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마이클 애플방한 특집] 비판교육학과 새로운 담론지형의 형성

2. 마이클 애플의 교육사상과 한국의 교육운동


손지희 (진보교육연구소, 2014마이클애플 교수 초청 공동심포지엄 준비위원회)



1. ‘비판적 교육학’과 교육운동

198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육운동은 파시즘적 교육패러다임과 신자유주의적 교육패러다임에 맞서 싸우면서 교육체제의 변화를 갈망하고 진보적 교육대안을 마련하면서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경주해왔다. 때로는 물러서기도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했던 시간 속에서 마이클 애플의 교육이론은 교육모순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인식의 도구로서 기여했으며, 변화는 주체적 실천에 달린 '열린 문제'라는 그의 강조는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에서 그 방향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한국 교육운동이 앞으로 나아가는 지렛대의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이 부상하고 있고 신자유주의가 퇴조기에 접어든 지금, 그의 실천적 논의는 신자유주의 교육패러다임이 몰락한 자리를 과연 무엇이  대체할 것이냐라는 것 또한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라는 시사를 준다.
마이클 애플이 발딛고 서있는 학문적 전통은 이른바 “비판적 교육학”이라 불리는 것으로 학교와 교육을 변화의 주체로 세우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비판적 교육학은 재생산이론의 구조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입장에 비판적이면서 성gender, 인종, 장애/비장애 등 모순의 다양성에 대한 포스트모던 이론의 문제제기를 수용하였다. 애플은 이러한 전통을 이끌어온 학자 중의 하나로서 끊임없이 비판적 교육학이 실천과 연계되면서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을 나름의 위치에서 수행해온 실천가이다.
애플의 이론 전반은 어떠한 지배현상도 특정 집단과 그 이데올로기가 '일방적'으로 관철되기만 하는 법은 없다는 설명이 주를 이룬다. 그것은 애플의 교육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두 축에 근거한다. '관계적으로 사고하기'라는 인식의 원리와 '헤게모니'라는 인식의 개념적 도구가 그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연관된 것이다. 헤게모니란 개념은 여러 가지 '관계'를 전제하고 현상을 '관계'로서 바라볼 때에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운동은 여러 가지 관계의 역동 속에서 관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을 추구하는 실천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애플이 세계를 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이 관계를 과연 '교육'을 통해 바꿀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는 것은 한국의 교육운동이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교육패러다임을 주도해왔던 측이든 교육운동진영처럼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제출해온 측이든 이제 '교육패러다임의 전환'은 어떤 면에서는 불가피한 일이 되었다. 이미 교육을 둘러싸고 '교육을 바라보는 인식과 이론'이라는 커다란 측면 즉 패러다임 수준의 각축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느냐는 주체의 실천에 달린 문제가 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한국 교육운동이 딛고 일어설 어깨가 되어주었던 애플의 교육이론을 간략히 살펴본다. 그리고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어찌보면 세계적으로 특이한 사례이기도 한 한국 교육운동의 실천이 전반적으로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비판적 교육학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어깨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2. 마이클 애플의 생애

마이클 애플의 생애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애플은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10대 청소년 시절엔 인쇄공으로서 노동자의 삶을 살았고 우연한 계기를 통해 교사가 되어 교원노조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

