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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 [전망] 2. 진보교육감 시대의 교육운동의 방향

2014.07.15 18:26

진보교육 조회 수:563

진보교육감 시대의 교육운동의 방향
-교육자치 선거평가와 향후과제-


김태정 (교육운동연대 정책위원)


들어가며

지난 6월 4일 교육자치선거에서 이른바 진보교육감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이는 2010년 교육자치선거 결과와도 극명히 대비된다. 2010년에 보수 후보가 10명이 당선된 데 반해 이번에는 보수교육감은 4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이며, 향후 교육운동진영은 무엇을 할 것인가?

승리의 요인은?

한국정치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진보진영이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정세이다. 노동자 민중운동이 활성화되고, 대정부투쟁이 활발히 전개되는 등 정세가 고양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08년 촛불항쟁의 성과는 교육감선거로 이어졌다. 둘째, 진보진영은 단결하되 보수진영은 분열되어야 한다. 투표율이 60%를 넘기 어려운 조건에서 보수세력은 기본적으로 전체유권자의 30-40% 정도의 고정 지지 혹은 동원망을 늘 확보하고 있다. 하기에 진보진영이 단결만으로는 승리의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할 수 없으며 보수가 분열되어야 한다. 셋째, 우리쪽은 실수가 없어야 하고 적이 결정적 실수를 해야 한다. 선거는 곧 후보로 대변되기에 아대오 후보에 도덕적 흠결(돈/자녀/성문제 등)이 없어야 하며, 거꾸로 적이 그런 흠결을 가질 경우 승리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선거는 첫째, 세월호 참사로 정권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이는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에 대해 대중의 상당부분이 동의나 지지를 나타내는 조건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참사의 희생자들 상당수가 학생들이었기에 ‘가만히 있으라’로 표현되는 기존의 낡은 교육, 경쟁교육 패러다임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둘째, 보수가 분열되어 있었다. 우선 지배권력이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기에 경황이 없어 교육감 선거에 직접 개입하여 보수후보들의 난립을 교통정리 할 여력이 없었다. 다음 투표용지에서 번호가 사라지면서 비록 당선이 안 되더라도 기본적으로 10% 전후의 고른 득표로 선거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했고, 이는 현실로 확인되었다. 즉 제 돈 안들이고 다음 선거 혹은 다른 방식의 정계진출을 꾀하려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굳이 보수 단일화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셋째, 서울의 경우에서 드러났듯이 보수 후보간의 이전투구 특히 도덕적 흠결(고승덕의 딸과 문용린의 룸살롱 건)이 대중적으로 폭로되면서 자멸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교육자치 선거 승리의 진짜 원동력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 경쟁교육에 치열하게 대응해온 교육 시민 노동 사회단체들의 실천이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바로 전교조 출신 교육감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극우언론은 전교조의 압승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전교조 출신 후보 8명의 당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거기간 내내 ‘전교조 출신에게 아이들을 맡길 것이냐?’ 는 악선동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전교조 출신 교육감을 선택했다. 이는 색깔론 공세가 교육분야에서만큼은 그 효과를 일정하게 상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상대를 종북좌파로 몰아가는 것이 보수층의 정치적 결집의 효과는 있지만 중도층을 모두 흡수할 효과적인 무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결과는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는 교육운동진영의 주장에 대한 국민들의 화답이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죽일 수 없다는 절규, 소중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이상 보수세력에게 교육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호소에 대한 국민들의 응답이다. 특히 진보를 표방한 후보에게 표를 던진 국민들의 숫자가 더 많다는 것은 이들이 난마처럼 얽힌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세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는 교육감 외 지자체 특히 기초단체장 선거결과와 대비된다.
  세월호 국면은 분명 집권세력과 새누리당에게 악재였다. 대중들의 불신과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 상태로라면 여당의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초단체장 선거를 보면 새누리당이 야당들보다 더 많이 당선되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원인은 한편으로는 고정적인 여당 지지층이 확고히 존재한다는 현실이다. 즉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으로 이어지는 반세기가 넘는 독재정권들의 폭압. 그로 인해 내면화된 국민들의 집단적인 정신적 상처는 프레이리가 말한 것처럼 광범위한 ‘침묵의 문화’를 만들었다. 억압적 상황에 오래 노출된 이들은 사회가 변화된 후에도 자신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들은 현재의 상황이 흡족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급격한 변화는 더욱 두려운 심리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가해자와 다를 바 없는 자들이 도와달라고 눈물과 읍소를 하자 피해자인 국민들이 그들에게 다시 표로 화답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야말로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가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신착란증과 같은 기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억압당하는 자의 가슴속에 여전히 억압자의 표상이 아주 강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반증한다.
  때문에 야당세력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보수 지배권력의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국면에 대해 야당세력이 보여준 것은 실망 그 자체였다. 또한 이들은 그 이전에도 민영화와 같은 국민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의제들에 무능함으로 일관하였다. 그 결과는 바로 국민들의 외면이었다. 강조하지만 새누리당을 지지한 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서가 아니라 야당이 대안적 집단으로 국민들에게 인지되지 않았기에 고정적인 동원력을 갖는 여당의 승리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교육운동진영은 세월호 국면에 정면으로 부딪쳤다. 실명으로 청와대 게시판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올린 교사들을 필두로 하여, 1만 5천명이 넘는 전교조 교사들의 선언이 이어졌고, 이어 평학과 참학과 같은 진보적 학부모단체들이 주도한 학부모들의 선언이 계속되었다. 또한 시민사회 진영도 교육운동진영과 함께 세월호 대책위를 구성하여 대정부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는 경쟁교육에 지칠대로 지친 국민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보수언론은 ‘앵그리 맘’, ‘유모차 부대’ 운운하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왜곡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것을 넘어 더 이상 가만히 있으라는 낡은 교육에, 죽음의 경쟁교육에 자신의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동감의 표시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진보교육감의 압승으로 귀결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세에 능동적으로 조응하고,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물으면서, 경쟁교육을 대신할 대안을 제출하고 중단 없이 대중을 설득해온 교육운동진영의 실천이 없었다면 결코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남겨진 과제1 - 진보의 정체성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겉으로는 진보진영이 화려한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계도 존재하며, 이를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 존재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진보교육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언론에서는 진보교육감 13곳의 승리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후보 개개인들의 면면을 보았을 때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당선자들이 과연 자본주의 경쟁교육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을 지향하는 진보적인 인물인가에 대해서 이견도 존재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진보의 준거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 지점이 분명히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보수에 반대하는 것을 모두 진보로 설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도 제기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으로 교육운동진영에서 진보라고 할 때는 다음의 지점들에 대한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① 경쟁교육 중단 !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대학입학자격고사와 대학통합네트워크!
② 교육기관의 사적 소유 지배 금지! 비리 사학의 국공립화!
③ 국제중, 자사고, 특목고 폐지!
④ 혁신학교, 교육혁신지구 확대! 학교혁신!
⑤ 학교비정규직 철폐!
⑥ 학급당 학생수 대폭감축! 정규교원 확대!
⑦ 무상급식! 무상교육!
⑧ 친일독재미화 교과서 폐기! 민주인권 생태역사교육 강화! 교과서 자율화!
⑨ 학생인권 전면보장!

