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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시대 진보적 교육개편 운동의 재구성

 

진보교육연구소 정세분석팀

 

 

1. 현 국면의 성격 : 자유주의 헤게모니 확립기

 

신자유주의가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자유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정치지형에서는 6월 북미회담 성사를 경유하여 지자체 선거에서 자유주의 성향의 정치세력의 압승을 거둠으로서 수구세력의 몰락이 현실화되었다. 수십 년 간 한국사회 민중운동을 억압해온 냉전 이데올로기의 물적 토대가 와해되었고, 분단체제를 등에 업고 지역주의에 의존하면서 승승장구해온 수구세력의 정치적 기반이 몰락한 것이다. 이는 계급대립구도에서 혼선을 야기하던 요소들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며 향후 계급대립 지형을 바꾸어나갈 바탕이 일정 정도 형성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의 영향력 확대는 비단 정치지형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 전반의 현상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확보는 한국사회 저변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는데, 그간 한국사회에서는 각 분야에서 개인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가치관이 확대되어 왔다. 특히 최근의 미투 운동과 갑질 논란 등 위계적 권력관계 속에서의 인격과 권리침해에 대한 민감도 상승과 실질적 저항 행위 표출은 자유주의의 저변이 전사회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현상이다.

그러나 미투 운동이나 갑질 논란 등은 대체로 개인적 차원의 문화적 저항 형태를 띠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 저변 확대가 한국사회 변혁에서 갖는 의미는 한계적이라 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고 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 발생과 이를 통한 대중적 실천을 확대하는 매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사회의 진보적 변화에 있어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이처럼 아직은 존엄성과 권리 침해에 맞서 위계적 권력관계에 대해 표출되는 저항이 아직은 문화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고 ‘계급운동’의 차원으로 전화되지는 않고 있으나 이러한 현상들을 계급 지형과 대중전반의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 의미를 포착하고 진보운동진영이 능동적으로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의 인격과 권리 침해 사태는 과거에도 마찬가지로 있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각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보아도 좋다. 달라진 점은 이러한 사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태가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며 한 개인이 권력구조에 대항하는 것을 꿈도 못 꾸던 상황에서 맞서는 행위가 가능해졌다는 것에 있다. 아직은 요원할 지라도 최근에 목격한 일련의 사건들은 그간 성장한 한국사회의 대중의 인식을 일정 정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슷한 상황에 맞서 대응을 하더라도 계란에 바위치기라는 패배주의와도 싸워야 했다면 지금은 조금은 달라졌다는 점에서 민중 운동에게는 희망적인 변화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하던 수구 세력의 몰락은 변혁적 민중 운동의 영향력과 공간을 확대할 매우 기본적인 조건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진보적 교육운동은 그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 성장해왔다. 전교조 결성 당시부터 한국교육의 근본적 개혁의 전망을 막연하게나마 품었지만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이제 현실화 가능성이 훨씬 확대된 시기로 진입했다고 보아도 좋다. 실천 여하에 달린 일이다. 다만 현재까지의 방식과 내용으로는 자유주의의 헤게모니에 밀려 입지가 더욱 좁아질 지도 모른다. 특히나 진보적 교육운동을 이끌어온 전교조가 법외노조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교육의 진보적 개혁에 전면적으로 나서기 매우 어렵다.

상황이 녹록치 않지만, 그간 쌓인 유무형의 성과가 적지 않음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교조를 중심으로 교육운동진영은 신자유주의의 교육시장화 파상공세에 맞서서 새로운 교육 대안을 창출하였으며 어려운 조건에서도 싸움을 전개한 끝에 오늘날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시기 신자유주의 교육 패러다임에 맞서 민중진영의 공교육 개편안을 2004년에 제출했고 대학평준화 담론이 대선공약으로 등장할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

 

 

2.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혼재

 