“불그죽죽한 기저귀를 찬 아기”라는 표현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애플은 공산주의자 및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모택동주의자로 불리정도로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로 자처했다.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이러한 가정적 배경은 애플로 하여금 넉넉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물론, 대학 진학도 그에게는 옵션이 아니었다. 그런 그가 대학을 마치고 박사학위까지 마치게 된 데는 애플이 성장한 시대적 배경이 녹아 있었고, 그의 그러한 독특한 교육사는 그가 세상에 펼쳐보이게 되는 “교육에 대한 신뢰”의 원천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등학교를 일찍 마치고 인쇄공이 되었다. 인쇄공시절의 그의 나이는 15-16세였다. 동시에 야간 대학을 다닌다. 그는 일 년 만에 야간대학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하게 된다. 군대에서 그는 두 가지 일을 맡았는데, 하나는 운전병이었고, 다른 하나는 “교관”이었다. 그는 취사도구(기계)를 조정했으며 응급처치법과 나침반 보는 법 등을 “교육”했다. 이 “교육 경력”과 대학에서의 1년 교육이 그로 하여금 교사가 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속성반 교사자격증(emergency certificate)”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사가 된 후에는 4년제 대학(Glassboro State Univ.)을 다니게 되는데, 야간강좌를 수강했다. 교사가 된 이 시기에 애플은 반인종주의 운동에 깊이 관여를 했고, 교사노조를 조직하기도 했다.
교사 경력을 끝마치고 학자의 길을 들어서게 된 것을 그는 “우연”이었다고 쓰고 있다. 그가 6학년을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남북전쟁이후 흑인들의 해방이 이루어진 시기에도 오랫동안 자행되었던 흑인박해(lynch)를 가르쳤다. 그리고, 주제는 자연스레 흑인이 미국역사에서 자유를 위해 벌인 투쟁과 1960년대 중반(그가 이 주제를 가르치던 시기)의 시민인권운동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학부형 중의 한명이면서 그 지역의 목사였던 사람이 흑인에 대한 박해는 없었으며 애플의 수업이 날조라며 그를 파면하라고 학교 당국에 요구를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격분한 애플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보다 나은 교육과정을 만들고, 보다 좋은 것들을 학교에 가져오며, 교사들을 보다 존중하게 만들 방법을 찾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결국 콜럼비아 대학에 진학하게 되고 그 이후로 그는 학자/활동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개인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애플과 같이 생각하고 그런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플에게서만은 이러한 개인사가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시종일관 관심을 두었던 것은 세상을 관계적으로 생각하기인데, 그 관계 속에는 본인이 보낸 유년 시절에 보았던 가족과 이웃들처럼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대가 녹아 있다. 또한, 관계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관심 표명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운동을 조직해 나가고 사회를 바꾸어 나갈까로 그 생각은 확장된다. (강희룡, "헤게모니, 유기적 지식인, 그리고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에서 발췌)

이러한 개인사적 배경은 마이클 애플이 환원론적, 비관적 경향으로 쓸려 들어가지 않고 다양한 모순에 직면한 사람들과의 연대를 실천하면서 ‘비판적 교육학’의 전통을 세우는데 기여할 수 있었던 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1960년대 미국의 자유주의 교육개혁이 '계층상승의 사다리'로서 공교육의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을 즈음 대한 실증적 분석의 결과는 이와 상반되게 나타났다. 당시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사회적 효과에 대해 '학교의 평등화 효과'와 '사회이동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크게 유행했는데 당시 쏟아져 나온 연구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학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 평등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양적 연구들이 정신없이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치중하였음에도 정작 이러한 모순된 결과의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할 때 이를 구조적으로 접근해서 설명했던 이론들이 '재생산이론'으로 교육사회학 전통의 한 분야를 형성하게 된다. 재생산이론의 주장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교육을 아무리 개혁한들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없는 한 별 소용이 없으며 학교교육은 그저 '재생산기제' 로서 자본주의적 분업구조를 유지하는데 일조하는 제도일 뿐이라는 것이다.


3. 재생산이론에 대한 마이클 애플의 분석과 입장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는 애플이 교육학자가 된 이래 끊임없이 지녔던 문제의식을 결산하면서 '실천'의 의의를 강조하면서 실천가들에게 던지는 발문의 성격을 갖는다. 애플은 교육학자로서의 경력 초기에 교육과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분석에 주로 매진하였고 『교육과 권력』을 통해 재생산론,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통한 분석이 갖는 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해낸다. 인종적, 성적 모순을 하루하루 겪는 이들과의 실천적 교류와 그의 교사로서의 경력이 『교육과 권력』을 집필하게 되는게 중요한 배경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플은 대응이론의 기본 가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는 성향과 학교에 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대응관계가 성립"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는 곧 학교의 잠재적 교육과정-사회를 "반영의 관계"로 규정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학교의 기본적인 기능은 학교 밖의 분업 재생산"하는 것에 있으며 이는 곧 "학교는 결정되는 기관"이며 이는 교육(학교)에 대한 경제결정론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한다.