그런데 이번 교육감 당선자들의 공약이나 인터뷰 등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무상급식과 같은 교육복지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정한 편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고교서열체제의 핵심 장치로 작동하고 있는 자사고, 특목고 관련하여서는 5월 19일 교육감 후보들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언급되었음에도 이에 대해 이후 분명하게 폐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데까지는 많은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현재 사학의 문제 특히 교육기관의 사적(私的) 지배체제를 공공적으로 전환하는 과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입장이 확인되고 있지 않다.
  여기에 이행되고 있지 않는 대통령 공약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고교무상교육 등에 대해서 어떻게 국민적 지지를 조직하면서 이를 요구하고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분명 현재 진보교육감 당선자들이 자본주의 경쟁교육의 폐절을 목표로 하는 교육운동 활동가들과 같은 수준의 고민과 실천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에 낙담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진보교육감과 진보교육감시대의 정체성은 이미 완성된 그 무엇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면서 획득되어지는 과정의 산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인가? 그것은 진보교육감의 탄생이 개인의 맨-파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진보 단일후보라는 표현에서 분명히 확인되듯이 진보교육감은 시민사회의 피와 땀이 일구어낸 결실이다. 물론 당선된 이후 태도가 돌변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나, 후보선출과정에서부터 노동조합 사회단체 시민단체들이 헌신적으로 결합하여 얻어진 결과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전남과 전북을 제외하고 유효투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었다는 점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즉, 만일 시민사회의 헌신적인 결합이 없었다면 이번과 같은 결과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교육감의 정체성이 시민사회의 요구에 지금은 썩 부합하지 못할지라도 시민사회의 힘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나가면서 진보교육감의 정체성, 진보교육감 시대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진보라는 이름의 교육감이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현장의 참여를 배제한다면 단언하건대 그 교육개혁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더욱 문제는 그 경우 그 실패는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고 민주 진보진영 전체에 대한 대중들의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진보교육감을 만드는 것은 교육운동진영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힘과 헌신적인 실천 그리고 이를 대안으로 선택한 깨어있는 시민들이다. 또 진보교육감의 정체성과 진보교육감 시대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도 시민사회에 노력에 달려있다.

