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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교육] 57(발간 : 201576)

 

[담론과 문화] 타라의 문화비평

 

풍문(風聞)으로 들었소

 

타라 (교육문화분과)

 

바람에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30부작으로 방영된 풍문(風聞)으로 들었소(이하풍문)는 본래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여인의 일생을 담는 50부작 시대극으로 구상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을 지칭하는 풍문데이(Day)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풍문은 제법 큰 인기를 끌었고, 고정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11.7%의 시청률을 보였다.

제왕적 권력을 누리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대한민국 초일류 상류층의 속물의식을 통렬한 풍자로 꼬집은 블랙코미디라고 요약되는풍문은 갑을관계와 10대 미혼모 문제 등 어둡고 불편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반응들을 생산하기도 했다. 실험영화의 화면 질감과 아방가르드(avant garde) 음악, 격이 높은 풍자와 해학으로 드라마의 품격을 높였다는 칭송부터 설명과 해석을 생략한 채 시청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며 가르치려 드는 불편한 드라마라는 평까지.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렸던 드라마였다.

내게도 월요일은 어김없이 풍문데이였고, 화요일편은 매번 다시보기로 꼬박꼬박 챙겨보았던풍문이었던 만큼 종영의 허전함은상류사회로는 채 달래지지 않는다. 나에게풍문은 내용과 형식면에서 모두 흥미로운 사회 풍자 드라마다. 냉소 대신에 통쾌한 웃음을 주는가 하면 절묘한 곳에서 시대적 징후를 감지하게 하는 드라마라고나 할까? 공들여 배치된 세트와 미장센 등 세밀한 디테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인 공감(sympathy)보다는 인지적인 감정이입(empathy)을 유도하는 드라마였다.

 

갑과 을의 속물성

땅콩회황 등의 갑질이 난무하고 비정규직이 600만을 넘는 한국사회에서 갑을관계는미생에 이어풍문에서도 서사의 한 축을 이룬다. 대대로 이어져 온 법률가 집안이자 정재계를 죄지우지하는 법무법인 한송의 대표인 한정호와 전직 장관의 딸이자 한송의 안주인인 최연희는 갑 중의 갑, 이른바 슈퍼갑의 형상이다.

서민가정의 딸 서봄은 영어캠프에 참가했다가 로열패밀리의 외동아들인 한인상을 만나 하룻밤을 같이 보낸 후 고교생 신분으로 임신을 하고, 구중궁궐 같은 그 집 안방에서 출산을 한다. 최고 로펌의 수장인 한정호와 귀부인 최연희는 집안 평판에 금이 갈 것을 염려하며 17억이라는 돈으로 서봄을 조용히 정리하려 하는가 하면 봄이를 친정으로부터 떼내어 자신들의 신분에 어울리는 스펙을 갖게 하고자 고군분투한다. 봄이의 학습력을 검증한 후 사법고시 최연소합격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독선생을 붙이는가 하면 족보 조작으로 사돈 집안을 전각예술가 집안으로 둔갑시키면서 말이다.

이러한 상황 전개에서 드러나는 한정호와 최연희의 모습은 위선적이다. 한정호는 밖에서는 평등겸손을 부르짖으며 교양있고 온화한 신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려 애쓴다. 최연희 역시 기품있고 우아한 상류층 여성의 표본으로 행동하려 든다. 요컨대 속물인 것이다. 재산과 지위를 축적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없다.

귀족성을 내세우면 안 돼. 차별에 민감한 대중들이 상처받거든.” 한정호가 아들에게 주지시키곤 하는 처세 방식이다. 이어서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언급하며, 우매한 대중과 엘리트 지배층의 엄격한 분할을 역설하고 상속자로서의 태도를 주입시킨다. 최연희 역시 초등학교 동창인 투자클럽 친구들과 친교를 이어가지만 상류층인 그들과도 친구라기보다는 군계일학으로서 그들 위에 군림하려 든다.

