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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 전교조 = 콜라보였지만

 

방효신(전교조 조합원, 페미니스트)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5980001.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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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선거가 끝났다. 전교조는 위원장-수석부위원장, 지부장-수석부지부장, 지회장, 전국 대의원, 지부 대의원 등을 2년마다 선출하는데, 그 중 지회장 이하는 1년마다 뽑는다. 이번 전국 선거는 분회장에게 누구를 뽑아야 하냐고 물어보지 않고 소신껏 기표한 첫 선거였다. 페미니즘을 내세운 여성-여성 후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학교와 노조의 낡은 조직 문화 혁파라고 캐치프레이즈를 함께 만드는 순간, 주변 조합원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조합의 모습이 보였다. 전교조 가입 10년 만에 선거 유세장에도 가고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여 지지하는 후보의 명함을 내밀 때의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다. 명함을 받은 조합원이 나를 쳐다보며, “그래서, 방효신이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라고 되물었을 때 희열감이란!

 

 

여성-여성 후보가 위원장에 나오기는 전교조 설립 이후 최초이다.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 중 여성의 비율은 201810월 기준 68%인데, 29년 동안 19번의 위원장 선거에서 기계적인 비율을 따져도 여성-여성 후보가 13번은 나왔어야 했다. 이런 주장은 억지인가? 그렇다면 노조에서 특정 성별을 지지한 게 아닌데 그 힘든 일을 맡겠다고 나선 사람이 결과적으로 남성밖에 없어서 조합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뿐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또는 일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노동조합 같이 덥고 추운 날씨에 집회할 일 많고 밤도 새고, 교사 업무 외에 노조 업무라는 이중고를 매일 수행하기에는 남성적인 체력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입시 교육이나 교사의 처우 문제가 완력의 크기나 큰 목소리 내기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정치권력이나 관료제에 대응하는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정연한 회의가 특정 성별에게 더 적합하다는 근거가 없는데도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비율이 3분의 2가 넘는 집단에서 지회, 지부, 본부로 갈수록 여성은 모습을 감춘다. 남성-남성 후보가 아닌, 남성-여성, 또는 여성-남성 후보가 본격 등장한 것도 동반 출마 시 1인은 여성이어야 한다라는 2004828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단서조항이 신설된 뒤의 일이다. 2001~2003년 이수호-김은형, 2004~2005년 원영만-장혜옥 등 위원장 후보에 여성이 등장한 일이 있지만, 지부장과 대의원 등에 여성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은 전국대의원 50% 여성할당제 안건이 단 몇 표 차이로 통과된 2001년 전국대의원대회 이후이다. 그럼에도 2019년 각 시도 지역 지회장 선출 현황은 아래 표와 같다. 각 지역의 남여 선출 현황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서울, 울산, 인천, 경남, 대구, 대전은 여성이 절반 이상인데, 경기, 경북, 광주, 부산, 전남, 전북, 충남 지역은 이상하리만치 여성의 비율이 낮다. 전교조에서 지회장은 동반출마제에 해당하지 않고, 여성할당제도 적용하지 않은 직책이다.


지부

지회 수

선출지회 수

미선출지회수

선출비율

강원지부

17

10

6

58.8%

3

7

경기지부

30

25

5

83.3%

3

22

경남지부

26

9

17

34.6%

5

4

경북지부

26

16

10

61.5%

1

15

광주지부

9

8

1

88.9%

1

7

대구지부

11

8

3

72.7%

3

5

대전지부

4

4

-

100%

2

2

부산지부

7

7

-

100%

1

6

서울지부

24

13

11

54.2%

6

7

울산지부

7

7

-

100%

3

4

인천지부

10

6

4

60.0%

4

2

전남지부

29

6

23

20.7%

-

6

전북지부

17

14

3

82.4%

2

12

제주지부

5

4

1

80.0%

2

2

충남지부

15

12

3

80.0%

2

10

충북지부

14

5

9

35.7%

1

4

합계

251

154

96

61.4%

39

115


2019
년 지회장 선출현황 : 2018. 12.13 기준(세종지부 제외)

 

1. 여성 활동가가 나오기 어려운 이유

 

201898일 제 79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는 전북의 한 남성 대의원이 여성위원회 사업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대신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써서 사업계획안을 만들자는 수정동의안을 제출하려 한 일이 있었다. 기존의 성평등 교육은 진리는 아니나 일리가 있으니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으나, 현재 페미니즘은 이중잣대와 통계 왜곡으로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살인범죄에서 여성피해자 비율을 운운하는 것은 실제 여성이 살 만한 나라인가 따질 때 적합하지 않고, 르완다는 성평등 지수가 4위이고 한국은 114위인데 그건 르완다가 내전 중이라 남성이 많이 죽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은 것이지 르완다가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의장이 여성 혐오 발언을 제지하지 않았고, 이런 발언을 대의원 대회에서 해도 된다는 그의 당당함이다. 페미니즘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있는 진흙탕 싸움이니 전교조가 굳이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그에게 여성은 성평등을 말할 때 호명되는 타자일 뿐이었다.

