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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

비고츠키가 남긴 현대적인 유산  <<아동학 강의>>

손지희 (상신중)


  이 책, <비고츠키의 아동학 강의>는 비고츠키가 남긴, 아니 러시아 혁명기 열정적인 교육실천가들이 후대에 남긴 아주아주 현대적인 유산입니다.
  비고츠키 한국어판 선집 번역작업을 수년째 해오고 있는 '비고츠키연구회' 회원샘과의 친분을 무기로 정식출판이 되기도 전에 번역본을 입수하여 비고츠키가 남긴 명저를 남보다 빨리 읽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진보교육연구소에서 '비고츠키'의 저서를 선생님들과 수년간 함께 읽고 글도 더러 썼지만 '더더더 쉽게!'를 외치는 것은 저같이 좀 된 사람이나 비고츠키교육학에 이제 막 입문하는 분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참말로 쉽고 재미있습니다. 하기사, 5년 넘게 비고츠키이론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이나마 공부와 세미나를 한 덕이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보다가(읽은 게 아니라 본 겁니다!) 화가 날 지경까지 치달았던 [생각과 말]에 비하면 참 쉽고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블록버스터 영화에 견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발달이 뭐지?'라는 의문을 이제 막 품기 시작한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은혜롭습니다. 그리고 아직 '발달'이 자신의 레이다망에 잡히지 않은 분들도 이 책을 통해 '어린이의 발달이란 이렇게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이로구나!'라는 아하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이 글 제목(아직 확정된 한국어판 제목을 뭘로 할 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비고츠키의 아동학 강의>로 해야 한다고 친분있는 그 샘께 강력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대로 "비고츠키가 한 아동학 강의록을 모아 출판한 책"입니다.
  비고츠키는 심리학자이기도 했지만 교육실천가이기도 했습니다. 비고츠키는 맑스주의에 입각한 심리학의 정립과 더불어 1917혁명 이후 교사양성이 시급했던 1930년대 러시아에서 교육 전문 대학의 교사 양성 과정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책의 기초가 된 것은 비고츠키가 죽기 몇 달 전에 했던 강의 필사본들입니다. 이 책을 출판한 코로타예바 교수의 아버지(당시 비고츠키 강의의 수강생)가 간직했던 강의 필사본은 80년의 세월을 훌쩍 넘겨 마침내 우리에게로 온 셈입니다. 비고츠키는 1934년 5월9일 병으로 쓰러져 6월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코로타예바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이 '자료'의 가치를 다음과 같이 칭송합니다.