한정호가 양비서에게 구린 일을 시키면서 낮은 저음으로 뇌까리곤 하는 세련되게,하자없이,그들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어야지요.” 라는 말이나 최연희가 도도하게 뱉어내는 감히라는 말에는 슈퍼갑이 을들을 대하는 고압적인 시선과 주종관계의 위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가식과 이중성은 내밀한 공간에서 감정 폭발의 순간에 밥상을 던진다든지 서로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식의 유치한 모습으로 발현된다.

선대로부터의 가르침 혹은 집안의 법도를 운운하며 잔뜩 허세를 부리던 인물이 을의 예기치 않은 반응에 당황해하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보이는 장면에서 우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재미를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최연희가 아들 내외의 침실에 부적을 붙이려다 봄이에게 들키자 집안 내력가풍이라고 변명하고, 봄이는 좋은 가풍은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받아치는 장면.

이러한 갑들은 성장이 멈춘 키덜트(kidult)라고나 할까?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다소 어수룩하고 병맛스럽게 행동하던 한정호와 최연희가 부와 권력을 다루는 문제에서는 무척 노회할 뿐만 아니라 철저하고 냉혹한 지배자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는커녕 그들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도덕 불감증 괴물이 된다. 이 부분은 드라마에서 자연광이라는 어두침침한 빛과 음울한 음악을 깔고 인물 표정의 떨림을 슬로우샷으로 담는 심리극의 형태로 연출됨으로써 매력적인 장면을 만든다.

갑들도 보존을 위해 진화한다. 때론 사랑스럽고 귀엽기까지 한 캐릭터로 말이다. 가신들이 그들의 수족이 되어 노동을 도맡아 하는 덕에 일상에 대해선 어린애처럼 무지한 한정호와 최연희가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호감도가 높았는데, 이건 단지 그 역할을 맡았던 유준상과 유호정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만은 아니다. 미시적으로 생성하는 일상의 권력은 가시적으로 억압하던 예전의 권력에서 탈피하여 친숙함과 유순한 외양을 띠고 대중 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는 을도 속물이고 찌질하다. 풍문은 을의 분노에 편승하여 갑의 속물성만 풍자하던 기존 드라마의 익숙한 틀을 깬다. 주인에게 맞서지 못하고 뒷담화로 이를 해소하는 가신들의 비겁함과 이해관계의 얽힘, 최상류층 사돈 집안에 대한 선망과 불만 사이에서 한참을 우왕좌왕하는 서봄 친정 식구들의 무기력함, 한송 대표 한정호 밑에서 그의 방식(타인의 약점을 사람 부리기로 활용, 정보 수집과 전용)을 그대로 따라하곤 하는 양비서의 부조리함 등. 세상 사람들은 드라마 속 을들의 군상에서 자신들의 속물스러움과 찌질함을 되비쳐 보게 된다.

 

진정성의 파토스

풍문속 인물들은 갑이나 을 모두 현실의 한국사회에서처럼 속물적이고 찌질한다. 그러나풍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치부와 성공에 있어서 여전히 후안무취와 뻔뻔한 당당함을 보이는 갑은 즉자적인 속물이다. 그들에게는 수치를 생산하는 내면 대신 오로지 타인들의 평가에 대한 강한 관심, 요컨대 자의식만이 과도하다. 그러나 을들은 드라마 전개와 함께 자신이 속물임을 깨닫는 대자적인 속물로 변해간다. 감추고 싶지만 은폐할 수 없는 모든 것 앞에서 느끼는 감정, 곧 부끄러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때 매개가 되는 것은 극 중 문제 인물인 서봄이다.

서봄 내면의 고뇌와 상처에 대한 많은 부분이 모호하게 처리됨으로써 시청자들의 상상에 맡겨진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에게서 비롯된 진정성(authenticity)이 갑의 속물성에 대한 대항서사를 이룬다. 여기서 진정성이란 외부에서 부과되는 도덕률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목소리인 참된 자아와 대화로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태도를 가리킨다.(속물과 잉여, p.41) 간판 인쇄업에 종사하는 가난한 서봄의 친정 역시 세간의 평판을 의식한 한정호가 제공하려는 일체의 돈과 지원을 받지 않음으로써 진정성의 에토스를 구현한다.