    남겨진 과제 2 - 교육행정에서 교육자치로!

잘 알려진 것처럼 지난 1991년 지방자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교육감 선출은 임명제에서 교육위원회 간선제로 바뀌었다. 이후 2000년 학교운영위원회 전원 간선제가 마련됐지만, 학교운영위원들의 정치 편향 문제, 금품 제공 및 비리 문제, 파벌 조성 등 후유증이 심해서 2006년 주민직선제를 도입했다.
그런데 2010년에 이어 올 6.4 지방선거 결과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자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6월 12일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산하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연계통합소위원회'는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지자체단체장이 교육감을 임명하는 방안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이 방안을 대통령이 보고받게 되면 국무회의에서 논의하고 최종적으로 국회를 통과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민들을 모독하는 독재적 발상으로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현재의 주민직선제를 지키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주민직선으로 교육감을 뽑는 것으로 교육자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투표장에 가서야 교육감 선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유권자도 있다. 또 교육감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첫 번째 인물에 도장을 찍는 유권자도 태반이다. 때문에 교육감을 뽑는 행위를 넘어서 주민들에 의한 교육자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교육권력을 탁상에서 현장으로!

교육자치가 실현되려면 교육권력이 관료의 탁상에서 학교현장으로 이동해야 한다.이제까지의 교육권력은 관료들의 손아귀에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교육현장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교육부의 거의 대부분은 일반직 공무원들이다. 교육부의 관료들의 10% 미만만 현장 교원출신일 뿐이다. 특히 교육정책의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고위직들은 행정고시 출신이다. 이들을 작동하는 핵심 동인은 교육에 대한 열정보다는 승진에 대한 욕망이다. 이들 대부분은 교육철학이 부재하고, 현장에 대한 경험도 없다. 정책결정을 소수의 권력자들이 독점하며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에 맹목적으로 복종한다. 관료시스템에 길들여진 관료들은 교육현장의 목소리와 어려움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폐단은 지방 교육청이라고 해서 단위학교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교육자치는 교육의 실질적인 주체인 교직원-학생-학부모들의 이해와 요구를 날마다 소통하여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그 실행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며, 그 결과를 피드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상적으로 학생들과 학부모들과 소통하고 생활하는 교직원들 그중에서도 현장교사들이 교육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폭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교육감을 직선으로 뽑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만일 그 교육감이 교육관료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에게 길들여진다면 개혁은 요원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학교 현장에서는 관료적 통제 방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왜곡 변질될 뿐이다. 이제 권력을 관료의 탁상에서 학교현장으로 옮겨가야 한다.