한국 사회 전반에서 자유주의 흐름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교육정책의 기조와 방향 전환은 매우 더딘 형편이다. 신자유주의가 일부 완화된 형태로 유지되는 가운데 자유주의 정책이 덧붙여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혼재 상태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교육시장화 공세는 이미 중단되었으며 신자유주의 정책이 새로이 도입되고 있지 않으므로 향후 완만한 흐름으로 자유주의 교육체제로의 이행을 전개해 나가리란 예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적폐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서는 자유주의 교육체제로의 이행 또한 순조롭지 않음에도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신자유주의 교육과 구별정립을 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지도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적폐 청산을 핵심적 과제로 추진하면서 국정동력을 유지하려 했지만 적극성을 보인 것은 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통치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로서 청와대-고위관료–국정원-검찰 등 권력자나 권력기관의 권력 남용 문제에 집중되었고 교육적폐 청산은 매우 제한적 수준으로 이루어졌을 뿐이다. 출범 직후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일제고사 표집 전환, 기간제 교사 세월호 순직인정 등 적폐 해소에 대한 열망을 수렴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 잠시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장 교사들이 1순위로 꼽는 성과급, 교원평가 폐지에 미온적이었으며 당연하다고 예상한 특권학교 폐지도 정공법이 아닌 우회로(고입 동시실시)를 택하는 기대 이하의 방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마련되어 학교현장을 괴롭히고 온갖 갈등의 진앙지가 된 학교폭력대책도 확실한 개선안을 내놓지 않았다.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 교육적폐청산은 조심스럽다 못해 지지부진한 반면 공모제 확대, 고교학점제 도입 등 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추진에 박차를 가하였다. 무엇보다 박근혜 정권의 최대 폭거라 할 만한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의 대선 당시 공약과 교육부가 2018년 1월 수립한 교육 분야 국정과제를 보면 여러 관점이 혼재되어 있음이 나타난다. 시장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보 개혁적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도 아니다. 교육 사안들을 바라보는 일관된 관점과 원리가 불분명하며, 그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모습이다. 4차 산업혁명을 주요 담론으로 하는 도구주의적 요소, 선택과목 확대, 고교학점제, 자유학기제 확대 등 학습자 중심주의적 요소, 교육복지와 무상교육확대 등 평등주의적 요소마저 혼재되어 있다. 이렇게 현 정부는 교육개혁의 총체적 방향성과 구체적 전망을 스스로 정립하기 어려운 상태에 스스로를 놓아두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혼란스럽고 갈피를 못 잡는 모습에서 자유주의자들 내부에서 다양한 분파들이 각축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교육정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또 다른 특징은 목표와 정책의 괴리이며 거창한 목표에 걸맞지 않은 매우 지엽적이고 주변적인 성격의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교육의 희망사다리를 복원’이라는 목표 하에 내놓은 정책이 “출신고교 블라인드 면접 도입”이다. 학력·학벌주의 철폐를 위해서는 대학서열체제의 해소가 필수적이다. 대학평준화 방안이자 대선 당시 공약이었던 “대학통합네트워크 방안”은 슬쩍 폐기한 채 목표와 멀리 떨어진 지엽적, 주변적 정책으로 웃음거리가 되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수준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6대 국정과제별 하위 정책들 대부분이 개혁효과는 없이 번거롭기만 할 지엽적, 주변적인 것들이다. 다만, 공공성, 민주주의 강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 교육개편을 추진했던 지난 정권들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 정책이 보이고 있는 난맥상은 사실 대선국면 때부터 내재해 있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은 일관된 방향과 틀 없이 성격이 다른 다양한 요구들을 짜깁기 하여 어설프게 구성한 것이었다. 일제고사와 특권학교 폐지, 전교조 합법화, 국공립대통합네트워크 등 교육운동 진영이 오랜 투쟁을 통해 제출해 온 것과 고교학점제와 같은 자유주의 교육정책 그리고 소프트웨어-스팀교육 강화 등 이전 정부의 교육정책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일관된 교육철학과 분명한 정책기조 없이 득표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모아다 놓았기 때문이며 막상 정권을 잡자 중심을 잡고 추진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자유주의의 혼재, 변죽만 울리고 피로감만 가중시키는 지엽적 정책들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 개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대시키고 있을 뿐이다.

교육은 국민 기본권입니다. 문재인의 교육혁명 국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1. 국가가 완전히 교육을 책임지는 시대를 만들겠습니다.

- 국가부담 공교육비 비중 OECD평균까지

- 중앙정부가 누리과정 책임지겠습니다.

-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 추진하겠습니다.

2. 무너진 교육사다리를 다시 세우겠습니다.

-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 모든 대학에서 기회균등전형 의무화

- 기업 블라인드 채용 넓혀 공정한 출발 되게

3. 교실혁명으로 교육혁명을 시작하겠습니다.

- 초등학교에서 1:1 맞춤형 교육 하겠습니다.