"(대응이론에서는-필자 주) 학교란 사회질서를 재생산하는 기능만 갖는 것으로 본다. 즉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지식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잠재적 교육과정은 사회내의 계급관계를 문화적 경제적으로 재생산하는 제조건을 만들어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교육과 권력, 3장, 93쪽)

애플이 보기에 이러한 가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첫째, 학교의 수동적 기능만을 다루는 이러한 이론은 다시 말해 재생산의 측면에서만 학교를 보는 것으로서 "비관론"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경제결정론적 환원주의적 이론은 실천적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한다.
둘째, 이론적 문제 또한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설명에 있어서 명백한 한계에 있다. 한마디로 대응이론은 지나친 사회화 이론으로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관계들에 관한 이론으로서 부적절하다. 재생산이라는 개념은 여러 기관과 사람들을 연결짓는 관계의 고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반영적 관계가 아닌 ‘모순’적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학교를 오로지 재생산기관으로만 보게 되면 교육과 경제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으며 실제로 존재하는 관련성들을 터무니없이 단순화시킬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잠재적 교육과정 연구는 사회화에 관하여 너무 결정론적인 모형을 채택하고, 일어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제외시키는 재생산 측면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노동자가 생산양식, 기술·행정적 절차, 사회의 이데올로기 형식 등에 의하여 ‘완벽하게’ 통제되는 로봇인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른바 구조는 있으나 행위자는 없는 셈이다. 단순한 재생산이 아니라면 실제로 어떤 결정 방식이 존재하며 이론적 측면에서 대응이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agency)이나 사람(agent)이 어느 정도 결정되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결정 방식으로는 구조적 제약, 선택, 재생산·비재생산, 기능적 양립의 한계, 변천, 매개 등이 있다.
과연 실제로 그러한가라는 의문 즉 경험적 증거를 살펴보아도 단순재생산 이론은 그 가정이 올바르지 않다고 애플은 지적한다. 애플은 “노동자들은 저항을 해왔고, 지금도 저항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대응이론이 가정하고 있는 것만큼 복종적인 일꾼으로 사회화되지는 않(『교육과 권력』)"다며 재생산 과정이 결코 일방적으로 관철되는 순탄하기만 한 과정이 아니라는 경험적 사례들을 제시한다.
일터의 문화 분석이 그 하나이다. 노동자들의 저항은 실제로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관료주의적 통제나 자동화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그러하다. 또한 노동자들의 ‘작업문화’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활동영역”으로서, 반드시 재생산적인 형태만 띠는 것은 아니며 변화를 위한 활동 가능성과 강도를 부분적으로 갖게 된다. 하지만 애플은 이러한 저항에 머무를 경우의 한계 또한 분명히 지적하면서 이러한 사례들을 가지고 '낭만주의'로 빠져서도 안 된다고 경고한다.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벌이는 이러저러한 저항행위들은 흔히 경제 위주의 방향으로 전환(조합주의적 경향)되거나 정치적 수준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태의 문화적 저항에 머무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이러한 사례들에서 애플이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이 힘은 단순재생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애플은 경제결정론적, 환원주의적 경향의 재생산이론을 넘어서고자 하였다.
애플이 이렇게 재생산이론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이유는 그러한 이론이 갖는 "이데올로기 측면"에서의 효과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환원론적, 결정론적으로 잠재적 교육과정을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재생산의 한 요소”이며 불평등을 정당화하는데 필요한 여러 관점의 한 요소"가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좌파의 수많은 학자와 교육자들이 수행해온 최근의 분석들은 그 자체가 조합체제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을 재생산한 것들이다. 노동자들은 단지 배운 대로 그리고 일터의 규범과 권위관계에 수동적으로 묵종하기만 하며 학교는 불평등한 ‘노동시장’을 완벽하게 반영하는 것처럼 봄으로써, 이런 분석들은 경영자의 이데올로기가 경험적으로 정확한 것처럼 말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교육과 권력, 96쪽)


