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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초점] 1. 국정 교과서 논란과 반대 운동의 의미

2014.10.06 14:31

진보교육 조회 수:540

[초점]

국정 교과서 논란과 반대 운동의 의미

김육훈(독산고 교사, 역사교육연구소장)


터무니 없는 국정 교과서 논란
  지난 8월 26일 교육부가 교과서 발행 제도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국사는 국정 교과서 한 종류로 가르치는 것이 자신의 소신’이라는 교육부 장관이 이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자리였다. 이날은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토론회였는데, 참가자들 대다수는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심지어 국정을 찬성하기 위해 참가한 토론자들조차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9월 25일에는 2차 토론회를 열었다.
  1차 토론회가 전문가 토론회였다면, 2차 토론회는 교육부가 진행한 정책 연구 결과를 놓고 각계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 성격의 자리였다. 그런데 교육부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책 연구 참가자도 아닌 뉴라이트 계열 학부모 단체 회원을 발표자로 추가 섭외하고, 역사교육전문가나 역사학계의 대표성 있는 단체 대부분을 배제한 상태에서 토론회 형식으로 행사를 열었다. 국정 교과서 제도를 지지하는 여론이 많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밝히기 위한 의도적 포석이었다. 교육부가 관련 전문가들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 전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읽힌다.
  국정 국사 교과서는 유신 때 처음 등장한 극히 예외적인 형태다. OECD 국가 중 단 한 나라도 국정 교과서 제도를 실시하지 않고, 유신 이전까지 이 제도를 한번도 시행한 적이 없다. 심지어 조선 총독부가 식민지 조선인을 가르칠 때조차 중등 역사는 검정제였다. 오랜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가진 국가에서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
  북한은 이 제도를 채택하는 몇 안되는 국가 중 하나다. 그리고 이 북한의 존재야말로 일부 우파 인사들이 국정 전환을 주장하는 논거가 된다. “온 국민이 동일한 책으로 공부하여 국론을 통일해야, 북한의 위협을 극복하고 통일의 기반을 쌓을 수 있다”거나,  “검정제로 했더니 좌편향 교과서가 나오고, 국가정체성을 제대로 담은 교학사 교과서가 나왔는데 역사교사가 전부 좌파여서 채택되지 못했다”는 식이다. 여러 차례 국정 지지론자의 이야기를 경청해도, 그 이상의 이야기가 나온 적은 없다.
  역사학자 97%, 역사교사 97%가 국정을 반대하는데,  ‘그들은 모두 좌파니까’라는 식의 색깔론까지 동원하여, 국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국정 전환은 중앙·동아와 같은 보수 언론도 반대하고, 조선도 공공연하게 지지하지 않는다. 정부 여당 안에서도 이 제도를 반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정 논란은 왜 일어났나
  지난 과정을 냉정하게 관찰하면, 우파 주류 집단이 크게 작정하고서 교학사 소동이나 국정 논란을 주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파 진영 중 다분히 극단적이라 불릴만한 쪽 인사들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었는데, 수많은 사실 오류와 극단적인 역사 인식으로 인해 우파 전체가 비난을 받는 상황에 놓이자, 정부 여당이 이를 지켜주기 위해 개입하면서 역사 전쟁 양상으로 치달았고, 결국 검정 제도를 없애자는 생각에까지 이른 것이다. 정부 여당 내부의 극우적 경향을 가진 이들, 혹은 시민사회 내부에 극우적 경향을 가진 이들이 국정 전환 주장을 분명히 하지만, 국정 논란은 체계적인 음모의 결과라기보다 교학사 소동이란 흐름의 결과물이며 우파 일각이 앞뒤 없이 내놓은 주장에 가깝다.
  그러나 당초 계획에는 없었는데도 정부 여당이 두 소동에 깊숙이 개입하고, 물러서지 않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 그럴까, 두 차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는 단기적인 정권의 통치술 차원이다. 그 동안 우파쪽 인사들이 교학사 교과서와 국정제를 지지하기 위해, 97%의 학자와 교사를 ‘친북·종북·반대한민국적...’ 같은 수사를 사용하여 마녀사냥을 계속하는 상황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면 되겠다. 정부 여당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언론 지형을 악용하여 이념적 편 가르기를 계속함으로써, 진보 진영 일각을 폭력적으로 배제하고 야권 전체를 분열시키며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하는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국정 소동은 마녀사냥의 일환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실제로 국정제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는 교육 논리가 아니라 정치 논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다.
