주의 붐등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움직임도 새롭게 확대되고 있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장에서 대중투쟁을 올바로 세우고 교육혁명으로 나아가는 실천을 힘 있게 전개해 나가는 가운데 밑으로부터의 분노와 밖으로부터의 역동이 만나는 때가 올 것임을 기대해 본다.

 

 

* 이번 회보는 [과제와 전망]에서 현 단계 교육노동운동이 처한 상황을 전환기적 상황으로 보면서 변혁지향적 교육운동이 수행하고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제출해 보았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육노동운동이 한 차원 발전하는 새로운 시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기획]에서는 교육과정 문제에 집중해서 유아, 중학, 고교의 중심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현재 새로운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아이비(IB) 교육과정을 검토해 봤습니다. 다음 호에는 이번에 다루 지 못한 초등 교육과정과 과정중심 평가 등 교육평가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기고]에서는 최근 국제적 현안이 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위기를 주류 언론과 다른 시각에서 글을 실어보았습니다. [담론과 문화]‘IT기술과 인간10_왜 인지자동화(소위 인공지능)인가?’, ‘필라델피아 여행을 꿈꾸는 그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 ‘버닝썬 사태에 대한 우울한 단상’, ‘미친 3, 잔인한 44편을 실었습니다. 학기 초 바쁜 상황이어서 원고가 조금 줄었지만 정성들인 글들이어서 풍부하고 알찬 내용들입니다. [만화] 난중일기는 초등교사의 가혹한 학기 초 상황을 슬프지만 재밌는 터치로 그리고 있습니다. [현장에서]‘2018 교실에서 쓰는 편지’, ‘교사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기간제 교사의 교육노동권은 정규교사에 달려 있다(?)’ 등 교육현장의 애환을 담은 3편이 글이 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소개] ‘타자의 언어들에서는 일본의 진보적 시각을 담은 책 2권을 소개했습니다. 어려움 속에 끊임없이 새로운 희망을 찾고 일구어 나가는 시절입니다. 진보교육이 새로운 희망과 힘을 일구는데 조금의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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