               지시에서 지원으로!

이제까지 교육청은 교과부 다음으로 학교현장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자, ‘공문 폭탄’을 내려 보내는 부정적인 존재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상 교육청이 하는 일은 엄청난 공문을 생산하는 일이다. 그 결과 학교 현장은 교육청이 내려 보내는 공문 때문에 본래의 업무인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 교육청은 학교 위에서 내려다보며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교 옆에서 지원하는 존재로 탈바꿈하여야 한다. 교육청의 역할은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분배하고, 교육활동의 주요한 단위들을 연계하는 허브(hub)처럼 기능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역사회의 교육 인프라를 학교안으로 연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학교는 지역사회의 교육 문화 예술 역량들이 학교의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학교는 지역주민을 위한 평생학습을 위한 매개적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만 학교는 탁아소나 학원이 아니라 사람을 길러내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또 교육청은 단위 학교가 자체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동력의 공급, 학교시설의 관리 운영, 친환경 무상급식 체계, 학교폭력 등 범죄예방 시스템 등등 개별학교가 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시민참여로 투명한 교육행정을!

교육청이 더 이상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원하는 존재로 변한다는 것은 교육청에 대한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통제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시민들이 선출한 교육감이 구태의연한 구래의 방식을 고집하는 일부 관료들을 인사 발령 등의 조치로 일정하게 제어할 수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딱 그곳에 머물 것이다. 다수의 관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재빨리 변신을 할 것이며, 자신들의 이익이 허락하는 수준에서 개혁정책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쳐서 변질시키려 할 것이다.
때문에 이를 강제하는 힘은 교육주체들이 아래로부터 관료들을 통제하는 장치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원전 마피아, 해경 마피아만 문제가 아니라 교육 마피아도 커다란 사회적 문제이다. 교육부 관료들이 사립대학의 임원이 되어 부패사학을 감싸는 역할을 하고 있듯이, 지역 차원에서는 교육청 관료들과 사립 초중고 학교 재단과의 유착문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물론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같은 비리엄단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비리 발생을 차단하는 예방책이 요구된다.
그 가장 유력한 방안은 시민참여를 확대하여 교육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재정의 흐름에 대한 시민감시와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민중들이 낸 세금으로 임금을 받는 경찰들이 민중들을 몽둥이로 두들기듯, 우리들이 낸 세금으로 관료들이 월급을 받는데도 이들은 시민들에게 매우 고압적인 자세로 대한다. 이를 시정하기 위한 방안도 단지 이들에게 친절한 대민업무 태도를 요구하는 것일 수 없다. 핵심은 그들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 그야말로 공복으로 일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재정 흐름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업무추진비 공개 확대를 들 수 있다. 과거 판공비로 불렸던 업무추진비는 여전히 사용 기준이 모호하고 사후 정산방법이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신용카드 사용이 원칙이지만 불가피한 경우 현금 지출도 가능하기 때문에 비자금 창구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이에 2003년 ‘행정정보공개 확대를 위한 국무총리 훈령(안)’을 공포하고 각 행정기관은 정보공개 청구가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온갖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부처는 공개를 꺼리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세금은 단 한푼도 헛되게 쓰여서는 안 될 것이며 더욱이 그것이 특권이 되어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해서는 안 된다.
업무추진비 용처를 분명히 하고, 상한선을 정하며, 현금사용을 엄격히 제한하고 법인카드 사용내역도 철저히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 결과는 참혹하다. 예를 들어 문용린 전 서울교육감의 카드사용 내역을 보면 ‘서울 맛집기행 목록’이 나온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의 고혈로 호의호식하는 탐관오리들이 생기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시민 감사관제를 활성화하여 모든 교육행정 예산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통제를 확대해야 한다. 그동안 시·도교육청의 감사기구는 교육청 일반직공무원과 전문직, 각급 학교 행정실장과 교장이 감사직원으로 구성되어 ‘제식구 감싸기’ 감사로 구조적으로 비리척결과 투명한 행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받아 왔다. 물론 시민감사 청구제가 있다. 지방자치법 제16조는 지방자치단체와 그 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의 처리가 법령에 위반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되면, 19세 이상의 일정 수의 주민(시·도는 500명, 시·군 및 자치구는 200명을 넘지 않는 범위)의 연서로 감사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로는 역부족이다. 때문에 여기서 더 나아가 ‘시·도교육청감사원 설치에 관한 규정’을 조례로 제정하여 시민감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한편 참여예산제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 참여예산제는 2011년 9월부터 의무화되어 있으나 아직까지는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그동안 일부 교육단체들을 중심으로 지자체의 교육경비 보조금 사용처를 중심으로 이 제도가 활용되었다면 이제는 지역교육청의 예산수립과정에 그리고 단위학교의 예산수립과정에 이 제도를 더욱 확대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학교참여예산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자치로 교육자치를!