- 중학교 일제고사 폐지, 자유학기제 확대

- 예체능 교육 활성화 하고 대입 반영 유도

- 고등학교 무학년 수강신청 고교학점제

4. 교육적폐 절대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 대학입시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

- 로스쿨 입학 100% 블라인드 테스트 개선

- 가난한 학생도 학업 포기하지 않게

5. 교육개혁을 국민이 결정하도록

- 대통령직속 ‘국가교육회의’ 설치

- 4차 산업혁명 대비하겠습니다

- 학부모‧학생‧교사 교육주권시대 열겠습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공보자료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과거와 같은 파상적 시장화 공세는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육개혁을 추진한다는 인상도 주지 못하고 있다. 개혁효과는 없이 피로감만 가중시키는 정책들로 인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 예상되며 입시에 대해 확고한 개혁의지가 없이 표류가 계속될 것이기에 국민 대중들의 입시정책에 대한 불만은 앞으로 더 커질 공산이 크다. 반면 개인의 선택권을 근거로 추진하고 있는 학생중심주의적 성격의 정책들은 자유주의적 감성을 환기시키면서 일정한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이며 4차 산업혁명담론을 전면에 내세운 진로교육강화와 코딩교육 도입은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이 대응하기에 만만치 않은 문제로 보인다.

진보적 교육운동진영이 사안들 하나하나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불가피한 일이다. 하지만 사안별 대응을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지를 의식적으로 추구해야만 한다.

 

3. 자유주의 시대, 진보적 교육개편 운동의 방향과 과제

 

1) 주요 교육 현안에 대한 담론 투쟁 방향

 

가. 입시제도 개편이 아닌 대학체제 개편으로

2017년 수능절대평가 논란 이후 학종 대 수능의 구도가 형성되었다.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을 1년 유예한 데 이어, 올 4월 11일엔 대입제도 개편안에 대한 결정을 국가교육회의로 이송하였다. 어정쩡한 개편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후퇴와 고집을 반복하는 갈팡질팡 행보로 여론의 뭇매만 맞고 ‘대학평준화’ 의제를 키우지도 못하였다.

2018년 8월 수능개편안 발표가 예정되어 있으며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현 정부가 대선 공약을 사실상 폐기하면서 대학평준화로 가는 과도기 방안 성격의 2021학년도 수능 개편안을 이전 정부가 정해놓은 시한대로 성급히 제출했다가 벌어진 일이다.

대학서열체제에서 수능만 절대평가로 전환한다고 해서 대입경쟁이 낳는 여러 문제가 해결될 리가 없고 입시의 변별력, 공정성 시비 또한 사라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깜깜이 전형, 금수저 전형, 복불복 전형 등으로 비난, 조롱당할 정도로 만천하에 문제점을 드러낸 학종을 유지, 강화하겠다고 고집을 세우는 것은 ‘자유주의적 로망’으로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으며, 학종 유지 방침은 고교학점제와도 연동되어 있는 문제이다.

학종 대 수능의 구도로 형성되어버린 입시개편 논란 지형은 대학평준화를 지향하는 진보적 교육 진영에게 유리하지 않다. 2017년 수능개편안 논란 국면에서 진보진영은 수능 절대평가 폐기를 강력하게 질타했으나 대학평준화 의제를 동시에 공세적으로 제출하지 못하였다. 교육부는 학종 유지 의지는 강한 반면 수능 절대평가에 대한 신념이 없었다. 더군다나 대학평준화는 대선용에 불과했음이 분명해졌다.

향후 어떤 입시안이 채택되든 서열화된 대학체제로 인한 문제는 그대로 남기 때문에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며 대학평준화 담론을 어떤 방식으로 제출해야 하는지를 모색해야 한다. 방안은 2007년부터 시작된 입시페지-대학평준화 운동과 입시로 인한 교육 모순의 심화와 이에 따른 대선 공약화로 많이 익숙해졌지만 정작 왜 대학평준화를 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과 정당성에 대한 논의는 많이 확산하지 못하였다. 첫째,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불가피하다. 둘째, 서열화된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사회적 차별이 정당화된다. 셋째, 평준화체제가 갖는 인간발달에 있어서의 의의이다. 인간발달의 토대는 협력적 상호작용이다. 평준화시스템은 협력을 도모하는 열린 체제이다. 서열체제는 교류와 이동을 허용하지 않는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체제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매우 제약하는 시스템이다. 넷째, 대학의 질을 고르게 상향화하기 위해서 평준화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다. 그들이 중시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는 고등교육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고등교육 보편화로 이어질 것인지 아니면 자동화 경제시스템의 부속품으로서 기술 엘리트 양성에 몰입하는 방향으로 고등교육을 재편할 방아쇠가 될 것인지는 이를 대하는 주체들에게 달린 문제다.

● 자유주의 교육과 대입개편 공론화

이번 대입 개편 논의는 현 단계 자유주의 교육론의 두 흐름과 교육 철학 부재에 따른 혼란 및 정치적 접근법을 잘 보여준다.