4. 포스트모던적 경향에 대한 애플의 입장

1990년대 이후 애플은 비판적 교육이론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나타나는 새로운 헤게모니 블록의 결성을 분석을 주된 학문적 실천적 주제로 삼았다. "교육, 권력, 그리고 나의 삶"에서 애플은 위와 같은 재생산이론의 한계가 당시 비판이론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우파 연합'에 중간계급들이 참여함으로써 '신우파연합'을 결성하는 과정과 역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많은 좌파들이 소위 말하는 자유주의적인 "개인적 권리"를 점점 인정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우리는 자유주의를 지배계급이 무엇인가를 은폐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경향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현재의 부르주아적 권리라고 불려지는 것들이 투쟁의 결과였다는 것이 더욱더 명백해졌습니다. 초기의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은 단순히 서로 대립하기만 한 것이 아닐, 서로 타협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러한 자유주의적 성과에 대한 비관적 비판 이론 또한 여러 어려운 문제를 양산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전의 비관적 비판이론이 억압을 증명하고 파헤치는 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론은 우리들에게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러한 비관적 비판이론 수준의 논의는 사람들의 실제적인 삶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지도 못하면서 비극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분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비관적 관념을 사람들이 가지도록 함으로써 우파의 새로운 헤게모니의 재구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정론적 비판이론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 대해 재차 거론하면서 애플은 후기구조주의(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그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즉 애플이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심해체 주장 속에는 계급환원주의를 넘어서려다가 중대한 우를 범할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계급이 인간행위자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는 관념이 차지하고 있는 중심적 위치에서 이탈시켜야 합니다. (계급관계의 힘이 가진 진가를 여전히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중심이동은 우리가 인종구성의 쟁점과 성(젠더) 정치학의 쟁점을 여성은 물론 남성까지 함께 포함해서 고찰한다면 가시화됩니다.... 나를 형성해온 것은 노동계급 정치학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후기구조주의적 견해에 대해서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나는 이에 대해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나는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임받은 의미 있는 조직이 전혀 없는 한, 지배의 형태는 늘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 견해가 포스트모던적 조건 그 자체를 현실화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똑같은 억압의 형태라는 관념을 너무 쉽사리 지지해버릴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나는 억압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내 견해는 우리들이 물적 조건들, 그리고 <"난해한" 용어들 내의 모든 것을 보기 위하여 분주히 돌진하는 중에 잊혀져버리고 있는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담론이 나름대로의 중요성과 장점이 있을 지라도, 나는 세계를 단지 일종의 "text"로 바라보는 것에는 현실적인 위험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계급 본질주의자 혹은 경제 환원주의자는 아니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언가 의미하는 바가 있으며, 나는 이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을 품고 있습니다."

요컨대, 애플은 이른바 좌파진영의 후기구조주의적 경향이나 계급환원주의적 비판 전통 모두 이론적, 실천적으로 분명한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론적 경향들은 신보수주의 헤게모니 연합에 좌파진영이 이론적, 실천적으로 대응하는데 있어서 문제를 노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애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 모순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모순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본주의 하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함으로써 여러 모순이 역동적인 사회투쟁의 중심이 될 수 있고 ‘탈중심적 연합’을 새로운 전략으로서 제시한다.