교육청은 결국 단위 학교를 지원하는 데 제 역할이 있으며, 이런 측면에서 진정한 교육자치의 실현은 학교자치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교장의 선출방식을 바꾸는 것에 있다. 현재의 교장 교감 자격증제는 궁극적으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이 자격제도로 교장 교감을 뽑는 한 교육자치는 요원하다.
그동안 제왕 같은 교장 밑에서 지문이 닳도록 아부하는 자들이 득세하여 왔다. 최근에는 초빙교장제 등으로 CEO형 교장이 확대되는데 이들은 성적은 물론 학생들의 체력까지 지표화 하여 평가하는 경쟁만능주의로 학교현장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것은 교장 선출보직제이다. 일정한 교직 경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교장으로 추천될 수 있다. 선출 방식은 교직원회의에서 복수로 추천하여, 교직원, 학생, 학부모들이 구성하는 선거인단에서 교장을 선출한다. 만일 이때 마땅한 후보가 없을 때는 교장 공모제를 실시하여 교장을 선출할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교장은 교사들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 역할분담을 하는 보직개념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곧 교장의 역할은 교사를 포함한 교직원들, 학생들, 학부모들 간의 소통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하는 역할을 하는 리더로 설정되어야 한다. 당연히 교장직이 끝나면 평교사로 복귀해야 한다.
그런데 교장선출 보직제의 장점은 단지 민주적으로 교장을 선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우선 교장도 교감도 결국 한명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매진할 수 있다. 나아가 다른 교사들도 승진을 위해 교장 교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교수-학습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장을 학교 구성원들이 봉사직으로 선출하는 것이니 위계적 관계를 재생산하지 않으므로 교직원들 간의 평등한 협력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교육활동 특히 가르치는 일에 변화를 가져온다. 교수-학습 활동은 동료교사의 협력에 근거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학급운영 연구모임, 교육과정 연구모임, 지역연계 체험활동 연구모임, 학생인권 연구모임, 학생지도 연구모임, 교수-학습방법 연구모임 등등 수많은 협력적 활동이 가능하게 된다.
물론 그 전제로서 앞서 언급한 ‘공문폭탄’과 왼갖 행정업무로부터 교사들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교사집단 나아가 교직원집단 전체가 위계적인 문화를 벗어날 때만 진정한 협력적 관계 형성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평등하고 협력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교사들의 연구활동이 활발해지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발휘된다. 이는 서구유럽에서 이미 안착화된 시스템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장 선출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교자치위원회를 건설하자!