자유주의는 구조 개혁의 전제 없이 입시 개편 문제를 다루었다. 자유주의는 크게 두 흐름으로 양분되었는데, 하나는 낭만적 접근으로 과도한 입시교육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수능절대평가를 주장하는 흐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정 경쟁을 중시하면서 수능상대평가 유지를 주장하는 흐름이었다. 교육계에서는 주로 낭만주의적 흐름이 강했고, 교육계 밖에서는 공정 경쟁론 입장이 강했다.

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당사자들에게 매우 첨예한 이해가 걸린 문제이다. 따라서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공정 경쟁론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평창올림픽 여자하키 합동선수단 구성 문제, 은행권 특혜 입사 논란 등에서 보듯 그 동안의 신자유주의 지배 아래 생존적 경쟁이 강화된 상황에서 ‘공정성’의 문제는 사회 전반에서 매우 예민하고도 강력한 지점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정 경쟁론이 상당한 우위에 서게 되었다.

대학 서열 해소에 대한 전제 없이 낭만적으로 접근했던 교육계 내 일부 자유주의의 접근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설사 대학 서열 해소 방향의 전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아직 엄연히 서열이 남아있는 조건에서는 결코 공정 경쟁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이번 입시 개편 논의는 대학 서열 해소의 전제 없이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입시 개편안은 있을 수 없음을 또 한 번 증명하는 사례이며 총체적, 과학적 관점 없이 낭만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됨을 보여준다. 입시와 대학 서열 문제는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로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논의될 수밖에 없다. 추후에는 대학 서열 해소의 전제 위에서 입시를 다룰 수 있도록 논의 지평을 한 단계 더 전진시켜야 한다. 논리의 순서도 그렇고, 실제 논의의 순서도 대학 개혁의 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철학이 부재한 자유주의가 교육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그들은 여론을 통한 의사 결정이라는 여타의 정치적 문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입시 문제를 다루었다. 필연적으로 교육적 관점과 기준보다는 다기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가 무책임하다는 비판도 쏟아졌지만 막상 그렇게 진행되어 버리자 비교육적 결론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사회적 담론 수준의 지평을 넓히는 것 그리고 분명한 정책 방향 수립을 강제하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평가 강화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개편 논의는 결론을 맺더라도 향후 문제와 논란을 증폭시켜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이후의 논의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대학 개혁’ 논의를 새롭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나. 교장공모제가 아닌 자격증제 폐지 - 선출보직제 전환 & 민주적 학교시스템 구축

 

교육자치 관련해서 교육부는 내부형 공모제 확대 방침을 발표하였고 교육자치 중심 내용은 시도교육청으로의 권한 이양이다. 교장공모제 확대와 관련해서 2017년 12월 27일 문재인 정부는 자율학교에 한해서 실시되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15% 제한 규정인 교육공무원임용령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 학교공모교장심사위원회에서 교원의 참여비율을 30~40%로 규정화하면서 학부모 위주의 교장심사구조에 일정한 변화를 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 관료적 권한을 활용하여 공모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공모제 도입이 가능한 학교 전체에 교사와 학부모 의견 조사를 일괄적으로 실시토록 했다. 찬반 조사를 실시한 학교들에서는 공모제에 대한 찬성이 대체로 과반수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눈여겨볼 지점은 공모제에 대한 높은 찬성 비율이다. 현재와 같은 관료적 통제 구조에서는 공모제가 갖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교사 학부모 모두 찬성 의견이 많았다는 것은 승진제도 개편에 있어서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의 교장제도에 대한 불만이 공모제에 대한 찬성으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학교 구성원들을 동원해가면서 벌이는 치열한 점수경쟁, 그 경쟁을 뚫고 자격증을 보유하게 된 자들 가운데 교육청이 선별하여 교장을 내려보내는 방식보다야 우리 학교의 교장을 우리 손으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선호는 당연히 우세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임명된 교장이 권한을 남용하고 구성원들을 힘들게 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현 시점에서 공모제에 대한 선호가 자격증-임명제보다 선호도가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따라서 기존 교장제도는 정부에서 자격증 제도를 유지할 의사가 없는 한 변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도 자체를 지지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현 시점에서 공모제는 선출 보직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로 (주체의 대응 방식과 정도에 따라) 활용할 여지는 있다. 물론 공모제에 머무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공모제를 전면화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기에 자격증제를 폐지하지 않는 한 문제의 원인은 여전함을 부각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학교민주화가 어려운 당장의 걸림돌은 교장의 절대권력을 용인하는 운영시스템과 승진경쟁과 교장임명권을 활용하여 정부시책을 강행하는 것이 가능한 구조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전면적인 학교민주화는 요원하다.