5.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 사회 내 신헤게모니 블록 분석

애플은 “교육개혁”이 교육이 사회이동 가능성 확대와 사회 평등 기제로서의 역할을 공격하면서 불평등한 지배질서를 효율적으로 재생산하는 도구로서 재구조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을 꾸준히 비판했던 학자이다. 국가의 위기를 교육의 위기로 방출하려는 시도가 이른바 '교육개혁'의 본질이며 교육개혁을 통해 지배계급은 교육을 더욱 '보수화'하는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그는 우파연합에 의해 교육개혁이 주도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경우 ‘외형적인 합리성’으로 포장된 교육의 선별기능을 통해 불평등의 유지를 정당화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울러 맑스주의 등 계급모순에 기초한 거대담론을 성급히 폐기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교육의 시장화가 애플의 주요 분석 테마가 되었는데, 애플은 신자유주의 개혁이 첫째, 시험과 시험성적공개를 통해 '평가적 국가'의 위치에서 교육기회의 차별을 정당화하고 둘째, 이러한 경쟁을 부추기기만 하는 개혁의 결과로 이전보다도 못한 교육을 받도록 내몰리는, 다시 말해 실질적인 교육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하는 집단이 생겨나고 있으며 셋째,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개인의 능력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회진화론'의 보수적 담론으로 정당화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교육수요자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국가시험과 시험성적공개를 통해 교육기관의 질을 국가가 평가하려 하고 있다. 이런 방향의 개혁은 누가 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느냐, 누가 더 경제적으로 부유한가에 따라 개인이 받을 수 있는 교육기회를 결정되게 된다. 하지만 선진국가의 일련의 개혁은 개혁의 목적의 하나인 다양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보다 학교 간, 학생 간의 경쟁만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있다. 빈민, 여성, 이민족 등 경제적으로 하위에 있는 계층들은 시장원리로 움직이는 교육영역(교육시장)에서 배제되어 교육의 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공교육’으로 내몰렸을 뿐 아니라 게다가 이 모든 것을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진화론적 경향의 피해자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중하위계층은 그동안 국가가 제공하던 최소한의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할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애플은 『문화정치학과 교육』(1996;2006)에서 그 이전의 교육개혁에서 정부가 위기를 방출하려는 교육개혁 시도는 이제 1980년대 이후 경제 불황으로 미국사회가 위축되고 케인즈주의적 국가론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고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연합하면서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였고 신헤게모니 연합은 소비자중심의 학교선택제, 표준화된 국가교육과정, 국가학력평가 실시, 교육부문 예산 감축 등의 정책을 밀어부침으로써 교육의 시장화, 민영화를 초래하는 과정을 밟아왔다고 분석한다.
신자유주의가 '개혁'과 '변화'를 표방하였고 새로운 세력임을 자처함에도 보수주의 세력이 여전히 강력한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커다란 의문꺼리였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은 애초의 수구세력이 집권하여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더욱 강력하게 결합하는 세력양상과 국가 교육정책 상황을 나타낸다.
애플은 이에 대해 '헤게모니 우산'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애플은 미국사회 내에서 우파들이 경제 위기를 계기로 '강력한 사회운동'의 수준에서 퇴행적 결과를 기대하는 사회운동의 흐름을 벌였으며 이들이 주도하는 흐름을 '보수적 현대화'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것은 '신헤게모니 블록'이라는 용어로 불리우는 새로운 정치적 제휴의 성과라고 말한다. 신헤게머니 블록은 몇몇의 거대한 집단으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신자유주의자들이며 이들은 경제 및 경제 관련 제도들을 '현대화'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가진다. 둘째는 신보수주의자들로서 이들은 애플의 표현에 따르면 "‘높은 성취기준’, 규율(훈육), ‘진짜real’ 지식,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형태의 경쟁을 바란다." 세 번째 구성집단은 다수의 백인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집단들로써 이들은 그동안 누리던 권리들의 박탈을 두려워하는 집단들로서 보수적인 종교적 가치를 중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의 두 집단은 '대중주의적'으로 이 세 번째 집단에게 새로운 경제적 기준, 제도, 그리고 이와 연동되어 제기한 '학교선택권'에 대한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교육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강력한 사회 운동에게서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그다지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운동들 가운데 일부는 ‘민주주의와 평등의 확장’을 이끌어내게 될 테지만, 나머지 운동들은 사회․문화적으로 퇴행적인데다가, 민주주의와 평등의 의미에 있어서 근본적 전환을 담고 있다. 불행히도, 후자가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의 흐름으로 대두하고 있다.