교장을 민주적으로 선출할 수 있다면 이제는 학교를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립이 공적 주체이든 사적 주체이든 그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민들의 세금이다. 그렇다면 학교는 공적 기관으로 철저하게 공공적으로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학교의 주인은 교장도 아니고 재단도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직원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학교운영을 민주적으로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에 대해 보수세력은 학생인권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한편 진보를 자임하는 이들 중 일부도 현재의 학부모들은 매우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학교운영권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이는 마치 국민들은 미개하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안 된다는 논리와 무엇이 다른가?
최근 KBS가 공정보도라는 최소한의 언론의 원칙을 지키고자 애쓰고 있다. 청와대가 꽂은 사장 밑에서 언론의 기능을 깡그리 잃었는데 노동자들이 싸움을 통해 이렇게 바꿔 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회사를 운영하고 국가를 책임질 능력이 충분히 있다.
마찬가지이다. 물론 교사들 안에는 교육에 대한 열정보다는 안정된 직장으로 교직을 택한 함량미달자도 있을 것이고, 학부모들 중에는 제 자식 성적 외에는 관심 없는 수준 이하의 인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학교자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억지다. 단언하건대 교사들, 학생들, 학부모들이 협력한다면 현재의 관료체제보다 훨씬 더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자치위원회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학교운영의 실질적인 결정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민주적인 장치이다. 이전까지는 교장이 결정하고 이를 따르는 위계적인 학교였다면 이제는 학교 구성원 모두가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자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학교자치위원회를 법제화하고 그 아래 교직원회, 학생회, 학부모회를 법제화해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
지금 교사의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학생인권이 아니라 권위적인 학교문화이다. 특히 노동자인 교사의 노동3권을 부정하고 있는 현행 법률이 교권을 근본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만일 교권을 진정 보장하려 한다면 악법부터 고쳐야 한다. 진정 교권을 보장하려면 교사 스스로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교사로서 존중받게 해야 한다. 이는 학교에서 일하는 다른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교직원회는 법제화하여 학교운영에 대한 참여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교육노동자들은 교직원회를 통하여 교육과정, 교원인사, 예산과 결산, 학사일정, 학칙 개정 등에 개입해야 한다.
학생들의 권리도 마찬가지이다. 진정 학습자의 학습능력을 높이고 싶다면 그를 존중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은 학생들이 학업성취도도 높다. 교육본연의 목표는 단지 높은 성적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 자기실현에 있다. 성적지표는 발달단계별 도달목표에 대한 일정한 기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깨닫게 하는 것과 미래사회의 주체로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물로 양성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회 운영을 통해 학생들이 협력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 교육이 결국 학생을 위한 것이라고 할 때 학교생활의 온갖 현안에 대해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학생회의 법제화도 당연히 필요하다. 학생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과 직결된 문제 예를 들어 학칙의 개정, 학생복지 등에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회 법제화도 필요하다. 현재 학부모회는 임의단체에 불과하며, 실상 학교의 동원부대로 기능한다. 학교운영위원회가 있지만 이는 소수의 학부모가 들러리 서는 것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학부모회를 법제화하고 관련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학부모들 특히 평범한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학부모회 참여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렇게 교직원-학생-학부모들이 언제나 소통하고, 학교운영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참여할 수 있을 때만 교육은 바뀔 수 있다.

        남겨진 과제 3- 강고한 진보교육의 벨트를!

최근 극우적인 역사관과 전교조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해 온 인물이 교육부장관으로 내정되었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부는 교육감 주민 직선제를 폐기시키려 법안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진보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고 하나 만일 이들이 각각의 지역적 특수성에만 매몰되어 각개약진에 머무른다면 폭압적인 국가권력의 공세에 견디는 것 이상의 역할을 못할 수도 있다. 때문에 강고한 진보교육의 벨트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 진보교육감들은 후보시절 그리고 당선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공동행보를 할 것을 시사한 바 있다. 그리고 이는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위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법률적으로 권한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고, 자체적으로 결속력을 강화하여 주요 결정사안이 실질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할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도교육감협의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체계와 인력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현안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기동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국민들이 진보교육감을 선택한 이유는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현 정부의 경쟁교육정책에 대해 싸우라는 것이다. 진보는 수식어가 아니다. 그에 걸맞게 정권의 막가파식 공세에 대응을 해야 한다.
지금 국민들의 대다수는 전교조 법외노조 공세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교사들이 과거처럼 거리로 내몰리고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 진보교육감은 분명히 입장을 밝히고 부당한 탄압에 맞서야 한다. 또 일제고사 강행으로 아이들이 또다시 받을 고통에 대해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염려가 무척 크다. 게다가 자사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자치단체장들도 있다. 이런 현안에 대해 진보교육감들은 대응을 해야 한다. 만일 이를 망각하고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른다는 식으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다가는 그 자신은 물론 선출해 준 시민들을 욕되게 하게 될 것이다.