우선, 일정 기간 이상 교직 경력이 있을 경우 교장으로 일할 자격을 부여하고 그러한 교원 가운데 학교 구성원이 선출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가 법제화되어야 하고 권력형 수장이 아닌 교장의 새로운 역할 정립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다. 고교학점제 도입이 아닌 초중등교육 정상화(보편교양교육과정)로

고교학점제는 현 정부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교육의제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 버전의 인적자원개발 정책이다. 과목선택권 확대, 고교학점제는 자유주의 교육정책 가운데 가장 대응하기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학생중심, 선택 등의 담론이 갖는 힘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시민단체와 전교조 일각에서도 고교학점제에 대한 반대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교육부는 “핵심역량 함양”, “학생 중심”, “선택권 강화”를 교육과정 개편의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 학습시간, 휴식시간 등 유아·초등 권리보장 법제화 ○ 초중고교 필수과목 최소화 및 선택과목 다양화 ○ 민주시민교육·노동인권교육 강화를 주요정책으로 제시했으며 교육과정 개편의 핵심정책의 위상을 갖는 것은 고교학점제이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가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운영 제도로서, 고교체제 개편 및 대입제도 개선과의 연결고리이자 고교교육과정 전반의 변화를 촉발하는 기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고교학점제를 도입하여 학생의 진로선택과 학습능력에 따라 원하는 과목과 수준을 선택하는 선택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교사의 자율성에 기초한 수업과 평가 혁신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고교학점제는 그 실체와 상관없이 ‘선택권 부여’라는 일견 민주적으로 보이는 수사로 인해 논쟁 과정에서 선택권 부여에 대해 반대하면 기존의 교사중심 교육을 옹호하는 보수적 입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교육시민사회단체들도 고교학점제에 대해 우호적이다. 주로 고교학점제에 대한 낭만적 기대를 바탕에 깔고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요구되는 ‘핵심역량’(특히 창의성을 강조)의 육성을 내걸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적자원개발이라는 경제적 목적이 고교학점제 추진 동력의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고교학점제를 미래역량(서울시교육청) 혹은 핵심역량(교육부) 강화에 목적이 있다고 문서를 통해 밝히고 있고 이러한 목적으로 위해 후기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진로(진학) 준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교학점제를 “학생 개인별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 지원”(서울시교육청) “진로맞춤형 교육체제로의 전환”(교육부)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 고교교사들의 경우 고교학점제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기대를 갖게 되는 현실적 이유가 분명히 있다. 수업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방해, 반항 행동까지 수시로 경험하기 때문에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도록 하면 수업에 더 흥미를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할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수업으로부터의 이탈 등 일반고를 중심으로 슬럼화는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수를 늘리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분명하다. 학생발달을 고려하지 않은 양과 난이도(이는 비단 고등학교뿐 아니라 초중고 전반에 걸친 문제임), 아울러 입시를 비롯한 평가체제에서 비롯되는 문제라는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현 정부는 교육과정의 핵심 문제를 회피한 채 고교학점제를 정책으로 이미 추진하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 패퇴를 기점으로 자유주의 담론의 상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대응하기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7차 교육과정 시기부터 선택형 교육과정의 허구성에 대한 경험과 실증적 사례들이 누적되어 있고 따라서 7차 교육과정 도입 당시보다는 담론지형을 변화시킬 대응력 또한 높아져 있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대체적인 반응은 취지에는 공감하나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현실적 문제만 제기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또한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교사별 평가를 대안으로 여기고 도입을 추진 중이며 내신 절대평가제 및 수능과 학종을 통한 선발을 입시개편의 중심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수능과 학종을 통한 선발을 고수하면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할 경우 대학서열체제가 온존하는 상황에서 수능의 절대평가로의 전환은 불가능하며 따라서 입시 부담 및 사교육비 문제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학종에 대한 공정성, 신뢰성 시비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교사 수급문제는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할 텐데 나쁜 일자리를 양산해서라도 고교학점제를 밀어붙이려고 하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고교학점제를 두고 벌어지는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선택권 확대(사실 확대되는 것은 선택권이 아니라 선택과목의 개수)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지만 내적인 핵심은 후기 중등교육의 성격, 나아가 공교육에 대한 관점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서 선택 담론은 고교학점제에 머물지 않고 초중학교까지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선택 담론과 다른 지점은 선택을 경쟁과 연결시키지는 않는다는 정도이며 학생중심 교육을 수요자 주권론이 아닌 민주주의 담론에 기대어 정당화시킨다는 점이다.