그러한 우경화는 우파들이 지난 수년동안 풍부한 재정 지원과 독창적인 이데올로기적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제휴의 기반을 넓혀 얻은 결과이다. 소위 ‘신 헤게모니 블록’이라는 기술적 용어로 지칭되는 이 새로운 정치적 제휴는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실정이다. 왜냐하면, ‘상식을 놓고 벌어진 싸움’에서 유리한 입지를 잠식해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말하자면, 신 헤게모니 블럭은 상이한 사회적 경향들과 시도들을 독창적으로 꿰매 붙여서, (개인적 경험에서 터득한 대로) 복지, 문화, 경제, 교육과 관련된 쟁점들에서 자신의 총지휘 산하로 이들을 조직해왔다. 이 새로운 블럭이 교육 및 사회 정책에서 견지하는 목표는 아마도 ‘보수적 현대화’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알맞을 성 싶다.(Dale, 1989) 보수적 현대화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소비행위에만 축소되었고, 시민의식은 소유중심적 개인주의로 그 의미가 축소되고 말았다. 그리고 원한에 기초한 정치학과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게 밀고 나왔다.
이 새로운 블럭은 몇몇 거대 집단들로 구성된다.(상세히 알고 싶으면, Apple, 1996 참조) 신 자유주의자들이 그 첫번째 구성집단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 정치 지배 엘리트들로 대표되는데, 이들이 가진 의도는 경제 및 경제와 관련된 제도들을 ‘현대화’하는 데 있다. 그들은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이 ‘우리’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다. ‘사적인 것private'은 필연적으로 선(善)이며, ’공적인 것public‘은 필연적으로 악이기 때문이라며 이(시장과 소비자의 선택)를 정당화한다. 그래서, 이들은 바우처 및 개인의 선택권 보장 계획을 강력히 지지한다. 그런 식의 교육정책들이 바로 불평등을 창출해낸다는 경험적 증거가 명백한데도, 대체로 이 집단이 새로운 정치적 제휴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 새로운 블록을 일종의 이데올로기 우산이라고 가정하면, 이 우산의 손잡이를 쥐고 있는 건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이다.
이 블럭의 두번째 구성집단은 신보수주의자들이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관되게 보수적인데, 이들은 ‘높은 성취기준’, 규율(훈육), ‘진짜real’ 지식, 그리고 사회진화론적 형태의 경쟁을 바란다. 아주 낭만화된 과거에 대한 향수가 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종종 다음과 같은 사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고전이나 ‘진짜’ 지식으로서의 위치가 과거의 격렬한 투쟁을 통해 획득한 산물임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혹평하는 새로운 교육과정과 문화 요소들 만큼이나 고전이나 ‘진짜’ 지식도 위험스럽고 윤리적으로 문제시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그들은 크게 잘못 인식하고 있다.
세번째는 다수의 백인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국가를 불신한다. 그리고 안전, 가족, 성gender, 그리고 가정내의 성․연령관계, 그리고 전통적인 근본주의적 종교의 가치와 지식에 관심이 있다. 이들은 교육/정치/문화 영역에서 힘을 소유한 권위주의적 인민주의자들 내부의 실세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공립학교에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가 만연하게 되면 자신들의 특권(공민권)을 박탈당하리라고 여긴다. 이때문에 이들은 신자유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에게 아래로부터의 상당한 지지를 보태준다. 이들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자본의 도주(자본 이전), 그리고 경제 구조조정으로 생계가 매우 위태로워진 민중들 중에도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개편과 이를 주도하는 정치적 세력지형에 대한 애플의 분석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학교를 위기로 내몰아서 다수의 권리를 박탈할 것'이라는 정책에 대한 비판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체계적인 것이었으며 1990년대 중반까지 신자유주의 개혁의 이러한 본질에 대해 별다른 분석의 기준과 도구를 없이 혼란을 겪고 있던 한국의 교육운동진영에게 일정정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관점과 대응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6. 비판적 교육학과 한국의 교육운동
-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그리고 교육패러다임 전환 운동