셋째, 중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진보적인 대안과 정책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진보교육의 미래는 4년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완성될 수 없다. 더 긴 전망을 가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변화를 일구어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가계급은 교육을 통해 체제에 순종하는 노동인력을 양성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 입시경쟁구조는 경쟁이데올로기를 체화시키고 있으며, 그 결과 최소한의 양심도, 공감능력도 없는 사이코패스 같은 괴물들을 길러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정부 관료들이 보여준 모습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닌가.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엄포를 시작으로 실질적으로 교육과정을 철저히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노동 인권 생태 평화 등의 가치를 완전히 배제하는 교육과정을 통해 그들의 천년왕국 건설에 필요한 인간형을 길러내고자 집요하게 달려들고 있다.
이제 진보진영도 그에 걸맞는 대응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그들이 친일독재 미화 친자본 교과서를 강요한다면 그 도입을 무력화하는 것과 동시에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과서를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 또 교육의 본래의 목적이 인간의 발달과 자기실현에 있는 것만큼, 진보의 관점에서 성인교육에 대한 컨텐츠도 전면 재구성하여 공급할 필요가 있다. 특히 자녀의 성장에 따라 학부모의 생애주기가 변화하는 것을 고려하여 이에 맞는 학부모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공급하여 학부모들의 의식고양을 위한 사업도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 나아가 자본주의 경쟁교육의 대안으로 새로운 교육이념과 교육원리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가칭) 교육혁신연구소 등을 공동 출자방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며

  교육감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교육부문에서만큼은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교육감은 교사들에 대한 인사권에서부터 예산운영 전반에까지 지역에서 만큼은 교육대통령과 같은 권력을 누린다. 때문에 이 권력을 아래로부터 견제할 수 없다면 관료들에 둘러싸여 또 하나의 권력자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교육감은 한 개인의 노력의 산물이 아님에도 취임 이후에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변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진정한 교육자치는 교육감의 권력, 교육청의 권력이 아니라 현장의 권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조력자인 동시에 감시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권력의 주변에서 떡고물을 얻으려는 세력들과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하는 방식으로 때론 협력하고 때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편 진보교육감 개개인의 차이가 존재하고, 지역별 차이 특히 진보교육감을 조력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노동조합, 시민 사회단체의 역량이 지역에 따라 매우 편차가 크다는 현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때문에 각개 약진하는 방식은 그 한계가 분명하다. 대신 편차가 존재한다면 어떤 의제에서는 공동으로 대응을 하면서도 어떤 의제에서는 특정지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나머지 지역을 견인하거나, 모범을 확장하면서 불균등하게 결합발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시도교육감협의회 등을 매개로 한 교육감들의 안정적인 협의틀과 진보교육감 지역들이 자신의 지역을 넘는 전국적 의제를 묶는 공동연구소 설립 등을 통해 대응하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 중요하게,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교육청을 매개로 한 교육개혁의 실험은 한편으로는 제도적 조건을 활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제도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실험으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제도적 조건의 활용에만 머물게 되면 필연적으로 제도적 한계에 스스로 갇히게 될 것이다. 지금도 관료들은 관련 법규 운운하면서 교육개혁에 제동을 걸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전략은 제도적 조건을 발판으로 삼아 제도의 한계를 허물 과감한 시도들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자치이다.
  진보교육의 미래는 도래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오로지 현실에서의 한걸음 한걸음 즉, 우리의 치열한 실천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교육의 새 역사를 써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1%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99%를 위한 교육, 그리하여 모두가 행복한 교육! 태어난 곳은 달라도 배움은 같은 교육! 단 한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성적이 아니라 성장과 발달을 돕는 교육! 그리하여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교육!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은 권력이 주는 공짜선물이 아니라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그리하여 교육이 국민들의 보편적인 권리로 실현되는 세상을 만들자. 진보교육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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