고교학점제는 학교교육에 대한 도구주의적, 실용주의적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학교교육이 ‘진로준비’에 있어서 실질적 기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뿐 아니라 이런 입장은 자유주의자들 전반의 시각이기도 하다. 교육에 대한 실용주의적 관점과 개인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것이다. 교육평론가 이범은 한 입시제도 개혁 토론회에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하여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할 때, 자신의 전공학과에 맞는 준비를 고등학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의 경우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역사과목을 더 많이 이수하고, 여행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지리, 문화, 외국어 과목을 더 많이 이수하고........ 그런데 우리는 교과가 획일적이므로 교과로는 본인의 관심이 지향을 보여줄 수 없고...”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에 나가 직업을 구해야하기 때문에 후기중등교육인 고등학교 교육은 학생들의 진로(대학의 전공이나 특정한 직업)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는 판단이 존재한다. 최근에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생존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조기 진로교육은 학생들의 생존 경쟁력을 높여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조응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시각으로 취업 등 개인의 생존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는 것에 불과하다.

한편 고교학점제에는 학생은 자율적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도 하다. 특히, 고등학생의 연령인 10대 후반은 자신이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기이며, 학생 개개인의 관심, 흥미, 적성이 분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과목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학생의 인권과 자율성의 확대라는 매우 보편적인 가치 위에 서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지만 전제 자체가 잘못 되었다. 자율적 판단과 선택의 영역은 발달의 과정에서 서서히 분화하고 변화한다. 고등학교 시기는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아직 관심이 미분화된 상태이며 동료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 활동에 대한 관심과 선택의 욕구가 큰 시기이다. 따라서 교과활동은 ‘보편교양’을 기본 성격으로 구성하여 필수의 영역과 양과 난이도를 적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며 비교과영역(학생자치, 동아리, 관심특기 등)의 활동을 교사의 지도 및 동료와의 협력을 통해 체계적으로 해나갈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함이 타당하다.

요컨대, 고교학점제는 ‘학생중심’이라는 수사로 포장하고 있지만 학생들을 ‘미래의 인적자원’으로 대상화하는 것에 불과하며 학생들이 진정으로 선택권을 누려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발달적 관점에서의 파악이 부재하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선택과목의 수를 늘려 교육과정이 핵심적으로 추구해야 할 보편적 발달의 가치를 훼손하고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교사들의 노동 강도를 강화시키고 공동체 경험의 기회를 협소하게 만들기만 할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는 철학적 고민을 시작하고 세계관을 형성하는 시기의 학생들에게 어떤 과목을 택해야 유리할지, 어떤 학과를 가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 라는 지극히 생존적인 문제의 답을 스스로 알아서 찾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4차 산업혁명 담론과 자유주의적 관점이 결합되어 고교학점제를 낭만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중등교육의 성격이라는 거대 쟁점이 내포되어 있다. 고교학점제 찬반 구도에 매몰될 경우 이기기가 쉽지 않다. 초중등교육과정 전반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계열분리, 학교선택, 귀족학교 등 학교시스템과 연동되는 문제이다. 그동안 꾸준히 현실적 문제와 대응논리를 마련해오긴 했으나 보편적 ‘발달’의 권리를 전면화하여 초중등교육과정 개편의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확산해야 나가야 할 것이다.

 

라. 교권 회복이 아닌 교육권의 재정립으로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 정립은 수년 간 미루어져 왔다. 최근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가 빈발하고 그 수위가 높아지면서 교사들의 위기감과 무력감은 극에 달해 있다. 게다가 교사로부터 권한은 박탈한 채 각종 책임을 지우면서 교사들은 교직 자체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학생인권 운동이 꽤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되어 왔고 주체들도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지만 정작 학생인권 개념이 불분명하며 교권과 대립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마저 있어서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우선 상황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며 아울러 통합적 관점으로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고츠키 교육학의 관점에서 교수와 학습은 이질적이되 서로를 전제하면서 통일되는 역동적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인간 발달은 훌륭한 교수-학습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발달’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학생인권과 교권의 관계를 정립한다면 대립적이고 적대적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일부 적대적인 관점과 입장은 역사적, 경험적인 것에 기인하는 동시에 ‘인권’에 대한 자유주의적(개인주의적) 개념에 기인하는 만큼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이 없으며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기도 하나 ‘교육철학의 차원’에서 통합해 나간다면 그리 어렵지 만은 않을 것이라 낙관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 학생인권이냐 교권이냐로 대립이 왜곡되고 단순화되면 정당한 권리 주장마저 보수진영의 조롱과 희화화의 대상이 될 소지마저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 교권이 아닌 발달을 위한 교육권의 개념을 정립하는 것을 마냥 미룰 수만도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아울러, 현실적으로 문제는 개념과 입장보다는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가로막는 촘촘한 제도와 법률들이 그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는 상태에서 각종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억울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전교조의 축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시급히 법과 제도의 개편을 관철시켜 나가야 한다.