비판적 교육학은 과거 이론적 기반이 취약했던 한국 교육운동이 방향과 관점을 수립하는데 기여를 했다. 재생산이론은 자유주의적 교육개혁의 허구와 제도교육의 모순과 구조적 한계를 깨닫고 비판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을 사실이지만 교육운동이 사회변화에 있어서 가지는 '실효성'에는 커다란 의문을 갖게 만든 것이 사실이고 교육의 변화를 근본적인 변화를 전제로 후속하는 것이라는 이론적 설명은 교육이 갖는 당장의 모순을 폭로하고 해소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변화를 지향하는 활동가들에게는 뭔가 석연치 않은 한계적 운동으로서의 이미지를 교육운동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었다.
이러한 재생산이론의 문제의식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간과했던 측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 이론 중의 하나가 애플의 이론이었으며 앞서 살펴본 대로 재생산이론이 가지는 문제점을 명쾌하게 제시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교육운동가들이 교육운동의 새로운 차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1995년 신자유주의 교육재편이 시작되었을 때 즉각적으로 교육의 시장화라는 본질을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교육운동진영이 신자유주의의 '레토릭'을 분석하고 이의 문제점을 예견하면서 새로운 교육대안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을 잡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앞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앞선 인식을 가진 활동가들이 이론적 작업을 통해 『신자유주의와 한국교육의 진로』 (1998)를 출간하였는데 당시로서는 그다지 기댈만한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 대한 체계적 비판이 없는 상태였다. 게다가 1990년대 동구 몰락과 파시즘적 교육이 이완되고 한국사회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운동 진영에서 거대담론의 몰락이 나타났고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으로 이론의 경향이 옮아가면서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수사를 본질적으로 분석할 이론적 기반이 상당히 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이 계획의 수준에서 실행의 수준으로 나아가면서 예견은 현실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애플이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 교육개혁에 대한 비판적 연구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애플의 논문들을 번역글로 소개하였다. 이후 애플의 저서가 2000년대에 몇 권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으며 2000년대 초중반에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서구 교육학자들의 비판적 연구물이 많이 소개되면서 신자유주의 교육에 대한 저항투쟁은 교육운동진영의 핵심과제로 자리잡았다.
신자유주의 저항운동의 과정에서 교육시장화에 대한 비판 확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총체적인 교육대안'이 필요하다는 실천적 문제의식은 오늘날 '발달'과 '협력'을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핵심철학으로 확립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과정에서 비판적 교육사회학 이론과 더불어 인간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체로서 형성되어 가고 교육을 인간의 개념적 사고 등 고차적 기능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불가피한 과정으로 분석한 '문화역사적 인간발달이론'의 철학적 뒷받침은 교육운동이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는데 기여하고 있다.
교육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전환적 문제의식은 재생산이론이 그 비판적 무기로서 기여를 했고 재생산이론의 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넘어서서 교육 영역의 사회변화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는 것에 있어서 애플교수의 '헤게모니 개념을 토대로 한 문화정치학적 분석'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면 이제 '인간형성'의 도구인 교육을 매개로 해서 이 사회가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실천할 순간이 다가왔다.
학교는 교육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적 교육적 관계를 생산하는 장소인 동시에, 사람들이 곧 그 산물이 되는 하나의 중요한 장소가 바로 학교이다. 학교는 죽은 사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노동이 투입되는 공간이다. 또 그 산출 결과는 늘 교육노동자의 의지에 부합되지 않는다. 바로 이 때문에 교육은 가변성과 역동성이 있다.