"자료의 내용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이 원고가 다양한 분석의 측면, 즉 철학적, 교육학적, 심리학적, 언어학적, 이론적, 실천적(임상 실습과 전학령기 학교 교육) 그리고 그 외 몇 가지 측면들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는 아동학의 주제, 방법, 범주화 장치(예를 들어, 시험, 진단, 임상 면접 기법-K), 문제들과 출생부터 17세까지의 연령에 따른 어린이의 시기 구분이 다양한 유년기 발달 시기의 특성과 함께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방면의 과학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어린이 연구의 고유성을 평가하고, 기존의 관념적 프리즘을 넘어설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평가에는 비고츠키가 당시 교사 교육에 있어서 '아동의 발달'을 가장 중대한 주제로 삼아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을 통일적으로 다루었다는 의미도 담겨있을 것입니다. 비고츠키가 세상을 떠난 지 80년이 지난 한국에는 과연 제대로 된 교사양성 및 연수과정이 있기나 한지 의문이긴 합니다. 이론적인 것도 아니고 실천적인 것도 아니고... 실용은 추구하지만 막상 적용하려면 '내 것'이 되기엔 요원하고 들을 때는 좋았지만 뒤돌아서면 어제의 나 그대로인 그런 수많은 연수들을 '소비'하느라 우리 교사들은 시간과 돈을 축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연수시간 제로인 주제에 열심히 자기계발에 힘쓰시는 분들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인스턴트 제품처럼 진열된 교사연수프로그램들이 과연 얼마만큼의 철학적 고민을 담고 구성된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양성과정은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임용고시용으로 쓰고 나면 바로 휘발되고 말 그많은 지식들을 체계도 없이 억지로 우겨넣기 바쁜 것은 아닌지요. '교사양성과 연수'의 관점에서 비고츠키가 남긴 강의록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어떤 교사가 되고 싶습니까?"
  막연하게 '좋은 교사'를 넘어서 '발달을 이해하고 이끌어주는 전문가'가 되라고 비고츠키는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선생님으로부터 진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략) 비고츠키 공부하다 보면 개성이란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게 되더라구요. 비고츠키적으로 개성은 존재할까요?" 저는 "존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의 형성을 설명하는 것이 비고츠키의 이론입니다..."라고 답하긴 했으나 바쁜 와중이기도 했고 더 이상은 자세하게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은 막연해서였지요.
  개성, 인성, 인격은 엇비슷하면서도 색깔이 조금씩 다른 말들입니다. 비고츠키 저작에는 '인격'이라는 낱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비고츠키 이론은 인간발달의 개별적 특수성보다는 보편적 원리를 정립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봅니다. 하지만 발달을 '사회화'가 아닌 '개인화'의 과정으로, 생물학적 노선과 문화적 노선의 엮임과 짜임으로, 그리고 이 책 <아동학 강의>에서는 "발달은 항상 역동적인 과정으로 유전과 환경적 영향의 통합체"로 비고츠키가 표현한 이유는 바로 타인과 다른 개인의 고유성 즉 개성 또한 인간보편의 고등정신기능이 발달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취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채롭고 무궁무진한 인생역정의 과정이 바로 개개인의 발달의 과정입니다. 저마다의 사람들은 '발달의 개인사'를 가집니다. 비고츠키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발달의 특징 속에는 유전적 영향의 요소와 환경적 영향의 요소들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발달은 항상 역동적인 과정으로 유전과 환경적 영향의 통합체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유전과 환경의 통합체는 일정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으며 단번에 주어지거나 포괄적으로 규정되지 않는, 분화되고 고유하게 구성되며 매번 구체적인 연구를 해야만 하는 변화하는 통합체입니다." (비고츠키의 아동학 강의 [3-48])

  마침 코로타예바 교수도 이런 점을 파악하고 어린이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생각을 고려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비고츠키가 당대의 교수-학습을 개발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개성은 어린이 하나하나의 특성은 물론 각 연령대 어린이들의 특성을 결합체를 뜻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비고츠키가 표현한 것들이 바로 '협력의 교육학의 원리들'이었으며 당대의 교수-학습 기술을 개발했다고 소개합니다.

"더 나아가 현대의 교육학적 실천에서는 어린이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생각을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비고츠키는 당대의 교수-학습 기술을 개발하였다. “아동학의 기초”에서 비고츠키는 타인의 도움을 수반한 어린이의 수행 능력의 의미에 관한 생각을 표현하였으며, 이것이 결코 어린이 생각의 형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제시한다. 이는 매우 올바르고 타당한 인간적인 개념이며, 엄밀히 말해 이것이 협력의 교육학의 원리들이다. 예를 들어 이 원리는 (Т.И. 젤레니나 학장과 А.Н. 우체히나 교수의 지도 아래) 우드무르트 대학교의 로만어와 게르만어의 문헌학부에서 1990년 설립한 어린이 학교 “링구아”에서 구현되었다. 이 학교에서 어린이들의 부모와 함께 일하는데 있어서도 비고츠키의 생각이 매우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7개의 장(강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강 아동학의 주제
2강 아동학의 특징적 방법
3강 유전과 환경에 관한 아동학의 입장
4강 아동학에서의 환경의 문제
5강 어린이 심리적 발달의 일반적 법칙
6강 어린이 신체발달을 일반법칙
7강 신경계 발달의 법칙

제목만 보아도 아동의 발달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구나 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에 이어지는 아동학강의 두 번째에서는 '연령의 문제'를 다룹니다.