 

마. 학교의 다기능화와 교사 노동 강도의 강화

신자유주의 교육 재편기를 거치면서 눈에 띠는 변화 중 하나는 교사의 노동 강도가 심각한 수준으로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학교에 대한 ‘서비스 기관화 정책’ 및 학교 바깥에 원인이 있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교육에 전가하는 전략은 업무 폭증을 불러왔다. 이러한 전략들은 교사들의 노동 강도를 매우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지금 학교는 마치 온갖 문제의 ‘처리반’ 격이다. 사교육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문제는 방과후학교와 돌봄 프로그램 확대로, 세월호 참사는 안전교육 강화로, 학폭 문제는 스포츠클럽 활동 도입으로 등. 학교 교육과정이 엉망이 되고 교사의 노동강도가 강화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두 가지 원인이 있는데, 첫째는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는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구조적 원인과 사태의 본질을 회피하고 대증요법으로서 교육에 그 책임을 전가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학생지도와 관련된 일 외에 ‘잡무’가 많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지만 현재 학교 상황은 잡무가 많은 정도를 넘어서 온갖 ‘서비스’ 기능을 학교에 떠맡기는 꼴이다 보니 가장 중요한 일들이 뒤로 밀리고 일이 많다 보니 학교 내에선 분쟁이 일어난다. 둘째는 신자유주의에서 극도로 강화된 교사집단에 대한 적대적 불신을 바탕에 둔 교사와 학교에 대한 통제 정책의 도입이다. 교원평가, 성과급, 학교평가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런 정책들은 쓸데없이 업무량만 대폭 늘림으로써 교육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이다.

현재 교사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학교폭력 문제와 생기부 업무이다. 2012년 학교폭력 대책에서 학폭 처벌 결과를 생기부에 기재하게 강제함으로써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많은 업무와 심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학생부 종합전형의 도입과 확대로 인해 학폭 기재에 대한 민감도는 매우 높으며 비교과활동 영역의 대입전형 요소 활용으로 ‘스펙’을 만들어주기 위한 일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업무량도 업무량이지만 학생, 학부모와 갈등을 촉발하는 진원지가 되고 있다. 생기부 기재 사항을 축소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될 수 없다. 대학입시 뿐만 아니라 자사고, 특목고, 특성화고 특별전형 등 입시 과정에서 생기부 제출을 요구하는 것이 갈수록 늘어남에 따라 생기부 업무 부담은 중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업무량도 많고 심리적으로 부담은 크지만 교육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위라는 것에 있다.

노동 강도 강화는 입시, 교육과정 정책, 잘못된 교육시스템과 한국사회의 열악한 노동조건(저임금 장시간 노동, 사회취약계층 증가)에서 야기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 개인, 개별 학교 차원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한대도, 2018년 교육청과 교육부의 주요 사업계획은 교사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킬 것들로 가득하다. “국가가 책임지는 보육과 교육”을 국정전략으로 내세웠지만 실상은 그 책임과 부담을 학교와 교사들에게 고스란히 전가하고 있다. 개혁 효과는 없으면서 교사들의 업무만 증가시킬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학생중심’을 빙자한 정책들에 대해 폐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의제화 해나가야 한다.

교사들이 여유가 없으면 학생들과의 접촉시간이 줄어들고 상호작용의 질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다른 말로 ‘발달’을 이끄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교사의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정책 성격의 변화 외에 물리적 조건의 확충은 필수적이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과 교원정원 확대는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투자와 신뢰 없이 교사의 고혈로 연명하는 교육체제는 반드시 그 혹독한 대가를 미래에 치르게 되어 있다.