때문에 학교의 의미와 교사의 실천은 재생산이론으로는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애플은 재생산이라는 용어는 기존의 권력에 대한 저항이 없다는 그리고 있을 수 없다는 가정을 하도록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애플은 실제로 저항은 끊임없이 전개되었음을 강조한다. 민주적 경제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노동자, 가난한 자, 여성,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라틴족 및 기타 집단 등 전 세계 민중들의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결국 학교교육이 사회변화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교육노동자들 특히 교사와 교육학자 등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에 대해 애플은 이들 지식인들이 교육안에서나 밖에서 비판세력의 선봉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의 권리(그리고 교사, 피지배집단 및 기타사람들의 민주적 권리도)를 보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진실한 정치적 문화적 정보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이를 대중에게 자유롭게 발표하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정당한 교육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노력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와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그 변화는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동안 교육운동진영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상교육을 주장해 왔다. 또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 교육기관의 국공립화를 포함한 사회화,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개편과 이를 위한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 설치, 평생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확대, 혁신학교의 확대와 학교혁신 그리고 교육노동자의 노동3권,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들은 사회의 변화를 전제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사회의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구성하는 내용들은 상당부분 이미 사회적으로 표현되었고 승인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첨병에 해당하는 혁신학교의 긍정적인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낡은 패러다임에서 비롯되는 한계와 폐해가 명확해졌다. 진보교육감의 대거 진출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지지기반을 확대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육패러다임 전환운동을 통해 우리 사회를 향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우리 사회는 과연 교육을 통해 어떤 인간상을 지향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들의 관계로 구성된 사회가 어떤 사회이기를 바라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하는 것이다. ‘교육으로 어떻게 사회를 바꿔?’라는 관점에서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가치있는 삶”을 실현하는 주체적 역량을 형성시키는 교육을 위해 이 사회는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바꾸어 던지는 일이 바로 교육패러다임 전환운동이 할 일 중의 하나이다.
교육패러다임 전환운동이라는 한국사회의 실천은 ‘비판적 교육학’이라는 학문적 전통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교육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전환적인 관점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운동과 교육을 통한 사회를 변화를 지향하는 이론적 실천인 ‘비판적 교육학’은 “교육변화와 사회변화의 새로운 결합창출”이라는 한 과정의 두 측면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 [현장에서] 9시 등교로 끝나서는 안 된다 file 진보교육 2014.10.06 578
16 [만평] 좋아, 싫어 file 진보교육 2014.10.06 341
15 [담론과 문화] 4. 이제는 교회를 떠나라 file 진보교육 2014.10.06 769
14 [담론과 문화] 3. 농경민의 사랑과 전쟁 file 진보교육 2014.10.06 579
13 [담론과 문화] 2. '해무'의 바다에서 '명량'을 바라보다 file 진보교육 2014.10.06 612
12 [담론과 문화] 1. IT기술과 인간2 -게임이야기 file 진보교육 2014.10.06 532
11 [초점] 2. 자사고 폐지 투쟁의 경로와 전망 file 진보교육 2014.10.06 606
10 [초점] 1. 국정 교과서 논란과 반대 운동의 의미 file 진보교육 2014.10.06 585
9 [기획] 2. 교육의 변화와 한국사회의 변화 file 진보교육 2014.10.06 1378
8 [기획] 1.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새로운 교육패러다임 file 진보교육 2014.10.06 649
7 [마이클 애플 방한 특집] 4. 특별페이지 file 진보교육 2014.10.06 486
6 [마이클 애플 방한 특집] 3. 애플과 비고츠키 file 진보교육 2014.10.06 698
» [마이클 애플 방한 특집] 2. 마이클 애플의 교육사상과 한국의 교육운동 file 진보교육 2014.10.06 894
4 [마이클 애플 방한 특집] 1. 2014 마이클 애플 방한의 의미와 새로운 담론지형의 형성 file 진보교육 2014.10.06 591
3 [정세] 현 단계 교육지형과 교육운동의 과제 file 진보교육 2014.10.06 562
2 [권두언] 또 다른 교육, 더 나은 세상 file 진보교육 2014.10.06 521
1 진보교육 54호 차례 진보교육 2014.10.06 5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