전교조가 남성으로 구성되는 것을 편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회장이나 지부장이 집회에서 투쟁을 외치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는 모습을 보여 무대 아래에서 갖는 든든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관망할 때는 그런가보다 했다. 최근 2~3년 동안 자주 집회에 참여하면서, 자주 등장하는 남성들의 연대발언과 투쟁사는 미리 준비한 말들이 아니었다. 관성적인 말, 고민 없는 구호, 잘 싸워 이기겠다는 다짐만 있었다. 자신의 일상이나 평소 감정, 솔직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 것은 말하면 안 되는 불문율이라도 있는지 단순하고 강단 있고 거친 말이 오갔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순간은 세월호 4주기 직전 집회에서 416 특별위원장인 여성 조합원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였다. 전교조가 주관하는 집회에 다닐수록, 다음 예정된 집회에 가는 것은 망설여졌다. 광화문 앞에서 법외노조 철회를 주장하는 1인 시위는 할 만한데, 10명 이상이 모인 집회에서 깔개에 앉아 투쟁사나 연대발언을 듣기가 곤욕스러웠다. 사안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나 활동가로서 개인 소회가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주요 집회의 투쟁 발언 대다수는 남성이었다. 단지 남성이 말했기 때문에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니다. 나에게 여성의 목소리보다 남성의 중저음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말의 내용이 공허했다. 이 집회 다음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거리 행진 구호를 외칠 때는 100% 여성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 역할 분담은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지회 집행위나 지부 사무실에서 여성의 비율은 낮지 않다. 그들은 조합원이 아닌 상근자(조합에서 채용)이거나, 조합원이면 총무나 참교육실장, 선전을 담당한다. 정책실장, 조직국장, 사무장, 지부장이 아닐 뿐이다. 남성 조합원이 노조 일을 시작할 때 총무를 맡기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계산은 여자가 더 정확하고 잘 챙길 것이라는 신념이라도 있어 보인다. 여성 조합원이 깃발을 들고 행진 대오를 이끄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여성과 남성이 번갈아가며 들면 될 것을, 남성 조합원은 아픈 팔을 두드리며 깃발 대오를 책임진다. 그래왔기 때문에, 본인 의사를 묻거나 능력과 성향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부탁하고 맡기고 때로는 지원하는 관성이 노조를 지배하고 있다.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그렇게 역할을 분담해왔고, 그래도 다른 사회집단보다는 성평등하다고 자부하면서.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15980cd3.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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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교조 내 여성주의는 가능한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말과 글로 대중화 한 지 2년 정도 되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오프라인으로 본격 터져 나왔는데, 이어서 사회 권력에 맞서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전에는 여성운동, 여성주의자, 성평등 정도로 여타 다른 사회 문제의 일종으로 취급받던 페미니즘이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재조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는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조직을 재편할 가능성이 있을까? 교육 운동의 중요 테마로 페미니즘 교육을 주장할 건강함이 있는가? 68%의 여성 조합원이 있는데, 이번 위원장 선거에서 2번 후보가 8.75%만 득표한 현실은, 여성이라고 여성 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각 후보들이 정책으로 경쟁한 것도 아니며 기존 정치권의 득표 공식을 노조도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 변화를 받아들이고, 교육 의제를 이끌 노조가 되려면 페미니즘은 전교조가 장착해야 할 필수 요건이다. 거창한 주장 이전에 노조의 존망 여부를 결정할 2,30대의 숫자는 너무 적다. 조합원 수를 걱정할 때는 호명되던 젊은 여성 교사가, 정책과 노조 운동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 회의의 진행과 시작은 남자가 하고, 토론 주제와 상관없어서 1분 정도 참다 못해 말을 자르면 예의없다고 뒷담화 당하며, 할당제 마냥 젊은 여성에게 의자를 준 뒤 발언을 꼼꼼하게 비판하며 대응하는 50대 활동가가 있는 한 전교조에 가입하고 싶은 2,30대 여교사는 없다. 내 존재를 무시하는 노조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지난 9월 서울지부 집행위 회의에서는 어느 초등 지회장이 자기 지회에서 조합원 가입 숫자가 늘어난 이유는 야무지고 당찬 어떤 조합원 덕분에 같은 학교 주변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했기 때문이라며, 여성 조합원을 칭찬하는 미사여구로 야무지고 당차다는 말을 반복했다.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말할 때는 더 주의깊게 설명해야 함에도 남성이 여성을 설명하면서, 권력이 있는 상대에게는 쓰지 않을 용어로 공적인 자리에서 남성끼리 말을 주고 받는 상황은 영 불편했다. 바로 문제 제기를 하니, 자신은 남녀 관계없이 해당 문구를 써 왔다고 변명했다. 그 지회장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같은 지위의 사람에게도 대면으로 야무지고 당차시네요 라고 말한단 말인가?