 

2) 진보적 교육 개편 운동의 재구성

 

가. 변화된 조건에 대한 인식

2004년 처음 공교육개편안을 제출한 지 14년이 흘렀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자유주의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시장화 공세를 파상적으로 펼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과 개인의 권리보장과 민주주의를 내거는 자유주의에 대한 대응방식은 달라야 한다. 어떤 면에서 자유주의는 상대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의 교육정책이 난맥상을 거듭하고 있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대중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만한 정책 행보를 아직은 보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특성은 크게 달라지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자유주의 내에서도 자본 친화적 부류와 민중 유화적 부류가 있다. 자유주의 전반이 교육에 대한 일관된 철학과 원리가 없다는 점에서 균열과 동요의 가능성은 있다. 파시즘적 교육체제 시기나 신자유주의 교육재편 시기에 비하면 변화의 가능성은 훨씬 커졌으며 수구세력의 몰락으로 자유주의 세력과 진검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각축의 과정에서 교육운동 진영이 주요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성향의 대중들일 것이다. 촛불혁명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위계적 관계에서 참는 것을 내면화하는 과거의 세대들과 다르다. 사회변화를 위한 실천을 ‘계란에 바위치기’라고 지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교육혁명의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문제는 진보진영의 내용과 실력이다. 내용적으로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공교육개편의 윤곽과 구체적 대안은 2004년도에 마련되어 제출된 바 있고 상당수의 내용이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형태로나마 이후 선거 때마다 교육공약에 반영되었다. 민중진영의 진보적 교육 대안이 한국교육을 바꿀 대안으로서 어느 정도는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교육철학적 공백은 발달과 협력의 교육학을 통해 보강되었다. 따라서 내용적으로는 이미 상당히 많이 갖춘 셈이다. 다만 진보진영이 가진 내용을 확산하고 영향력을 확대할 주체의 역량을 형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대목이다.

 

나. 공교육개편운동을 통한 주체 형성과 주체 형성을 통한 교육혁명 현실화

주체 형성이 실천의 과정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면 그리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겠지만 자연적 발생에 기댈 수 없다는 점에서 집중적인 고민과 방식의 창안이 요구된다. 다행히도 공교육개편운동은 여타의 현안 대응 활동에 비해 체계적인 학습을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경험과 이론의 결합을 요구하는 성격을 지닌다. 학습과 실천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전교조의 사업으로 공교육개편 로드맵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된다.

2004년 전교조에서 공교육개편 사업을 활발한 조직 내외의 교선과 담론투쟁을 통해 벌였지만 이후 교원평가, 성과급, 일제고사 등의 파상적 시장화 공세 앞에서 소강 상태로 한동안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이후 결합한 활동가, 조합원 대중은 공교육개편안에 대해 접해본 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다시 공교육개편 사업을 복원하되 일회성 교선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학습시스템을 만들면서 공교육개편안의 내용과 의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의 참교육실천이 미래지향적이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기폭제가 될 교육혁명의 성격을 갖는다는 인식이 확대되어 나갈 것이다.

 

다. 공교육개편안의 재구성

그동안 여러 버전을 거치면서 공교육개편안은 보강되고 발전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계승하되 공교육개편운동을 통한 주체형성과 담론투쟁을 위해 변화된 조건을 고려하여 내용과 형식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공교육개편안의 내용은 대부분 현재 시점에서도 유의미하지만 주로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연구와 집필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 조건과 맞지 않는 부분들을 찾아서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 정권의 교육담론과 정책에 맞게 수정할 부분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는 의제들인 교사의 노동강도 강화, 교사교육권 문제나 4차 산업혁명 담론 등을 포함하여 내용을 재구성해야 한다. 입시개편의 경우 대학평준화 담론의 변화된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대학체제와 평준화시스템이 조응한다는 점을 강조하여야 할 것이다.

덧붙여, 사회변화의 전망을 내용에 담아 공교육개편안을 재구성해야 한다. 2004년 당시에는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화두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흐름이 강했다. 교육의 변화는 사회 변화의 수동적 반영이라는 구도가 지금은 많이 깨졌다. 지금은 교육 만의 변화가 아니라 공교육개편이 한국사회를 바꾸는 동력의 하나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라. 현안대응과 공교육개편 담론의 결합

지방선거 이후 정치지형이 크게 달라졌다. 이제 핑계삼을 수구세력도 없다.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 성과급, 교원평가 등의 사안에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조직 내부적으로도 그동안 기다릴 만큼 기다려줬다는 인식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자유주의 정권의 교육분야 행보에 대해서는 갸웃거리는 조합원들이 많다. 이런 문제들이 빠르게 해결되어야만 공교육개편운동이 활기를 띨 수 있다.

자유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대응해야 할 현안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들만 보아도 그럴 수 밖에 없다. 개별 사안에 대한 대응의 과정에서 공교육개편의 관점과 내용을 결합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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