  1강에서 아동학의 주제는 무엇일까요?라는 화두를 던집니다. 비고츠키는 늘 이렇게 시작합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명료화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동학은 말 그대로는 '어린이에 대한 과학'이지만 비고츠키는 아동학은 '어린이의 발달에 대한 과학'이라고 정확히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비고츠키는 질문을 이어갑니다. 그렇다면 "어린이의 발달이란 뭐지?" 그리고 나서 어린이의 발달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데요 읽으면서 '아하~'를 자주하시게 될 것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책을 보시면 됩니다.
  전체적으로 어린이 발달의 기본 법칙을 명료하게 풀어내어서 흥미롭게 볼 수 있는데, 저에게는 "유치증"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었습니다. 유치증은 러시아어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어린이와 같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발달과정에서는 진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퇴화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전 연령기의 것들이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유치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청소년이 되어서도 인형을 가지고 놀고 말을 배웠는데도 옹알이를 하고 대수를 배웠음에도 산술적으로 사고를 하는 등도 정상적인 발달의 시간을 겪지 못한 증거들인 셈입니다. 어린아이 같은 어른도 발달의 관점에서 그 시간들을 발생적으로 추적하면 왜 그런 현상을 보이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강에서는 또 비고츠키답게 '아동의 발달'이라는 주제를 과학적으로 다룰 '방법론'을 제시합니다. 방법론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책에서 비고츠키가 강조하는 바가 일관되는데, 이 책의 미덕이라면 그것을 딱딱 정리된 형태로 제시하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곁들여 소개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3강과 4강은 유전과 환경의 문제를 '아동 발달'의 측면에서 다룹니다. 유전과 환경의 문제에 대한 비고츠키의 입장과 설명은 앞의 인용문에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그 문장을 이해하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3장에서 비고츠키는 저차적 기능과 고차적 기능과 관련하여 임상적 관찰, 실험, 데이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저차적 기능에 대하여 유전은 그 특성상 그리고 기능의 운명상 다소간 직접적 영향의 관계인 반면, 고등기능에 대하여 유전은 오히려 전제조건의 관계를 갖습니다. 즉 고등기능이 발달하기 위해 필요하지만 유전적 경향성 자체는 전제조건에 지나지 않습니다."(3-39)

고차적 기능 혹은 고등정신기능은 생물학적 결핍이 없는 한 문화적 노선의 영향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어떤 교육을 받느냐 어떤 언어적 상호작용 환경에 노출되어 있느냐 등 그 누구도 태어날 때 운명이 결정되어 있지는 않은 것이겠지요. 발달이 멈춘 듯한 아이들의 문제를 '유전자' 문제로 섣불리 돌릴 일은 아니겠습니다. 다만 그 후천적 결핍을 보완할 방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문제겠습니다.

"어떤 외적 혹은 내적 영향으로 인해 환경에 존재하는 최종적 형태와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초보적 형태의 상호작용이 방해받는 경우, 어린이의 발달은 매우 제한되며, 어린이에게는 적절한 활동 형태와 적절한 특성의 어느 정도 완전한 저발달이 나타나게 됩니다."(4-55)
"이 법칙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와의 상호작용 없이 혼자 힘으로는 인류 전체의 체계적 발달의 결과로 발달해온 특성과 특질을 절대 발달시킬 수 없다는 매우 단순한 것을 의미합니다."(4-59)
"이 법칙에 따르면 어린이의 고등심리기능, 인간에게 고유한 특성들은 처음에는 타인과의 협동이라는 형태로 어린이의 집단적 행동 형태 속에서 나타나고, 나중에서야 비로소 어린이 자신의 내적, 개인적 기능이 된다."(4-61)

  위에서 비고츠키가 말하고 있는 것은 무슨 법칙일까요? 그것은 "환경은 무엇보다도 그 속에 우리가 역사적으로 발달된 인간의 속성과 특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인간 고유의 속성과 특질 발달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환경은 발달의 원천"이라는 것이며 여기서의 환경은 미시적인 것, 현재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 역사적인 것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어른과 만나는 어린이는 단지 그 어른을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5,6,7장에서는 어린이발달의 각 영역의 역동적 움직임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밤도 깊었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고... 1장부터 4장 못지 않게 직접 보시면 아주 쏠쏠한 교양, 가르칠 때는 무기가 될 내용들로 채워져 있으니 꼭 보시기를 권합니다. 뭔가 설명되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아~ 애들이 요 또래에는 이래서 그렇구나' 하는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