극 초반에 서봄은 인상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잘 살게 된 거냐며 막강한 힘과 권력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런가 하면 인상이와의 외국 유학을 꿈꾸며 작은 사모님이라는 권력 놀음에 잠시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송의 비리를 알게 되고 가신들의 편에 선 탓에 시부모의 미움과 차가운 무시를 오롯이 받게 되면서 권력의 단맛에 혹했던 자신을 성찰하고 아이와 함께 슈퍼갑의 성을 나온다.

돈과 권력의 갑질을 끊어내고자 하는 그녀의 진정성은 갑의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가신들의 속물성을 흔들고 마침내 각성으로 이끈다. 게다가 성에서의 탈출과 이혼이라는 단호한 행동은 을들에게 진정성을 전염시킨다. 갑과의 혼인관계(혼전임신과 출산, 혼인신고 )작은 사모로 등극한 을의 딸 서봄은 한정호와 최연희에겐 그야말로 위험한 이물질이다. 최연희에게는 서봄의 출처모를 당당함이 발칙하고 당혹스럽다. 그 당당함은 진정성에서 비롯된 떳떳함인데, 자기중심적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갑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돈과 권력의 울타리 너머를 상상할 수 없는 한정호와 최연희에게 그동안 말 잘 듣던 집안 하인들과 비서들의 요구와 파업은 단지 돈(급여)에 불만인 비천한 것들의 반란일 뿐이다. 게다가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금전적 지원과 집 수리 마저 거부하는 서봄 친정은 낡고 누추하며 비이성적이고 심지어는 역겨울 뿐이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게 다 되는 게 갑의 논리이고, 실제로 사람들은 돈과 권력 앞에 굽신거리며 그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으려고 몰려드는 게 세태이니 말이다.

속물성과 진정성의 예리한 부딪침은 결국 막대한 재산의 상속자인 한인상의 내면으로 옮아간다. 을을 품은 슈퍼갑의 형상 한인상은 양쪽 진영(봄이과 인상이의 아기 이름이기도 함)의 경계에서 문턱을 넘을지 말지를 제법 길게 고민한다. 양손에서 속물성과 진정성 둘 다를 막판까지 놓지 않으려던 인상은 상속 재산이 한송 비리와 연관된 것임을 알고 서봄이라는 진정성의 세계로 넘어온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그대로 품은 채 그러나 현재의 진정성으로 상속 포기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다.


새로운 집터를 찾아서

풍문에 등장하는 한인상의 집과 서봄의 집은 대조적이다. 드라마는 빈부 양극화의 내밀한 속살을 평창동 대저택과 점포에 얹힌 2층 주거 공간으로 보여준다. 양옥을 품은 한옥으로 설계된 한정호 저택은 일제 강점기의 친일과 미군정기 부역을 거쳐 현재는 극보수로 일관하고 있는 한국사회 기득권층 집안을 연상케 한다. 주인 내외가 거하는 내실은 전통적인 양반집의 안채에 해당하고, 거실과 누마루, 식당이 한옥의 마당 자리에 놓여있는 독특한 구조이다.풍문에서는 이런 저택의 유래를 선대에서 고택을 그대로 뜯어다 현재의 터에 옮겨놓은 것으로 설정한다.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뼈대있는 집안임을 과장되게 표현한다.

아들 내외와 딸의 방은 이층 양옥 공간에, 그리고 비좁은 집사 내외의 방은 장독대 옆 낮은 쪽문을 지난 바깥채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공간은 그 배치만으로도 주종관계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누마루는 한정호 내외가 자신들의 부와 권위를 과시적으로 표출하는 곳이다. 그들은 종종 이곳에서 가신들을 내려다보며 차를 마신다. 사돈 내외를 접대하는 곳도 식당이 아닌 누마루였는데,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격조를 갖추되 형식적인 손님맞이임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가신들이 주인의 가식을 조롱하며 뒷담화를 나누는 곳 역시 누마루 바로 아래라는 것이다.