  둘째로 조금은 장기 지속적인 차원도 있다. 두 소동 모두 충분히 기획된 것은 아니나, 한국의 우파가 추구하는 흐름과 같은 방향이란 점은 분명하다. 한국의 우파들은 ‘자유 민주주의 사관’ 혹은 ‘국민주의 사관’을 내세우면서, 국가주의와 냉전 반공주의·신자유주의가 기묘하게 결합된  역사교육론을 구체화하면서, ‘역사 쿠데타’로 부를만한 일을 꾸준히 벌였다. 2008년 금성교과서 파동을 거치면서, 이들의 활동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처음에는 일부 보수언론과 우파 지식인 정도가 움직였는데,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우파 정당이나 우파 단체들이 적극 나서고, 군부의 견해를 대변한 국방부나 예비역 단체들,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상공회의소나 전경련, 일부 기독교 단체들까지 역사교과서 문제에 개입하고 나섰다. 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한국학 연구 기관의 수장을 모두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차지하였고, 그들의 역사 인식을 담은 역사 서적이 다양한 독자를 대상으로 출간되었으며,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같이 그들의 역사인식을 구현한 현대사 박물관도 등장하였다. 우파 주류적 관점에서 보면, 교학사 교과서 같은 수준 이하의 교과서나 국정 교과서 제도 같은 퇴행적인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이같은 움직임이 대세를 형성하는데 오히려 방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이 지난해와 올해 사이 보수 진영의 일부가 교학사 교과서 지지에 소극적이었고 국정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한 까닭이다. 그래서 이 상황을 반가워하기보다 오히려 더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내장된 국가주의 교육관
  교학사 교과서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 중에도 국정 전환에 찬성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최근에 국정 전환을 주도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이 교학사 지지자 혹은 정부 여당이란 이유로 의구심을 갖지만, 제도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찬성론을 펼치거나 찬성 운동을 조직하지는 않는다. 사안의 중요성을 따지면 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교학사 소동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러나 반대 여론의 확장 속도는 교학사 때보다 훨씬 늦다. 국정 교과서가 가져올 위험성에 대한 경계심이 그리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대한 국가주의적 관점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며, 특히 한국사 과목의 의의를 국가주의적으로 설정하는데 대한 비판적 관점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오래 동안 우리 역사교육이 자국사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한국사가 국정 국사 형태로 이루어진 결과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사를 동아시아 차원에서 파악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진 역사와 비교 성찰하거나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다. 또, 민족과 국가를 단위로 역사를 보고 민족과 국민 내부의 동질성을 강조하는데 익숙하지만, 민족과 국가가 다양한 차원의 사회와 수많은 개인들로 구성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국가주의적 관념의 뿌리는 깊고도 넓다.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서 근대를 시작하였기에 민족의 생존을 국가의 존립과 연관 짓는 데 익숙하였고, 분단과 전쟁·산업화 과정에서 반공을 실현하고 개발을 추진하는 주체로 국가가 부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역사를 강조하고, 국가정체성을 인식하도록 하여 애국심을 가진 국민을 기르자는 최근 우파의 역사교육론은 기존의 국가주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교학사 교과서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듯이, 우파 중에는 민족적 동질성에 입각하여 민족의 화해 협력을 추구하려는 노력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분단을 막으려던 노력을 시대 상황을 읽지 못한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으로, 통일을 위한 노력을 감성적 민족주의의 소산으로 폄하하면서, 「건국(정부 수립)→호국(한국 전쟁과 체제 경쟁)→부국(산업화)」이란 서사로 현대사를 구성한다. 전통적인 국가주의의 문제점 위에 민족을 소거한 대한민국 국가주의의 요소까지 보탠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국가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심지어 국가를 신성하게 여기게 하는 데에 ‘국사’와 ‘국어’·‘국민윤리’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제 주권을 가진 개인들은 모두 국민으로 불려졌다. 국민보다는 국가를 중심에 놓는 사고가 당연해졌고, 애국과 애족은 모든 사람이 지향할 최고의 가치로 간주되었다. 때문에 그 국가가 수많은 개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국가가 바로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은 성장하지 못하였다. 왜 애국해야 하는지 의문이 허용되지 않은 채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질문만 반복되었다.
  국가를 성찰의 대상으로 삼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톺아보는 생각은 민주화 이후에 겨우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가주의를 넘어서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워낙에 오래 동안 이어진 생각이라 국가주의가 장기 지속적인 문화로 자리잡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제도 - 국사라는 호명법, 국정 교과서 제도 같은 역사 영역은 물론 헌법 위의 국가보안법 같은 거시적인 제도도 수없이 많다 –가 강고하며, 과거에 국가주의를 생산하고 뒷받침하였던 세력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 마치 권력처럼 작동하는 국가주의 문화 그것이 바로 우파 역사교육론이 생각보다 널리 횡행하는 이유이며, 국정전환론이 대두하는 이유이자 공론화되었을 때 상당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이다.