불편함을 참지 않고 적절히 말하고 중지시키는 것, 이 공간에서 누가 권력을 갖고 있는지 알고 대응하는 것, 평등과 민주라는 개념을 지금 실천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성은 이제서야 자기가 드세고, 말 많고, 예민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남성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여성이 우월해야한다 또는 여성은 지금까지 불평등한 취급을 받았으니 보상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겉으로는 평등해 보이는 제도나 언행 속에 불평등한 성 장치를 찾아서, 공과 사의 영역에서 함께 행복하자는 게 페미니즘이다.

 

 

3. 행복한 노조 활동을 위해

 

대상화_  여성의 인간성을 거부하는 다양한 방식들 (너스봄 2010)

 

도구성 instrumentality: 대상을 목적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다

 

자율성의 거부 Denial of autonomy: 대상을 자율성과 자결능력을 갖지 못한 것처럼 취급한다

 

비활성 Inertness: 대상을 능력(agency)이나 활력을 갖지 못한 것처럼 취급한다

 

대체가능성 Fungibility: 대상을 (1) 같은 유형의 다른 대상으로 (2) 다른 유형의 다른 대상으로 교체가능한 것처럼 취급한다

 

가침성 Violability: 대상의 경계를 언제라도 침입하여 부서뜨리거나 박살낼 수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

 

소유권 Ownership: 대상을 소유해서 사거나 팔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

 

주체성의 거부 Denial of subjectivity: 대상의 경험과 느낌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취급한다

 

신체로의 축소:  대상을 신체나신체의 일부로만 취급하는 것

 

외모로의 축소: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또는 감각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따라 취급하는 것

 

침묵시키기: 대상을 말할 능력이 없는 침묵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

 

우리 사회는 여성의 인간성을 축소 또는 삭제하는 방식으로 양육하고 교육해왔다. 가부장적인 사회문화적 기제와 매체는 주류이고, 일상에 스며있어 페미니즘 렌즈를 끼고 들여다 봐야 알아차릴 수 있다. 위 방식들 중에서 당신이 지금껏 해보지 않은 대상화를 손에 꼽아보라. 2명 이상의 사람 사이에서 여성이 온전히 사람으로 취급받는 경우는 드물다. 여성이 장애, 종교, 학벌, 가난, 나이 등의 여타 다른 분야처럼 소수자 인권 문제인 이유다.

퇴근 후 이뤄지는 또 하나의 사회생활인 노동 조합 활동은 친여성적이지 않다. 집행 구성원 비율 문제는 눈치껏 겉으로는 해소되는 듯하다. 조합원끼리 친해지는 방식은 추운 날 등산을 하거나 회의 후 당구를 치거나 술을 마시는 남성이어야 가능한 문화가 여전히 많다. 회의 시간대도 퇴근 후이고, 전임을 하면 자정 이전에 집에 못 가는데 모이는 지역도 서울 중심이다. 여자가 양육을 주로 담당하는 한국에서,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 해도 사무실에 아이돌봄 시스템을 갖춘 곳이 없으니 의지가 있어도 활동에 제약이 많다. 아이 문제는 네 문제니까, 지원은 할 테니 해결은 네가 하라고 요구받는다. 학교보다 더 남성중심적인, 때로는 더 관료적인 노조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전략은 두 가지이다. 남자처럼 굴거나, 탈퇴하거나.

이제 되었다고 자부하는 순간 도태되고 보수화된, 그래서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는 사실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진보교육 연구소 회원들은 알고 있으리라 기대한다. 기존, 가부장제, 마르크스주의 색안경 대신 페미니즘 프레임으로 세상을 분석하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배우고 성찰해서, 소통하고 운동하는 것은 기성 세대의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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