한정호 저택의 쾌적함은 그가 돈으로 부리는 가신들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그들의 노동이 중지된 상태의 집은 곰팡이 피는 거대하고 삭막한 건물일 뿐이다. 게다가 봄이와 진영이가 떠난 후 남은 가족들은 집에 안착하지 못한 채 부유한다. 아기의 탄생과 새 식구의 입성으로 제법 사람 사는 곳 같이 북적이던 저택이 두 인물이 떠난 후 휑한 고적함에 휩싸인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를 연발하던 한이지(한인상의 여동생)는 유학을 떠나고, 제 살림마냥 살아주던 집사내외와 몸종이던 이비서도 새 인생을 위해 그 집을 떠난다. 가신들이 파업한 집을 탈출한 최연희가 고급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하더니 급기야는 새로운 가신들로 교체된 집을 미련없이 버리고 기약없는 여행에 나서는 결말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가정(home)이 사라진 집(house)에 가장인 한정호만 덩그러니 남는 것이다.

한편, 서봄의 집은 좁고 허름하다. 반쪽짜리 철제 대문으로 들어서 담벼락에 바짝 붙어 지나 쪽문으로 된 현관문을 열면 신발을 벗고 다시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침마다 서누리(서봄의 언니)는 여기에서 구두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 운동화를 신은 채 방송국으로 출근한다. 길고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이 칸칸이 붙어 있다. 켜켜이 쌓아 올려진 신발들과 가스레인지 벽면에 초록테이프로 붙여놓은 은박호일, 그리고 요란한 화장실 변기의 물소리는 누추한 삶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작은 홈(home)들이 덧대듯 이어진 하우스(house)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살을 부비며 밀착된 삶을 살아간다.

한정호 저택을 나온 가신들(집사내외, 독선생-이비서)과 서봄-한인상은 서봄 친정집 근처의 3층짜리 다세대 주택 한 채에 모여 산다. 사법고시 일타(일등 스타)강사였던 독선생이 봄이와 인상이에게 사범시험 공부를 이어갈 것을 권유하며 벌어놓았던 자신의 돈으로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내일을 여는 집,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라고나 할까? 새로운 가족들이 각자의 보금자리인 홈(home)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형국이다. 진영이는 새로운 대가족의 품에서 자라게 될 것이다.

주거공간인 ''은 한국사회에선 사적 자산인 동시에 자본이다. 그래서 ''은 사람들의 삶을 온통 좌지우지한다. 한정호 저택이 그러하듯 말이다. 한정호를 권력의 정점으로 유지되던 주종관계의 집에서 나온 사람들끼리 새로운 집을 짓는다. 작고 어설프지만 가진 것을 나누며 수평적인 연대와 공존을 위한 공동체라는 새 집을 짓는다. 그 터는 서봄 친정이 위치한 서울 한복판 재개발 사각지대인 용산구이다.

일반적으로 완전한 가족을 추구하는 가족서사는 사회적 위기의 순간에 강력하게 표현되곤 한다. 이때 가족은 아버지-어머니-자식이라는 가부장제 혈연 중심의 유기체적 완결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그것은 개인들 간의 관계의 단위가 아니라 전체를 상상하는 주된 표상이 된다. 가족은 계급과 사회적 차별 등 모든 것의 경계를 무작위로 녹여버리는 위안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풍문에서 꾸려지는 새로운 가족은 다르다. 이들이 만들어낸 가족은 핏줄에 집착하거나 타자에 대한 배타적 권력 욕망에 의해 추동되는 가족이 아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연대와 공존의 관계인 것이다.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해주는 동시에 서로를 주체로 보아주는 공동체라고나 할까? 세월호의 서글픈 분노와 황망한 메르스 난국 속에서 자기의 홈(home)으로만 숨어드는 우리들에게풍문내일을 여는 집을 보여주며 외친다.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유쾌한 공동체를 작당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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