국정 교과서 반대 운동의 의미
  국정 교과서 반대 운동은 우선 이 시대착오적인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제도 도입을 막는 그 이상이다. 사실 공들여 싸운다 해서 국정을 막기도 쉽지 않지만, 국정을 막았다고 해서 이겼다고 할 수도 없다. 일본에서 후소샤 교과서가 거의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역사교과서 전체를 우경화한 사실처럼, 국정 논란 자체가 역사교육 혹은 교육이 지향할 가치를 둘러싼 논의의 프레임을 오른쪽 극단으로 이동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도 도입 그 자체를 넘어서서 역사교육을 둘러싼 최근 십여년 동안의 흐름 위에서 이 운동의 의미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다음 두 가지 운동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첫째, 친일과 독재를 미화[美化]하는 역사인식의 확산을 막는 일이다.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시대착오적인 역사인식을 주입하려는 시도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왔다. 금성 근현대사 교과서 소동을 일으키고, 교육과정이나 집필 기준 개악을 시도하고, 국가 역사연구 기관의 책임자를 모두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바꾸고, 교학사 교과서 지지 운동을 벌이는 일, 교육내용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편수 조직 강화를 시도하는 일이 그것이다. 국정제도를 도입하면 이 제도를 활용하여, 설령 그것을 도입하지 않는다 해도 이미 확보된 제도적 기초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의 정치적 속셈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 분명하다. 국정교과서 반대운동은 이같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이 갖는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고, 이같은 흐름을 역전시키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는 활동이 돼야 한다.
  둘째는 더 넓은 차원이다. 국정교과서는 국가주의 교육의 결정판이며, 국정 교과서 반대운동은 바로 국가주의 교육이 더욱 확장되는 것을 막는 운동이다.  ‘국가를 주체이자 목적으로 삼고, 국민을 대상이자 수단으로 삼는 교육’, ‘개인의 권리나 시민 사회의 자율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은 국가를 섬기고 충성하는 존재일 뿐이라고 주입하는 교육’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적 가치와 정면에서 충돌한다. 국정 교과서 반대 운동은 국가주의 교육의 문제점을 분명히 하는 운동이며, 우리 사회 곳곳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국가주의적 관념을 들추어서 성찰함으로써 학생들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을 탐색하는 계기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국가주의와 국가주의 교육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자율적 시민사회를 전제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탐색하기 위한 실천과 학술적 탐구를 이어왔다. 국정 교과서 반대 운동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국가주의 교육을 넘어 민주공화국의 시민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교육의 이념적 가치를 굳게 세우고 그것을 뒷받침할 다양한 대안 마련의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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